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6화
‘현장으로 간다’는 익숙한 포맷이었다.
백반집에 손님이 없어서 쉴 때마다 김덕순 여사가 틀어 놓고 보던 그런 TV 프로들 같다고 할까.
이번 주의 날씨라든가, 어느 고장의 축제라든가, 요즘 유행하는 질병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뉴스나 생활 정보를 재미있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원래는 우리가 나올 예정이 아니었다.
그날 인터뷰를 해 주셨던 기자님이 촬영분을 한번 넘겨주었는데 내부 반응이 좋아서, 우리 중심으로 재구성하게 됐다고 들었다.
지상파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아무래도 만성 소재부족에 시달리는 케이블 방송이라 가능한 일인 듯했다.
어쨌거나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기자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으며 시선을 집중했다.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번듯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김승관입니다.]
여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 MC의 인사말이 끝나고, 차례차례 한 꼭지씩 지나가기 시작했다.
한창 남부 지방을 할퀴어 대는 태풍, 농가에 출몰한 멧돼지 사냥, 광명 사거리 먹자골목에 있는 어느 곱창집까지 나온 후.
마침내 우리 이야기가 나왔다.
익숙한 행사장의 썸네일에 우리가 발을 동동 굴렀다.
“으어어, 이제 나오나 봐여. 별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지.”
“야, 왕지호. 호들갑 좀 그만 떨어. 화면 흔들리잖아.”
“리혁아, 너도 다리 떨고 있는데.”
“……아닌데. 땅이 흔들리는 거예요.”
가벼운 웃음이 오가는 가운데 비주가 볼륨을 높였다.
[‘축제’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설렘, 즐거움, 기쁨. 그런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죠? 다음 코너에서 다뤄 볼 주인공은 바로 축제에서 관객들의 흥을 돋워 주는 분들입니다.]
행사장의 썸네일이 뉴블랙으로 바뀌자 우리 모두 으어어! 하면서 눈을 가렸다.
뮤직카페 때와는 또 다른 민망함이었다.
그때도 부끄럽긴 매한가지였지만, 아이돌과 전혀 상관도 없는 생활정보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려니 뭔가 부끄럽고 창피하고, 얼른 끄고는 싶은데 또 보고 싶기는 한 그런 느낌이다.
[지난 금요일, 경기도 이천시에서 주최하는 2014 달빛축제가 열띤 분위기 속에 열렸는데요. 이날 아주 특별한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오늘의 주인공, 신인 아이돌 그룹 뉴블랙과 그 좌충우돌 행사 체험기 함께하겠습니다. 보시죠!]
우리가 침을 꿀꺽하는 동안, 아나운서의 손짓에 화면이 바뀌었다.
[경기도 이천, 7월 18일]
그런 자막 위로 특설 무대가 세워지는 현장이 나타났다.
현장 스태프들이 움직일 때마다 무대가 가설되고, 반원형으로 빙 둘러싼 객석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적인 경사 때문에 뒷좌석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
익살맞은 성우의 목소리가 나레이션을 읊었다.
[이곳은 경기도 이천, 오늘 있을 축제를 위해 한창 준비가 분주한 상황. 스태프들도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
스태프들의 분주한 광경이 스쳐가고.
[그에 못지않게 가수들도 긴장하고 있는데~]
풍물놀이패, 락 밴드, 보이그룹과 걸그룹이 한창 뭔가를 준비하는 모습들이 차례대로 스쳐간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찍었던 영상이 흘러나온다.
[아니! 저기서 빛을 뿜어내는 다섯 남자는 누구?]
어설프고 유치한 후광 CG에 우리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고, 리혁이는 벌건 얼굴에 생수병을 갖다댔다.
나 역시 보리차가 코로 넘어갈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지금 촬영하는 거예요?]
내가 민기 형에게 한 말이었는데, 뭔가 화면으로는 VJ에게 한 말처럼 나왔다.
그날 방송국에서 영상 편집을 하면서 우리 회사로 따로 연락을 했다고 들었다.
축제에 대한 내용을 뉴블랙 위주로 다뤄 보고 싶은데 혹시 따로 촬영한 영상이 있느냐고.
채널이 어디든 공짜로 홍보를 할 귀중한 기회였기에 회사 쪽에선 마다하지 않고 자료를 제공했다.
그 결과물이 지금 화면에서 ‘신인 보이그룹 뉴블랙’이라는 화려한 자막이 되어 나오는 중이었다.
[지금 뭐하는 건가요?]
[저희 지금 목 풀고 있습니다.]
[희한하게 푸시네요.]
[저희 메인보컬님이 가르쳐 준 방식입니다. 잘되더라고요.]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오백 원, 오백 원’하면서 목을 푸는 광경에 BGM으로 가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이거 뭔가 굉장히 부끄러운걸.
그 뒤로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무대 올라가기 전에 화이팅하는 뉴블랙의 모습, 비가 오는 가운데 불꽃놀이를 공연하는 모습, 마지막으로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경품 행사를 하는 MC의 모습까지.
[그런데, 현장 분위기가 이상하다. 분명 와야 할 마지막 가수가 오고 있지 못하는 상황. 어찌 된 일일까?]
행사 대행사 직원분이랑 이야기를 나눴을 때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는 근처에 카메라가 없었기에, 경품 이벤트를 하는 화면 아래로 다른 사람의 인터뷰가 나레이션처럼 흘러나왔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BGM과 함께.
현장 관계자가 마지막 가수가 빗길 때문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한다.
우리 목소리가 아닌 이유는 괜히 틴스피릿 팬들에게 트집이 잡힐까 봐 모두 그 일에 대해 함구했기 때문이었다.
그 목소리가 끝나고, 우리의 인터뷰 목소리가 깔렸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분위기상 저희가 올라가야 할 것 같았어요.]
이후 내용은 특별할 게 없었다.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관객들 앞에서 우리가 밤바다와 썸씽, 트로트 곡을 연달아서 공연하고.
마지막에 등장한 송보형 씨와 같이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가 업된 상태로 영상이 끝나는 듯했…….
“어, 뭐야. 끝이 아닌데?”
마무리로 우리 인터뷰가 훈훈하게 나오고 끝인 줄 알았는데, 무대에서 내려온 우리가 터덜터덜 걷는 장면이 이어진다.
방송국에서 찍었던 화면이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런데, 이때. 멤버 중 하나가 뭔가를 발견한 듯 돌발행동을 시작하는데.]
지호를 업고 가던 중현이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뭔가 진지한 표정으로.
“어?”
내 곁에서 DMB를 보던 중현이가 눈을 깜빡이며 묻는다.
“저런 것까지 나오는 거였어요?”
화면 속에서 현장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현이가 곧이어 쭈그려 앉더니 같이 수리를 돕는다.
비에 젖은 얼굴로 뭔가 멋있게 그려진다.
마침내 펌프가 원래대로 작동하자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이 안도의 표정을 짓는다.
[정말 놀랐어요.]
감독님은 또 언제 인터뷰하신 거지.
[대뜸 찾아오더니 ‘제가 수리하는 방법을 알아요’,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 친구가) 무슨 소리를 하지 했는데 정말 고치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하여튼 오늘 공연도 그렇고, 현장에서 준 도움도 그렇고. 뉴블랙 아주 최곱니다!]
덥수룩한 수염을 지닌 이가 어색한 표정으로 쌍따봉을 들어 보이는 작위적인 연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그 웃음은 뒤이어서 더 커졌다.
우리 인터뷰가 나왔다.
[중현이요? 가끔 저희도 깜짝 놀래요.]
[저도 친구지만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어서요.]
[신기한 형이에요.]
[아까는 비도 온다고 예측했거든여. 날씨 맑을 때 혼자 하늘 보고 있다가 ‘이따가, 비가 올 거예요’ 했어여.]
누군가를 완벽하게 따라하는 막내의 성대모사에 우리가 박장대소를 하는 동안, 중현이가 머쓱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DMB 화면은 단독 인터뷰로 넘어갔다.
[(고치는 법을)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제가 은퇴하고 나서 꿈이 농부라서요.]
상상도 못한 대답에 웃음이 또 흘러나왔다.
그날 기자님한테 진지하게 뭐라고 말하더니 이거였구나.
선이 굵은 미남이 화면 속에서 구레나룻을 긁적였다.
[인터넷으로 농사짓는 것도 많이 보고, 어렸을 때부터 고향 내려가면 어른들이 기계 다루는 것도 많이 봤거든요. 우연히 얻어걸린 거예요. 저번에 제가 똑같은 고장을 봐서…….]
어르신들이 보기에 호감을 느낄 만한 느릿한 말투와 순박한 표정이 화면을 메웠다.
고향 사람들에게 해 줄 말이 있냐는 질문에 중현이가 말한다.
[아부지, 어머니, 저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까요. 걱정 마시고, 음?]
카메라 앞으로 자꾸 나방이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리자, 중현이가 손을 슥 뻗어 나방을 낚아챈다.
당황하는 기자님의 얼굴.
정작 중현이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나방을 손에 쥔 채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농사 잘돼서 풍년 되세요. 아, 글고 쌀도 좀 보내 주세요. 제 친구 알죠, 비주. 얘가 손이 엄청 커서 쌀을 물처럼 써대요.]
대기실에서 우리팀 래퍼가 집요정에게 옆구리를 꼬집히며 괴로워하는 동안,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기 시작했다.
‘오늘 누가 제일 인상 깊었냐’는 질문에.
[김규현/경기도 이천]
뉴블랙이요. 비 오는데 정말 열정적으로 하시더라고요.
[노유정/경기도 이천]
어머님이랑 추억 만들러 나왔는데, 뉴블랙 친구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노래 정말 잘하더라고요.
[박대복/경기도 이천]
난 몰라. 트롯 가수랑 젊은 총각들이 제일 나았어.
관객들이 웃으면서 우리를 칭찬해 주는 그런 모습이 흘러나오고, 관계자들 인터뷰가 이어진다.
[송보형/트로트 가수]
어린 친구들이 대단하죠. 트로트를 부르는 것도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텐데,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언젠가 함께 공연할 기회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그날 찍혔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신인가수 뉴블랙의 꿈을 응원한다’는 상투적인 나레이션이 끝나고, 다시 화면이 스튜디오로 돌아왔을 때.
“…….”
우리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날 끝나고서는 얼떨떨해서 느끼지 못했던 감동적인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시청률 표에 이름조차 없는 케이블 프로그램이었지만 그걸 보는 우리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물론 부끄러워하는 누군가를 놀리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지.
“야, 이제 중현이 슈스 아니냐.”
“완전 대스타죠.”
“형, 뜨고 나서 모른 척하면 안 돼여.”
“중현아, 내가 쌀을 많이 써?”
그리고 그 놀림을 당한 당사자는 민망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일 뿐이었다.
“난 그냥 펌프만 수리한 건데…….”
* * *
오전에 방송했던 ‘현장으로 간다’가 끝나고도 한참 지난 시각.
일요일 밤.
모두가 쉬고 있는 그 시간에, TBC 예능국 회의실은 불이 훤히 밝혀져 있었다.
‘누구를 골라야 하나.’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 구재영 피디가 꺼슬꺼슬한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서류 뭉치들이 가득했다.
각 기획사에서 보낸 프로필들.
종류는 다양했다.
배우도 있고, 아이돌도 있고, 예능인도 있고.
그대로 쏙 골라내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말이 쉽지.’
선택지가 많다는 것도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다수의 게스트를 등장시키려는 특집에 있어서는 단순히 게스트의 유명세뿐만 아니라 조합도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들을 방송에서 내보냈을 때 어떤 케미를 보여 줄 수 있을지.
‘난감하네.’
구재영 피디는 올해 TBC의 추석 특집을 담당하고 있었다.
추석까지는 아직 두 달이나 남았지만 실제 촬영은 불과 한 달만을 앞둔 상태였다.
게다가 올해는 TBC의 간판 명절 예능 ‘아이돌 운동회’가 휴방하면서, 다른 방송국에 시청률이 밀리지는 않을지 윗선에서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특집이기에 게스트를 선정하는 건에 있어서도 부담이 컸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요?”
빈 회의실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데, 공동 연출을 맡은 후배 오 피디가 고개를 내밀었다.
구 피디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태준아. C팀 말이야.”
“C팀?”
“여기서 누구를 픽스해야 될까?”
“아, 데이드림이랑 뉴블랙 중에서요?”
똑같은 5인조 그룹의 프로필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하나는 신인, 하나는 3년차 보이그룹.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던 오 피디가 뭐 생각할 거나 있냐는 듯 툭 말했다.
“그냥 데이드림으로 가요. 추석특집인데, 신인 애들 썼다가 괜히 촬영장 분위기 망치면 어떡해요.”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그런데요?”
“왠지 얘네가 눈에 밟힌단 말이지.”
“뉴블랙이요?”
후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자료 조사했을 때 뭐 특별한 거 없었잖아요? 장소원이랑 썸씽으로 나왔다는 거랑 뭐, 멤버 아버지가 선명주고. 그것 빼고는 딱히 이야깃거리도 없던데.”
“데이드림은?”
“비슷하지만 방송물은 얘네가 더 많이 먹었죠. 리스크도 적고.”
“그런가.”
“혹시 레몬 실장이 마음에 걸리는 건 아니에요? 그 안경 쓴 사람, 요새 맨날 찾아왔잖아요.”
“너도 참. 내가 이 바닥에서 몇 년인데 매니저 하나 때문에 그러겠냐.”
최근에 레몬의 윤 실장이 찾아와서 끈질기게 영업을 한 건 사실이었다.
그 덕분에 평소였다면 나란히 서지도 못했을 데이드림과 같이 최종 후보군에 올라온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작가진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서 ‘얘네도 나쁘지 않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예능 피디의 감이라고 할까.
문제는 이런 감을 증명할 물증이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역시 신인은 도박이겠지.’
지난 2월 달부터 방송 활동을 했다고 한들 예능 프로의 추석 특집에 신인급을 끼는 건 무리일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뉴블랙의 프로필을 데이드림 밑으로 내릴 때였다.
“두 분이서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요?”
한 손에 커피를 여유롭게 들고 온 서브작가가 물었다.
오 피디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맞다, 양 작가님.”
“네?”
“C팀 게스트 사전 조사, 작가님이 담당했잖아요. 뉴블랙도 같이 조사했죠?”
“그렇죠.”
“뭐 특별한 거 없었어요?”
“전에 드렸던 거랑은 별, 아……!”
느닷없는 탄성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알고 지내던 후배가 낮에 동영상을 하나 보내줬거든요. 케이블에서 서브로 일하는 애인데, 내가 농촌 특집 게스트 때문에 고민이라니까 자기네 방송에 뉴블랙이라는 애들 나왔다고. 한번 봐 보래요.”
“무슨 동영상?”
“나도 아직 안 봐서 몰라요.”
궁금해하는 둘을 위해서 양 작가가 노트북을 가져왔다.
메일함에 저장된 파일을 누르자 동영상이 떠오른다.
“현장으로 간다, 이건 또 뭔 프로야?”
“우리 회사에서 하는 정보통 뭐, 그런 거랑 비슷한 건가 본데요.”
“둘 다 조용히 하고 좀 봐요.”
하지만 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방송이 시작되면서 둘이 입을 다물었다.
5분짜리 클립.
하지만 그것이 끝날 무렵 메인피디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잠깐만, 거기 좀 다시 재생해 봐.”
“여기요?”
어딘지 콕 집어 말한 것도 아니건만, 오 피디가 알아서 마우스를 움직인다.
기계를 수리하고 나서 김중현이 농촌에서 살았다며 꿈이 농부라고 말하는 장면.
그 느릿하고 순박한 말투에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메인피디가 후배에게 시선을 던졌다.
“태준아. 이번 특집에 우리가 농촌을 가잖아.”
“그렇죠.”
“어때?”
“확실히…….”
“그림이 괜찮을 것 같지?”
“예, 아까는 애매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둘이 무슨 대화를 하는 건지 서브작가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메인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날 밝으면 연락 좀 해 보자고.”
그의 얼굴 위로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구재영.
그는 TBC 방송국에서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국민 예능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의 메인PD였다.
* * *
월요일은 우리의 공식적인 휴일이다.
물론 그 휴일이란 말이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쉰다는 뜻은 아니었다.
데뷔 준비를 할 때 그랬듯 스케줄을 잡지 않을 테니 자기계발에 힘 쓰라는 거지.
그러라고 회사에서 배려를 해 준 거기도 하고.
한편, 그런 휴일을 맞이하여 나와 리혁이는 한창 녹음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리혁아, 톤이 좀 더 다운되어야 할 것 같아.
“네, 고칠게요.”
-우주는 잘하고 있는데 ‘그때 그 밤바다’ 할 때, 숨을 좀 더 살짝 쉬었으면 좋겠어. 그 부분 좀 신경 써 주고.
“알겠습니다.”
유리창 너머에서 종이와 볼펜을 든 A&R팀 직원들이 하는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녹음을 이어갔다.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은 ‘밤바다’의 공식 음원 녹음이었다.
곧 음원 발매를 앞두고 있었기에, 분위기도 제법 진지했고 녹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도 남달랐다.
“고생하셨습니다!”
2시간가량 녹음이 끝나고 다시 작업실에 우리만 남게 되었을 때.
리혁이와 난 녹초가 되어 쓰러져버렸다.
“야, 비켜 봐.”
“내가 먼저 누웠어요.”
“태어난 건 내가 먼저야.”
“늙어서 좋겠네요.”
“버르장머리 없는 것.”
“꼰대.”
소파의 꿀 스팟을 두고 한창 다투던 우리는 결국 반반씩 점유하기로 합의를 봤다.
지친 고양이처럼 늘어지던 리혁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죽겠어요. 진짜.”
“힘들어?”
“아직도 몸살기가 남아 있나 봐요. 잠이라도 좀 자야 풀릴 것 같은데.”
“조금만 참자. 낼모레면 음방도 끝나고, 그날 하루 정도는 푹 쉴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소원이 없겠네요.”
밀려오는 피곤함 때문일까.
눈꺼풀이 스르륵 감기며 우리 둘의 목소리가 점점 나른하게 변할 때, 잠이 딱 들기 직전 벌컥 문이 열렸다.
아. 뭐야.
누군가 하고 고개를 들었더니 동생들이었다.
“형들! 형들!”
“왜 그래?”
“우리 대박 소식이에여!”
처음에는 뭔가 했다가 이내 예상이 됐다.
아까 석환 형이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면서 방송국으로 달려갔거든.
혹시 예능 섭외 건인가.
졸음을 쫓으며 기대감을 품을 때였다.
“형, 저희요.”
하지만 잔뜩 상기된 얼굴의 비주가 내뱉은 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내일 쇼타임 1위 후보 픽스됐대요.”
“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면서 리혁이가 굴러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