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40)화 (14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40화

통유리를 통해 들여다보이는 수조는 새파란 조명으로 환했다.

3미터와 5미터 수심 중, 우리가 오늘 촬영을 하게 될 곳은 3미터 쪽이었다.

우리가 내딛고 있는 바닥보다 더 아래 위치한 5미터 구간을 보며 숨을 삼켰다.

“진짜 무섭다. 형들, 바닥 봤어여? 막 어두컴컴한 게 괴물 튀어나올 것 같아여.”

“진짜 으스스하긴 하네.”

“형. 우리 촬영 잘할 수 있을까요? 애들한테 무서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비주가 근심을 표하는 동안 리혁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왜 그래?”

“그냥요.”

“너 무섭지. 이거?”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누굴 초딩으로 아나. 내가 지금도 가서…….”

허장성세를 부리면서 큰 소리를 내뱉는 리혁이를 바라보며 우리 넷이 동시에 한곳을 바라보았다.

진실의 귀가 빛나고 있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나는 닭살이 돋은 두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근데 좀 무섭긴 하다. 이제 저기 들어가서 촬영을 해야 하는 거잖아.”

“형, 안에 진짜 아무것도 없겠져?”

“뭐가.”

“아니, 영화에서도 보면 갑자기 막 상어나 오징어 괴물 같은 게 뽜악! 튀어나와서 촉수로 사람을 쉬익~”

“아아아! 안 들린다! 안 들려!”

귀를 막으며 도망치는 리혁이를 비주가 챙기는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막내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괴물이 나타나면 중현이가 해결해 줄 거야.”

“제가요?”

“응.”

“잠시만요.”

중현이가 머릿속으로 뭔가를 계산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 같아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니, 중현아.”

물고기 괴인이랑 치고 박고 싸우는 상상이라도 한 걸까.

근데 내가 생각해도 중현이가 질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싸운다기보다는 물고기 괴인과 천하에 둘도 없는 베프가 돼서 이 수조 안을 헤엄치는…….

고개를 휘휘 저어 이상한 상상을 쫓아냈다.

“어? 안에 사람들이 있어여!”

막내가 손가락을 가리킨 곳에서 서너 명의 다이버들이 수중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산소통을 멘 채 오리발을 익숙하게 휘젓고 다니는 이들.

촬영 감독님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우리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통유리 앞을 지나던 어느 감독님이 손가락으로 OK를 그렸다.

다들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확인하는 모습이, 아마 콘티에 정해진 대로 앵글을 잡는 듯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뺨을 긁적였다.

뭔가 내 예상보다 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다고 할까.

스토리 필름의 촬영 준비가 차근차근 이뤄지는 현장을 바라보며 지난번 회의를 떠올렸다.

*   *   *

레몬 엔터 회의실.

예비군이 막 끝나고, 팬미팅 날짜를 정했던 회의에서 나는 회사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었다.

-2집 앨범 제안

두 번째 앨범인 미니 1집에 관한 제안들이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가지였다.

“첫 앨범이 뉴블랙의 전체적인 그룹 컬러를 담았잖아요. 그래서 이번 앨범부터는 멤버들 각각의 색을 담아 보는 건 어떨까 해요. 빨강으로 시작했으니까 노랑, 초록, 파랑, 보라… 이런 식으로요.”

멤버들의 색을 차례로 앨범에 담아보자는 것이 첫 번째 제안이었다.

조 이사님이 턱을 쓰다듬었다.

“괜찮은 아이디어네. 같은 테마로 엮을 수도 있고.”

직원들도 한 마디씩 했다.

“어이구. 장기 프로젝트네. 저대로 하면 보라색은 6집인데, 2016년 여름에나 가야 끝나겠는걸.”

“그래도 마케팅 포인트는 확실하잖아요.”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이긴 했지만, 워낙 장기 프로젝트인 터라 OK가 나오진 않았다.

검토해 보자 하는 정도.

하지만 내가 이어서 제시한 아이디어는 곧바로 채택이 됐다.

“그리고 이건 방금 말씀드린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뮤직비디오에도 스토리를 넣어 보는 건 어떨까 해요.”

“다른 기획사에서 하는 거구나. 그 세계관인가 하는 거?”

세계관.

기획사에서 아이돌을 제작하면서 설정하는 일종의 재미 요소다.

노래나 그룹 컬러를 하나로 엮어서 설정하는 작업인데 팬들에게 제공하는 흥밋거리 중 하나였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이세계에서 차원을 넘어 건너온 다섯 미남이 어느 동방예의지국에 도착했으니 그들을 일컬어 뉴블…….

…뭐. 그런 거다.

이런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넣어서 뮤비나 재킷 사진 속에 숨겨진 의미나 스토리를 찾는 것.

요즘 들어 자주 나오는 컨셉이었다.

예를 들어, SNH 엔터의 걸그룹 가을소녀의 경우 멤버마다 상징하고 있는 나무와 꽃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가을소녀에서 단풍을 맡은 나현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런 기획을 말씀드리는 건 아니에요.”

흥미를 보이는 직원들의 모습에 진땀이 절로 나왔다.

동시에 자료 조사를 하면서 봤던 선배 아이돌들의 영상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갔다.

동작 모방 능력으로 그 안면 근육의 움직임이 저절로 느껴졌는데, 하나같이 민망함과 수치스러움이 잔뜩 섞여 있었다.

그랬기에 데뷔 연차에는 눈 딱 감고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서서히 사라지고 마는 그런 비운의 컨셉이 대다수였다.

누군가 웃으며 물었다.

“어떠세요, 이사님. 저희도 그런 거 한 번 검토해 볼까요?”

“유치합니다.”

“…….”

“우주는 계속해서 이야기해 봐.”

내가 설명을 이어 갔다.

“거창한 걸 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앨범마다 컨셉은 달라도, 뮤직비디오끼리 이야기가 이어지는 건 어떨까 해요. 이번 타이틀 뮤비를 찍는다면, 전 타이틀이었던 불꽃놀이의 마지막에서부터 이어지는 식으로요.”

“오오, 그거 괜찮네.”

마침 첫 번째 싱글 앨범의 제목도 제1장(First Chapter)이었고 말이야.

전체 뮤직비디오를 하나의 이어지는 시리즈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는 게 바로 내가 제안한 것이었다.

프로듀서로서 해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아이디어를 준비해 오라는 말에 따라 생각해 둔 아이디어였다.

그 외에도 자잘한 이야기들에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우주야. 네가 이렇게 다 해 버리면 우리가 뭘 하니.”

“엇.”

“아이고, 진짜 이러다가 정말로 우주 A&R팀으로 채용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안 돼요. 우리가 데려갈 거야.”

“그런데 뮤비끼리 이어 가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이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동안, 나는 뉴블랙의 프로듀서를 살폈다.

그는 내가 준비한 자료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혼자서 만년필로 뭔가를 끄적이고 지우고 반복하던 이가 이내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이거, 뮤비를 이어지는 스토리로 만들자는 기획 말입니다.”

레몬 엔터에서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판을 좀 더 키우죠.”

“네?”

“뮤비끼리 연결시키는 것 말고, 아예 그 사이에 단편 영화 같은 영상을 추가하는 식으로요.”

“이사님. 저희 예산은요?”

“제가 따오겠습니다. 뭐, 갑작스럽게 느껴지실 수 있겠지만… 여러모로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 같네요.”

제작이사가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마음에 드네요. 이 아이디어.”

*   *   *

문제는 이사님이 내 아이디어를 너무 마음에 들어 했다는 거였다.

-안녕하세요!

-누구…?

-저희 스토리 필름 맡은 작가들이에요!

정신을 차려 보니 시나리오 작가 분들이 찾아와서 우리를 인터뷰하고 대본을 집필을 하시질 않나.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번에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수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수조 옆에 있는 계단을 타고 쭉 올라오면 나오는, 수영장 같은 느낌의 장소였다.

리혁이는 곳곳에 가득한 안전 장비를 살피고 있고, 지호와 비주는 수면을 바라보고 있다.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듯 새카맣게 일렁이는 표면.

“근데… 위에서 보니까 물 진짜 새카맣네여.”

“너무 걱정하지 마. 지호야. 우리가 빠지는 데는 그래도 수심이 3미터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어.”

“그래도 무서워여….”

나는 말없이 콘티에 적힌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몸을 풀었다.

“후우.”

목을 이리저리 꺾는 사이, 중현이도 곁에서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따가 물에 빠지면 얘랑은 좀 떨어져 있어야겠다.

요새 운동을 하긴 했지만 희한하게 얘 옆에만 있으면 내 몸이 안 좋게 느껴진다니까.

수영선수처럼 드러난 팔다리에 잔근육이 선명했다.

비주가 속삭였다.

“이따가 물에 빠지면 쟤랑은 꼭 떨어져 있을 거예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야.”

곧이어 안전 요원의 지도하에 다시 한 번 몸을 풀었다.

혹시 모를 사고의 위험 때문에 그동안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그래도 떨리긴 했다.

살다 살다 내가 물속에서도 뭘 찍을 줄이야.

“의상도 한 번 확인해 주고요.”

“네.”

“불편하거나 어디 이상하게 느껴지면 바로 말해요.”

불편한 건 없었다.

몸이 커져서 그런지 불꽃놀이 촬영 때 입었던 옷이 조금 작게 느껴지는 걸 빼면.

석환 형을 비롯한 우리 회사 직원들과 현장 스탭들, 각종 카메라가 물 위아래로 포진한 가운데.

물에 빠지는 신에 관해 유건 감독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던 우리는 다가올 소품을 기다렸다.

“저기 왔다. 배.”

잠수복을 입은 이들이 낡아 보이는 나룻배를 밀고 왔다.

우리 모두 그 위로 올라타자, 확성기를 든 감독님이 지시를 했다.

-자, 거기서 한 5미터 정도 노를 저어서 간 다음에 빠지는 거야. 내가 사인을 보낼 테니까 한 번 노를 저어 봐.

“네.”

중현이가 노를 잡고 쉭 저었다.

“…….”

노 젓기 한 번 만에 목적지로 슈육 하고 모터보트처럼 이동하는 나룻배의 모습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들 눈을 깜빡이는 동안 감독님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우주가 한 번 해 볼래?

“네, 감독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를 잡았다.

안 그래도 숙소에서 리혁이의 진공청소기를 노로 삼아 연습을 한 터였다.

이거 하려고 미튜브 영상도 여러 개를 봤지.

하지만 내가 노를 젓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

왜들 그러는 거지.

*   *   *

[아무리 봐도 인생 2회차인 것 같은 신인 남돌.newblack]

이쯤 되면 당연히 예상하고 들어왔겠지

이번에도 우주얌ㅎㅎ

캡처 장면은 리얼리티 8화에서 스토리 필름 찍을 때 나온 거ㅇㅇ

감독이 노를 저으라고 시킴

그리고 30년차 뱃사공처럼 젓는 우주ㅋㅋㅋㅋㅋ

현장에서 현실웃음 터짐ㅋㅋㅋㅋ

인터넷에서 무슨 노인 뱃사공 보고 연습했다는데 문제는 너무 열심인 나머지 표정까지 따라함.

-근엄하다ㅋㅋㅋㅋㅋ

-이놈들,, 이게 바로,, 노젓기다~~!

-팬들은 노인과 바다라고 놀리는 중

-ㅋㅋㅋㅋㅋ노인과 바닼ㅋㅋㅋ

-감독 하는 말이 더 웃김ㅋㅋㅋ ‘그냥 노 없이 움직이는 마법의 나룻배로 하쟈.’

-근데 또 잘하긴 잘하네 ㅋㅋㅋㅋ

-얼굴 저렇게 쓸 거면 나나 줘..

-이거 앞부분이랑 뒷부분도 올려 줘! 저 앞에 중현이가 모터보트처럼 슝 나가는 거 개웃김ㅋㅋ

-진짜 요새 어지간한 예능보다 얘네 리얼리티가 더 웃겨

-ㅇㅇ요즘 뉴블랙 움짤 모으는 중임. 잘생겼는데 웃겨셔 귀여워

*   *   *

쏴아아-

사방이 물천지였다.

위에서는 스프링클러가 분사하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살수기에서 뿜어내는 물이 파도가 되어 출렁였다.

“으아아!”

“물이 너무 많아여!”

어차피 오디오는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해서, 감독님이 아무 말이나 떠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룻배 위에 올라탄 우리들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푸푸! 나 진짜 앞으로 10년 동안 물 근처에도 안 갈 거예요!”

“리혁아! 샤워는 해야지!”

“맞아여. 으아! 저 맨날 원피스에서 파도치는 거 보고 비웃었는데 이렇게 무서운 거였다니!”

“말은 똑바로 어푸푸…! 여기 바다 아니야!”

“우주 형, 저 물 지금… 콜록! 너무 많이 먹었어요…!”

“괜찮아, 나도 많이 먹었어!”

비바람에 출렁이는 나룻배 위에서 개판이 펼쳐진 가운데 중현이 혼자 말없이 연기를 하고 있었다.

맨 처음 찍을 때, 홀로 평온하게 균형을 잡으며 있어서 감독님이 별도로 심각한 연기를 하라고 주문한 터였다.

중현이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심각해. 난 지금 심각한 상황에 처했어.”

그런 혼잣말에 우리끼리 웃음을 참다가 물 먹기가 일쑤였다.

물론 배 위에서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장 목표 지점에 도착한 나룻배가 자연스럽게 뒤집히면서 우리가 모두 수조에 빠졌으니까.

하얀 물거품이 눈을 간질이고, 눈을 뜨면 뿌연 시야에 온통 푸른빛만이 주변에 들어왔다.

귀가 멍멍하고.

어디선가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가 수조를 타고 울렸다.

1초

2초.

3초….

물에 빠진 직후에 발버둥을 치다가 이내 잠이 든 것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는 연기를 했다.

솔직히 무섭긴 했다.

그나마 3미터긴 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5미터짜리 구멍이 마치 심연의 괴물처럼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저기는 진짜 뭐가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석환 형에게 오늘 촬영 비용이 얼마인지 듣고는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돈이 더 무서웠다.

그런 이유로 물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는 중이었다.

“후우… 후우….”

다이빙 수트를 입은 스탭들의 도움을 받아 수면으로 올라온 후, 긴 숨을 토해 냈다.

숨을 참는 건 생각보다는 할 만했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폐활량이 큰 편이라.

심지어 우리 메인보컬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뿐, 숨 차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고생들 했어!”

스탭들이 다가와 담요를 건네주었다.

푹 젖어서 무거워진 겉옷은 벗고 담요를 덮었다. 머리에는 따끈하게 데워진 마른 수건을 얹었다.

“으, 추워.”

“춥다. 추워.”

“야, 그만 좀 달라붙어. 이 담요 귀신들아.”

“야박하게 굴지 말고 같이 있어여. 형.”

머리카락이 미역처럼 푹 젖은 동생들이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렇게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 있으니 펭귄 모임 같았다.

처음에는 거추장스러워서 손을 휘휘 저었는데, 생각보다 은근 체온이 포근해서 가만히 있었다.

“얘들아!”

유 감독님이 다가오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다섯 명의 담요 귀신들이 감독님 곁에 다가가 쭈그려 앉았다.

곧바로 방금 촬영분이 모니터에 흘러나왔다.

“전반적으로 다들 훌륭했어. 지호나 우주야 뭐, 내가 연기 관련해서 말할 필요도 없이 깔끔했고.”

“감사합니당.”

지호가 씩 웃으며 미니 하이파이브를 내밀기에 손바닥을 슬쩍 마주쳐 주었다.

감독님이 파란 배경 속에서 눈을 감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가리켰다.

“비주와 리혁이도 괜찮았어. 특히, 리혁이가 잘하더라. 겁먹을 때 표정이 정말 진짜 같았어.”

“…감사합니다.”

그 진상을 아는 우리가 슬며시 미소를 머금을 때, 감독님이 모니터를 손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문제는 중현이인데…….”

그 말에 가벼웠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무거워졌다.

“중현이 혼자 좀 많이 튄다고 해야 하나.”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할까요?”

중현이의 진지한 물음에 상대가 답했다.

“고친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톤이 안 맞아. 다들 무섭고, 심각한데 혼자 평온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붕 떠 있는 느낌이기도 하고. 물속에서도 너무 평화로워 보여서.”

“아아. 네.”

“뭐, 이대로 가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조금 아쉽기는 하지.”

이게 몇 번째 테이크였더라.

지금 최종 오케이가 날 때까지 엄청 많이 찍었던 것 같은데, 감독님의 눈에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 듯했다.

찍어야 할 신이 몇 개 더 있기는 했지만 여기서 찍을 장면 중에서는 이게 제일 중요한 거라서.

음.

다들 말없이 모니터를 바라보는 동안 나는 젖은 손으로 촬영 콘티를 넘겼다.

뭐. 좋은 아이디어 없으려나.

하지만 여전히 머리가 멍했다.

물기 가득한 귀가 멍멍했고,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리는 바람에 제대로 된 생각이 힘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라곤, 얼른 따끈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고 싶다는 것뿐.

그렇게 한참 고민할 때였다.

“이건 어때요?”

조감독님이 의견을 제시했다.

이내 그가 설명을 시작하면서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콘티에 추가되는 장면이었지만 정말 잘 어울렸다.

관건은 딱 하나였다.

“중현아, 너 수영 잘하니?”

모두의 시선이 중현이에게 향했다.

우리 래퍼가 선선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잘해요.”

*   *   *

다시 시작된 촬영.

뉴블랙의 두 매니저는 수조가 들여다보이는 유리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서민기가 말했다.

“얼른 끝났으면 좋겠네요. 이러다 감기라도 들면 큰일인데.”

“그러지 않도록 우리가 관리를 잘해야지.”

차분하게 대답을 하던 윤석환이 파란 수조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아름다우면서도 으스스한 파란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큐!”

감독의 외침이 어렴풋하게 들린 후.

풍덩-

곧장 물에 빠진 다섯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니.

아까와 달리 다섯이 아니라 넷이었다.

팔다리에 힘을 뺀 채 눈을 감고 있는 넷이 평온한 무표정을 지었다.

머리카락이 수초처럼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멤버들의 고운 턱 선과 오뚝한 코가 수조 속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이야, 우리 애들은 물속에서도 잘생겼네요. 우주는… 오.”

서민기의 감탄과 함께 곧이어 새로운 인물이 물속으로 조용히 뛰어 들어왔다.

“……?”

셔츠 차림의 김중현이 수면 아래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마치 돌고래가 물속으로 입수하듯.

어딘가 모르게 우아한 동작이었다.

그러곤 팔을 부드럽게 움직여서 헤엄을 쳤다.

평온한 얼굴로 멤버들에게 다가가서는 이내 저마다 손을 붙잡고 상대를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그러곤 하나씩 수면 위로 끌어올려 주었다.

그때마다 멤버를 품에 안은 채, 수면 위로 부드럽게 올라가는 김중현의 모습은 그림처럼 근사했다.

“오오….”

한편, 현장 스탭들이 보면서 말없이 감탄을 하는 동안 매니저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뭔가 기분 탓일 수도 있긴 한데.

김중현이 헤엄을 쳐서 멤버들을 구해 주는 장면이 어딘가 눈에 익는다고 할까.

‘마치…….’

그런 생각을 할 때, 서민기가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그런데 이거요, 실장님. 저게 중현이라서 제가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는데…….”

“뭐가?”

“이거 그거 같지 않나요.”

“……?”

“사람 구해 주는 돌고래요.”

윤석환은 마시고 있던 캔커피를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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