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1화
18장. 행운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
자고 일어났더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고급스런 호텔 객실.
창밖으로 보이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어제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회상을… 하기는 개뿔.
“우웁!”
침대 시트를 걷고 화장실로 달려 나갔다. 변기를 붙잡고 한참 동안 헛구역질만 했다.
다행이었다.
어제 먹었던 게 1인분에 무려 5만 9천 원짜리였다.
다른 건 몰라도 그런 비싼 고기를 토했다간 두고두고 기억날 테니까.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고 한참 동안 차가운 화장실 벽에 머리를 기댔다.
두통 때문에 골이 지끈지끈했다.
그 순간, 불이 탁 켜져서 뒤를 돌아보니 우리 김덕순 여사가 잠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
“괜찮냐?”
“…어, 할머니. 나 속이 좀 울렁거려서. 별일 아니야, 신경 쓸 거 없어.”
“옘병하고 있네. 고깃집에서부터 엎어져 가지고 지랄을 떨고 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
그러고 보니 우리 김덕순 여사 눈에 그늘이 짙다.
처음에는 눈 화장을 안 지운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다크서클이었다.
설마.
“할머니, 나 때문에 못 잤어?”
“아녀.”
“그냥 자지…….”
“아니라니까 그려. 술 퍼 먹고 뻗은 놈이 뭐가 예쁘다고 밤새 옆에 붙어 있냐, 붙어 있기를.”
아닌 게 아니라, 덕순 여사님 말씀하시는 걸 보니 맞다.
“예쁘지 않기는 왜 안 예…….”
“이눔이 술이 덜 깼나.”
“우웁!”
다시 헛구역질을 하는 동안, 김덕순 여사의 두툼한 손이 내 등을 두드려 줬다.
한참 동안 그러고 나서, 나는 호텔 객실에 놓인 테이블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새벽 5시.
창밖으로 도심의 까만 야경이 보였다.
그 뒤로 유리창에 김덕순 여사가 주섬주섬 컵라면을 뜯는 모습이 비쳤다.
내가 반색했다.
“나 마침 해장하려고 했는데 잘….”
“내 거여.”
“…….”
“뭐여, 너도 줘?”
“됐어요. 안 먹어.”
컵라면 두 개가 완성됐다.
이따 생방송이 하나 있는 터라 국물은 최소한으로 먹었지만, 그래도 속이 좀 풀리는 듯했다.
얼큰하고 짭조름한 국물 맛을 즐기는 동안 조손이 하나 되어 후루룹 소리를 냈다.
“…그래서 난 누가 데려온 거야?”
“중현이가 업고 왔지.”
“고생했네. …근데 호텔 들어오면서 내 얼굴은 가렸지?”
“마스크로 가렸지. 휠체어만 안 탔지 뭔 재벌 회장처럼 나오더라, 다 너 보고 웃었어.”
“…….”
망했다. 아침에 다른 가족들 얼굴을 어떻게 보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중얼거렸다.
“가만 안 둘 거야, 왕지호.”
“…그려도 너무 혼내구 그러지는 말구. 안 그려도 어제 지 누나들한테 탈탈탈 혼났어.”
“당연히 혼나야지.”
어딜 미성년자가 술을 마시려고. 내 안에 있는 유교 정신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할머니가 웃었다.
“그려도 애는 착하더라. 어제 다 새벽 한 시까지 있다 간 거 아녀.”
“그려?”
“그려. 너 깨어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무슨 주인 잃은 강아지 새끼들마냥 넷이서 널 싸돌고 있더라. 내가 하도 웃겨서 그걸 찍었어.”
“…푸핫!”
김덕순 여사가 핸드폰으로 찍었다는 사진을 보며 웃었다.
임종을 앞둔 노인의 침대에 손자손녀들이 모여 있듯, 동생들이 침대에 둘러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못 살겠다, 정말.”
“안 일어날 것 같다고 그러니까 네 핸드폰으로 동영상 찍고 가더라.”
핸드폰 앨범에 들어가니 정말 동영상 하나가 있었다. 궁금해서 잠깐 재생 버튼을 눌렀다.
네 명이 폰카에다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동생들입니다.
-근데 우리 인사 왜 하는 거야?
-안 하면 이상하지 않아…? 나는 카메라에 뭐 말하기 전에 인사 안 하면 어색한 것 같아.
-그런가. 그럼 인정.
-직업병이에요, 이거.
-형도 같이 인사했으면서 객관적인 척하지 마여.
-응, 소맥.
-할머니, 이 형 좀 혼내 주세여!
-얘들아. 싸우지 좀 말고. 우주 형한테 보내는 마음의 편지잖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데…….
-형, 우주 형 살아 있어요.
그 뒤로 10분이나 영상이 있었기에 일단 껐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떠올랐기에.
어제 주세한.
핸드폰에 쌓여 있는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 톡의 알림 숫자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내 생각보다 사람들이 예능을 많이 보셨나 봐.”
“오지게 봤다고 느이 실장님이 그러대. 나도 궁금혀서 비주한테 스마트폰 뚜드려 달라고 했는데, 엄청 기사도 많더만. 내가 그걸 보면서 증말 감탄을 했다니까.”
“오, 어떤 부분에?”
“스님이 참 용하기도 하지. 그랬잖어. 아주 이번 달부터 대운이 들어온다고…….”
보란 듯이 귀를 막았다.
그런 내 모습에 ‘ㅆ’, ‘ㄲ’ 등의 초성이 튀어나오며 할머니의 입모양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당연하게도, 삐졌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김덕순 여사의 화를 풀어 줄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할머니.”
“왜.”
“내가 말이야. 이번에 예능 나가서 따온 게 있거든.”
“뭐. 이눔아.”
가방을 열고 주섬주섬 상자 하나를 꺼냈다. 구겨질까 봐 이중삼중으로 포장한 봉투.
“열어 봐.”
“이게 뭐여, 글씨가 쬐깐해서 하나도 안 보이는데.”
“최고급 패키지 여행권이야.”
“……!”
황금 티켓을 만진 사람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는 우리 김덕순 여사.
곧바로 앙다물었던 입가가 사르르 풀리고, 눈매가 부드러워지는 모습에 난 흡족하게 웃었다.
역시 돈이 최고다.
* * *
오전 6시 30분.
서늘한 공기에 팔에 소름이 우수수 돋는 시각, 호텔 로비에서 우리는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가족들은 조식 뷔페를 먹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고, 우리는 메이크업을 위해 샵에 가야 했다.
“할머니, 이따 터미널에서 버스 타면 꼭 연락해.”
“알었으니까, 정신 똑디 차리구. 방송에서 또 빵 이름 실수 같은 거 하면 개망신이여.”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고는 그랜드 카니발에 올라탔다. 창문을 열고 각자 가족에게 손을 흔들었다.
가족들이 점처럼 사라진 뒤에야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민기 형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며 말을 걸었다.
“어제 방송 재미있더라.”
“형도 봤어요?”
“모니터링하려고 봤지. 친가에서 부모님이랑 봤는데, 너희 담당이라고 하니까 엄청 좋아하시더라.”
친척 동생들이 사인도 받아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며 로드 매니저가 웃었다.
그러곤 쉴 새 없이 반짝거리는 핸드폰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게 다 너희 관련해서 들어오는 연락들이야.”
“…이게요?”
“신기하지? 평소에는 연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던 기자들이 먼저 연락하지를 않나, 어디 케이블 방송국에서 전화 와서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고 묻지를 않나.”
이따 저녁에 방영될 주세한 2부가 어떻게 나올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했다.
들뜬 기분을 공유하기 위해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어째 얘네는 엉뚱한데 시선이 가 있었다.
“…왜 그렇게 나만 쳐다봐.”
내가 움직일 때마다 동생들의 눈동자가 따라서 움직였다. 무슨 동작 감지 센서 같았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너무 멀쩡해 보이니까 그러죠.”
리혁이가 말했다.
“어젯밤에 픽 쓰러졌던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당연히 괜찮지.”
“아, 얄밉게 웃으면서 그러지 말고, 진짜 괜찮은 거 맞냐고요.”
“오구구, 우리 리혁이 많이 놀랐어?”
“멀쩡하네. 아주 멀쩡해.”
짜증난다는 듯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리혁이를 보며 씩 웃었다.
그때, 큼지막한 손이 내 이마에 턱 얹어졌다.
비주가 중현이의 팔을 청진기라도 되는 것 마냥 붙잡고 그 손을 내 이마에 올리고 있었다.
지렁이 젤리를 우물거리던 중현이가 대답했다.
“36.7도.”
“음… 그러면 정상 체온이네. 정말 괜찮은가.”
“…너네 무슨 꽁트하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마침 차에 체온계가 있다며 민기 형이 빌려줘서 귀에 꽂았는데 36.8도가 나왔다.
“이런 건 대체 어떻게 맞추는 거야?”
“제가 좀 다재다능하잖아요.”
뿌듯해하는 중현이의 모습에 리혁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하여간 이상한 것 좀 성공시키지 마요, 중현이 형 이러니까 우리 팬분들이 맨날 뻥이라고 생각하지.”
“그니까여. 저도 학교 가서 형 얘기 하면 아무도 안 믿어 줘여.”
“뭐, 안 믿으면 어때.”
뒷자리에서 세상 태평한 어조로 말하는 중현이와 동생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내 옆에서 비주가 핸드폰에 메모장에 ‘어제 새벽 37.3도’ 같은 내용을 쓰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 상대가 민망하게 웃었다.
“동생 간병하던 게 습관이 돼서….”
“아.”
“근데 괜찮은 거 맞아요, 형? 혀끝에 소주 한 방울만 닿아도 취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누가 그래?”
“할머님이요.”
“…별걸 다 얘기해, 김덕순.”
뒷자리의 동생들이 웃으면서 민망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소주 한 모금까지는 그래도 마실 수 있어. 그 이상 넘어가면 픽픽 쓰러져서 문제지.”
“술 진짜 약하네요.”
“우리 리혁이, 술 마실 나이는 되니?”
“…….”
“형, 형, 그러면 술떡도 못 먹어여?”
“응, 먹으면 취해.”
그러곤 내게 말을 건 막내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어제도 그냥 소주나 맥주였으면 쓰러지진 않았을 거야. 누가 아주 콜라에 소맥을 만들어 놔서.”
“…죄송해여.”
삽시간에 풀이 죽은 모습을 보니 또 귀여웠다.
내가 아직 술이 덜 깨긴 했나 보다. 우리 막내가 귀엽게 느껴진다니.
“술이 그렇게 먹고 싶었어?”
“마시고 싶은 건 아닌데, 학교 가면 애들이 ‘에헤헤, 왕지호 술도 못 마셔 봤대여~’ 막 이러고 놀리니까.”
“걔네 이상한 애들이야. 놀지 마.”
“그래서 어제도 쪼끔 궁금해서 콜라에 넣어 보려고 했거든여. 그거 진짜 어렵게 만든 거예여. 혼신의 힘을 다해 누나랑 엄마 눈을 피해서 몰래몰래 모은 건데… 형이 원 샷을 할 줄은 몰랐어여.”
“사실, 따지고 보면 남의 잔을 원 샷한 사람 잘못이긴 하죠.”
“오,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는 뒷자리 놈들에게 내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리혁이, 어제 내 뺨 때렸다면서.”
“…생각해 보니까, 경우를 떠나서 그런 소맥 콜라를 제조한 게 더 큰 잘못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오, 그러네.”
그러는 동안, 비주가 내 팔을 붙잡고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표정이 이렇게 진지한 거지.
“형, 제가 어제 자기 전에 계속 생각한 건데요.”
“응.”
“이제부터는요. 누가 길거리에서 뭐 준다고 그래도 마시고 그러면 절대, 안 돼요. 알았죠?”
“아니, 갑자기….”
“팬분들이 주는 음료수도 안 돼요. 일단 중현이한테 먼저 먹여 보고 그 다음에 마셔요.”
“맞아요, 제가 기미상궁 할게요”
“비주야. 근데 팬분들이 준 거면 먹어야지.”
“그래도 안 돼요. 또, 누가 불러서 술 한잔하자고 해도 절대 마시지 말고요. 이제부터는 한 모금 그런 것도 안 돼요. 아무리 친한 사람이어도요.”
목소리는 나긋나긋하고 듣기 좋은데 내용이 죄다 은은한 잔소리였다.
할머니한테 했듯이 귀를 막아 볼까 했지만 이내 관뒀다.
얘한테는 써먹을 여행권이 없었으니까.
* * *
샵에서 머리에 고데기를 하고 메이크업을 하면서부터 여의도 PBS 방송국 대기실에 갈 때까지, 핸드폰만 보고 다닌 것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섯 명 모두 그랬다.
-[어젯밤TV] 주세한 최고 시청률 1분, 흑염소와의 추격전
-예능 첫 출연 ‘뉴블랙’, 재미와 감동 모두 잡았다
-검색어 뜨겁게 달군 ‘뉴블랙’은 누구?
어느 포털에 들어가든 연예란 메인에 우리에 관한 기사가 하나씩은 달려 있었다.
그에 달린 댓글도 기본 500개씩은 됐는데 죄다 호평 일색이었다.
-ㅋㅋㅋㅋㅋㅋ어젯밤 아버님과보면서 빵 터짐..^^*
-주세한 애청자로서 되게 좋게 봤습니다. 처음에 구 피디가 웬 듣보 아이돌 (나쁜 뜻으로 하는 말 아니니 욕하지 마시길) 데려오나 했는데 역시 혜안이 있는 거였네요. 흑염소 아니었으면 빅잼 구간이 적었음.
-어제 방송 보고 얘네 호감됨ㅋㅋ
가끔씩 최신순으로 보면 ‘뜨고 싶어서 환장한 듯’이나 ‘신인 주제에 너무 나대더라’라는 댓글이 있었는데 순간 열이 확 올랐다가,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아니라서 수긍했다.
뜨고 싶은 것도 맞고, 분량 챙기려고 나선 것도 맞지. 뭐.
대신 동생들이랑 다 같이 비추 1개씩 눌렀다. 순식간에 -5가 된 댓글들이 형장의 이슬처럼 사라졌다.
이런저런 커뮤니티에 가서 ‘뉴블랙’을 검색하면 게시물이 꽤 나왔다.
-뉴블랙인가 얘네 광고 엄청 들어올 듯
-연차 보니 쌩신인 같은데 잭팟 터졌네요ㅋㅋ
-어제 보고 느낀 게 이러니까 기획사들이 자기네 아이돌 주세한 내보내려고 그렇게 환장하는 듯
-섭외 엄청 들어오겠네요
-ㅋㅋㅋㅋ뭔.. 그렇게 따지면 걸스온탑은요 병풍온탑이던데
-그래도 하나가 요리 폭파하는 짤 나왔잖아요. 걸스온탑 팬으로서 아주 만족입니다ㅎㅎㅎ
광고 같은 게 들어오려나?
그건 아닐 것 같다.
교복 광고를 찍을 때, 대행사 직원분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광고주들은 일시적인 유명세로 광고비를 집행하지 않는다고.
적어도 한 분기 정도는 유지하겠다 싶은 견적이 나와야 된다나.
여기서 쭉 흐름을 이어나가 2집 활동까지 잘된다면 그때 가서는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을 테지.
하지만 섭외가 엄청 들어오는 건 사실이었다.
케이블 여러 곳에서 벌써부터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고 묻기도 했고, 지상파 중 하나에서도 연락이 왔다고 했다.
우리가 방송국까지 오면서 들은 것만 4개는 됐다.
그것 때문에 회사에서도 난리가 나서 추석 당일에 직원 회의가 열렸다.
이따 녹화가 끝나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고 하는데, 좋은 소식만 가득했다.
굳이 안 좋은 소식이라면.
“아으, 팬분들한테 글 남기고 싶다.”
“민기 형, 글을 쪼끔 남겨 보면 안 될까여? 그냥 큰 거 말고 팬분들한테 사소한 메시지라두…….”
“안 돼.”
“그럼 SNS에 인증샷이라도.”
“안 돼.”
로드 매니저의 단호한 거절에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미련이 덕지덕지 붙은 눈길이었다.
나도 고개를 저었다.
“오늘 방송까지 나오고 나면 그때 올려도 늦지 않아.”
“팬분들이 저희 반응 궁금해 하시지 않을까요? 메시지라도 남겨야 할 것 같은데…….”
“그 마음 잘 알지. 하지만 조금만 더 참자.”
팬들에게 ‘우리 예능 나온 거 봤어요?’ 하면서 자랑하고 싶었는데, 회사에서 못 하게 하는 중이다.
나도 동의했다.
기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팬카페나 공식 SNS를 뒤적이면서 기삿거리를 찾아내고 있었다.
케이블 방송 GBS의 ‘현장으로 간다’ 방영분부터 우리 과거 발언까지 하나하나 재조명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말이나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해야 했다.
기껏 찾아온 행운을 날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동생들도 잔뜩 시무룩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납득했다.
하지만 아쉽기는 해도, 팬들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오늘은 회사 공식 계정으로 추석 인사 영상이나 추석을 위해 마련한 리얼리티 영상이 많이 올라갈 테니까.
-[2014 추석인사] 힘세고 강한 아침! 안녕하신가, 우린 뉴블랙
-[추석special] #1. 추석의 유래 (feat. 척척박사 서쌤)
-[추석special] #2. 송편 만들어볼까요? (feat. 비주부)
미리 진행했던 이벤트 당첨자들에게 보낼 송편 만들기 영상도 있고, 그 외에 우리끼리 한복을 입고 윷놀이를 하는 영상도 있었다.
중현이가 윷을 부숴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었지.
그래.
일단 팬분들과의 랜선 만남은 미뤄두고, 코앞에 닥친 스케줄부터 집중하자고.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PBS 별관 내부에서 방송국 직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힘차게 인사를 했다.
평소처럼 흘깃 보고 가시는데, 가끔씩 ‘어머, 안녕’하며 가는 분도 있었다. 그러곤 자기들끼리 막 웃는데, 어제 방송 이야기를 하는 듯싶었다.
공개홀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9시.
방송 시작을 두 시간 앞두고, 복잡한 카메라 장비와 케이블 사이를 오가며 진두지휘하는 피디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오, 뉴블랙. 오랜만에 만나네.”
우리와는 이미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오늘 PBS 생방송 추석특집 ‘2080 뮤직 퀴즈쇼’를 기획한 제작진은 우리가 나왔던 ‘하승주의 뮤직카페’ 제작진이었다.
대본을 옆구리에 낀 피디님이 웃었다.
“이야, 너네 어제 예능 반응 좋더라. 이러다가 내년 즈음 되면 섭외도 어려워지는 거 아냐?”
그런 농담에 다들 훈훈하게 웃었다.
그러던 피디님이 곧바로 다른 스탭이 실수하는 걸 보고 반쯤 욕설에 가까운 잔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
쓴웃음을 지으며 후덥지근한 공개홀 스튜디오를 가로질렀다.
오늘 출연할 이들이 객석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연예인과 일반인 참가자들이 함께 한다는 컨셉이었는데, 우리가 다가서자 대본을 뒤적거리고 있던 이들이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중 먼저 반응을 보인 이는 연예인 쪽이 아니었다.
“어? …뉴블랙?”
그 순간, 우리가 먼저 당황했다.
사람들이 먼저 우리를 알아보는 건 데뷔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