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5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잠시 시간을 정지시키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힐 텐데.
“푸하하하!”
정지시킨 다음에 한 대씩 꿀밤을 먹이고 싶은 녀석들도 있고.
“서프라이즈 대성공입니다!”
“와, 개꿀잼.”
“진짜 이런 재미가 없다니까요. 방금 표정 봤어요? 순간 당황해서 눈만 깜빡깜빡 하고 있었던 거.”
“……형, 우주 형. 괜찮아요?”
동생들에게 둘러싸인 채 나는 멍하니 있었다.
왜 그거 있잖아.
드라마 짤 중에서 다들 웃고 떠드는데 장발의 남자가 혼자 머리카락 휘뤼릭 날리고 있는 그거.
지금 내 표정이 딱 그랬다.
옆에서 웃고 떠드는 멤버들을 슥 째려보고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주얔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ㅌㅋㅌ
지금 채팅창에 보이는 ‘ㅋ’의 숫자를 센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모래알의 개수와 맞먹지 않을까.
비주로부터 폰을 가져와 얼굴 가까이 댔다.
그 순간 채팅이 뚝 끊겼다.
뭐지.
화면에 비친 내 얼굴에 이상한 건 없는지 확인하고는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여러분. 그동안 잘 지냈어요?”
한참 동안 대답이 없다가, 이윽고 댓글 하나가 깜빡거렸다.
-우리도 반갑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시 폭발하는 채팅창을 일별하며 중현이에게 폰을 넘겼다.
그 긴 팔이 우리를 한 화면에 담는 동안, 나는 빠르게 상황을 복기했다.
혹시 말실수는 안 했나?
혹여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없나 떠올렸는데, 다행히 그런 부분은 없었다.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석환 형의 표정이 느긋한 것도 그렇고.
이제 문제는.
“일단 우리 팬분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 전에, 동생들과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네요.”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거였다.
“우리 둘째 어디 있니?”
“저, 저요?”
움찔하는 비주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얄쌍한 목에 내 팔을 둘렀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네가 날 배신해?”
“형, 이건 오해예요.”
“오해는 무슨 오해.”
“제가 하고 싶어서 자원한 건 아니구요…….”
말꼬리를 흐리는 비주에게 친근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하긴 우리 둘째가 자기가 하고 싶다고 했을 리가 없지. 그래, 얼른 불어 봐. 누가 하라고 했어?”
“그게…….”
비주의 눈동자가 멤버들을 빠르게 훑는다.
그러더니 말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말할 수 없어요.”
“리혁이랑 지호가 부추겼지?”
“엇.”
“내가 방금 봤어. 네 눈이 쟤네 둘 훑는 거.”
동작을 모방하는 능력이 이럴 때는 참 좋다.
상대의 동공이 움직이는 방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거든.
예상대로 그 둘이 발뺌을 했다.
“우리 아니에요.”
“맞아여. 어떻게 귀여운 동생들을 의심할 수 있어여?”
얘네 둘 맞네.
평소에는 으르렁대던 녀석들이 하나로 뭉친다는 건, 둘이 같이했다는 거지.
내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자, 둘 중에 먼저 이실직고한 사람은 구제해 줍니다.”
“어…….”
“셋 셉니다. 하나, 두울…….”
“미안해여, 리혁이 형!”
지호가 냉큼 고자질을 했다.
“리혁이 형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자고 했어여.”
“아니에요.”
리혁이가 반발했다.
“얘가 먼저 하자고 했다니까요.”
“말은 제가 먼저 했지만 형이 아이디어 막 냈잖아여. 타임캡슐 그런 걸로 하면 재미있을 거라고.”
“와, 배신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더니.”
“저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니에여. 우주 형이 얼마나 속 좁고 뒤끝이 강한데.”
동생들이 투닥거리는 걸 귀엽게 바라보다가 돌연 봉변을 당했다.
“야.”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해서 중현이 손에 들린 폰을 바라봤는데 채팅창에 ‘ㅋㅋㅋ’가 다시 한번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건 모함이에요, 여러분.”
안 믿어 주는 분위기다.
“제가 뭐라고 해도 안 믿어 주실 거죠?”
‘ㅇㅇ’ 같은 댓글을 보는 내 가슴에 비가 주륵주륵 내렸다.
망할.
내 이미지는 망했어, 이제.
아니다.
언제는 안 망한 적이 있었나.
자포자기하며 팬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석환 형으로부터 지금 벌어진 일에 대한 전모도 간단히 전해 들었다.
SNS 라이브.
음방도 끝나고, 우리 소식을 궁금해 하는 팬들을 위해 회사에서 준비한 거라나.
신선한 컨텐츠였다.
보통 아이돌이 팬들과 소통을 한다고 하면 팬카페에 글을 남기거나 채팅을 하는 게 고작이니까.
이런 식으로 인터넷 방송처럼 하는 것은 낯선 방식이었다.
물론 그런 포맷의 익숙함과 별개로 라이브 방송에 대한 만족도는 몹시 높았다.
-지금 뭐 해?
-교복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얘들아 ㅠㅠㅠㅠ
-으아아ㅏ아아아ㅏ아ㅏ
-오늘 점심 뭐 먹을 거야??
비록 얼굴을 맞댈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팬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팬은 다 똑같은 팬이니까.
오프라인에 나와 주는 분이든 멀리서 우리를 응원해 주시는 분이든 우리에겐 다 소중한 팬들이다.
그랬기에 그동안 아쉬움이 컸다.
분명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싶지만, 개인 사정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멀리서 봐야 했을 분들도 있을 텐데.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방송을 통해서 기회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았다.
온라인에서만 지켜보던 팬들도 이런 포맷이라면, 부담 없게 와서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니까.
바쁘게 채팅을 쏟아 내는 팬들에게 말했다.
“저희가 촬영을 잘하기도 했고, 스탠바이 때문에 시간이 남아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요. 그러니까, 그동안 궁금하셨던 거 있으면 몽땅 다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다 같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희랑 재미있게 놀아요.”
“놀아요!”
첫 팬 사인회에 이어 ‘궁금한 걸 물어봐! 2탄’이란 이름을 붙인 시간을 이어 가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때.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턱없이 적었던 인원이었다.
신인 그룹이다 보니 아무래도 시청자 수가 적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그런데 신기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인원이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댓글이 주르륵 늘어났다.
우리가 읽지 못하는 댓글이 하나씩 생겼다고 할까.
아니, 댓글이 늘어서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는 밀려 올라가는 댓글들을 조금이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건…….
그래, 놓친다기보다는 정말 읽지 못한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그나마 나는 읽을 수 있는 게 꽤 있었지만 동생들은 몇몇 댓글을 보며 갸우뚱하기 일쑤였다.
비주가 내 귓가에 소곤거렸다.
“형, 채팅방예요.”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이었다.
“왜 일본어랑 중국어 댓글이 있는 걸까요?”
* * *
[오늘 라이브 방송 중인 사실 모르고 속마음 말한 아이돌 리더]
(캡처 모음)
주어는 뉴블랙 우주!
오늘 회사에서 라방 처음하는데 혼자 모르고 있었다고 함
며칠 동안 광고 화보 연습으로 팬카페 못 들어가봤다고.
반응이 너무 리얼해서 가져왔어 ㅋㅋㅋ
[댓글 : 9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몰카야??
-뭐 짜고 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연기로 저런 반응하려면 최소 연기신어야 할듯 ㅇㅇ
-잠깐 벙찐 표정 겁나 웃겨ㅋㅋ
-재밌다 ㅋㅋㅋㅋㅋ
-와 근데 쟤는 평소 욕 같은 거 잘 안 하나 보다. 라방으로 몰카 시도한다는 거 어지간해선 힘들 텐데
-식스티 이후로 기획사들 라이브 그런 거 완전 시러하자너
-[글쓴이] 윗댓에 답하자면 우주가 평소 말실수 같은 거 굉장히 조심하는 편이야. 팬싸에서 그랬는데 데뷔전에 한번 실장님한테 호되게 혼나서 다들 사석에서도 말조심 하는 분위기래ㅇㅇ
-걍 짜고 친 거 같은데,ㅋㅋㅋ
레몬 엔터 홍보팀.
홍서영 대리는 노트북 마우스 스크롤을 쭉쭉 내렸다.
하지만 댓글은 9개가 끝이었다.
올라온 지 얼마 안 되는 것을 고려하면 제법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지난번 펭귄 춤처럼 여러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온 건 아니지만 나름 소소한 화제는 된 것 같다고 할까.
그녀는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휴식기에 뉴블랙과 팬덤이 소통할 컨텐츠를 만들라는 말에 그녀가 준비한 기획이었다.
SNS 어플을 이용한 라이브 방송.
처음 고려한 플랫폼은 인터넷 방송이었지만, 업체 미팅 결과가 별로기도 했고 홍보팀이 보기에도 인터넷 방송 업체들과 뉴블랙의 이미지와 궁합이 잘 안 맞았다.
그래서 결정한 방식이 바로 SNS로 라이브를 하고, 참여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서 하이라이트를 편집한 영상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몹시도 좋았다.
“뭐 보고 있어?”
막 양치를 마치고 돌아온 입사동기, 남 대리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팬카페 모니터링.”
“아, 그 라이브 방송? 반응 좋더라. 아까 기자가 전화 걸어서 스칼렛도 그럴 계획 있냐고 묻더라고.”
“스칼렛도 하게?”
“아니. 얘네는 나갈 데가 많잖아.”
홍서영 대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맞는 말이었다.
스칼렛은 예능이나 여타 방송에서 자주 불러 주는 1군이라 이런 류의 기획을 할 필요가 없긴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뉴블랙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1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팬덤 규모가 상당히 늘어난 상황이라 소통이 필요한 상황인데, 아직까지 방송에서 잘 불러주질 않았으니까.
“그리고 팀장님이 결재 안 해 줄걸. 이것도 가수 역량이 뒷받침돼야 하는 거라, 뉴블랙도 우주 아니었으면 허락 못 받았지.”
그 또한 사실이었다.
라이브 채팅은 기획사 입장에서 선호할 만한 컨텐츠가 아니었다.
방송이야 편집을 하면 되지만, 실시간으로 나가는 방송은 수습이 불가능하니까.
“얘네는 말실수를 안 하잖아.”
남 대리가 말했다.
“지호나 중현이가 조금 위험할 때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허용 범위 안이고. 문제가 될 것 같다 싶으면 우주가 다 커트하기도 하고. 지난번에 그 원시인 인형탈 커트한 것도 우주 아냐?”
“…….”
“우리도 큰일 날 뻔했지.”
최근 예능에 출연한 어느 보이그룹이 웃기겠다고 흑인 분장을 했다가 해외 K팝 팬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사건이 있었다.
해외 사이트에서 무려 댓글이 3000개 가까이 달린 일이었다.
만약 뉴블랙이 그 인형탈을 착용했더라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
쓴웃음을 짓던 홍 대리가 화제를 돌렸다.
“참, 해외 하니까 떠오른 건데.”
그녀가 동기를 불렀다.
“이거 좀 봐 볼래?”
“뭔데, 아까 그 라이브 영상?”
“응, 이상한 게 좀 눈에 띄어서.”
홍 대리가 화면에 녹화본을 띄웠다.
“채팅창이 좀 이상하지 않아?”
“어, 글쎄… 어?”
이윽고 뭔가 이상함을 포착한 남 대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본어 같은 게 왜 있어?”
“나도 보면서 자꾸 이상했거든. 아까도 윤 실장님이랑 통화했는데 그쪽에서도 그 얘기를 하더라고.”
“아직 해외 반응이 올 때가 아닌데. 그럴만한 계기라도 있으면 모를까.”
“짐작 가는 게 하나 있긴 해.”
그녀가 검색을 하고는 보여 줬다.
“지난번에 명동에서 펭귄 춤 공약했을 때, 어떤 관광객이 올린 SNS가 있거든. 그게 꽤 알려진 것 같아.”
“와. 이거 리트윗 개수가 몇 개야? K가 붙었는데?”
그때, 자동 재생으로 펭귄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하게 훅 치고 들어온 그 동영상에 그들은 그만 웃었다.
격한 춤을 추다가 왕관을 떨어뜨리는 황제펭귄의 모습.
“내가 얘네 때문에 미치겠다. 진짜.”
“울적할 때 직빵이야, 이거. 폰에 저장해 놓고 가끔 우울할 때 틀어 놓는다니까.”
인공지능 번역으로 ‘오늘 명동에서 펭귄 상자 내부 미남 발견’ 같은 이상한 문장이 붙은 SNS 글을 둘러보던 남 대리가 물었다.
“그래서 이걸로 외국인들이 붙었다고?”
“그건 모르지.”
“신기하네, 일본인들이야 그러려니 하는데. 중국 애들은 다른 나라 SNS 못 쓴다면서? 어떻게 들어왔대.”
여기저기 미스터리 투성이였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온라인상에서 주로 활동하는 팬들과 뉴블랙을 이어 주려고 기획한 라이브 방송에서 엉뚱한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를 뭔가를 느꼈다.
얼마 안 가 노트북을 두드리는 홍 대리의 모습에 동기가 물었다.
“또 뭐 하게?”
“외국어 자막 관련해서 요청 올려 보게.”
“되겠냐.”
하지만 상대가 뭐라고 하건 말건 그녀는 기획서를 작성했다.
회사에서 자체 제작하는 리얼리티나 라이브 방송 하이라이트에 영어 자막 등을 달자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위에서 허가해 줄 리 만무하긴 했다.
가뜩이나 1집 앨범 때 퍼부은 예산으로 맨날 배우팀에서 볼멘소리를 하는 상황인데 추가 예산이라니.
다만 그녀는 홍보팀의 철학인 ‘물 들어올 때 노 젓자’에 따라 시도해 볼 뿐이었다.
‘보나마나 안 된다고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기획을 올렸을 때.
그로부터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팀장을 거쳐 제작이사 조규환 선에서 기획에 대한 승인이 이루어졌다.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도 추가하라는 말과 함께.
* * *
오늘도 우리는 행사 삼매경에 빠져 있다.
아침부터 부산에 있는 해변 가요제, 경산의 지역 축제에서 시원하게 불꽃놀이를 부르고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것도 회사로 가는 게 아니라 청소년 문화제의 축하 공연 때문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여러모로 빡빡한 스케줄.
우리가 신인 중에서 잘나가는 편이긴 하나, 그걸 감안해도 과한 편이었다.
이게 다 그날 일 덕분이었다.
틴스피릿의 공연을 때웠을 때 행사대행사 팀장님이 꼭 사례하겠다고 약속한 날.
난 그게 빈말인 줄 알았다.
그분이 정말 약속을 지켜서, 행사 주최 측이 ‘아, 애매하게 자리 한 자리 비네. 불러 볼 만한 신인 있어요?’라고 할 때마다 ‘괜찮은 애들이 있습니다’라고 할 줄은 몰랐지.
여러모로 좋은 일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다른 걸 연습할 시간이 좀 빠듯했다.
며칠 뒤에 촬영할 교복 광고 CF의 콘티를 바라보았다.
이동하는 차의 진동 때문에 종이가 파르르 떨렸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미동도 없었다.
#12.
[VIDEO]
교사가 교탁 앞에 서서 분필을 들고 있다.
[AUDIO]
교사 : 이번 시간에 배울 마법은 몸을 가볍게 해 주는 공중 부양이다.
내용은 간단했다.
에버드림이라는 브랜드가 지닌 교복의 실용적인 측면, 가볍고 신축성이 높다는 걸 마법을 통해서 보여 주는 것이다.
다섯 학생이 자기들끼리 실습을 하다가 실수로 교복에 마법을 걸어 버리는 뭐, 그런 식의 내용이라고 할까.
그냥 재미있네, 할 법한 소재였지만.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설정이 하나 붙었다.
“형, 뭐 봐여?”
“……어?”
콘티에 집중을 하고 있던 터라 지호가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는데도 가만히 멀뚱거리고 있었다.
불현듯 피로가 몰려오는 눈을 주무르며 대답했다.
“광고 콘티 보고 있었어.”
“뭐야, 왜 저 보자마자 눈 비벼여.”
“아이고, 눈 버렸다.”
“…….”
“그만큼 우리 지호한테 광채가 난다는 거지.”
“그져?”
금세 희희낙락하는 우리 둘을 보던 리혁이가 ‘일본어 첫 걸음’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차 안은 조용하다.
비주는 이어폰을 꽂고 꾸벅 졸고 있고.
중현이는 신발까지 벗고 자고 있다.
아침부터 행사 두 탕을 뛰니 당연한 결과였다.
잔뜩 피곤한 얼굴로 웃는 내 모습에, 체력 넘치는 막내가 내 어깨를 주물러줬다.
“시원하져?”
“엄청 시원하네.”
지호가 콘티를 흘깃거리며 물었다.
“뭐가 안 풀리는 게 있어여?”
“음, 생각보다 우리 대사가 많아서 좀 걱정이네.”
“좋은 거잖아여.”
“양날의 칼이지. 보니까 보조 출연자분들도 꽤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저기서 우리가 잘 못하면…….”
“으, 뭔 말하는지 알 것 같아여.”
감독님이랑 스탭분들 표정 썩어 들어가고, 보조 출연자분들이 한숨을 푹푹 쉬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지호가 말했다.
“그래도 대사가 막 무겁고 그런 건 아니잖아여. 우리도 연습하고 그러면 충분히 가능할 거예여.”
“웬일로 네가 나를 다독이냐.”
“제가 노래나 춤, 랩 다른 건 몰라도 연기는 젤 잘하잖아여.”
“그러네. 우리 막내가 연기 선배네.”
자부심으로 눈을 빛내는 연기 선배님의 머리를 슥 쓰다듬어 줄 때, 녀석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맞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아닐 수도 있는데.”
“응?”
“형이 더 잘할 수도 있잖아여.”
“에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내게 지호가 말했다.
“작년에 기억 안 나여? 형이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 춤 못 춘다고 하고. 노래도 잘 못한다고 우리한테 뻥 친 적 있었잖아여.”
“……뻥은 아니었는데.”
오해가 있었을 뿐이지.
지호가 내게 물었다.
“형, 혹시 연기도 잘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