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9)화 (9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99화

남자는 웹툰을 보고 있었다.

이른바 ‘마법학교 아이들.’

몇 년 전만 해도 한창 유행했던 웹툰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화요일만 되면 ‘어제 마학아 봤냐?’라는 게 인사일 정도로.

그만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웹툰이었지만 지금은 무리수 전개와 캐릭터 붕괴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었다.

한때 9.9가 아닌 편이 없었지만 지금은 평균 7.2라는 초라한 별점.

최신화 베댓도 작품과 상관없는 댓글들로 엉망진창이었다.

-작가 뒤질 때까지 연금으로 뽑아먹을듯 ㅅㄱ

-오늘 날씨 영하 3도래요.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여러분, 딸기를 씻을 때는 칫솔로 씻어야 한다는 거 아시나요?

남자는 그런 작품의 애독자였다.

고등학교 생활 내내 힘이 돼 주었던 웹툰이라 어떤 내용이 나오든 늘 별점 10점과 좋아요를 눌러주곤 했다.

하지만 이번 편은 그럴 수 없었다.

‘대체…….’

황망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마법학교 아이들 592화 [완결]

최종화의 별점은 1.0

보통 완결을 한다고 하면 그래도 미운 정이 있어서 별점을 후하게 주기 마련인데 1점이라니.

문제는 그럴 만하다는 거였다.

최종화에서 주인공과 주인공 일행이 악의 무리와 맞서다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댓글창은 폭주했고, 각종 커뮤니티는 ‘오늘자 마학아 완결.jpg’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며 난리가 났다.

남자는 황망히 눈을 떴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아니, 왜…….

눈물이 글썽거렸다.

스크롤을 내리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몇 년 동안 사랑했던 등장인물들이 모조리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심지어 몇몇 조연은 마지막 말조차 남기지 못한 채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물론, 그것이 연재 도중이었다면 얼마든 수습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단어는 ‘완결’이었다.

완전히 끝났다는 뜻.

남들이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남자는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의 모든 게 회색빛이었다.

그냥 끝내려면 끝내지. 꼭 이런 식으로 끝내야만 했던 걸까.

은호, 은성이, 지은이, 박 선생님 등…….

그런 캐릭터를 이런 식으로 보내야 하는 건가.

고작 웹툰 하나에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도 볼썽사납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힘겨운 시절을 함께 해준 웹툰이었다.

외롭고 슬플 때마다 웹툰 속 인물들의 우정과 사랑을 보며 힘을 얻었었는데.

누군가 그것을 송두리째 앗아간 느낌이었다.

‘차라리 내가 작가라면…….’

내가 작가라면 이렇게 끝내진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의 전등이 먼 곳에서부터 하나씩 암전이 되더니, 그가 있던 칸도 순식간에 암전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   *   *

다시 눈을 뜬 남자는 당황했다.

그는 어느 학교의 교실에 앉아 있었다.

학생들이 떠들고 있는 쉬는 시간.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당황했다.

핸드폰 액정에 비친 얼굴이 지금보다 더 어리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를 둘러싼 배경 때문이었다.

익숙한 교실 풍경.

어딘가 많이 봤던 감색 교복과 빨간 넥타이.

‘설마…….’

이곳의 정체를 직감할 무렵, 남자의 앞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키가 크고 잘생긴 고등학생이었다.

상대가 웃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한국판으로 하이틴 무비를 만든다면 바로 이런 비주얼이 아닐까 싶을 만큼 출중한 외모의 주인공.

문자 그대로 주인공이었다.

웹툰 마법학교 아이들의 주인공, 라은호였다.

“안녕, 네가 전학생이지?”

반장이 옆자리에 걸터앉으며 씩 웃었다.

“담임 쌤이 너 좀 잘 챙겨주라고 하시더라. 비마법사 학교에서 있다가 전학을 와서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어? 어.”

“어려운 거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해. 내가 공부는 조금 못해도, 사람 챙기는 거 하난 자신 있거든.”

얼떨떨하게 인사를 나눌 때 은호의 친구로 보이는 이들이 와서 상대를 툭 쳤다.

남자답게 생긴 학생이 ‘농구 콜?’ 하는 말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 동안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느닷없이 ‘전학생’이 되어버린 남자는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웹툰 속 세계.

꿈을 꾸는 것인지, 환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학생은 일단 나갈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떠오른 게 하나 있었다.

아직 주인공의 다리가 말짱했다.

혹시 하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하니 2012년 4월.

웹툰을 몇 번이나 정주행한 만큼 알고 있었다.

4월이라면 그 사고가 있기 전이었다.

작가의 첫 무리수인 은호의 교통사고.

어린 소녀로 변장한 악당을 구하려다가 차에 치어 절름발이가 되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작중 배경으로 8개월 후인 2012년 12월에는 모두 사망하고.

복잡한 상념에 젖어 있을 때, 핸드폰에 의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션 : 오늘 사고로부터 주인공 ‘라은호’를 구하시오!]

[보상 : 귀환]

그것이 바로 그가 돌아갈 방법이었다.

이 현상에 대한 해법을 알게 된 전학생은 그 다음부터 곧바로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했다.

최대한 머리를 써서 상대를 학교에 남도록 붙잡아 두었지만, 그 계획은 곧 상대가 전해줄 물건이 있다며 쫓아와서 무산이 됐다.

어떻게든 다른 길로 간다거나 상황을 피했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원작과는 다른 도로에서 어린 소녀가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달라진 내용과 별개로 전개는 그대로였다.

아이가 우는데 차는 달려오고, 그래서 주인공이 뛰어들었다가 악당의 마법에 걸려 몸이 뻣뻣하게 굳는.

지금도 이야기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가 말리기도 전에 주인공은 망설임 없이 도로로 달려갔다가, 이내 악당에게 당하고는 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달려오는 자동차.

그리고 전학생은 오늘 수업시간에 배웠던 ‘옷을 가볍게 하는 마법’을 써서 경이로운 속도로 달려 나간다.

그러면서 주인공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라은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참이나 감사인사를 전하며 훈훈한 분위기가 될 때, 상대가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웠다.

“이거 네 핸드폰 맞지?”

“응, 맞아.”

하필이면 그때.

핸드폰이 진동하며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알림!]

[오늘 사고로부터 ‘라은호’를 구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 기묘한 문자에 상대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곧이어 이런저런 추궁이 이어지고, 라은호가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너 정체가 뭐야?”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   *   *

한 명이 얼떨떨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고, 다른 한 명이 숨을 몰아쉬는 가운데. 주저앉은 이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너, 정체가 뭐야?]

마침내 ‘전학생’이 입술을 떼고 이야기하려는 그 장면.

바로 그때.

화면이 전환됐다.

새하얀 화면에 ‘EverDream’이라는 로고가 나타났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 발랄한 내레이션이 울렸다.

[교복은 편안함이다! 에버드림~]

그 순간 광고를 시청하는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

에버드림의 SNS CF ‘마법학교 편.’

2014년 TV CF 어워즈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광고이자, 이른바 인터넷에서 ‘개빡치는 광고’로 알려지게 된 광고였다.

*   *   *

[지금 인터넷에서 욕 바가지로 먹고 있는 영상.metube]

에버드림이라는 교복 광고 영상인데.. 진짜 기획한 새끼 죽이고 싶다

일단 한 번씩 보고 얘기하셈

-아 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댓글 달려고 보니까 나랑 똑같은 반응이네

-이게 뭐냐고 진짜 아오 ㅅㅂㅅㄷㅂ3ㅎㅅㅂ

-그래서 뒷내용이 뭔데..??

-ㅋㅋㅋ와씨 기획 누구냐 진짜

-ㅋㅋㅋㅋㅋㅋ진짜 한 앞으로 몇년 동안은 저거 못 잊을 거같다. 에버드림ㅋㅋㅋ 진짜 나 어이가 없어서..

-짤방 하나 또 나온 듯

-제발.. 뒷내용 좀 주세요..

-ㅋㅋㅋ존나 잘 만들었네. 감독 누구임?

미약하게 시작한 SNS 광고는 불과 3일이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서 꽤 큰 반응을 얻었다.

입소문 덕분이었다.

처음 호기심에 봤던 사람들이 ‘나만 당할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퍼뜨리면서 광고는 순식간에 알려졌다.

덕분에 한때 모 시트콤의 카페 로고처럼 에버드림이 짤방처럼 쓰이기도 했다.

광고주 측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물론 단순히 광고의 스토리 때문은 아니었다.

종합적인 결과물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감독의 역량이 컸다.

독립영화 쪽에서 활동하다 온 유건 감독은 영상을 거의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뽑아내 버렸다.

그것이 시선을 끌게 된 이유였다.

어느 장면이든 캡처를 한 다음 드라마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없었던 신선한 형식까지.

스토리가 담긴 병맛 광고 등이 서서히 나오고 있긴 했지만, 아직까지 드라마타이즈 컨셉의 광고는 소비자에게 낯선 형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스토리를 뒷받침한 뉴블랙의 연기였다.

그 때문에 광고 영상이 퍼지면서 뉴블랙에서 열연을 펼친 두 멤버도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와ㅋㅋㅋㅋ 개잘생겼다 진짜 쟤 누구야? 나 강제 추억보정 당함

-222

-ㅇㅇ 존재하지 않는 첫사랑 느낌임

-ㅋㅋ얘네 걔네잖아 주세한 나온 애들

-주세한??

-저기 반장으로 나온 애가 슛 성공시킨 거 있음

-광고 봤는데 진짜 간만에 개안했다..ㅋㅋ

-근데 연기 좀 배운 애들인가..?? 나 처음에 보고 이름 모르는 신인 배우인 줄 알았어 특히 전학생 연기한애

-ㅇㅇㅇ 나도

그리고 이 모든 반응을 살피며 웃는 이가 있었으니.

‘반응이 좋아.’

KG 인터내셔널 의류사업부 3팀 사무실에서 우희선 팀장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부 시사를 진행할 때부터 어느 정도 직감을 하긴 했다.

퀄리티는 좋지만 발연기였던 블링크의 ‘소녀탐정단 편’과 달리 뉴블랙의 ‘마법학교 편’은 기대를 넘은 연기와 그에 자극 받은 감독의 연출이 합쳐지면서 시너지를 자랑했다.

단편 영화제에 출품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리고 광고로서도 목표했던 바를 충실히 달성했다.

브랜드 인지도.

전혀 상관도 없는 남극 배경 장면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도너츠 광고처럼 이번 광고는 사람들에게 에버드림이란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처음 기획했을 때 의도했던 교복의 신축성 같은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보다 더욱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

무엇보다 교복을 직접 입는 10대들로부터 반응이 좋았다.

SNS 상으로 점점 더 퍼져가고 있는 광고 영상을 보며 우 팀장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이 좋았다.

광고 모델을 선정했던 그녀의 결정에 대한 윗선의 반응도 그렇고, 인사과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도 그렇고.

어디선가 순풍이 불고 있었다.

‘그쪽도 시끌시끌하겠네.’

광고모델인 뉴블랙을 떠올리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 그쪽도 상당히 들떠있을 터였다.

아이돌에 대해 관심이 많은 10대에게 뉴블랙이란 이름이 알려지고 있었으니까.

*   *   *

여름방학의 끝이 점점 다가오는 가운데 홍대 앞은 놀러 나온 10대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2층.

감자튀김을 쏟아 부은 한 무리의 중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모여 있었다.

한 여중생이 말했다.

“뭐야, 이거 페이지에 또 올라왔네.”

“뭐?”

“요새 계속 올라온다니까, 이거. 며칠 전에 나온 거 있잖아. 교복 광고.”

“그게 뭔데?”

여중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몰라?”

“모르는데, 페북 페이지에 그런 게 올라와 있어?”

“아! 나 그거 봤는데.”

남중생이 아는 척을 하자 그녀가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이내 상대가 씩 웃었다.

두 친구는 한 마음이 되어 다른 친구들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곧바로 그들이 처음 봤을 때처럼 열 받은 얼굴로 ‘아, 뭐야. 뒷내용 뭔데…?’ 같은 반응이 나왔다.

“아씨, 뭐야.”

“야, 근데 얘네 누구야? 존나 잘생겼다, 진짜.”

“걔네야. 주세한에 나와서 농구한 애들.”

“아, 걔야? 와. 못 알아봤네.”

이윽고 그녀의 친구들이 뉴블랙이란 신인 보이그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르는 척 이야기를 꺼냈던 여중생, 팬카페 닉네임 ‘파워w수플레’는 뒤에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얘네는 모르겠지.’

그녀의 집에 선우주가 친히 적은 ‘월드컵 드립은 잊어주세요..’ 멘트가 있는 앨범이 있다는 것을.

대화 중에 은근한 추임새를 던져가며 뉴블랙을 영업하던 파워w수플레는 조용히 웃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일반인 코스프레였다.

*   *   *

모 다큐처럼 ‘뉴블랙 3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

3일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할까.

사실 나는 주세한으로 반응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 광고에 대해선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첫 광고라서 의미가 깊지만 어디까지나 SNS 상으로 유통되는 광고라서 그 파급력에 대해선 기대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광고를 처음 본 순간 그 퀄리티에 입을 떡하니 벌렸다.

어찌나 연출을 잘해놓았던지 우리도 정신없이 봤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우리 CF를 연출한 유건 감독은 업계에서 화면 때깔 잘 뽑아내기로 유명한 분이라나.

그 덕에 첫날 89위라는 굉장한 성적으로 시작한 ‘밤바다’는 3일 만에 59위까지 쭉 올라와 있었다.

여전히 20위권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 Something과 50위 초반에 머무른 불꽃놀이보다는 아래였지만, 아직 출시한 지 3일 밖에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결과였다.

3일 동안 얼마나 행복하던지.

슬프거나 울적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손을 붙잡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나눠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 기분,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다.

음원차트 100위 안에 있는 세 곡이 모두 내가 만들었거나 만드는데 참여한 노래라는 데서 느끼는 감정.

평생 뿌듯해할 것 같다면 과장이려나.

그리고, 그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이러다가 우리 1위까지 하는 거 아닐까요.”

중현이의 말에 우리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당사자는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젤리를 우물거렸다.

“진담인데. 진짜 이러다가 다큐멘터리도 나오고 추석특집도 나오고 하면, 더 올라갈지도 몰라요.”

“형, 지금도 이거 얼마나 대단한 건데요. 기사 나오는 거 봤어요?”

“맞아여. 울 아빠가 어젯밤에 전화해서 자기네 치킨 광고 모델 생각 없냐고 은근히 물어봤다니까여.”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액수를 세게 불렀더니 끊었어여.”

그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져서 우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HBS MTV 방송국의 회의실이었다.

두 번째 사전 미팅을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되게 안 오시네요.”

비주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미팅 시작한다고 한 다음에 지금 30분이나 지난 것 같은데.”

“그러게.”

멤버들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진실을 알고 있는 나는 혼자서 슬그머니 웃을 뿐이었다.

동생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곳곳에 숨겨진 카메라가 우리 애들을 찍고 있는 중이었다. 피디님과 작가님은 다른 곳에서 보고 있을 거고.

-그래서 평소 때 동생들이랑 이거 해보고 싶다, 하는 게 있으면 편하게 적어 봐. 우리가 검토해 보게.

지난 미팅에서 그런 질문을 들었을 때, 내가 제안했던 기획이었다.

교복 광고 때 당했던 깜짝 카메라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다가올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곧이어 TV가 켜졌다.

“으아아, 뭐야!”

심령 스팟을 발견한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는 동생들이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얼떨떨한 표정이다가 이내 눈을 왕방울만하게 떴다.

“…뭐야, 저거.”

“저게 왜 여기서 나와?”

화면에 나오고 있는 영상 때문이었다.

제작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인은 평소에 어떤 사람인가요?

화면 속에서는 회사에서 찍었던 그때 그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들 ‘뭐야, 저게 왜 여기서…?’라는 반응이었다.

이내 눈치를 챈 비주와 리혁이가 내게 고개를 홱 돌렸다. 다른 멤버들도 그제야 진상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저거, 다큐 팀이 찍어간 게 아니었어요?”

“아니.”

놀라서 눈을 깜빡이는 동생들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거 리얼리티 팀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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