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1화
점심은 밥차였다.
밥 중에 밥은 광고 촬영장 밥이라더니. 그 말이 진짜였다.
“우와아.”
일회용 접시에 담긴 진수성찬을 보며 환호했다.
제육볶음, 훈제오리, 소불고기.
얼굴 붓기가 걱정돼서 꽃게탕을 푸지 못한 게 한이었지만, 근래 이 정도로 맛있는 밥은 오랜만이었다.
“으어, 마히허여.”
“다 처먹고 말해, 왕지호. 밥풀 튀기잖아.”
“마히흔 걸 어터해여.”
질색하는 리혁이를 보고 웃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운동장에 설치된 간이 천막 아래 테이블에서 스탭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밥을 먹고 있었다.
비주가 미소를 지었다.
“스탭분들 표정이 되게 편해지신 것 같아요.”
“우주 형이랑 지호가 잘해서 그래. 아까 우리가 찍을 때는 다들 이러고 계셨잖아.”
눈썹을 V자로 모아서 흉내를 내는 중현이 때문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와, 진짜 똑같아.”
“그치?”
“잘하네. 중현이도 연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
“저는 성격에 안 맞아서 못 해요. 거짓말도 못 하는데.”
손사래를 치는 중현이를 보며 막내를 흘깃거렸다.
아까 칭찬해 준 뒤로 연기 부심이 가득해져서, 지금도 ‘연기는 거짓말이 아니에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다.
“지호야, 어디 봐?”
“…….”
“어이, 왕씨.”
내가 손가락을 튕겼지만 여전히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리혁이가 날 보더니 지호 눈앞에 박수를 쳤다.
막내가 고양이처럼 펄쩍 뛰었다.
“아, 깜짝아! 왜여?”
“밥 안 먹고 뭐 보냔다, 저 아저씨가.”
“아… 저기 보고 있었어여.”
멀리 떨어진 테이블이었다.
감독과 조감독, 광고주, 광고대행사 직원들, 석환 형이 한창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광고 콘티 바뀌는 것 때문에 저러는 거 같져?”
“아마도.”
“더 재미있는 걸로 되면 좋겠다.”
“재미도 좋은데, 난 어렵지만 않으면 좋겠어.”
“나도.”
“뭐, 어차피 우리 셋은 할 일이 별로 없을걸요. 돌아가는 거 보니까 둘 위주로 짜게 될 것 같은데.”
리혁이가 부식으로 받아 온 바나나를 내게 건넸다.
“고생 좀 하겠어요.”
“뭐야. 왜 저는 안 줘여?”
“넌 다른 형한테 받아.”
비주가 웃으며 자기 바나나를 지호에게 건네주었다.
그걸 보고 한참 고민하던 중현이가 바나나를 두 동강 내서 나와 지호에게 건네줬다.
솔로몬 왕이 따로 없었다.
“그나저나 주세한 팀은 언제 오는 거지.”
“으, 떨린다.”
“저두여, 맨날 TV로만 봤는데… 실제로 만나면 실물이랑 똑같겠져?”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온다고 들었는데.
녹화 예정 시간은 30분 정도.
간단한 소개 영상이라지만 왠지 모르게 떨린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걱정 반, 긴장 반인 표정이었다.
오늘 촬영이 끝나고 나면 기사가 뜰 텐데.
지난번에 추석특집에 신인이 나온다는 썰에 달린 댓글만 봐도 별로 호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픽스된 게 알려지면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
모쪼록 오늘 촬영에서 쓸 만한 장면을 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니 접시를 들고 선 남자가 보였다.
“……누구?”
특이한 차림새의 남자였다.
회색 티에 청바지, 그 위로 야구 모자와 마스크를 걸치고 있다.
호리호리하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
현장 스탭분인가?
“어…….”
갑자기 우리 테이블에 털썩 앉는다.
그 느닷없는 행동에 지호와 리혁이가 의자를 슬금슬금 움직여 내 곁에 붙었다.
나 역시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입술을 뗐다.
“저기 실례지만…….”
하지만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대가 마스크를 턱 밑으로 슥 내렸다.
“안녕.”
“…….”
“시간 남아서 점심 먹으러 왔어.”
“…….”
“아, 혹시 초면인데 너무 갑작스러웠나?”
너무 놀라서 입만 떡하니 벌렸다.
왜냐하면 지금 눈앞에서 유쾌하게 웃는 미남은 우리가,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는 사람이었다.
여희찬.
오늘 우리와 촬영을 할 주세한의 고정 멤버였다.
* * *
허둥지둥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귀찮은 일 만들지 말고.”
“아, 네.”
“편하게 앉아. 편하게.”
뻣뻣한 자세로 고개만 끄덕였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던 그는 석상처럼 굳어진 다섯 아이돌을 보며 물었다.
“너흰 안 먹니?”
“앗, 먹을게요.”
“그래, 보니까 다들 어리던데. 많이 먹어야지.”
속 편한 소리를 하면서 반찬을 집어 먹던 여희찬은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는 얼굴로 입술을 뗐다.
“밥 중에 밥은 광고 밥이라더니. 일찍부터 온 보람이 있네.”
“…식사를 하러 오신 건가요?”
“응, 원래 근처에서 곱창 먹고 올까 했는데 냄새가 날 것 같아서. 마침 점심때다 싶어서 밥 얻어먹으러 왔지.”
세상 태평한 얼굴이었다.
“앉을 자리가 너희 테이블밖에 없더라.”
“아무도 못 알아보셨나요?”
“응, 그냥 스탭으로 아는 것 같던데. 아무도 못 알아봤을걸.”
멀찍이서 석환 형이 ‘주세한?’이라고 입모양으로 묻자,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뭐, 밥도 밥이고. 겸사겸사 촬영 전에 얼굴도 익히려고.”
그러더니 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이순으로 우주, 비주, 중현이, 리혁이, 지호. 맞지?”
“그, 선배님.”
“아니야?”
“죄송한데, 다 틀리셨어요…….”
상황이 민망했는지 그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조마조마했다.
그 소리에 다른 테이블에 있는 스탭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어딘가 익숙하다는 모양이었다.
“미안, 미안.”
여희찬이 씩 웃었다.
“내가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봐서. 나이순이라고 하니까 중현이가 우주인 줄 알았지. 맏형처럼 생겨서.”
“제가 맏형이에요.”
“군필자라고 들었는데, 오, 이거 예상치 못한 동안이야.”
“실제로도 많이 어려요.”
동생들이 대놓고 비웃었다.
리혁이는 아예 사레가 들러서 물을 벌컥벌컥 마실 정도였다.
내가 동생들을 째려보자, 상대가 소불고기를 집으며 웃었다.
“너희는 그룹끼리 사이좋은가 보다.”
“예, 저희 친해요.”
“좋네. 가끔 아이돌 애들 나올 때면 자기들끼리 기 싸움하고 난리여서 엄청 피곤했는데. 신경 안 써도 되겠네.”
여희찬이 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참, 내가 얼굴은 틀렸지만 그래도 다른 건 다 기억해. 노래도 만들어 놨거든. 봐봐. 선우주, 작곡돌, 불꽃놀이 밤바다, 스물둘, 군필자, 뉴블랙 리더…….”
독도는 우리 땅에 맞춰 개사한 멜로디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상대 역시 유쾌하게 웃었다.
“어때, 제대로지?”
장난스럽게 웃던 이가 밥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어쩜 맛있게 먹는지 음식 광고를 찍어도 될 것 같다.
아. 이미 찍으셨구나.
라면이랑 햄버거는 물론이고 음식 관련한 CF는 다 점령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여희찬.
남자 넷, 여자 셋으로 대가족처럼 구성된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의 출연진에서 20대 후반의 나이로 막내 라인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꽤 이력이 특이한 사람이었다.
어느 예능 프로에서 잘생긴 학원 선생님으로 유명해졌다가, 배우로 데뷔해서 활동했었지.
그렇게 몇 년 넘게 단역으로만 활동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주세한이란 프로에 나오면서 빛을 보게 된 인물이었다.
느긋하고 편한 성격을 컨셉으로 잡았는데 그가 말버릇처럼 하는 대사도 유명했다.
-이 복잡한 세상, 우리 편하게 살아보아요.
그냥 방송 컨셉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본래 성격인 모양이었다.
지이잉-
진동하는 핸드폰을 여희찬이 흘긋 보더니 미련 없이 수신 거부를 눌렀다.
“오늘 촬영하는 우리 멤버야.”
“아.”
너무 자연스러웠다.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이번에는 다른 이름이었는지 받았다.
“어, 형. 어디냐고? 나 촬영장 왔지. 어어, 그래. 얼른 안쪽으로 들어와.”
다들 오신 건가?
뭐라고 물어보기도 전에 시끌벅적한 고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스탭들이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누구야? 누구 왔어?”
“주세한! 주세한 촬영 왔나 봐.”
“오늘 찍는다는 게 주세한이었어?”
“어, 봤다! 나 지금 봤어!”
“TV에서 보던 거랑 똑같다.”
“종이, 종이 없냐? 사인 받아야 되는데.”
아주 난리가 났다.
우리와 만났을 때는 길가의 돌멩이처럼 바라보던 스탭과 보조 출연자들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방방 뛰고 있었다.
흡사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었다.
카메라를 든 VJ와 제작진은 익숙하다는 듯 몰려든 인파를 헤쳐 나갔고, 인파의 가운데 남은 건 모델 같은 포스를 풍기는 여자와 덩치가 큰 매니저였다.
사람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선배 연예인을 보며 우리는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우리도 가서 인사 드려야 하나?”
“저기 뚫고 들어갈 자신 있어요? 난 없는데.”
“지가 알아서 올 거야, 앉아 있어.”
여희찬이 편하게 앉으라고 손짓을 했지만 우리는 제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만남의 시간.
매니저들과 제작진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동안, 주세한의 다른 멤버가 우리 앞에 도달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안녕.”
덤덤하게 인사를 받아준 그녀가 눈매를 좁힌다.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이의 뒷모습이 익숙하기 때문인 듯했다.
때마침 여희찬도 고개를 돌렸다.
“왔냐.”
우리와 얘기를 할 때와는 180도 다른 어조였다.
못마땅함이 가득한 얼굴로 여희찬이 상대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어이가 없다는 듯 퉁명스러운 어조가 되돌아왔다.
“전화도 안 받아서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서 진수성찬을 즐기고 계셨네.”
“와서 먹어. 여기 밥 맛있다.”
“너랑은 안 먹어.”
“그럼 먹지 말든가.”
둘이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방송에서만 사이가 나쁜 줄 알았는데 실제로도 똑같구나.
“에구구.”
상대를 살살 긁던 여희찬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멀리서 바라보던 구경꾼들 사이에서 ‘와’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시선을 익숙하다는 듯 즐기던 그가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곁에 선 여자를 흘깃거렸다.
그러곤 눈을 가늘게 떴다.
“야, 근데 너 오늘 얼굴이…….”
“왜. 뭐 달라진 거 같아?”
“얼굴에 왜 이렇게 힘을 줬냐. 아이돌이랑 같이 찍는다고 아주… 아아!”
“이게 진짜.”
신명나게 등짝을 얻어맞는 여희찬의 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희연아, 오빠야, 오빠.”
“오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아아! 얘들아, 나 좀 도와주라.”
우리 역시도 보면서 웃을 뿐이었다.
여희찬과 여희연.
둘은 주세한의 막내 라인이자, 실제로 한 살 차이가 나는 남매였다.
* * *
“너희, 준비는 많이 했어?”
“네.”
“잘해야 돼.”
얼굴은 닮았지만 남매는 성격이 딴판이었다.
오빠 쪽이 좋은 것이 좋은 것이야, 하며 대충 한다면 이쪽은 열정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계신다고 해야 하나.
운동선수 출신답게 몸을 푸는 솜씨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여희연이 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우주, 비주, 중현이, 리혁이, 지호. 맞지?”
“네, 맞아요.”
“몸 쓸 줄 아는 애가 셋이고. 비주가 춤, 중현이가 운동, 그리고 우주는 뭐든 다 잘 따라 하고?”
“네. 선배님.”
“너희 둘은 노래랑 연기고.”
개인 사항까지 정확하게 파악한 그녀가 목을 움직이며 말했다.
“이따 소개 영상 마지막에 미션 하나 진행할 거거든? 황금 열쇠 얻고 뭐 그러는 건데. 지금 스코어상으로 우리 팀이 제일 꼴찌야. 오늘 녹화에서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잘해야 돼.”
“야, 여희연.”
여희찬이 끼어들었다.
“넌 만나자마자 애들을 달달 볶냐.”
“당연하지. 지금 상황이 상황인데. 이러다가 특집 첫날부터 저녁으로 삼겹살 없이 상추만 먹게 생겼잖아.”
“……저희 상추만 먹어요?”
중현이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물었다.
그 모습에 진지하게 말하려던 여희연도 그만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상황을 설명했다.
팀원을 하나씩 소개할 때마다 미션을 진행하는데, 그걸 성공하면 ‘황금 열쇠’라는 물건을 주는 모양이었다.
추석 특집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거라나.
남매의 예측으로는 그날 먹을 수 있는 저녁 메뉴라든가, 취침 공간 등을 정할 때 쓸 것 같다고 했다.
잘하면 소고기라는 말에 우리 애들이 불타올랐다.
“형, 우리 열심히 해요.”
“고기는 꼭 먹어야지.”
“맞아여. 우주 형이 말하는 그, 뭐지. 척추 부서질 각오로 해여.”
“척추 부서지면 죽어. 얘들아.”
메이크업을 고쳐주던 쌤들이 입술을 꾹 앙다물었다.
마이크가 잘 고정됐는지 확인하는 동안 어느새 주변도 북적였다.
강당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분위기만 보면 무슨 영화관 같다.
저기 손에 팝콘만 들려주면 딱일걸.
대부분 스탭들이라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메신저를 쓰는 듯한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우리끼리 찰싹 붙어서 서로 긴장을 달래고 있을 때, 뭔가 드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굴러왔다.
오늘 미션에 쓰일 농구대였다.
* * *
촬영장의 모든 스탭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세한의 막내라인 희찬, 희연이 뉴블랙을 소개하는 코너는 무난하게 끝이 났다.
여희연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미션 하나 진행하고 헤어질 텐데. 어때요, 뉴블랙. 많이 떨리나요?”
“네, 가슴이 콩닥거려여.”
“태준이 형, 얘네 긴장하는 거 봤지? 오늘 쉬운 걸로 가자, 좀.”
“진짜.”
여희연이 말을 이었다.
“어제 헤이션 씨랑 했을 때처럼 길거리에 봉 설치하고 춤추라고 하면 나 가만 안 있을 거예요!”
“그거, 폴 댄스 진짜 어려웠지.”
남매가 똑같은 표정으로 진저리를 치자 사람들이 웃었다.
“걱정 마세요.”
대본을 겨드랑이에 낀 남자, 오태준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오늘은 쉬운 걸로 갑니다.”
피디가 농구공을 받아서 건넸다.
“농구 보면 자유투 아시죠?”
“네.”
“간단합니다. 음악이 나오는 헤드폰을 끼고, 자유투를 성공하시면 됩니다. 방식은 상관이 없어요. 발로 차셔도 되고, 집어 던지셔도 되고. 몸만 사용하시면 다 됩니다.”
“그게 다야?”
“대신, 거리마다 성공해야 되는 인원이 있습니다. 주사위 눈이 1이 나오면 거리가 짧은 대신 일곱 명 전원이 성공을 해야 하고요. 6이 나오면 한 명만 나와도 성공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대신… 거리가 좀 될 거예요.”
제작진이 택배 상자만한 물건을 가져왔다.
파란 쿠션처럼 털이 달린 주사위였다.
TV로만 바라보던 물건이라 신기한 기분으로 바라보는 동안, 둘은 심각한 얼굴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야, 이거 잘 굴려야 되는데.”
“누구였지? 운동 잘하는 애. 농구도 잘해?”
“네, 잘해요.”
“그럼 중현이가 굴려 볼래?”
“어, 안 돼요!”
우리 넷이 동시에 나섰다. 둘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왜?”
“이 형이 유서 깊은 꽝손이어서요.”
“불운의 아이콘이에여.”
“저희끼리 믿는 미신 같은 건데… 중현이가 예감이 좋다거나 그럴 때마다 막 일이 터지거든요.”
“……아닌데. 그거 아니에요.”
여희찬이 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럼 여기서 운빨이 제일 좋다 싶은 사람은 누구야?”
그 말에 동생들이 하나같이 나를 바라봤다.
당혹스럽다.
남매가 기대하는 눈으로 내게 주사위를 넘겼다.
“아니, 저도 충분히 불운의 아이콘인데…….”
“괜찮아. 괜찮아.”
“그래! 부담 없이 굴려 봐. 잘못 굴린다고 우리가 뭐라… 야!”
쩌렁쩌렁한 고함과 함께 구경꾼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얀 동그라미 여섯 개.
순식간에 대역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들 나를 째려봤고,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니. 편하게 굴리라면서요.
* * *
“어쩐지. 중현이 형이 차 안에서 우주 형한테 저주 걸었잖아여. 오늘 예감 좋다고.”
“야. 중현이 형이 무슨 흑마법사냐.”
“근데 일리는 있어. 우주 형이 되게 운이 좋은 편이잖아.”
잠시 연습 시간.
김중현과 주세한의 두 멤버가 코트 중간에 섰을 때, 뒤에 선 멤버들이 속닥거렸다.
“거리가 너무 멀지 않아?”
“이거, 무거운 돌 들어올리는 포즈로 던져야 할 것 같은데여.”
“그래도 안 들어갈 것 같은데.”
거의 코트 끝에서 끝이었다.
딱 한 명만 성공해도 된다지만 이게 될지 싶다.
거기다 음악이 나오는 헤드폰까지.
“뭐야, 이거. 왜 반야심경이 나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멤버들도 같이 웃다가, 이내 김중현이 슛을 넣어 보려고 하다 어정쩡하게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고 낯빛을 굳혔다.
“중현아. 왜 그래?”
“불꽃놀이가 나와서 나도 모르게 몸이…….”
“불꽃놀이?”
그 말에 오 피디가 대답했다.
“뉴블랙 분들이 사전 조사에서 ‘엄청 연습했다. 자다가도 노래만 흘러나오면 춤이 나올 정도다’라고 말을 했는데요. 그에 착안해서 준비한 페널티입니다. 확실히 효과가 좋은 것 같네요.”
“…….”
“저거, 악마가 따로 없다니까.”
그 말에 말없이 공감하던 멤버들은 밀려오는 걱정에 몸을 떨었다.
왕지호가 물었다.
“넘 어려워 보이는데. 형은 할 수 있어여?”
“애매한데. 비주 형, 어때요?”
“쉽지 않을 것 같아. 거리도 거린데 페널티가 있으니까.”
그들이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를 향해 왕지호가 고개를 돌렸다.
“형은 어때여, 가능?”
당연히 자기도 힘들 것 같다는 말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을 때.
“잠깐만.”
“네?”
선우주가 면밀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경기장에 나선 운동선수처럼 농구 골대의 거리와 위치, 동선을 훑는다. 그것도 굉장히 집중한 얼굴로 고개가 왔다 갔다 했다.
어차피 안 될 걸 아니까, 긴장이나 풀자고 꺼낸 질문이었는데 뭔가 반응이 진지하다.
‘또 왜 저러지?’하는 눈으로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볼 때.
선우주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 수 있을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