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0화
무슨 일일까.
홍보팀에서 연락이 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은 매니지먼트 팀에 연락을 하지만 가끔 우리를 부를 때도 있었다.
홍보에 들어갈 문구 때문에 의견을 묻기도 하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 조심해야 할 주의사항을 알려 주기도 하고.
다만.
“무슨 일이래요?”
“나도 잘 모르겠어.”
좋은 일 같지는 않았다.
보통 문자 끝에 ‘^^’를 습관처럼 넣는 분인데 오늘따라 단문으로 짤막하게 보내니 찜찜했다.
그래도 전화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홍보팀에서 직통 전화를 걸었다는 건 정말 급한 일인 거니까.
동생들을 이끌고 작업실을 나섰다.
그런데 이 녀석들.
꼭 엘리베이터를 타겠다고 옹기종기 모인 것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한 층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 타게?”
“넹.”
막내가 당연하다는 듯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즐겨야 돼여, 이 성공의 맛을.”
“…엘리베이터 타는 게 무슨 성공의 맛이야?”
어이가 없어서 웃는데, 비주가 나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계신데, 예전에 저희 엘리베이터 탄다고 한 말씀 하신 분이 있었거든요.”
“아, 진짜?”
그건 또 몰랐네.
“데뷔도 안 했는데 왜 엘리베이터 타냐고….”
“이상한 사람이 다 있었네.”
“뭐, 그때는 이상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잖아요.”
리혁이의 대꾸와 함께 동생들과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2층에서 3층 올라가는데 엘리베이터라니.
뭔가 웃긴 풍경이지만, 애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좋아하니 또 한편으론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갈 때는 늘 계단으로 가긴 했지.
한 층 올라가자고 엘리베이터 타는 건 최초긴 했다.
“왔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하지만 그때, 문이 열리며 인상이 좋은 중년인이 보였다.
엘리베이터 조명에 머리가 반짝거리는 사람의 모습에 우리가 굳었다.
“……?”
우리가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동안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대표님과 본부장님, 조 이사님, 경영지원팀장님이 눈을 깜빡거렸다.
“엇, 안녕하세요.”
우리가 인사를 하자, 경영지원팀장이 눈치 좋게 열림 버튼을 눌렀다.
대표님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이구. 오랜만에 보네. 하하. 위층에 볼일이 있니?”
“아, 그게요.”
…라고 말을 하며 동생들을 바라보는데 죄다 내 뒤로 숨었다.
얘네들은 꼭 난처한 일 생기면 이런다니까.
각도상 안 보이게 내려가는 버튼을 살포시 누르며 웃어 보였다.
“내려가는 버튼을 눌렀는데, 실수로 둘 다 눌렀어요.”
“그렇구나. 그래, 그럼 수고하고.”
“예, 올라가세요.”
친절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큰 키로 대표님 뒤에 서서 상황을 관망하던 조 이사님이 입술을 말았다.
뺨이 씰룩거린 걸 보니 우리 애들 표정을 보고 눈치챈 듯싶었다.
망할.
문이 닫히자마자 이놈들 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가 동생들의 표정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인터넷에서 보던 그 짤이 떠올랐다.
다 잡은 먹잇감을 독수리에게 뺏긴 여우의 나라 잃은 표정.
처음에는 구박을 하려다가 이내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동생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계단으로 가자.”
* * *
홍보팀 사무실은 평화로웠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은근 마음을 졸였는데 막상 와 보니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만.
“저게 다 뭐래요?”
리혁이가 질린 표정을 지으며 홍보팀 사무실 한구석을 가리켰다.
택배 상자가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왔어?”
세 남녀가 우리를 반겼다.
아이돌을 담당하는 남 대리님, 홍 대리님, 그리고 지난번과는 다른 인턴 분이었다.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는 곧장 질문을 던졌다.
“택배 때문에 부르신 건가요?”
“어, 갑자기 지금 물량이 쏟아져 들어왔거든.”
“이게 뭔데여?”
지호의 물음에 홍 대리님이 답했다.
“너희 선물 들어온 거야.”
“선물이요?”
이상하다.
“예전에 공지 올리시지 않았나요? 팬분들한테 개인 선물 같은 거 안 받는다고….”
“그랬지. 분명 공지를 그렇게 올렸는데 보냈더라고. 배송 시간대를 일부러 지금으로 맞춘 거 보면 리얼리티 첫방 기념으로 축하한다는 의미 같기는 한데.”
그래도 이상하긴 하다.
팬분들이 개인적으로 선물을 보내준 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데뷔하고 나서 1위를 했을 때 선물이 막 들어왔었지.
하지만 소위 말하는 이런 조공이 액수 상관없이 소속사 방침으로 금지되기도 했고 우리도 동의하던 터였다.
그런 까닭에 이런 선물이 들어오면 홍보팀에서 개봉해서 팬레터는 받되 선물은 반송하는 식이었다.
그게 합의가 돼서 늘 지금까지 그러고 있었는데…….
“혹시, 저희를 부르실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어, 그게 말이야.”
수더분한 인상의 남 대리님이 입술을 뗐다.
그러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 손짓하고는 택배 상자를 열어 보여주었다.
“흐어…….”
열 때마다 값비싼 물건이 들어있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런 걸 택배상자에 넣어서 보내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홍 대리님이 말했다.
“어지간하면 바로 돌려보내는데, 액수가 만만찮은 물건들이 있어서 함부로 하기가 어렵더라.”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지만, 금액 때문에 부담이 돼서 일단 불러봤다는 이야기 같았다.
동생들을 바라보자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금액 상관없이 돌려보내 주세요. 팬레터 같은 게 있다면 그것만 받아갈게요.”
“알았어.”
홍 대리님이 웃으며 말했다.
인턴 분이 다시 테이프로 포장을 하는 가운데, 중현이가 한쪽에 별도로 쌓인 상자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저 상자들에는 뭐가 있는 거예요, 대리님?”
“아, 저거 다 홍삼이야.”
“홍삼이요…?”
우리가 눈을 깜빡이자, 그녀가 대답했다.
“우주, 네가 라이브 방송에서 홍삼이 좋다고 했더니, 그거 보고 팬들이 선물을 보내줬나 봐.”
“…….”
“저것도 같이 반송할 거야.”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살짝 흐트러졌던지, 비주가 내게 와서 바짝 붙었다.
뭔가 체온을 나눠주려는 햄스터 같아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대리님이 말했다.
“참, 얘들아. 너희는 먼저 올라가볼래? 너희 팬레터 따로 챙겨줄 것도 있고 홍보 관련해서 우주랑 상의할 이야기가 있거든.”
“음? 저희 시간 많은데, 기다릴 수 있어여.”
“저도요.”
씩씩하게 대답하는 눈치 1단들을 비주와 리혁이가 사이좋게 납치해 갔다.
리혁이가 뒤를 바라보며 나를 계속 흘깃거리길래 웃으면서 얼른 가라고 손짓해 주었다.
애들이 사라지자, 대리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이리로 올래?”
“네.”
무슨 용건일까.
안쪽으로 걸어가면서 나를 흘깃 바라보는 다른 직원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는 동안, 파티션 안쪽에 쌓여 있는 상자 꾸러미를 발견했다.
“이건….”
“너한테만 들어온 개인 선물인데, 다른 멤버들 보기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이쪽에 따로 보관했어.”
“아, 네.”
그러고선 서랍에 보관해 두었던 팬레터 꾸러미를 건넸다.
평소에는 깃털처럼 느껴지던 얇은 종이더미가 오늘따라 왠지 무겁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홍 대리님이 내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주세한 이후로 팬덤 규모도 커지고 해서, 갑자기 이런 선물이 들어온 것 같아.”
“네, 감사한 일이네요.”
그런 대답을 하자, 상대가 나를 바라보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우주야. 오늘 리얼리티 첫방 말이야. 팬들이랑 라이브 방송으로 같이 보기로 했지?”
“네, 맞아요.”
“내 생각에는 선물 보낸 타이밍이 그거랑 상관이 없잖아 있는 것 같은데….”
“그렇긴 하죠.”
“팬카페 공지로 오늘은 라이브 방송은 취소한다고 할까?”
“아뇨.”
내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팬분들이랑 약속한 거잖아요. 같이 재미있게 봐야죠.”
“그래, 알았어.”
“그럼 가 보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문득 떠오르는 게 하나 있어서 상대를 다시 불렀다.
“저, 대리님.”
“응?”
“선물 보내주신 분들한테요. 마음은 잘 받았다고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그래.”
나를 빤히 바라보던 대리님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전달해 줄게.”
* * *
팬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동안의 일을 돌이켜 보게 된다고 해야 하나.
요즘 들어 라이브 방송할 때나 팬카페에 글 쓸 때 홍삼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지.
추석 퀴즈쇼 우승 선물로 받은 홍삼을 마시고 효과를 본 게 너무 신기해서 좋다고 신이 나서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게 몇몇 팬분들에게는 다르게 다가간 모양이었다.
역시 조금 더 신중하게 언행을 해야 했던 건가.
직업적인 부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무슨 생각해여? 형?”
“아이. 깜짝아.”
“제 미모가 그만큼 놀라웠나여?”
“여러모로 참 놀라운 존재지, 우리 막둥이는.”
소파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는데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 눈앞에 훅 들어왔다.
자꾸 재롱을 부리길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표정을 흘깃거리던 리혁이가 봉지에서 고구마 말랭이를 하나 꺼내서 내밀었다.
나름대로 최상의 애정표현이었다.
“위에서 별일 없었죠?”
“없지. 아까 엘리베이터를 타자고 고집한 누구들을 빼면.”
“크흠.”
동생들이 헛기침을 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라이브 방송할 준비는 됐어?”
“네, 폰에 삼각대 설치해 놨어요.”
비주가 짜잔, 하며 삼각대에 설치된 폰을 가리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카메라 각도상 보일 것 같은 홍삼 봉지를 테이블 아래로 치웠다.
그러곤 화제를 돌렸다.
“지금 TV에서는 뭐 하고 있어?”
“뭐, 며칠 전에 했던 음방 비하인드 해주나 봐요.”
“아하.”
“오, 저기 스칼렛 누나들 나와여.”
노트북 화면에는 HBS MTV의 음악방송 쇼타임의 비하인드 영상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다.
깃털이 달린 새카만 의상을 입은 스칼렛 멤버들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감탄했다.
“의상 진짜 예쁘다. 까마귀 컨셉인가?”
-저희 이번 활동 컨셉이 블랙 스완이거든요. 까만 백조.
스칼렛의 리더 아라가 하는 말에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깔깔거렸다.
그러더니 지호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이거 꼭 전달해 줘야지.”
“야, 하지 마.”
만나지도 않은 사람한테 원한 살 일 있나.
이어서 이번에 2집 활동을 하고 있는 스트릿 보이즈가 헐렁한 교복 의상을 입은 채 나왔다.
눈에 부리부리한 스모키 화장을 한 한조가 인터뷰를 하고 시작했다.
-네, 저희 이번 2집 타이틀 ‘Deeper’는 지난 타이틀보다 한층 더 깊어진 컴백 곡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릴게요.
-피스!
거칠게 인사를 하고서는 촬영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수줍은 걸음으로 돌아갔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형 친구네요.”
“친구 아냐.”
자꾸 지난번부터 한조만 나오면 애들이 어, 형 친구에요! 하고 놀려서 은근히 민망하다.
이러다 만나면 진짜 어색할 텐데.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둘이서 마주 보고 ‘저, 친한 사람으로 저를…’, ‘아, 예. 인터뷰에서…’, ‘그…러셨구나’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으으.
바깥은 가을인데 순간 내 주변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비하인드 영상은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갔다.
마무리로 1위를 하고 내려온 스칼렛이 백스테이지로 내려와 카메라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늘 저희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우리 커튼, 늘 고맙고 사랑해요!
리더가 손하트를 보내고, 나머지 멤버들이 트로피를 들고 막춤을 추는 장면과 함께 비하인드가 끝이 났다.
광고가 나오는 동안 우리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었다.
“참, 오늘 팬분들이 선물도 많이 보내주시고 그랬잖아. 물론 규정 때문에도 그렇고 우리가 안 받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죠. 약속한 거잖아요.”
“맞아여. 그리구 차라리 줄 거면 저희가 줘야져. 저는 누가 저한테 뭐 주는 거 되게 싫어여.”
네 명이 동시에 막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비주에게 선물 받은 귀찌, 생일 때 내가 사준 노란 티셔츠, 리혁이 걸 하도 훔쳐 입어서 리혁이가 으아아아! 하면서 미친 듯이 수량을 클릭해서 열 개나 배송된 검은색 진,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중현이한테 받은 무설탕 과자까지.
리혁이가 혀를 찼다.
“양심 어디 갔냐. 진짜.”
“뭐가여?”
뻔뻔한 막내를 보며 중현이가 말했다.
“어, 이거 그거 같다. 마음 속 삼각형이 싱글벙글 돌아서 동그라미 되는 전래동화 있잖아.”
“그, 중현이 형. 빙글빙글이고요. 전래동화가 아니고 아메리카 원주민이 했던 이야기에요.”
“아, 미국 전래동화구나.”
“…….”
태평한 얼굴로 무설탕 과자 봉지를 뒤적이는 곰의 모습에 리혁이가 바들바들 떨었다.
한참 동안 우리끼리 깔깔 웃다가 다시 원래대로 화제가 돌아왔다.
“어쨌거나, 아까 선물 보면서 떠오른 건데… 이번에 팬미팅 때 우리가 선물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좋네요. 특별한 의미도 있고.”
비주가 웃으며 동의하자, 리혁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안 그래도 이번에는 어떤 걸 해야 팬분들이 좋아할지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문제는…….”
“뭐가 걸리는 게 있어?”
“천 명이나 오는데 지난번처럼 수작업으로 뭘 하는 건 힘들지 않겠어요?”
“하긴.”
내가 뺨을 긁적였다.
“종이학을 천 개 접어도 1인당 한 개씩이긴 하지.”
“근데 그럼 진짜 웃길 것 같아여. 자, 우리 수플레들, 나가실 때 저희한테 종이학 하나씩 받아 가세여.”
가상의 종이학을 슉슉 내밀면서, 그걸 받으며 어이없어하는 팬들의 표정을 묘사하는 막내 때문에 한바탕 또 웃었다.
리혁이가 혀를 찼다.
“진짜 없던 정도 다 떨어질 걸요. 아무튼 내 말은 인원이 많아서 첫 팬사인회 때랑 같은 선물은 어려울 거예요.”
“에코백 시즌 2는 어때?”
중현이의 물음에 비주가 고개를 저었다.
“으음, 식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첫 팬미팅이니까 그래도 더 의미 있는 걸로 선물 드리고 싶은데.”
“뭐 좋은 아이디어 없나.”
“전 의미 있는 선물이라고 하니까 돈밖에 안 떠올라여. 울 아빠가 맨날 입버릇처럼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은 현금이라고 했거든여.”
“와.”
내가 감탄했다.
“팬분들한테 돈 봉투 드리면 그건 그거대로 레전드긴 하겠네.”
“사회면에 이름도 올라올 걸요. 우리 중에 하나가 주모자로 구속되고.”
“오, 구속.”
“…….”
“……왜들 나를 쳐다보는 건데?”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녀석들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그때,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듯 비주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혼자 가게 안 둘 거예요, 형. 저희도 같이 갈… 푸흡.”
그러곤 자기가 말해놓고도 웃겼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전염돼서 순식간에 또 웃기 시작했다.
희한도 하지.
요즘 일만 해서 그런가. 웃음 장벽이 거의 아파트 화단 울타리 수준이었다.
그래도 좋긴 좋다.
언제나 엉뚱한 곳으로 튀는 이야기가.
정말 숙취 같은 대화라고 할까.
처음 이야기할 때는 꽃밭인데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내 몸이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 올라와 있는.
정신없지만 늘 이런 대화를 하고 나면 머릿속에 있던 뿌연 안개가 걷히고 볕이 드는 느낌이었다.
내가 손뼉을 치며 상황을 정리했다.
“팬미팅 선물은 이따 고민해보도록 하고, 일단은 방송부터 보자.”
어지러운 테이블 주변을 정리하자 리얼리티 1화의 로고가 화면 우측 상단에 떠올랐다.
그러곤 공용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켰다.
화면 속에서 빠르게 올라가는 인원수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카메라 너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 * *
“푸하하하!”
확실히 우리 수플레들과 같이 리얼리티 1화를 보기로 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보통 드라마나 예능 볼 때, 실시간으로 같이 보는 사람들이 다는 댓글이나 드립을 보면 더 재미있어질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드립을 치는 팬들 때문에 3분에 한 번 꼴로 웃은 것 같다.
뷰티 쇼의 호스트를 소개하는 듯한 핑크핑크한 타이틀로 시작된 ‘잇츠 더 뉴블랙’은 50분 내내 알찬 내용으로 가득했다.
자기소개 인터뷰부터 예비군 입소, 퇴소 동영상과 김치통이 폭발하는 장면까지.
검색하니 기사도 하나 올라왔다.
-뉴블랙 우주, 리얼리티서 TNT 태현과 영상통화 ‘황금인맥’
대부분 태현이와 관련된 기사였다.
아마 리얼리티 내용에 관한 것은 방송이 끝나면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한편, 1화 에피소드가 마무리를 지으면서 특별한 영상이 하나 공개되었다.
-뉴블랙 2집 제작기 특별 공개!
…라는 자막과 함께 화면 속에서 작업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