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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화 (8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1화

에어컨 바람을 쐬며 연습실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TJ 연습생 시절부터 배워왔던 다리 찢기 3종 세트를 하면서 굳어 있던 몸을 시원하게 풀어 주었다.

“으아아…….”

평소였다면 동생들 타박 때문에 내지 못했던 개운한 소리도 한 번 내 주고, 혼자 연습실에 있는 기분을 맘껏 낸 후.

기지개를 키며 연습실을 어슬렁거렸다.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던 천장 CCTV 때문이었다.

가릴까, 저거.

경찰 영화에서 형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A4용지로 슥 가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픽 웃어 버렸다.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그리고 동생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있었다.

예전에 있었던 도난 사건 때문에 생긴 거라 회사에서도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별도로 열람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내가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기에 누가 본다고 특별히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얘가 연습실에서 뭔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하고 말겠지.

사실, 처음부터 연습실에 올 생각은 없었다.

원래는 방학 때문에 텅 비어 있는 근처 학교 운동장을 갈까 했는데 얼마 전 회사 사람들한테 들은 경고가 마음에 걸렸다.

곧 너희한테도 사생이 붙을 테니 조심하라고.

어쩌면 난 연습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무리로 어깨를 풀어 주고는 본격적인 실험에 들어갔다.

복싱 기술.

간단한 동전 마술.

물구나무 서기.

고난이도 댄스 동작.

굳이 동영상을 다시 볼 필요는 없었다.

한번 보기만 해도 그게 내 몸에 자동으로 저장이 됐으니까.

무의식적으로 뭔가를 생각하기만 해도 몸이 저절로 움직여졌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중 그 어떤 것도 아닌, 기묘한 감각 기관이 자극받는 듯한 느낌.

굳이 표현하자면 등골을 타고 전류가 흐르는… 말로 하려니까 복잡하다.

아무튼 그런 자극이 느껴질 때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동작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몸으로 이해가 갔다.

은평구 병원에서 경찰관과 회사에서 대표님을 내동댕이쳤을 때 썼던 엎어치기를 예시로 들면 이랬다.

상대방의 팔을 잡고, 내가 몸을 숙이고,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서 패대기치는 것이 필름에 분할되어 나오는 컷처럼 딱딱 나눠서 정리가 된다고 할까.

한 번 보기만 해도 뭐든 따라 할 수 있는 능력.

그러나 마냥 한계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예컨대 NBA 농구선수들이 하는 덩크슛이라거나, 외국의 기인들이 손발을 기상천외하게 꺾는 몸짓은 어떻게 하는지 알아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없었다.

난 기본 신장만 190cm에 근육이 빵빵한 거인도 아니고, 유연성에도 한계가 있는 일반인이었으니까.

내가 이 상태로 덩크슛을 하면 골대 근처까지만 갔다가 폴짝 떨어질걸.

결국 일정 이상의 난이도 있는 동작을 수행하려면 나 스스로가 하드웨어적인 조건이 갖춰져야 했다.

근육량이나 유연성을 늘려 신체적인 조건을 변화시키는 식으로.

물론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고 그걸 다른 동작에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었다.

선배 가수들이 목을 어떤 식으로 쓰는지 배우고, 모델들이 어떻게 걷는지 그 동작을 파악하고, 배우들이 짓는 표정 연기 등을 습득해서 내가 하는 일에 솔찬히 써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쪽으로도 제약은 있었다.

소프트웨어의 문제였다.

게임 같은 걸로 비교하자면 사람마다 발전 가능한 능력의 최대치가 있다고 할까.

보통 재능이라고 불리는 문제였다.

예를 들어 내가 발휘할 수 있는 한계치가 80이라서 그 이상은 못 올라간다면, 우리 팀 댄스 머신은 그런 한계치가 120인 식이었다.

노래처럼 내가 원래 잘하던 거라면 모를까, 내가 재능이 없는 분야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포지션이 리드보컬과 리드댄서, 리더였다.

팀 내 보컬, 댄스 2인자.

연기나 랩은 이걸로 도전을 안 해 봐서 모르겠지만, 이것도 하게 되면 팀 내 2순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주어진 한계치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최종 종착지까지 누구보다 빨리 도달하게 만들어 주는 기적적인 능력.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   *   *

뭐, 어쨌든 여기까지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능력이 생긴 다음부터 오늘날까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면서 응용법을 익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건 그 원리였다.

남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춤을 추는지는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정작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해야 하나.

손에 쥔 스마트폰 같은 느낌이다.

검색만 하면 이 세상 모든 정보가 나오지만, 이 안에 부품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는 모르는 것처럼.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건 바로 두 가지.

하나는 그날 최용재 교수를 만났을 때나 쇼케이스 음향사고 때 벌어졌던 일종의 가상현실처럼 과거를 체험했던 현상.

또 하나는 며칠 전 황제펭귄의 동작을 모방했을 때 일이었다.

아니.

단순히 동작만 모방하는 줄 알았는데, 웬 기억이 튀어나오고 인간도 아닌 동물의 동작도 따라할 수 있는 걸까.

너무 궁금해서 국내에서 저명하다는 한 뇌신경 분야 교수에게 메일을 써서 보낸 적이 있었는데 한 달 만에 답신이 왔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이라고.

직접 찾아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랬다간 당장 내 이름이 전 세계 학술지에 오르고 CIA나 NASA 같은 미국 비밀 기지에 갇히게 될걸.

그건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라고는 혼자서 인터넷을 뒤적이며 고민하는 것밖에 없었다.

펭귄이야 인간처럼 두 발로 걸으니 그렇다 치고.

기억이랑 동작은 대체 무슨 상관인 걸까.

그리고.

기억은 어떻게 해서 흘러나오는 걸까.

처음에는 압박감이 원인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앞선 두 사건에 못지않게 최근 행사장에서도 틴스피릿 땜빵 공연을 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때는 플래시백 현상이 없었으니까.

어떤 원리인지 알면 이용해 볼 텐데.

내가 그 부분에 집중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면.

만약에 이 능력이 적용되는 기억의 범위가 능력이 생긴 날보다 더 전까지 가능하다면…….

어쩌면.

어쩌면 엄마아빠 얼굴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는 앨범으로나, 인터넷에 ‘선명주 부부’라고 검색해야 볼 수 있는 엄마아빠 얼굴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는 없을까.

볼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엄마 냄새도 한번 맡고, 아빠 목소리도 듣고, 그리고 그 둘의 피부가 어떤 촉감이었는지 다시 만져 보고.

이전부터 줄곧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궁상떨지 말자, 선우주.

이래서 사람이 바빠야 되는 거란 생각이 든다.

가만히 있으면 괜히 궁상맞은 생각이나 하게 된다니까.

뒤죽박죽인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바닥에 매트를 깔고 요가 자세를 취하면서 뻐근한 근육을 풀 때였다.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영화빌런 [형]

영화빌런 [제 카드지갑 형이 가져갔어요??]

손가락을 톡톡 움직였다.

나 [ㅇㅇ]

영화빌런 [아진짜]

영화빌런 [리혁이 형처럼 정없게 ㅇㅇ하지 마요]

영화빌런 [내가 얼마나 귀여운데]

나 [ㅗ]

영화빌런 [(부들부들 떠는 이모티콘)]

영화빌런 [암튼 10만 원 충전시킨거라 잃어버림 안됨]

나 [어린이 카드는 왜 샀냐]

영화빌런 [그거 애기들 쓰는 거에요??]

나 [모르고 10만원이나 충전한 거야..?]

영화빌런 [헐ㅠㅠ 디자인 딱 내취향이라서 산 거였는데....]

영화빌런 [일단 보관해 주세요 관상용으로 쓸래]

알았다고 답장하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생각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일이나 해야지.”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곡 작업.

조만간 2집에 대해서도 슬슬 대비를 해야 하기에 미리미리 곡을 만들어 두면 좋을 것 같았다.

불꽃놀이처럼 또 다시 타이틀곡이 되는 걸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그렇게 일 욕심을 불태우고 있을 때, 핸드폰이 길게 진동했다.

이번엔 석환 형이었다.

“여보세요.”

-혹시 지금 회사야?

“어, 뭐 좀 할 게 있어서…….”

-애들이랑 같이 있을 때 알려 주려고 했는데, 좋은 소식이 있어.

수화기 너머로 석환 형의 목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너희 교복 광고 촬영 일정 나왔다.

*   *   *

교복 광고.

그게 바로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 추석 특집과 함께 팬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던 주요 프로젝트였다.

라디오가 끝났을 때, 교복 업체와 한창 미팅이 진행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우리가 1위 후보가 됐던 날 확정이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음방이 끝난 다음 날 광고주와 만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굉장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석환 형 표현에 의하면 그 전까지는 콕콕 찌르면서 간만 얌실얌실 보던 얌체 업체라고 했다.

“교복 광고 트렌드가 바뀐 거 알지?”

운전대를 잡은 석환 형이 조수석에 앉은 내게 말했다.

“네가 군대 가기 전에는 다 톱스타들만 찍었잖아.”

“그랬지. TJ에서 잘나가는 선배들 교복 광고 찍었다고 하면 회사에서 막 브로마이드 돌리고 그랬잖아. 연습생들 보고 동기부여 하라고.”

“요즘은 추세가 바뀌었어.”

매니저가 설명했다.

“대형 업체 네 곳이 업계를 꽉 쥐고 있는데 시장 규모는 한정적이니까. 있는 파이 없는 파이 다 조각내서 먹어야 하는데, 옛날처럼 톱스타 마케팅으론 재미를 보기 힘들거든.”

“그래서 신인을 쓰는 거예요, 실장님?”

“정확히 말하자면 뜰 것 같은 신인을 쓰는 거지. 엄청 유명한 아이돌을 쓴다고 매출이 유의미하게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럴 바에야 적은 돈으로 당첨될 복권을 사서 홍보 효과를 누리겠다는 거지.”

그 말에 우리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경우가 어찌 됐던 트렌드에 민감한 의류 업계 사람들이 우리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거니까.

그것도 미리 선점해 놔야 한다고 판단할 만큼.

“어떡하져, 전 아직 뜰 준비가 안 됐는데.”

막내의 드립에 우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난생처음으로 찍는 광고 스케줄이라는 것도 즐거웠고, 다들 내리 열두 시간 넘게 잤더니 안색이 확 피었다.

거무죽죽한 다크 서클이 없어지고 싱그럽다고 할까.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자정까지 작업실에서 있다가 숙소로 돌아가긴 했지만 충분히 숙면을 취한 뒤였다.

“어제 다들 뭐 했어?”

내 물음에 애들이 대답했다.

“저랑 중현이는 가족 모임이 있었어요. 중현이네 부모님이 갑자기 서울로 올라오신다고 하셔서.”

“오, 뭐 먹었어?”

“꽃등심 8인분이요.”

중현이가 뿌듯한 얼굴로 대답하는 동안 비주가 내 눈치를 슥 살핀다.

기다란 속눈썹이 빠르게 깜빡였다.

뭔가 밭에서 농작물을 훔쳐 먹다 걸린 사슴을 보는 기분이다.

왜 저러지.

“원래는 형도 불렀어야 했는데 어쩌다 약속이 잡힌 거라서요. 진짜 갑자기 번개처럼 잡힌 거예요.”

“아, 전혀 신경 쓸 것 없는데.”

“제가 형한테 전화를 했는데…….”

“어제 내가 작업하느라 폰을 무음으로 해 놨거든.”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난 또 무슨 큰 죄를 지었나 했는데, 자기 딴에 은인인 사람을 그런 모임에 부르지 않아서 미안했던 모양이다.

딱히 별생각이 없었기에 손을 저을 때.

리혁이가 불쑥 말했다.

“난 별거 없어요. 어제 숙소에서 그냥 책 읽어서.”

“뭐 읽었는데?”

“미움 받을 용기요.”

지금도 읽고 있는지 녀석이 책을 들어 보였다.

노란 표지에 미움 받을 용기라고 되어 있다.

제목을 보고 감탄했다.

“이미 충분하지 않아?”

“……조용히 해요, 진짜. 아. 다들 웃지 말고요.”

“저는 그거 제목 보는 순간 형이 쓴 책인 줄 알았어여.”

“넌 조용히 해, 왕지호.”

“어어? 때리기 있기 없기? 그거 모서리로 찍으면 지금 배송 중인 로봇 청소기는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가는 거예여.”

책 모서리를 쥐고 있던 리혁이의 눈동자가 로봇 청소기와 지호의 머리통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승자는 로봇 청소기였다.

리혁이가 콧김을 내뿜으며 책에 시선을 돌릴 때, 지호가 앞좌석 틈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형, 저는 안 물어봐여?”

“너 어제 갑자기 내 자리에 굴러 와서, 누나들이랑 뭐 하고 놀았는지 한 시간 동안 얘기했잖아.”

“얘기 더 못한 거 있는데… 안 할 게여.”

흥 하던 막내가 이윽고 내 얼굴을 보더니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형.”

“왜.”

“오늘 되게 기분 좋아 보이네여.”

“당연하지, 푹 쉬었으니까.”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이거 제가 그 표정 알거든여. 군대 얘기나 옛날 얘기할 때마다 즐거워서 나오는 할아버지 표정인데. 혹시 교복 때문에 그래여?”

뜨끔했다.

“맞네, 맞아.”

리혁이가 책을 덮고 끼어들었다.

“왠지 오늘따라 ‘다들 뭐 했어~ 우리 애들~’ 이러길래 뭔가 했네. 오랜만에 교복 입는다고 신났구먼, 이 아저씨.”

“형, 교복 오랜만에 입어요?”

“우주 형, 고등학교 졸업한 지 오래됐잖아.”

“아냐, 그런 거.”

내가 해명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사실이었으니까.

거의 한 4, 5년?

고등학교를 자퇴해 버리는 바람에 얼마 입지 못한 교복에 대한 미련이라고 할까, 그런 게 좀 있었는데.

확실히 설레긴 한다.

그 기분이 오래 못 가긴 했지만.

“……음?”

지금 우리는 광고 컨셉이나 스케줄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대행사로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웬 익숙한 동네가 나온다.

청담동이 나오고 뭔가 굉장히 익숙한 건물들이 보였다.

잠깐만, 이거.

“석환 형.”

“으, 응?”

“오늘 우리가 만나러 가는 대행업체 이름 얘기 안 해 줬잖아. 이 광고 어느 업체에서 진행하는 거라고?”

“대형 기획사에서 운영하는 데인데…….”

석환 형의 눈동자가 내 얼굴을 훑었다. 그러곤 차분하게 말했다.

“TJ 뉴미디어라는 곳이야.”

그때, 그간 너무나 자주 봐 왔던 익숙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청담동 한복판에서 예술적인 자태를 자랑하는 K팝의 상징과 같은 건물.

내가 6년간 있었던 TJ 엔터테인먼트의 사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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