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7화
인터뷰 장소는 가로수길에 위치한 북유럽 풍의 카페였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한적한 내부.
나와 석환 형은 음료를 마시며 맞은편에 앉은 세 남녀를 바라보았다.
PBS 5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의 제작진.
…이라는 명함을 건네주신 분들이 우리가 사준 디저트와 커피를 흡입하는 중이었다.
다들 다크서클을 늘어뜨린 채 곡괭이를 든 광부처럼 숟가락으로 초콜릿 케이크를 캐고 있었는데, 마치 살기 위해 먹는 사람들 같았다.
보다 못한 석환 형이 말했다.
“천천히 드시죠. 아직 인터뷰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아, 예. 감사합니다.”
조연출이 휴지로 입을 닦았다.
“촬영 준비 때문에 밤을 샜는데 아직 아무것도 못 먹어서요. 이게 첫 끼니다 보니… 좀 추하죠?”
“너무 배고팠어요, 진짜.”
두 작가님도 울상으로 말했다.
석환 형이 하나 더 사오겠다며 내려간 동안 나는 제작진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여러 사실을 알게 되었다.
50주년 다큐멘터리라는 기념적인 특집 때문에 윗선에서 은근한 압박이 들어온다는 점.
그런 까닭에 화제성 있는 인물인 내가 비중 있게 다뤄질 거라는 점.
이래저래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방송국 스탭한테 존댓말을 들어 보는 건 데뷔하고 처음이었다.
정우정 작가님이 말했다.
“일단 카페에서 인터뷰부터 찍을 거예요. 이게 메인이 될 텐데, 주어진 질문에 편하게 대답해 주면 돼요. 괜히 카메라를 의식… 아, 이건 설명을 안 해도 되겠구나.”
“네, 카메라 의식 안 하는 건 자신 있어요.”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작가님들이 뭐가 웃긴지 막 웃으셨다.
“그 이후에는 회사로 가서 연습 장면을 딸 텐데, 이 부분은 저희 피디님과 얘기가 됐죠?”
“네, 지금 멤버들이 대기하는 중입니다.”
석환 형이 대답했다.
그 말대로 동생들이 회사에서 내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잘하고 오라고 배웅까지 나온 애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었다.
장비가 세팅되는 동안 전원을 끄기 위해 폰을 들었다.
비주 [형. 잘하고 와요!]
비주 [^ㅇ^]
중현 [화이팅]
중현 [화]
지호 [이]
중현 [팅]
비주 [팅!]
중현 [찌찌뽕 김비주]
지호 [비주 형 당첨됐네욤]
비주 [나 뭐 해야 돼?]
리혁 [뭐 하는 거 아니에요 형.]
리혁 [아니. 다들 바로 옆에 있으면서 왜 톡으로 하는 건데요?]
지호 [ㅇㅇ 이래야 우주형이 소외되는 느낌이 안 드는 거예요~~]
지호 [우리 늙은이 애정해여 러뷰]
복숭아가 지팡이를 짚고 골골대는 이모티콘이 올라왔다.
이것이 진짜.
리혁 [하여간 이 그룹엔 정상이 없어]
지호 [는 너]
리혁 [이 새ㄱ]
비주 [리혁아 고운 말]
중현 [(사진)]
사진이란 알림에 들어가 보니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동생들을 배경으로 중현이가 브이를 하고 있었다.
비주는 고양이들 싸움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집사처럼 나왔다.
지호 [어? 1 지워졌다]
지호 [보고 잇는 건가요..!]
요란하게 올라오는 톡을 보며 웃다가 짧게 답문을 보냈다.
나 [고마워]
나 [잘하고 올게]
리혁 [이따 볼 거면서 이별하는 척하지 마요]
나 [ㅗ]
리혁 [ㅗㅗㅗ]
리혁 [이건 내가 이긴 거예요]
지호 [지금 폰 들고 부들부들 하고 있어여]
나 [ㅋㅋㅋ]
거기까지 보내고 전원을 껐다.
그래도 동생들 덕분에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조연출 분이 내게 말했다.
“이쪽 한번 바라봐 주시고.”
“네.”
“오케이, 완벽하네. 준비됐어요?”
“네, 됐습니다.”
곧바로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 * *
수능이 끝나고 KTN과 인터뷰했을 때가 떠오른다.
참 많이 긴장했었지.
물론 그때와는 많은 게 달랐다.
인터뷰어는 기자에서 다큐 제작진으로, 옷차림은 패딩에서 반팔 티셔츠로, 직업은 수험생에서 가수로.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나였다.
그때 당시에는 기자와 대화한다는 사실에 얼어붙어 말을 제대로 못했는데 지금은 훨씬 나아져 있었다.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는 말투.
카메라 앞에 자주 서다 보니 익숙해진 탓이었다.
이제는 어떤 말을 하면 되고 안 되는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 방송에서 편집이 안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질문을 드리기 전에 그때 당시 영상을 한번 다시 보여 드려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작가님이 스마트폰에서 동영상 어플을 켰다.
작년 11월 사고를 담은 CCTV 영상이 재생됐다.
멀찍이 자동차가 언덕을 질주하고, 그 아래서 한 노인이 리어카를 세워 두고 있었다.
평온하게 전화를 하고 있는 그 모습에 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하다고 할까.
그때, 학교 정문을 향해 다가가던 청년이 지체 없이 몸을 돌리더니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노인을 밀치며 구해 주는 것으로 영상은 끝을 맺었다.
“이때 당시에 뛰어들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음…….”
석환 형과 예상 질의응답을 연습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했는데, 결국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결론이 났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부끄럽긴 한데요. 어떤 생각을 하고 뛰어든 게 아니었어요. 그럴 틈도 없었거든요. 당장 자동차는 달려오고 할아버지는 모르시고….”
나도 모르게 움직였지.
“뭘 하자는 생각보다는 몸이 알아서 움직인 것 같아요.”
“알아서요?”
“네, 구해야 한다. 그런 생각보다는 당장 누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까 어떤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무의식적이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 계단을 헛디딜 때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잡아 주는 것처럼.”
테이블 위에서 놀던 아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할 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기를 받으려 한다.
내 행동도 그와 같았다.
저 사람을 구해 줘야지 하는 이타심보다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그래서 의인이란 말도 가끔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다른 의인들은 숭고한 마음으로 움직이고 그런 걸 텐데, 난 그냥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째 반응이 이상했다.
제작진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면접을 하는데 지원자에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심사위원 같은 표정들이다.
왠지 ‘저 그럼 합격인 건가요?’라고 물어봐야 할 듯한 분위기였다.
작가님이 다시 질문을 해 왔다.
“그렇다면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도 똑같이 하실 건가요?”
“음… 모르겠어요.”
객쩍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해야 한다고 머릿속으론 생각하지만, 다시 할 거라고 장담하진 못할 것 같아요. 워낙 변수도 많고. 만약에 저한테 결정을 내릴 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용기를 못 냈을지도 몰라요.”
5분 동안 시간을 주고 너 저기 뛰어들래, 말래 하면서 선택의 시간을 주었다면 나도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모르겠다.
내 목숨을 걸면서 과연 뛴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을지.
“하지만, 그때처럼 단 1초를 남겨 둔 채 행동해야 한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자 이번에 또 한 번 제작진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체 뭐지.
도통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 * *
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나 잘한 건가.”
“잘했어. 인터뷰 태도도 괜찮았고, 어디 흠 잡을 데도 없었는걸.”
“아니, 내가 생각해도 잘한 것 같긴 한데.”
“그럼 왜 물어봐, 인마.”
운전대를 잡은 석환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잘했는데 뭐가 문제야?”
“내가 뭐라고 할 때마다 작가님이랑 피디님이 막 눈빛을 교환하더라고. 그래서 뭘 잘못 말한 건가 싶기도 하고.”
“아… 그거 나가면서 얘기 들었는데. ‘제대로 찾았다’고 자기들끼리 그러더라고. 어떤 포인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멘트가 그 사람들이 딱 원하던 거였나 봐.”
“그럼 다행이네.”
“뭐 굳이 디테일적인 부분을 말하자면…….”
시선 처리라든가 인터뷰 스킬 관련해서 몇 가지 사소한 지적을 매니저가 해 주었다.
그걸 머릿속에 새겨 넣으며 내비에 찍힌 시간을 바라보았다.
도착 때까지 5분.
딱 적절한 시간이었다.
요 며칠 동안 해 주고 싶었던 말을 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고 할까.
“맞다, 형. 나 할 얘기 있었는데.”
“어떤 거?”
“그…….”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술을 뗐다.
“형한테 고맙다고 말해 주려고.”
“갑자기?”
“응.”
“훅 들어오네. 깜빡이라도 켜고 들어와라, 인마.”
“형, 조심해야 돼. 중현이가 들었으면 정말 운전석에 넘어와서 깜빡이 켰을 수도 있어.”
말도 안 되는 농담이었지만 둘 다 웃었다.
한참을 웃던 석환 형이 나를 흘깃거리며 물었다.
“그래서… 갑자기 뭐가 고맙다는 건데?”
“아니, 주세한 스케줄. 형이 잡아다 준 거잖아.”
내가 우물쭈물 말을 했다.
“중현이도 큰일을 했지만 사실 형이 한 달 동안 피디님 쫓아다니면서 영업을 한 거잖아. 지금 이렇게 반응이 오는 것도 형 덕분에 가능했던 거고.”
“그렇게 생각해 주면 나야 고맙지.”
“뭐, 그것도 있는데.”
아까 인터뷰 때문이었다.
“수능 관련한 일로 인터뷰 하니까, 작년에 형이 나 불러서 레몬으로 와 달라고 한 게 떠오르더라. 그거 생각하니까 형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서 뉴블랙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뭐, 이래저래…….”
괜한 민망함에 뺨을 긁적였다.
“고맙다는 얘기야.”
“……으음.”
몹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역시 편지로 때울 걸 그랬나.
하지만 그렇다고 ‘형, 나야.. 반갑긔..’하는 부끄러운 편지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둘만 있는 이 시간을 이용해 보자 한 거였는데.
어째 어색하다.
내 진심은 잘 전달된 것 같기는 한데 분위기가 어색했다.
석환 형도 안경을 고쳐 쓰고는 손 둘 데를 몰라 운전대를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나는 어딘가에 있을 먼 산을 찾아 창밖에 황망히 시선을 두었다.
우리를 구해 준 건 내비게이션의 알림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석환 형이 애들 잘 준비시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참, 너희 도어락 있잖아.”
“어, 그게 왜?”
“아무래도 고장이 좀 난 거 같아서 오늘 중으로 교체하려고 하거든.”
“고장 났어?”
“수리 맡겨 보려니까 기사가 이거 못 쓰겠다고 하더라고.”
“…그래?”
“어, 그러면서 도어락을 좀 험하게 쓴 것 같다고 하는데. 너희 혹시 그거 계속 위아래로 열고 닫고 그랬어?”
“아니, 우리 별로 쓸 일도 없잖아.”
별 이상한 일이 다 있네.
그런 생각을 하며 차에서 내렸다.
* * *
지하 연습실로 내려가니 동생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분명 아까 톡할 때만 해도 신이 났던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어째 심각했다.
궁금해서 고개를 쏙 들이밀었다.
“뭐해?”
미어캣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형, 잘했어여?”
막내가 찰싹 달라붙었다.
“제 얘기도 좀 했구?”
“거기서 네 얘기를 왜 해.”
“제일 아끼는 동생이라서…?”
“틀렸어. 내가 우리 멤버 중에 제일 아끼는 사람은…….”
네 고개가 동시에 돌아간다.
“……없어. 너희 중에 없어.”
그 말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사실 드립 치려고 한 말인데 표정들이 진지해서 타이밍을 놓쳤다.
“너희 마실 거 사 왔어.”
박스에 든 커피를 받아가며 인터뷰 잘했냐고 묻는 동생들에게 대강 느낀 대로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곤 노트북을 가리키며 물었다.
“뭐하고 있었어?”
“아, 포털 메인에 뜬 기사 보고 있었어요.”
비주가 말했다.
“우리가 나온 기사가 있는데, 거기 댓글에 좋아요랑 싫어요 눌러 주고 있었어요.”
중현이가 보라는 듯 노트북 화면을 돌려주었다.
거기에 ‘뉴블랙 최고!!’ 같은 댓글에는 좋아요가 ‘어이구 초면이시네. 이건 또 뭔 듣보..ㅋㅋ’에는 싫어요가 찍어져 있었다.
나도 싫어요를 누르고 싶었는데 한 번 더 누르면 취소되는 거라고 들어서, 두 번 클릭했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심각했던 거야?”
“뭐, 별건 아니고.”
리혁이가 말했다.
“댓글 하나가 악플인지 선플인지 의견이 갈렸어요.”
“뭔데?”
“읽어 줄 테니까 들어 봐요. ‘ㅋ.. 얼굴빨로 유명해지네’”
“으음, 확실히 미묘하네. 칭찬인 듯하면서도 묘하게 욕 같은데, 막상 기분은 또 나쁘지 않고.”
“그죠?”
비주가 말했다.
“그래서 애매했어요.”
“맞아여. 마치 제가 리혁이 형한테 ‘형은 성격이 나쁜데 얼굴은 참 예뻐여’하고 디스했는데 좋아하는 그런 느낌.”
“이건 왜 가만히 있는 나한테 시비야? 내가 성격이 어디가 나쁘다고.”
“…….”
“뭐야. 대답 좀 해 줘요.”
한창 토론이 오가는 가운데 비주가 제안을 했다.
“찬성하는 사람 숫자가 과반수면 찬성 누르는 거 어떨까요?”
“비주야, 그거 북한에서 하는 투표인데.”
“아앗….”
“역시 공산당이라니까요, 저 형. 맨날 다 같이 하는 거 좋아하고.”
리혁이의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결국 선플이다, 악플이다로 3대 2로 갈렸는데, 각자 로그인을 해서 추천 3과 비추 2를 만드는 걸로 결론을 냈다.
“자, 그럼 이제 일 얘기로 들어가자.”
손뼉을 치며 동생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이제 다큐 제작팀이 오셔서 찍고 갈 건데. 촬영 장비 문제 때문에 한 팀 더 추가되어서 오시기로 했어.”
매니저가 해 준 말을 전달하는 동안, 석환 형이 다큐멘터리 제작진을 데리고 내려왔다.
우리 둘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가 서로 뻘쭘해서 눈을 피했다.
젠장. 괜히 오글거리는 말을 해 가지고.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카페에서도 그러시더니 작가님들은 우리 애들을 보고 동공이 50평 아파트처럼 확장되셨다.
놀라신 것 같다.
정우정 작가님이 더듬더듬 말했다.
“…다들 실물이 훨씬 좋네요.”
감사해여, 하며 떠드는 애들 모습에 웃음이 감돌았다.
어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여기 와서 우리 애들한테 힐링을 받으시는 느낌이다.
헛웃음을 짓던 조연출 분이 우리에게 설명했다.
“몇 가지 컷 따고 갈 건데, 어려울 거 없고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 줘요.”
자연스럽게.
그 말을 명심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평소대로 하면 되겠네.
* * *
PBS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연습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지금 찍으려는 것은 그때 당시 의인이었던 이가 현재 어떤 삶을 사는지 스쳐가듯이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다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기 시작하는 동안, 조연출은 근처에서 몸을 푸는 왕지호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보통 활동하면 연습을 얼마나 해?”
“음, 그때그때 달라여.”
왕지호가 소림사 무술처럼 다리를 180도로 쭉 올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제작진이 잠시 식겁했다.
자신들은 저기서 90도만 해도 비명을 지를 것 같은데 상대는 몹시 평온한 얼굴이었다.
“안 힘들어?”
“별루여. 맨날 이만큼 해서. 아, 저기 비주 형 보이세여?”
멀찍이 단아한 미소년처럼 생긴 멤버를 가리켰다.
김비주는 거의 연체동물처럼 몸을 풀고 있었다.
“비주 형은 다리 찢은 상태로도 잘 수 있대여.”
“…아, 그렇구나.”
“참, 아까 연습 시간 여쭤보셨는데. 음방 뛰면 시간이 없어서 여덟 시에서 열 시까지 하구여. 활동 준비할 때는 일곱 시부터 열 시까지 해여.”
“오, 생각보다는 적구나.”
“글쎄여. 저는 충분한 거 같은데. 비주 형이랑 우주 형은 맨날 늘려야 된다고 막 그래여.”
그러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둘이 잔소리 짱 많아여’하며 소곤거리는 통에 제작진은 웃음을 참아야 했다.
곧바로 촬영이 시작됐다.
청량한 멜로디가 그들의 귀를 적셨다. 제목이 무슨 꽃놀이였는데 듣기 좋았다.
하지만 연습이 시작하자 그들은 당황했다.
노래에 맞춰 칼같이 춤을 추는데, 아까 와아아 하면서 웃던 애들이 지금은 눈에 독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연습을 굉장히 살벌하게 한다고 해야 하나.
촬영 의도는 ‘의인의 한가로운 일상~’이었는데 화면에 담기는 건 ‘뜨고 말 거야, 반드시 뜨고 말 거다!’하며 불타오르는 아이돌들이었다.
중간에 끊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은데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서 끼어들 타이밍을 못 잡고 있었다.
“원래 신인 애들은 연습을 이런 식으로 하나?”
“좀 무서운 거 같아요.”
“연습 시간이 적어서 그런가 봐요. 굵고 짧게 하려고.”
셋 다 아이돌에 관해서라면 문외한이었지만 보통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연습한다고 저런 동작들이 쉽게 나오나? 싶은 안무가 척 보기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노래가 끝나고 땀투성이가 된 뉴블랙 멤버들이 숨을 몰아쉴 때.
그들은 의아해서 막내에게 다시 물었다.
“저기, 아까 하루에 서너 시간 연습한다고 하지 않았니?”
“네? 제가여?”
“응. 일곱 시부터 열 시까지 한다고.”
“아. 그 준비 기간예여?”
왕지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아침 일곱 시 얘기한 건데.”
“…….”
제작진은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