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5)화 (12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5화

19장. 당신을 위한 노래

톡톡.

비몽사몽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톡톡.

정체불명의 무엇이 이불이 걷힌 내 허벅지를 두드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뒤척였는데, 계속해서 집요하게 내 몸을 공격했다.

결국 눈을 떴을 때.

2층 침대 울타리 사이로 리혁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이 손에 든 든 기다란 집게 막대기로 내 몸을 두드리고 있었다.

“…뭐야.”

“깨워달라면서요.”

“아으으….”

“일어나요, 얼른. 오늘 예비군 가야 된다면서.”

집게발이 내 머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딱딱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5분만 더 잘게.”

“안 돼요. 비주 형이 일어나래요, 지금.”

곧바로 캐스터네츠를 튀기듯 이불 바깥에서 집게발이 미친 듯이 딱딱딱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잠이 확 깼다.

거실에 나오니 앞치마를 맨 비주가 열심히 요리를 하는 중이었고, 리혁이가 집게를 거실 행거에 걸었다.

너무 피곤해서 소파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딱딱! 딱딱딱!

괴롭다.

“아으으…….”

“좀 일어나요. 왜 이렇게 허우적대?”

“어제 밤 샜어….”

“또요?”

“A&R팀 직원 분들이랑 막바지 작업 하느라 바쁜 거 알잖아.”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일으켰다.

요즘 들어 거의 매일 A&R팀 작곡가들과 밤샘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일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컴백 한 달 전에는 타이틀곡이 완성되어야 하니까.

일정이 제법 빠듯했다.

그래도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해서, 내가 2박 3일간 훈련을 다녀올 동안 A&R팀이 최종 작업을 해주기로 했다.

남은 건 동원훈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세안을 마치고 나오자, 리혁이가 내 배낭에 든 물건을 일렬로 늘어놓고 있었다.

“치약, 수건, 양말….”

“애들은?”

“아까 4시쯤에 나갔을 걸요.”

“일찍도 나갔네.”

중현이랑 지호는 TBC에서 진행하는 애니멀 프렌즈의 녹화를 하기 위해 새벽부터 샵을 나갔다.

어젯밤에 난리였지.

예능 준비를 하겠다면서 나한테 대길이 역할을 시키길래, 성난 흑염소처럼 들이받아 주었다.

“잘하고 오려나.”

“뭐, 둘이 붙여 놓으면 분량은 확실히 뽑을 걸요. 오히려 나랑 비주 형이 좀 걱정이지.”

리혁이가 거실 한복판에 놓인 카메라를 가리켰다.

리얼리티에 쓸 일상 VCR을 만들기 위해 받은 카메라였다.

이게 바로 비주와 리혁이의 스케줄이었다.

내가 훈련을 가고, 중현이와 지호가 예능을 찍는 동안 숙소에서 VCR 제작하기.

“뭐, 잘할 거야.”

“마음에도 없는 위로는 됐고요. 여기, 리스트에 있는 물품들 다 확인해 봤으니까 체크 해봐요.”

“고마워.”

굴림체로 적힌 ‘예비군 필요 물품’ 리스트를 쭉 둘러봤다.

하나하나 확인을 하는 동안, 리혁이가 주섬주섬 방에서 박스 하나를 들고 나왔다.

“……?”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예비군 가면 시간 엄청 많이 남는다면서요. 그래서 몇 권 좀 빌려주려고요.”

잠이 덜 깬 와중에 감동이다.

자기 물건에 손만 대도 경기를 일으키는 애가 빌려준다는 말을 하다니.

“왜 그렇게 눈을 반짝거려요. 기분 나쁘게. 그냥 불쌍해서 빌려주는 거라니까.”

“알지, 형이 그 마음 다 알지. 오구구.”

“아, 짜증나게 진짜.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지 마요.”

“알았어, 알았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추천 좀 해줘. 네가 책에 관해서라면 잘 알잖아.”

곧바로 리혁이가 눈을 빛내며 추천 도서 목록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솔직히 가서 잠 자기도 바쁠 것 같지만, 애가 신이 나서 재잘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설명을 다 듣고 대충 두 권을 골라서 가방에 넣었다.

그때,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와서 밥 먹어요.”

숙소 한켠에 펴진 상에 진수성찬이 올려져 있었다.

된장찌개부터 간단한 고기반찬까지.

“대박, 나 조선시대 왕이 된 기분이야.”

감동한 내 표정에 앞치마를 맨 우리 주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사나이가 간다 보니까 밥이 엄청 맛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꼭 집밥을 먹여야지 하고 결심했어요.”

“오오.”

“형이 좋아하는 반찬 위주로 골라봤어요.”

“감동이다, 진짜.”

우리 김덕순 여사도 이렇게 까지는 안 해주는데. 된장찌개를 한 숟갈 떠먹으면서 감동했다.

“비주야.”

“네?”

“네가 제일 보고 싶을 거야.”

“저도요. 형. 엄청 보고 싶을 거예요.”

“아냐, 내가 더 보고 싶을 거야.”

“아니에요. 제가 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우리 모습을 보던 리혁이가 밥맛이 떨어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한편, 식사를 하면서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오디오가 엄청 빈다고 해야 하나.

리혁이도 그 느낌을 캐치한 듯했다.

“되게 조용하네요. 중현이 형 쩝쩝 소리도 안 들리고, 왕지호가 음식 타박하는 소리도 안 들리고. 이것 참….”

나와 비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때, 리혁이가 말을 이었다.

“평화롭고 좋네요.”

“…….”

흡족하게 웃는 녀석을 보며 나와 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정상적인 감상평을 주고받았다.

“좀 허전하네요.”

“그러네, 조용하고.”

“우리 앞으로 개인 스케줄 많아질 테니까, 이런 거에도 적응해야겠죠?”

“응, 그렇지.”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쉽다. 다 같이 먹어야 더 맛있는데.”

그런 대화를 나누며 밥을 두 그릇 비웠다.

데뷔하면서 다이어트를 해서 그런지 널널하게 느껴지는 군복을 입고는 군화를 신을 때였다.

비주가 웬 보따리를 내밀었다.

“뭐야?”

“형. 점심 먹을 도시락 쌌어요.”

“도시락?”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했더니 도시락을 만든 모양이었다.

근데 개인 도시락 반입 안 될 텐데.

상냥하게 웃는 녀석의 뒤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를 말하려는 리혁이에게 눈짓으로 만류했다.

“잘 먹을게.”

“모양내서 만든 거라 흔들거나 그러면 안 돼요. 형.”

“알았어.”

무슨 캐릭터 도시락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숙소를 나섰다.

*   *   *

2주 후 방영된 HBS MTV 리얼리티 ‘잇츠 더 뉴블랙’ 1화 中

#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량 안

우주 : (카메라에 얼굴 가까이 대면서)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매니저 : 와아아

우주 : 여러분은 아이돌 리얼리티 사상 최초로 예비군을 가는 아이돌을 보고 계십니다.

매니저 : 와아아

우주 : 형, 효과음에 영혼을 좀 더 넣어주세요.

매니저 : 우-와아

웃음을 터뜨리는 두 남자 사이로 흘러드는 코멘트. 화면 하단 아래 스튜디오에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나온다.

(리혁) 와. 진짜 방정맞게 웃네요.

(지호) 군복 디게 예쁘다. 저것도 파는 데 있나여?

(우주) 좀 더 기다려 보세요. 나라에서 줄 거예요.

다시 장면이 전환되어, 창밖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우주의 모습.

우주 : (깊은 한숨)

매니저 : 왜 그래?

우주 : 저 예비군 가는 게 처음이라 되게 긴장 돼요.

매니저 : 아하.

우주 : 가서 총 많이 쏴요?

매니저 : 아니, 한 번 정도.

우주 : 혹시 꿀팁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매니저 : 꿀팁은 모르겠고 가서 꿀잠 좀 자. 되게 피곤해 보인다.

우주 : 아니에요, 열심히 하고 올 거예요.

자막으로 표시된 10초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졸기 시작하는 우주.

화면 하단에 민망해 하는 선우주와 함께 다른 멤버들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잡힌다.

매니저 : 거의 다 왔다. 여기 훈련장 가깝네.

우주 : (보따리를 내밀면서) 형, 이것 좀 보관해주실 수 있어요?

매니저 : 그게 뭔데?

우주 : 비주가 도시락 싸준다고 했는데, 이거 반입이 안 될 것 같아서… 아, 진짜 미안한 기분이에요. 뭔 캐릭터 도시락을 만들었다는데.

매니저 : 캐릭터?

우주 : 잠시만요. (주섬주섬 보따리를 풀어 뚜껑을 조심스럽게 연다) 뭐, 피카츄 그런 거 아닐까요.

기대하는 눈으로 도시락을 열자, 삐죽삐죽한 머리의 군인 마스코트가 엄지를 들고 있다.

우주 : (애써 침착)

매니저 : 그건 뭐야?

우주 : (억지 미소) 병무청 마스코트에요..

*   *   *

[예비군 가는 리더에게 캐릭터 도시락을 만들어준 신인 아이돌.jpg]

쓸데없는 고퀄리티 도시락과 방송이라고 표정 관리하는 우주가 킬포

-저 삐죽머리가 병무청 마스코트야??

-ㅇㅇ 그래서 우리집 엄마아들이 겁나 싫어함ㅋㅋㅋㅋㅋ

-사촌오빠한테 이거 캡처짤 보내주니까 기겁하던데.. 사탄이 만든 도시락이냐고

-진짜 고퀄리티다 근데 ㅋㅋㅋㅋㅋ

-‘애써 침착’ ㅋㅋㅋ 저 자막이 진짜 찰떡

-ㅋㅋㅋㅋㅋ뭐야 얘는 뭔 리얼리티에서 예비군을 가

-이젠 익숙한 느낌ㅋㅋ 돌 카테에서 기묘한 제목의 신인 영업글이 보이면 아 뉴블랙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들어옴

-22222 ㅋㅋㅋㅋㅋ

-333 이거 ㄹㅇㅋㅋㅋ

-얘네 주세한 나온 뒤로 상승세 탔네. 요새 여기저기서 보는 듯.

-나 뉴블랙덕인데 이번 주말에 애니멀 프렌즈도 꼭 봐줘! 그 흑염소랑 다시 만난대!

*   *   *

연천군.

주세한의 촬영지였던 마을을 다시 방문한 김중현과 왕지호는 애니멀 프렌즈의 제작진과 돌아다니고 있었다.

명절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주민들이 그들을 반겨줬다.

“또 방송이야?”

“네! 저희 대길이 만나러 왔어요!”

흙바닥 길에서 트랙터를 멈춰 세우고 인사도 건네고, 밭일을 하다가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고.

“아이고, 허리야. 이번에는 왜 둘이 왔대?”

“방송 엄청 재미있더만. 근데 피디 양반이 내가 나올 때만 기가 막히게 잘라놔서 에잉… 순현이는 엄청 많이 나오던데.”

“요 카메라도 우리가 인사하면 나와?”

한 번 방송물을 먹어서 그런지, 카메라를 대하는 자세가 남다른 주민들이었다.

그리고 왕지호와 김중현은 주민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할머니이이!”

“왜.”

“이거 받으세여!”

밭일하는 노인들을 향해 하트를 날리는 왕지호의 모습에 주민들이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짐을 들어주는 김중현에게 주민들이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한편 주민들은 두 멤버를 반기면서도 다른 이들의 근황을 물었다.

“그 안마 잘하는 총각은 안 와?”

“예비군 갔어여.”

“어이구, 아쉽네. 내가 지난번에 그 안마 받고 허리가 쭉 펴진 거 아녀.”

“지금 구부리고 계시는데여?”

“으이! 어른 말하는데 토 달지 말구. 암튼, 그래서 내가 고마워서 뭐라도 줘야겠다 생각을 하고 그랬거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다른 멤버들을 언급하고, 대부분 이따 줄 게 있으니 자기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에, 대길이네 집으로 걸어가던 왕지호와 김중현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우주 형을 많이 찾네.”

“그니까여. 우리도 안마를 했어야 하나 봐여.”

“역시 그런가.”

“이따가 촬영 끝나면 저희도 안마 좀 한 바퀴 하고 가여. 제가 집집마다 돌리려고 우리 화보도 들고 왔어여.”

“오, 좋은 생각이야.”

자기들끼리 흐뭇하게 웃다가 이내 다시 짠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애들 보고 싶다. 우주 형도.”

“저두여.”

파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들을 보며 제작진이 웃었다.

왠지 하늘에다 CG로 다른 멤버들의 얼굴이라도 합성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우주 형은 가서 잘하고 있겠지?”

“걱정 마여. 저희랑 만난 지 한 달 만에 리더 먹은 형이잖아여. 사막에 떨어져도 전기장판을 팔아서 성공할 사람이에여.”

“그런가.”

“그런 거예여.”

“역시, 그럼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희희낙락 웃었다.

리더에 대한 걱정은 10초뿐, 곧바로 화제가 옮겨갔다.

“지호야, 이따 저녁에 휴게소에서 뭐 먹을까?”

“회오리 감자 어때여?”

“받고, 팝콘치킨 콜?”

“콜이에여. 으아, 생각만 해도 넘 좋다. 형, 형, 우리 둘이서 오늘 휴게소를 부셔버려여.”

아직 아침인데 벌써부터 저녁 메뉴 얘기를 하는 이들을 보며 제작진은 웃음만 삼켰다.

서로 어깨동무까지 하고 걸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완벽한 한 쌍이었다.

*   *   *

같은 시각, 강남서초예비군 훈련장.

식당에서 배식을 맡은 병사들은 예비군들 사이에 서 있는 연예인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진짜 잘생겼네.’

우주라고 했나.

최근 주세한에 나와서 유명해진 아이돌 멤버였다.

벌써부터 친해졌는지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막 웃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빼어난 외모.

하지만 배식을 맡은 병사는 그런 이를 보면서도 왠지 모르게 연예인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다.

그보다는 뭔가 다른…….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마침내 우주가 식판을 들고 섰다.

그리고 그때.

식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가 입술을 뗐다.

귀에 착 감기는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저기요.”

“예, 선배님.”

“이거, 소세지 좀 더 주세요.”

하얀 손가락이 소세지 야채볶음을 가리켰다.

배식을 맡은 병사가 대답했다.

“선배님, 저희가 지금 정량 배식 중이라….”

“아, 그래요?”

“네, 그렇습니다.”

“에궁..”

어디서 들어본 듯한 추임새를 중얼거리며, 아이돌 멤버가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소세지 더 줘.”

뒤이어 다른 예비군들을 대하면서 배식 담당은 자신이 받고 있던 느낌의 실체를 깨닫고 있었다.

풍요롭고 여유로운 상대의 표정.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

그는 멀찍이서 휘적휘적 사라지는 이의 모습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뭐야.’

그냥 말년병장이었다.

*   *   *

왕지호와 김중현이 흑염소 대길이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놀고, 완벽하게 말년의 모습으로 돌아간 선우주가 밥을 먹고 있을 때.

평화로운 숙소에선 블루투스 스피커로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리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읽었다.

‘좋아. 너무 좋아.’

간만에 찾은 평화로움이었다.

유치한 장난을 하는 막내도 없고, 그에 동조하는 두 바보도 없는 이 평화로움.

흡족하게 웃으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면서 소파 팔걸이에 설치한 리얼리티 캠을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서리혁의 ‘책 읽어주는 남자’ 시간입니다. 오늘의 책은 한국인이 꼭 들어야 할 클래식이란 책인데요. 그에 맞춰서 저도 클래식을 틀고… 형 뭐해요?”

김비주가 땀을 뻘뻘 흘리며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거실에 신문지도 깔려 있었다.

“형. 지금 뭐하는 거예요?”

“실장님이 다른 사람들 방송하는 동안, 우리도 리얼리티용 컨텐츠 만들라고 했잖아.”

“그래서 지금 열심히, 잘, 엄청, 제대로 찍고 있잖아요. 책 소개해주는 라디오 컨셉으로 해서….”

“같이 하는 걸 해야지.”

“오늘만큼은 서로 떨어져 있는 만큼 개인플레이하는 거 어때요?”

“난 같이 하는 게 좋은데.”

“…….”

“우주 형도 없고, 중현이도 없고, 지호도 없고….”

“에이, 알았어요! 알았어!”

서로 따로 놀자는 말을 하자마자, 시무룩하게 변하는 둘째 형의 모습에 서리혁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다른 멤버들은 괜찮은데, 왜 이 형이 이럴 때면 마음이 약해지는지 모르겠다.

물론, 한숨을 쉬며 신문지 위에 앉는 서리혁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비주를 눈치 채지 못했다.

서리혁이 손에 비닐장갑을 끼며 말했다.

“그래서 뭐 할 건데요?”

“김치만두 좀 빚으려고. 지난번에 중현이네 어머님이 김치 새로 보내주시기도 했고.”

“저녁으로 그거 먹게요?”

“응.”

“그냥 사먹어요. 배달 어플 써서.”

“안 돼.”

단호한 거절에 서리혁은 눈물을 삼켰다.

어째 숙소에서 편하게 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최종보스가 있었다.

“하아….”

서리혁이 현실을 체념하고 리얼리티 캠을 향해 제갈량이 만든 만두의 유래를 설명하는 동안, 김비주가 김치통을 끙끙거리며 열었다.

“흐으으읍!”

“……?”

“흐으읍!”

“형, 그게 안 열려요?”

돌려서 여는 김치통이 꽉 막혀 있었다.

비실비실한 둘째 형을 보며 서리혁이 나섰다.

“줘 봐요. 내가 해볼 테니까, 이거 그냥 열….”

“열?”

“왜 안 열리지? 흐읍, 흐아아압!”

김비주가 배를 뒤집고 웃음을 터뜨리자, 서리혁이 민망한 듯 눈매를 찌푸렸다.

“형, 비웃지 말고 좀 도와줘요.”

“알았어.”

둘이 힘을 합쳐 김치통 뚜껑을 잡았다.

“하나, 둘, 셋 하면 열어봐요.”

“좋아. 하나, 둘, 셋!”

“흐아아압!”

“흐아아아아!”

5분 후.

“안 되네요. 이거.”

“그러게, 어렵네.”

10분 후.

“흐아앗!”

“열려라 참깨애애!”

“아오, 이 망할 놈의 김치통!”

“그럼 안 돼. 리혁아.”

“왜요.”

“좋은 말을 해줘야 된대. 인터넷에서 보니까 물도 좋은 말을 들려줘야 결정이 예뻐진대.”

“그거 다 뻥이에요, 형.”

“아, 진짜?”

“형, 인터넷에서 하는 말은 좀 걸러들어요. 90프로가 사기야.”

그런 말과 함께 두 멤버는 김치통을 붙잡고 끙끙거렸다.

하지만 김치통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끄떡없었다.

“어떻게 남자 둘이 있는데 이거 하나를 못 열죠?”

“그러게. 평소 때는… 아.”

두 멤버의 머릿속에 뭔가 스쳐갔다.

지금까지 숙소에서 힘을 쓸 일이 생길 때마다, 그간 다른 이들이 근력을 담당해 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형, 그거 왜 이렇게 못 들어여. 에이, 줘봐여.’

‘비주야. 너 그거 무거운 거 드니까 미소년 곱등이 같아. 아아!’

‘어휴, 너넨 뭔 일을 못 시키겠다.’

그런 말을 하는 멤버들의 얼굴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가운데, 두 멤버는 잔인한 진실을 발견했다.

“우리가… 우리가 최약체였다니…….”

춤 출 때는 근력을 폭발시키지만 평소 때는 호리호리한 메인댄서, 몸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메인보컬.

“형 몇 키로 나가죠?”

“나 오십구. 너는?”

“저 오십칠이요.”

“그래도 난 반올림하면 육십이야.”

“저도 반올림하면 육십인데요.”

“…….”

“형, 지금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에요.”

“아.”

김비주는 열리지 않는 김치통을 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우주 형 보고 싶다. 있었으면 미튜브 보고 좋은 요령 알려줬을 텐데.”

“그러지 말고 우리도 한 번 해봐요.”

“우리가?”

“우리라고 못할 게 뭐에요. 미튜브에 김치통 따는 요령 그런 거 보고 하면 되죠.”

“오오.”

3분 후.

“흐아아아앗!”

“으으으으! 열려! 열리라고! 네가 이러고도 안 열릴 거야?”

“리혁아! 소리 지르면 안 돼! 민폐야!”

“형도 지르고 있거든요! 흐아앗! 아니, 이거 동영상 그대로 했는데 왜 안 되는데… 아오!”

두 멤버가 김치통 뚜껑을 붙잡고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카메라는 말없이 빨간 불을 깜빡이며 그 한심한 모습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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