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5)화 (9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5화

작업실 테이블에 노트북이 세팅되는 동안 나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 [할머니]

나 [손자 오늘 주세한 나오는 거 알고 있지..?]

나 [(이모티콘)]

하얀 조랭이 떡이 ‘할 말이 있으요..’ 하며 손가락을 부딪히는 이모티콘을 보내자, 곧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김덕순 [틀어놨어]

김덕순 [근데 느이 얼마나 나오냐..?]

나 [한 5분?]

나 [3분 카레보단 김ㅎㅎ]

김덕순 [나오면 전화해]

김덕순 [손님이많어]

등산회에서 단체 손님이라도 온 건가.

손님으로 바글바글할 백반집을 상상하며 흐뭇하게 웃을 때, 비주가 편의점에 사온 간식거리를 건넸다.

과자 봉지와 음료를 든 우리의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이야, 이게 얼마 만에 방송 시청이냐.”

“그러니까요.”

중현이가 무알콜 맥주를 따며 말했다.

“뮤직카페 봤던 게 한참 전이었던 거 같은데. 얼마나 됐지. 세 달? 네 달? 진짜 오래 되긴 했네요.”

“전 벌써 가물가물해여.”

“뭐가 가물가물해.”

리혁이가 비웃었다.

“네가 거기서 콧물 범벅 된 거 아직도 생생한데.”

“나 그거 따라할 수 있어.”

중현이가 울먹이던 막내의 표정을 따라하면서 웃음이 터졌다.

지호가 입술을 비죽였다.

“그게 뭐가 똑같아여.”

“…….”

잠시 정적이 흐르고, 서로를 바라본 우리가 동시에 말했다.

“완전 똑같았는데.”

“거의 싱크로 백 퍼죠.”

깔깔 웃으며 건배하는 형들을 보며 막내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뭔가 떠올랐다는 듯 음침하게 웃었다.

“리혁이 형은 지금 웃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여. 곧 있으면 형의 병맛 농구 슛이 방송에 나올 거예여.”

“아.”

“이제야 기억이 난 표정이네여.”

우리 메인보컬의 귀가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때 모습이 웃기긴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애들도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고 웃었다.

“아, 큰일 났네.”

혼자 심각해진 얼굴로 리혁이가 내게 물었다.

“이거 나올 거 같아요?”

“네 한 몸 희생해서 큰웃음 준다고 생각해. 별일 있겠니. 우리가 뭐 하루 종일 놀릴 것도 아니고.”

“…반나절 동안 울궈먹겠단 소리네요.”

“정확하네.”

씩 웃으며 과자를 집어먹었다.

울상이 된 메인보컬이 우리 팀 주부한테 위로의 사과 조각을 받는 동안, TV에선 마침내 주세한의 로고가 나왔다.

시트콤의 대가족처럼 구성된 멤버들이 익살맞게 움직이는 오프닝.

이어서 광고 제공 멘트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것도 보통 광고들이 아니었다.

주세한의 최고령자 우재용 선생님이 허리를 두드리면서 ‘아유, 난 더 이상 못 가겠다!’ 하는 장면이 나오더니 다른 멤버들이 ‘선생님! 저희가 업어 드릴게요!’ 하면서 총알처럼 날아가는 통신사 광고.

여희찬, 여희연이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화해를 하며 라면을 끓이고는, 마지막에 남매가 동시에 국물을 마시고 으어! 하는 라면 CF까지.

“뮤직카페 때랑은 느낌이 다르네.”

내가 입술을 뗐다.

“그때는 되게 잘나가는 음방 나가는 느낌이었는데, 이건… 뭐라고 설명을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그니까여. 엄청 떨려여.”

막내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손바닥을 비볐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기가 출연한 영화를 처음 보는 배우 같은 얼굴들이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어떻게 나올지 막 떨리고.

나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다들 가족들한테는 얘기했어?”

“방금 문자 받았어요.”

비주가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누나가 메시지 보냈는데요. 지금 집앞에 식당에서 삼겹살 시켜놓고 보는 중이래요. 인증샷까지 보냈는데….”

해맑게 웃고 있는 동생 민준이와 함께, 비주네 누나, 어머님, 아버님이 활짝 웃으며 브이를 하고 있었다.

일찍이 병원에서 마주친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들이 보였다. 병색이 완연했던 민준이는 여전히 마르기는 해도 혈색이 제법 건강해졌고, 그늘이 가득했던 부모님의 얼굴이 화창한 하늘처럼 변해 있었다.

특히 어머님은 소풍을 나온 소녀처럼 얼굴이 발그레했다.

“어머님이 되게 기쁘신가 보다. 홍조도 있으시고.”

“그건 소주 한 잔을 해서…….”

“아.”

민망한 웃음을 교환했다.

“다들 보기 좋으시네.”

“이게 엄마가 민준이랑 병원 다니실 때 한창 보던 프로그램이었거든요. 일요일마다 보면서 웃는 그런 거라.”

“의미가 크시겠구나.”

“엄마아빠가 엄청 신났었어요. 주세한에 나간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친척들한테 전화 돌리고 막…….”

주세한 출연은 우리에게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 아들딸이 ‘앨범 잘 팔리고 있대요’, ‘저희 행사 나가요’라고 하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이게 지금 잘 되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니까.

아무리 잘 되고 있다고 말을 해주어도 직접 TV에서 보는 거랑은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나온다는 TV 프로가 주세한이란 사실을 알게 될 때 부모님이 느낄 심정은 그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 같다.

그때, 중현이가 불쑥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도 아부지가 뭐 보내줬는데.”

저화질 사진인가 싶었는데 중현이가 버튼을 콕 누르자 동영상이 재생됐다.

노인과 중년인이 가득한 마을회관.

-자, 박수~!

중현이 아버님이 외치자 열렬한 박수가 돌아왔다.

-주민 여러분, 오늘 우리 중현이가 아주 경사스러운 테레비에 나옵니다!

테레비! 하면서 주민들이 손뼉을 쳤다.

-자자, 우리 파도타기~ 훠이~~

파도타기는 대체 왜 하시는 거지.

“…이게 뭐야?”

“아부지가 보내줬어요. 단체로 응원하면서 볼 거라고.”

“그, 우리 마지막에 5분 정도만 나온다는 건 얘기했지?”

“얘기했는데 이래요.”

중현이가 흠 하며 말했다.

“제가 봤을 때는 저 핑계 대고 마을 분들이 오늘 소도 잡고, 소주도 마시면서 놀려는 것 같아요.”

“그래.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노시겠어. 네가 효도했네.”

“저도 좋아요.”

흡족하게 웃는 녀석을 보다가 이내 손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막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해?”

“반 톡방에서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에여. 오늘 주세한 나가는 것 때문에 시끌시끌하거든여. 특히 길채경이랑 엮여 가지고.”

“아, 같은반?”

“넹. 걔가 막 ‘ㅎㅎ 지호도 그날 같이 나올 거야’라고 자꾸 홍보를 해 가지고. 뭔가 비교되는 분위기에여. 완전 짜증.”

관심 많은 형들이 고개를 내밀자, 지호가 핸드폰을 보여줬다.

길채경 [나만 나오는 거 아냐ㅋㅋ 지호도 같이 나오는데]

길채경 [다 같이 마니마니 나왔음 좋겧닿ㅎㅎ]

길채경 [ㅋㅋㅋ 지금 다들 보고 있는 거지..? 이따 나도 나오고 지호도 나올 거야!]

…진짜 얄밉긴 하네.

지호가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기가 더 연차도 높고, 분량 많이 나올 거 같으니까 이러는 거라니까여. 아우, 얄미워.”

“네가 참아. 뭐 어떡하겠냐.”

“그래. 네가 고백 까면서 못생겼다고만 안 했어도 이런 일 없었어.”

“와. 내 편이 아무도 없어.”

“아유, 형들은 우리 막내 편이지. 그런 서운한 소리를 하니.”

“몰라여. 저 되게 꽁기한 기분이에여.”

한편, 토라진 막내를 달래주다가 나는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걸 떠올렸다.

가족 얘기에서 혼자 침묵을 지키는 한 명.

리혁이었다.

밤바다를 작곡할 때 들었었지. 여동생 제외한 다른 가족과는 연락을 잘 안 한다고.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았다.

가족 얘기는 조금 조심스럽게 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그걸 까먹고 말한 것 같다.

그제야 비주도 눈치를 챈 듯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말실수를 한 기분이라 흘깃거렸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곤 뭔지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신경 쓰지 마요.”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뭐, 우리끼리 보고 있으면 됐지.”

*   *   *

마침내 방송이 시작됐다.

지난 회차에 이어서 가평 프랑스 마을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내용이었다.

유럽 길거리의 화가처럼 멤버들이 일일 화가가 되어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준다.

괴상한 퀄리티의 그림과 그걸 보며 경악하는 신청자들, 그리고 행인들과의 만담이 오늘의 재미 포인트였다.

마지막으로 방송 말미에 멤버들이 한군데 모였다.

-자, 그러면 다음 여행지를 뽑겠습니다!

주사위를 굴려서 다음 여행지가 어디가 될지 뽑으며 해당 회차가 끝났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14 추석특집]이라는 로고와 함께 방송 화면이 전환됐다.

침을 꼴깍 삼키는 우리 앞으로 소개영상이 쭉쭉 흘러나왔다.

첫 번째 팀이 소개하는 게스트는 개그맨 서지형과 모델 한소라.

계속된 노잼 드립으로 구박 받는 서지형과 멤버들 앞에서 우아한 워킹을 선보이는 한소라가 편집 포인트인 듯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전문 방송인이 아닌 사람이 끼어 있어서 그런가.

분량이 살짝 적은 느낌인걸.

이어서 두 번째 팀의 게스트가 등장했다.

화이 엔터의 사옥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연습실에서 안무를 점검 중이던 걸스온탑이 허둥지둥 인사를 했다.

-엇, 안녕하세요!

어쩔 줄 몰라 하는 순진한 표정에 주세한 멤버들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걸스온탑 멤버들과 신곡 홍보가 아주 잠깐 나온 다음 곧바로 근처 행인을 중심으로 미션이 진행됐다.

꽤 재미있는 게 걸렸다.

성별이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심박수를 올리는 내용이라고 할까.

딱 봤을 때 재미있겠다 싶은 느낌.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걸스온탑이 몸을 사린다고 해야 하나.

이런 건 망가지는 걸 감수하면서도 해야 하는 건데, 다들 애교를 부리고 앉아있으니 재미가 없을 수밖에.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정말로 끝나 버렸다.

“…어?”

“끝인가?”

“이게 끝이에요?”

더 넉넉하게 뽑아내도 될 것 같은데 보여줄 만큼 보여줬지? 라고 말하는 듯 뚝 끊겼다.

우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큰일 났네. 걸스온탑이 이 정도인데, 이러다가 우리는 아예 통편집되는 거 아니에요?”

“에이, 아니겠지.”

“방송 시간 얼마나 남았어여?”

내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아직 15분이나 남았는데?”

“뭐야. 이상하네. 지금 소개영상에서 남은 거라고 해 봐야 헤이션 선배님이랑 우리밖에 없잖아요.”

“혹시 엔딩 장면에 뭐 추석특집 예고 그런 거 나오는 건가.”

“중현이 형, 녹화를 안 했는데 어떻게 예고가 나와요.”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앞선 것도 그랬다. 더 보여줄 수 있었는데 미묘하게 끝났다.

걸레 짤 때 끝까지 쫘악 짜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한 번 쭉 짠 다음에 바구니에 넣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러다가 우리는 2분 나오고 끝 아니야?

걱정이 컸다.

지금 김덕순 여사는 물론이고, 동생들 가족이나 지인들도 TV 앞에 앉아있을 텐데.

진짜 2분 컷 당하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여씨 남매와 래퍼 헤이션이 봉춤을 추는 장면에도 전혀 웃을 수 없었다.

그리고.

“흐어어… 우리 나오나 봐여.”

올 것이 왔다.

리혁이는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고구마 말랭이로 두 눈을 가렸다. 나도 새우깡만 아니었으면 따라하는 거였는데.

덤덤하게 보는 척하는 중현이도 캔을 오밀조밀 구기는 중이었다.

마침내 화면에서 뉴블랙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왔다…!”

그런데 의외로 기분이 차분해졌다.

OMR지를 받고 긴장하다가 실제 시험지를 마주할 때 느끼는 ‘그래, 망했구나’ 하며 느끼는 편안함이라고 할까.

그리고 생각만큼 이상하지도 않았다.

어설프고 서투르기는 한데, TV 화면에 비치는 우리 모습이 제법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진짜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강당에서 만난 주세한 멤버와 뉴블랙이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끝나면서,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심지어 중현이마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형.”

중현이가 노트북 하단의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우리 소개하는 데만 2분 썼어요.”

*   *   *

시청률이 높은 예능이 방송되면 늘 그러하듯, 각종 커뮤니티는 주세한 본방을 달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랬기에 한 커뮤니티의 자유게시판은 라이브톡과 다름없었다.

-애기가 그림 보고 울었네 ㅋㅋㅋㅋ

-주세한) 여희찬 미침ㅋㅋㅋ

-주세한 오늘 케미 미쳤네요

-저렇게 셋이 붙여 놓으니 방송이 사네

-프랑스 마을 저기 이제 사람 겁나 붐비겠죠? 와이프랑 계획잡았는데..;;

-말머리 좀 지킵시다

이윽고 본방이 끝나고 소개영상이 나오는 코너.

-주세한) 오늘 라인업은 쫌 약하네요

-서지형 진짜 개노잼..

-솔직히 저거 계속 받아주는 게 더 문제

-아.. 안 끝나나

-오 한소라 ㄷㄷㄷ

-주세한) 와 모델 진짜 아무나 하는 거 아니네요

-말머리 지켜요

-이제 와서 다시 보는 패션쇼 한소라 워킹.gif

글이 주르륵 올라오는 가운데, 걸스온탑이 나왔다.

-걸탑 나왔다

-오와 주하나ㄷㄷ

-말머리 좀..

-주세한) 주하나가 걘가요? 그 열애설?

-오늘 미션 꿀잼각이네요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걸그룹인 만큼 걸스온탑이 나오자 글이 빠르게 올라왔다.

하지만 비주얼에 대한 감탄도 잠시, 기대 가득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주세한) 예쁜데 재미는 없네

-그냥 얼굴 보는 걸로 만족중..

-예능 오랜만이라고 하지 않았나..? 좀 간절하고 그러는 게 없어 보이네요

-주세한) 뭔ㅋㅋㅋ얘네 4년차에요

-말머리..

-구 피디 요새 감 떨어졌네

물론, 뒤이어 나온 헤이션이 상황을 확 반전시켰다.

EDM 음악과 함께 레게 머리를 한 래퍼가 길거리에서 봉춤을 추는 모습이 큰 웃음을 자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멤버 역시 몸을 아끼지 않고 그 춤의 행렬에 합류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저게 뭐야

-셋다 도른자네요 진짜ㅋㅋ

-주세한) 말머리 좀 지킵시다

-방심하다 터짐ㅋㅋㅋㅋ

-오늘 mvp는 솔직히 헤이션 줘야 합니다..ㅋㅋㅋ

한편, 웃음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의문을 품는 글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오늘 희한하게 되게 짧은 느낌이네요?

-뭔가 후딱후딱 끝나는 느낌,, 엔딩에 뭐 있나?

-소개영상 더 남은듯

-남은 애들은 뭔 듣보 신인애들 아닌가

이런저런 추측이 나왔지만 그 누구도 뉴블랙을 소개하는 데 그 시간을 다 할애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뉴블랙이 나오자 불만이 터져 나왔다.

-뭔놈의 듣보 소개하는데 3분.. 에라이

-이정도면 구재영이 돈 먹었다고 해도 무방한데

-얘네 소속사 어딘가요??

-이 노잼으로 3분이나ㅋㅋㅋㅋㅋ

-걸스온탑 방금 노잼이라고 욕먹은 거 억울할듯

누가 봐도 속도의 차이가 있었다.

다른 게스트들 분량을 빠르게 치고 나갔다면, 뉴블랙의 방송분은 한 템포를 쉬며 차근차근 빌드업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특별 대우였다.

일부는 4대 기획사 소속도 아닌 중소 애들이 주세한에 이토록 많이 나오나며 욕설 담긴 글을 올릴 만큼.

다행히도 그런 적개심 어린 분위기는 미션 내용이 공개되면서 쏙 들어갔다.

-주세한) 와.. 난이도 보소

-저걸 하라고??? 거의 풀코트슛인데

-풀코트는 오바ㅋㅋㅋ 딱 봐도 강당이 작아보이는데요

-반야심경 들으면서..??

-뭔ㅋㅋ 저거 성공시키면 제가 치킨 쏩니다

-주세한) 저거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니에요. 한창 농구 동아리할 때 저도 해봤는 걸요;;

성공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누군가는 가능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선수는 가능한데 저렇게 호리호리한 사람들밖에 없는 멤버들로는 무리라고 하고, 극히 일부는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점치고.

그리고 이쯤 되니 주세한을 여러 해 보아온 시청자들도 눈치를 챘다.

-어째 분량에 힘 준거 보니까 성공하나 본데요?

-이거를??

-저거 성공하면 진짜 대박..ㅋㅋㅋㅋ

-주세한) 구재영이 가끔 이상한데 꽂힐 때 빼고는 늘 허튼데 분량 안 씀

묘한 기대감 섞인 분위기가 형성된 가운데 뉴블랙 멤버들이 한 명씩 도전하기 시작했다.

킥을 하는 여희연부터 시작해서 뉴블랙 멤버들까지.

-와..ㅋㅋㅋㅋ 거의 택배 크로스

-축구선수 클라스 어디 안 가네요

-근데 뉴블랙인가 쟤네 연습 겁나 하나보네요ㅋㅋㅋ 컨셉이 아니라 진짜로 춤이 나오네

-다 실패하네;;

-마지막 하나 남은 듯

이윽고 마지막 멤버가 올라왔다.

긴장 가득한 BGM이 흐르면서 뉴블랙의 우주가 공을 들었다.

그 차분한 표정을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잡았다.

이내 능숙한 폼으로 공을 퉁퉁 튕기던 우주가 공을 착 손에 감고는 허공을 향해 스냅을 퉁겼다.

BGM의 드럼소리가 심장소리처럼 긴장감을 자극할 때.

우주가 한 슛은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여희연처럼 킥을 차는 것도 아니고, 한손 슛이나 양손 슛도 아니었다.

야구공을 던지는 사람처럼 오른팔을 멀찍이 뒤로 쭉 뻗더니 힘을 실어 던졌다.

곧바로 풀샷이 잡혔다.

공이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는 동안 게시판도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주세한의 남매와 뉴블랙 멤버들, 구경 중인 스탭들의 표정이 슬로우 모션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이 뭔가 믿기 힘든 것을 본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그 반응은 못 넣은 것에 대한 아쉬움인지, 성공에 대한 놀라움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시 나오는 풀샷.

공이 근사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곧바로 골대에 안착했다.

링 위에서 통통 튀다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마치 덩크슛을 성공하듯 시원하게 들어갔다.

착-

네트에 시원하게 공이 감기는 소리가 오디오로 잡혔다.

현장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탄성과 함께 화면에는 자막으로 ‘!!!’가 굵직하게 떠올랐다.

현장의 팀원들이 우주에게 곧바로 달려갔다.

-와ㅋㅋㅋㅋㅋㅋ

-저게 들어가네요

-그와중에 여희연 진실의 잇몸웃음ㅋㅋㅋ

-아까 치킨 쏜다는분 어디 갔나요?? 글삭했나

-되는거였네 저게???

분량에 대한 불만은 어느새 쏙 들어간 지 오래였다.

이윽고 TV 화면에 황금열쇠를 거머쥔 우주가 멤버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마무리 멘트를 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너무 긴장했는지 이마에 묻은 식은땀을 훔치는 모습에 TV 속 사람들이 웃는다.

녹화가 끝나고 남매가 ‘야, 너 땀 진짜 많이 났다’ 하면서 우주에게 다가가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저 잘하고 싶어서..’라는 말이 마이크에 잡혔다.

촬영이 끝났다고 생각하는지 바싹 마른 입술을 축이는 우주의 모습. 신인답게 열심히 하려고 했다는 그 모습이 훈훈하게 편집되어 나왔다.

이어서 다음 회차에 대한 예고가 흘러나왔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그 모습이 잔상처럼 남았다.

집에서 TV로 본방을 달리는 사람들, 지하철과 버스에서 DMB로 보고 있는 사람들, 기차역 대합실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호기심에 스마트폰에 뉴블랙이란 이름을 검색했다.

평균 시청률 23프로를 자랑하는 1위 예능답게 포털 검색어의 순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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