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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6)화 (12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6화

꽉 막힌 김치통을 보며 두 멤버가 토론을 이어 갔다.

“이쯤 되면 김치통이 불량 아니에요? 할 수 있는 거 다 해 본 것 같은데.”

“그것보다 우리가 힘이 약해서 그런 거 아닐까.”

“…….”

“으음, 어떻게 해야 되지.”

비발디의 사계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비주가 화제를 돌렸다.

“노래 되게 좋다. 사계 맞지?”

“맞아요. 비발디가 작곡한 사계 중 봄.”

“비발디?”

“안토니오 비발디라고 바로크 시대의 유명한 작곡가에요.”

책에서 봤던 설명을 줄줄 늘어놓자, 김비주가 한 마디로 정리했다.

“유럽의 우주 형이구나.”

서리혁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클래식 얘기도 오래 가진 못했다.

아무리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도 여전히 김치통은 거실 한복판에서 위풍당당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제 생각에 우리한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에요. 첫째, 김치 만두를 포기한다. 둘째, 다른 사람들에게 SOS를 청한다.”

“다른 분들한테 부탁을 해야 하나?”

김비주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을까? 옆집 분이랑 만난 적도 없잖아.”

“뭐, 그렇긴 하죠. 거기다 갑자기 찾아가서 김치통 좀 열어 달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윗집은 어때?”

“윗집이요?”

“응, 회사 다니시는 분 있잖아. 만날 때마다 친절하게 인사해주시고.”

“그분은 안 돼요. 그, 제가…….”

“아. 맞다.”

순식간에 얼굴이 벌게지는 동생을 보며 김비주가 아차 했다.

매번 윗집에서 물을 내려 샤워기 물이 뜨거워질 때마다, 벽을 탕탕 치며 으아아! 소리를 지르던 서리혁이었다.

민망해 하는 동생을 토닥여 주며 김비주가 웃었다.

“그러면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청해 보자.”

“전화? 누구요? 매니저 형들한테 걸 건 아니죠?”

“당연하지. 다른 분이야.”

곧이어 영상 통화 속에서 뚱한 얼굴이 나타났다.

“할머님, 안녕하세요.”

-오냐. 이 시간에 우리 비주가 뭔 일이다야?

“혹시 바쁘세요?”

-아냐. 지금 놀고먹으면서 테레비 보고 있었어. 손님도 쫙 빠져 가지고. 응, 숙자야. 우주랑 같이 일하는 애들이여. 넌 인사 안 시켜줄 거니까 가서 귤이나 까먹어라.

꽤나 심심했던 모양인지 김덕순 여사는 환한 미소로 그들을 반겨 주었다.

잠시 말동무가 되어 그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곧이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근디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겨?

“그, 할머님이 요리 많이 아시니까 통 여는 법도 아시지 않을까 해서.”

-비주야, 너 엄마한테는 잔소리 들을 것 같아 가지고 나한테 전화혔지?

“……네.”

김덕순 여사가 웃더니 여러 가지 팁을 알려 줬다.

곧바로 리얼리티 카메라와 영상 통화 화면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멤버가 힘을 쓰기 시작했다.

“흐으읍!”

-그려! 힘을 내는 겨! 힘!

“아아악!”

-아이고, 저거, 저거. 너그들 갖다가는 마늘도 못 까겄다. 사내 머스마들이 비실비실해 가지고. 마침 이름도 비리비리하네.

“저! 마늘은 까요! 흐읍!”

-주둥이는 열심히 살아 있네, 리혁이. 물에 둥둥 떠오르겄어.

차분하게 극딜을 넣는 솜씨가 과연 선우주의 할머니다웠다.

하지만 김덕순 여사의 꿀팁에 힘입어 점점 뚜껑이 열리고 있었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점점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는 동안, 화면 속 인물이 중얼거렸다.

-근디 보통 저렇게 통이 안 열린다는 것은…….

그녀가 뭔가 말하려고 할 때, 김비주와 서리혁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뚜껑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퍼어엉-!

돌돌 돌아간 뚜껑이 펑! 튀어 오르면서 두더지 잡기의 두더지처럼 김치가 폭발하듯이 튀어 올랐다.

사방에 김칫국물이 튀었다.

그나마 행거가 있는 곳까지는 안 갔지만, 연말 평가 때 받은 트로피부터 소파까지.

그리고 김비주와 서리혁은 옷과 얼굴에 김칫국물이 죄다 튄 가운데 멍한 눈으로 김치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여, 뭔 시뻘건 게 나오네. 어떻게 된 겨? 너희들 괜찮냐?

김덕순 여사의 외침 속에서 두 멤버는 파르르 떨며 눈을 감았다.

*   *   *

2주 후 방영된 HBS MTV 리얼리티 ‘잇츠 더 뉴블랙’ 1화 中

# 뉴블랙 숙소

애니메이션 짱구의 BGM이 깔리는 동안, 두 멤버가 김치통을 열심히 열고 있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화면 하단에 나오는 스튜디오 모습.

(리혁) 와. 다시 보니까 진짜 한심하네요.

(우주) 잘 알고 계시네요.

(비주) 저희 진짜 저거 한 시간 동안 고생했어요. 손도 막 얼얼하고.

(중현) 그래서 열었어?

(비주) 보면 알아.

곧이어 ‘우주네 할머님’이란 인물로부터 조언을 받아 열기 시작한다.

비주 : 리혁아! 우리 좀만 더 힘내자! 조금만!

리혁 : 알았어요!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자 서서히 열리는 김치통.

스튜디오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대한다.

화면에 떠오르는 커다란 숫자 카운트다운 5초.

1초가 끝나자, 호쾌한 뻥! 소리와 함께 김치통이 터졌다.

그와 함께 스튜디오에 있던 다른 세 멤버가 바닥에 쓰러져서 웃으며 구르기 시작했다.

(리혁) 그래요. 웃어요. 웃어….

(비주) 하…….

(나머지) 푸하하하하하! 흐하하핫!

그렇게 웃는 동안, 화면 속에서 서리혁이 얼굴에 묻은 배추 한 조각을 떼어내고 있었다.

이내 김치 색깔과 동기화 되는 얼굴색.

리혁 : 아이, 진짜! 형! 내가 진짜 앞으로 김치만두 절대 안먹을 거예요! 절대로!

비주 : 리혁아.

리혁 : (울면서) 에이, 김칫국물 눈에 들어갔어.

*   *   *

[지금 팬들 사이에서 시트콤 아니냐는 말 나오는 뉴블랙 리얼리티]

뭔가 리얼리티 컨셉부터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중략)

그중 1화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김치통 폭발신. 이건 진짜 움짤 말고 동영상으로 봐야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진짴ㅋㅋㅋㅋ 둘이 얼어붙은 표정이 대박이다 진짜

-ㅋㅋㅋㅋ쟤네 이름 누군지 알려줄 사람

-왼쪽에서 나라 잃은 표정인 애가 비주고, 입가 파르르 떨고 있는 애가 리혁이!

-주세한 때도 느꼈는데 얘넨 진짜 예능신이 가호하는 듯ㅋㅋㅋㅋㅋㅋ

-ㅋㅋㅋ이거 보고 호감덕 됨

-저 와중에 순식간에 김치랑 얼굴색 똑같이 돼서 소리 지르는 애가 킬퐄ㅋㅋㅋ

-기, 김치만두 절대 안 먹어요오! 절대로 ㅋㅋㅋㅋㅋㅋ

*   *   *

그날 저녁.

“음흠흠~”

연천군에서 애니멀 프렌즈의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왕지호와 김중현은 콧노래를 불렀다.

오면서 휴게소에서 음식을 몽땅 쓸어버린 터라 기분이 몹시 좋았다.

리얼리티 카메라를 들고 가위바위보를 하며 계단을 올라가던 둘은 이내 숙소에 들어가면서 당황했다.

분위기가 음산했다.

“…….”

어두운 곳에서 촛불 하나를 켜둔 채, 서리혁과 김비주가 상을 피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몹시 화려한 메뉴였다.

족발, 보쌈, 치킨, 피자 등 배달 어플로 시킬 수 있는 모든 메뉴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져 있었다.

왕지호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헐, 이럴 줄 알았으면 휴게소에서 적게 먹을걸.”

“난 더 먹을 수 있지롱.”

인기척에 눈치를 챈 김비주와 서리혁이 힘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왔어?”

“넹, 저희 왔어염.”

“방송은 잘했어?”

“네, 근데 형. 우리도 먹어도 돼여?”

“얼른 와.”

왕지호와 김중현이 사이좋게 바지 벨트를 풀었다.

왕지호는 임자 없는 치킨 다리부터 얼른 집었다.

“근데 왜 분위기가 이래여? 놀이동산에 막 공포의 집 그런 데 들어온 줄 알았어여. 시커멓고 그래서.”

“아, 로맨틱한 분위기 좀 내려고 한 거야.”

김비주가 대답했다.

“내가 리혁이한테 좀 잘못한 게 있어서…….”

“에휴.”

“미안해…….”

“다음부터는 제 말도 좀 존중을 해줘요, 형. 그냥 서로 할 일 했으면 폭발할 일도 없었잖아요.”

폭발?

화를 엄청 낸 걸까?

김중현과 왕지호는 눈알만 데구르르 굴렸다. 물론 입으론 열심히 족발과 치킨을 흡입하고 있었다.

뭔가 미안해하는 김비주와 어딘가 눈가가 촉촉한 서리혁의 모습.

왕지호는 결론을 내렸다.

올 것이 왔구나.

“혹시.”

그러곤 서리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 사춘기 왔어여?”

“날 건드리지 마, 제발…….”

“진짜 사춘기 맞구나. 큰일 났네.”

서리혁이 한숨만 쉬는 동안, 왕지호가 위로해주겠답시고 엉겨 붙었다.

처음에 눈매를 찡그렸던 서리혁도 이내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 동안 열심히 핸드폰 자판을 두드리던 김비주의 눈앞으로 커다란 초록 덩어리가 찾아왔다.

“아, 깜짝아.”

“쌈이야. 너 먹으라고 쌌어.”

“감사.”

김중현이 준 커다란 쌈을 넣자, 김비주의 입이 다람쥐처럼 부풀었다.

김중현이 핸드폰 화면을 보며 물었다.

“우주 형 이름은 왜 자꾸 검색해?”

“혹시 무슨 기사라도 뜰까 싶어서. 자꾸 불안하기도 하고.”

“뭐. 잘 있겠지.”

그때 보쌈을 먹던 왕지호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우주 형 보쌈 되게 좋아하는데.”

“족발도 좋아해.”

“양념치킨도 엄청 좋아하잖아.”

“저기요, 다들. 치킨이나 족발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 그러네.”

“생각해 보니까 우주 형 되게 잘 먹네여. 가리는 것도 없고.”

서리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이 못 먹어.”

“오이는 왜여?”

“뭐. 옛날에 연습생 때 다이어트 한다고 맨날 오이 먹었는데 그래서 싫다던데.”

“헐, 그럼 피클도 못 먹네요. 불쌍한 우주 형…….”

왕지호가 피클을 쏙 빼먹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하루 안 봤는데 되게 보고 싶네여, 우주 형.”

“나도.”

“우주 형 보고 싶다.”

“그러니까.”

창밖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머릿속에 선우주의 모습이 스쳤다.

10초 정도.

이내 다들 맛있게 식사를 이어갔다.

선우주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

그 동안 왕지호가 깜빡해서 끄지 않은 카메라가 촬영 중이란 건 아무도 몰랐다.

*   *   *

만화에서 봤던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는 말만큼 예비군 훈련장에 어울리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옛날부터 느끼는 바지만 군대 막사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있다고 할까.

멀쩡한 사람도 맛이 가고, 잠에 취하게 되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잠이 솔솔 오는 터라, 덕분에 3일 동안 정말 꿀잠을 잤다.

다른 아저씨들이 하루가 지날 때마다 피부에서 광채가 난다며 놀랄 정도였다.

3일이란 시간은 정말 무탈하게 흘러갔다.

간부가 딸에게 주고 싶다며 사인을 받으러 오기도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사격 과녁지를 받았지.

모르는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지냈다.

종종 연예계에 관한 썰 좀 풀어 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두루뭉술하게 거절하니 그 다음부터 물어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동생들에 대한 얘기만 주구장창 해 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고.

어쨌거나 3일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면서 뉴블랙에 대한 홍보를 하고 다녔다.

몇몇은 인심 좋게 퇴소할 때 폰을 받으면 바로 밤바다를 다운 받아 주겠다고 했다.

“자, 여기.”

“오, 감사합니다. 선생님.”

훈련이 끝나고 퇴소하는 시간.

노래를 다운 받아 주는 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꾸벅했다.

인증샷을 같이 찍자는 이들마다 찍어 주고는, 같이 밥을 먹자는 이들에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도 같이 식사하고 싶은데, 매니저 형이 저녁에 스케줄을 잡아서요.”

“아쉽네.”

“그러니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터넷에 좋은 후기 부탁드릴게요!”

그런 인사를 하며 유유히 빠져나왔다.

민기 형의 문자를 받고 큰길로 빠져나올 때, 먼저 퇴소를 한 이들이 지나가면서 막 웃는 모습이 보였다.

뭐, 웃긴 거라도 있나?

……싶었는데 훈련장 정문 앞에서 커다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미남들이 서 있었다.

[우유빛깔 선우주]

[Welcome to Society]

마치 공항 입국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듯 중현이와 지호가 사이좋게 플래카드를 들고 있고, 비주는 그 사이에서 미니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아. 진짜.

그 뒤로 리혁이가 야구 모자와 마스크를 낀 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는데, 그 기분에 공감할 수 있었다.

“…….”

사람들 틈 사이에 끼어서 모르는 척하고 걸었다. 하지만 매를 방불케 하는 우리 김모 씨의 눈에 발각됐다.

곧바로 중현이 지호에게 속삭였다.

“혀어엉! 우주 혀어엉! 제가! 여기! 있어여!”

“…….”

왕지호 목소리 짱 커. 진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이내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간만에 느끼는 치사량 급의 수치스러움이었다. 한숨을 쉬며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혀어엉! 보고 싶었어여!”

“저도요!”

터덜터덜 걷는 나를 향해 동생들이 다다다 뛰어왔다.

지금 보니 어깨에 카메라를 짊어진 리얼리티 제작진도 있었다. 작가님이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는데 왠지 미웠다.

리트리버 떼에 둘러싸인 듯이 곧바로 동생들이 나를 둘러싸고 방방 뛰면서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야~.”

“으쌰라 으쌰!”

“제발… 얘들아.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 너희 진짜 이러면 나 부끄러워서 죽어.”

내 말에 다들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1초 후.

“야야~ 야야야야~.”

“…….”

“말려도 소용없어요. 다들 보고 싶다고 하도 난리를 쳐서.”

리혁이의 말에 웃음만 나왔다.

막내가 내게 대롱대롱 매달리고, 비주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곁에서 붙어 있을 때, 소감을 묻는 제작진에게 한 마디를 했다.

“아, 예비군이요. 정말 3일 동안 조국에 봉사를 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진심이에요?”

“혹시 음성 변조 되나요?”

내 장난기 어린 물음에 작가님이 웃었다.

뭐 어떻게 대답을 해.

6.25 때 쓰던 장비 아직도 쓰고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내가 느낀 그대로 말했으면 국방부에서 고소 들어왔을 걸.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할 때, 내 핸드폰이 울리면서 작가님이 눈을 번쩍 떴다.

영상 통화 화면에 떠오른 [한태현]이란 이름 때문일 것이다.

“이거 혹시.”

“네, 맞아요. TNT.”

“우주야. 그, 응원 한 마디 넣는 식으로 가능할까?”

“한 번 물어볼게요.”

곧바로 차량에서 이동 중인 아이돌 멤버가 노란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계속해서 닦달하는 작가님을 대신해서 물어보니, 태현이 흔쾌히 승낙했다.

-어, 안녕하세요. 잇츠. 뭐라고, 형?

“잇츠 더 뉴블랙.”

-아. 잇츠 더 뉴블랙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TNT 태현입니다.

우리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우와아 하자, 영상 통화 속 인물이 웃었다.

-예, 정말 제가 좋아하고 아끼는 형이고요. 되게 매력 넘치거든요. 모쪼록 그 리얼한 모습이 잘 전달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러곤 물었다.

-이 정도면 됐나요? 개인 통화 좀 하고 싶은데.

“아, 네. 하세요.”

필요한 분량을 챙겼다는 듯, 작가님이 방긋 웃으며 끄덕였다.

오오.

방송국 제작진에게 저렇게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니.

-되게 눈이 반짝거리네.

“야, 잠깐이지만 멋있었다.”

-뭘 이런 거 가지고. 형도 5년차 되면 이럴 수 있어.

“아주 희망적인 얘기로구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영상 통화를 하며 걸었다. 그러면서 다른 동생들을 흘깃거리며 말했다.

“근데 나 지금 촬영 중이라서, 얼른 할 얘기하고 끊자.”

-야박하다. 정말.

“5년차쯤 되면 너그러워질 거야.”

화면 속 상대가 웃는다.

“그래서 왜 전화했어?”

-아, 나도 지금 촬영하는 중이라서.

“촬영?”

화면을 돌리니 옆자리에서 매니저로 보이는 인물이 태현이를 찍어 주고 있었다.

“촬영 중이면 말씀을 하셨어야죠, 선배님. 진짜 큰일 날 뻔했네.”

-걱정하지 마. 어차피 제작진한테 주기 전에 우리 홍보팀 사람들이 편집한 다음에 주는 거라. 방송에 대한 조언 때문에 전화했어.

“내 조언이 필요할 일이 있어?”

-그거 나가거든. 병영 예능, 사나이가 간다.

그 순간,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한참 동안 깔깔거리며 웃는 내 모습에 태현이가 빈정이 상했다는 듯 자기네 카메라를 향해 ‘와, 이거 꼭 넣어 주세요’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 나도 잠시 양해를 구했다.

“잠깐만.”

민기 형을 불러 석환 형에게 연락할 것을 부탁했다. 이런 통화에 응해도 되냐는 물음에 곧 OK가 떨어졌다.

그래서 이런저런 좋은 팁을 알려 주었다.

-고마워, 형. 내가 또 신세를 졌네.

“근데, 태현아. 이런 꿀팁은 나 말고 매니저 분들한테 여쭤 봐도 되지 않아? 다들 군필자이신…….”

-어어? 뭐라고. 이게 수신이 잘 안 되네.

“옆에 매니저 분들이…….”

-아, 이거 폰 좀 바꿔야겠다.

“너 밥 뭐 먹을래?”

-나 소고기, 앗.

둘이 한참 동안 웃은 후, 짧은 통화를 마쳤다.

-아저씨, 진짜 우리 밥 한 끼 먹읍시다. 3월부터 만난다 만난다 해놓고 6개월이 지났잖아.

“야, 바쁜 건 너야.”

-아냐. 나도 이제 곧 국내에서 활동할 거라.

“국내?”

-리패키지 앨범으로 11월쯤 컴… 아, 이런 거 말하지 말라고요? 뭐, 비밀도 아니잖아요.

나중에 밥 한 끼 먹자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통화를 종료했다.

조만간 TV 또 한 번 나오겠네.

‘사나이가 간다’에서 입소하기 전에 게스트들이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장면을 보여 주는데, 태현이가 그중에서 전화를 걸 연예인 절친으로 날 고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11월이라.

높은 확률로 우리랑 컴백 일정이 겹치겠네.

뭐.

큰 상관은 없었다.

지난번 썸씽 때처럼 우리와 TNT가 음방 1위를 두고 다툰다면 모를까.

애초에 우리는 경쟁 선상에 있는 그룹이 아니었다.

“무슨 얘기했어여, 형?”

“별 얘기 아니었어. 사나이가 간다, 거기 나간다고 해서 이것저것 조언 좀 해 주느라고.”

눈을 빛내며 이것저것 묻는 막내에게 대답을 하다가 그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자, 가자. 집으로.”

“집이 아니고 숙소에요.”

누군가의 트집에 다른 동생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럼 숙소로 가자~!”

“예이!”

“아, 나 빼고 가지 마요!”

3일간 밀렸던 얘기를 웃고 떠들고 하는 동안, 핸드폰이 다시 한 번 짧게 진동하고 있었다.

태현인가 싶었는데 조규환 이사였다.

-타이틀곡 방금 완성됐어.

그 아래로 문자 내용이 이어졌다.

-이제부터 앨범 제작 들어가야 하니까, 내일 9시까지 멤버들 데리고 회의실로 와. 컴백 일정이랑 팬미팅 관련해서 논의할 사항이 있어.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프로듀싱에 참여하는 앨범이 만들어지는구나.

다시금 감회가 새로웠지만, 문자 내용 중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는 건 다른 단어였다.

바로 팬미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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