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1)화 (13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1화

검은 후드티에 모자.

작업 패션으로 일하는 내 모습이 나오자 곧바로 야유가 쏟아졌다.

동생들이 단체로 에이~ 소리를 냈다.

“와, 대박 연출샷이다. 형이 언제부터 작업할 때 화장을 했어여?”

“화장이라니요. 저게 제 민낯이에요. 여러분.”

“민낯 아닌데.”

중현이가 매의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눈썹이 달라요, 형.”

“제 눈썹이 날마다 좀 들쑥날쑥해요. 저 날은 제 눈썹의 컨디션이 좋았던 모양이네요.”

“와, 진짜 뻔뻔하다.”

리혁이의 감탄과 함께 비주가 막 웃기 시작했다.

내 이상한 드립이 또 취향저격인 모양이었다.

고구마 말랭이를 든 기다란 손가락이 화면을 가리켰다.

“근데 아저씨, 저거 비비크림은 몇 호 바른 거예요? 13호?”

“리혁아. 지금 팬분들도 보고 계시는데 자꾸 이러면 곤란해.”

“우리 수플레도 진실을 알아야죠.”

“맞아여.”

실시간으로 ‘ㅋㅋㅋㅋ’가 올라가는 중인 채팅창을 향해 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이중에서 리혁이나 지호의 어둡고 다크한 비밀이 궁금하다 하시는 분 손 들어주세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곧바로 채팅창이 분주해지는 모습이, 마치 올망졸망한 빵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드는 듯했다.

-손!

-여기 손!

-ㅋㅋㅋㅋㅋㅋ지호랑 리혁이 표정 봐

입가에 손을 올리고 소곤거리려는 모션을 취하자, 두 동생이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어휴, 착각했네. 지금 보니까 백퍼 민낯이네요.”

“화장한 줄 알았는데 광물피부였나 봐여. 아, 물광이라고 하는 거에여?”

태세전환한 동생들을 보며 픽 웃었다.

평소에 잘 안 꾸미고 다녀서 그런지, 우리 동생들은 내가 TV에서 치장을 하고 나와 평소 모습인 척하면 괘씸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

“비주야.”

“네?”

“그, 캡처는 조금 이따가 하자. 정신없어.”

“어. 근데 방금 형 각도 되게 근사하게 나왔는데…….”

캡처 버튼을 연달아서 누르던 비주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뜩이나 노트북 용량도 부족한데 계속 두기엔 곤란했다.

지난 번 뮤직카페 때, 얘가 하도 캡처 버튼을 눌러대서 폴더 하나가 용량이 어마어마해졌거든.

중현이가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어, 장면 바뀌었다.”

화면에 A&R팀 직원들이 나왔다.

이상하다.

저분들이 원래 옷을 저렇게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분들이 아닌데…….

방송이라 한껏 멋을 낸 작곡가들이 인터뷰를 했다.

-되게 얼떨떨했어요. 우주가 불꽃놀이를 자작곡이라고 가져오는데, 듣는 순간 머리가 띵 하더라고요.

-눈물 났죠. (왜요?) 미리 타이틀곡 섭외 계획까지 다 세워놨는데… 다 엎어졌거든요.

-발전 속도가 빠른 친구라고 생각해요. 썸씽 때부터 쭉 지켜봤는데 최근의 밤바다까지 와서는 제가 다 감격스럽더라고요.

낯부끄러운 칭찬 때문에 눈 둘 곳이 없어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

팬분들과 동생들이 합심해서 나를 놀리는 동안 장면이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우리 멤버들이었다.

-처음 왔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죠. 갑자기 어려운 편곡을 하루 만에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더라고요.

-리혁이 형이 그때 내기했다가 처참하게 졌어여. (아니거든! 조금 진 거야. 조금.)

-저희끼리 매번 그런 이야기를 해요. 우주 형 아니었으면 우리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쌤쌤이네.”

“그러게요.”

서로 화기애애하게 웃고는 다 같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회사 미튜브에 있던 밤바다 작곡기의 영상, 불꽃놀이와 밤바다의 성공에 대한 기사 헤드라인이 흘러나왔다.

웅장한 BGM까지.

진짜 민망하다, 이거.

마치 독재국가에서 만든 위대한 선우주 동지의 일대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저, 여러분. 오해하시면 안 돼요. 리얼리티 제작진 분들이 방송이라 어어엄청 띄워주신 거라.”

살짝 달아오른 뺨을 물병으로 식히며 다음 나오게 될 장면을 기다릴 때였다.

“…어?”

“화면이 갑자기 꺼졌는데요?”

그런 줄 알았는데 화면 속에서 몽롱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석환 형.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된 그 통화였다.

“아, 안 돼!”

이사님에게 걸었던 그 수치스러운 통화가 흘러나왔다.

멜로디는 보안상 허밍 파트의 첫음만 나오고 삐 처리 되었다.

내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아아아!’ 하는 큰 소리로 노트북 스피커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지웠다.

중현이가 갸웃하며 물었다.

“형, 근데 지금 팬분들은 여기서 보는 게 아니라, 지금 집에서 자기 TV로 보는 거잖아요.”

“아.”

“똑똑하죠, 저?”

“…….”

그러는 동안 ‘석환 형, 내가 돈까스 사 줄게~’가 나가면서 옆에서 동생들이 깔깔 웃었다.

돈까스로 도배되는 채팅창을 보자 눈물이 아른거렸다.

이어서 조규환 이사가 사무실에 앉아 뉴블랙의 프로듀서로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제작진의 웃음이 먼저 들렸다.

-(돈까스는 드셨나요?) 예. 인증샷까지 찍었어요.

곧바로 화면에 인증샷 한 장이 찰칵 소리와 함께 올라왔다.

이러자고 그날 찍자고 한 거였구나.

방송 끝나고 이사님에게 보내려고 했던 기프티콘을 한 단계 낮췄다.

티라미수 세트에서 베이글로.

-그 동안 저희 아이들이 활동을 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한 부분도 상당하죠. 프로듀서로서 이 재능 많은 친구들의 진면모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게 늘 안타까웠어요.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런 이유로, 이번 리얼리티를 통해 뉴블랙의 팬 여러분께 멤버들이 앨범 제작에 어떤 식으로 참여를 하는지 그 제작기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런 뜻이었다.

6월 데뷔부터 11월 컴백까지 텀이 긴 편이니, 2집에 대한 떡밥을 8부작 리얼리티를 통해 조금씩 던지겠다는.

동시에 팬들이 늘 궁금해 하는 나의 작곡돌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남은 15분은 작업실 내부의 장면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우주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내가 미소를 지었다.

-어… 원래는 그냥 노래 만지는 장면만 찍으려고 했는데, 일단 우리 수플레들이 보기엔 낯설 수 있으니까. 제가 작곡에 관해서 아주 간단한 것들을 알려드릴게요.

기타를 들고 이런저런 코드 진행을 들려주면서 화성학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을 했지만 다들 알아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우주 어려운 거 하는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목소리만 좋으면 됐어.. 우린 행복해

-꼭 뭘 알아야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우리.. 그쵸? (촉촉)

팬분들의 반응을 보며 웃었다.

우리 팬들 정말 착하다.

나 같으면 재미없어서 하품하고 난리 났을 텐데 내 지루한 설명에도 호응해 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중현아.”

“네.”

“형이 나오는데 어떻게 스마트폰을 할 수가 있니?”

“…아, 잠깐 노잼이어서요.”

순박한 얼굴로 팩트 폭력을 날리자 채팅창이 다시 웃음바다가 됐다.

“내가 못살겠다. 진짜.”

그런 한탄을 하는 동안, 작곡을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왜 우리끼리 돼지송이라고 부르는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지호를 앉혀놓고 멜로디를 만지는 작업까지.

그게 웃기게 편집이 돼서 나왔다.

내가 뭐라고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옆에 앉아 있는 지호가 1시간 간격으로 졸았다가 깨어났다가, 다시 깨어났다 졸기를 반복하면서 괴로워하는 장면.

악덕 사장 같다는 댓글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방송용 편집이라 저렇게 나온 거예요. 실제로는 지호도 즐거워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져.”

“원래 사람은 시련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거예요.”

째려보는 막내의 눈빛에 헛기침을 했다.

한편 제작기가 끝무렵에 다가갈수록 팬분들은 의아해 했다.

내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무대를 구상할 때나 A4 용지 수십 장을 펼쳐두고 혼자서 생각에 잠길 때.

그리고 지호에게 음의 색을 설명하며 노래의 톤을 조정할 때.

우리에겐 일상이었던 장면이 우리 수플레들에게 낯설게 다가간 듯했다.

처음에는 설정이냐고 놀리는 분들도, 이내 화면에 담기는 이런저런 장면이 진짜라는 걸 깨닫고는 말을 잃었다.

채팅창 너머로 그 당황해하는 표정이 보인다고 할까.

그러고 보니 내가 제대로 노래를 만드는 모습을 공개하는 건 처음이었다.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작곡은 원래 저런 식으로 하는 거야..?

내가 대답했다.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싶긴 해요. 하지만 저는 저런 스타일로 작업을 하는 편이어서… 썸씽 때는 조금 경우가 달랐지만, 불꽃놀이나 밤바다는 저런 식으로 만들었어요. 기본적으로 머리로 먼저 떠올리고 그 다음에 결과물이 나오면 계속 만지는 식으로요.”

왠지 모르게 리얼리티 시청이 아니라 Q&A 시간이 된 것 같다.

빠르게 올라가는 질문 중에서 답변할 만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 애들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드디어?

“형이 이상하다는 걸 우리 수플레들도 깨달았어요.”

“역사적인 날이네요.”

기뻐하는 동생들을 보며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   *   *

금요일 저녁 7시.

뉴블랙의 첫 리얼리티 ‘잇츠 더 뉴블랙’이 끝나면서 팬카페에도 본격적으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김치통 폭발씬 움짤 쪄옴ㅋㅋㅋ

-훈련장에서 피켓 보던 우주 표정ㅋㅋㅋㅋㅋ진짴ㅋㅋ

-근데 TNT 태현 분이랑 우주랑 무슨 사이인지 아시나요?

리얼리티에 대한 반응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시트콤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큼 웃겼던 장면들을 언급하는 팬도 있었고, 중간에 나왔던 TNT 태현의 응원에 대해 궁금해 하는 팬도 있고.

그에 대해선 ‘연습생 때 친했던 사이에요.’라는 답과 함께 3월 달에 뮤직온에서 찍었던 인증샷 등이 올라오곤 했다.

전반적으로 쏟아지는 무수한 떡밥에 대해 소화불량을 호소할 만큼 기뻐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팬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건 마지막에 나왔던 앨범 제작기였다.

-작곡 좀 아는 수플레 있니ㅋㅋㅋ 보면서 좀 당황스러웠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ㅋㅋ

지금까지 작곡돌이라고 하기에 ‘우주는 작곡도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팬들은 기쁘면서도 당혹스러웠다.

그간 뮤직카페나 자체제작 리얼리티에서 그런 면모를 보긴 했지만 오늘처럼 자세하게 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어떤 분야를 잘한다는 것만큼 뿌듯한 일도 없지만, 오늘 팬들이 목격한 장면은 그 기대치를 과도하게 넘어선 수준이었다.

그랬기에 아직은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한편으론 아쉬움도 있었다.

-근데 이거 어디 가서 영업은 못하겠지..?

-ㅇㅇ 대본삘이라 욕 먹을 수도..

-나도 아직 약간 얼떨떨ㅋㅋㅋㅋ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 솔직히 오늘 나온 다른 걸로도 영업할 게 충분히 많잖아요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우리 애들 봐줘!’ 라고 올리기에는 조금 애매한 내용이었다.

영상으로 볼 때야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지만, 사진으로만 보면 대본이냐며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으니까.

가뜩이나 주세한 이후로 인지도가 높아져서 이곳저곳에서 은근한 견제가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뉴블랙의 팬들은 반응이 좋았던 김치통 폭발씬과 예비군 도시락, 곱창집 먹방을 위주로 아이돌 커뮤니티 등을 돌면서 영업을 시작했다.

*   *   *

한편, 뉴블랙의 첫 리얼리티 1화는 아이돌 커뮤니티를 한 차례 거쳐 디지털 풍화가 된 짤로 다른 커뮤니티에 돌아다녔다.

어지간한 예능에 나왔어도 웃겼을 김치통 폭발씬 등이 호평을 얻었지만, 동시에 엉뚱한 곳에서도 반응이 오기도 했다.

“뭐지?”

홍대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던 개그맨 서지형은 매출 기록을 살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동생이 물었다.

“뭐가?”

“아니, 희한하게 매출이 조금씩 느는 듯한 기분이…….”

“착각이야. 그거.”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손님이 점점 많아졌다.

폭발적으로 늘어나진 않았지만, 일단은 하락세가 끝났다는 것부터가 고무적인 일이었다.

‘왜 여자 손님들이 많아졌지…?’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딱히 나오는 게 없어서 손님들에게 어떻게 오셨냐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움찔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뭐지?’

얼마 안 가 커플로 온 손님이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아, 그 인터넷에서 얼마 전에 돌아다니는 짤 봤는데.”

“짤이요?”

“네, 아이돌 애가 잘 먹는 거요.”

“아아.”

기억이 났다.

2주 전에 아이돌 리얼리티에서 찍는다면서 와서 역대급 매상을 올리고 나간 뉴블랙이.

그제야 어떻게 알고 오셨냐고 물었던 이들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뉴블랙 쪽 팬이었구나.’

요즘 들어 서서히 늘어나는 매출 기록과 함께 뉴블랙 멤버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렇다면…….’

다음 날.

서지형은 뉴블랙 멤버들이 나왔던 리얼리티의 캡처짤을 대문짝만하게 인쇄해서 벽에 붙였다.

그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 벽에 글귀도 썼다.

[↓ 뉴블랙 멤버들 먹고 간 곳]

그걸 바라보면서 서지형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 누군가에 대해서.

*   *   *

“어우, 깜짝이야.”

회사 라운지에 앉아 있던 내가 식겁한 표정을 짓자, 다른 동생들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뭔데여?”

“서지형 선배님이 문자를 보냈어.”

“왜요?”

우리 덕분에 곱창집 매출이 올랐다면서 장문으로 보낸 감사의 문자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요새 밤마다 삼다수 떠다놓고 잘 되길 기도하고 있다는데 드립인지 진심인지 몰라서 눈만 깜빡였다.

[뉴블랙 멤버들 앉았던 곳]이란 첨부된 사진을 보며 우리끼리 웃음을 터뜨렸다.

중현이가 말했다.

“근데 리얼리티가 엉뚱한 데서 반응이 오고 그러네요.”

“맞아요. 형, 앨범 수록곡도 그렇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팬분들을 위해 열심히 찍은 리얼리티인데,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도 반응이 돌아왔다.

리얼리티 방영 전에는 2집 수록곡 공모에 노래를 보내주는 이들이 드물었는데, 1화가 끝난 뒤로 그 수가 확 늘었다.

꽤 유명한 분들도 있었다.

조 이사님에게 듣기로 작곡가들 사이에서 내가 나왔던 리얼리티 장면이 화두가 됐다는 모양이었다.

사실 칭찬보다는 ‘특이한 애’라는 신기함에 더 가까웠지만, 어쨌거나 우리 입장에선 좋은 일이었다.

2집 앨범을 더욱 알차게 구성할 수 있으니까.

물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앨범보다 더 앞서 진행하게 될 공식 팬미팅이었다.

“자, 팬분들에게 뭘 드려야 할지 다시 얘기해 보자.”

라운지에 앉아서 종이를 펼쳐둔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제는 팬분들에게 드릴 선물.

먹을거리부터 시작해서 포토 카드, 또 다시 한 번 에코백을 주는 게 어떠냐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아니야.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 보자.”

내가 말했다.

“에코백이나 먹을거리는 팬사인회 같은 행사나, 음방 사녹이나 생방 때 와 주시는 분들한테만 줄 수 있는 거잖아.”

리혁이가 납득했다.

“그렇긴 하죠. 현장에 와야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니까.”

“이번에는 좀 더 범위를 넓히고 싶어. 팬미팅에 오고 싶은데 못 오는 분들도 있잖아.”

“그러면 팬미팅에 와 주시는 분들은여?”

“따로 또 챙겨 드려야지.”

“아, 이제 이해했어여.”

동생들도 그제야 이해를 한 표정이었다.

팬미팅에 와주시는 분들과 별개로 오지 못하는 수플레들도 챙기고 싶다는 이야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우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비주가 말했다.

“아까 홍보팀 분들이랑 잠깐 얘기해 봤는데요. 다들 말씀은 대놓고 안 하시는데 예산이 많이 오버됐나 봐요.”

“그렇겠지. 지금 공연장도 업그레이드 됐고.”

소극장에다 물어줄 일부 위약금과 주말 라이브홀 대관료를 생각하니 절로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중현이가 물었다.

“종이학 접을까요? 종이는 싸잖아요.”

“팬카페 인원수만큼 접을 자신 있어?”

“잠깐만요.”

핸드폰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더니 끄덕였다.

“지금부터 밥 먹고 종이학만 접으면 가능해요.”

“…그렇구나.”

“종이학은 좀 아니고. 다른 거 생각을 해 보자고요. 팬분들이 들었을 때, 오오 할 만한 거.”

“제가 애교 영상이라도 찍을까여?”

“넣어둬.”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저런 의견이 나왔지만 쉽사리 이거다 할 만한 게 아니었다.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지난 번 에코백처럼 예산도 초과하지 않으면서 줄 만한 선물이 뭐가 있지?

그때, 리혁이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내게 물었다.

“맞다, 선물하니까 떠오른 건데 지난 번에 추석 때 그랬잖아요. 나한테 청소기 하나 사 준다고.”

“아, 그거.”

“언제 사 줄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봐. 이번 달에 주간 세일 들어간대. 지금부터 사면 돈이 아깝잖아.”

리혁이가 수긍을 하는 가운데, 그때 내 머릿속에 퍼뜩 스쳐가는 게 하나 있었다.

주간 세일이란 키워드였다.

한 주 동안 기간을 정해놓고 물품 등에 세일이 들어가는 이벤트. 해외에서 소위 말하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해당 일이 있는 주간 세일에 대한 블랙 프라이데이위크가 떠올랐다.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팬미팅 행사 이름을 수플레 데이로 했으니까…….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동생들에게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예산을 초과하지 않고, 모든 팬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이벤트를.

“괜찮은 거 같은데요.”

가장 까다로운 우리 메인보컬이 수긍을 하는 가운데, 비주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형, 근데요.”

“응.”

“…주간 세일 때문에 떠오른 아이디어인 건 우리끼리 비밀로 해요.”

“아.”

당연하게도, 그건 비밀로 하기로 결정했다.

*   *   *

얼마 후. 뉴블랙의 팬 카페.

[The New Black 1st Fan Meeting - Soufflé Day]

팬들을 방방 뛰게 할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첫 공식 팬미팅.

일정과 장소가 공지된 단체 포스터를 보며 다들 기뻐할 때, 이어서 추가 안내문이 하나 더 올라왔다.

[Soufflé Week]라는 생소한 제목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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