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8화
30분 후, 뉴블랙의 공식 SNS에 글이 올라왔다.
@The_New_Black_Official
여러분이 보내 준 도시락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우주 형이 작년 이맘때는 군대 밥 먹고 있었는데 너무 감동이라고 눈물 흘렸어요. 진짜예요. 중현이랑 지호는 하나 더 먹었고요. 리혁이가 처음으로 밥을 안 남겼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 뒤로 멤버들이 먹는 사진과 함께, 맛집 블로거처럼 각 음식이 얼마나 맛있고 좋았는지 리뷰가 장문으로 올라올 때.
현장에 있는 팬들도 인증샷을 속속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IiiiII23
공방 나왔다가 치킨 먹게 생김, 고마워 얘들아,
#난_오늘도_돼지가_되어_간다 #다이어트_또르르
뉴블랙의 팬들이 올린 SNS는 금세 팬카페에도 퍼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른 사람들한테 전파하고 싶다. 여러분. 우리 애들 덕질해 주세요. 우리 같이 마음이 아니라 몸이 풍족해져 보아요ㅠㅠ
-지난번엔 인가 샌드위치더니 오늘 공방 간 덕들 계 탔네ㅋㅋㅋ
-지금 현장인데 너무 맛있다.. 오늘 다이어트는 포기
-치킨은 인정임
-현장중계) 치킨 10마리 vs 에코백 토론 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장중계) 에코백이 압승 거둬
-속보) ‘하지만 애들이 직접 건네주는 치킨이라면 어떨까?’라는 모 팬의 말에 분위기 웅성웅성
-속보) ‘애들은 애들이고 치킨은 치킨이다’ 극적인 합의 이뤄 져
-ㅋㅋㅋㅋㅋㅋㅋ
-와, 진짜 맛있겠다 현장에서 튀겨 주는 거?
-ㅇㅇ 본사에서 조리 담당? 하시는 분이 왔어 지호네 아버님이 그쪽 회사에서 일하신다나 봐
-헐 대박이다ㅋㅋㅋ
팬카페가 한창 시끌시끌한 가운데, 레몬 엔터의 홍보팀은 평소처럼 일하는 중이었다.
뉴블랙 멤버들이 보낸 SNS 내용도 검토하고, 팬과 가수가 서로 선물을 준 훈훈한 미담도 보도 자료로 돌리고.
바쁜 업무가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었을 때, 홍보팀장이 입술을 뗐다.
“이제 슬슬 엔딩 무대 할 시간이지?”
“예, 그럴걸요.”
“TV 좀 틀어 봐. 이런 날은 직접 봐 줘야지.”
누군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회사 배우가 나온 드라마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틀어 놨던 지상파 채널에서 벗어나 번호가 쭉쭉 올라간다.
‘HBS MTV’라는 채널명과 함께 쇼타임이 생방송으로 진행 중이었다.
어울림 엔터의 소울식스가 공연을 하는 가운데 직원들은 의자를 굴려서 TV 화면 앞으로 모였다.
곧이어 소울식스의 무대가 끝나고, 최종 3인의 무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연차가 높은 순이었다.
“우리 애들이 마지막 순서 같은데, 이런 걸로 말은 안 나오겠죠?”
“괜찮아. 저기서 그거 가지고 트집 잡을 만큼 팬덤 큰 애들도 없고. 틴스피릿 정도 되면 모를까.”
“다 고만고만하긴 하죠.”
“아이돌 관련 커뮤들 돌아다니니까 그러던데요. 이번 쇼타임 1위가 역대급 꿀이라고.”
다들 쓴웃음을 짓는 가운데, 누군가 물었다.
“오늘 1위는 누가 될까요?”
“글쎄, 아무래도 미스티가 가능성이 높지. 셋 중에서 팬덤도 제일 크고. 저번 앨범부터 좀 물이 오른 데다가 이번 성적도 나쁘지 않잖아? 다른 음방에서 3위에 든 적도 있고.”
“하기야, 저쪽 팬덤이 은근 화력이 세더라고요.”
“조애나도 가능성 있지 않아요?”
“그래?”
“걸그룹 하다가 회사에서 솔로로 내보낸 거라 기존 팬들이 꽤 있잖아요. 인원은 적어도 굉장히 코어하다던데.”
“앨범 판매량이 안 되잖아요.”
하지만 뉴블랙이 1위가 될 거라고 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객관적인 수치 때문이었다.
3주 차나 4주 차였다면 모를까, 지금은 전반적으로 이런저런 지표가 낮은 편이었으니까.
이윽고.
뉴블랙의 ‘불꽃놀이’ 무대가 시작됐다.
“이야.”
누군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대 퀄 좀 봐요. 이래서 방송국에서 피날레로 준 것 같은데요?”
“진짜 잘한다.”
“오늘 메이크업도 잘 먹었는데, 애들 표정이 진짜, 와, 이래서 밥을 비싼 걸 먹여서 하나 봐요.”
“우주가 날뛰고 있네, 아주.”
불꽃놀이의 후렴구를 부르는 뉴블랙 멤버들의 모습에 감탄이 나온다.
더군다나 청량한 노래까지.
“불꽃놀이는 언제 들어도 좋다니까요. 처음 들었을 때부터 ‘아, 이거 뜬다’하는 생각이 괜히 들은 게 아니에요.”
“A&R팀이 그러는데 아마 노래가 좋아서, 연간 차트 인까지는 무리여도 몇 달은 차트에 머무를 거래요.”
“밤바다 공식 음원 출시하면서 홍보 좀 열심히 해야겠네요. 잘하면 쌍끌이로 같이 올라갈 수도 있잖아요.”
“저기, 애들 무대 하는 모습 봐요.”
누군가 흐뭇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3월 달에 썸씽으로 나올 때만 해도 애기애기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프로 느낌 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젠 연예인 같네.”
“실시간 반응은 어때?”
“폭발적인 반응은 없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애들 잘생겼다고 멤버들 이름 물어보는 댓글도 있고.”
그때, 누군가 메시지를 확인하고 물었다.
“팀장님, 영데일리에서 내일 인터뷰 약속 잡고 싶어 하는데 뭐라고 전할까요?”
“보류해. 다른 스케줄 있다고.”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다른 직원이 물었다.
“스케줄이요? 매니지팀 스케줄 표에는 음방 빼고 없던데요.”
“비공식 스케줄이 하나 생겼어. TBC 방송국이랑 미팅이 생겨서.”
“미팅이요?”
누군가 질문을 할 때, 뉴블랙의 무대가 끝나고 오늘 출연한 가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 시작했다.
5부터 시작하는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화면 위로 각 그룹의 앨범 화보와 함께 점수 총합이 빠르게 나타났다.
-네! 1위는 조애나 씨의 ‘Starlight’입니다!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반짝이는 종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진다.
-1위 소감 부탁드릴게요.
-어… 어, 네. 제가요? 네.
포니테일에 가죽재킷을 걸친 솔로 가수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져 있었다.
이내 침착함을 되찾은 조애나가 스탭들을 언급하며 생애 첫 1위 소감을 말하는 동안 뒤에 있는 가수들이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하지만 홍보팀 직원들이 보고 있는 건 1위 소감이 아니라 그 뒤였다.
“표정 진짜 좋네.”
“우리 애들은 진짜 리액션 좋네요.”
“우주가 애들한테 미리 얘기 다 했을 거예요.”
보통 이럴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표정 관리였다.
과거 식스티 세컨즈가 TNT가 1위가 되었을 때, 팔짱을 낀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것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뭐. 당연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내거나 할까 봐 걱정을 했는데.
3위라는 결과를 확인하고는 자기들끼리 환하게 웃더니 이내 1위가 된 선배 가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뉴블랙이었다.
내심 기대가 컸을 텐데.
프로답게 행동하는 그 모습에 홍보팀 직원으로서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다.
“도착하셨어요? 네네, 제가 마중 나갈게요.”
부산스럽게 일어나는 홍 대리의 모습에 다른 이들이 물었다.
“누구 왔어요?”
“아, 애들 명동에서 쓸 인형탈이요. 방금 견본들 도착했대요.”
* * *
“…….”
회사에 돌아왔더니 연습실에 웬 흉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 깜짝아.”
리혁이가 호들갑을 떨면서 우리 뒤에 숨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리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중이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형, 이게, 아니 이것들은 뭘까요?”
“진짜 못생겼는데.”
“설마 우리가 쓸 인형탈은 아니겠져…?”
막내가 애타는 눈빛으로 우리를 돌아보았지만 해줄 말이 없었다.
나도 울고 싶은 기분인걸.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저걸 보고 나니 1위 후보에 대한 소회라든가, 미니 팬미팅을 하면서 있었던 즐거운 일들이 머릿속에서 훨훨 날아갔다.
드는 생각이라고는 눈앞에 있는 ‘저것들’의 정체가 우리가 쓸 인형탈이 아니기를 바랄 뿐.
막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형들, 다시 생각해 봤는데 저희가 쓸 인형탈은 아닌 것 같아여. 만약 그게 맞으면 5개가 왔겠져.”
눈앞에 있는 인형탈은 3개였다.
“오, 그러네.”
희망 섞인 바람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비주가 말했다.
“혹시 견본품 아닐까요, 셋 중에 고르라는 거라거나.”
“……저기서 고르라고?”
그건 그거대로 문제 같은데.
연습실 벽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인형 세 개에 눈이 향했다.
맨 왼쪽부터.
소시지를 닮은 살색 대머리 인형.
원시 부족.
굉장히 기묘하게 생긴 곰돌이.
인형계에 빌런들이 있다면 바로 우리들이다, 하는 흉악한 자태에 침만 삼켰다.
“아닐 거야.”
내가 말했다.
“회사 직원분들이 미적 감각을 상실하지 않은 이상 저런 걸 골랐을 리가 없지.”
“그렇겠죠?”
“맞아여, 형들. 우주 형이 언제 틀린 말 하는 거 봤어여? 이 형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예여.”
“맞아맞아.”
“저기, 지금 다들 현실 부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안 들린다, 안 들려.”
리혁이의 말을 무시하며 귀를 꾹 닫고 있을 때, 연습실 문이 달칵 열렸다.
홍보팀 홍 대리님이었다.
“어머, 언제 돌아왔대?”
“저희 방금요.”
“1위 후보 된 거 축하해. 인사가 늦었지? 조 이사님이 너희 부담될 수 있다고 끝나기 전까지는 축하인사 하지 말라고 하셨거든.”
“어,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싱글벙글한 얼굴로 축하 인사를 건네던 대리님이 대뜸 물었다.
“어때?”
“뭐가요…?”
설마.
“너희 1위 후보 공약 때 쓸 인형탈 견본품 말이야. 대여 회사에서 견본으로 보내 준 건데 너희가 고르면 주문을 하려고.”
“고르라고요?”
“응, 너희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바람직할 것 같아서.”
인형탈 외모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왜 그래, 우주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혹시 깜짝 카메라인가 싶어서 거울이라든가 레일 등을 슥 훑어봤는데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었다.
이 사람들 설마 진심인 건가.
“자, 그러면 설명을 하나씩 해 줄게.”
본인이 발주하신 건가.
신이 난 대리님의 모습에 표정 관리를 하는 동안, 그녀는 우리를 이끌고 맨 왼쪽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소시지 닮은 민머리.
“이건 손가락 인형이야.”
“손가락이요?”
“응, 원래는 다섯 세트로 되어 있는 거거든.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해서 다섯 개로 딱 되어 있어서, 너희도 딱 다섯이잖아.”
그러면서 태블릿 PC로 완전체 사진을 보여 주었는데, 보자마자 기함을 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뭔가를 연상시킨다고 해야 하나.
“그, 대리님.”
“응?”
“저만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는데, 중지가 좀 길어 보이지 않나요…?”
뭐라고 해야 할지 적당한 단어를 고르고 있을 때, 멤버 중에 가장 돌직구인 녀석이 불쑥 말했다.
“일렬로 서 있으니까 뻐큐처럼 보여요, 대리님.”
“……아.”
대리님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러네,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저희 중에 사이드가 무릎 굽히는 안무라든가 하면 정말 난리가 날지도 몰라요. 명동이면 외국인 관광객도 많을 텐데…….”
“미안. 사실 이게 내가 고른 게 아니거든.”
그녀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나머지 두 개는 내가 발주를 넣었는데, 대표님이 이걸 마음에 들어 하셨어. 우리 애들 인형탈 쓰는 데 손을 보태고 싶으시다고.”
“아…….”
“비밀로 해 달라고 하셨는데, 혹시 몰라서 말해 주는 거야.”
말씀 잘해 주신 것 같다.
나중에 대표님이 수줍게 물어보시는데, 막내나 중현이가 ‘아, 그 뻐큐 인형이여?’하면 난리가 날 테니까.
“음, 그럼 나머지 두 개로 넘어가 볼까?”
두 번째는 원시 부족을 형상화한 인형.
그래도 이건 귀엽다.
살색 소시지와 살인 곰돌이 사이에 끼어서 그런지 몰라도, 외양도 복장도 나름 귀여운 편이었다.
“이건 어때? 팬카페에서 너무 이런저런 예측이 많아서, 다 피하다 보니까 남는 게 이거였거든.”
“나쁘지 않은데요.”
리혁이가 말했다.
“나름 괜찮은 것 같아요.”
“저도요.”
“음, 제 어깨에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저도 찬성이요.”
“셋 중에선 이게 제일 낫네여.”
하지만 내가 반대했다.
“저도 겉모습은 마음에 드는데요. 원시인 피부가 까만 것도 그렇고, 복장도 아프리카 사람들 연상시키고. 요즘에 해외 K팝 팬들도 많은데 위험할 것 같아요. 잘못하면 인종 차별로 비춰질 수도 있어서요. 한국 사람들이야 보면서 웃겠지만, 외국인 관광객들도 다를 수 있잖아요.”
가끔 해외 인터넷에 한국의 인종 차별이라고 논란이 되는 내용이 바로 저런 것들이었다.
피부를 까맣게 칠하고 우가우가한다든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 남은 건 이거 하나인데. 주문을 다시 넣어야 하나. 이건 어때?”
마지막으로 남은 살인 곰돌이.
저 티셔츠에 핏방울만 좀 묻혀 두고 식칼 모형을 들려준다면 영락없는 할로윈 전용 코스튬이었다.
대체 곰돌이에 왜 이빨을 달아 버린 걸까.
씩 웃고 있는데 마치 ‘널 지옥 끝까지 추격하겠어’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한참 동안 애매한 기분으로 그 곰돌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 중현이가 나섰다.
“잠깐만요. 아는 사람 중에 디자이너가 있어서 한번 물어볼게요.”
중현이가 핸드폰을 들더니 어딘가에 연결했다. 누구냐고 물어보는 우리의 눈빛에 녀석이 ‘사촌 형’이라고 답했다.
우리 미적 감각이 이상한 건가.
디자이너라는 그분은 모든 의상을 호평했다. 대중적으로는 세 번째 곰돌이가 제일 낫다고 평가하면서.
한번 아들딸한테도 보여 준다고 했는데.
곧바로 영상통화 화면에 어린아이들이 나타났다.
각각 일곱 살,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앙증맞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였다.
“어때?”
중현이가 불쑥 곰돌이에 영상통화 화면을 가까이 대자, 곧바로 으아앙 하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부인으로 추측되는 분의 새된 고함과 변명 소리, 찰싹거리는 등짝 소리와 함께 통화가 종료됐다.
“…….”
잠시 침묵이 흐르고, 우리가 물었다.
“대리님, 혹시 다른 건 없나요?”
“음…… 아!”
그러면서 어디로 전화를 거니 곧바로 홍보팀 인턴 분이 커다란 인형을 끌고 내려왔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닭이었다.
“어, 귀엽다.”
우리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티셔츠에 ‘호호치킨’이라고 쓰여 있는 닭.
진짜 이건, 귀여웠다.
“울 아빠가 보내 준 거네여?”
“응, 아버님이 인형탈 혹시 필요하면 가져다 쓰라고 보내 주셨거든. 귀엽긴 한데 문제는 상표가 그려져 있어서…….”
“티셔츠를 벗겨 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도 이미 해 봤어. 왜 후보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려 줄게.”
벗겼다.
“음…….”
“으음…….”
“이거, 치킨 주제에 너무 외설적인 것 같은데요.”
리혁이의 입에서 나온 현학적인 표현이 곧바로 막내의 입을 통해 번역됐다.
“닭이 너무 야해여.”
* * *
결국 그날 우리는 인형탈을 고르지 못했다.
다시 알아보겠다는 대리님의 말에 우리는 기함을 하며 말렸다.
한 번 우리가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아니, 이렇게 괜찮은 게 많은데 대체…….”
대여 업체에 올라온 인형 프로필을 살피고 있는데, 막내가 카라멜 마끼아또를 후루룹 마시며 말했다.
“근데 너무 흔하긴 하잖아여. 지금 팬분들이 팬카페에 추측 글 올리고 있는데, 거기서도 곰돌이 같은 건 진부하다고 막…….”
우리가 그동안 무대를 너무 열심히 구성한 게 독이었다.
단순히 인형탈인데도 팬들이 굉장히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할까.
마치 헬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퍼포먼스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곰돌이에 대한 평이 부정적이라는 말에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위시리스트에 있던 8개의 곰돌이 세트를 삭제했다.
“괜찮은 건 다 대여 중이라고 뜨네…….”
아쉬움을 삼키며 사이트를 둘러보고 있을 때, 멀찍이서 우리를 부르는 석환 형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 오신다!”
폰을 넣고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TBC 방송국 내부의 카페였다.
멀찍이 석환 형과 걸어오는 누군가의 모습에 우리 모두 긴장한 채로 일어났다.
지금까지 인형탈 이야기를 하면서 필사적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저 사람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어, 안녕.”
구재영 PD.
국민 예능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그만큼 업계에서의 입지가 높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일단 체구가 엄청 크고 험상궂게 생긴 분이라 슥 훑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무서운 분 같다고 생각을 할 때.
테이블에 앉자마자 대뜸 상대가 내뱉은 말은 다소 엉뚱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누기 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네, 피디님.”
“이중에서 군대 나왔다는 멤버가 누구야?”
“저예요, 피디님.”
“아, 그렇구나. 군대 나왔으면 너 그 혹시…….”
꼭 우리 팀 누구처럼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참 손을 빙빙 돌리던 이가 마침내 질문을 던졌다.
“삽질 잘하니?”
……대체 무슨 특집인 거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