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7)화 (13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7화

재킷 촬영을 끝내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로 동생들이 나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생일날 뭐라도 해주려고 하는 건가?

그래서 나는 깜짝 놀라는 거 싫어한다고 미리 언질을 줬더니, 자기들도 살고 싶다며 그런 생각 없다고 했다.

너무했다.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희대의 대마왕인 줄 알겠다고 했더니, 아니었냐는 되물음이 돌아왔다.

못된 것들.

하지만 내 생일에 대한 생각은 이런저런 새로운 소식들에 밀려 금세 사라졌다.

10월 말.

드디어 2집 앨범의 트랙 리스트가 최종 확정되었다.

총 5곡.

헤이션과 중현이의 작업 속도가 생각보다 더뎠던 탓에 믹스테이프는 Outro 한 곡으로 담기로 결정했고, 팬송으로 만든 별빛도 4번 트랙으로 들어가게 됐다.

A&R팀 회의를 거쳐 Masque와 Masquerade, 가면무도회 등으로 갈렸던 타이틀곡의 이름도 확정됐다.

1. Masquerade (Title)

2. 꽃불

3. 바라보다

4. 별빛

5. Outro : For You

트랙 리스트와 함께 나온 앨범 표지 시안.

연습실에서 우리끼리 ‘우와아’ 하면서 그 내용물을 살폈다.

“우와아….”

내 무르팍에 누워있던 막내가 고개를 휙 돌렸다.

“형, 기분이 어때여?”

“뭐가?”

“형이 꿨던 돼지꿈이 여기까지 온 거잖아여. 저기 마스카라?”

“마스커레이드.”

“그래여, 암튼 그게 우리 노래로 이제 뿅 나오기도 했고.”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지 하는 표정을 짓는 막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지호야, 우리 아직 활동 시작도 안 했어. 벌써부터 그렇게 아련하면 어떡하냐.”

동생들도 냉큼 끼어들었다.

“맞아, 왕지호. 정신 차려라.”

“지호야. 우리 지금 갈 길이 엄청 멀어.”

“엄청 멀지.”

“와, 한 마디 했다고 이렇게 떼로 다들… 진짜 형들 감수성이 넘 메ㅁ…….”

메말랐다는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던지 우리 막내가 벌떡 일어났다.

“에잇, 연습이나 해여!”

방방 뛰며 다리를 머리 끝까지 쭉 찢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에 우리끼리 웃다가 이내 막내가 균형을 잃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비주가 다다다 달려가 붙잡아주었다.

그러곤 깔깔 웃는 우리를 스윽 바라보았다.

“…….”

농담이 아니고 5분간 잔소리 들었다.

애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냐, 김중현 너는 그 와중에 곰 젤리가 식도로 잘도 넘어가드냐, 형이 제일 크게 웃은 거 알죠 등등.

“이런 때는 얼른 뛰어가야 돼요. 알았죠? 특히 우주 형이랑 중현이 너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나와 중현이가 대답을 하자, 리혁이가 불퉁한 얼굴로 물었다.

“형, 저는요?”

“리혁이 너는 약해서… 못 도와줘도 괜찮아.”

“아, 형이 더 약하거든요?”

지호가 흐하핫!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비주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리자, 막내가 흠칫하며 뒷걸음질 쳤다.

“지호야.”

“…….”

“지호 여기 앉아 봐. 다들 들어가 있어요.”

바보 같은 왕지호.

묘비명에 적어주고 싶다. 왕지호,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다.

제법 긴 잔소리가 이어졌다.

특히, 지호는 데뷔 앨범 때도 한 달 앞두고 발목을 삐었던 전례가 있는 터라 우리 메인댄서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억울하다.

우리 막내가 휘청거릴 때 근육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는데 갸우뚱만 하다 다시 균형을 찾기로 되어 있었다.

진짜로 다칠 뻔했으면 내가 먼저 움직였지.

그러곤 동생들에게 신사동 연습실 의인이냐며 한 2주 놀림 당하겠지만 말이야.

“자자, 이제 연습합시다!”

손뼉을 치고는 2집 타이틀 Masquerade의 음원에 맞춰서 안무를 연습했다.

중간 중간 안무가가 직접 보내준 영상을 보면서 자세를 교정하거나 동생들에게 원리를 알려주고.

그런 식으로 1시간을 하고 10분을 쉬면, 다시 1시간을 하고 10분을 쉬는 형식이었다.

그러다 한 명이 틀리면 바로 멈췄다.

오늘의 당첨자는 바로 리혁이었다.

“아 씨, 틀렸다.”

“이리 오세여! 이리로 얼른!”

“리혁아, 얼른 와!”

나와 막내가 쌍둥이 펭귄처럼 이리 오라며 팔랑팔랑 손을 흔들자, 리혁이가 ‘하…’하는 한숨 소리를 냈다.

“아. 진짜 이건 불공평한 거예요. 당연히 내가 안무가 제일 부족하니 실수가….”

“변명이 길구나. 붉은 귀야.”

“얼른! 이리로 오세여.”

못마땅한 얼굴이 계속 불평을 내뱉었다.

“진짜. 이 부조리를 나중에 팬분들에게 폭로하고 말 거예요. 내가 겪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음? 여기 평평하지 않나.”

“그냥 때려요. 형.”

곧이어 등을 신나게 파바방 두드리는 인디언 밥이 이어졌다.

나름대로 고심을 거듭해 나온 벌칙이었다.

안무 연습을 하다 보면 그런 게 있거든.

단체 체조처럼 한 명이 틀리면 ‘아…’ 하면서 뭐라고 욕은 안 하는데 싸해지는 분위기 있잖아.

적막 속에 떨떠름한 목소리로 ‘잘 좀 하자’ 하거나 ‘괜찮아! 괜찮아! 앞으론 안 틀리면… 또 틀렸구나…?’ 하면서 입가를 파르르 떠는 그런 거.

어느 쪽이든 솔직히 괴롭다.

내가 6년 정도 겪어봐서 잘 알거든.

그런 까닭에 틀린 사람도 무안하지 않고, 즐겁게 연습을 이어나갈 분위기를 위해 만든 벌칙이었다.

문제는, 너무 즐거웠다.

“흐하핫! 너무 재밌어여.”

“그치. 얼른 누구 하나 또 틀렸으면 좋겠다.”

“근데 형, 이러다가 우리가 걸리면 어떡하죠?”

“중현아. 왜 그런 생각을 해?”

내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걸리면 되는 거잖아.”

“우와. 그러네요. 형.”

“헐, 우리 형 대박천재. 맞네여. 우리만 안 걸리면 되는 거예여.”

셋이서 죽이 맞아 핫핫핫 하는 모습에 리혁이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다잉 메시지 남길 일 생기면 저 셋 지목할 거야. 진짜.”

“리혁아, 나는 네 편이야.”

“필요 없어요. 난 혼자만의 길을 갈 거니까.”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으셈’하는 당당한 눈빛으로 리혁이가 안무 동작을 선보였다.

“그거 손동작 틀렸는데….”

곧바로 비주에게 지적이 날아오자, 녀석의 얼굴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우리 메인댄서의 코칭이 이어진 후, 내가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자, 그럼 다시 가볼까?”

다시 한 번 연습이 이어졌다.

쏟아지는 땀이 에어컨 바람에 차갑게 식어가고, 다시 그 위를 새로운 땀이 덮어가는 시간.

몸이 저릿저릿하고 현기증이 올라왔지만 쉬자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우리 막내마저도 묵묵히 연습하고 있었다.

다들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있지만 2집 앨범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초조하고.

쉬고 있으면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압박감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은 연예부 기자들이 틈 날 때마다 쓰는 기사가 있었고.

-뉴블랙 2집 컴백, ‘이번에도 자작곡 타이틀?’

-역대급 신인 ‘뉴블랙’, 또 다시 성공할까.. 관전 포인트 세 가지

-올해 신인상의 주인공은 누구? 전문가 10인이 답하다

그 다음은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관심이었다.

-오 얘네 다음 앨범 또 자작곡임??

-불꽃놀이 노래 존나 취저였는데 기대 중ㅋㅋㅋ

-타이틀 좋으려나?? 리얼리티 영상 봤는데 거의 뭐 코리안 모짜르트 수준으로 찬양하던데ㅋ

-코짜르트냐

-근데 얘네도 부담 존나 되긴 하겠다 ㅋㅋ 1집이 역대급으로 성공했자너.

-솔직히 차트인 자체가 업적ㅇㅇ

물론, 인터넷 기사나 아이돌 팬들의 관심은 극히 일부였다.

애초에 수플레들 말고는 2집을 준비하는 신인 가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다만 우리가 크게 느낄 뿐이었다.

게다가 회사를 돌아다니다 보면 은근히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이번에도 돈 장난 아니게 부었다며.”

“배우 팀에서 또 말 나왔다고 그러던데. 스칼렛 이후로 가수 팀이 돈 너무 많이 쓴다고. 대놓고 말은 안 하는데, 팀장들 분위기 보면 얼마 전에 한바탕 한 거 같아.”

“근데 뉴블랙 애들은 투자한 값을 톡톡히 하잖아. 불꽃놀이도 그렇고.”

“뭐, 그렇지. 여태까지 다 대박이 나기도 했고.”

연예 기사, 인터넷 반응, 오프라인에서 회사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가장 부담이 되는 건 마지막이었다.

대표님과 이사님은 우리 앨범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중이고, 앨범 제작에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압박감의 이유였다.

우리가 다음 앨범에서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하지만, 프로듀싱 회의가 끝난 입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수로서 할 일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연습, 또 연습.

심장이 거칠게 뛰는 동안, 거울에 비치는 나와 동생들의 춤은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표정은 똑같았다.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한 얼굴들.

“아, 맞다. 형.”

다시 쉬는 시간.

페트병에 담긴 이온 음료를 입에 콸콸 털어놓고 있을 때, 비주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까 사무실에서 들었는데, 저희 내일 연습실에 와서 리얼리티 촬영한대요.”

“연습 장면 찍는대?”

“그런가 봐요. 그리고, 연습 도와줄 멘토도 오신다고…….”

“아, 진짜?”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얼른 오셨으면 좋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빈 페트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자, 또 시작합시다아!”

“고고!”

“화이팅!”

우리는 여전히 목이 말랐다.

*   *   *

인천국제공항 1층 입국장.

문이 열리면서 한 무리의 입국자들이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엄마!”

“아이고, 한국 오니까 냄새부터 다르네.”

“여기야! 여기!”

미국에서 온 비행기의 탑승객들이 저마다 친지와 상봉을 하는 가운데,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걸어 나왔다.

선글라스를 쓴 잘생긴 얼굴.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지만 몸의 체형이라든가 움직임이 어딘가 모르게 시선을 끄는 사람이었다.

깔끔한 공항 내부를 보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 더플백을 든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뒤에선 조수가 카트를 밀고 따라오고 있었다.

‘마중을 나온다고 했… 아, 저기 있군.’

바로 눈에 확 들어왔다.

세 남녀.

안경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와 통역으로 보이는 여자, 그리고….

‘…뭐지.’

덩치가 커다란 남자가 서 있었다.

LA에서는 흔히 보던 거구였지만, 그런 체격을 한국인에게서 보니 당황스러웠다.

환영문구에 쓰인 ‘Clay Tyler’라는 이름에 클레이 타일러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레몬 엔터 윤석환 실장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비행은 편안하셨나요?”

통역이 둘 사이의 대화를 이어주는 동안, 타일러는 뒤따라오는 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참, 그런데 저 친구는 뭡니까? 보디가드?”

“아… 새로 고용한 매니저에요.”

그들은 교통센터에서 기다리고 있는 차량에 올라탔다.

강남구에 있는 호텔로 향하는 동안, 타일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인천대교 너머로 새파란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은 네 번째인가.’

LA에서 댄스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댄서이자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안무가인 클레이 타일러는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했다.

지난 세 번의 방문.

각국 댄서들이 모이는 워크숍과 대회 때문에 한 차례 온 적이 있고, 나머지 두 번은 K팝 아이돌의 안무 때문이었다.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큰 회사들이 돈을 많이 줘서 안무를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그 완성물이 어딘가 성에 차지 않았다.

물론, 안무를 받은 이들이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요구하던 기대치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애초에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 가수에게 그만한 역량을 요구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 있겠지만, 그로서는 아쉬움이 컸다.

조금만 더.

조금 더 나아간다면 근사할 텐데.

늘 그런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뉴블랙이라…….’

큰 기대는 없었다.

지금 가수가 된 지 약 4개월 정도 지났다고 하니까.

그는 비행기에서 한 차례 보았던 동영상을 다시 한 번 핸드폰에 틀었다.

뉴블랙의 Gunflower 커버 무대.

그가 틴스피릿에게 만들어준 안무인 만큼 동작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흐음…….”

동영상을 스캔하듯 바라보았다.

곧이어 무게중심을 옮길 때의 균형 상실이라든가, 웨이브를 탈 때의 잘못된 근육의 움직임, 잘못된 디딤발 등이 눈에 들어왔다.

사소한 디테일.

그걸 보며 종합적인 판단을 내렸다.

‘이 정도 실력이면… 한 달 반 정도 연습을 한 건가?’

실제로는 절반에 해당하는 3주였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클레이 타일러는 턱을 쓰다듬었다.

미리 기억해둔 멤버 이름을 하나씩 짚어가며 얼굴을 기억하려는 한편,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멤버에게 머물렀다.

*   *   *

아침부터 HBS MTV 제작진이 와서 연습실에 카메라를 잔뜩 설치했다.

“…뭐지. 이거.”

“그러니까요. 형. 누가 오시는 걸까요.”

사방에 설치된 미니 캠부터 따로 카메라를 짊어진 감독님 한 분까지.

“이거 많이 보던 풍경인데.”

“오, 진짜요?”

중현이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입술을 떼려고 할 때, 지호가 선수를 쳤다.

“군대 얘기한다에 만 원 걸게여.”

“난 오백 원.”

“나도 걸어도 돼?”

“안 돼여. 이건 미성년자만 할 수 있는 거예여.”

“중현아, 우리도 할래?”

“음? 뭐?”

“…됐어.”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를 치더니,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서 말해, 하는 듯.

“보통 군대에서 이렇게 준비를 해놓은 경우에는 사단장이나 국회의원….”

“맞았다! 제가 맞혔으니까 형 만 원 주세여.”

“난 오백 원이요.”

“아니, 내가 왜 너희한테 돈을 줘야 돼?”

정신을 차려보니 대화가 안드로메다로 떠나 있었다.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불만의 콧바람만 내뿜었다.

아, 홍삼 땡겨.

만오백 원을 내놓으라는 날강도들을 무시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튼 우리 연습을 도와줄 멘토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카메라 숫자가 많다는 건…….”

‘선배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인물이 찾아온다는 거였다.

대체 누구일까.

그 정체를 두고 토론이 이어졌다.

“윤찬혁 선배님 아닐까요. 우리 노래 일일 코치 해줄 수도 있고.”

“헤이션 선배님이랑 같이 활동하는 크루 분들이….”

“혹시 한아윤 안무가님 아닐까요? 요즘 들어서 방송 활동도 많이 하시고.”

어째 본인들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카메라 감독님이 핸드폰 메시지를 보더니 각도를 우리 얼굴 쪽으로 틀었다.

곧바로 문이 달칵 열렸다.

카메라를 든 리얼리티 제작진과 우리 매니저들, 그리고 처음 보는 외국인이 들어왔다.

놀란 우리 애들이 내 뒤에 숨었다.

“Hey, guys.”

검은 옷차림에 페도라를 쓴 사내가 유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구지?

잠시 생각이 멈췄을 때, 상대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

3초. 2초. 1초.

“……!”

상대의 정체를 알아챈 순간, 우리 모두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우와아아…!”

클레이 타일러.

우리 회사에서 거의 차 한 대 값을 주고 산 안무의 제작자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댄서였다.

특히 나와 비주가 격하게 반응했다.

내 경우에는 매번 미튜브로 동영상을 보면서 춤을 익힐 때 많이 참고했던 인물이었다.

작년에 한창 연습했던 콜드 브라운의 노래 안무도 이 사람이 만든 작품이었다.

한편, 비주는 나보다 더했다.

얘가 전에 애니메이션 모션 캡처 댄스 영상이라며 보여준 인물이 이 사람이거든.

무슨 츄르의 신을 영접한 고양이 같았다.

“유…!”

얘가 얼굴이 벌게진 건 처음 봤다.

우리 애가 얼굴을 부채질하며 말하자, 상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 유 아 마이 뉴!”

“New?”

“신은 god이야, 비주야.”

“노노 뉴! 갓!”

상대는 물론이고 자리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갓 말고 앤젤은 어떠냐는 상대의 우스갯소리에 비주가 ‘오케이, 앤젤.’ 하면서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바람에 또 터졌고.

우리 모두 유명 댄서와 차례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뒤에 선 인물들도 바라보았다.

평소 우리를 코칭해 주는 트레이너 주예형은 비주와 마찬가지로 소녀팬 같은 얼굴이고, 석환 형은 법석을 떠는 우리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뉴 페이스가 둘.

무섭게 생긴 덩치 큰 남자 분과 안색이 피곤한 여자 분이었는데.

후자는 분위기상 통역사 같고.

옆에 있는 저 분은 설마 새로운 매니저?

…는 아니겠지.

공포영화에 나오는 귀신도 저 분이 사는 집에 갔다간 질겁해서 맨발로 도망칠 법한 인상이었다.

그나마 손에 들고 있는 노란 러버덕 스마트폰 커버가 무서움을 중화시켜주고 있지만 말야.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연신 유쾌하게 떠드는 클레이 타일러와 대화를 나누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일부러 통역사 분의 도움을 받았다.

아무래도 문화권이 다른 만큼, 내가 하는 말이 오해를 받거나 잘못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 문화에 익숙한 통역사 분이 잘 전달해주시리라 믿었다.

이따 이것저것 물어봐야지.

“Masquerade의 안무를 만든 사람으로서 5일간 매일 3시간씩 너희를 도와줄 거야. 코칭을 하는 동안, 내 시간은 너희 거니까. 춤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아낌없이 쓰도록 해.”

“허… 대박.”

“대박이다, 진짜.”

우리끼리 나누는 대화에 통역사 분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을 연속해서 말했다.

“Okay, guys.”

클레이 타일러가 손뼉을 치며 영어로 말했다.

「먼저 너희의 무대를 한 번 보여줘. 지금까지 얼마나 연습했는지.」

매니저들이 자리를 비우고, 우리 안무 트레이너와 리얼리티 제작진만 남게 된 연습실.

“잘하자.”

“가자!”

서로 손뼉을 치며 우리끼리 응원을 하는 동안, 주예형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Masquerade의 멜로디를 즐기는 한편, 우리는 첫 연습부터 어제 새벽까지 했던 연습의 결과를 아낌없이 발휘했다.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그러는 동안, 우리 트레이너와 미국의 안무가가 서로 뭐라고 귓속말을 나누었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

“후우….”

다섯이 모여 서서 숨을 몰아쉴 때, 팔짱을 끼고 있던 클레이 타일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입술을 뗐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