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0화
저녁 6시.
노란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 그 시각, 전국의 고속 도로와 터미널은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랜만에 만날 가족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사람들은 금세 피곤함에 지쳤다.
누군가는 정체된 고속 도로를 보며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티켓을 쥔 채 대합실의 전광판을 흘깃거렸다.
몇몇은 종이컵에 담은 오뎅 국물로 주린 배를 달랬다.
지루한 시간을 때우는 방법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기도 하고, 친구와 메시지를 나누기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TV였다.
고속 도로에 갇혀 칭얼대는 아들딸들에게 시달리던 이는 DMB를 틀었고,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대형 TV를 빤히 바라보았다.
일요일 저녁인 만큼 채널은 자연스럽게 TBC에 고정되어 있었다.
-굴려굴려! 주사위!
-와아아!
방송국 앞에 모인 연예인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에 TV를 보던 이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와, 사람 진짜 많다. 뭐 하려고 저렇게 많이 불렀대?”
“예고 뜬 거 보니까 어디 농촌 가서 미션 하나 봐. 팀별로 갈라서 승부하고 그러는 것 같던데.”
“그래? 재미있으려나.”
주세한 멤버들이 게스트를 소개하는 동안, TV를 보던 귀성객들도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소라 비율 봐. 미쳤다.”
“서지형은 또 나오네. 지난번에 갯벌 그거 할 때도 나오지 않았냐? 저 정도면 거의 개근상인데.”
“자기야, 저기 배우 그 사람 맞지? 기억의 붓에서 화가. 진짜 잘생겼다. 연예인 사이에서도 확 튀네.”
각 분야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이들이 출연하면서,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집중됐다.
“뭐야. 벌써 기사도 떴네.”
“진짜?”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포털 연예면에 기사가 떴다.
-추석 특집 주세한, ★들이 뭉쳤다
-이견우, “기억의 붓 이후로 5kg 쪄. 귀엽게 봐주셨으면….”
-희찬&희연, 어김없는 지각 남매에 출연진 웃음
그야말로 국민 예능다웠다.
별것 아닌 대화까지 기사가 올라오고,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실시간으로 방송을 달리는 이들의 글로 가득했다.
오죽하면 웹서핑만 하려던 이들도 궁금해서 대합실의 TV로 시선을 돌릴 정도였다.
그러곤 얼마 안 가 미소를 짓거나 웃음을 터뜨렸다.
운전 중인 귀성객들은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출연진들의 대화에 픽 웃음을 터트렸다.
각종 상황극이나 애드립, 웃긴 일화나 무전기를 이용한 차량 간 의사소통까지.
그러는 동안 뉴블랙도 잠깐씩 나왔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 잘생겼다.”
…라는 반응과 함께 잠깐 인터넷을 검색해 보는 정도.
이견우, 한소라 등의 이름이 가득한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볼 수 있듯 사람들은 신인 보이그룹이 누군지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아이돌이라고 하면 TNT 정도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미션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의 눈에 뉴블랙이란 그룹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 쟤는 살림 좀 해 봤나 보네.”
“청소하는 게 저렇게 좋은가?”
날씨가 덥다며 오징어처럼 온몸을 흐느적대던 아이돌 멤버가 눈을 반짝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얼음 부스러기가 떨어질 만큼 냉랭한 인상이 지금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설정 아냐?”
“아냐, 저거 봐……. 엄마랑 똑같아. 잔소리하면서 막 치우고.”
활짝 피는 얼굴.
자본주의의 미소가 아니라 진정 행복해서 우러나오는 웃음이 냉막한 얼굴에 걸렸다.
환하게 웃으며 미소 짓는데 배경으로 깔리는 봄꽃 CG까지.
서울역 대합실에 앉아 있던 누군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헐, 97년생이래. 완전 애기네. 애기. 나랑 10살 차이.”
“같이 있는 애는?”
“쟤는 93이래.”
요즘 아이돌들 어리다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어서 청소의 결과물이 나왔다.
놀랍도록 바뀐 풍경.
가구 배치를 바꾸고 짐을 치웠을 뿐인데도 집이 달라 보였다.
“오…….”
“사소한 게 차이가 진짜 크구만. 가구만 옮겼는데 집이 확 사네.”
“쟤는 업체 차려도 되겠다, 야.”
어떤 이유로 가구를 배치하였는지 신이 나서 설명하는 아이돌 멤버의 모습과 함께 감동하는 할머니의 표정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훈훈한 장면이었다.
다시 A팀의 배우들과 B팀 가수들로 장면이 전환되면서 머릿속의 뉴블랙이 잊혀질 때.
이번에는 또 다른 멤버가 등장했다.
우아한 미소년처럼 생긴 멤버가 마을회관 안에서 여희연과 걱정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떡하죠, 선배님. 저분들 너무 잘하시는 것 같아요.
-괜찮아. 이길 수 있어.
카메라는 A팀의 서지형과 한여름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담았다.
홍대에서 유명 곱창집을 직접 운영하는 만큼 서지형의 요리 솜씨도 범상치 않았고, 한여름은 그야말로 요리의 신처럼 나오고 있었다.
‘국내파와 유학파의 콜라보’라는 자막과 함께 요리 만화의 BGM이 나오면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감탄했다.
“와, 서지형이 다시 보이네.”
“한여름인가, 저 사람 진짜 잘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요리사 같아.”
반면, 요리를 거의 활활 태우고 있는 B팀의 모습에는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주세한의 멤버 송진우와 걸스온탑 주하나가 개그 콤비처럼 손에 닿는 모든 걸 파괴하고 있었다.
그렇게 화면은 C팀으로 넘어갔다.
이쪽은 과연 어떤 의미로 개판을 보여 줄 것인가.
여희연이야 요리 쪽은 젬병으로 유명하고 저 곱상한 아이돌도 요리와는 백만 광년 정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어서 나온 장면은 모두의 기대를 배반했다.
미션을 걱정스럽게 얘기하던 비주가 식칼을 잡더니, 주어진 당근을 순식간에 잘라냈다.
“……?”
자신이 없다거나, 걱정된다는 모습만 편집되어 나온 터라 보고 있던 사람들은 눈을 깜빡였다.
화면 속 여희연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요리가 취미라고 하지 않았니?
-네, 취미 맞아요.
취미라고는 볼 수 없는 요리 솜씨의 향연에 지켜보던 A팀도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둘의 관계도 변화해서, 비주가 여희연을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나 이거 다 했어!
-잘했어요, 선배님. 이거 드셔 보세요.
-어, 감사… 아니 고마워.
칭찬의 의미로 주는 고기를 얻어먹으며 기뻐하던 여희연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쟤도 좀 특이하네.”
“그러니까, 소심한 줄 알았는데 할 말 다 해.”
처음에는 곱상하고 연약해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프로 살림꾼 같은 캐릭터였다.
그런 식으로 뉴블랙은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었다.
하지만 독특한 캐릭터성으로 시선을 끌었지만 예능적으로 엄청 웃기다는 인상을 주는 건 아니었다.
그림같이 생긴 애들이 희한한 짓을 하고 다녀서 눈에 띄었던 정도.
하지만 그때.
TV 화면으로 A팀 배우들이 경악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꺄아악! 뭐야, 저거.
두둥! 하는 효과음과 함께 슬로우 화면으로 흑염소 한 마리가 등장했다.
자막으로 [♂대길이, 8살, 분노조절장애]라는 흘러나오자 귀성객들이 웃으며 감탄했다.
“진짜 크다, 저 흑염소. 물소 같애.”
“밤에 저거 보면 놀라서 기절할 것 같은데. 성격도 진짜….”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을 들이받을 기세로 날뛰는 흑염소의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긴장감이 고조될 무렵, 헤이션과 김중현이 대길이네를 방문했다.
레게 머리의 래퍼가 무릎을 굽혀 염소를 향해 미소를 짓자, 도전으로 받아들인 흑염소가 날뛰었다.
그리고 뚝.
‘! ! !’라는 큰 느낌표가 연속해서 화면을 채우는 동안, TV속의 인간들이 몸이 굳었다.
[정지 화면 아님]이라는 자막이 나오는 가운데 ‘튀어!’라는 외침과 함께 달리기가 시작됐다.
목줄에 돌을 매단 흑염소와 거기에 쫓기는 인간들의 우스꽝스런 장면이 나오는 순간.
“푸하하하!”
어두운 차량 안에서, 대합실에서, KTX나 버스에서 주세한을 시청하던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흑염소가 추격할 때마다 웃음이 터졌고, 곳곳에서 찍힌 출연진의 도주 장면이 한 편의 코미디 영화처럼 흘러나왔다.
몇몇은 너무 웃어서 눈물을 닦을 정도였다.
“와, 대박이다. 진짜.”
“너무 웃긴데. 짜고 친 거라도 해도 안 믿겠다, 야.”
“아이고, 배 당겨.”
기다리고 있는 열차나 눈앞의 막히는 길은 머릿속에서 싹 사라지고 흑염소와 인간들의 쫓고 쫓기는 장면이 뇌리에 남았다.
‘뉴블랙’과 ‘중현’이란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건 그때였다.
그 이후, 방송에서 중현은 연일 화제의 인물이었다.
염소와 레슬링을 하는가 하면, 우직하게 생겨서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들꽃의 이름을 부르고, 사과 농장에서도 동갑내기 친구에게 과수원에 관한 지식도 알려 주고.
농촌에 특화된 모습이었다.
그가 방송에서 주목을 받은 이후, 뉴블랙을 은근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둘 늘어갔다.
같은 장면에 여러 게스트가 잡혔다면 뉴블랙 쪽을 무의식적으로 보게 되고, 뉴블랙이 단독 샷으로 잡혀 나올 때면 왠지 모르게 친근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럴수록, 지금까지 부각되지 않았던 한 멤버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바로 우주였다.
다른 멤버들이 독특한 캐릭터나 오늘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면, 우주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할머니들과 손을 잡고 친구처럼 같이 수다를 떠는 모습에 지켜보던 중년 여성이 미소를 지었고.
얼굴을 비추지 않고 있던 강문식 노인이 돌아오자 미션 승패를 떠나 진심으로 기뻐하며 웃는 표정에, 터미널 벤치에 앉아 지팡이를 짚고 있던 노인이 TV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세한의 두 멤버 우재용과 양옥분이 어르신들과 섞여서 안마를 받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누가 봐도 힘에 부쳐 보이는데도 활발하게 웃으며 노인들과 즐겁게 수다를 떠는 모습.
도중에 벌개진 손을 뒷짐 지고 몇 번이고 혼자 주무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나이 든 누군가 TV를 보며 말했다.
“애가 참 기특하네.”
이번 추석특집의 테마인 ‘효도’에 걸맞는 모습에 따스한 시선이 흘러들었다.
이어서 뉴블랙이 다 같이 나왔다.
막내가 트로트를 부르며 재롱을 부리는 모습, 다른 멤버들이 대신해서 안마를 해 주는 모습이 나오면서 귀성객들이 입가에 훈훈한 미소를 띠었다.
왠지 힐링이 되는 듯한 장면이었다.
다른 팀들도 비슷한 감동 코드를 연출하면서 주세한의 1부는 따뜻하게 끝이 났다.
이어서 예고편에 나오는 삽질이라든가, 각종 미션을 하는 모습이 버라이어티하게 흘러나왔지만 그 자체로도 완결성이 높은 편이었다.
그렇게 방송이 끝났을 때.
추석 귀성길에 관한 소식이 흘러나오는 뉴스 예고를 보는 동안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시 지루함 속으로, 시간을 때울 다른 것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오늘 방송을 재미있게 보았던 귀성객들은 자연스럽게 인터넷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늘 방송에서 보았던 장면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과 생각이 같은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내 인터넷에 가득한 SNS나 커뮤니티의 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하지만 인터넷을 보며 당혹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전역한 지 오래 되지 않은 한 남자, 하은성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눈을 깜빡였다.
TV 속에서 봤던 익숙한 얼굴 때문이었다.
‘뭐지, 진짜.’
포털에 나오는 ‘뉴블랙 우주’라는 프로필을 보며 그는 어리둥절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만났던 선임이 TV에 아이돌로 나오고 있었다.
‘수능 보러 간 거 아니었어?’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다.
* * *
실시간 검색어에 뉴블랙의 이름이 오르고, 연예부 기자들이 발 빠르게 그에 관한 기사를 올릴 때.
평균 시청률 18.8 퍼센트로 동시간대 2위를 10퍼센트 넘게 따돌린 주세한의 추석 특집은 집집마다 화젯거리였다.
경기도의 어느 전원 주택.
“뉴블랙인가. 쟤네는 뭐 하는 애들이래?”
“아이돌이라는데요. 요즘 어린애들한테 유명한가 보죠, 뭐.”
“처음 들어 보는데. 하긴, 뭐 아는 애들이 있어야지. 어이구, 저 안마 나도 한 번 받아 보고 싶네.”
“이거 끝나면 뉴스지?”
온 가족이 상을 피고 식사를 하는 자리.
정치나 취업 얘기 같은 불편한 화제 대신 TV에 흘러나오는 예능이 안주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연예인들에 대한 평과 함께 뉴블랙의 이름이 오를 때마다 움찔움찔하는 이가 있었으니.
한 손으로 김치찌개를 뜨면서 다른 손으론 상 밑으로 핸드폰을 두드렸다.
-저 지금 기분 너무 이상해요ㅠㅠㅠ TV 보면서 가족들이 우리 애들 얘기하고 그러니까
글이 올라오자 다른 수플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저두요.. 기분 진짜 이상함. 좋기는 한데 얼떨떨하네요;;
-뉴블랙이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대답하고 싶어서 혀와 입술이 봉산탈춤을 추는 중
-큰아빠 질문에 입이 꼬여서 쟤 우주인데 이름은 몰라요 함.. 하.. 지금 작은아빠가 저런 데 관심이 많구나ㅎ? 하고 놀리는 중. 조용히 해요 작은아빠. 제가 공방도 다녀왔어요..
-친척들 보면서 다 웃었어요 ㅋㅋㅋㅋㅋ 중현이 염소 추격할 때 개터짐ㅋㅋㅋㅋㅋㅋ 진짜 도른자
-내가 진짜 추석 때 친척들이랑 뉴블랙 얘기를 하게 될 줄이야
-진짜 고생 많았아 얘들아ㅠㅠㅠㅠㅠ
그런 댓글이 나오는 가운데, 현재 수플레들이 품고 있는 생각을 대변하듯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반응 진짜 좋은데 이거 오래 갔음 좋겠어요ㅠㅠ
* * *
썸씽으로 대박이 났을 때가 떠오른다.
지호 졸업식에 갔는데 갑자기 연예부 기자들이 인터뷰하자고 그러고 했었지.
이번에는 부모님들이 그 인터뷰 대상이었다.
“여보세요, 아. 맞아. 우리 애야. 신기하지? 나도 보면서 놀랬다니까. 우리 아들이 그렇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응응, 그 피디님이 아주 좋게 봤나 봐.”
“그니까, 나도 중현이가 뛰어 댕겼을 때 웃었다니까. 아, 뭔 소리야. 중현이가 왜 니네 조카딸이랑 영상 통화를 해? 이상한 소리하려거들랑 끊어.”
“여보세요. 아, 숙자냐? 뭐? 방송 봤다구?”
가까운 친지나 지인들이 방송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연락을 했다.
너네 아들 방송 나오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 진짜냐 등등.
우리 김덕순 여사도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지만, 말만 그러지 뺨이 씰룩거리고 있다.
다른 부모님들은 아예 광대가 치솟다 못해 하늘로 폭발하고 계시고.
보는 내가 다 뿌듯하다.
어찌 보면 고작 방송 하나에 출연한 것뿐이지만, 부모님들은 세상 이토록 자랑스러운 일이 없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몇몇은 핸드폰을 든 손을 달달 떨고 있었다.
그만큼 한편으론 다들 얼떨떨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우리들의 폰도 쉴 새 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대박. 저 지금 톡 엄청 들어오고 있어여.”
“나도.”
“나도 그런데, 오랜만에 듣는 이름 되게 많아.”
확실히 주세한이 국민 예능은 국민 예능인가보다.
군대 다닐 때 선후임이나 동기들, 아는 트레이너 쌤들, TJ 때 친하게 지냈던 연습생 동기들, 초중고 친구들.
연락이 올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오는 중이다.
주세한 팀 단톡방과 장소원 선배로부터 온 톡에 답장을 한 후, 일단 핸드폰을 껐다.
“…뭐지. 기분이 너무 이상한걸.”
현실감이 없었다.
예능 하나로 이 정도 반응이 온다는 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면서도, 사실 내가 예능에 제대로 나와 본 적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핸드폰을 끈 비주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저도 이상해요. 현실이 아니라 꿈인 거 같고.”
“한 번 꼬집어 볼까?”
“좋아요. 형.”
꿈이 아니었다.
요리 덕후의 손맛이 얼마나 매운지 다시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됐을 뿐.
우리 모두 같은 표정이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주변이 울렁거리는 느낌이고.
예능 하나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내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잘 모르겠다.
생각이 엉켜서 판단이 어려웠다.
예능에 좋게 나온 것 같긴 한데 얼마나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하나도 감이 안 온다고 할까.
모든 게 처음이었다.
“어우, 심장 떨려.”
리혁이는 손을 달달 떨다가 물컵을 엎었고, 지호는 목이 타는 듯 연신 콜라 잔만 흘깃거렸다.
멀뚱멀뚱 인터넷만 바라보던 중현이는 나를 바라보았다.
“형, 우리 이제 어떡하죠.”
“뭐가?”
“인터뷰 준비라도 해야 될까요? 사랑해요, 연예가 통신 이런 거 준비해야 되나.”
“그런 걸 왜 준비해.”
그만 웃음이 나왔다.
한편, 동생들이 달뜬 얼굴을 할수록, 나는 이성을 되찾았다.
예능으로 주목을 받아서 반짝 뜬 선배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진정하고.”
삑사리가 나왔다.
목이 탄다.
일단 근처에 보이는 누군가의 콜라를 원샷했다.
뭐야. 맛이 좀 이상한데, 기분 탓인가.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할 정신머리도 없는 터였다.
“너무 흥분하지 말자. 예능이야 반응 좋아도 보통 하루, 이틀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거 알잖아.”
그런 말을 하며 동생들을 다독일 때.
통화를 끝낸 석환 형이 또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곤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 벌써 케이블에서 섭외 요청 하나 들어왔어.”
“…지금?”
하지만 어떤 생각을 이어 가기도 전에 나는 몸을 휘청였다.
왜 이렇게 어지럽지.
“형, 왜 그래요?”
“잠깐만.”
동생들에게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어 보였다.
그러곤 벽에 몸을 기댔다.
이거 술 마셨을 때 증상인데….
내가 술을 마셨나?
그 순간, 견딜 수 없는 졸음이 쏟아져왔다.
* * *
30초 동안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잠에 빠진 선우주의 모습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우주 형? 왜 그래여?!”
“119 불러야 되는 거 아니야? 정신 차려요!”
놀라서 눈이 뒤집어진 서리혁이 선우주의 뺨을 연속기로 때리는 가운데, 왕지호가 그 손목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우주 형 때리지 마여! 그러다 잘못되면 어떡해여!”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런 걸로 안 죽는다고!”
“우주 형? 제 말이 들려요? 들리면 눈 좀 깜빡여 봐요.”
“얘들아, 왜 그래?”
“우주 형이 갑자기 어지럽다고 하더니 기절했어요.”
어른들도 놀라서 뒤숭숭할 때, 파마머리가 흩날릴 만큼 빠른 속도로 김덕순 여사가 달려왔다.
놀란 것도 잠시, 이내 손자의 상태를 보던 김덕순 여사가 혀를 찼다.
“술 마셨네, 이놈의 거.”
“…술이요?”
“이것이 혓바닥에 소주 한 방울만 묻혀도 맛이 가는 놈이여. 의사가 그러는데 뭐가 없어서 그렇다는데.”
“근데 우주 형은 콜라 마셨는…….”
곧바로 선우주가 방금 마셨던 콜라 잔, 그리고 그 주인에게 시선이 모였다.
“지호야.”
“…….”
“너 저기 뭐 넣었어?”
“그, 그게여.”
왕지호가 우물쭈물 말을 피했다.
“그, 맥주 쪼끔…?”
“…….”
“궁금해서 소주도 쪼끔….”
“…….”
“그, 그래도 콜라가 제일 많아여! 저도 아직 안 먹었…….”
곧바로 세 누나의 손에 붙들린 왕지호가 괴로워하고, 오빠의 모습을 보고 놀란 동생에게 서리혁이 쩔쩔 맬 때.
김중현과 김비주가 걱정된다는 듯 쪼그려 앉아서 리더를 살폈다.
“괜찮은 거죠? 응급실 가야 되는 거 아닌가.”
“의사가 그러는데 잠만 자는 거라 걱정 안 혀도 된디야.”
김덕순 여사가 그 곁에 앉으며 말했다.
“어이구, 이 옘병할 놈. 술인지 콜라인지, 된장이랑 똥도 구별 못하냐.”
새근새근 잠이 든 손자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던 김덕순 여사가 미소를 지었다.
추석 전날.
예능 출연으로 달아올랐던 그날의 가족 모임은 엉뚱한 소맥 콜라 소동으로 마무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