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13화
보물찾기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팀별 회의가 시작됐다.
“퀴즈 정답 아는 거 있으세요?”
“음… 몇 개는 알겠는데 부차적인 게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는데.”
A와 B, 두 팀에겐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있는 기억, 없는 기억을 다 짜내며 머리를 맞대자 어느 정도 답안지는 채울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머지는 미션으로 해결을 보고…….”
“안 되면 뺏어야죠.”
황금열쇠가 가장 적은 B팀에서는 그런 의견이 많았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뺏는 거예요. 어차피 우린 두 개라서 잃을 것도 없고. 룰 들어 보니 열쇠가 0개여도 뺏는 건 가능하다면서요. 한 개밖에 안 되기는 하지만….”
“그럼 가장 열쇠가 많은 팀을 노려야겠네요.”
B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C팀으로 향했다.
첫 번째 미션에서 승리한 C팀은 열쇠를 일곱 개나 가지고 있었다.
걸스온탑의 멤버, 길채경이 어딘가를 흘깃 보고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희는 C팀 중에서 뉴블랙을 노려볼게요.”
“아이돌은 아이돌끼리, 그거 괜찮네.”
“괜찮으려나. 쟤네 오늘 아주 예능신이 강림했던데. 잘할 수 있어?”
“네! 저희 믿어 주세요.”
그 동안 A팀도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정답지 중에 40프로는 채운 것 같은데, 일단 해당되는 집 위주로 빠르게 돌기로 하죠.”
“좋아요.”
“그리고… 열쇠 뺏는 거 말인데, 우리도 뺏어야겠죠?”
오형석의 말에 다른 게스트들도 고개를 끄덕일 때, 모델 한소라가 의견을 제시했다.
“제 생각에는 뺏는 것보다는 뺏기는 걸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것도 일리가 있긴 하네요.”
그때.
“이건 어떠세요?”
개그맨 서지형이 의견을 제시했다.
“아예 역할을 나눠서 뺏으러 다니는 사람을 만드는 거예요.”
“네가 하게?”
“예, 형님. 제가 그래도 웃기는 건 못해도, 예능에서 미션은 이것저것 많이 해 봤잖아요.”
“그렇긴 하지.”
“걱정 마세요.”
서지형이 호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미션 하난 자신 있습니다.”
그걸 보던 양옥분이 귤을 까며 말했다.
“얘, 지형아. 그럼 누구를 노리려고?”
“당연히 C팀이죠. 누구겠어요.”
“흐으응…….”
원로배우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괜찮을라나. 쟤네 아주 오늘 물이 올랐던데. 희찬이랑 희연이도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고. 너 희연이한테는 절대 몸으로 못 이기는 거 알지? 같은 선수 아니면 쟤 못 이긴다.”
“아유, 알죠. 그래서 다른 애들 노려보려고요.”
“애들? 뉴블랙이요?”
배우 이강진의 물음에 서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친구들이 신인이긴 해도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잘할 수 있겠어요?”
그것이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서지형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 수더분한 얼굴이 장담하듯 말했다.
“걱정 붙들어 매십쇼, 다들. 제가 보란 듯이 뺏어 올 테니까.”
* * *
“걱정 붙들어 매십쇼, 다들. 제가 보란듯이 뺏어 올 테니까.”
“얼씨구.”
여희연이 팔짱을 낀 채, 운동화 끝으로 흙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완전 우리 팀을 호구로 보시네. 내가 아주 정신이 번쩍 들게 혼을 내드려야겠어.”
“저, 희연 씨… 진정…….”
“진정은 무슨, 시작하자마자 박살을 내버릴 거예요!”
활화산처럼 달아오르는 모습에 이견우가 뒤로 물러났고, 맥시는 도청을 계속했다.
“얘, 지형아. 희연이는 꼭 피해 다녀, 쟤 뒤끝도 길고 장난 아냐. 지면 또 졌다고 하루 종일 쫓아다니고. 너 그거 감당 못한다. 알지? 뭐, 도망을 칠 수가 있다고? 어이구… 도망쳐 보든가.”
“선생님도 너무하시네! 내가 무슨 뒤끝이 있다고!”
“저기용.”
맥시가 뺨에 묻은 침방울을 닦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전 메시지만 전할 뿐인데.”
“엇, 죄송해요. 언니.”
“에궁,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얼른 뒷내용 들려주세요.”
그렇게 실시간 도청을 하며 다른 팀원들이 계획을 세우는 동안, 나는 문제를 풀고 있었다.
“39번이 강복순 할머님… 이분은 제가 메모장에 적어 놨었어요. 출생지가 이북이라고 하셨는데, 원산 쪽에서 태어나셨대요.”
“원산이면 7번이네.”
“그다음 문제는 제가 안 만나 본 분이라.”
“걱정 마. 내가 기억하고 있어.”
이견우가 선택지에 동그라미를 예쁘게 그렸다. 그런 식으로 나와 우리 둘이 듀오가 되어 문제를 풀었다.
미션 설명이 끝나고 내가 문제를 풀 때의 일이었다.
-저도 기억을 좀 잘하는 편이거든요.
한참 막히고 있을 때, 저 선배가 나섰었지.
어찌나 기억력이 좋던지, 자기가 한 번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문제도 쭉쭉 풀어나갔다.
뭔가 특이한 캐릭터였다.
처음에는 자신감 뿜뿜 넘치는 한류스타 같은 느낌이었는데, 한 발짝 들여다보면 굉장히 내향적인 편이었다.
누가 걸어오는 말에는 부드럽게 응대해 주지만 본인이 그런 걸 힘들어하는 듯했다. 내향성인 사람들이 외부인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특유의 기 빨림 현상처럼 보인다고 할까.
문제를 슥슥 푸는 그를 보며 내가 엄지를 들었다.
“와, 선배님. 기억력 진짜 좋으시네요.”
“대본 외울 일이 많아서 그래.”
“아니에요. 이건 정말… 기억력 자체가 좋아야 가능한 일이에요.”
“그런가? …아, 다 풀었다.”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다.
그동안 팀원들도 전략을 짜고 있었다.
우린 다른 팀과 달리 특별한 전략이 필요 없었다.
말 그대로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이 있었기에, 어딜 가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가 더 중요했다.
우리의 초점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동선.
흑염소에게 쫓기는 바람에 온 동네를 누볐던 헤이션과 중현이가 빠른 루트를 말해 주는 동안, 여희연이 말했다.
“최대한 빨리 치고 빠져야 돼요. 히트 앤 런, 알죠? 황금열쇠부터 먼저 챙기고, 열여섯 개 딱 모이면 바로 뒷산 가는 거예요. 오케이?”
“좀 적당히 들볶아라, 여희연. 아주 눈에서 불이 아아…!”
오빠를 응징하던 여희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주?”
“네, 선배님.”
“삽질 연습 많이 했다고 했지? 넌 최대한 뒷산 입구 주변에서 움직이도록 해. 열쇠는 우리가 챙길 테니까, 언제든 바로 튀어 갈 수 있도록.”
“네, 그럴게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을 물었다.
“참, 그런데 다른 팀 분들 추격은 어떻게 따돌려야 할까요?”
“그거야 빨리 뛰면 되지.”
“…….”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가운데, 여희찬이 혀를 찼다.
“동생아. 그건 너나 가능한 거고.”
“아, 그런가? 그럼….”
그렇게 모두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중현이가 의견을 제시했다.
“제가 떠오르는 게 하나 있어요.”
모두의 마음에 쏙 드는 아이디어였다.
* * *
저녁 7시.
“지금부터 미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준비를 해 주시고… 하나둘… 셋! 출발해 주세요!”
확성기를 든 메인 피디의 신호에 맞춰서 30명의 연예인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각자 미리 경로를 확인한 집으로 흩어지는 한편, C팀의 꽁무니에는 시작부터 여럿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열쇠 뺏기가 가능한 건 마을 초중반 지점.
VJ를 포함해 게스트들도 숨소리가 거칠어질 무렵, 마침내 C팀 모두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딘가 불길하게 쇠사슬이 촤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A팀의 서지형, B팀의 송진우는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
하지만 C팀의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끼이익-
뒷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제야 서지형과 송진우이 뛰려 했지만, 미처 마당을 통과하지 못했다.
거기 서 있는 존재 때문이었다.
메에에-
단전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묵직한 울음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누런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 커다란 흑색 털뭉치에 두 남자는 침을 삼켰다.
‘그러고 보니…….’
C팀에서 흑염소에게 쫓긴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처음에는 무슨 염소한테 쫓기냐고 비웃었는데, 막상 당사자가 되니 웃을 일이 아니었다.
한편, 두 인간이 멈칫하자, 흑염소 대길이는 방금 들었던 김중현의 속삭임을 떠올렸다.
‘메에에. 메에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흑염소에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대길이가 침입자들을 향해 투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촤르륵-
흑염소가 달려들자,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닿지는 못했고 그 모습에 서지형이랑 송진우가 서로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어휴, 묶여 있는데 쫄았네요.”
“그니까요. 염소야, 형들 좀 지나갈게~”
“괜히 쫄았다, 진짜.”
그들이 웃을 때마다 흑염소는 더욱더 분노를 폭발하며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툭-
“…….”
흑염소와 두 인간이 눈이 마주친 순간, 낮에 있었던 일이 사람만 바뀐 채 다시 한 번 반복됐다.
* * *
왕지호는 헤이션과 2인 1조로 움직이고 있었다.
“칠성댁 할머니! 8번이여! 고향 경남 거제.”
“오야.”
그런 식으로 암호를 대며 종이로 된 증서를 받으러 다닐 때였다.
첫 번째 집에서 기분 좋게 나오는데 곧장 숙적과 마주쳐 버렸다.
걸스온탑의 오혜나와 길채경.
눈매가 매섭게 생긴 이와 참한 얼굴의 앙숙이 골목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러곤 왕지호를 가리켰다.
“대결을 신청한다!”
왕지호는 걸그룹 멤버들을 보면서 공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형, 저 표정 관리 안 되면 어떡하져.
-그냥 연기라고 생각해.
이전에 한 대화를 떠올리니 마음이 편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응, 오랜만이야.”
서로 친근하게 대화하는 둘의 모습에 헤이션이 물었다.
“서로 아는 사이야?”
“고등학교 같은 반이에여. 제가 반장이고, 저 선배님이 부반장이에여.”
“같은 반이었구나. 어쩐지. 근데 네가 반장이었어?”
“넹.”
“오, 은근히 리더구나. 너.”
“아니에여. 피자랑 치킨 두 판 돌리니까 애들이 반장 시켜 주던데여?’
“…….”
그러는 동안 제작진이 말했다.
“도전자는 길채경 씨고, 지목은 왕지호 씨를 하신 거죠?”
“네.”
“열쇠를 몇 개 거시겠어요?”
“한… 아니, 두 개요.”
고개를 끄덕이던 제작진이 말했다.
“총 3판 2선승제로, 미션 내용은 상식 퀴즈입니다.”
“사, 상식이여?”
왕지호는 눈앞이 캄캄했다.
세상에서 제일 자신 없는 게 상식인데 이를 어떡한담.
이런 건 리혁이 형이나 우주 형을 시켜야 하는데…….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두 형은 근처에 없으니까 자신이 혼자서 해야 할 일이었다.
“자, 그럼 첫 번째 문제입니다. 미국의 수도는?”
“채경! 뉴욕이요.”
“아닙니다.”
“지호! LA요!”
“아닙니다.”
“채경! 로스앤젤레스!”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뒤에서 헤이션과 오혜나가 막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고 있었지만, 보컬과 1반의 반장, 부반장은 치열하게 무식함을 자랑했다.
“채경! 워싱턴!”
“정답입니다!”
“아아…! 방금 하려고 했는데!”
전 세계의 도시 이름이 50개 넘게 나온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1승을 거둔 길채경이 은근히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내는 동안, 왕지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퀴즈에 왕지호는 눈을 반짝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시를 쓴 시인은 누구일까요?”
“어… 어…….”
이거 들었는데.
예전에 우리 수플레들 이름 정해지고 우주 형을 놀릴 때, 중현이 형이 읊었던 시였다.
근데 왜 안 떠오르지.
이거 제목 들었는데.
아 진짜, 왕지호 이 멍청이… 라는 생각을 할 때, 멍청하단 키워드에 뇌가 저절로 반응했다.
-김춘수잖아. 멍청아. 문학 시간에 졸았냐?
왕지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지호! 김춘수요!”
“오오… 세상에.”
뒤에 서 있던 헤이션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탄했고, 왕지호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길채경을 향해서도 웃어 주었다.
“이거, 우리 문학 시간에 배웠잖아여.”
“우리 학년에는 문학 수업 없는데.”
“…다음 퀴즈 주세여!”
이제 일대일.
승부욕을 불태우는 두 아이돌 앞에 퀴즈가 주어졌다.
“마지막 퀴즈입니다. 우리나라의 광역시 여섯 곳을 대 주세요.”
“…광역시?”
왕지호는 귀를 의심했다.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분명 여섯 광역시의 이름이 뭐고, 어딘지까지 방금 전에 들었었다.
임순현 할머니가 그건 포메라니안도 안다면서 말했지.
‘근데 뭐였지.’
머릿속으로 그 도시명을 떠올리는 동안, 길채경이 잽싸게 손을 들었다.
“채경! 서울, 인천…….”
“아닙니다.”
“지호!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광주, 어, 어… 우우우… 울산!”
“정답입니다!”
길채경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왕지호는 왠지 의기양양한 기분이었다.
뒤에 있던 헤이션이 왜 똑같은 표정을 짓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왕지호는 길채경에게 다가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열쇠 잘 받아갈게요!”
* * *
나는 맥시와 한 팀이 되어 돌아다녔다.
우리 C팀은 현재 11개로 선두를 달리는 중이었고, B팀 7개, A팀이 9개로 바짝 추격하는 중이었다.
미리 예정된 두어 개 장소를 돌아다니고 뒷산 근처에서 쉬는 사이, 제작진이 슬픈 소식을 알렸다.
“C팀 1개 빠졌습니다!”
“왜요?”
맥시의 물음에 VJ가 핸드폰을 보며 대답을 했다.
“헤이션 팀이 2개를 얻고, 리혁 팀이 3개를 잃어서 하나가 빠졌어요. 종목은 둘 다 퀴즈고요.”
“…예?”
지금 잘못 들은 건가.
막내가 퀴즈에서 이기고, 리혁이가 졌단 말이야?
“리혁 팀 같은 경우는 넌센스 퀴즈였다네요.”
“아….”
“헤이션 팀은 간단 상식 퀴즈였고.”
“아…?”
하나는 이해가 갔고, 하나는 이해가 안 갔지만 어쨌든 크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어느 정도 열쇠를 얻은 다음부터 뺏고 뺏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한 팀에서 앞선다 싶으면 다른 두 팀이 합공해서 달려들고, 그런 식으로 견제가 이뤄질 때였다.
그야말로 다이나믹한 싸움.
하지만 대기를 타는 입장에서 하품만 쩍쩍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누구라도 찾아와 주면 좋겠다.”
“그러게요. 이거 은근히 심심하네요.”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부스럭-
수풀이 부스럭거리더니 웬 꾀죄죄한 몰골의 남자가 등장했다.
서지형이었다.
그런데 어째 우리를 보고 더 놀란 것 같다.
“어. 뭐야. 왜 여기…….”
그러더니 이내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지형이 나를 지목했다.
“대결을 신청한다!”
순식간에 일이 진행됐다.
곧바로 우리가 겨루게 될 미션도 공개됐는데 바로 ‘닭싸움’이었다.
제작진이 돌멩이로 흙바닥에 금을 긋는 동안, 서지형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저러지.
다 이겼다는 표정을 짓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몸 쓰는 건 내 장기인 걸.
* * *
서지형은 다리를 붙잡고 섰다.
미적지근한 바람이 휩쓰는 공터에 서서 그는 비장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닭싸움은 그의 특기였다.
예능판에서 10년 가까이 전전하면서 맨날 했던 게 풍선 터뜨리기, 닭싸움 같은 게임이었으니까.
‘이건 내가 이긴다.’
99프로 확률로 장담할 수 있었다.
상대가 이길 확률은 1프로나 될까.
전생에 닭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저 모습을 봐라.
생긴 것만 이견우 뺨치게 잘생겼지, 몸이 얄쌍했다.
체중이 20키로는 넘게 차이가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정도 체급 차이면 한 번 퉁 튀기기만 해도 충분할 듯했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 있게 질렀다.
“두 개 걸겠습니다.”
곧바로 경기가 시작됐다.
3판 2선승제.
‘초장부터 깔끔하게 간다!’
경기 시작을 알리자마자 서지형은 자신 있게 돌격했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있는 아이돌에 몸을 날릴 때.
‘…어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몸에 닿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 눈앞이 번쩍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쓰러져 있었다.
“…뭐, 뭐야?”
“괜찮으신가요?”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부딪치기 직전 갑자기 사라지더니 뒤에서 충격이 가해졌다.
VJ에게 카메라를 빌려서 리플레이라도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두 번째 판에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렇게 간을 보듯 움직이자, 선우주도 같이 얄밉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도 체급 차이를 고려한 듯했다.
‘근데 뭐지, 얘.’
아까 전생에 닭이면 모른다고 했는데, 지금 하는 걸 보면 무슨 닭싸움 판에서 십수 년 구르다 온 고수 같다.
‘아오! 왜 안 잡히냐고!’
잡히려고 할 때마다 얄밉게 쏙 빠져나가고. 그럴 때마다 싱긋 웃는 게 굉장히 얄미웠다.
개인감정 때문이라고 할까.
생각해 보면 오프닝 때부터 사람 민망하게 하질 않나, 요리 미션 때 열심히 뛰었던 걸 무용지물로 하지를 않나. 물론 그걸 선우주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마침 기회가 있을 때, 콱 눌러 주자고 생각했는데 어째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하지만 곧 기회가 찾아왔다.
서지형은 마침내 상대가 지쳤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이다!’
빈틈을 보이는 선우주에게 깡총깡총 뛰어들었다.
그 순간 선우주의 입가가 묘하게 곡선을 그렸다.
‘…어?’
충돌을 앞두고 선우주의 몸이 스르륵 옆으로 빠졌다. 그리고 서지형이 멈춰 선 곳은 흙바닥에 돌로 그은 선이었다.
“어어어!”
그 가장자리에서 오뚝이처럼 허우적거리자, 선우주가 다가와서 그 무게중심을 툭 치고 갔다.
“으엇! 어푸푸!”
곧바로 엎어졌다.
왠지 모를 민망함에 그렇게 잠시간 엎드린 채로 있을 때, 누군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호피무늬 바지.
그리고 야밤에 낀 선글라스.
맥시가 그를 보며 짠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에궁.. 애꿎은 열쇠만 날리셨네.”
“…….”
서지형은 왠지 모르게 울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