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9)화 (12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9화

서지형은 부푼 마음을 안고 달렸다.

‘방송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게에서 일하던 동생이 ‘형, 연예인들 왔어. 아이돌’이라고 한 순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혼자서 주먹을 쥐고 예스! 하며 좋아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곱창집의 매출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었다.

초반에야 유명인의 이름값 덕에 번창했지만, 곧장 근처에 곱창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주로 건물주들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그런 난국을 타파하고자 주말에는 본인이 와서 직접 서빙을 하기도 하고, 유명인 사인을 붙여 보는 등 직접 발로 뛰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랬기에 주세한 추석 특집에서 요리를 하는 미션이 나왔을 때 쾌재를 불렀다.

-요리 되게 잘하시네요?

-예, 제가 홍대에서 곱창집을 운영하거든요.

-지형아. 너 칼질이 아주 셰프 같다?

-평소에도 요리를 자주하거든요. 아, 저 곱창집 한다고 말씀 안 드렸나요?

…라고 온갖 홍보를 했지만 구재영 피디가 누구던가.

귀신같이 알아채서 다 편집해 버렸다.

그랬기에 방송국 카메라가 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던 흥분은 최고조였다.

‘근데 누구일까?’

보이그룹인가, 걸그룹인가?

예능에서 나왔나? 아니면 맛집 프로그램?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하나 같이 즐거운 것들뿐이었다.

방송에 탄다는 것부터가 몹시 행복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벌컥 열었다.

“하하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시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촬영 오셨다고 들었… 어?”

어둑어둑한 실내에 눈이 적응하는 순간, 그의 흑역사가 눈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일어나서 활기차게 인사하는 아이돌 그룹은 한차례 방송에서 만난 적이 있는 이들이었다.

뉴블랙.

그중에서도 가장 환하게 빛나는 녀석에게 시선을 던졌다.

“…….”

머릿속에 장면이 스쳐갔다.

분량 좀 얻자고 추하게 자리를 뺏으려다 당했던 장면, 복수심에 어깨를 툭 치려다 허공을 쳐서 바닥에 굴렀던 장면, 자신 있게 닭싸움을 걸었다가 땅바닥과 포옹했던 장면.

특히 마지막 것이 가장 선명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형아, 어서 와. 땅바닥은 처음이지?

-저거 나오기 전에 회상 형식으로 ‘아 형석 행님! 제가 소싯적에 마장동 닭싸움 일짱 아닙니까!’ 나온 게 대박ㅋㅋㅋㅋㅋ

-악..ㅋㅋㅋ 나였으면 쪽팔려서 혼절함

-흙 묻은 게 못생긴 고구마 같음

-컄ㅋㅋㅋㅋㅋㅋㅋ

-나라 잃은 표정ㅋㅋㅋㅋㅋ

친한 개그맨 동생들이 고구마 상자를 보내며 놀리고, 추석 때 만난 친지들은 본방을 보면서 깔깔 웃고.

그 수치스러운 기억이 선우주의 얼굴이 되어 망막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하지만, 일단은 비즈니스가 먼저였다.

그래.

손님은 왕이니까.

“아이고, 우리 뉴블랙 친구들이 왔구나! 핫핫! 오랜만에 보네?”

동생에게 얼른 세팅을 하라고 눈짓을 하고는 방송국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서 어느 방송에서….”

“아, 일단은 그냥 식사만 하러 온 거라서요.”

“그러시구나. 근데 촬영을 하고 계시네요?”

“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 분량이 좀 나올 거 같아서.”

“리얼리티요? 리얼리티 쇼…?”

“아이돌 리얼리티요.”

곧바로 HBS MTV라는 마크가 붙은 카메라를 보며 서지형은 눈을 깜빡거렸다.

“…….”

그래.

어쨌든 방송에 나가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지형은 집게를 들고 곱창을 굽기 시작했다.

곧바로 고소한 냄새가 퍼지고, 젓가락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배님, 하나 잡숴 보세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멤버가 곱창을 하나 집어 그에게 내밀었지만 방송용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난 배가 안 파고서.”

뭐, 착하긴 하네.

겉으로는 사근사근 웃으면서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을 때, 얼마 안 가 서지형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김중현이 선우주를 불렀다.

“우주 형, 저 더 시켜도 돼요?”

“그럼, 더 시켜. 오늘은 내가 살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껏 시켜.”

“예이.”

우렁차게 기뻐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앳된 외모의 미남이 선우주에게 냉큼 고개를 내밀었다.

“형, 형, 저는여?”

“우리 막내도 성장기니까 더 잘 먹어야지.”

“형, 그럼 저는요?”

“당연히, 우리 비주도 매번 밥 하고 고생하니 많이 먹어야지.”

“…….”

“…….”

“저기, 나는 안 불러 줘요?”

“어디 보자, 사이다를 하나 시켜야 하나.”

그러면서 선우주가 사이다를 가지러 일어났을 때, 서지형이 앉아 있으라고 손짓을 할 때였다.

선우주가 냉장고 쪽으로 다가와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선배님, 저희 애들이 좀 많이 먹죠? 이따 제가 계산하고 갈게요."

“뭐, 그냥 공짜로 먹어.”

“아니에요. 오늘 진짜 얻어먹으려고 온 게 아니어서요.”

“음?”

“지난번에 엔딩 멘트하실 때 홍대 오면 곱창집 꼭 와달라고 하셔서 한 번 와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잠시 찡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어, 그래. 맛있게 먹어.”

서지형은 상대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주문량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저희 곱창 하나 더요!”

“하나 더 시킬게요.”

“저희, 천엽이랑 간 좀 더 주세여. 리혁이 형, 제 말 믿고 간 한 번만 먹어 봐여. 달콤해여.”

진공청소기처럼 곱창을 빨아들이는 다섯 아이돌을 보며 제작진과 그는 잠시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점점 금액이 올랐을 때.

서지형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섰다.

그러곤 메뉴판을 조심스럽게 들어 선우주에게 보여 주었다.

“요것도 먹어 볼래? 새로 들어온 부위인데 맛있어.”

“네. 더 시킬게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럼 이거는…….”

“네, 그것도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역대급 손님이었다.

재료를 내어오는 동안, 선우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래, 중현아. 잘 먹었어? 뭐? 더 먹고 싶다고? 안 지치니?”

그런 대화가 오가고 나면 주문이 더 늘곤 했다.

매출 전표를 바라보던 그가 최선을 다해 곱창을 굽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김중현도 최선을 다해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 편의 승부 같은 모습을 카메라가 담고 있었다.

*   *   *

2주 후.

아이돌 커뮤니티의 게시판.

[내 거친 위장과 불판의 곱창과, 그걸 지켜보는 리더.gif]

지금 반응 좋은 뉴블랙 리얼리티 1화ㅋㅋㅋㅋㅋ

김치통 폭ㅋ발ㅋ의 임팩트 때문에 묻힌 감이 좀 있지만 나름 1화 하이라이트 중 하나 ㅋㅋㅋ

비하인드 : 저 날 먹은 것 때문에 다음날 굶고 트레이너 쌤과 지옥 pt 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복스럽게 먹는다 쟤

-대길이 친구 잘 먹는구나

-얔ㅋㅋㅋㅋ대길이 친구 뭔뎈ㅋㅋㅋ

-너무하다. 엄연히 중현이란 이름이 있다구ㅋㅋㅋ

-대길이 친궄ㅋㅋㅋㅋ찰떡이다

-움짤에서 흔들리는 동공이 킬포

-(추가) 라이브 방송에서 중현이 피셜 : 기분 탓이겠죠. 그날 형이 저를 부를 때마다 중혐이라고 한 건.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무슨 진검승부 같냐. 어디 한 번 먹어봐라 굽는다 vs 제 위장 무시하지 마시죠

-와.. 곱창 땡긴다 진짜

한편, ‘잇츠 더 뉴블랙’의 1화에 나왔던 김치통 폭발씬과 함께 곱창 먹방씬의 움짤은 일반 다른 커뮤니티에도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   *   *

그날 저녁, 피트니스 센터.

“형, 이거 봐요.”

“뭐.”

“아까 얘기하는 거 깜빡했는데. 서지형 선배님이 저한테 또 오라고 도장 10개짜리 포인트 카드 네 장 주셨어요. 진짜 좋은 분 같아요.”

“그, 중현아.”

“네.”

“적립 카드 네 장을 줬다는 건.”

“네.”

“네가 그날 먹은 곱창이 그 정도 된다는 뜻이 아닐까?”

“아하.”

아하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 자식! 하고 헤드락을 걸고 싶었지만, 내 손으로 저 강인한 머리통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후우. 후우.”

그저 스미스 머신에 누워 벤치 프레스를 차분하게 할 뿐.

그래.

작곡으로 돈도 많이 벌었는데, 그 돈으로 뭐 하냐. 우리 김덕순 여사랑 동생들한테 쓰는 거지.

…라고 하지만 뭔가 분하다.

“형, 자세 흐트러졌어요.”

“맞아. 왜 그럴까?”

“제 생각에는 근육을 잘못 쓰는 것 같아요. 어깨로 밀지 마시고 이쪽에, 어때요? 자극이 와요?”

“중현아. 남의 가슴은 함부로 만지는 게 아냐.”

“만져도 돼요?”

“내가 말을 말자….”

그러곤 트레이너 쌤이 했던 자세를 떠올리며 고스란히 따라하자, 중현이가 운동을 보조했다.

“네. 그 상태에서 버텨야 돼요. 형.”

“으으… 힘 빠져.”

“안 돼요. 버텨요. 버텨. 어금니 꽉 깨물어요. 형.”

“느아아아!”

결국 상체 근육이 뻐근할 정도로 단련을 당해 버렸다.

목을 뚜둑거리며 녹초가 된 몸을 풀 때, 중현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희한하네요.”

“뭐가?”

“주세한 때 슛 성공시키는 것도 그렇고, 보통 그런 거 하려면 근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하는데?”

“형 너무 약해요.”

“네가 센 거야.”

“고마워요. 형.”

“…….”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이마에서 떼어냈다.

시원한 홍삼으로 목을 축이는 동안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PT룸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동생들이 보였다.

평소 체력 관리를 튼튼하게 했던 나와 중현이와 달리, 나머지 약체 라인은 PT쌤이 자상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보통 비주와 리혁이가 단골손님인데, 오늘따라 뺀질거린다는 이유로 우리 막내도 합류했다.

때마침 자세를 바꾸던 셋이 나랑 눈이 마주쳤다.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주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화이팅!’

거친 반응들이 돌아왔다.

뭐.

불쌍하긴 하지만 어떡하겠어.

단순히 몸을 혹사시키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었으니까.

2집 앨범 타이틀곡 관련해서 프로듀싱 회의를 했는데, 안무 난이도를 높이는 게 어떻냐는 의견이 나왔다.

1집의 불꽃놀이가 보컬적인 부분을 강조했다면, 이번 앨범은 댄스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안무도 외국 안무가에게 의뢰를 하자는 쪽으로 기울어졌는데, 샘플 영상을 보니 허리 힘 같은 코어 근육이 지금보다 더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래서 ‘일단 애들 몸부터 더 튼튼하게 만들자’가 결론이었다.

이윽고 땀이 범벅이 된 세 동생이 문을 열고 나와 내 앞에 쓰러졌다.

“아, 죽을 것 같다.”

철푸덕 쓰러진 리혁이 앞에 쭈그려 앉아 물병을 내밀었다.

“마실래?”

“입 댔어요?”

“응.”

“안 마셔요, 그러면.”

“싫으면 말아라.”

그때 문득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

“리혁아, 내가 옛날부터 궁금했던 건데, 만약에 네가 사막에서 조난을 당했어.”

“무의미한 가정이네요. 난 모래 싫어해요.”

“만약에 갔다고 했을 때, 네가 조난을 당한 거야.”

“와, 개꿀. 상상만 해도 넘 좋아여.”

널브러진 상태 그대로 두 막내가 서로를 향해 옷소매를 고양이 펀치처럼 휘둘렀다.

하찮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리혁이가 이내 지쳤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요점이 뭐에요? 조난당했는데 누가 입을 댄 물병을 주면 마실 거냐고요?”

“응.”

“그럴 필요 없어요. 난 오아시스를 찾을 테니까.”

“근데 그 오아시스가 신기루야.”

“자꾸 뭐 좀 덧붙이지 마요.”

그러면서 자기는 증류기의 원리를 이용해서 식수를 구할 거라고 설명을 신나서 하기에 안 들었다.

“우주 형, 저 물 좀 마셔도 돼여?”

“응. 마셔.”

“으엑, 왜 홍삼이 들어 있어여?”

“미안. 헷갈렸다.”

물이 든 병을 건네자 막내가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편,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아 있던 비주가 그 물병을 건네받더니 말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갑자기 트레이닝 난이도가 올라간 것 같아요. 예전보다 더 빡세진 느낌….”

“회사에서 시켰다면서요.”

리혁이가 말을 이었다.

“아까 트레이너 쌤이 매니지 팀에서 너네 빡세게 굴리라고 했다고, 그런 얘기하더라고요.”

“…….”

“맞아여, 춤추려면 힘이 있어야지! 이랬어여. 그래서 춤 잘 아시냐고 했더니 도발하냐면서 한 세트 추가 당했어요.”

내 가슴이 뜨끔거리는 성토가 이어질 때, 중현이가 마침 맞게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요새 운동 빡세게 하니까 효과가 있는 거 같아. 다들 몸도 좀 좋아졌고.”

그건 사실이었다.

체격 변화는 없었지만 몸이 더 탄탄해졌다고 할까.

근력도 좋아져서 안무 연습할 때도 확연한 차이를 느꼈다.

같은 동작을 해도 스텝을 밟을 때나 팔다리를 꺾을 때, 동작이 보다 파워풀하게 들어갔다.

특히 우리 메인댄서의 변화가 두드려졌다.

하얀 티셔츠를 나빌레라 하던 고운 춤선이 조금 더 역동적으로, 무게감 있게 변했다고 할까.

다리를 쭉쭉 찢으며 스트레칭 하는 우리 애들을 보며 잠시 앨범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샘플로 봤던 안무가들의 영상이 떠오른다.

지난번에 괜찮았던 그 안무, 점프 때문에 좀 힘들어 보였는데 이대로라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리혁이가 흠칫 몸을 떨었다.

“뭐예요. 그 눈은.”

“뭐가?”

“방금 우리 보고 기분 나쁘게 웃었잖아요.”

“맞아여.”

지호가 말했다.

“그 어렸을 때 본 만화에 나온 그거 같아여. 늑대가 후- 불어서 돼지 집 날리는 거 있잖아여.”

“아기돼지 삼형제?”

“아, 맞아여.”

“근데 우린 사형제잖아.”

“오형제 하자. 우주 형도 넣어 줘야지.”

앉아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다가 트레이너 쌤에게 발각 당해서 마무리 운동에 들어갔다.

덩치가 어마무시한 분이었는데 어찌나 완급 조절을 잘하시는지, 정말 아 진짜 힘들어서 죽겠다 싶을 때까지 시키셨다.

하지만 오늘따라 집중이 안 되는 기분이다.

준비를 앞둔 앨범 때문이 아니라 지난번에 중현이가 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저희 피티 해주는 쌤, 몸 진짜 멋지지 않아요? 양쪽 팔뚝이 비주랑 리혁이만 해요.

그러면서 왼쪽이 비주, 오른쪽이 리혁이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자꾸 그 생각이 났다.

망할.

나만 그게 떠오른 게 아닌지 비주도 입을 오므렸다.

웃지 말자.

웃으면 한 세트 추가다.

물론, 그런 노력은 전혀 소용없었다.

“쌤, 근데여. 이렇게 운동하다가 근육이 너무 빵빵해지면 저희 팬분들이 슬퍼하지 않을까여?”

트레이너 쌤의 시원한 웃음이 이어진 후, 두 세트가 추가됐다.

*   *   *

예비군 훈련 때는 하루가 열흘 같았는데, 그 이후로 열흘은 그야말로 하루처럼 지나갔다.

마치 초등학교에서 하던 이어 달리기 같았다.

정신을 차려 보면 다음 날이 바통을 들고 다다다 달려와서 ‘왔다!’이러더니 3초 후에 ‘형, 또 왔다!’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래도 바쁘게 살아서 그런 모양이다.

레슨, 피부과, 운동, 외국어….

회사에서 들리는 이야기로는 해외 반응이 괜찮아서, 2집 활동이 끝나고 일본이나 동남아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들었다.

그걸 대비해야 하기에 일본어나 영어 공부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외국인 수플레라니.

아직까지는 느낌이 안 온다.

자꾸만 머릿속에 윗부분이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빵만 떠오르는데 아무래도 다이어트 때문이겠지?

그렇게 본격적인 2집 타이틀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몸과 정신에 걸쳐 만반의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거기다 나는 프로듀싱 회의까지.

매일같이 조규환 이사와 머리를 맞대 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2집의 컨셉이라든가, 멤버의 퍼스널 컬러라든가. 인트로 아웃트로 구성은 어떻게 할지 등등.

그러면서 옆에서 작사 공모는 어떻게 하는지, 수록곡이 어떤 식으로 컨펌되는지, 디자이너와 소통을 어떻게 하는지를 틈틈이 눈대중으로 배웠다.

이사님도 작곡돌을 넘어 제작돌이 되려는 내 야심에 기꺼워하시며 이것저것 팁을 많이 알려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금요일 오후 5시.

“으아, 떨린다.”

“야, 왕지호.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리얼리티 시작하려면 아직 1시간이나 남았는데.”

“나도 좀 떨리는데….”

HBS MTV의 아이돌 리얼리티 <잇츠 더 뉴블랙>의 1화 방영을 앞두고 우리는 작업실에 옹기종기 모여 두 손을 비비는 중이었다.

노트북 화면으로 MC들의 비방용 드립이 난무하는 토크쇼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내가 웃었다.

“너네 긴장하는 거 오랜만에 본다, 정말.”

“리얼리티라서 그런가 봐요, 형. 우리 첫 리얼리티가 TV에 나오는 거잖아요.”

“하긴, 생각해 보니 연말 평가 때 너네가 스트릿 보이즈 보고 엄청 부러워하긴 했지. 기억나? 카메라 앞에서 아주…….”

“형, 사과 먹어요. 사과.”

비주가 반듯이 깎은 사과를 내 입에 넣었다.

사과를 우물거리는 동안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확인해 보니, 홍보팀 홍 대리님이었다.

-잠깐 멤버들 데리고 사무실로 와 줘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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