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4화
토요일 저녁.
쾌청한 하늘 아래 광나루역 2번 출구를 나온 사람들이 단풍이 물든 거리를 지나갔다.
각양각색의 사람들.
저마다 차림새가 달랐지만, 지하철에서 내린 순간부터 수플레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팬들을 알아보았다.
왠지 모르게 ‘아, 저 사람도…’ 하는 듯한 느낌.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져 이동하듯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문 사람들의 행렬이 공연장 앞까지 이어졌다.
곧이어 대형 현수막이 그들을 반겼다.
[The New Black 1st Fan Meeting - Soufflé Day]
실제 수플레의 색깔을 반영하듯, 파스텔톤으로 된 노란색과 황색의 그라데이션이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곳곳에 포스터가 붙은 공연장 바깥.
팬미팅을 앞두고 줄을 선 팬들은 저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곧이어 입장이 시작되자 뉴블랙과 관련된 MD상품 판매대와 뉴블랙 멤버들의 포토월은 팬들로 붐볐다.
포스터와 판넬 앞에서 웃거나 브이를 하는 팬들.
한편, 라이브홀을 돌아다니던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었으니.
“뭐야, 대박이다. 화환 엄청 많아.”
“허어… 진짜 많네. 얼마 전에 친구 결혼식 갔을 때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곳곳에 깔려 있는 화환이었다.
♧ 장소원 &원더풀 나잇 - 라디오에서 또 만나요..!
♧ 개그맨 서지형 -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 희연 &희찬 남매즈 - 검은소랑 누렁소보다 뉴블랙이 일을 더 잘해
♧ 맥시 - 에궁.. 팬미팅이라니..
각종 연예인들이 보낸 재미있는 멘트가 적힌 화환을 보며 팬들은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어 댔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많이 찍힌 화환은 따로 있었다.
♧ TBC 사나이가 간다 - 우주 씨..? 혹시 몰라 일단 보내봅니다..
TNT 태현과 영상 통화를 통해 예비군 아이돌이란 사실이 화제가 되면서 제작진이 보낸 모양이었다.
수플레들은 큰 웃음을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다.
이따 당사자가 볼 수 있도록 꼭 팬카페에 올려야지 하면서.
지난 5일간 진행한 수플레 위크 덕분인지 팬들의 표정은 축제 하이라이트를 앞둔 사람과 같았다.
그리고 축제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 건 단순히 팬분들뿐만이 아니었다.
MD 상품을 판매하는 곳에서도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대리님.”
“왜?”
“벌써부터 재고가 다 소진된 품목이 나왔어요.”
“지금 팔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당혹스러움이었고.
곧바로 그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면서, 회사 직원들의 표정에도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서서히 퍼졌다.
그야말로 시작하기 전부터 역대급 첫 팬미팅이었다.
* * *
라이브홀 대기실.
거울 앞에서 복장을 점검했다.
하얀 셔츠에 청바지.
간만에 입는 무대 의상이라 멋을 내려고 바지를 조금 넣어 입었다가… 바로 스타일리스트 실장님한테 혼이 났다.
“우주야, 왜 배바지를 만들어?”
이 좋은 몸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한다며 괜히 혼만 났다.
근처에서 나를 지켜보던 막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날 같았으면 이리로 와, 이놈의 자식 하면서 추격하고 그랬을 텐데.
오늘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떨리면서 기분이 좋고, 기분이 좋으면서 떨린다.
인이어를 통해 현장에서 흘러나오는 BGM을 들으며 몸을 차분하게 풀었다.
“오백 원… 오백 원…….”
리혁이는 구석진 곳에서 벽을 바라보고 목을 풀고 있었다.
성량이 어찌나 좋은지 낮은 목소리가 드라이아이스 구름처럼 대기실을 꽉 채웠다.
중현이와 지호는 대기실에 비치된 과자를 몰래 챙기다가 석환 형에게 발각돼서 모두 압수당했다.
바보들.
나처럼 아까 챙겼어야지.
“실장님, 그건 뭐예여?”
“아, 이거? 우주가 아까 몰래 챙기길래 어디다 놨는지 봐 뒀지.”
“…….”
“우주야, 내가 모를 줄 알았니.”
석환 형이 초코칩 쿠키 봉지를 얄밉게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진짜.
컴백하고 나면 저거부터 사 먹어야지.
대기실과 복도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회사 직원들과 현장 스탭들을 매의 눈으로 주시하며 타이밍을 노렸지만, 영 각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다.
소파에 털썩 앉자, 비주가 옆에 와서 앉았다.
“형, 저 진짜 떨려요.”
“나도.”
비주랑 사이좋게 소파에 앉아 손바닥만 비볐다.
“오오, 잘생긴 파리 떼 같아여. 형들.”
“이놈의 자식.”
짐짓 째려보다가 웃으며 내 옆자리를 탁탁 쳤다.
“얼른 이리로 와. 너도 같이하자.”
“넹.”
“저도 같이할게요.”
삭삭삭.
넷이서 긴장을 풀겠답시고 그러고 있는 동안 목을 다 푼 리혁이가 다가와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하는 거예요?”
“긴장 풀기.”
“그렇게 하면 풀려요?”
“조금?”
흐으음 하는 걸 보니 쟤 또 안 보이는 데서 혼자 해 볼 것 같다.
물론 이런다고 긴장이 풀리는 건 아니었다.
그냥 우리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으니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에 가까웠다.
비주가 말했다.
“기분이 이상한 거 같아요. 무대 때문에 떨리는 건 아닌데, 되게 떨리기는 또 하고.”
“이제 팬분들 만나서 그래.”
“다들 와 계시겠죠?”
고개를 끄덕였다.
인이어로 현장에 나오는 음악 소리만 들리는 게 안타까웠다.
방송국처럼 카메라와 연결된 TV라도 있다면 현장에 있는 팬분들이 뭘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텐데.
뭐.
아마 우리와 똑같은 표정이지 않을까 싶다.
“어! 리얼리티 캠 왔어여.”
“안녕하세요!”
HBS MTV 제작진이 들어와서 우리에게 각자 인터뷰를 따 갔다.
첫 팬미팅을 앞두고 소감이 어떤지 묻는 질문이었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내가 말했다.
“진짜, 진짜 떨려요. 제가 방송 활동을 요즘 들어 많이 했는데도 정말 적응이 안 되는 느낌? 저희가 팬분들이랑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거거든요. 사실 어젯밤에 설레서 잠도 못 잤는데…….”
“두비두밥밥~ 두비두밥밥~”
카메라 렌즈에 뒤에서 개코원숭이처럼 춤을 추는 두 동생이 비쳤다.
꿋꿋이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 수플레들과의 팬미팅, 정말 기다리고 기다렸던 만큼! 오늘 정말 멋지고 근사한 시간을….”
“두비두밥~”
“야!”
“으아, 바퀴벌레 대마왕이다!”
사이좋게 도망치는 녀석을 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바퀴벌레 대마왕이라니.
그 괴상한 별명에 작가님이 웃음을 참았다.
이내 리혁이와 비주가 같이 서서 인터뷰에 응했고, 마지막으론 나한테 붙들린 두 똥강아지가 소감을 말했다.
그렇게 리얼리티 카메라를 앞두고 이런저런 토크를 하며 긴장을 푸는 동안, 마침내 올 것이 왔다.
“공연 5분 전입니다!”
“이동할게요!”
매니저들과 함께 긴장된 얼굴로 대기실을 나섰다.
백스테이지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떨리는지.
이동하는 동안 우리 애들도 빈 생수병으로 목을 축이거나 목을 뚜둑 꺾으면서 어깨를 털었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쇼케이스 때 생각난다, 그치?”
“아, 그러네요.”
“그때 진짜 놀랐죠. 팬분들 엄청 많이 와 주실 줄 몰랐는데.”
“오늘은 그때보다 네 배 더 많잖아여.”
아무래도 인원 수 때문에 동생들도 떨리는 모양이었다.
천 명이라니.
내 기준으로 상상이나 엄두도 못 냈던 인원이라 백스테이지에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얼떨떨했다.
찾아Dream 콘서트에서 몇 만 관중을 앞두고 공연을 해 본 적이 있지만, 순수하게 우리 팬분들로만 구성된 관객이 천 명이라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떨면 얘네가 더 떨기에, 대범하게 웃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첫 쇼케이스 때처럼 하자. 긴장은 하되 떨지는 않기로.”
때마침 리얼리티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을 때, 화이팅을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다 같이 손을 모으고 화이팅을 한 후.
“무대 들어갈게요.”
인터컴 마이크를 찬 현장 스탭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무대로 빠르게 올라갔다.
암전된 무대.
이내 새파란 조명이 무대를 환하게 밝히면서 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와아아아아!”
그 소리가 워낙 커서 체감상으론 만 명이나 되는 느낌이었다.
빵빵한 음량의 앰프를 타고 전주가 흘러나왔다.
언제 들어도 청량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데뷔곡, 불꽃놀이였다.
파란 계통의 의상을 입은 우리가 노래에 맞춰 손짓을 하거나 몸을 움직일 때마다 격한 호응이 돌아왔다.
음악 방송 때 내내 들었던 그 응원법이 귓가에 들리자 목을 타고 소름이 쫙 올라오는 듯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에 기분 좋은 닭살이 돋았다.
“와아아아아아-!”
노래가 끝나고 우리 수플레들이 방방 뛰는 동안에도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우, 현장 반응이 끝내주네요. 자, 다 같이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MC가 익살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인사에 다시 한 번 환호가 돌아왔다. 환한 조명에 눈이 서서히 적응하면서 객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이 절로 휘둥그레 뜨였다.
“와아…….”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리허설을 하면서 ‘이걸 우리 수플레들이 다 채운다고?’ 하면서 생각했던 객석이 꽉 들어차 있었다.
1층은 물론이고 2층까지.
전방 360도로 모든 각도를 향해 눈을 마주치며 손을 흔드는 우리를 보며 MC가 웃었다.
-시작부터 열정적이네요, 뉴블랙.
오늘 사회를 맡은 이는 개그맨 박재신.
아이돌 행사에서 몸값이 높아 섭외가 어려운 MC인데, 서지형 씨의 소개 덕에 쉽게 섭외가 됐다.
그가 익살맞게 토크를 이끌어 내는 동안 우리는 팬분들에게 저마다 인사를 건넸다.
원래 준비했던 멘트는 그만 다 까먹었다.
“안녕하세요. 우주입니다. 어, 너무 또… 어, 진짜 많은 분들이 와주셨네요. 어떻게… 오는 동안 단풍나무 많이 보셨어요? 제가 진짜 오면서 우리 수플레들도 저거 봤으면 좋겠다 생각했거든요.”
횡설수설하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키득거렸다.
“오늘 우리끼리 오랜만에 만난 만큼 다 같이 재미있게 놀고 가요!”
-맞아여. 저희가 집 안 보내 드릴 거예여.
막내가 적절하게 끼어들자, 팬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로 동생들이 하나씩 인사를 할 때마다 팬분들의 열렬한 호응이 이어졌다.
데뷔 쇼케이스 때와 똑같았다.
우리가 뭘 하든 예쁘게 봐주고, 무슨 말을 하든 다 좋아서 박수를 쳐 주는 것 같다고 할까.
감동이었다.
우리 김덕순 여사도 나한테 이렇게 안 해 주는데….
한편, 오늘 수플레들에게 가장 큰 웃음을 준 인사의 주인공이 있었으니.
-안녕하세요. 비주입니다.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배꼽 인사를 한 우리 메인댄서였다.
-어… 정말 이 자리에 와 준 우리 수플레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응원해 주시느라 목도 아프고, 웃어 주느라 얼굴도 아프고, 야광봉도 흔들어서 팔도 아프고, 걸어오시느라 다리도 아프실 텐데….
아픈 부위가 하나씩 늘어갔다.
결국 웃음을 참던 팬분들이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MC가 멘트를 날렸다.
-비주 씨 말에 따르면, 우리 팬분들은 안 아픈 곳이 없네요.
-엇.
민망해하는 얼굴과 함께 라이브홀에 큰 웃음이 가득했다. 비주가 잠깐 생각이 정지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네, 오늘 집에 돌아가실 때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가실 수 있도록 저희가 건강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곧이어 현장의 열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 * *
본격적인 팬미팅이 시작된 후, 객석에 앉아 있는 수플레들은 미니 야광봉을 흔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중간중간 몇몇이 촬영을 하다가 보안 요원에게 제지당했지만, 대부분은 무대에서 시선을 뗄 틈도 없었다.
“허어…….”
“와….”
분명 멀찍이 서 있을 텐데, 멤버들의 얼굴이 확대돼서 보이는 듯했다.
특히 1집 활동을 하면서 팬이 되었던 이들과 달리 최근에 유입된 이들의 반응이 그랬다.
장원급제한 어린 선비처럼 반듯한 느낌을 주는 소년스러운 멤버.
눈매가 날카롭지만 웃을 때마다 인상이 부드러워지는 멤버.
그리고.
앞선 둘이 미소년 같은 느낌을 주었다면 이어서는 각기 다른 느낌의 미남들이 있었다.
남자답게 선이 굵은 멤버와 정석적인 미남의 얼굴을 지닌 멤버.
마지막으로, 그 안에서도 홀로 공작새처럼 눈에 띄는 화려한 외모의 멤버가 있었다.
마치 보고 있다 보면 그 이목구비가 전국 방방곡곡에 나 여기 있다고 소리를 지르는 듯했다.
‘얼굴이 다 했다….’
아이돌 팬미팅이 그러하듯 초반부의 미니 게임들은 재미없기 그지없었지만 멤버들의 얼굴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인들은 저런 외모에 대해서 자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한 명이 멀뚱멀뚱 앉아 있고, 스크린 너머 실루엣으로만 보이는 곳에 앉아 멤버들이 진실을 폭로하는 이른바 실루엣 토크.
음성 변조된 목소리들이 연신 꺅꺅 거렸다.
[이거 너무 재미있어여. 꺄꺄꺄.]
[아, 시끄러워. 목소리 좀 낮춥시다.]
[중현 씨가 스토리 참 많죠. 어디 보자~]
[중현이에 대해서 할 말이요? 음… 몹시 많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조금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면 창피할 수도 있고….]
“비주야, 너야?”
[아… 아니거든. 요.]
[저 얘기할게여. 중현이 형은여.]
[야, 중현이 형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너 누군지 다 알아.]
[너흰 말투부터 티가 난다니까. 바보 같은 녀석들. 꺄꺄꺄. 나처럼 말투를 바꿔야 누군지 모르지.]
“우주 형?”
[아니…에여. 왕지호에여.]
[꺄꺄꺄. 너무 웃겨!]
[진짜 허접하네요, 꺄꺄꺄.]
분명 변조가 되었지만 누가 누군지 다 알 수 있는 그런 토크에 팬들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서로에 관한 진실을 폭로하는 모습에 웃거나 각종 게임에서의 병맛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폭소를 하는 것도 잠시.
중간중간 이어지는 무대가 수플레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중현의 솔로 랩 퍼포먼스, 요즘 유행하는 댄스곡에 맞춰서 랜덤으로 추는 비주의 댄스 무대.
공식 버전으로 출시된 밤바다의 최초 듀엣 무대까지.
하나의 무대가 잔상이 되어 남을 때마다 또 다른 무대가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식이었다.
끝으로는 지호의 즉흥 드라마 레슨이 이어졌다.
막내가 연기 선생이 되어 가르치는 동안, 멤버들이 장면에 맞는 즉흥 연기를 하고 있었다.
리혁과 우주가 ‘노을이 지는 시골길의 남학생과 여학생’이라는 테마에 맞춰 연기를 했다.
우주가 허공을 툭툭 치며 말했다.
-혁순아, 나랑 같이 자전거 타고 학교 갈래? 뒷자리에 타.
-싫어.
-왜?
-그거 외발 자전거잖아.
-그래서 두 개를 준비했어. 너도 타자.
-좋아.
-아, 형들!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돼여!
막내가 울상을 짓는 동안 두 형이 외발자전거를 타는 흉내를 내며 무대를 총총총 걸었다.
그런 식의 코너가 이어지면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편.
첫 팬미팅에서 팬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로 꼽았던 뉴블랙의 커버 무대가 이어졌다.
틴스피릿의 Gunflower를 5인조 버전으로 어레인지한 안무였다.
붉은 조명이 사방으로 퍼지는 무대.
정장을 입고 등장한 뉴블랙의 다섯 멤버가 그루브한 댄스곡 멜로디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중앙에 선 비주를 중심으로 한 동선이 그림같이 움직이면서, 팬들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냥 웃으며 신이 났던 멤버들은 어디로 갔는지 노래의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에 맞춘 표정 연기가 이어졌다.
후렴구가 나오기 전, 리혁이 상체 안무를 선보이는 동안, 양쪽에서 두 멤버가 부드러운 웨이브를 타면서 가운데 서 있는 이를 교차해서 지나갔다.
2층에서 볼 때는 마치 양 날개가 교차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이내 비주가 미끄러지듯 무대 맨 앞으로 섰다.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기는 한편, 나에게 다가오라는 듯 객석을 향해 유려한 손짓이 튀어나왔다.
환호가 나온 것도 잠시.
이내 그 손을 회수하면서 일렬로 서 있던 멤버들이 날개처럼 동시에 양옆으로 퍼져 나왔다.
그 순간.
탁-
어둡고 붉었던 조명이 다른 색으로 변했다.
환한 빛으로.
비주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손동작으로 L자를 그리는 메인 안무를 추자,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멤버들이 허리로 웨이브를 부드럽게 탈 때마다 그 환호의 데시벨은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연습량이 눈에 훤히 보였다.
짧은 시간 동안 어찌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다 같이 허리에 웨이브를 타는 동작이 칼같이 정확했다.
양옆으로 부드러운 물결이 왔다 갔다 하는 듯했다.
한동안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도 친구들과 같이 온 이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서로를 향해 속삭였다.
“대박, 안무 느낌 진짜 다르다.”
“근데 불꽃놀이도 그렇고, 오늘 전반적으로 뭔가 다르지 않아…?”
“맞아맞아. 애들 몸도 좀 커진 것 같고.”
2집 앨범을 위해 멤버들이 열심히 헬스장에서 구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였다.
그저 ‘허…’, ‘하…….’ 하는 탄성만 내지를 뿐.
‘시간이 안 갔으면 좋겠다….’
수플레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야속하게도 마지막 순서가 어느덧 다가왔다.
우주가 준비했다는 특별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