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7화
레몬 엔터 홍보팀.
홍서영 대리는 사무실에 앉아 마우스를 딸깍거리고 있었다.
보도 자료가 제대로 나갔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뉴블랙, 첫 단독 리얼리티 확정, 10월 3일 첫 방송
-‘대세 신인’ 뉴블랙, 데뷔 첫 리얼리티 내달 3일 공개(공식)
-단독 리얼리티 ‘잇츠 더 뉴블랙’, 3일 첫 방송[공식 입장]
엇비슷한 제목의 기사 수십 개를 주르륵 넘기며 중간중간 이상한 내용은 없는지 확인했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예능으로 관심을 모은 신인 보이그룹 뉴블랙이 10월 3일부터 8부작 단독 리얼리티를 선보인다는 것.
팬들을 제외하면 일반인들은 클릭하지도 않을 기사이기는 하나 면밀하게 내용을 검토했다.
그러다가 눈을 살짝 치켜떴다.
‘우리 애들 팬 많이 붙었네.’
팬카페 링크를 타고 들어온 건지, 기사가 올라온 지 10분 만에 벌써 리플이 몇 개 달려 있었다.
-뉴블랙 화이팅..!
-오오 리얼리티 @[email protected] 기대합니다!!!
-우리 귀요미들 잘되길 바라..^^
예전 같았으면 댓글 하나 없이 묻혔을 기사였는데 이런 면에서 사소한 변화가 눈에 띄었다.
물론 좋은 변화만 있는 건 아니었다.
최근에는 악의적인 글이 기사화되지를 않나, 다른 팬덤에서 SNS 상으로 공격을 퍼붓지를 않나.
하나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뉴블랙이 예능으로 갑자기 화제를 모으면서 생긴 당연한 반작용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뉴블랙을 좋아하는 이들도 늘었다는 뜻이었다.
눈에 띄는 지표들이 그걸 증명했다.
‘미튜브 조회수도 확 뛰었지.’
레몬 엔터 계정의 뉴블랙 카테고리 동영상들이 하나 같이 급격한 조회수 상승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다 영어 댓글까지.
아니나 다를까.
해외 K팝 팬들이 모인 사이트에도 뉴블랙의 영상에 대한 글이 링크와 함께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데, 얘네 누구야?
-춤선이 정말 아름다워. 펭귄도 아주 귀엽고.
-퍼포먼스 팀인가? 이름이 뭐야?
-뉴블랙이야. 제목에 쓰여 있어.
-아, 미안. 그냥 핫하다는 건 줄 알았어.
‘어떻게 우리 애들을 알게 된 거지?’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홍보팀 회의 때 안건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대체 왜 외국인들의 댓글이 확 늘어나게 된 건지.
정확한 원인은 몰랐다.
그저 걸스온탑의 영향일 거라고 추측만 할 뿐.
대개 해외 K팝 팬덤은 아이돌이 출연하는 한국 예능도 종종 챙겨보는 편인데, 해외 팬이 꽤 많은 걸스온탑과 함께 방송에 출연하면서 뉴블랙에게 시선이 간 게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경우가 어쨌건, 자체 리얼리티나 퍼포먼스 영상의 조회수가 늘어나고 ‘OMG’ 같은 영어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자 영어 자막이 빛을 발했다.
‘자막 달기가 신의 한 수였어.’
동영상에 영어 자막이 지원되면서 점점 외국인들의 유입이 늘어나는 게 눈으로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뉴블랙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비단 해외 팬뿐만이 아니었다.
-헐 난 왜 이런 애들이 있는 걸 몰랐을까
-ㅠㅠㅠㅠ진짜 목소리 취저
-주세한 보고 검색해봤는데 홀린듯이 리얼리티 보는 중
예능을 보고 미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검색하다가 그간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뉴블랙의 각종 연습 영상, 직캠, 리얼리티 영상까지 함께 달리는 추세였다.
당연하게도, 이런 관심의 결과는 팬카페 회원 수에도 영향이 미쳤다.
‘적응이 안 돼, 적응이.’
팬카페 회원 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지금은 성장세가 둔화되었지만 방송이 나간 직후에는 정말 굉장했다.
이전에는 동네 반상회에서 수플레들이 옹기종기 모여 우와앙! 했다면 지금은 동네잔치 느낌으로 북적거린달까.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괜찮으려나?’
팬덤 규모가 갑자기 커졌을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였다.
팬덤이 작았을 때는 허용되었던 멤버의 행동이 갑자기 친목처럼 되어 버려 논란이 되기도 하고, 멤버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팬카페에 썼던 글 하나로 팬덤이 요동치기도 하고.
‘스칼렛 때도 그랬지.’
하지만 희한하게 걱정은 안 됐다.
그건 아마 팬들과 교류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 생각이 깊은 멤버가 뉴블랙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문제는 우리지.”
“뭐?”
홍 대리의 옆 파티션에서 남 대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또 뭐가 문제야, 우리 홍 대리님.”
“팬미팅 장소 말이야. 이거 로케이션 이대로 가면….”
“가면?”
“욕 바가지로 먹겠지?”
“어딘데?”
“아트 인 홍대라고 신촌 쪽에 소극장. 내가 석 달 전부터 대관 신청해 놓은 데인데…….”
“어디 보자. 최대 수용 인원 300명?”
남 대리가 코웃음을 치며 커피를 들이켰다.
“이대로 장소 공지해 봐. 재미있겠네. 바로 회사 미쳤냐, 쇼케 때가 이백인데 삼백이 가당키는 하냐, 그러겠지.”
“역시 그렇겠지?”
첫 공식 팬미팅을 앞두고 있는 지금, 본래 계획대로라면 소규모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데뷔 100일을 즈음해서 기념으로 소극장에 모여 케이크도 후 불고, 가볍게 박수치는 그런 분위기로.
그때만 해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팬이 이렇게 늘어날 줄 누가 알았겠냐고….’
기존에 대관했던 장소가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곧바로 분노한 수플레 빵들에게 둘러싸여 짓눌리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취소 전화를 걸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행복한 고민하는 거야. 어디 가서 우리 애들이 팬덤이 커진 게 고민이라고 하면 욕해.”
“나 대신 전화해 줄 거 아니면 조용히 해.”
“넵.”
동기를 째려보던 홍 대리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행복한 고민이지.
수화기를 들면서 그녀는 최근의 이 모든 현상을 불러온 누군가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 * *
“그런 이유로 9월 말에 하려던 팬미팅은 연기하게 됐어. 가장 빠르게 대관이 가능한 곳이 죄다 10월 중순은 돼야 자리가 비어서.”
레몬 엔터 회의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에게 홍서영 대리님이 설명했다.
“지금 픽스하려는 장소는 여기야.”
태블릿 PC로 공연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인터넷 서점에서 운영한다는 라이브 홀.
내가 물었다.
“수용 인원이 어떻게 되나요?”
“천 명 정도?”
“허어어…….”
우리끼리 바라보며 기겁했다.
“들었어? 천 명이래.”
“처, 천 명이여? 저희 보려고 천 명이나 와여?”
“대리님, 저희 진짜 저기서 팬미팅을 한다고요?”
하나둘 목소리를 키우는 동안, 내 옆에서 리혁이가 자기 허벅지를 몰래 꼬집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길래 푸근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리혁이의 스니커즈가 내 신발을 콱 밟았다.
아으.
꿈이 아니긴 하네.
천 명이라….
왜 이렇게 안 믿기지. 아니, 우리를 보려고 천 명이나 온다고?
조규환 이사가 웃었다.
“왜, 안 믿겨?”
“좀 얼떨떨해요. 천 명이라니… 저 같으면 저 보러 안 올 것 같거든요.”
“그건 맞아여.”
내가 리혁이를 툭 치자, 대신 막내의 발을 세게 밟아주었다.
조 이사가 웃으며 말했다.
“안 믿길 수도 있지만, 저걸로도 충분하진 않을 수도 있어. 팬카페 인원이 너희 생각보다 많이 늘어서.”
그렇긴 했지.
“어쨌거나 날짜 한 번 검토해 볼래? 공식 팬미팅이라 준비가 꽤 빡빡할 텐데, 너희한테 선택권을 주고 싶어서.”
곧바로 동생들이 태블릿 PC를 받아 들어서 달력을 살폈다.
비주가 물었다.
“형, 언제쯤 해야 적당할까요?”
“잠시만.”
내가 핸드폰을 꺼내서 키자, 중현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뭐 보게요?”
“잠시만, 중현아.”
“네.”
핸드폰 바탕화면에 있는 날짜를 확인하고는 태블릿 PC에 있는 날짜를 손으로 세어 갔다.
그러고 딱 25일에 멈췄다.
“이날이요. 25일 토요일.”
맞은편에 있던 직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바탕화면에 기념일 어플 쓰고 있어서요. 25일이 마침 수플레가 탄생한지 100일째거든요.”
내 핸드폰 화면에 있는 ‘우리 수플레랑 63일째!’라고 쓰인 어플을 보며 직원들이 웃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라서 고개를 갸웃하는데 석환 형이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데이트 어플을 저런 식으로 쓰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진짜 엉뚱하다니까.”
안 엉뚱한데. 나 진중한데.
…라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그 화면 위로 ‘다음 김덕순 여사 생일까지 269일’이나 ‘우리 데뷔 92일째’같은 글귀를 보고 조용히 핸드폰을 내렸다.
그러곤 머릿속에 떠오른 걸 말했다.
“방금 떠오른 건데요. 팬미팅 제목 같은 거 정할 때 수플레 데이나 수플레 백일잔치 같은 거 어떨까요?”
“와, 백일잔치 진짜 좋아요.”
비주가 적극 찬성을 했다. 역시 나랑 감성이 맞는다니까.
홍 대리님이 펜을 굴리며 중얼거렸다.
“백일잔치는 좀 올드한 느낌이고….”
“…….”
“수플레 데이. 이거 좋다. 기획안 짤 때 반영해 볼게.”
홍 대리님이 수첩에 메모를 했다.
팬미팅에 관한 자잘한 이야기가 오간 후 조규환 이사가 화제를 바꿨다.
“이제 앨범 얘기 들어갈 건데. 컴백 일정은 11월 20일로 잡았으니까 그렇게 알아 둬.”
그가 말을 이었다.
“한 주 더 앞당길 수도 있긴 한데, 그렇게 되면 수능 전날에 쇼케이스를 하고. 수능 날 음방을 시작하게 될 거야. 아무래도….”
“그렇죠, 팬분들 수능 공부 하셔야 되는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동생들도 동의했다.
“맞아요. 저희 쇼케이스나 음방으로 팬분들 공부 방해하면 안 되죠.”
“그렇네.”
“공부할 시간이 있어야죠.”
그런데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며 맞은편에 있던 어른들이 자기들끼리 펜을 떨구고 웃었다.
한 직원이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 얘들아. 우리는 수익적인 측면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한 거거든. 수능 날 발매하면 화제성도 떨어지고 별로 안 좋아.”
“어, 맞아요. 그 부분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어진 내 말에 다들 또 한 번 웃었다.
어째 회의가 아니라 우리를 우쭈쭈해 주는 모임 같은걸.
최근 활동이 잘돼서 그런 건가.
하지만 조 이사님이 덤덤한 얼굴로 말을 이어가면서, 다시 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컴백 텀이 5개월이나 돼서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괜찮을 거라고 봐. 리얼리티로 앨범 준비 과정이나 너희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면서 관심을 유지하고, 그런 식으로 8회가 끝나면 딱 21일이거든.”
“오, 리얼리티 끝날 때쯤 음방을 뛰는 거네요.”
“그렇지. 그 한 달 전에는 팬미팅을 하고.”
타이밍 한 번 잘 잡으셨네.
사실,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스칼렛이 10월에 음방을 뛰어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회사 아이돌끼리 음방 안 겹치게 하는 게 원칙이라나.
A&R팀장님이 말했다.
“참, 타이틀곡은 어느 정도 얼개가 짜였으니까. 이따가 끝나고 남아있어 봐. 들려줄게.”
조 이사가 우리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희도 우주가 이번에 앨범 프로듀싱에 참여하는 거 알지? 나랑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그러니 너희도 좀 많이 도와주고.”
“네. 그럴게요.”
“그리고 우주는 뭐 보여 줄 거 있다면서?”
“아, 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USB를 들고 가서 빔 프로젝터와 연결된 노트북을 켰다.
동시에 비주와 리혁이가 내 가방에서 프린트를 꺼내 돌리기 시작했다.
한 편의 꼬꼬마 회사 같은 풍경에 직원들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홍 대리님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한 거야?”
“네, 자료 준비하다 보니까….”
나도 웃으며 직원들과 멤버들 앞에 섰다.
곧이어 화면 위에 떠오른 ‘2집 앨범 제안’이라는 PPT 제목에 다들 소소한 웃음을 터뜨렸다.
한편, 남자 직원들이 어딘가 찜찜하단 얼굴로 물었다.
“어째 되게 익숙한 폰트인데. 뭐야?”
“아, 제가 행정병 출신이라 군대에서 쓰던 그대로 써서….”
“익숙한 짬의 향기였구만. 어쩐지, 며칠 전에 저작권 협회에서 보낸 공문이랑 너무 똑같더라.”
어느 직원이 스테이플러가 찍힌 곳에 띠처럼 두른 포스트잇을 매만지더니 웃었다.
“일 한 번 제대로 배워 놨네.”
“그니까요. 우리 팀 인턴보다 훨씬 낫네.”
리얼리티 카메라 불러서 이것도 찍어야 된다는 농담에 나도 같이 웃다가 이내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앨범 프로듀싱을 맡긴다고 한 다음부터 이것저것 생각해 낸 아이디어들이었다.
기왕 하는 거 뼈 부서질 각오로 하고 싶어서.
그런 마음이 전달됐는지,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듣던 직원분들도 내용이 이어질수록 조용히 유인물을 뒤적였다.
동생들도 진지하게 내 얘기를 경청하고 있었고.
내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직원분들의 반응으로 봐서는 성공적인 것 같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여기저기서 질문이 날아 들어왔으니까.
* * *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아!”
“우와아…!”
HBS 방송국으로 가는 차량 안.
셀카봉에 달린 SNS용 폰에다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랜만에 튼 라이브 방송이었다.
예고 없이 진행한 터라 사람이 적을 줄 알았는데,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팬분들의 수가 꽤 됐다.
“와, 댓글 짱 많아여. 못 읽겠는 것도 많고. 오, 이건 읽을 줄 안다. 이거, 그, 니하오인가?”
“영어가 은근 많아졌네요.”
한국어로 쓰인 댓글이 제일 많기는 하지만, 영어 댓글의 비중이 꽤 늘어 있는 느낌이었다.
신기하구만.
내가 웃으며 손을 다시 흔들었다.
“네, 저희는 지금 뉴블랙 리얼리티 ‘잇츠 더 뉴블랙’ 1화 촬영을 위해 방송국으로 가는 중이에요.”
“원래 미리 공지하고 트는데, 오늘은 저희가 여러분이 보고 싶어서 틀어 봤어요.”
“나도 어제 그래서 꿈에 수플레 나왔는데.”
“진짜로?”
“네, 형. 저 수플레랑 악수하는 꿈 꿨어요. 손이 빵으로 되어 있었는데, 악수할 때마다 빵가루 떨어지고…….”
우리끼리 그만 웃음을 터뜨렸고, 팬들도 채팅창에서 ‘ㅋㅋㅋㅋ’를 쓰며 한참 웃었다.
“아, 맞다.”
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거 아세요? 제가 얼마 전에 예비군 다녀왔거든요. 그때 에피소드 진짜, 제가 여러분 만나서 풀려고 엄청 쟁여놨어요.”
“또 시작이다. 군대 얘기. 다들 귀 막아여.”
“밥 먹을 때마다 했던 얘기 또 하는 거 안 지겨워요?”
항의를 무시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요. 제가요, 처음으로 사격할 때 만발을 해 봤어요. 제가 진짜 소문난 몸치라서 표적지에 뭘 맞춰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옛날에는 늘 옆 사람들 거 맞추고 그랬는데….”
주섬주섬 가방에서 사격 표적지를 꺼내 자랑하자 동생들이 비웃었다.
기다려라, 이것들아.
너희도 몇 년 지나면 못 비웃을걸. 특히, 서리혁 너 말이야.
“총 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예여? 쉽던데.”
“네가 총을 어디서 쏴 봤는데.”
“서든어택이여.”
“그, 아이고, 뒷목이야. 내가 진짜…….”
내가 뒷목을 붙잡자 비주가 옆에서 홍삼 봉지를 내밀었다.
“고마워.”
쭙쭙, 홍삼을 빨면서 팬분들에게 그 위대함을 전파했다.
“아, 살 것 같다. 여러분. 제가 홍삼을 먹은 다음부터 새벽에 눈도 엄청 잘 떠지고요. 좋아요.”
“갑자기 뭔 홍삼 광고를 해요.”
“형, 방금 어떤 팬분이 홍삼 먹는 거 보고 자기 할아버지랑 똑같다고 댓글 올리셨어요.”
“누구에요. 얼른 자수하세요.”
부들부들하는 내 모습에 다시금 채팅창에서 ‘ㅋㅋㅋ’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우리 수플레들이 남겨준 댓글을 보며 즐겁게 소통을 했다.
“조만간에 좋은 소식 있을 테니까요. 그럼 또 만나요, 뿅!”
“뿅!”
…하고 HBS 사옥 지하 주차장 즈음에서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간만에 팬분들과 마주해서 그런지 기운이 솟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표정도 좀 밝고.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피디님도 그런 인사를 했다.
“안녕. 너희 오늘 분위기 좋네.”
“네, 저희 풀 파워로 충전하고 왔습니다.”
“그래. 안에 스튜디오 들어가서 적응 좀 하고 있어. 장비 세팅 중이라 시간이 좀 걸릴 거야.”
HBS MTV ‘잇츠 더 뉴블랙’의 세트장은 굉장히 특이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가운데 3인용 푹신한 소파와, 사이드에 1인용 소파 두 개.
테이블에는 이런저런 다과가 올려져 있었고, 세트장에는 책장이나 꽃병 같은 기물이 있었다.
마치 채광 좋은 고급 주택의 거실을 보는 듯했다.
“우와, 집에 돌아온 거 같아여. 이런 분위기 되게 오랜만이다.”
“소파 진짜 푹신하네. 형, 저희도 숙소 옮기면 이거 하나 사 볼까요?”
“그럴까?”
비주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협찬 소파의 제품명을 검색했는데, 곧바로 나온 가격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비주가 메모장에 그 품목을 적으며 메모 제목을 ‘언젠가는’으로 저장했다.
한편, 보면 볼수록 세트장이 눈에 익은 느낌이었다.
뭔가 익숙한데.
세트장 한편에서 스탭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민기 형에게 물었다.
“형, 혹시 우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요. 피디님이 전에 맡으셨던 프로가 뭐라고 했죠?”
“뷰티 살롱이라고, 케이블 뷰티 프로그램 맡으셨대.”
“아, 뷰티 프로그램.”
내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흠칫했다.
“뷰티 프로그램이요?”
“응,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리얼리티 컨셉이 범상치 않을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