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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2)화 (9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2화

옛날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미션을 수행하는 예능 출연자들은 어떤 기분일까?

어릴 때는 마냥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TV에서 닭싸움을 하거나, 추격전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은 신나 보였으니까.

하지만 실제 출연하고 보니 전혀 아니었다.

재미는 무슨.

마치 시험을 보는 기분이다.

그나마 비슷한 상황을 꼽자면 학교에서 하는 예체능 수행 평가나 연습생 월말평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전하는 자유투.

그것도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거의 코트 끝에서부터 골대까지, 그것도 집중력을 방해하는 헤드폰을 낀 채.

“아이고, 아까워라!”

“아슬아슬했는데!”

실패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아쉬워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경꾼들의 눈에는 재미가 가득했다.

죽을 맛인 건 우리와 주세한의 멤버뿐.

“아! 이게 안 들어가네!”

헤드폰을 벗은 여희연이 손으로 머리를 북슬북슬하게 만들었다.

뜻대로 되지 않아 열이 오른 얼굴이었다.

스탭에게 공을 받은 나는 다음 차례인 여희찬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느긋하게 웃으며 공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곤 헤드폰을 쓰고 슛 자세를 취했다.

소싯적에 농구 좀 했다 싶을 만큼 각이 나오는 포즈였다.

곧이어 팔이 쭉 뻗으면서 공이 포물선을 그렸다.

텅-

아쉽게도 백보드에 맞고 떨어졌다.

옆에서 주먹을 쥐고 아으으! 하는 동생과 달리 그는 아쉽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다시 우리 차례가 와서 중현이가 하려고 할 때.

“잠깐만, 나 한 번만 더 해 볼게.”

여희연이 공을 가져갔다.

승부욕에 활활 불타는 얼굴로 곧바로 공을 튀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감탄했다.

잘하시네.

동작을 모방하는 능력 덕에 상대의 움직임이 훤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운동선수 출신이라더니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주세한의 멤버들에 관한 인터넷 글이 떠올랐다.

혹시 말실수라도 할까 봐 멤버별 특이사항에 대해 검색을 했었는데, 거기서 원래 운동선수였던 여희연이 부상으로 은퇴하게 되었다는 걸 봤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아킬레스건 부상.

그러다 재활 치료가 끝날 무렵 우연한 계기로 배우인 오빠와 함께 주세한에 합류하게 됐다는 게 그녀의 스토리였다.

그 때문인지 주세한에서도 몸 쓰는 에피소드가 나오면 만능으로 활약하는 캐릭터였다.

우리팀 운동 마니아가 입을 멍하니 벌렸다.

“와, 자세 진짜 정석이신데요. 저 선배님 농구 배우셨나 봐요.”

“원래 종목은 따로 있어.”

여희찬이 웃으며 대꾸했다.

바로 그때, 여희연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짧게 도움닫기를 하고 공을 띄우더니, 긴 다리를 강하고 빠르게 쭉 뻗은 것이다.

그리고 운동화가 공을 걷어찼다.

……잠깐, 운동화?

파앙!

발차기에 맞아 날아간 농구공이 목적지에 택배처럼 도달하는 모습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안타깝게도 골대 위에서 퉁퉁 튕기고는 떨어졌지만.

“아아아! 할 수 있었는데!”

기억났다. 축구 선수 출신이었지.

절규하는 동생에게 다가가 여희찬이 따스한 위로를 건넸다.

“너도 참. 그걸 못 넣냐.”

“…….”

“아아아! 여러분, 얘가 사람 잡아요!”

한 편의 꽁트를 보면서 사람들은 웃었지만, 우리는 편하게 웃을 수 없었다.

중현이의 능숙한 슛도 실패하고.

본의 아니게 춤이 나와 버려서 스탭이 꼬여 버린 비주도 있고.

리혁이는, 어… 그래. 리혁이고.

지호는 포트리스에 나오는 탱크처럼 공을 다리 사이에 뒀다 던져, 큰 웃음을 주는 데만 성공했다.

다른 동생들이 모두 실패한 상황이었다.

“이제 네 차례야.”

여희찬이 내게 공을 넘겨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으면서 코트 가운데 섰다.

긴장된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오늘 녹화에서 내가 원하는 목표는 최대한 비호감 이미지 없이 분량을 챙기는 거였다.

문제는 자기소개 코너를 무난하게 해 버려서, 방송에 나갈 에피소드가 적다는 거고.

여기서 분량을 챙기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웃음을 주는 거다.

재미있는 드립을 친다거나 몸으로 웃기거나.

하지만 그 둘은 내 영역이 아니었다.

일단 나부터가 농담에는 자신이 없을뿐더러 일부러 몸 개그를 하려고 오버했다간 바로 티가 날 테니까.

남은 선택지는 슛을 잘 성공시켜보는 것뿐.

여희찬이 긴장 풀라는 듯 내 등짝을 툭 쳤다.

“대충 해. 연습이잖아.”

“네.”

대답하면서 멀리 농구대를 바라보았다.

하얀 테이프로 테두리가 쳐진 백보드가 증명사진만큼 작아 보였다. 골대는 무슨 빨대 구멍처럼 보이고.

상상 이상으로 더 먼걸.

공을 튀기며 거리를 가늠했다.

내가 드리블을 하는 모습에 여희연이 동생들에게 뭐라고 속삭인다.

마른침을 삼키며 눈앞의 목표에 집중했다.

그와 함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처음에는 마냥 떨렸는데 공을 튀길수록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내 몸이 알아서 필요한 동작을 구사하기 전에 느껴지는 그 감각. 병원에서 경찰 분을 패대기쳤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헤드폰 노랫소리 때문에 몇 번이고 몸이 움찔거릴 뻔했지만, 계속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이윽고 손으로 공을 착 감았다.

그걸 든 채로 몇 번 스냅을 움직여 힘을 가늠했다.

배구 선수가 토스하는 연습을 하듯이 공을 위아래로 올렸다가 떨어뜨리길 반복하면서.

점검이 끝내고 공을 오른손에 들었다.

이제 결전의 순간이었다.

내가 머릿속으로 동작을 떠올리자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창을 던지는 사람처럼 팔을 뒤로 쭉 뻗었다가, 이내 관성을 이용해 앞으로 힘껏 던졌다.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하지만 들어가기도 전부터 강한 확신이 들었다.

좋은 공연을 하고 났을 때와 같았다. 누가 환호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결과를 아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동생들과 주세한 멤버들, 제작진, 광고 촬영 스탭들, 보조 출연자들이 모두 멍하니 그 궤적을 따라가는 가운데.

착-!

공이 골대 안으로 쏙 들어가서 네트에 착 감겼다.

툭 떨어진 공이 튀는 소리가 조용한 강당을 울릴 때였다.

그 정적을 뚫고 누군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저게 들어가네.”

그와 함께, 우리 팀원들이 귀청이 따가울 만큼 큰 고함을 질러댔다.

*   *   *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 상승을 한 기분이다.

수능 문제집에서 봤던 조선 후기의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았을까.

방금 전까지 주사위 눈 6개를 굴려 역적 취급을 받았던 것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영웅이 되어버렸다.

“그래! 바로 그거야, 우주야!”

“형, 잘했어여!”

“와, 이거 NBA에서 어떤 선수가 이런 식으로 던졌는데. 거리는 그쪽이 훨씬 더 먼데, 자세는 형이랑 되게 비슷한 거 같아요.”

마지막 말은 좀 뜨끔했다.

그거 맞는데.

작년 11월부터 능력을 실험하면서 농구 쪽도 틈틈이 익혀 두고는 있었지만, 방금 내가 한 슛은 급하게 미튜브를 검색한 결과였다.

‘Long shoot NBA’ 같은 검색어를 통해서.

물론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 필요도 없기도 하고.

어쨌거나 잘 풀렸으니까.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묘하긴 하다.

사실 이 거리에서 하게 된 원흉이 나인데 방금 슛으로 다들 까먹은 듯한 분위기였으니까.

“아니, 근데 사실 따지고 보면…….”

“조용히 해.”

반동분자의 귓가에 음습하게 속삭여 주었다.

한편, 방금 슛 덕분에 촬영장의 분위기는 확 바뀌어 있었다.

다들 표정부터가 달라졌다.

처음의 ‘아, 이 거리에서 어떻게 해’에서 ‘이거 할 수 있겠는데?’ 같은 느낌으로.

오태준 피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그럼 본 미션으로 들어가 볼까요?”

하지만 유쾌했던 분위기도 금세 가라앉았다.

7명 중 단 1명이라도 성공시켜야 하는 상황.

하지만 내 차례가 올 때까지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여희연은 세상에서 가장 원통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자처럼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데, 솔직히 좀 무서웠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내 차례.

비장한 공기가 감도는 가운데, 동생들이 내게 따스한 응원을 보냈다.

“좀 잘해 봐요. 이거 성공시키면, 아까 주사위로 6 나오게 한 거 잊어 줄 테니까.”

“고맙구나. 리혁아. 형이 아주 마음이 든든해지네.”

“고마운 거 알면 됐어요.”

이걸 그냥.

“형. 이거 성공시켜야 우리 고기 먹는 거 알져? 형의 손에 고기가 달린 거예여. 왼손에 꽃등심이, 오른손에는 눈꽃등심이 달린 거라구여. 실패하면 허공으로 뿅 날아가는 거구.”

“지호야. 넌 형이 안중에 있긴 하니?”

“당연하져. 전 언제나 우리 큰형의 안, 뭐지. 리혁이 형, 뭐였져? 안보?”

“안위. 바보야.”

“그래. 지호야. 안보가 걱정되면 111에 전화를 걸어야지.”

“…에이, 몰라여. 암튼 화이팅이에여.”

중현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주먹을 내밀었다.

부웅!

순간 권풍이 불며 내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힘내요. 형.”

“…아, 깜짝아. 때리려는 줄 알았잖아.”

“죄송해요. 제가 지금 고기 때문에 좀 의욕이 넘쳐서.”

“그래 보여.”

우리 셋째의 주먹을 손으로 감싸 쥐며 고개를 끄덕일 때, 비주가 마이크를 손으로 감싼 채 까치발을 들었다.

부드러운 속삭임이 귓가를 간질였다.

“형, 이거 성공하면 제가 나윤이가 해 준 십만 원 얘기 잊어 드릴게요.”

오, 이건 효과 있었다.

갑자기 의욕을 불태우는 나를 보며 동생들이 궁금해했지만 비주는 말없이 미소를 보낼 뿐이었다.

한편, 여씨 남매도 최대한 분량을 뽑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분위기를 극적으로 고조시킨다고 해야 하나.

하이라이트 장면을 차근차근 빌드업을 하는 느낌이다.

“우주야.”

“네, 선배님.”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해.”

유쾌한 인상의 미남이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거, 황금열쇠니 뭐니 하는 건 신경 꺼. 별것도 아닌 건데 막 중요하게 포장하고 그런 거니까. 이 프로가 그래. 발리 데려간다고 그러면 온양읍 발리로 가고, 방콕 간다고 하면 방에 감금시키고.”

“아, 네…….”

“그니까 편하게 해. 뭐, 별거 있니.”

“아니지.”

성실한 인상의 미녀가 자기 오빠의 맞은편에 섰다.

“쟤가 하는 말은 듣지 마, 우주야.”

“저 말뽄새 봐. 오빠한테.”

“저거, 성격이 능글능글해서 다들 굶고 있는데, 자기 혼자 빠져나가서 다른 팀한테 얻어먹고 그러거든. 자긴 실패해도 된다 이거지. 하지만 우리는 달라. 실패하면 된다, 안 된다?”

“……아, 안 된다?”

“그래. 그런 마인드야! 화이팅 넘치게 가야지. 오케이?”

“오, 오케이…….”

“어휴, 피곤하게 산다. 정말. 편하게 하라니까.”

그거 같다.

천사와 악마가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싸우는 그거.

본인들도 그걸 의도했는지, 무서운 형누나 사이에 낀 나를 보며 구경꾼들이 연신 웃었다.

내가 외롭게 외쳤다.

“저 헤드폰 낄게요…!”

‘우주야아….’ 하는 메아리가 남을 만큼 속삭이는 남매를 외면하며 헤드폰을 꼈다.

그러자 곁에서 맴돌며 입모양으로 말을 하던 남매가 이내 멀어졌다.

카메라에서 안 보이는 각도에서 둘이 눈을 찡긋거렸다.

자기네가 이렇게 밑밥을 깔아놨으니 한번 잘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   *   *

“저걸 성공하네.”

노란 쿠킹호일로 감싼 열쇠를 들고 왁자지껄하게 웃는 이들을 보며 구경꾼들이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넣었지? 봐도 봐도 모르겠다니까.”

“야. 나 방금 친구한테 톡 왔는데 뻥치지 말란다. 뭔 운동선수도 아니고 아이돌이 그걸 하고 있냐고.”

“안 믿을만 하지. 나 같아도 안 믿었다.”

어려운 미션을 해낸 이를 보며 다들 헛웃음만 짓고 있을 때, 주세한의 제작진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양미현 작가가 짐을 챙기며 말했다.

“어때요, 피디님?”

“뭐. 괜찮은데요.”

“이만하면 쓸 만한 장면 이것저것 딴 거 같죠?”

“따고도 남긴 했죠. 여태까지 주사위 눈 여섯 개 나온 미션 중에 성공한 거 몇 안 되잖아요. 쓸 만한 건 꽤 건져서, 오히려 여기서 뭐를 잘라 내야 할지가 고민이지. 일단 그 풀코트 슛은 무조건 집어넣을 거고.”

“본방 나가면 반응 나쁘지 않겠네요.”

오태준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멀찍이서 웃고 있는 한 멤버에게 머물렀다.

“반응이야 괜찮겠죠. 그때까지 뭐, 이래저래 시끄럽겠지만.”

*   *   *

○ YoHC_0509

♡ RealHanTH 외 792명

- 우리 팀 마지막 게스트 ‘뉴블랙’과 만남! 소개 영상 찍으면서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궁금하면 본방 보기!

#여희연빙구 #하지만난잘나왔지

댓글 78개 보기

-gmldus87 : 뒤지기 싫으면 사진 바꿔라

-YoHC_0509 : ~_~ 에베베베

-gmldus87 : 야.

-gmldus87 : 바꾸라고

-YoHC_0509 : 자매님. 우리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 본연의 아름다움에 더 신경을 기울이는 건 어떨까요?

-gmldus87 : 전화 받아

-Promis.Jang : 너희 또 싸우니..? -_- 하여간.. 우리 뉴블랙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좋다..

*   *   *

그날 녹화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굳이 누가 말을 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꽤 쓸 만한 장면을 건졌다는 걸.

그랬기에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덕분에 재밌었어.”

“본 녹화 때도 이렇게 열심히 해줘.”

그런 말을 하던 여씨 남매는 우리를 단톡방에 초대해 주었다.

추석특집 때 같은 팀으로 호흡을 맞출 제작진과 팀 연예인이 있는 방이었다. 미리 친해지자고 만든 방이라나.

이견우 선배를 비롯해 다른 선배들이 톡으로 인사를 건네는데, 다들 이름 있는 분들이라 나도 모르게 톡방을 보고 고개를 숙여 댈 정도였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틀에 걸친 광고 촬영도 끝이 났다.

바뀐 콘티는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

나와 지호를 중심으로 두 인물의 감정선이 강조되고, 대사 몇 가지와 씬 한두 개가 교체된 정도.

그렇다고 천만배우급의 연기력을 요구하는 난이도는 아니라서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래저래 좋은 경험이었다.

나중에 스토리 있는 뮤비를 찍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연기 연습을 해 뒀다는데 의의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번 계기로 내게 연기의 재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지호처럼 귀신이 씐 듯한 연기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뭐.

그것 때문에 잠깐 생각이 복잡하긴 했다.

TJ에서 내게 권유한 선택지가 배우였으니까.

만약 그때 그 길을 골랐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지 잠시 상상을 해 보긴 했지만, 얼마 안 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난 일이었다.

아쉬움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이돌에 대한 꿈이 가득했던 나로서는 지금의 내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나저나.

“얘네는 어디를 가서 안 오는 거야?”

광고 스탭들이 철수한 가운데, 나는 텅 빈 학교 교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석환 형은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며 HBS 방송국으로 달려갔고, 민기 형은 차에서 쉬고 있었다.

동생들은 나한테 무슨 선물을 주겠다며 말하곤 사라졌는데 나로선 불안할 따름이었다.

팬들과 약속한 라이브 방송이 1분 뒤였기 때문이다.

창가에 드리우는 나른한 노을을 보다가 폰을 들었다.

회사에서 라이브용으로 준 스마트폰이었다.

민기 형이 알려 준 대로 버튼을 톡톡 누르자, 이윽고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먼저 들어온 수플레는 열 명 남짓이었다.

“안녕, 수플레. 우주예요.”

인사와 함께 동생들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할 팬들을 위해 말했다.

“음, 동생들은 지금 잠깐 어디 갔는데요. 네. 저한테 선물을 줄 게 있다고 기다리라고 했어요. 곧 올 때가 되기는 했는데. 그동안 저랑 재미있게 놀아요. 참, 그리고 동생들아.”

핸드폰을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걸 보고 있다면 얼른 뛰어오렴. 늦게 오면 내가 리혁이부터 시작해서, 너희 비밀을 하나씩 말해버릴 거야.”

그렇게 팬분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것도 모를 때.

드륵, 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열렸다.

뒤에 뭔가를 숨긴 우리 애들이 들어왔다.

“어, 왔네. 그건 뭐야?”

“뭐냐면, 아. 라이브 시작했구나. 안녕하세여, 수플레 여러분! 저희 지금 우주 형한테 선물 주려고 왔어여.”

자기들끼리 두구두구두구 하던 애들이 짠! 하며 뭔가를 내밀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교복이었다.

채팅창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웬 교복…?”

리혁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니, 그. 처음에 팬분들이랑 라이브 했을 때 있잖아요. 그때 교복 입고 좋아하던 게 눈에 좀 밟히고, 뭐 여하튼 그래서.”

“맞아여. 우리 교복 마니아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예여.”

“저희가 어렵게 구해 왔어요.”

“고맙긴 한데. 이걸 갑자기 왜…?”

얼떨떨하게 대꾸하고 있을 때, 비주가 설명했다.

“형이 예전에 데뷔 문제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을 못했다고 했잖아요. 평소에 졸업 앨범이 없다고 아쉬워하기도 했고. 그래서 저희가 준비했어요. 스케줄도 없고 하니까, 오늘 팬분들이랑 다 같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내가 할 말을 잃은 사이,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형, 졸업 앨범 만들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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