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12화
때 아닌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동생 라인이 마당에서 트로트를 열창하고, 어르신들은 박수를 치며 웃고, 포메라니안 두식이는 신나서 날뛰고.
그리고 난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아, 팔 아파.
남의 어깨를 주물러 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안마라는 건 생각보다 힘이 좀 필요하다.
그런 거 있잖아.
친구한테 ‘내가 안마해 줄게’하고 주물러 주다가 한 20초쯤 지나면 힘이 빠져서 슬그머니 손을 내려놓는 거 말이야.
문제는 내가 지금 20분 째 안마를 하고 있다는 거였다.
진짜 힘들다.
팔에 쥐가 난다.
이미 손은 벌게진 지 오래였다.
남몰래 뒷짐을 지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데도 손이 뻣뻣했다.
하지만 표정 관리를 하며 새로 내 앞에 앉은 할아버지에게 생글생글 웃었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
“응, 나는 등이 굽어가지고… 이게 누울 때도 아파 죽겠어.”
“제가 한 번 주물러 볼게요.”
곧이어 할아버지의 진심 어린 탄성이 튀어나왔다.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음료가 나오듯, 내가 뭉친 곳을 주무를 때마다 시원하다는 말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안마가 끝날 때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곤 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만개한 꽃처럼 활짝 피었다.
그런 표정을 볼 때면 은근히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막내가 어르신들에게 재롱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동안, 리혁이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거기까지 해요.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그걸 눈치챈 듯 귤을 까먹던 양옥분 선생님이 말했다.
“어머, 얘 좀 봐. 너 그만해야 되는 거 아니니? 손이 세상에… 어이구, 이 고운 손이 새빨개졌네.”
일부러 다른 사람들에게 다 들으라는 투였다.
그제야 흥겹게 떠들던 어르신들도 저마다 아차 하면서 걱정 어린 말을 꺼냈다.
“그렇구먼, 어이구. 우리가 이게 민폐를…….”
“어떡한대, 저거 얼음이라도 가져다가 어떻게 맨질맨질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내 정신 좀 봐. 하나도 모르고 있었네.”
내가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더 할 수 있는데….”
“더 하긴 뭘 해. 요 앉아 봐.”
우재용 선생님이 마당에 놓인 의자를 손으로 턱턱 쳤다. 그 무언의 눈길에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어이구, 고생 많았네.”
“아니, 안 해주셔도 되는데….”
순식간에 주객이 전도됐다.
종주먹으로 내 어깨를 콩콩 치는 할아버지도 있고, 부엌에서 꿀물을 가져다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누구는 거기다 더울 거라며 얼음도 동동 띄워 주고.
“배는 안 고파?”
고프다고 하면 당장 부엌에서 요리를 해 올 기세여서 손사래를 쳤다.
배고프냐는 말에 대답하려던 지호의 입을 리혁이가 텁 하고 손으로 막았다.
뭔가 십수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둔 손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가운데 우재용 선생님이 물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해. 그냥 적당히 하는 척하고 응? 사람이 요령도 부려야지.”
“그래도 오늘 하루만 뵙고 가는 건데, 정성스럽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미련하구먼, 미련해.”
원로 배우가 혀를 차는 가운데 양옥분 선생님이 말했다.
“왜, 그래도 얼마나 기특해요. 이거 해 주겠다고 온 힘을 다했는데. 얼굴 봐요. 땀이 비 오듯 왔네.”
“어이구, 그렇구먼.”
세 명의 VJ가 돌아가면서 이 장면을 찍고 있었다.
방송 나가겠네, 이거.
녹화를 하다 보면 그런 예감이 들 때가 있었다.
이거 편집 안 되고 나가겠구나 하고.
아직도 팔이 뻐근하긴 하지만 분량을 챙겼다는 사실에 일차적으로 기쁜 것 같긴 하다.
물론, 우리 김덕순 여사께서 방송 보면 나쁜 노인네들이 손자 고생시킨다고 팔팔 뛰며 욕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어르신들한테 이렇게 예쁨 받는 것도 은근 기분이 좋았다.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면.
“제가 아직 못 주물러 드린 분들이 계신데…….”
“아, 글쎄 가만히 있어! 여기 다른 친구들이 하겠지.”
“맞아여, 저두 안마해 드리고 싶어여.”
지호가 활발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 모습에 다들 웃을 때, 어르신들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여희찬의 목소리였다.
그 뒤로 비주와 중현이도 사과 봉지를 들고 걸어왔다.
쟤넨 언제부터 있었지?
“저희도 안마 좋아해요.”
비주가 싱긋 웃으며 말하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살짝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꼭 내가 뭘 잘못한 듯한 느낌이 드는데.
최근 잘못했던 일을 30일 이내로 생각해 봤는데, 너무 많이 나와서 그냥 생각을 포기했다.
아직 내가 주물러 드리지 못한 어르신들은 새롭게 등장한 뉴페이스들이 주물러 준다는 말에 민폐라며 계속 거절을 했지만, 삼고초려 끝에 결국 앉아서 안마를 받으셨다.
주세한의 두 노년 멤버가 어르신들로부터 떠들썩한 토크를 이끌어내고, 동생들이 어르신들에게 효도를 하는 훈훈한 풍경.
그 모습을 보면서 시원한 꿀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내 어깨는 중현이가 주물렀다.
“아아! 야! 살살!”
“앗, 죄송해요.”
“중현아.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 주물러 드려. 왜 날 주무르냐.”
“우리 집에선 형이 제일 어르신이잖아요.”
“너 나랑 두 살 차이거든. 나 어려.”
“그렇죠.”
“그, 중현아. 동의를 할 때는 좀 영혼을 담아서 말해 줘.”
“참. 동의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중현이가 물었다.
“형, 제가 김비주한테 져 주는 거예요, 아니면 김비주가 저를 배려하면서 사는 거예요?”
“…응?”
“아니, 쟤랑 얘기를 하는데 말이 달라서.”
옆을 보니 사근사근 웃던 비주가 날 보며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둘이 싸운 건 아니고 은근히 살짝 감정 상할랑 말랑 할 때 내가 중재자로 끼어들었었지.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던 나는 TV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모습을 곧장 떠올려 실행에 옮겼다.
“그랬나. 내가 기억이 없어서…….”
“형. 실망이에요.”
“괜찮아. 너희의 실망은 이미 나한테 익숙한 일이야.”
“그럼 두 배로 실망할 거예요.”
흥 하며 주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을 때, 옆에서 다른 분의 어깨를 콩콩 두드리던 리혁이가 말했다.
“중현이 형, 그것도 있어요. 아까 형이 흑염소한테 쫓길 때 저 아저씨가 보다가 문 닫아 버렸거든요.”
“헐.”
중현이가 눈썹을 세모꼴로 바꿨다.
“저 세 배로 실망이에요, 형.”
“와, 서리혁 저 고자질쟁이…….”
“난 잘못 없어요. 진실을 말한 건데.”
“생각해 보니까 네 배로 실망이에요.”
과연 몇 배까지 갈까.
주변 어르신들이 껄껄 웃으며 한두 마디씩 보태는 가운데 내가 항변을 했다.
“중현아, 흑염소한테 쫓기는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냐. 영화에서도 괴물 나오면 일단 피하고 보잖아.”
“아니에요. 제가 옛날에 김비주랑 같이 본 좀비 영화 있는데, 거기선 좀비 떼한테 쫓기니까 어떤 착한 아저씨가 주인공을 구해 줬어요. 자기 집으로 피신하라고.”
“…너는 왜 나랑 얘기할 때만 똑똑해지냐.”
“저 똑똑해요.”
진지한데 뭔가 표정이 웃겨서 동생들과 어르신들이 웃음이 터졌을 때, 중현이가 아 하고 말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그 구해 준 아저씨 죽었구나.”
“…….”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형이 현명한 거였네요.”
“중현아.”
“네.”
“차라리 욕을 해.”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마늘 까기로 시작한 2번째 미션은 뭔가 동네 잔칫집 같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
어르신들은 어깨에서 진한 마늘향을 풍기며 저마다 개운한 표정으로 사라지셨고, 우리는 나름대로 분량을 챙겼다는 사실에 소소한 기쁨을 즐겼다.
“와, 저기 봐여. 마늘 까기가 개꿀이었구나.”
지호가 가리킨 곳에는 걸스온탑의 멤버들이 있었는데 꼴이 말이 아니었다.
꼬질꼬질해져서 땀이랑 먼지로 범벅되어 있었는데, 한 명은 꽈당했는지 엉덩이 부분에 흙도 살짝 묻어 있었다.
저쪽이 가을 무 씨뿌리기였지, 아마.
그래도 분량을 좀 챙겼는지 표정이 밝아 보인다.
다른 팀들도 전반적으로 비슷한 분위기였다.
맥시와 헤이션도 뭘 하고 왔는지 눈이 퀭했다.
“에궁.. 난 농촌에선 안 살 거예요.”
“아까 할아버지도 그러셨잖아요. 처자는 농촌에선 안 사는 게 좋겠다고.”
“맞아요. 전 도시적인 느낌의 미녀거든요.”
그런 말을 하는 셀럽을 보며 웃음을 삼킬 때, 중현이가 내게 속삭였다.
“되게 특이하신 분 같아요.”
“글쎄다.”
내가 봤을 땐 네 영혼의 단짝 같은걸.
“모두 하이!”
그러는 동안 여희연도 등장했다.
양손에 노끈을 매단 수박을 두세 개씩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뭐예요, 선배님?”
“아. 일 잘한다고 할아버지가 주셨어. 이따가 끝나고 다 같이 먹자.”
“일 엄청 많이 하셨어요.”
이견우가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에이, 얼마 안 했는데.”
“아뇨…. 되게 열정 넘치게 하셨잖아요…….”
한류스타가 먼 산을 보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되게 슬픈 표정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시달려야 했을 고통을 대신 받은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반가운 인사가 오가고, 마침내 팀이 다 모였을 때.
마지막 미션의 정체를 두고 이런저런 토론이 오갔다.
“근데 마지막 미션은 뭘까요?”
“그러게, 뭐 게임 같은 거 하지 않으려나. 그 귀마개 쓰고 단어 전달하는 거.”
“두 번째 미션이랑 상관있는 거 아닐까요? 아까 피디님이 연장 선상에서 생각하라고 했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저도 미션 하는 내내 뭐 숨겨진 건 없나 확인하고 그랬다니까요. 집에 어디 열쇠라도 숨겨진 건 아닌가 하고.”
“발견했어요?”
“아뇨. 왜 자꾸 남의 세간 살림에 기웃거리냐고 괜히 혼만 났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팀도 토론을 하고 있었다.
여희찬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경험상 이거 오백 프로 몸 쓰는 건데.”
“음? 왜요?”
헤이션의 물음에 여희찬이 답했다.
“경험에서 나오는 법칙 같은 건데, 우리 프로가 열 번에 한 번 꼴로 몸 쓰는 특집이 나오거든요. 한동안 안 해서 슬슬 나올 때도 됐고. 그리고… 무엇보다 게스트 구성도 그렇고.”
“게스트 구성?”
“아, 이게 설명하기가 귀찮네. 야, 여희연.”
오빠의 등짝을 한 대 때린 여희연이 대신 답했다.
“A팀 봐요. 우리 멤버 셋에 게스트 일곱이잖아요. B팀은 멤버 둘에 게스트가 셋. C팀은 멤버 둘에 게스트 넷.”
“…선배님, 저희팀은 게스트 여덟 명 아닌가요?”
“너희는 한 묶음이잖아. 너희 미션 성공했을 때 열쇠 하나만 줬던 거 기억해?”
그랬지.
그래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게스트가 넷이라서 다 획득해도 4개인데, A팀은 개인별로 일곱 명이었으니까.
“보통 이렇게 재용 쌤이랑 옥분 쌤 팀한테 뭘 미리 유리하게 깔아주고 그럴 때가 있거든. 그럴 때는 보통 몸 쓰는 미션이라 보면 돼. 왜냐면 저분들이 진짜 전력 외거든. 형석 오빠도 희대의 몸치고.”
“아…….”
그제야 우리를 포함한 다른 게스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리가 하나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견우가 물었다.
“그럼 마지막 미션은 뭘까요? 추격전?”
헤이션이 고개를 저었다.
“지형 때문에 추격전은 힘들 거예요. 중현이랑 제가 쫓겨 봐서 알아요.”
“아, 재밌었어요. 전 또 할 수 있어요.”
“아냐, 넣어 둬.”
그러는 동안 나는 생각에 잠겨 들었다.
마지막 미션의 내용이라.
왠지 짐작이 가는 게 하나 있긴 했다.
미션을 진행하는 동안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인데 임순현 할머니 집에서 확신을 얻었다고 할까.
왠지 이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희찬이 나를 쿡 찔렀다.
“우주는 뭘 그렇게 생각해, 떠오르는 게 있어?”
“짐작 가는 게 하나 있긴 해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 말해 봐.”
“그래. 한 번 들어 보자고.”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부터 느낀 건데요. 혹시 미션 하면서 그런 일 없으셨나요? 어르신들이 계속 옛날에 살아오신 얘기 해주고.”
“그랬지.”
“어, 나도 한참 듣고 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제가 첫 번째 미션을 할 때랑 똑같은 집에 갔는데, 두 번째 미션을 할 때도 이야기를 또 하시더라고요.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테이프 감듯이 말씀을 하셨어요.”
“아, 맞아. 나도 그래서 ‘아니, 했던 얘기를 또 하시네’ 그랬거든.”
“…나만 그런 거 아니었어?”
“아, 그럼 이거 설마…….”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디님이 두 번째 미션이랑 연관성이 있다고 했잖아요. 아무래도 그런 말씀 하신 게 힌트가 아닐까 싶어요.”
“야, 이거 야단났네.”
헤이션이 말했다.
“난 그냥 얘기하시는 거 흘려들었는데.”
“나도 일하느라 대충…….”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가운데 내가 말했다.
“아닐 수도 있어요. 제 추측뿐이라.”
“아냐, 일리가 있어.”
여희연이 내게 물었다.
“우주, 너는? 어떻게, 할머님 얘기 많이 들었어?”
“아, 저는 첫 번째 미션 할 때부터 어르신들 얘기한 거 까먹을까 봐,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놨거든요.”
“오…….”
무표정한 VJ가 우리를 돌아가면서 찍는 가운데, 이견우가 뭐라고 말을 꺼냈다.
“저는…….”
“모두 모이실게요!”
조연출의 외침과 함께 분위기가 정돈된 가운데, 메인 피디 구재영이 작가들이랑 회의를 마치고 걸어 나왔다.
“자, 이제 대망의 세 번째 미션을 공개하겠습니다. 이번 미션으로 우승을 거둔 팀이 고급 여행권을 획득하게 될 텐데요.”
모두가 침을 삼키는 가운데, 구재영 피디가 텁수룩한 수염을 매만지면서 씩 웃었다.
“두 번째 미션은 잘하셨나요?”
“구 감독, 뜸 들이지 말고 얼른 공개나 해.”
“사실, 세 번째 미션 같은 경우는 첫 번째, 두 번째 미션과 연계되는 미션입니다.”
“……?”
“그런 궁금증이 안 드셨나요. 왜 자꾸 어르신들이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시고 그러는지?”
다들 눈을 깜빡일 때, 우리 팀원들은 나를 바라보면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재영 피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효도를 하는 방법으로는 선물을 드리고, 일손을 드리는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거죠.”
“……!”
“세 번째 미션을 공개하겠습니다.”
모두가 내용을 눈치 챈 가운데, 메인작가가 마지막 천을 펼쳤다.
[효도의 가장 중요한 덕목 : 경청하기]
“세 번째 미션인 보물 상자 찾기는 여러분들이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며 ‘뭐야, 뭐야, 어떡해’ 하는 소리가 나오자 피디가 흡족하게 웃었다.
이건 생각 못 했지? 하는 표정.
그러는 동안 우리 팀원들은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희연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네 핸드폰 안에 다 메모가 되어 있다는 거지?”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팀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제가 만났던 분들은 전부 다요.”
* * *
마지막 ‘보물 찾기’ 게임.
팀별로 A4 용지로 된 질문지와 지도 여러 장이 주어진 가운데 피디가 설명을 했다.
“지금 보는 질문지에 예시를 봐 주세요. 거기에 질문이 쓰여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구재영의 생일은 10월 땡땡 일입니다.’라고 쓰여 있죠?”
구재영 피디의 말대로 종이 가장 위쪽에 질문이 적혀 있었다.
[구재영의 생일은 10월 (?)일입니다.]
그 밑으로는 ‘빈칸에 들어갈 말로 옳은 것은?’ 하는 문구가 보였다.
“보시면, 객관식 선택지가 있을 겁니다. 1번부터 9번까지. 여러분은 거기서 알맞은 정답을 골라 주시면 됩니다.”
메인 피디님의 설명은 계속됐다.
“오늘 여러분이 모두 만난 어르신들이 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질문지인데요. 정답을 알고 있다면, 그 어르신의 집에 찾아가 암호를 말하듯 ‘몇 번!’ 이라고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어르신께서 열쇠를 주실 거예요.”
“그게 끝이에요?”
“예, 간단하죠?”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답의 기회는 단 한 번뿐. 틀리시면 그 어떤 경우에도 열쇠를 얻을 수 없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모르겠다 싶으면 저희 제작진에게 말씀을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힌트를 드릴 거예요.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미션이 있어요.”
“…소개 영상 찍었을 때처럼?”
“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면 시간이 너무 걸리겠죠?”
피디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다른 팀으로부터 열쇠를 뺏는 것도 가능합니다. 방식은 간단해요. ‘대결을 신청한다!’라는 멘트와 함께 미션을 통해서 승부를 겨루면 됩니다.”
“뭐야, 그러면 뺏는 게 압도적으로 유리하잖아요.”
“그렇죠. 그 대신, 누군가의 열쇠를 뺏으려면 동일한 수량의 열쇠를 걸어야 합니다.”
“…….”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을 해 주세요.”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피디님, 그러면 열여섯 개를 얻으면 승리하는 거예요?”
“아, 그걸 깜빡했네요. 여러분에게 나눠드린 종이 중에서 마지막으로 드린 뒷산 지도 보이시나요?”
“…….”
“거기 1번부터 64번까지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중 세 곳에 각 팀별로 해당되는 보물 상자가 거기 묻혀 있습니다.”
그때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스쳐갔다.
“뭐, 지금쯤 그럼 저기 하나씩 파보면 되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저희가 1미터 깊이로 파 넣었어요.”
“…….”
“그러니까 다른 팀이 열여섯 개를 획득했다. 그렇다고 해도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조금 늦어도 삽질만 더 열심히 하시면, 충분히 승리를 거두실 수 있습니다.”
“…….”
“이래야 게임이 더 재미있지 않나요?”
그런 말과 함께 껄껄 웃는 피디를 모두가 악마를 바라보듯 보는 가운데, 뒤에서 쇠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쇠 삽 세 자루였다.
다들 그걸 보며 막막한 기분을 느낄 때, 헤이션은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뉴블랙의 리더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왜 그러지 하다가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
아침에 차에서 나눴던 이야기.
-근데 너는 왜 거기서 삽질을 하고 있었던 거야?
-저 예능 준비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선우주가 몹시 기분이 좋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헤이션은 고개를 끄덕였다.
흑염소 때도 느꼈지만 저 그룹엔 참 이상한 애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