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8)화 (13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38화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까.

호평이든 혹평이든 한 마디도 놓치지 말자고 생각하며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문장이 아니었다.

“Hmm….”

통역사 분이 습관적으로 ‘흐음’이라고 하셨다가 헛기침을 하셨다.

평소였다면 우리도 웃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사뭇 긴장된 분위기.

클레이 타일러가 페도라를 벗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곤 카메라를 흘깃거리며 뜸을 들이더니.

「정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사한 퍼포먼스였어.」

맥이 탁 풀렸다.

그제야 우리는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방송 카메라가 있어서 일부러 뜸을 들인 모양이었다. 동생들과 서로 웃으며 마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짝 놀랐네. 진짜.

이내 상대가 유쾌한 웃음과 함께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   *   *

HBS MTV 리얼리티 ‘잇츠 더 뉴블랙’ 8화 中

# 스튜디오

클레이 타일러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클레이 : 멋진 공연이었어요. 짧은 연습 기간 동안 그 정도의 결과물이 나왔다는 게 정말 환상적인 일이었죠.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그날의 동영상을 다시 보며 개개인에 대해 언급하는 클레이 타일러.

클레이 : 중현은 박자 감각이 뛰어나요. 노래를 가지고 논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지호는 표정 연기의 달인이고요. 리혁은… 좀 아쉬웠지만 노래를 듣고 바로 납득을 했습니다. 이 친구들은 댄서가 아니고 가수니까.

이어서 나머지 멤버에 대한 평가.

클레이 : 나머지 둘은 정말 천재적이었어요. 비주는 발레 공연이 떠오를 만큼 몸이 유연했습니다. 그야말로 퍼포먼스의 중심이었죠. 오기 전부터 가장 주목했던 멤버였는데,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제작진 : 굉장히 마음에 드셨나 봐요.

클레이 :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라, 미국에서 만났다면 바로 내 제자로 들였을 겁니다.

흥분한 얼굴로 10분 동안 뉴블랙의 메인댄서에 대한 칭찬을 줄줄 늘어놓는 장면이 빨리 감기로 처리됐다.

[▶▶]

이내 즐겁게 웃는 클레이 타일러.

클레이 : 우주는 퍼포먼스의 완벽한 교본이라고 할 만했어요.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했죠. 창의적인 느낌이 부족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가장 돋보이는 멤버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제작진 : 그날 정말 놀라운 일이 있었죠.

클레이 : 그렇죠. 내가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어요.

‘과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는 자막과 함께 다시 한 번 현장으로 장면이 전환됐다.

*   *   *

저분에게 별명을 하나 붙여드려야 할 것 같다.

칭찬 폭격기.

영어로 온갖 칭찬을 해 주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듣고 있다 보면 우리가 무슨 희대의 댄싱 머신 그룹이 된 것 같아서, 오히려 냉정해지는 느낌이다.

아. 방송이라 립 서비스를 해 주는구나 하고.

물론, 칭찬만 있는 건 아니었다.

“And… Lee Hyuk?”

“Yes.”

그가 리혁이를 보며 이런저런 아쉬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마지막에 격려를 했다.

“Don’t give up. Keep going.”

가능성이 보이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라는 말에 우리 메인보컬이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가면무도회(Masquerade)의 컨셉을 잘 살렸다는 호평을 들은 후.

본격적인 레슨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너희에게 미션 하나를 줄게.」

「미션이요?」

「방금 했던 퍼포먼스를 이번에는 느린 속도로 해 봐. 어… 0.7배속이나 0.8배속 정도로.」

음원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느냐는 듯 고개를 돌리자, 우리 댄스 트레이너가 OK를 그렸다.

동생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황한 표정이었다.

내가 손을 들고 영어로 말했다.

「저… 미스터 타일러.」

「클레이라고 불러.」

「클레이, 멤버들과 함께 잠시 합을 맞춰 봐도 될까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3분 정도 시간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동생들을 내 곁으로 불러 모아 머리를 맞댔다.

“왜 갑자기 느리게 해 보라는 거예여?”

“그러게.”

“그냥 방송이라 미션 제시하는 거 아니에요?”

“다 이유가 있어.”

춤에 관해 가장 박식한 우리 메인댄서가 설명했다.

“보통 동작을 느리게 해 보라는 건, 우리가 얼마나 동작을 정확하게 숙지했는지 보려는 거야.”

“아아…….”

그제야 모두의 얼굴에서 의구심이 걷혔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고 있었는데,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고 나니 안심한 표정들이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설명은 비주가 해 주었으니 다독이는 건 내 몫이었다.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편한 마음으로 하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지금 같은 경우는 실수를 보려고 시키는 거니까. 틀려도 괜찮다 하는 마음으로 가자. 알았지?”

조금 부담을 덜어낸 표정이 된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비주의 도움 하에, 조금 박자를 느리게 해서 중요한 동작 몇 가지를 맞춰 보았다.

처음 해 보는 거라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야.”

주요 동작을 몇 번이고 느린 속도로 반복하던 리혁이가 살짝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왜 이게 되는 거죠…?”

*   *   *

김비주의 설명은 정확했다.

클레이 타일러가 뉴블랙에게 느린 속도로 춤을 춰 보라고 요구한 이유는 동작의 완성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Masquerade의 안무는 대부분 몸을 재빨리 움직여야 하는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뛰어 들어와 반 바퀴 회전을 한다든가.

후렴구에서 빠르게 손으로 얼굴을 스쳐가는 동작이라든가.

문제는 그 속도였다.

빠를수록 안무의 정확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이치였다.

어떤 동작이든 그 속도를 높이게 되면, 자잘한 부분은 무시되고 큰 것만 남기 마련이다.

제한 시간이 있는 풍경화 그리기와 같았다.

3시간이 주어진다면 주변의 지형지물까지 자세한 묘사가 가능하겠지만 만약에 3분이 주어진다면 재빠르게 중요한 특징만 스케치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랬기에 느리게 춤을 춰 보라고 하는 것은 뉴블랙 멤버들이 안무를 하면서 무시하는 자잘한 디테일을 집어서,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교육하기 위함이었다.

방금 전 보았던 뉴블랙의 퍼포먼스에 있어서는 그 어떤 실수도 안 보였으니까.

‘알차게 가르칠 수 있겠어.’

기분 좋은 미소가 그려졌다.

밑그림이 완벽하게 그려져 있으니, 이제는 남은 5일 동안 디테일만 고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클레이는 연습실 구석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그 위에 올라가서 섰다.

리얼리티 제작진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갑자기 댄서가 의자 위로 올라가서 멤버들의 퍼포먼스를 내려다보는 희한한 장면.

“…….”

신발을 신고 의자 위로 올라간 미국인의 모습에 뉴블랙의 멤버들이 한 곳을 바라보았다.

신경이 곤두선 듯 안절부절 못하는 청소 요정과 그걸 보며 웃는 멤버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내 서리혁이 걸어가서 상대에게 휴지 뭉치를 내밀었다.

“이거 받으세요.”

바닥에 깔라는 듯.

“Uh… thank you.”

왜 갑자기 휴지를 주는 거지, 하는 눈으로 보던 클레이 타일러가 이내 이마의 땀을 슥 닦으면서 서리혁이 눈을 깜빡였다.

슬쩍 벌게진 귀.

뒤에서 다른 멤버들이 배를 잡고 웃음을 참았다. 한편, 안무가도 그 부분을 눈치챈 듯 웃으며 말했다.

“Wow, your ears are glowing.”

“Yeah.”

선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Like a christmas tree.”

안무가와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린 가운데, 서리혁이 돌아와 선우주의 발을 밟는 걸로 복수가 끝났다.

한편의 꽁트 같은 장면으로 분위기가 살짝 풀어진 후.

이내 음원이 흘러나오면서 멤버들이 자세를 잡았다.

0.7배속이 된 ‘Masquerade’의 음원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딘가 엉성했고, 동선이 살짝 엉키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

그리고 클레이 타일러는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틀린 동작이 없는데…?’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틀린 게 나와야 정상일 텐데, 뉴블랙의 안무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동작의 세부 구성이 1번부터 9번까지 있다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들어 있다고 할까.

얼떨떨했다.

‘이게 아닌데…….’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폈지만 여전히 틀린 부분이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데 능숙하지 못한 서리혁이란 멤버가 있긴 했지만, 어색할 뿐 틀린 부분은 없었다.

뚫어져라 멤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할 때, 옆에 있던 댄스 트레이너 주예형이 멤버 하나를 가리켰다.

‘우주?’

가운데서 땀에 머리가 푹 젖어 있는 가장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멤버.

저 친구가 바로 이 이상한 일과 연관이 있다는 건가?

그런 의문을 품을 때 또 다른 기현상이 눈에 들어왔다.

‘동선도 완벽하군.’

그가 의자 위에서 올라온 이유는 바로 안무의 동선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적잖은 돈을 받고 만든 안무인 만큼 Masquerade에는 숨겨진 비밀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관객의 시선과 관련된 디테일이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스튜디오나 연습실의 거울에서는 안무를 하는 정면만 집중적으로 담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 공연장에선 관객들은 360도로 존재한다.

전후좌우.

그런 관객들의 시선도 고려하여 클레이 타일러는 어느 각도에서 보든 멋진 안무가 나오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근사한 안무 동선으로 호평을 들었던 Gunflower와 마찬가지로, Masquerade도 그림 같은 동선을 자랑하고 있었다.

예컨대 가운데 점을 두고 마름모로 구성된 대형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정사각형으로 이동한다든가.

그리고 지금.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뉴블랙의 안무 동선은 그가 의도한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정확함에 절로 감탄이 나올 때, 이번에는 댄스 트레이너가 한 쪽을 또 가리켰다.

이번에는 메인댄서 김비주였다.

“…….”

퍼포먼스가 끝나자마자 그는 멤버들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안무 영상을 보내 주면서, 동선에 대해선 미리 고지를 해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걸 준비한 거지?”

그 질문에 김비주가 차분한 영어로 말했다.

흥분해서 말이 헛나온 아까와 달리 제법 알아듣기 좋은 편이었다.

“안무를 연습할 때, 늘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리는 편이어서요.”

“…….”

“그래서, 트레이너 선생님이랑 같이 의논을 많이 했어요.”

설명을 하면서 김비주가 주섬주섬 가방에 있던 공책을 꺼냈다.

멤버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린 듯, 각자의 표정이 그려진 색색의 동그라미들이 화살표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아래 알 수 없는 글씨로 쓰인 설명도 있고.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클레이 타일러가 김비주를 바라보며 웃었다.

‘마음에 드는 친구로군.’

처음에는 팔다리도 얄쌍하고 곱상한 소년처럼 보여 퍼포먼스적인 측면으로는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춤을 출 때 나오는 폭발적인 근력, 유연한 몸에서 나오는 유려한 춤선도 놀라웠지만 안무를 해석하는 솜씨가 대단했다.

의문이 하나 풀린 가운데, 그가 다른 하나를 물었다.

“안무 실수도 거의 없던데, 평소에 연습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한 번 볼 수 있을까?”

“보통 트레이너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지만, 자잘한 부분에 있어서는 리더의 도움이 컸어요.”

김비주의 대답에 김중현이 뿌듯한 얼굴로 선우주를 연신 가리켰다.

“Him. Him.”

그 엉뚱한 모습에 클레이 타일러는 잠시 웃음을 터뜨렸고, 선우주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말했다.

“제가 동작의 원리를 잘 파악하는 편이라서, 평소 동생들에게 미리 시범을 보여 주곤 해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그러면서 포인트 안무의 동작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쪼개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연하는 모습에 그는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안무를 받은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이런 케이스는 또 처음 본다.

보통 춤을 한 번 보여주면, 그걸 고스란히 카피하는 사람이야 많이 봐 왔지만 그 동작을 24프레임처럼 잘게 쪼개서 분석하는 인물은 처음이었다.

그와 함께 그간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도 완성도가 높았던 거였구나.’

이들이 커버한 틴스피릿의 안무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대략 6주 정도 연습했을 거라고.

하지만 실제 연습량은 3주.

지금의 안무도 주어진 시간 동안에는 절대 나올 만한 완성도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춤신들이 모인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동작 하나하나마다 다 분석할 수 있는 멤버가 다른 멤버들을 교육…….

“노! 노 에듀케이션.”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세뇌. 세뇌.」

「세뇌가 영어로 뭐였져? 리혁이 형.」

「Brainwashing.」

「예스. 브레인 샤워.」

「제발, 중현이 형. 3초 전에 들은 단어 정도는 제대로 기억해 줘요.」

「…저기, 얘들아. 열정적이라고 말해 줄 순 없는 거니?」

통역사를 통해 들리는 한국어 대화에 따르면 선우주가 반복해서 세뇌하다시피 했다는 모양이었다.

‘괴로웠다. 저 자가 우리를 고문했다.’ 같은 이상한 영어 표현을 구사하는 잘생긴 소년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린 것도 잠시.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마음에 들어.’

처음에는 계약서대로 5일간 3시간씩 안무를 살펴봐 주고 보완점 정도를 지적해 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할 수 있겠어.’

간만에 예술혼이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밑그림을 제대로 그리는 법을 알려 주려고 왔는데, 채색만 남겨둔 채 완벽하게 그린 이들을 본 것 같다고 할까.

그런 스케치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완성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5일간, 알려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알려 주지.’

물론, 그 결심을 후회한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HBS MTV 리얼리티 ‘잇츠 더 뉴블랙’ 8화 中

# 연습실

첫날의 레슨 시간이 가볍게 흘러간다.

안무가가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 후, 근처의 호프에서 치킨과 맥주를 시켜 놓고 댄스 트레이너 주예형과 이야기를 나눈다.

클레이 : 멤버들이 열정적으로 따라와 줘서 고마웠어요. 정말 이 친구들, 당장이라도 미국에 있는 내 아카데미로 데려가고 싶어요. 특히, 비주라는 친구는 가르쳐 보고 싶은 게 참 많더군요.

주예형 : 그… 글쎄요. 그거 며칠이 지나면 생각이 바뀌실 걸요.

클레이 :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갸웃)

주예형 : 겪어보시면 압니다.

클레이 : 네?

주예형 : 평소 때는 순하고 착하기 그지없는데, 일 관련해서는 정말…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들이거든요.

클레이 : 욕… 뭐라고요?

주예형 : 악마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우리 애들은.

클레이 : (동공지진) Your children…?

주예형이 어설픈 영어로 우리 애들을 ‘마이 칠드런’이라고 했다가 잠시 동안 큰 오해가 벌어졌던 상황이 웃음 포인트로 지나간 후.

연습실이 다시 나왔다.

(우주) 다시 보니 추억이네요.

(리혁) 진짜, 이틀도 안 돼서 우리한테 완전 질렸잖아요. 저 안무가님.

(비주) 그렇지만… 말씀을 그렇게 하셨잖아.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라고.

(우주) 맞아. 그리고 세 시간은 너무 짧았어.

(지호) 형이랑 비주 형이 제일 심했어여.

그 말과 함께 스튜디오에 있는 선우주와 김비주가 먼 산을 바라볼 때, 연습실의 풍경이 나왔다.

한 무리의 미니언즈처럼 안무가를 둘러싼 멤버들.

우주 : 클레이,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사비 파트에서 손 휘젓는 이 부분이요.

비주 : 회전할 때, 머리는 어느 방향으로 쓸어 넘기는 게 좋을까요?

우주 : 그리고 이 부분이요. 클레이.

클레이 : 잠깐만, 물 한 모금 좀 마시고.

질문 폭격에 당황하던 이가 잠시 연습실을 나가려고 했지만 금세 좌절됐다.

우주 : 중현아! 거기서 생수 한 병 가져다 줘.

클레이 : …….

중현 : 여기요, 형.

클레이 : 혹시 여기 화장실이.

비주 : 어디 있는지 모르실 텐데.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그동안 몇 가지 좀 물어봐도 될까요?

클레이 : …….

우주 : 근데 비주야. 네가 길을 알아…?

비주 : …….

그러는 동안, 어느새 찾아온 나머지 셋도 방방 뛰었다.

중현 : 우주 형. 저도 제 파트에 대해 궁금한 거 있는데 통역해 주세요.

지호 : 저두여. 표정 연기 궁금한 거 있는뎅.

리혁 : 진짜 다들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클레이 : (감동)

리혁 : 하여간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니까. 내가 제일 춤이 약한데, 내가 제일 많이 물어봐야 하지 않겠어요?

클레이 : (체념)

매일 안무 레슨이 이어질 때마다 세계적인 댄서의 노하우를 쭉쭉 뽑아먹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멤버들이었다.

다시 장면 전환.

제작진과 인터뷰를 하는 클레이 타일러가 나온다.

묘하게 달라진 얼굴이었다.

(지호) 헐… 클레이 쌤 얼굴 홀쭉해진 거 봐여.

(비주) 아, 어떡하지. 너무 죄송한데…….

(중현) 신기하다. 며칠 사이에 살이 저렇게 빠질 수가 있구나.

(우주) 그동안 우리가 되게 질척거리긴 했지….

(리혁) 진상이었죠.

잔뜩 초췌한 얼굴의 클레이 타일러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클레이 : 전에… 이 친구들을 LA로 불러서 가르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 취소하겠습니다.

제작진 : 생각이 바뀌셨나요?

클레이 : 네…….

아련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클레이 : 정말… 뉴블랙이 미국으로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당분간 친구들 집으로 피신 가 있을 겁니다.

제작진 : (웃음)

클레이 : (헛웃음) 농담이 아니에요.

…라면서 다시 유쾌한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클레이 타일러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클레이 : 뭐, 어쨌거나 정말 기억에 남는 일들이 많았어요. 고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 친구들의 열정에 매료되기도 했고요. 그만큼 솔직히 아쉽기도 합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클레이 : 더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벌써 LA로 돌아가야 한다니… 정말 아쉬워요.

제작진 : 표정이 되게 즐거워 보이시는데.

클레이 : (잇몸웃음) 절대 아닙니다.

이어서 2집 활동이 잘되길 바란다는 훈훈한 영상 편지가 흘러나왔다.

왠지 모르게 후련한 표정.

방송이 끝나고 팬카페에서 그 잇몸웃음 짤방과 함께 ‘클레이는 해방이에요!’ 하는 도비 드립이 유행하고 있을 때.

누군가 올린 클레이 타일러의 표정 분석 결과가 수플레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네모난 테두리가 쳐져 있는 클레이 타일러의 얼굴)

분노 0.00000

경멸 0.00000

역겨움 0.00000

두려움 0.00000

행복 1.00000

중립 0.00000

슬픔 0.00000

놀람 0.00000

그야말로 순도 100퍼센트의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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