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8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찹쌀떡 같은 얼굴이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고개를 젖혀 가라앉히고는, 떡볶이 국물을 들이킨다.
호로록-
다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잘못하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리혁이는 아예 소리가 들릴 때마다 벽에 머리를 콩콩 찧어대는 중이었다.
-형, 어떻게 할까요?
비주가 핸드폰 메모장을 보여 주었다.
내가 그걸 받아들고 뭐라고 입력을 하려고 할 때였다. 중현이가 다급한 얼굴로 내 어깨를 툭 두드렸다.
그 뒤에선 리혁이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고 있고.
어어…….
떡볶이를 다 먹었는지 지호가 한 걸음씩 올라오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망쳤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살금살금.
지호가 1층에서 2층으로 넘어오는 가운데, 우리는 숙소 문 앞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안 열려요!’
‘뭐야, 왜 안 열려.’
스마트 도어락의 숫자패드 불빛이 희미해지다가 꺼졌다.
급하게 다시 도어락을 눌렀지만 이번엔 응답도 없었다.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었다.
하필 이럴 때…!
발걸음 소리가 우리 뒤에서 우뚝 멈췄다.
“어?”
문앞에서 우르르 몰려 있는 우리를 보며 지호가 눈을 깜빡거렸다.
“형들, 거기서 뭐해여?”
* * *
“그러게, 내가 배터리 교체할 때가 됐다고 몇 번을 말했어요? 지난번부터 하나둘… 네 번은 말했네.”
“알았어, 알았어.”
“지금 몇 바퀴를 돈 거예요? 건전지 하나 찾자고.”
“일단 먹고 말하자. 리혁아. 애들 체하겠다.”
“…알았어요.”
리혁이가 불퉁한 얼굴로 감자튀김을 깨작거렸다.
잔잔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벽 1시.
햄버거 매장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도어락을 열기 위해 필요한 건전지를 사려고 한참을 돌았다가, 도중에 허기가 져서 찾은 곳이었다.
중현이가 햄버거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근데, 그 네모난 건전지가 어떻게 이렇게 없지. 가는 데마다 없다고 하고. 편의점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요. 내 말이.”
“그래도 사긴 샀잖아. 이젠 실장님한테 전화 안 해도 돼.”
비주의 말에 모두 안심한 얼굴이었다.
“실장님한테 전화가 갔다고 생각하면, 으….”
“어우, 난 상상도 하기 싫어요.”
“왜 너네가 벌벌 떠냐. 불려 가서 잔소리 옴팡지게 듣는 건 나인데.”
“그게 싫어요.”
“맞아요, 그냥 그 분위기 자체가 좀 그래요.”
호들갑을 떠는 모습들에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은 녀석에게 시선을 던졌다.
우리 막내는 말없이 햄버거만 먹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신나서 떠들었을 텐데. 지금은 눈만 굴리고 있다.
자기 때문에 건전지 원정대가 된 형들에게 미안함 반, 민망함이 반 섞인 표정이다.
감자튀김에 손을 뻗는 것도 주저하는 녀석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눈치 보지 말고 먹어.”
“…고마워여.”
옆에 있던 리혁이가 자기 몫의 감자를 한무더기 건넸다.
“야, 왕지호. 네가 무슨 죄라도 졌냐? 우리가 부주의하게 나온 건데. 잘못을 한 거면 다 같이 한 거지.”
“그래도 저 때문에…….”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냐.”
비주가 지호 앞에 케첩을 짜 주었다.
“그러니까 편하게 먹어.”
“지호야, 입에 뭐 묻었다.”
중현이도 지호의 입에 묻은 부스러기를 톡톡 털어 내 주었다.
그렇게 우리가 막내를 다독이고 있을 때.
지호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치겠네, 얘 또 왜 우는 거야.”
“형, 지호 울어요.”
“지호야, 왜 그래?”
아까는 설움 때문에 북받친 눈물 같았는데, 지금은 뭔가 다른 의미로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것 같다.
“…죄송해여.”
“뭐가.”
“그냥, 다.”
그러고선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코를 한 열 번 가까이 풀고 나서야 지호는 진정이 됐다.
오뚝한 코가 빨갛게 변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형들에게 막내가 말했다.
“저 때문에 고생하게 해서 죄송해여. 낼 방송국도 가야 되구. 오늘 레슨도 하구 힘들었을 텐데…….”
“우린 신경 쓰지 마.”
내가 말했다.
“밤 새는 거 처음 해 보는 것도 아닌데. 잠이 문제냐. 우리 막내가 이렇게 속상해하고 있는 게 중요하지. 안 그래?”
“맞아요.”
“네가 훨씬 더 중요하지.”
중현이에게 티슈를 건네받은 지호가 눈을 문질렀다. 말없이 그 모습을 보다가 차분하게 물었다.
“아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물어봤는데, 어떻게 된 일이야? 오늘 연기 레슨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
“……네.”
“어느 부분이 그렇게 속상했던 거야?”
짐작 가는 바는 있었지만, 내 멋대로 속단을 내릴 순 없었다. 내 지레짐작보단 더 복잡해 보이는 것이 느껴졌기에.
“…제가 원래 배우 지망을 하다가 아이돌로 넘어온 거잖아여. 그래서 형들에 비하면 연습생 기간도 짧고. 노래도 제가 제일 못하고, 춤도 두 번째로 못하고. 실력도 되게 부족하고.”
“그 와중에 날 걸고넘어지냐.”
“사실은 사실이잖아여.”
리혁이가 혀를 끌끌 차는 가운데, 지호가 말을 이었다.
“암튼 그래서… 제가 말은 잘 안 했지만, 그동안 형들이랑 활동할 때마다 은근 신경이 쓰이고 그랬어여.”
“네가 제일 못하는 것 같아서?”
“네, 맨날 보탬도 안 되고. 재롱 부리는 거 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까.”
아니라고 해 주려는데 지호가 말했다.
“형들이 연말평가 준비할 때나, 노래 부를 때, 작곡할 때나. 저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맨날 뒤에서 있었잖아여. 노래도 그냥저냥이구, 딱히 하는 건 별루 없구.”
우리는 조용히 경청했다.
“그래서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연기 때문에 제가 뭐라도 도움이 될 줄 알았거든여. 맨날 형들한테 얹혀 가서, 뭐라도 도움 주고 그러고 싶었는데, 다들 잘하기도 하구. 쌤도 저한테 너무 힘주고 그런다고 막 그러시니까.”
“…….”
“형들은 다 이것저것 잘하는데. 저는 도움도 안 되는, 그런 애처럼 느껴져서…….”
위로를 하려고 준비한 말만 수백 가지가 있었는데, 말이 이어질수록 그것들이 하나둘 지워져 갔다.
단순히 자기 분야에 들어온 불청객에 대한 질투인 줄 알았지.
이렇게 속 깊은 생각일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다.
마냥 철없게만 느껴지던 동생이었는데, 다른 애도 아니고 얘가 이런 생각을 하고 다닐 줄은 몰랐다.
멤버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비주는 턱을 괸 채 자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중현이는 묵묵히 팔짱을 낀 채, 리혁이는 짧은 한숨을 쉬고 있다.
“야.”
제일 먼저 말을 꺼낸 건 리혁이었다.
“네가 뭐가 쓸모가 없냐, 멍청아.”
“그렇게 부르지 마여.”
“멍청하니까 멍청이라고 부르지, 멍청아. 그럼 뭐라고 하냐? 쓸모가 없기는 무슨. 없으면 차라리 내가 없지.”
“형이 왜여. 노래도 잘하면서.”
“그거 빼고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는데. 춤 못 춰서 나 때문에 안무 수정 들어가는 거 몰라? 다들 어려운 거 하고 싶어도 나 때문에 못 하고 있는 거, 맨날 미안해 죽겠는데.”
“…….”
“하여간, 배부른 소리를 해요.”
비주가 거들었다.
“너만 그런 생각하는 거 아니니까 울적해 하지 마, 지호야. 우리도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은 걸. 솔직히 우주 형이 뭐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 내가 뭐 도와줄 수 있는 그런 게 없으니까.”
“형들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여?”
“그럼. 당연하지.”
잠시 침묵이 흐룬 후.
잠자코 듣고 있던 중현이가 한마디 했다.
“우리가 너 많이 아껴, 지호야.”
“…….”
“네가 연기를 잘해서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네가 너니까.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런 걸로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그러지 마.”
뭔가 롤링 페이퍼 돌리는 분위기가 되어 버려서, 자연스럽게 내게 시선이 날아들었다.
“이거, 뭔가 내 죄가 큰 것 같네.”
“아니에여, 형.”
지호가 손사래를 치며 급하게 말했다.
“형이 오늘 연기한 것 땜에 그런 게 아니라, 제가 괜히 혼자서…….”
“그거 말고 다른 얘기야.”
“네?”
“연말 평가 때부터 시작해서, 뭐 있을 때마다 내가 다들 하나씩 맡긴 것 같은데, 너한텐 그러지 않았잖아. 어쩌다 보니 너만 좀 소외시킨 것 같아서.”
“…….”
“내가 미안해. 좀 더 신경을 써 줬어야 했는데.”
“아니, 그게 아닌데…….”
뺨을 긁적이며 나는 말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멤버 전체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
“뭘요?”
“다들 자기 때문에 피해가 간다거나, 그룹에서 하는 일이 없어서 내가 보탬이 안 되는 사람인가, 생각하고 있다는 걸.”
TNT 데뷔조에 들었을 때 내가 매일 밤 했던 생각이었다.
“사실, 나도 옛날에 그런 고민 많이 했거든. 종류는 다르지만, 내가 정말 그룹에 도움이 되는 멤버인가 하고. 뭐,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형이요?”
중현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형 없었으면 우리 여기까지도 못 왔는데.”
“맞아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대요?”
“…농담하는 거죠?”
“왜 형이 그런 생각을 해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
“마찬가지야. 솔직히 내가 뭘 했다고 한들 너희가 아니었으면, 지금 이렇게 성공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겠어? 리혁이가 없었으면 밤바다가 어떻게 나왔을 거고, 중현이가 없다면 불꽃놀이는 어떻게 나왔을 거고, 비주가 없었으면 우리 안무는 어쨌을 거고.”
그리고.
“지호. 너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 없었으면 우리 분위기 되게 삭막했을 거야.”
“…그래여?”
“우리끼리만 있었으면 노잼이어서 큰일 났지.”
다른 동생들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우리 다섯이 만나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다들 잘하고, 또 성격도 좋은 사람끼리 만나는 거 진짜 힘들잖아. 너희도 연습생 하면서 이런저런 애들 많이 봤을 거니 알 거 아냐.”
검증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TJ에서도, 과거사나 행실 관련해서 말이 많았던 애들이 한 트럭이었는걸.
솔직히 이런 조합으로 만나게 된 건 로또 맞을 확률과 같았다.
“알죠, 그건. 잘 알아요.”
“그래.”
내가 오기 전에 지금은 없는 세 연습생이랑 한바탕 싸우고 난리가 났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 그룹에서 쓸모없다 하는 이런 생각은 이 자리에서 끝내고 더 이상 하지 말자. 내가 봤을 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고…….”
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지호는 내가 신경 써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형이 좀 더 챙겨줄게.”
“아니에여. 제가 더 열심히 할게여.”
“이리 와 봐.”
내 옆에서 눈을 글썽거리는 녀석을 안아서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 둘에게 다른 동생들도 펭귄처럼 다닥다닥 붙었다.
누군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개의치 않았다.
* * *
[나 지금 넘나 당황스러움..]
맥날에서 새벽 과제중인데 갑자기 연예인 들어왔따
-연예인??
-글쓴이)ㅇㅇ 추리닝만 입고 들어왔는데 누가 봐도 넘나 연옌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글쓴이) 다섯 명인데.. 개존잘이다 진짜. 이런 민낯은 처음이야
-사진!!
-사진 찍어서 올려 봐 누군데??
-글쓴이) 와씨.. 갈색머리 미쳤다 잠만
-글쓴이) 사진.jpg
-여러 의미로 미친 것 같은데.. 이목구비도 미쳤는데 패션도 미쳤고
-ㅇㅇ 대체 누가 청록색 티에 꽃무늬 추리닝을 입고 다니는 거지
-? 흐릿해서 잘 모르겠는데.. 한 명 겁나 또렷하다
-옷 착장 뭐야
-저건 탈덕감이다
-ㅋㅋㅋㅋㅋㅋㅋ
-?
-내 본진을 여기서ㅋㅋ 뉴블랙이야ㅋㅋㅋㅋㅋ 엌ㅋㅋ 팬카페서 글 써야겠다
[추가) 연예인 목격담]
댓글로 누가 뉴블랙이라고 알려 줘서 감사.
근데 얘네 되게 분위기 어둡다
어린애가 엄청 눈치 보고 분위기 개심각해
멀리서 보고 있는데도 숨 막힌다
느낌상 막내가 혼나는 중인 듯;;;
-? 싸웠나
-얼른 네 안의 소머즈를 개방해 봐
-소머즈라니.. 동년배 아니냐
-글쓴이) 지금 엿들으려고 하는데 거리가 너무 멈
-뉴블랙 팬 어디 갔어
-여기
-저거 무슨 상황인지 알아?
-모르겠네. 쟤네 막 막내 혼내고 그런 그룹 아닌데.. 지금 팬카페에서도 이 글 보고 당황하는 중
-ㅋㅋㅋㅋ 팝콘이다
[추추가) 분위기 훈훈]
갑자기 애한테 감튀 주고
막 케첩 주고 그러는데
뭐지;;
-??
-? 뭐임
-갑자기 훈훈해??
-글쓴이) 한 명이 스윗하게 입에 묻은 가루도 털어줌
-뭐지..
[추추추가) 다시 심각]
뭐지..
감튀 먹다가 또 심각해진다
-??
-대체 뭔 상황인데 저거..
-누가 감튀 한군데 쏟았나..?
-아 갑갑해
-ㅋㅋㅋㅋㅋ 이 새벽에 진짜 꿀잼이다
-팬 어디 있어? 반응 어때?
[속보) 허그한다 얘네]
갑자기 자기들끼리 껴안기 시작함
해피엔딩..
혹시 안 믿는 사람 있을까 봐 사진 첨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분 해피엔딩ㅋㅋㅋ
-뭐냐구 대체
-얼른 용기를 발휘해서 다가가 봐. 뭔일이냐구
-너 근데 이렇게 글써도 되냐
-조회수 봐.. 새벽에 인터넷 하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네
-사진 어디 갔어?
-글쓴이) 혹시 문제될까 봐 지움. 이 글도 삭제해야 되지 않을까.. 지금 좀 당황스럽다. 익명방에서 조회수 이렇게 높은 거 처음 보네;;
-ㅇㅇ 얼른 지워
-이런 거 회사에서 법적 조치 들어가면 난감할 수 있음
-아, 일단 사진부터 다시 올려 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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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젯밤에 있었던 일에 관하여,]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우주입니다.
어젯밤 일 때문에 다들 염려 많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어떠한 일도 아니니 걱정 안 하셨음 해요.
……(중략)……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뉴블랙 되겠습니다.
ps. 제 꽃무늬 추리닝은 잊어 주세요, 부탁이에요,
추가)
ps. 할매 아니에요
ps. 계속 할매라고 놀리시면 강퇴할 거예요
ps. 할배?? 두 분 손잡고 나갈 준비하세요
ps. 저는 경고했어요.
ps. 어제도 보셨죠? 저 무서운 사람이에요
ps. 부탁이에요..
ps. 다시는 안 들어 올거다 팬카페
* * *
TBC에서 주세한 팀과 사전조사를 마치고, 행사장으로 가는 차 안.
사전 미팅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작가님들이 우리를 보고 마음에 들어한 것도 있지만, 어젯밤에 찍힌 사진을 보고 굉장히 좋아하셨거든.
농촌에서 몸빼 바지 입히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본의 아니게 놀림거리가 된 나는 눈물만 삼킬 뿐이었다.
“그러게, 왜 그 야밤에 돌아다녀서 이 사단을 만들어?”
“석환 형.”
“왜.”
“그냥 차라리 혼내면 안 될까? 비웃지 말고.”
“싫어.”
석환 형이 웃으며 운전대를 잡은 민기 형에게 말을 걸었다.
“민기야, 너도 얘 사진 봤니?”
“예, 봤죠. 아침에 연예 관련 커뮤니티 모니터링하려고 들어갔는데, 애들 이름이 떡하니 있더라고요.”
“홍보도 이런 홍보가 없네. 어쩜 우리 우주는 제비도 아닌데 휴식기에 이런 박씨를 물어 올까.”
깔깔 웃는 매니저들 사이로, 동생들도 나를 타박했다.
“형, 제가 그러게 옷 좀 사라구 맨날 그랬잖아여.”
“맞아요.”
“당장 급해 죽겠는데 뭔 옷을 고르냐. 하여간 이게 배은망덕해 가지고. 고마운 걸 몰라요.”
“아니에여. 제가 얼마나 고마운데여, 어? 이거 푸하핫! 아아…….”
막내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분위기가 좋다.
어젯밤 매장에 있던 누군가 우리 관련 글을 실시간으로 써서 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가 껴안는 훈훈한 분위기의 사진이 곳곳에 퍼졌다.
아마도 ‘쟤네 뭐 때문에 껴안는 거지?’하는 궁금증이 원인인 듯했다.
낚시 기사로 유명한 언론 사이트에도 ‘한 아이돌이 한밤중에 서로를 껴안은 사연은…?’하면서 ‘그 비밀은 아무도 모릅니다’하는 식으로 끝났으니까.
홍보팀에서 즐거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매니저님도 입이 귀에 걸려 있다.
벌써 오늘 아침부터 연예부 기자들에게 전화를 몇 통이나 받았다나.
그런 분위기 덕분인지 꽤 혼날 문제가 가볍게 넘어갔다.
짧은 경고와 함께.
“내가 말했잖아. 어딜 가든 따라붙는 눈이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알아, 형.”
누구보다 그 교훈을 실감하는 게 나였다.
정말 사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그 매장에서 누가 우리를 보고 글을 쓸 줄은 몰랐지.
팬분들도 처음엔 웃으면서 그 글을 보다가 중간부터는 가슴이 콩닥거렸다고 했다.
그나마 훈훈한 분위기여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식겁할 뻔했다.
숙소 빼면 정말 안전한 곳이 없구나.
다시 한 번 교훈을 되새기며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와, 이견우 선배 나온 클립 조회수 좀 봐여.”
“기사 진짜 엄청 많다.”
동생들의 말에 포털 사이트 메인 연예란을 살펴보았다.
-이견우, ‘주세한’ 추석 특집 게스트 합류
-한류스타 ‘이견우’.. 길거리 미션 반응 ‘핫하네’
-최대 규모 추석특집 주세한, 남은 게스트는 누구?
어제 저녁, 주세한에 등장한 이견우가 포털을 도배하고 있었다.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최근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에서 진행하고 있는 코너였다.
워낙 추석 특집 게스트가 많아서 매 회차마다 끝 부분에 시간을 할애해서 미리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나.
우리도 며칠 뒤 광고 촬영장에서 주세한 팀과 만나 소개영상을 찍기로 했다.
간단한 토크와 미션을 수행할 거라고 했는데, 조금 걱정이 된다.
-주세한 게스트로 신인 아이돌 나온다는 썰 있던데;;
-그럼 진짜 노잼
-ㅋㅋㅋㅋ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그런 무리수를 둠?
두었지, 메인피디님이.
인터넷에서 보이는 댓글을 보며 뺨을 긁적였다.
이거 괜찮으려나.
괜히 잘못 나갔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 케이스가 꽤 있으니까.
댓글을 주르륵 내리며 근심 어린 생각을 하다가 일단은 다른 과제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형, 우리 콘티 다시 연습해 봐여.”
“그래.”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광고 콘티를 손에 들었다.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예능 촬영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광고 CF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멤버들과 합을 맞춰가며 콘티에 쓰인 대사를 읽어나갈수록 묘한 확신이 든다고 할까.
이거 뭔가.
“예감이 좋네요. 형.”
“…….”
“왜 그래요?”
“아냐,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