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4화
이거 생각보다 어색한걸.
예능에서 익숙하게 보던 차량 대화 장면을 직접 찍으려니 느낌이 이상했다.
무대가 아닌 평범한 차 안에서 카메라 불빛이 말없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한다고 반응이 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뭘 하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마치 꼬맹이 하나가 구석에 앉아서 내가 뭘 할 때마다 고개를 스윽 움직이며 쳐다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헤이션이 카메라를 가리켰다.
“나도 차에서 찍어보는 건 처음인데, 이게 다 녹화가 되고 있는 거예요?”
“예, 형님. 다 되고 있죠.”
여희찬이 서글서글하게 대답했다.
시선은 전방을 향한 채 능숙하게 차를 몰았다.
“저도 처음에는 엄청 낯설었어요. 카메라맨이 붙는 것도 아니고, 차에 달랑 이거 하나 설치해 두고 너 혼자 떠들어 봐라 하니까.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부담스럽긴 하네.”
헤이션이 꼬불꼬불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중현이가 물었다.
“그럼 아무 말이나 해도 돼요?”
“아니지.”
여희찬이 씩 웃었다.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되지, 중현아. 재미있는 말을 해야지.”
“재미있는 말. 그럼 지호가 하면 되겠네요.”
“저여?”
막내가 눈을 깜빡이자 나도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래, 지호가 하면 되겠네.”
“우리 막내가 한 꿀잼하지.”
“…저, 저여?”
못된 형들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막내를 살살 꼬드겼다.
헤이션과 여희찬이 물었다.
“너희는 막내가 제일 재미있어?”
“네, 저희 다 노잼이라서… 지호가 진짜 재미있어요.”
“아닌데. 아니에여.”
하지만 계속해서 몰아가자 막내가 굳은 결심을 내비쳤다.
“제가 그러면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 볼게여.”
“오. 좋지.”
여희찬이 웃으며 카메라 각도를 조정했다.
지호가 나를 보며 망설이는 표정을 짓길래 편하게 말하라고 해 주었다.
그런데.
“우주 형에 관한 건데여.”
“나?”
“네, 형에 관한 건데여. 며칠 전에 제가….”
설마.
“아… 이건 안 좋은 생각이었던 같아요. 선배님들. 제가 대신 다른 얘기 해 드릴게요.”
헤이션이 손을 내저었다.
“일단 막내 친구 얘기부터 들어보고.”
“맞아, 지호야. 해 봐.”
그 성원에 힘입어 막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스터리 이야기인데여. 저희가 숙소 생활을 하거든요. 되게 좁, 아, 우주 형이 큰 숙소라고 얘기해 달래여. 근데 큰가? 아, 마음의 눈으로 보면 크다구여?”
내 귓속말을 고스란히 전하는 막내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이 필터링 없는 놈.
하지만 그 뇌를 거치지 않는 습관이 예능에선 도움이 되고 있었다.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여희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거든여. 비주 형, 아까 그 미소년처럼 생긴 형 있잖아여. 그 형이 집안일을 많이 하거든여. 근데 얼마 전부터 잔소리를 하는 거예여.”
“뭐라고?”
“너희 요즘 너무 흙을 묻혀 온다고. 어디 화단이나 그런데 보인다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그랬어여.”
“너무 애 취급이네.”
헤이션이 말했다.
“화단 보인다고 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 아, 들어가니?”
두 바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현이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요즘엔 잘 안 들어가요.”
“네, 그니까여. 완전 억울했어여. 저랑 중현이 형도 요즘엔 나이를 먹어서 놀이터 보인다고 막 들어가고 그러지 않거든여. 근데 비주 형이 너네 맨날 흙을 묻혀 온다고 해서 너무 억울했어요.”
“억울했겠네.”
“네. 그래서 제가 독단의 결심을… 네? 아, 특단의 결심을 했어여. 이 진상을 밝혀야겠다. 그래서 범인을 찾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밤이었어여.”
지호가 음산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어두컴컴하고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안방.
“갑자기 우주 형이 침대에서 스르륵 일어나는 거예여.”
두 남자가 급격한 흥미를 보였다.
중현이가 소오름 하면서 팔을 문질렀다.
우리 막내 동화구연 학원도 다녔다더니 그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어디 안 갔다.
지금도 무슨 용사님 얘기하는 마을 촌장님 같았다.
여희찬이 재촉했다.
“오, 그래서?”
“몰래 뒤따라 갔어여. 그런데 우주 형이 신발을 스윽 신고 바깥으로 나가는 거예여. 그러면서 누가 따라오는지 보겠다는 듯 무섭게 주변을 휙휙 두리번거리고.”
현관이 어두워서 잘 안 보여서 그런 거였는데.
지호가 실감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첫날에는 어, 뭐지? 싶었는데… 그날 새벽에 나가서 보니까 우주 형 밑창에 흙이 묻어 있더라구여. 근데 물어보면 안 알려 줄 것 같아서 제가 미행을 결심했어여.”
“어떻게 됐어?”
“첫날은 따라가다가 중간에 배고파서 떡볶이 사먹느라 실패했구여. 어… 성공한 건 둘째 날인데, 우주 형이 근처 아파트 놀이터에 가더라고요. 그러더니 어디서 삽을 들고 왔어여.”
“삽…?”
“네. 그리고 놀이터 흙을 푹. 푹. 파고 있는데, 푹. 푹. 푹. 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이렇게… 홱!! 하고 젖는 거예여.”
“으아. 깜짝이야!”
두 남자가 실감 나는 리액션을 보였다.
길이 막혀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여희찬이 운전대를 꺾는 바람에 모두 불귀의 객이 됐을걸.
얼마나 민망했겠어.
염라대왕님이 너희 왜 왔냐고 하는데 ‘저희 무서운 얘기가 너무 실감났어여….’라고 할 수도 없고.
이따가 막내한테 운전 중에는 조심하라고 언질을 줘야겠다.
물론 본인도 그걸 알아서 이 타이밍을 노린 것 같기는 한데, 우리 막내가 뭘 할 때면 확신이 안 든다.
사려 깊은 행동을 할 때도 그게 정말 생각한 건지 얻어걸린 건지 모르겠어서.
여하튼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와, 진짜 놀랐네.”
헤이션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근데 우주, 너는 왜 거기서 삽질을 하고 있었던 거야?”
“저 예능 준비 때문에…….”
“예능 준비?”
“사전 미팅 때 제가 군대를 나왔다고 하니까 피디님이 삽질 잘하냐고 여쭤보셨거든요.”
“삽질이면 군대에서 맨날 하잖아. 굳이 연습도 해야 돼?”
“제가 사실 행정병 출신이거든요.”
여희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와서 진실을 밝히는 거야?”
“네, 그때 피디님이 기대를 많이 하셔서 제대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지금부터는 피디님께서 너 짐 싸고 돌아가! 라고는 안 하실 것 같아서…….”
두 남자가 시원하게 웃었다.
막내의 괴담 토크 덕에 좋아진 분위기였다.
그 때문인지 헤이션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호감이 조금 묻어 나왔다.
그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너희가 그 친구들이지? 스트릿 보이즈랑 한 판 붙었던 애들.”
“붙은 건 아니고요. 우연찮게 같은 시기에 앨범이 겹쳤어요.”
그래서 회사끼리 머리채 잡고 싸워 댔지.
“방송국에서도 만나면 서로 친근하게 인사해요.”
실장들끼리는 눈빛으로 쌍욕을 나누지만 말이야.
헤이션이 피식 웃었다.
“한조가 그러던데, 자기네가 엄청 깨졌다고.”
“아하하….”
“내가 걔 랩 가르치는 선생님이거든. 시시콜콜한 얘기 많이 듣는데 너희에 대해 좋은 얘기 많이 하더라. 자기들이 라디오 나갔을 때 도움을 받아서 고맙다던데.”
그때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장소원의 원더풀 나잇에서 윤기원이 삑사리 날 뻔한 걸 리혁이가 도와줬던 날.
레게머리의 래퍼가 웃었다.
“그러고 보면 너희랑 은근히 인연이 있네. 썸씽 때도 내가 음원에서 쭉 밀리지 않았었나?”
그랬지.
‘힙합 음원 강자 헤이션이 나옵니다! 이제 썸씽의 시대는 가는 것일까요?’라고 연예부 기자들이 실컷 써 댔지만 결과는 우리가 내려갈 때까지 쭉 4위였다.
세상사 별일이 다 있다더니.
전혀 만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여기서 만나 추석 특집을 찍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 스몰 토크를 나누며 분위기가 편해지는 동안, 중현이가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러곤 헤이션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님,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뭔데?”
“여기 사인 좀…….”
상대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앨범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이거 내 앨범 아니야?”
“예, 초등학교 때 샀던 건데요. 오늘 사인 받으려고 가져왔어요.”
“이야, 이거 완전 흑역사인데. 용케도 남아 있구나.”
“형님 1집 앨범이에요?”
“네, 이거 완전 대차게 망했는데. 전국에서 천 장 냈는데 이백 장 팔렸거든. 네가 그 이백 명이었구나?”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그러곤 중현이의 얼굴을 살폈는데 일부러 방송에 나오려고 하는 행동인지 확인하는 듯했다.
그리고 곧바로 진실을 파악한 듯 웃었다.
암요. 선배님.
세상에서 우리 애만큼 거짓말 못하는 애도 없을 겁니다.
네임펜과 CD를 건네받은 그가 기분 좋게 웃었다.
“여기서 뭐가 제일 좋았어?”
“3번 트랙이요. The Soundness. 제가 중학교 때 처음 만든 믹스테이프도 그 비트 가지고 한 거였거든요.”
“진짜로?”
“네, 그 리듬이 너무 좋았어요.”
“들을 줄 아는 친구네. 나도 3번을 제일 좋아하는데.”
“진짜 명반이에요. 초등학생 때 이거 듣고 래퍼 되자고 결심했어요.”
여희찬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저 앨범을 어떻게 알았어? 초등학생 때인데.”
“사실, 처음에는 락 음악인 줄 알고 샀거든요. 보시다시피 여기 표지에서 선배님이 머리를….”
“아아! 거기까지! 내 초상권은 존중해 주자.”
헤이션이 손으로 카메라를 가렸다.
대체 앨범 표지가 어떤 건지 궁금해서 봤다가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래퍼 Kim-덕배’라는 유치한 로고와 함께 장발의 락커 같은 남자가 머리를 휘날리고 있었다.
방송에는 자료 화면으로 반드시 나갈 듯한 느낌이었다.
중현이가 앨범을 보물처럼 받아 들 때 여희찬이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들으면서 가 볼까요?”
“이거 귀한 앨범인데…….”
불안해하는 중현이의 모습에 두 남자가 웃었다.
특히 헤이션은 하도 많이 재생해서 거칠어진 CD 표면을 보고 흡족해 하는 얼굴이었다.
이내 투박한 사운드가 차 안을 채웠다.
헤이션이 감상에 젖어 트랙마다 코멘터리를 읊는 동안 중현이는 거의 수첩에 적을 기세로 경청했다.
그러곤 감격한 듯 말했다.
“저 지금 절에 와서 부처님 영접한 느낌이에요.”
그 말에 헤이션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의 예능 웃음이 아니라 현실 웃음이었다.
나도 따라서 즐겁게 웃었다.
어떻게 친해져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이 돼 버린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 온 누군가의 팬심 덕분이었다.
* * *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움직이던 차량은 경기도 연천군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회관 앞에 방송국 차량과 스타렉스 여섯 대가 사이좋게 주차됐다.
내내 에어컨 바람을 쐬긴 했지만 다들 안이 갑갑했던지 여기저기서 기지개를 켰다.
코를 벌름거리는 중현이에게 물었다.
“어때, 서울이랑은 좀 달라?”
“확실히 다르네요. 아부지 사는 쪽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좋아요.”
“으어어… 전 속이 울렁거려여.”
“그러게 바보야. 누가 간식을 그렇게 많이 먹으래?”
막내가 속이 울렁거린다는 듯 명치 부근을 문질렀다.
내가 그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등을 퉁퉁퉁 두드려 주었다.
얼마 안 가 용트림에 가까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막내가 놀라서 나를 돌아보았다.
“대박. 갑자기 속이 쫙 풀렸어여. 어떻게 한 거예여?”
“뭐기는.”
김덕순 여사한테 써먹으려고 틈 날 때마다 미튜브 보고 연습한 안마 스킬이지.
놀라는 막내를 보며 웃었다.
“뭘 그렇게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고개를 돌리니 리혁이가 있었다.
녀석 역시 속이 메슥거린다는 얼굴이었다.
“너도 등 두드려 줄까?”
“아뇨, 건드리지 마요. 속 안 좋으니까.”
어째 핼쑥한 얼굴이어서 무슨 영문인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비주가 으어어… 하며 축 늘어졌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뇨, 그건 아닌데… 선배님들끼리 토크 쏟아 내다가, 어색하다가, 토크하다가, 어색하다가. 막 그래서 언제 끼어들어야 하나 눈치 보면서 왔어요.”
“고생했네.”
“형은 어땠어요?”
“우리는 좋았지. 중현이가 헤이션 선배님 팬이었더라고.”
“아, 그러네요.”
각자 차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마을 회관으로 다가갔다.
헤이션과 중현이는 어깨에 팔을 두르며 ‘형님’하면 ‘아우님’하고 주거니 받거니 가고 있었다.
의외의 친목이었다.
한편 여희찬과 여희연은 남매끼리 붙어 있었고 이견우와 맥시는 서로 할 말이 없는 듯 조용히 걸어왔다.
이견우 선배는 조용한 스타일인 듯했다.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말을 안 하는.
뭔가 부럽다.
예능에 나와서 열정적으로 말을 안 해도 된다니.
나는 오늘 평소보다 다섯 배는 더 시끄럽게 떠들었거든.
아까 한여름 씨가 건네준 목캔디 여러 알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분들은 어떤가 둘러보니 나름대로 잘 섞여들어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서지형 씨는 어디 갔지?
그런 생각을 할 때 뒤에서 걸어오던 누군가 어깨를 일부러 부딪히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레몬 엔터에서 대표님과 석환 형의 공격을 흘릴 때 썼던 복싱 기술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회피를 하자 밀치기를 시도하던 누군가는 제 힘을 못 이기고 휘청거렸다.
“으어어!”
주변에서 어이쿠 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옆을 보니 빨간 머리의 남자가 철푸덕 엎어져 있었다.
바로 여기 계셨네.
쓰러진 서지형을 향해 내가 손을 뻗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내며 그를 일으켜 주었다.
“어? 선배님, 옷에 먼지가 묻으셨어요.”
“아, 괜찮…….”
“저희가 털어 드릴게요!”
“어푸푸푸……!”
“엇, 죄송합니다! 약하게 털어드릴게요.”
“콜록!”
검은 티셔츠에 묻은 흙먼지를 흔들어 주는 우리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웃으면서 지나갔다.
훈훈한 광경을 보는 표정들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따라오던 오태준 피디도 그 광경을 담고 지나갔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지는 우리 둘의 모습에 서지형은 방금 뭐가 일어난 거지, 하며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와, 저 조마조마했어요.”
비주가 속삭였다.
“형이 또 메쳐 버리거나 그럴까 봐.”
“그랬으면 방송 분량 좀 챙겼을까?”
“여러모로 화제가 되긴 했을 거예요. 안 좋은 쪽으로.”
“안 그래서 다행이네.”
문득 석환 형에게 들어오는 찌라시 문자가 떠올랐다.
-개그맨 무시하는 안하무인 신인 아이돌 A군, 유명 예능 촬영 중 선배를 엎어 메쳐….
이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방금 나도 조마조마하긴 했다.
실수로 누군가를 메쳐 버리거나 그럴까 봐.
평소에 이런 일을 방지하고자 능력을 조절하려고 애썼는데, 그 노력이 조금 빛을 발한 느낌이었다.
한편 마을 회관 쪽으로 가니 이장님의 방송을 듣고 동네 주민들이 총출동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연예인들을 알아본 주민들이 환호를 보냈다.
가장 큰 반응을 얻은 건 한때 국민배우로 유명했던 두 원로 배우 우재용, 양옥분 선생님이었다.
할머님들은 특히 소녀 팬으로 돌아간 표정들이었다.
역시 팬심이란 나이가 들어도….
“저 엄청나게 잘생긴 총각! 드라마에 나온 사람 아냐?”
“맞네! 맞아!”
곧바로 이견우에게 관심이 쏠렸다.
우재용 선생님의 떨떠름해하는 표정과 그걸 놀리는 멤버들이 VJ가 든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이쪽은 누구셔? 엄청 잘생겼네.”
“잘생긴 총각이 다섯이나 있네. 곱게도 생겼어. 응, 이 손 좀 봐.”
“곱네, 고와.”
의외로 우리도 관심을 받았다.
아무래도 연예인에 대해 잘 모르는 어르신들 연령대에서는 객관적으로 생긴 것만 보고 판단하는 느낌이었다.
그와 달리 비교적 젊은 세대는 연예인들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거나 인사를 건넸다.
그런 시끌벅적한 대화가 오가고 팀별로 나눠 자리에 섰을 때.
구재영 피디가 대본을 들었다.
“자, 오늘의 방송 컨셉은 추석을 앞두고 한 해 동안 고생 많으셨던 어르신들께 효도를 하는 <어르신께 효도를> 특집입니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오늘 하루 동안 주민분들은 푹 쉬시고, 여러분들이 효도를 하게 될 텐데요.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 전에 먼저 첫 번째 미션부터 공개하겠습니다.”
곧바로 메인 작가가 하얀 천을 쫙 펼쳐 들었다.
거기에는 궁서체로 붓글씨가 써져 있었다.
[효도의 첫 번째 덕목 : 맛있는 밥 지어드리기]
그리고 그걸 본 순간.
비주가 세상에서 제일 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