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2화
공식 SNS에 업로드된 공지와 함께 우리는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첫 공식 팬미팅 소식에 수플레들이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춤을 추고 있는 중이었다.
비주가 들뜬 얼굴로 말했다.
“형, 팬분들이 이렇게 좋아하시는 거 오랜만에 봐요.”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다 기쁘다. 야.”
“의미가 다르잖아여. 리얼리티나 그런 건 TV로 보는 거지만 이건 진짜로 얼굴 보는 거구.”
“어째 우리가 더 들뜬 거 같지 않아요?”
“아냐. 우리는.”
…이라고 말하던 참에 노트북 화면이 절전 모드로 꺼졌다.
그 검은 화면 안에서 우리가 이빨이 반짝거릴 정도로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헛기침을 하며 체통을 지켰다.
“…팬분들 반응이나 좀 더 살펴보자.”
마우스를 흔들어서 얼른 화면을 원래대로 돌렸다.
그러면서 체통을 지켰던 입가의 근육을 풀었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고 기분이 좋았다.
얼마만의 오프라인 행사냐. 이게.
마지막 음방은 7월이니 벌써 3개월 전이고, 팬 사인회 같은 행사까지 쳐도 팬분들과 오프라인에서 공식으로 만난 지 2개월 만이었다.
이역만리에서 떨어진 사이도 아니건만 팬들과 만날 일이 거의 없으니 몸에서 사리가 나왔지.
그나마 팬카페 글이나 라이브 방송으로 그 허한 감정을 달래던 터였다.
이게 좀 다르다.
TV 예능으로 내 모습을 보여 주는 거랑 직접 팬들과 소통하는 거랑은 하늘 땅 차이라고 할까.
가끔 행사장 좌석에서 보이는 우리 수플레들을 중현이가 매의 눈으로 발견해서 긴가민가하면, 내가 기억해서 확인을 해 주는 게 다였다.
그러면서 미친 듯이 손을 흔들어 주고.
물론, 우리를 보겠다고 회사 앞이나 숙소 근처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절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 공지 사항으로 미리 일러두기도 했고 무엇보다 연예인에게 특정 팬과의 친목은 절대 금기 사항이기 때문이었다.
인사 한 마디 한다고 나쁠 건 없지만 그게 개인적인 친분으로 이어지면 늘 사고가 터진다.
예컨대 공식 석상에서 친근하게 한두 마디 더 건네는 것도 쌓이다 보면 팬분들께 소외감을 줄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다른 팬들에게 ‘어? 어떤 애들한테 더 친한 척을 해 주네? 쟤네는 내가 회사 근처나 오프라인으로 나와야 대접을 해 주는구나’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게 핵심이었다.
우리야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팬분들 입장에서는 상처일 테니까.
사실 누구나 실수하기 쉬운 부분이었다.
나도 TJ 엔터에서 선배 그룹들이 터뜨렸던 사고들을 보지 못했으면 이런 생각은 못했을걸.
리혁이도 내 의견을 지지해 주었다.
“맞아요. 내가 운영진 친목질 때문에 독서 카페 여럿 옮겨 다녔거든요. 대판 싸우기도 했고.”
뭔가 예시가 적절한 듯하면서도 이상했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이번에 내가 제안한 ‘수플레 위크’는 오프라인에 나와 주는 분들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수플레들도 우리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기획한 축제였다.
이른바 모든 수플레들을 위한 축제.
마우스 스크롤을 내려서 수플레 위크에 관한 안내문을 눌렀다.
『Soufflé Week』
Mon : 지호 - 멤버토크 + 게임
Tue : 리혁 - 멤버토크 + 토론회
……
Sat : 공식 팬미팅
Sun : 깜짝 선물 공개
공식 팬미팅 때까지 매일 멤버별로 돌아가면서 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그런 행사였다.
예를 들어 지호가 팬분들과 함께 게임을 한다거나, 중현이가 퀴즈를 낸다거나, 비주가 만든 수플레를 추첨으로 증정한다거나.
물론 그에 걸린 경품은 약소했다.
거의 문방구 보석 반지 정도?
하지만 팬분들과 함께한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이번 이벤트 너무 좋은 거 같아요, 형.”
비주가 미소를 지었다.
“예산도 안 넘고 우리끼리 소소하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치?”
“네, 저 얼른 수플레 레시피부터 검색해야겠어요.”
우리 비주부가 스마트폰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문득 나중에 이벤트 제목 같은 거 할 때, 별주부전 말고 비주부전 하면 어떠냐고 했더니 애가 뒤집어져서 웃었다.
우리 애지만 유머코드가 참 이상했다.
늘 뭐만 하면 꼬투리 잡기로 소문난 우리 메인보컬도 오늘만큼은 흡족한 웃음을 보였다.
“뭐, 인정하기는 싫은데 좋긴 하네요. 팬분들 앞에서 우리끼리 토론회도 할 수 있고.”
“어째 토론회가 더 중요해 보인다. 너?”
“당연하죠. 기대해요. 내가 진짜 완전 결론 안 날 만한 주제로 골라서 올 테니까.”
“리혁아.”
“왜요?”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면, 이런 거 하지 말자. 알았지?”
“…….”
“흐하핫, 이 형, 지금 완전 뜨끔한 표정…. 아아!”
지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 가운데, 내가 리혁이에게 말했다.
“조금 재미있는 걸로 가져 와. 지난번처럼 탕수육은 부먹인가 찍먹인가, 그런 거.”
“그게 어떻게 토론거리가 되나요.”
중현이가 고개를 저었다.
“찍먹이죠.”
“아냐. 부먹이지.”
“저는 간장…….”
사이좋게 동맹을 맺고 간장을 공격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저마다 이벤트를 하나씩 준비하는 모습이 굉장히 설레 보여서 기분 좋게 웃었다.
지호가 말했다.
“형, 형. 근데 이거여. 앞으로도 매년 하면 안 돼여?”
“매년?”
나쁘지는 않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글쎄, 그러면 좋긴 하겠지.”
“제가 아까 상상한 건데여. 매해 이런 식으로 해서 점점 규모를 늘리는 거예여.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대박 성공하고 그러면 코엑스 빌려서 막 수플레 엑스포도 열고…….”
막내가 신이 나서 하는 이야기에 우리도 같이 상상하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수플레 엑스포라니.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내뱉었다.
“그쯤 되면 거기 막 애드벌룬으로 우리 인형 둥둥 떠다니고 그러는 거 아냐?”
“오. 저는 그러면 가판대에서 김중현 핫도그, 김중현 버거 이런 거 팔래요. 레시피는 김비주한테 시키고요.”
“어, 나 잘할 수 있어.”
“저는 그거여. 미국에 놀이동산 가면 막 콜라 가방 맨 사람이 음료 리필해 주고 그러잖아여. 그거 할래여.”
“저기요, 다들 말이 되는 소리를 합시다. 좀.”
누군가 현실성을 지적했지만 상상만 해도 웃긴 풍경이라 우리끼리 농담을 주고받았다.
뭐.
상상은 자유니까.
우리끼리 기획을 한 거라 그런지 마냥 기쁘다.
“자, 그럼 각자 준비할까?”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비주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다가 내게 물었다.
“근데요, 형. 금요일에는 형이랑 팬분들이 대화하는 날인데, 이벤트 칸에 왜 아무것도 없어요?”
“아.”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난 따로 또 준비할 게 있어서.”
“……?”
작업실 테이블을 턱짓으로 가리키자, 동생들이 아하 했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혹시 내가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한 사람?”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을 들려던 중현이가 비주에게 손목을 붙잡혔을 뿐.
* * *
홍보팀 직원들과 함께 다가올 수플레 위크와 공식 팬미팅을 준비하는 동안, 리얼리티와 앨범 쪽에서도 속도를 냈다.
A&R팀과 함께 수록곡 공모를 통해 노래를 선별했고.
이번 2집 앨범의 시작과 끝이 되는 Intro와 Outro를 래퍼인 중현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주세한에서 헤이션과 만난 뒤로 작업 욕심을 불태우고 있길래 하겠냐고 했더니 바로 좋다고 했다.
곡 작업을 도와줄 사람은 금방 섭외됐다.
중현이를 응원해 주러 단팥빵이나 소나무 음료 등을 잔뜩 들고 작업실에 갔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중현이 옆에 앉아있는 키가 크고 홀쭉한 남자.
후드티에 검은 가죽 재킷.
그리고 레게 머리.
주세한에서 우리와 같은 팀이었던 헤이션이었다.
“안녕.”
“…네, 안녕하세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로…?”
“어쩌기는. 랩하는 동생 작업 도와주러 왔지.”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이너했던 본인의 1집 때부터 팬이었던 중현이를 호형호제할 만큼 좋아하긴 했는데, 기본적으로 이 사람은 아이돌 산업에 대해서 굉장히 거부감을 표하는 사람이라.
그래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어봤다.
빙빙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에는 아이돌을 싫어하시는데 어떤 이유로 우리 작업에 참여하시냐는 말이었다.
그리고 난 정말로 명쾌한 해답을 돌려받았다.
“뭐, 여전히 아이돌은 별로긴 한데. 아, 너희 보고 하는 얘기는 아니고 그냥 이 시스템 자체가 좀 마음에 안 들거든.”
“…….”
“근데, 내가 나이를 먹고 깨달은 건데.”
헤이션이 진지한 표정으로 엄지를 들었다.
“돈이 최고야.”
금과옥조 같은 명언이라 가슴에 새겼다.
그렇게 헤이션의 도움으로 앨범의 Intro와 Outro가 근사하게 뽑혀 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홍보팀도 신났고.
-래퍼 헤이션, 뉴블랙 2집 앨범에 참여
-‘주세한의 인연이 앨범까지’, 뉴블랙 중현 &래퍼 헤이션의 작업
-헤이션, “뉴블랙은 훌륭한 후배 가수”
물론 홍보팀과 우리 매니저들이 좋아했던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애니멀 프렌즈’, 뉴블랙.. 흑염소 대길이와 재회
-충격! 흑염소 대길이 ‘분노조절장애’ 아니었다
-애니멀 프렌즈, 동물학자의 말에 뉴블랙 놀라 ‘대길이 분노조절 잘해..?’
추석 특집 이후로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더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흑염소 대길이가 나온 방송.
중현이와 지호가 연천군의 마을에 방문하여 주민들과 재회를 하는 장면과 함께 흑염소 대길이가 씬스틸러로서 등장했다.
해당 회차에 출연한 수의사가 병원에서 대길이를 진찰하며 혹시 모를 몸의 이상을 점검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나.
이윽고 등장한 동물학자 분이 그간의 영상과 흑염소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임정호/동물학자] :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요. 쉽게 말해서 그냥 성격이 좀… 더럽, 아니 좋지 못한 겁니다.
애매한 표정으로 지랄 맞다는 말을 순화한 동물학자님의 표정과 자막이 뭔가 절묘했던 탓에 커뮤니티 곳곳에 퍼졌다.
마지막에는 그 원인도 밝혀졌다.
[임정호/동물학자] : 이거 사료로 주는 양배추요. 최근에 바꾸셨죠?
[고명식/대길아빠] : …어떻게 아셨대? 올해 농사가 영 시원찮고 해서 양배추도 외국산으로 바꿨지.
[임정호/동물학자] : 그게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 같네요. 그래서 맨날 화가 나 있는 거고요.
[중현/대길친구] : 밥이 맛없다고 그런 거예요?
[지호/대길친구동생] : 와. 대박. 진짜 철이 없네여.
이윽고 방송 말미에 중현이가 대길이의 손을 강제로 붙잡고 ‘앞으론 잘 먹어야 돼’ 하는 훈훈한 엔딩이 나왔다.
잔잔한 BGM, 그리고 꽃 날리는 CG와 함께 대길이의 목줄을 잡고 중현이가 사뿐사뿐 산책을 하는 컷들이 전환되는 묘하게 웃긴 연출이 나름 화제가 됐다.
그리고 같은 날.
내가 하와이를 여행지로 뽑아 주었던 주세한 팀이 부곡 하와이에서 구르는 예고가 나온 후, ‘사나이가 간다’ 남자 연예인 특집이 방송되었다.
할 일이 많아서 끝나고 클립만 챙겨 봤는데 나와 태현이의 영상 통화가 꽤 높은 조회수를 자랑했다.
# 차량 안.
태현 : 저희 멤버들 다음으로 친한 형이에요. 연습생 때부터 정말 친했던 형인데 군필이기도 해서… 모쪼록 조언을 얻기 위해 전화를 걸어 보겠습니다.
이윽고 화면에서 군복을 입은 내가 나왔다.
태현 : 형, 근데 복장이….
우주 : 예비군 끝났어..
한참 동안 깔깔 웃는 태현이 앞에서 내가 떨떠름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내 뒤로 [우유빛깔 선우주], [Welcome to Society] 플래카드를 든 동생들이 흘러나왔다.
그사이에서 비주가 수줍게 미니 깃발을 흔들었다.
이어서 태현이가 ‘사나이가 간다’에 출연한다고 하자, 이번에는 내가 폭소하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봐도 좀 얄밉긴 했다.
이러다가 TNT 팬들한테 욕이라도 바가지로 먹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편집이 잘됐다.
내가 진지하게 조언하는 모습이 나왔으니까.
우주 : 군대에는 꿀팁이 없어. 거기서 시키는 대로 하면 돼.
태현 : 근데 눈치껏 나서고 그러야 할 때가 있잖아.
우주 : 기준을 하나 알려 줄게. 뭔 일이 있잖아. 근데 그걸 보고 내가 해야 하나? 싶으면 해야 되는 거고, 해도 되나? 싶으면 안 해야 돼.
태현 : 오오.
그 조언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있는 군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들었다.
우주 : 다치지 마. 그게 제일 중요해.
태현 : 그래도 방송 분량이….
우주 : 방송 분량도 중요하지만 다치지 않는 게 최고야. 그러니까 교관분들이 뭘 조심하라고 하면 조심하고. 안 되겠다 싶으면 무조건 열외해. 몸이 더 중요한 거야.
태현 : 나 몸 사리다 욕먹어. 형.
우주 : 그럼 장수하겠네.
태현 : (웃음) 형.
우주 : (웃음) 어쨌거나, 다치지 마. 다치면 팬분들이 제일 가슴 아픈 거야.
그러면서 내가 질문을 했다.
우주 : 근데 너 며칠 갔다 와?
태현 : 아, 나 2박 3일.
우주 : 3일?
태현 : 응.
우주 : 3일…? 지금 그러니까 3일로… 후우….
내가 화면 속에서 부들부들 하는 장면이 웃음 포인트였던 모양이다.
클립 아래 달린 댓글들이 그걸 지목하는 걸 보면.
한편, 해당 클립은 내게 좋은 일이 되어 돌아왔다.
다치지 말라고 했던 내 조언이 마음에 들었던지, TNT 팬덤에서 나를 굉장히 좋게 본다는 이야기를 홍보팀으로부터 들었다.
거기다 기삿거리까지.
-뉴블랙 우주, ‘사나이가 간다’ 통화에서 TNT 태현과 절친 인증
우리 리얼리티 때와 달리 지상파 방송이라 그 홍보의 파급력이 상당했다.
어쨌거나 좋은 쪽으로 이미지가 잡혀서 다들 기뻐하고 있었다.
모두가 기뻐한 건 아니었지만.
* * *
수플레 위크의 첫 시작이 되는 월요일.
“…….”
침묵 속에서 내가 말했다.
“얘들아.”
“왜요. 배신자.”
“배신자라니, 말에 가시가 가득하구나. 리혁아.”
“배신자 맞잖아여.”
막내가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한테는 맨날 구박하고 혼내고, 때리고.”
“내가 언제 구박하고 혼내고, 때렸는데?”
“그, 찾아보면 많아여. 암튼! 태현 선배한테는 그렇게 자상한 사람이 우리한테는….”
“야, 그거는…….”
나를 뚱한 얼굴로 바라보는 녀석들에게 해명했다.
“경우가 다르지. 걔는 아주 가끔 보는 거라 친절한 거고, 우리 동생들은 그만큼 가깝고 또 같이 있으니까. 좀 더 일상적인….”
“흐음.”
중현이가 턱을 쓰다듬었다.
똑똑한 소리를 한 마디 하려는 것 같아서 달콤한 과자를 하나 집어서 먹였다.
효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주가 나와 눈을 피하며 말했다.
“저도 약간 실망이에요, 형.”
“아니… 그렇게 따지면 너희도 나 예비군 갔을 때 너희끼리 맛있는 거 시켜서 먹었잖아.”
“헐, 그걸 담아 두고 있었어여?”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분명 담아 두고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하…….”
어떻게 말로 해보려는데 4대1이라 너무 힘들었다.
결국 내가 대역죄인처럼 수그렸다.
“제가 큰 죄를 졌습니다, 여러분….”
“알면 됐어요.”
대체 뭔 잘못을 한 건지 모르겠어서 억울하고 분했지만 이내 웃음이 나왔다.
사실 다들 장난으로 하는 말이어서.
수플레 위크의 첫 행사를 앞두고 우리끼리 회사 회의실에서 카메라를 앞에 두고 있으니 긴장돼서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다.
막내가 내게 어깨를 쏙 내밀었다.
“형, 제가 용서해 줄 테니까 어깨 좀 주물러 주세여.”
꽈악.
“느아아아! 파아아여!”
“아이고, 우리 막내. 뒷목이 많이 뭉쳤네.”
뒷목을 주물주물해 줬더니 괴로워했다.
근데 이상하다.
다른 때였다면 스트레스 없이 늘 말랑말랑했던 어깨가 오늘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어제 뭐 했어, 너?”
“아. 오늘 팬분들이랑 게임 하려고 연습 엄청 했어여.”
비주가 물었다.
“지호야, 형이 말한 대로 어제 2시까지만 하고 잤어?”
“넹. 당연하져.”
“아닐걸요.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노트북 커버 만졌는데 뜨끈뜨끈했거든요.”
그러면서 리혁이가 마우스를 몇 번 딸깍이자 [어제의 종료타임 05:34:29]가 나왔다.
막내가 리혁이를 바라보며 원통한 표정을 지었다.
너만 아니면 안 들킬 수 있었는데, 하는 느낌.
비주가 잠시 막내를 앉혀 놓고 장시간 컴퓨터를 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행사 준비를 끝냈다.
1부로는 팬분들과 다 같이 라이브 방송을 하고, 2부에서는 랜덤 초대로 지호가 게임을 같이하는 형식이었다.
회사에선 멤버 개인별 특집으로 하자고 했는데 내가 반대했다.
개인별로 했다가 멤버별 시청자 수가 들쑥날쑥하면 곤란해지니까.
이윽고 시간을 때우고 나서.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와아아!”
우리끼리 손뼉을 치면서 열심히 들어오고 있는 수플레들을 반겼다.
그러곤 지호를 가운데 두고 우리가 둘러싼 채 라이브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막내에 대한 이런저런 Q&A나 우리끼리 심심풀이로 하는 토크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시간.
알록달록한 대두들이 카트를 타며 달리는 게임이나 지호가 리혁이 닮았다는 피즈? 뭐 그런 게 나오는 게임이었다.
나는 하나도 몰라서 그냥 멀뚱멀뚱 지켜보았다.
초등학생 때 PC방에서 유행했던 게임만 했던 게 고작이라, 요즘 게임은 뭐가 하나도 몰랐다.
“아, 근데 저만 하니까 다른 형들도 넘 심심할 것 같아여. 그래서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우주 형. 뭐 할래여? 바둑 켜 줄까여?”
“…나도 게임할 줄 알거든?”
몰랐다.
그런 까닭에 지호가 틀어 주는 게임들을 할 때마다 뒤에서는 동생들이, 앞에서는 채팅창이 ‘ㅋㅋㅋㅋ’를 토해 냈다.
“…아, 마우스가 뻑뻑하네.”
“그거 오늘 아침에 홍보팀에서 새로 산 거래요. 형.”
“이게 컴퓨터 용량 때문에 조금 느린….”
“내가 어제 최적화했어요.”
게임을 하는 족족 꼴등을 기록한 후, 내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제가 요새 나온 게임을 안 해 봐서 그래요. 원래 스타 같은 것만 하던 터라.”
“아, 스타도 있어여.”
“있어?”
막내가 공용 노트북에 깔린 아이콘을 눌렀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아무래도 하시는 분들이 별로… 아, 있으세요?”
“오오.”
매치가 성사됐다.
랜덤 방을 만들자, 순식간에 팬 한 분이 들어왔다.
[Killer_SuFulle]라는 무시무시한 닉네임을 지닌 분이었다.
“형, 팬분들이 잘할 수 있냐고 물어보시는데요.”
“그럼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다른 게임은 잘 몰라도, 이건 초등학생 때 엄청 많이 했거든요.”
“오, 전문가인가요.”
“네. 이 게임만은 저만의 영역이 아닌가 싶네요.”
…라는 말을 한 후. 게임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야, 선우주 선수. 정말 컨트롤 못하네여. 내가 바로 꽝손이다, 바로 그걸 보여 주는 게 아닐까여?”
“맞습니다. 이래서 돔 구장이 필요한 거예요. 우주 형이 방금 모니터 불빛 때문에 멈칫한 거 보셨죠?”
바보 듀오가 개드립 가득한 해설을 주고받는 동안 나는 순식간에 3연패를 당했다.
그것도 똑같은 전략으로 세 번.
내가 GG를 치자 킬러 수플레님은 시크한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오빠 겜알못이네요
“…….”
동생들의 역대급 폭소와 함께 그날 팬카페는 내가 뒷목을 붙잡는 움짤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