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3)화 (10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3화

오프닝을 앞두고 펼쳐진 자리 쟁탈전.

분명 작가진이 자리를 지정해 두었는데, 다들 은근슬쩍 마음에 드는 자리에 서 있었다.

카메라에 잘 나올 듯한 위치로.

누가 봐도 이상한 대형이었다.

구재영 피디가 눈살을 찌푸리는 동안, 또 다른 메인 피디 오태준이 확성기를 들었다.

-다시 서세요.

다들 우물쭈물했다.

-아까 공지한 대로 이동하세요! 당장!

불호령에 다들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예상하고 있던 장면이었다.

그랬기에 서지형 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때 고민했다.

어차피 제작진이 다시 서라고 할 텐데 굳이 나서서 연예계 선배랑 각을 세울 필요가 있나.

하지만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다른 문제도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태준 피디가 신인들을 타깃으로 잡았다.

-한여름 씨, 배영훈 씨! 자기 자리 몰라요?

머쓱한 표정을 짓는 이들에게 오 피디가 소리를 질렀다.

-내 자리에 누가 서 있으면 거기 내 자리다 말이라도 하든가! 제작진이 말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어요?

바로 저것 때문이었다.

이렇게 인원이 많아 통제가 안 되면 보통 초반에 분위기를 잡으려고 드는데, 군대에서 느낀 바 그 타깃이 되는 이들은 늘 제일 만만한 사람들이었다.

거칠게 말을 해도 뒤탈이 없을 만한 사람들.

쉽게 말해 신인들.

아까 서지형이 가라고 했을 때 ‘네, 저희 갈게요’하고 갔으면 우리도 저렇게 욕을 먹고 있었을걸.

다행히 그런 위기는 없었다.

나를 묘한 시선으로 보는 동생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한편, 화가 난 피디의 모습에 게스트들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가 하는 말의 요지를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통제 안 따르면 나중에 편집할 때 재미없을 거라고.

그런 긴장된 분위기가 이어질 때, 주세한의 최연장자이자 할아버지 포지션인 우재용 선생님이 입술을 뗐다.

“오 감독, 아침부터 왜 사람들을 잡고 그래.”

-선생님, 그게 통제가…….

“날씨도 좋고 사람들도 이렇게 모였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분위기가 살겠어? 손님들 얼굴을 봐. 추석 특집이 아니고 초상 특집이야. 줄초상.”

구수한 농담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또 다른 원로 배우이자 주세한의 할머니 포지션, 양옥분 선생님도 손사래를 쳤다.

“그래, 얘. 태준아, 촬영 분위기를 이렇게 잡으면 쓰니? 우리 다 같이 재밌게 찍자고 부른 건데.”

-아, 예…….

“아유, 다들 웃어요. 웃어. 이쁜 얼굴들을 찌푸리면 쓰나.”

두 연장자가 분위기를 풀어 주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감돌았다.

하지만 피디의 호통 때문인지 아까보다는 훨씬 더 정돈되고 통제를 잘 따르는 분위기였다.

이윽고 주세한의 막내 라인 희찬, 희연까지 도착하자 분위기는 다시 시끌시끌하게 변했다.

주세한의 맏형이자 아버지 포지션, 개그맨 오형석이 혀를 찼다.

“희연아. 희찬아! 좀 일찍일찍 다녀. 게스트들 불러 놓고 이게 무슨 망신이냐.”

“타이어가 펑크 날 줄은 몰랐죠.”

유유자적한 얼굴로 대답하는 여희찬.

오형석이 헛웃음을 지었다.

“어쩜 그런 타이밍에 펑크가 난대냐. 너희도 참 쓸데없는 순간에 예능신이 찾아오네.”

멤버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여씨 남매가 제자리를 찾았다.

근처에 서 있던 걸스온탑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둘은 자연스럽게 무시하며 우리 옆에 붙었다.

특히 여희연은 내 옆에 바짝.

……뭐지.

부담스럽다.

안전거리 안에 훅 들어오는 바람에 자세가 불편했다.

그런 나를 보며 여희연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안녕.”

“어… 안녕하세요.”

그런데 상대가 날 바라보는 눈길이 묘했다.

친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주변에 있는 게스트들이 ‘둘이 친한 사이인가?’하며 속삭일 정도로.

곧이어 여희찬이 그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네가 마음에 든대.”

“예?”

“지난번에 농구 미션 하고 좋아하더라. 간만에 몸 좀 쓰는 게스트가 나왔다고. 오늘도 오는 내내 같이 몸 쓰는 거 하면 재미있을 거라고 그랬어.”

“…….”

여희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속삭였다.

“오늘 나랑 잘해 보자.”

뒷덜미가 서늘했다.

잘해 보자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뭔가 했더니 그거였다.

힘 잘 쓰는 누렁이 소를 바라보는 농부의 표정이라고 할까.

갑자기 코뚜레에 꿰여 끌려가는 모습이 상상돼서 나도 모르게 코를 슥 만졌다.

동생들이 키득거렸다.

*   *   *

마침내 오프닝 촬영이 시작됐다.

지미집 카메라가 출연진을 담는 가운데 주세한 멤버들이 목청을 돋웠다.

“굴려굴려!”

게스트들이 호응했다.

“주사위!”

일동 박수와 함께 오프닝이 시작됐다.

개그맨 오형석이 진행 카드를 들고는 게스트들을 둘러보았다.

“와, 이게 몇 명이야? 사람 진짜 많네. 재영아, 오늘 추석 특집 게스트가 몇 분이라고 했지?”

구재영 피디가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그에 맞춰 주세한 멤버들이 과장된 표정으로 놀랐다.

“우와, 서른 명!”

“서른 명이요? 아이돌 특집 이후로 최대 인원 아냐?”

“그래도 그때보다는 덜 정신없네. 장난 아니었잖아. 백 명 모아서 추격전 하고.”

“선생님들은 그때 뭐 하셨죠?”

“우리는 상황실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있었지.”

멤버들끼리 방송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지루한 텐션이었다.

방송에 나오는 것처럼 매 순간마다 번뜩이는 재치라든가, 위트 넘치는 대사는 나오지 않았다.

대충 10분에 한 번꼴 정도.

그렇게 수다를 떠는 동안, 게스트들은 입가에 경련을 일으킬 만큼 웃으며 리액션을 했다.

마침내 게스트를 소개하는 코너.

누군가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요란한 호들갑이 이어졌는데, 특정 인물은 그 정도가 굉장했다.

주변이 확 밝아지는 외모의 소유자가 부드럽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이견우입니다. 올해 드라마 ‘기억의 붓’에서 화가 김영신 역으로 출연을 했는데요. 처음 나와 보는 예능이라 몹시 떨리네요.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와, 얼굴에서 빛이 나네!”

“세상에, 지금 중국이랑 동남아도 그렇고 아주 난리도 아닐 텐데. 한류 스타가 어쩌다 이런 누추한 곳에 오셨어요?”

“누추하다니요. 프로그램 팬입니다.”

바쁜 스케줄 와중에도 틈틈이 챙겨 보고 있다는 교과서적인 대답이 흘러나왔다.

가장 핫한 스타를 소재로 5분 가까이 입담을 펼친 후.

다른 게스트들도 소개를 이어 나갔다.

유명한 사람들에게 과한 호들갑을 떨었지만, 전반적으로 다들 띄워주는 분위기긴 했다.

마침내 우리 차례.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의례적인 박수가 나왔다.

주세한의 철없는 삼촌 포지션, 배우 송진우가 맏형 오형석에게 물었다.

“형, 나 저 친구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그 친구들이잖아! 썸씽!”

“아. 그 썸씽 부른 친구들이에요? 어쩐지 목소리가 귀에 익더라.”

물론 우리를 제대로 기억하는 건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 앉아 ‘썸씽!’이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든 작가님 덕분이었다.

썸씽이라는 키워드에 몇몇 사람들도 ‘아’하며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오형석이 물었다.

“뉴블랙은 이게 첫 예능이죠?”

“네! 저희가 첫 번째로 나와 보는 예능입니다!”

“그래 보여요. 풋풋하고 귀엽네.”

그런 말을 하던 주세한의 엄마 포지션, 방송인 나미리가 뭔가를 발견한 듯 우리를 가리켰다.

“어머, 다리 떠는 거 봐. 엄청 긴장했나 보다.”

바로 우리 메인보컬이었다.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가운데 리혁이가 헛기침을 했다.

“제, 제가 수전증이 있어서 그래요.”

“수전증은 손이 떨리는 거 아니야?”

“네, 그래서 손도 떨고 있습니다.”

긴장해서 아무 말이나 한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눈꺼풀도 떨리는데, 이 친구 괜찮은 거 맞아?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여야 하는 거 아냐?”

“어머, 지금 귀도 빨개졌어.”

건수를 잡았다는 듯 멤버들이 리혁이를 소재로 웃긴 상황을 연출했다.

우리도 손뼉을 치며 웃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우리 넷째의 귀는 예능 치트키였다.

어쩜 분량이 필요할 때마다 이렇게 빛이 나는지.

앞으로는 진실의 귀가 아니라 귀트키라고 불러 줘야겠다.

그 덕분에 기왕 이리 된 거 노래도 들어 보자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리혁이와 함께 밤바다의 한 소절을 짧게 부르며 웃었다.

홍보와 분량 모두를 챙긴 자기소개였다.

*   *   *

오프닝이 끝나고 민족 대이동이 시작됐다.

스탭들은 장비를 차량에 실었고, 게스트들은 매니저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는 중이었다.

보통 이런 버라이어티 예능은 매니저가 동행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

다들 잘하고 오라며 기운을 북돋아 주고 그러는 가운데, 나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싱글벙글한 매니저 때문이었다.

“형, 다른 매니저 분들처럼 좀 아쉬워하는 표정이라도 지어 봐.”

“이렇게?”

“아니, 좀 더 아쉬워하는 얼굴로.”

“미안하다. 요즘 너희 케어 때문에 너무 힘들었나 봐.”

석환 형이 행복한 미소를 짓자, 비주가 짐짓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

“실장님, 저희가 가는 게 좋으세요?”

“그럼, 좋고 말고. 날아다니고 싶은 기분이야. 친구가 와이프 친정 갈 때 웃는 거 보고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네.”

“실망했어요. 실장님.”

중현이가 흥 하며 말했다.

“올 때 기념품 안 사 올 거예요.”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를 자상하게 바라보던 매니저가 당부를 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해. 너희 번호는 앰뷸런스 사이렌으로 벨소리 해 놨어.”

“알았어, 형. 고마워.”

“저희 없는 동안 푹 쉬세여, 실장님.”

“그럼 안 되지. 내가 푹 쉬면 너희 스케줄이 사라져요.”

우릴 보낸 후에도 일정이 많은 듯했다.

뉴블랙이 이름을 알릴수록 석환 형은 더 바빠졌다.

애초에 실장급이 하는 일이 그런 거니까.

발품 팔아가며 여기저기 명함 돌리고 홍보하고, 술 마시고.

그래서 요즘 대부분의 스케줄은 로드 매니저인 민기 형과 다른 배우팀 파견 직원이 소화하고 있었다.

석환 형은 담당 실장으로서 광고나 예능 같은 중요 스케줄에만 얼굴을 비추는 정도.

그랬기에 오늘 촬영 같은 경우는 굳이 따라올 필요가 없었다.

내려주고 작별 인사만 해 주면 끝이니까.

나 같으면 한두 시간이라도 더 잘 텐데, 이런 수고스러움을 마다않는 매니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형, 기대해. 내가 농촌 어르신들한테 잘 보여서 김장 배추 같은 거 왕창 챙겨 올게.”

“안 될걸요.”

리혁이가 말했다.

“김장 배추는 8월에 씨 뿌리는 거예요.”

“맞아. 가을 배추는 8월에 씨를 뿌리고 수확은 10월이지.”

죽이 맞는 농사꾼과 백과사전을 째려보자 둘이 흠칫했다.

셋째에게 명령을 내렸다.

“중현아, 자꾸 흥만 깨뜨리는 저 못된 붉은 귀 좀 데려가라.”

“네.”

“…아니, 형. 형은 왜 맨날 저 사람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거예요? 아, 업지 마요. 사람들 다 쳐다보… 아!”

리혁이를 강제로 등에 업고 가는 중현이를 보며 모두 웃었다.

지호가 이건 찍어야 한다며 폰카를 들었다.

“우왕, 우리 리혁이 너무 귀엽당. 여기 쳐다봐여. 한 장 찍어 줄게.”

“이게 진짜…!”

매니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게스트들도 웃긴다는 듯 입을 가리며 웃었다.

카메라를 든 VJ들이 그걸 담아 주는 가운데, 석환 형이 픽 웃으며 내 등을 쳤다.

“벌써부터 분량 하나 챙겼네.”

*   *   *

C팀 담당 오태준 피디가 대본을 둘둘 말아 쥔 채 섰다.

“차량은 두 대로 나눠 이동할 거고요. 운전은 멤버들이 할 거예요. 일단 희연이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는 견우 씨가 타 주세요. 그래야 그림이 좀 살 테니까.”

두 미남미녀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견우.

오늘 C팀에서 가장 중요한 게스트였다.

그가 참여한 이유부터가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곧 방영을 앞둔 TBC 사전 제작 드라마 ‘공허의 왕좌’의 홍보를 위해서였으니까.

그만큼 특별하게 챙겨 줘야 했다.

다음은 두 게스트.

본인을 관종이라고 자칭하는 SNS 셀러브리티 맥시와 레게머리를 한 래퍼 헤이션.

둘 다 무슨 인상파 화가의 그림에 나온 것 같다.

하나는 짙은 눈 화장에 호피 무늬 바지, 그리고 키가 180은 되는 것 같은 늘씬한 체형의 소유자.

다른 하나는 사람 가리며 행동하는 서지형 씨가 알아서 몸을 사릴 만큼 센 인상의 소유자였다.

호리호리한 몸이었지만 반바지와 민소매 아래로 드러난 근육이 역동적이었다.

“맥시 씨.”

“맥시라고 불러 줘요, 감독님.”

센 인상과 달리 사근사근하고 나른한 목소리였다.

오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맥시 씨는 희연이랑 같은 차량에 타 주시고요. 헤이션 씨는 희찬이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타 주세요. 그리고.”

오 피디님이 우리를 둘러보았다.

그러곤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어 놓았다.

“너희는 자유롭게 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희연이 손을 들었다.

“오, 그럼 나 우주 찜할래요.”

“나도.”

“너는 왜?”

“왜긴 왜야. 네 마수로부터 애를 보호하려는 거지.”

감사합니다, 선배님…….

남매가 진지한 얼굴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가위바위보로 승패를 내자는 이들을 보며 내가 물었다.

“저, 선배님들. 저도 발언권이란 게 있지 않을까요?”

“아니.”

“없어.”

“네…….”

동생들이 키득거리는 동안 VJ가 이 모습도 담았다.

가위바위보의 승리자는 여희찬이었다.

여희연이 아쉬워하는 동안, 이번에는 동생들이 나를 바라봤다.

“저! 저!”

기호 1번 왕지호가 어필을 했다.

“어젯밤에 형이랑 얘기했잖아여. 오늘 방송하면 저 데리고 다녀달라고.”

“그랬나?”

딴청을 피우는 내게 막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잊은 건 아니겠져? 어젯밤 침대에 같이 누워서 마주 보고 약속했잖아여.”

“야이… 아니, 그거 아니에요! 카메라 감독님, 이거 아니에요. 야, 넌 말을 그렇게 하면…….”

“제가 힘들게 옆 침대까지 간 건데.”

“넌 일단 조용히 하고. 저, 진짜 아니에요.”

식겁해서 손사래를 치는 나를 보며 차창을 내리고 있던 맥시가 웃었다.

내가 말했다.

“아니, 내가 예능 신도 아니고 그냥 알아서 타.”

“안 돼요.”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방송할 때는 같이 있어야 돼요. 손에 들고 있으면 안심이 되는 토템 같은 존재라고 할까.”

“너도 탈락이야.”

“그런 토템 신앙만큼 리더를 숭배한다는 거죠.”

“다시 합격 줄게.”

“마치 고인돌 같은 존재라고 할까….”

“너 그냥 저기 타라.”

이어서 중현이가 내게 어필했다.

“저, 가방에 간식거리 엄청 많아요.”

“너 합격.”

…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여희찬이 한 말이었다.

중현이가 눈을 꿈뻑꿈뻑 뜨며 납치당했다.

뭔가 미남 괴도에게 납치당하는 바보 왕자님 같은 장면이라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생들의 표정이 급해졌다.

남은 자리는 하나.

비주가 비장의 무기를 꺼내려는 듯 ‘십만….’이라고 할 때, 지호가 대뜸 외쳤다.

“일!”

“이!”

리혁이도 따라 외쳤다.

비주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는 둘째 형에게 막내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탈락했다.

“형, 탈락했어여.”

“…진짜로?”

“넹.”

“패자 부활전 같은 거는 없을까?”

“없어요.”

두 동생의 단호한 대답에 비주가 터덜터덜 걸어갔다.

슬퍼하는 사슴 같은 모습이었다.

결국 나와 함께 타게 된 건 가위바위보에서 승리를 거둔 왕지호였다.

그러는 동안 다른 팀도 시끌벅적한 소란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처럼 장난스럽게 정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어떻게 타고 갈지 자기들끼리 의논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걸 보며 스타렉스에 올라탔다.

지호를 사이에 두고 내가 창가 옆에 앉았다.

운전석에 앉은 여희찬이 씩 웃었다.

“분량 잘 뽑던데?”

“아. 저희 평소 모습이에요.”

“여기서도 잘하기를 기대할게. 차에도 미니 캠 설치되어 있는 거 알지?”

알고 있었다.

타자마자 확인한 게 카메라 위치였으니까.

여희찬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달라붙은 카메라를 톡톡 두드렸다.

우리는 그걸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 백미러로 눈이 마주친 험상궂은 외모의 뮤지션과도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별로 반기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헤이션.

대한민국 최정상급 힙합 뮤지션.

이런저런 기행으로도 유명하지만 언더그라운드 힙합에서 가히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지금에야 예능에 나오면서 재미있는 동네 형 이미지를 잡고 있지만 본업으로 엄청 대단한 분이었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우리와의 상성이었다.

-껍데기만 화려한 것들은 불타 버려

…라며 아이돌 가수를 디스하는 랩을 옛날에 내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아이돌 산업을 싫어하는 분으로 유명했다.

문제는 오늘 분량을 뽑아내기 위해선 이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거였다.

최대한 차 안에서 이런저런 말이라도 걸어 보자고 생각을 하는 가운데 무전기가 울렸다.

여희연의 목소리였다.

-꺽다리, 여기 깡패. 우리 출발하니까 따라오셔.

“오키도키.”

그와 함께 TBC라고 붙은 트럭들이 출발하기 시작하면서, 스타렉스 차량들이 일렬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녹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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