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4)화 (7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4화

행사장의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어찌 보면 작은 손동작 하나일 수 있지만, 뉴블랙의 막내 멤버가 보인 애교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쟤 웃긴다’, ‘귀여워’ 같은 귓속말이 오가는 동안.

살아난 분위기 속에서 뉴블랙이 트로트 곡을 열창하기 시작했다.

물론 밤바다나 썸씽만큼 라이브의 퀄리티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행사장에 있는 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진심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아이돌 멤버들이 보여 주는 노력 덕분이었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익숙지 않을 법한데도, 괜히 잘못 불렀다가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겠다는 그 마음가짐이 엿보인다고 할까.

공연에서 그런 것이 물씬 느껴졌다.

자신들이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멋진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함이라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지 채 30초도 되지 않아 흠뻑 젖어 버린 가수들의 모습에 관객들의 시선이 따스해졌다.

이마에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며 노래를 부르는 리더, 진창이 된 흙바닥 위에서 젖은 몸을 유려하게 움직이는 댄서, 파리하게 변해 몸을 달달 떨면서도 목청을 가다듬는 보컬.

듀오가 되어 관객들의 반응을 열심히 이끌어 내고 있는 래퍼와 막내까지.

짧은 노래였지만 그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와닿았다.

그리고.

그런 관객들의 반응에 미소 짓는 이도 있었다.

‘잘한다, 잘해.’

김영건 시장은 아까부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처음 뉴블랙이 무대에 올라왔을 때 보였던 반응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다섯 가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오늘 축제는 완전히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실제로도 그렇게 됐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신인 보이그룹이 나타나 늪에 빠진 행사를 멱살 잡고 들어 올렸다.

트로트 가수를 제외한다면, 오늘 출연했던 팀 중에서 이 정도로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팀은 없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오히려 다른 팀이 올라왔다면 분위기가 더 나빠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뉴블랙이 올라온 건 신의 한 수였다.

이따가 행사가 끝난다면 꼭 찾아가서 악수라도 하면서 어떤 보답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무슨 문제가 있나?’

김 시장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조명이 내리쬐어 만드는 역광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무대 뒤편에서 난리통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한 걸까.

눈매를 좁히며 뒷자리의 수행원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급하게 달려간 이가 그 내용을 보고를 했을 때, 하늘로 치솟았던 그의 기분이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뭐?”

“그게, 물 빼는 펌프가 고장이 났답니다.”

미간을 찌푸리자 수행원이 재빨리 덧붙였다.

“금방 수리가 되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 뉴블랙 무대가 끝나기 전에는 고칠 거라고. 물이 넘치는 건 일시적이랍니다.”

그렇다고 그 말만 믿어 넘길 수는 없었기에, 수행원 하나가 우산을 들고 가서 그쪽 상황을 주시하기로 했다.

다시 무대로 관심을 돌렸을 때.

어느새 ‘그대 나와 함께하세요’의 1절이 끝나고 마이크를 든 김중현이 랩을 부르고 있었다.

트로트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손짓 발짓을 해 가며 호응을 유도하는 래퍼의 열연에 객석에서도 손뼉을 쳐 주며 호응을 해준다.

그리고 그때,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하나 스쳤다.

‘설마…….’

처음에는 무대에 있던 뉴블랙이 왜 내려온 건가 싶었다. 그러다 ‘아, 관객들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서였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만이 아닌 듯했다.

‘설마, 저기서 관객들 시선을 돌리려고?’

처음에는 설마 하는 생각이었지만 이윽고 확신이 들었다.

분명했다.

만약 뉴블랙이 무대 위에서 계속 공연을 하고 있었다면, 조명이 비추는 방향 때문에 자연스럽게 옆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줄기를 발견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물론 그런 일이 있다고 행사가 엎어지는 건 아니었다.

다만 분위기가 깨질 뿐.

유학 간 막내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뉴블랙의 막내 멤버에게 연신 머물러 있던 그의 시선이 움직였다.

랩을 하는 김중현의 옆에서 웃으며 몸을 움직이는 선우주에게로.

‘참…….’

오늘 여러모로 큰 빚을 졌다는 생각과 함께, 더 제대로 된 보답으로 뭘 해 줄지 고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일단 쌀도 좀 보내주고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노래의 톤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트로트 말고 다른 걸 하려는 건가?’

김중현의 랩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다가가듯 점점 빨라지며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 랩이 끝났을 때.

탁-

그들을 비추던 조명이 일시에 꺼졌다.

1초 동안, 눈을 깜빡이며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이윽고 조명이 켜졌다.

탁-

하지만 조명이 비춘 곳은 뉴블랙 멤버들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일직선으로 펼쳐진 객석의 맨 뒤편.

그곳에 서서 유쾌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가수의 얼굴에 관객들이 커다란 환호를 보냈다.

신나게 흘러나오는 2절 전주와 함께.

가수 송보형이 앞줄에 있는 뉴블랙에게 걸어가며 관객들에게 흥겨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이돌 그룹과 트로트 가수의 때 아닌 콜라보 무대.

그 모습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객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세대를 뛰어넘어 모두가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무대가 시작된 것이다.

*   *   *

뜨거운 환호에 가슴이 붕 뜬다.

무대가 끝나기 전에 트로트 가수와 교대하자는 것이 오늘 내가 제안했던 아이디어였다.

-우리한테 있는 MR은 연말 평가 때 썼던 거인 거 알지? 1절이랑 2절이 서로 다른 노래잖아. 2절은 장소원 선배의 ‘Thank You’고. 원안대로 하면 반응이 그닥 좋진 않을 거야.

왜냐하면 그때는 관객들이 1절과 2절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서로 다른 노래를 콜라보해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관객들은 우리를 귀엽게 봐주는 연습생 부모님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이었다.

트로트로 분위기를 띄워 놨다가 2절을 다른 노래로 바꾸면 관객들이 당황스러워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니까 2절도 트로트를 하는 거야.

-예? 어떻게요?

-우리가 부르는 건 아니고, 송보형 씨랑 바톤 터치를 하는 거지. 중현이 랩에서 뚝 끊기는 파트 있잖아. 거기서 노래를 끊고, 다시 트는 거야. 브릿지가 없는 노래라 1절 전주를 다시 틀어도 큰 문제는 없을 거고.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조명 팀이 도와주면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어.

다행히 조명 감독님은 흔쾌히 승낙했고, 마지막으로 송보형 씨가 도착하는 시간까지 체크한 우리는 그걸 실천으로 옮겼다.

반응은 뭐, 보다시피.

굉장히 좋다.

송보형 씨가 손짓을 하며 익살맞게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어르신들과 중년 관객이 열렬하게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다들 똑같은 표정이다.

지호를 보고 귀엽다고 웃던 시장님도 지금은 신이 난다는 듯 어깨춤을 들썩거릴 정도였으니까.

확실히 전문가는 다르다고 해야 하나.

창법이라든가 장르의 멋을 살리는 면에 있어서, 같은 노래인데도 내 몸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다.

이걸 이렇게도 부를 수도 있는 거구나, 하고.

그렇게 주인공의 자리를 넘겨받은 송보형 씨의 뒤에서 우리는 허전해 보이지 않도록 안무를 받쳐 주었다.

상대는 우리의 이런 모습에 고마워하는 듯했다.

간간이 우리 쪽을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노래를 하는 걸 보면.

어쩌면 아까 자신이 노래를 했을 때보다 더 큰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의 모습이 좋은 걸 수도 있고.

어쨌건 우리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기억인 건 확실했다.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뉴블랙! 고마워요!

노래가 끝나고 MC를 대신해서 손을 흔들어 주는 송보형 씨, 그리고 따스한 환대를 보내주는 관객들에게 우리는 다 같이 모여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밀려오는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우리의 위로, 장대처럼 내리던 비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   *   *

관객들에게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며 떠나는 것도 잠시, 무대 뒤편에 내려가자마자 우린 바로 쓰러졌다.

“아, 죽는 줄 알았네. 진짜.”

골조물에 손을 받친 리혁이가 헛구역질을 했다.

압박감이 심했던 모양이다.

나는 민기 형이 건네준 물병을 바로 리혁이에게 넘겨줬다.

“야, 먼저 마셔.”

“……입 댄 건 아니죠?”

“넌 이 와중에 그게 중요하냐? 하여간.”

“조용히 해요. 토할 것 같으니까.”

하얀 손이 물병을 탁 낚아챈다.

입을 헹구던 리혁이가 한참 구역질을 하더니 입을 훔쳤다.

“등이라도 좀 두드려 줄까?”

“됐어요, 괜찮으니까.”

그러곤 바닥에 쭈그려 앉은 내 옆에 주르륵 걸터앉는다.

이윽고 비주도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동참했다.

셋이 좀비처럼 백스테이지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우리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두 매니저도 일어나란 말 대신 미소만 짓고 있다.

석환 형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고생했다, 정말.”

“진짜, 다시는 못할 것 같아.”

“어떡하냐. 분위기 보니까 행사 엄청 들어올 것 같던데.”

농담처럼 하는 말에 눈을 흘겨 주었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몸이 피곤했을 뿐.

준비도 덜된 노래를 3곡 연속으로 하려니 긴장돼서 미치는 줄 알았다.

다행히 관객분들이 좋게 봐준 듯했지만.

“형, 저 너무 추워요…….”

“나도요.”

비에 젖어서 달달 떠는 애들이 내 어깨에 몸을 붙여 왔다.

방금 전까지 화려하게 웃으며 무대에 뛰던 프로 아이돌들은 어디 갔는지 지금은 그냥 우리집 애들이다.

당장 일어나 차에 가서 쉬고는 싶은데,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일어날 기운조차 없는 상태였다.

아, 한 명은 빼고.

“지호야.”

“넹.”

“대체 중현이 등에는 왜 업혀 있는 거니.”

“다리에 힘이 풀려서여. 제가 업어 달라구 했어여.”

철없이 남의 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웃는 모습에 세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중현이, 너는 괜찮아?”

“네, 전 괜찮아요.”

다섯 중에 그나마 신경이 둔감하고 체력이 좋아서 그런 건지, 중현이는 나머지 넷에 비해 상태가 좋아 보였다.

뭐, 만만찮게 피곤함이 가득해 보였지만.

동생들을 둘러보던 내가 석환 형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매니저 형들도 우산 들고 있기 힘드니까 일단 차에 가서 좀 있자. 히터도 좀 틀고. 감기 들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어야지.”

비주와 리혁이가 내 손을 잡고 차례대로 일어났다.

“우리 여벌 옷 있어요?”

“의상 말고 원래 사복 있잖아.”

“아, 더러워서 싫은데…….”

“그럼 혼자 벗고 있던… 야, 누가 사람을 그렇게 벌레처럼 쳐다보냐. 형 마음에 상처 받아.”

“제발 좀 받든가요, 그 상처. 대체 언제 받을 예정인데요?”

티격태격대고 있던 우리 사이로 비주가 쏙 끼어들었다.

“리혁아, 내가 담요 빌려줄게.”

나를 째려보던 리혁이가 비주에게 ‘역시 형이 최고예요’하며 중얼거린다.

‘나는?’하고 바라보니 경멸하는 시선만 되돌아온다.

그 불손한 눈빛을 보며 조만간 생수 한 박스를 꼭 받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실례합니다.”

차량으로 돌아가는 우리 곁으로 웬 기자 한 분이 따라붙었다.

ENG 카메라를 짊어진 남자와 함께였다.

우리 일행을 둘러보던 그가 석환 형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경기TV 배철환 기자라고 합니다. 아까 잠깐 인터뷰 나눴던 것 같은데, 혹시 가능하다면 좀 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을까요?”

“아아, 가능하죠.”

석환 형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일단 저희 애들이…….”

옷을 갈아입는다는 말을 하려고 할 때, 어디선가 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시선이 돌아간다.

멀찍이 보이는 배수펌프에서 나는 소리였다.

분명 우리가 무대에 내려왔을 때 수리가 된 것 같았는데.

그새 또 고장이 나 버린 모양이었다.

털털털-

기계가 진동하면서 물을 울컥울컥 토해 낸다.

그 역류하는 물을 보며 사색이 된 막내 스탭이 다른 현장 직원들을 부르러 달려갔고, 우리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토해 냈던 물은 우습다는 듯,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큰일 났네.

내 일도 아니지만 가슴이 철렁하다.

저 상태면 곧장 무대까지 갈 게 분명했으니까.

송보형 씨가 열창을 하고 있는 행사 무대 쪽을 일별하면서 침을 삼켰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덜덜 떨리는 기계.

리혁이가 무슨 폭탄이라도 보는 것처럼 슬금슬금 내 뒤로 숨을 때였다.

“어어, 중현이 형! 어디 가여?”

막내를 등에 업고 걸어가던 중현이가 그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저 비 맞아여!”

아까는 시장님 쪽으로 막내가 가서 내 가슴을 철렁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우리 래퍼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현아, 너 어디 가는 거야?”

“아.”

녀석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제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   *

GBS 경기TV 소속 기자 배철환은 호기심을 가지고 따라붙었다.

‘……뭐지?’

원래 인터뷰를 좀 따려고 했는데 상황이 희한하게 돌아간다.

“화면에는 잘 나오죠?”

왠지 모르게 좋은 소스를 건질 것 같다는 예감에 묻자, 카메라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현장에 갔을 때.

막내 스탭의 호출에 현장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총감독이 덥수룩한 수염을 파르르 떨면서 고함을 질렀지만,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막내 스탭이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그게, 아까 고장 났다가 바로 멀쩡해지기도 했고, 확인도 했는데…….”

“했는데?”

“또, 고장이.”

“야이씨, 너 인마 그게 할 말이야? 미치겠네, 진짜. 야! 이거 어떻게 누가 좀 만져 봐!”

“감독님, 지금 기계가 오작동하는 원인을 몰라서요. 이거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더 엇나가기라도 하면…….”

욕설을 내뱉으려던 총감독은 시장 측에서 보낸 수행원과 갑작스러운 카메라의 등장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뉴블랙 멤버들까지.

생뚱맞은 인물들의 등장에 뭐냐는 듯 시선이 돌아왔다.

급하게 어디선가 공수해 온 양동이로 스탭들이 그 물을 막으며 이리저리 푸고 있을 때, 김중현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저거, 제가 수리하는 방법 알 것 같아서요.”

“…….”

잠시 벙찐 표정을 짓던 이가 입술을 뗐다.

“아니, 그 지금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거.”

“얼마 전에 제가 봤거든요.”

“……?”

“본가에 내려갔을 때, 그때도 저거랑 똑같이 고장이 나서 어른들이 수리하는 모습을 봤거든요. 뭐 때문에 저러는지 알아요.”

급박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느긋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현장 스탭들은 눈을 깜빡였다.

콸콸콸-

물이 역류하는 그 모습에 사색이 된 총감독이 수염을 몇 번 쓸어 넘기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야, 주영아. 네가 한번 이것 좀 만져 봐라.”

그러곤 김중현에게 시선을 돌린다.

“거기 친구가 방금 그랬지? 이거랑 똑같은 고장이었다고. 이 친구가 고치는 동안 말을 좀 잘해 줘 봐. 지금 이거 상황이 급하니까…….”

곧장 스탭과 함께 김중현이 펌프를 들어 올린다.

이야기가 빠르게 오간다.

임펠라, 스트레너 같은 용어로 김중현이 옆에서 뭐라고 말을 해 줄 때마다, 드라이버를 쥔 현장 스탭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급하게 움직이는 손이 떨면서 십자드라이버를 떨어뜨릴 때마다 그것을 천천히 집어든 이가 차분하게 말을 꺼낸다.

“큰아버지가 하시는 거 보니까, 거기서 필터를 분리해서…….”

점점 물이 넘치는 가운데 어느새 뉴블랙 멤버들도 물을 퍼내는 현장 스탭의 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5분간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갈 때였다.

“됐다!”

현장 스탭이 기계를 재조립하고는 외쳤다.

“됐습니다!”

바쁘게 다시 전기가 연결되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모두가 두 손을 모으고 그걸 지켜볼 때.

ON 버튼이 눌린 펌프가 원래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넘쳤던 물은 사라지고 물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다른 때였다면 고장 원인을 살피고 수리하는 데만 30분은 걸렸을 일이 5분 만에 이뤄진 상황.

스탭들이 안도의 숨을 내뱉었고, 총감독은 빗물에 마른세수를 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분위기 속에서 스탭들이 바쁘게 현장으로 복귀하고, 시장 측 수행원도 어디론가 빠르게 사라졌을 때.

총감독과 수리를 담당한 스탭이 너털웃음과 함께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뉴블랙 멤버들과 매니저들은 그에 화답하면서도 굉장히 얼떨떨한 기색으로 한 멤버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깨를 붙잡고 말하는 총감독에게 느긋하게 웃어 보이는 김중현.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웃고 있는 누군가도 있었다.

“녹화 다 되었죠?”

배철환의 물음에 카메라맨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촬영을 이어 가는 동안, 그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핸드폰을 꺼냈다.

곧바로 통화가 연결됐다.

“어, 나예요. 김 작가님. 지금 이천에 축제 취재하러 나왔거든. 쓸 만한 장면을 몇 개 땄는데 뉴스에 내보내기는 좀 애매해서, 김 작가님 담당하는 프로그램에 좀 토스해 주려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그림이 제법 괜찮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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