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9화
삽질을 잘하냐니.
당황스러움을 숨기며 피디님에게 되물었다.
“삽질이요?”
“음, 일단 그것부터 확인하고 싶어서.”
“잘하는 편인지는 모르겠는데, 꽤 해 보긴 했어요.”
“그래?”
팔짱을 끼더니 혼자 생각에 잠긴다.
석환 형이 카운터에 가서 피디님이 마실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얘들아! 너희 예능 픽스됐다!’
어젯밤 걸려온 전화에서 석환 형은 잔뜩 꼬부라진 목소리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 달 동안 엄청 힘들었다, 너희 꼭 띄울 거다, 사랑한다 선우주, 너희 열심히 안 하면 나 삐진다, 예능 어려운데 어떡하냐 등등.
별의별 얘기가 많았지만 우리 귀에 들린 건 딱 두 개였다.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
추석 특집.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고 되물었다.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 일명 ‘주세한’은 이른바 국민 예능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예능이다.
단순히 시청률만 따지면 독보적인 원탑.
경쟁사인 PBS의 ‘미스터 프로듀서’가 젊은 시청자에게 큰 인기라면 주세한은 모든 연령대에서 골고루 인기가 많은 프로였다.
그런 곳에 우리가 게스트로 나간다니 믿기 어려울 수밖에.
처음에는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주세한이 어떤 프로그램인데 우리가 추석 특집에 나간다는 거야?
TV 프로 이름을 잘 모르는 김덕순 여사도 아는 프로그램이 바로 주세한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도 우리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하지만 눈앞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험상궂은 남자의 모습을 보니 현실감이 훅 들어왔다.
구재영 PD.
주사위를 굴려서 다음 촬영지와 미션을 정한다는 아주 엉성한 포맷으로 국민 예능을 만들어 낸 스타 피디.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지금도 우리보다 이 사람을 쳐다보는 카페 손님들이 더 많았다.
그나저나…….
인터뷰에 나왔던 말이 진짜구나.
어떤 사람인지 알아 두려고 미리 기사들을 훑어봤는데, 거기 나왔던 내용과 지금 모습이 일치했다.
하루 종일 방송 생각만 하고 다녀서, 자기 딴에는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상대방은 당황스러워한다고 했지.
“아.”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휘휘 젓던 이가 커피를 발견하고는 웃었다.
“커피 잘 마실게요, 실장님.”
이번엔 우리 쪽을 보더니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많이들 당황스러웠지?”
“전혀 아니에요.”
“요즘 들어 하루 종일 특집 생각만 하다 보니까 마음이 좀 급했네. 머릿속으로 밑그림을 다 그려 놨는데, 거기서 내가 원하는 자막이나 장면을 건지려면 삽질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거든.”
“아…….”
“어쨌든 소개가 늦었네.”
상대가 씩 웃으며 인사를 했다.
“만나서 반가워. 뉴블랙 친구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우리 모두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첫 만남인 데다가 커피 한 잔 마시며 서로 얼굴만 익히는 가벼운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얼떨떨하지?”
“네, 진짜요.”
“신인 게스트는 다들 표정이 똑같더라고.”
“저는 특히 더 신기한 것 같아요. 1년 전 이맘때에 주세한을 군대 생활관에서 보고 있었거든요.”
“저희도요. 처음에 실장님이 거짓말하시는 줄 알았어요.”
껄껄 웃던 그가 석환 형을 보며 말했다.
“실장님한테 잘해드려. 정말 애쓰셨어. 매일 시간 날 때마다 커피랑 조각 케이크 들고 찾아오셨거든.”
“……제가 좀 많이 귀찮게 해 드리긴 했죠.”
“덕분에 이렇게 좋은 인연이 된 거 아닙니까.”
구 피디가 덕담을 하며 말했다.
“피디 생활을 하면서 보통 게스트를 만나면, 얘네 방송에서 어떻게 나오겠다 하는 감이 오는데. 뉴블랙은 유독 그런 게 좋네. 빈말이 아니라 뭔가 그림이 잘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에요.”
콧수염을 문지르던 그가 중현이를 바라보았다.
“중현이라고 했지? 특히 너한테서 뭔가 느껴진단 말이지.”
“저한테요?”
고개를 갸웃하며 옷에다 코를 킁킁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 의례적으로 웃던 구 피디가 처음으로 잇몸이 만개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물었다.
“원래 이런 친구야?”
“예, 진짜 못 말릴 때가 많아요.”
“좋네, 좋아. 이런 캐릭터가 하나씩 필요하거든.”
그게 계기가 된 듯, 피디님은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중현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어디서 자랐냐, 농사 일 보며 자랐냐 등등.
대화가 이어질수록 상대가 커피를 마시는 빈도도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에게 질문이 넘어왔을 때는 아예 핸드폰을 꺼내 메모를 하고 있었다.
“비주는 요리가 특기라고?”
“네, 블로그나 TV, 책 가리지 않고 많이 배웠어요.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혼자 밥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요.”
“혹시 명절 음식도 할 줄 아니?”
“네, 올해 설에 전 부칠 때 찍은 동영상도 있어요.”
비주가 핸드폰으로 그 증거물을 보여 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메모를 한다.
“리혁이는 어디 보자. 노래, 퀴즈, 청소…?”
“네, 네! 제가 메인보컬이라서 청소를 좋아합니다!”
긴장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리혁이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참을 때.
구재영 피디가 반색했다.
“그래? 청소를 좋아한다고?”
“네, 그렇긴 한…….”
“어휴, 잘 됐네. 장면이 딱 그려지네.”
뭔가 이상한 분위기에 리혁이가 불안해하는 동안, 혼자 골똘히 생각하던 피디님의 시선이 지호에게 향했다.
“지호는 안 물어봐도 되겠네.”
“넹?”
“굳이 뭘 안 해도 될 것 같아. 가만히 세워 둬도 어르신들이 좋아할 느낌이야.”
예리하시네.
‘난 역시 귀엽지’하고 의기양양해하는 막내의 표정이 좀 얄미웠지만 말이야.
“그리고 우주는…….”
군대 때문인지,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내게 자초지종을 듣던 구 피디가 말했다.
“뽑아낼, 아니 보여 줄 게 꽤 있겠어. 중현이랑 같이.”
방금 뽑아낸다고 하신 것 같은데요.
산적처럼 생긴 분이 나와 중현이를 향해 관심이 드글드글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무서웠지만 좋은 일이었다.
국민 예능, 그것도 추석 특집에 나올 만한 내용이 많다는 건 우리가 바라던 최고의 상황이니까.
10분 정도 예정된 만남은 어느새 커피 얼음이 다 녹아 버릴 때가 돼서야 끝이 났다.
“TNT가 신인 때 우리 프로에 나왔을 때, 딱 이런 느낌이었는데. 이거 느낌이 좋네요.”
자리에서 일어나던 구 피디가 말했다.
본 촬영 일정이라든가, 사전 미팅 등에 관한 간략한 일정을 석환 형과 이야기하던 구재영 피디가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거 얘기하는 걸 깜빡했네.”
“네?”
“아까 인형탈 공약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잖아.”
참, 오늘 별 이야기를 다 했구나. 처음 보는 분한테.
그가 콧수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동안 얻어먹은 공짜 커피에 보답도 할 겸 해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 우리 팀에서 폐기하는 소품이 하나 있거든. 혹시 필요하면 가져갈래? 촬영에 쓰려고 만들었다가 못 쓴 것들이라.”
“……?”
“되게 특이하고 귀엽게 생겼어.”
“……!”
그리고 10분 후.
소품실 창고에 간 우리는 유레카를 외쳤다.
* * *
금요일 낮의 명동 거리는 언제나 그러하듯 혼잡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이곳을 찾은 중국, 일본 관광객들이 각자 언어로 떠들며 바글바글한 거리.
좌판을 깐 이들이 아이스크림이나 간식거리를 팔고, 각종 화장품 숍과 면세점을 찾는 손님들로 거리가 복작거렸다.
점심시간을 맞이하여 식당에서 외국어로 된 메뉴판을 든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던 무렵, 어느 건물 앞에 전깃줄과 앰프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뭐지? 뭐 하나 본데?”
지나가던 이들이 호기심을 품고 쳐다보기 시작했다.
잘 모르겠지만 곧 뭔가를 할 것 같다는 예감에 지나가던 이들은 발걸음을 멈춰 세웠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반원형으로 빙 둘러싸게 되었다.
과연 뭘 하는 걸까.
어떤 관광객은 한국 가수가 나오는 게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었고, 어떤 커플은 장소가 넓어서 사물놀이 패라도 나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경품 이벤트가 아니냐고 기대를 품을 때.
웅장한 BGM과 함께.
건물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전혀 상상도 못한 정체였다.
“저거, 지금…….”
“펭귄이야?”
거대한 펭귄들이었다.
각자 종도 다르고, 표정도 제각각인 특이한 펭귄 인형들이 뒤뚱뒤뚱 걸어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터뜨린 웃음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펭귄들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기 펭귄이 졸졸 걸어 나왔고, 그 뒤로 성격이 나빠 보이는 젠투펭귄이 따라 나왔다.
이어서는 왠지 우아하게 뒤뚱거리는 귀족펭귄과 거침없이 뒤뚱거리는 대왕펭귄이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
머리에 왕관을 달고 있는 황제펭귄의 등장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저게.’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다른 이들은 인형탈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걷는 느낌이라면, 황제펭귄은 진짜 펭귄이 등판한 것 같았다.
사람과 비슷하게 커스터마이징을 하긴 했지만 뭔가 행동하는 게 진짜 펭귄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남극 다큐멘터리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그 거만한 뒤뚱뒤뚱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박장대소를 하며 웃던 한 커플이 속닥거렸다.
“이거 뭐하는 걸까?”
“모르겠는데. 어린이 행사라도 하나?”
“어린이용이라고 하기엔 펭귄들이 무섭게 생기지 않았어?”
그 어중간함 때문에 주세한이 남극 관련 특집을 위해 주문제작을 넣었다가 폐기된 비운의 작품들이었다.
그래도 분위기상 펭귄 애니메이션 동요가 나올 법하다고 생각할 때.
앰프가 쿵쿵 울리며 흘러나온 전주는 전혀 예상 못한 음악이었다.
“이거 TNT 노래 아니야?”
“어, 그러네?”
처음에 흘러나온 BLINK는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TNT의 노래였다.
익숙한 노래가 들리자 관광객들의 시선이 확 쏠렸다.
하지만 노래 구성은 TNT의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틴스피릿도 있고, 가을소녀와 스칼렛도 있고.
최근 가요계에서 유행했던 K팝 노래를 총망라하는 메들리였다.
그리고.
“흐하하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섯 펭귄이 그에 맞춰 추는 안무 때문이었다.
근사한데 코스튬 때문에 뭔가 귀여웠다.
팔을 슥 뻗는 안무는 퍼덕거리는 날개가 되어 나왔고, 발 스텝을 콩콩 뛸 때마다 육중한 몸체가 흔들렸다.
나긋나긋한 게 아니라 둥둥둥 느낌으로.
하지만 그런 인형탈을 쓰고도 독보적인 두 존재가 있었으니.
하나는 곱상하게 생긴 귀족 펭귄이었다.
치어리딩처럼 방방 뛰며 날개를 움직이는데도 자꾸 시선이 가는 펭귄이었다.
공연을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이들의 시선이 그에 따라갔다.
이렇게 춤선이 예뻐 보이는 인형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귀족 펭귄이 뒤로 물러나면서 누군가와 센터를 교체했다.
하이파이브마냥 서로 날개를 부딪치면서.
거만한 자태로 뒤뚱뒤뚱 튀어나오는 황제펭귄.
귀족 펭귄 때는 감탄이었다면 지금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야, 진짜 펭귄 같아.”
펭귄한테 아이돌 안무를 가르치라면 이런 느낌일 듯한 느낌이었다.
누군가 무슨 동작 묘사의 달인이냐고 우스갯소리를 던질 때.
돌발 상황이 하나 터졌다.
격렬하게 브레이크 댄스를 추던 황제펭귄의 왕관이 뚝 떨어진 것이다.
“어어……!”
안무를 추다가 무릎을 꿇고 그 왕관을 주워 주섬주섬 쓰는 그 모습에 사람들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펭귄들의 춤사위가 5분 동안 이어지고 끝이 났을 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엔딩 장면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 귀여워.”
잔뜩 기분이 업된 아기펭귄이 안기려고 통통 달려가자, 까칠하게 생긴 젠투펭귄이 날개로 탁 쳐 냈다.
엎어지는 아기펭귄.
일으켜 주려고 가던 귀족펭귄도 발이 엉켜 엎어져서 몸체가 데굴데굴 굴렀고, 대왕펭귄이 성큼성큼 걸어가 두 펭귄의 겨드랑이 사이에 날개를 쑥 넣어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황제펭귄이 뒤뚱뒤뚱 걸어가 젠투펭귄을 통통한 배로 퉁 치며 응징을 하는 걸로 끝이 났다.
다 같이 날개를 붙잡고 고개를 꾸벅 숙이는 펭귄들의 모습.
한편의 꽁트를 본 듯한 기분에 박수와 함께 떠들썩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우, 밀치지 좀 마요!”
“내 핸드폰!”
어느새 인파 역시 삽시간에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중 절반이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을 하고 있을 때.
“잠시만요.”
인파를 헤치고 나타난 수더분한 인상의 남자가 펭귄들 쪽으로 다가갔다.
아마 관계자인 모양이었다.
‘댄스 팀인가?’
곧이어 정체가 공개될 것 같다는 느낌에 사람들이 눈을 빛냈다.
대다수는 댄스팀일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아이돌이나 유명인이라면 저런 탈을 쓸 필요가 없이 자기들 얼굴로 바로 나왔을 테니까.
그렇다면 일반인들일 텐데.
저런 춤 솜씨는 댄서가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다는 게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특히, 귀족펭귄이랑 황제펭귄은 더더욱.
아니.
사실, 황제펭귄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았다.
흡사 실제 펭귄이 걸어 나온 듯한 저 자태의 소유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예능인일까?
이윽고.
스탭들이 나타나 인형탈의 머리를 벗는 것을 도왔다.
뽁-
그리고 그 안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오면서 땀이 범벅된 얼굴들이 드러나는 순간, 모두가 침을 삼켰다.
누군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박…….”
그 안에는 배우들이 있었다.
아니.
배우라고 생각될 만큼 잘생긴 얼굴들이 탈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둘 얼굴이 공개될 때마다 흘러나오는 탄성.
마냥 귀엽게 보던 관객들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귀여운 아기 펭귄에는 그에 걸맞게 앳된 외모를 지닌 미남이 해맑게 웃으며 날개를 퍼덕거리며 흔들었고.
젠투펭귄의 탈 안에는 굉장히 날카롭게 생긴 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귀족펭귄과 대왕펭귄에서는 각각 선이 고운 미소년과 눈썹이 부리부리한 미남이 튀어나왔고.
대망의 마지막.
오늘 행사 내내 시선을 집중시켰던 황제펭귄이 탈을 벗었을 때는 일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
잔뜩 젖어 붙은 머리카락을 날개로 슥슥 문지르는 이는 도무지 현실감 없는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관객들을 보며 멋쩍게 웃는 그 미소에 감탄이 흘러나왔다.
‘쟤가 그 펭귄이었다고……?’
‘안녕하세요, 신인 아이돌 뉴블랙입니다!’ 하는 인사를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멍하니 그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그 인상이 뇌리에 잔상처럼 박히고 있을 때.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는지 다섯 멤버가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또 뭘 하는 건가 싶을 때.
앰프에서 굉장히 청량한 분위기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날, 자리에 있었던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노래가 될 불꽃놀이였다.
* * *
현장 반응이 정말 좋다.
예상 밖의 일이라 뛸 듯이 기뻤다.
어차피 팬분들이 기대하는 바를 충족할 자신이 없어서 최대한 귀엽고 웃기게 가자고 준비한 프로젝트였다.
미튜브로 펭귄 영상을 보면서 동작을 모방하면서도 자괴감이 들었는데, 반응을 보니 그럴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노력 또한 빛을 발했다.
“우주예요, 밤하늘에 우주 할 때, 그 우주요.”
중국인 관광객에게 한자로 내 이름을 설명하기도 하고, 서구권에서 온 이들에게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TJ에서 영어랑 중국어를 배우면서도 늘 대체 언제 쓰나 했는데.
드디어 빛을 보는 느낌이다.
그런 의사소통에 힘입어 해외에서 온 이들에게 고막에 새겨질 만큼 뉴블랙을 반복해서 알려 드렸다.
「좋게 보셨어요? 저흰 뉴블랙이에요.」
「재미있게 보셨구나. 뉴블랙으로서 처음 시도하는 공연이었는데.」
「안녕히 가세요. 뉴블랙이었습니다.」
일본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는 내가 통역을 담당했는데, 중국어를 통역할 때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너 보고 화교냐고 물어보시는데?”
“형, 화교가 뭐예여?”
“아니라고 통역해 드릴게.”
왕씨인데 왜 중국어를 못 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중에 지호한테 화교가 뭔지 알려 줘야 할 것 같다.
한편, 아무래도 관광객 비율이 높은 명동에 있어서 그런지 뭔가 한류 아이돌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몹시 좋았다.
1위 후보 공약까지 이행하고 나니 이제야 음악 방송을 확실히 마무리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1집 활동이 정말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련하고, 홀가분한 기분.
지난 5월 달에 소스 하나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됐던 일이 스노우볼처럼 죽죽 굴러와 이렇게 마무리가 될 줄이야.
감회가 새로웠다.
과거의 나를 만나서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면 믿었을까.
네가 만든 노래가 100위 안에 들고, 그때 대충 틀만 짜놨던 밤바다가 데모 버전으로 라디오에서 사랑도 받고.
중현이가 행사장에서 펌프를 수리한 게 국민 예능 섭외까지 이어지고.
마지막으론 운 좋게 음방 1위 후보에도 들 거라고.
절대 안 믿었을걸.
나도 모르게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물론 끝난 것은 1집 활동일 뿐, 여전히 우리에게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으로선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고생했어, 얘들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정신없이 대화에 응하고 있는 동생들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에게 몰려드는 사람들 뒤로 어느덧 노을이 지는 하늘이 보였다.
뭔가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처럼 붉은 하늘.
그곳을 보고는 잠시 웃었다.
2014년 7월 25일.
다섯 펭귄의 춤사위와 함께, 길고 길었던 우리의 1집 활동은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