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44)화 (14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44화

쇼케이스 전날.

평소보다 연습을 일찍 끝내고 숙소로 도착했다.

저녁 8시.

‘모두 수고했어!’ 하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어깨동무를 한 채 방방 뛰…

“여기서 막 뛰면 아래층 사람들한테 민폐 아닐까요.”

“그럼 까치발만 까딱까딱하자.”

“와아…!”

“소리도….”

“와아아아↘”

목소리도 낮추고 까치발만 까딱까딱하는 것으로 대신 때웠다.

홀가분했다.

그래서 샤워도 하고, 뽀송뽀송해진 동생들과 함께 얼음을 동동 띄운 보릿물로 건배도 하고.

오늘은 일찍 잠에 들기로 결정했다.

아니. 했었다.

문제는 다 같이 불을 끄고 난 후.

“…….”

평소 하지도 않았던 걸 하려니 몸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섯 올빼미가 이불만 덮고 눈만 초롱초롱 뜨고 있을 때.

“형.”

어딜 가든 꿀잠을 자는 우리 래퍼님이 말했다.

“저 잠이 안 와요.”

“네가 잠이 안 와?”

“저도 신기해요. 긴장을 해서 그런가. 두 번째 앨범 나온다고 하니까 떨리기도 하고.”

“…….”

잠이 안 오고 떨린다니.

충격적인 고백 이후 동생들도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근데 저도 잠이 안 오는 것 같아요. 걱정도 많이 되고.”

“그니까요. 내일 잘해야 되는데.”

“저도 막 가슴이 쿵쾅쿵쾅해여. 학교 애들한테 괜히 자랑했나 봐여. 계속 톡으로 내일 노래 기대한다고 그러고.”

동생들이 하는 말을 차분히 듣고 났을 때,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연습이나 좀 할까?”

그래서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였다.

3개의 2층 침대 중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가운데 1층으로.

보조 배터리로 쓰는 미니 조명을 은은하게 켠 채 종이를 꺼내들었다.

석환 형이 건네준 Q&A 대비 자료였다.

-이번 쇼케이스 질의응답 시간에 저급한 질문들이 좀 나올 거야. 너희 인지도가 올라간 만큼 예전보다 어그로 끌기가 더 쉬워졌거든.

그런 이야기였다.

6월의 뉴블랙이 하는 말과 11월의 뉴블랙이 하는 말은 이제 그 무게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

-헤드라인 하나 뽑으려고 이상한 질문 던지는 놈들이 나올 테니까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 특히, 컴백 겹치는 TNT나 세레니티 관련해서 제목 잘못 나가면 큰일이니까.

그런 이유로 Q&A 연습을 했다.

이상한 질문이라니….

조금 걱정이 된다.

방송 활동을 하면서 이제 무대는 능숙해졌는데, 여전히 언론을 대하는 일은 어색했다.

“어색하다고요?”

“응.”

“…….”

동생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왜들 그러지.

Q&A 시간은 나도 지난 번 쇼케이스에서 엄청 헤맸던 거라 이번에도 긴장된다고 항변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   *   *

오후 10시 반.

Q&A 준비를 하던 뉴블랙 멤버들이 제자리에 눕기 시작하고, 목소리가 하나둘 나른해지더니.

그 상태로 일렬로 된 떡꼬치처럼 누워 다섯이 코를 골기 시작했을 때.

팬들은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자정에 공개될 뮤직 비디오 때문이었다.

‘으아, 떨려….’

모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눈앞에 두고 의미 없는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저는 오늘도 야근이네요ㅠㅠ

-전 연구실이에요.. 겨스님.. 저 집에 가고 시퍼여..

-[속보] 1시간 30분 전

잡담을 나누며 12시의 뮤비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

-뭐죠,, 새로고침하다가 갑자기 이상한 게 나왔는데

-??

-스토리 필름..이라는데?

11시가 되자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레몬 엔터 계정에 뉴블랙이 썸네일로 있는 비디오가 업로드 되었다는 것.

그런데 뮤비는 아니었다.

‘뭐지…?’

그 어떤 예고도 없이 올라온 영상이라 팬들은 당황스러웠다.

전국 곳곳, 그리고 바다 너머의 손가락들이 저마다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화면을 터치했다.

8분짜리 영상.

곧이어 검은 화면 위로 레몬 엔터의 로고와 감독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   *   *

동영상은 이미 한 차례 보았던 익숙한 장면에서 시작됐다.

불꽃놀이의 뮤직 비디오.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다섯 소년이 서로를 경계하다가, 이내 친해져서 함께 떠들고 노는.

그 마지막에 나오는 불꽃놀이 파트가 오프닝이었다.

펑- 펑-

밤하늘을 수놓는 색색의 불꽃놀이.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

모닥불 앞에 앉아있는 다섯 멤버의 얼굴이 화면에 담겼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그 얼굴에 차례로 빨강부터 보라까지 알록달록한 색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이윽고 왕지호로 다시 이어지는 클로즈업.

잘생긴 얼굴에 초점이 고정되더니, 곧바로 주변 배경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해와 달이 지는 것을 통해 날짜가 바뀌는 것을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동시에 왕지호의 머리색이 변했다.

단풍이 붉은색으로 물들 듯, 갈색에서 붉은색으로. 이내 새빨간 머리로 완벽하게 변했을 때.

시점이 변했다.

쏴아아-

뜨거운 태양 아래 파도가 밀려오는 백사장.

꾀죄죄한 몰골의 멤버들이 나타났다.

청자켓은 거무죽죽하게 때가 탔고, 바지에는 흙모래가 가득했다.

먹을거리를 찾아 밀려온 깡통을 뒤적이거나 목이 타는 듯한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표정이 담겼다.

점점 고립되어 한계가 오기 시작했을 때.

뚝-

뒤편의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한 것도 잠시, 이내 초록 팔찌를 한 청년이 나타나자 다들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상대가 가져온 것을 격하게 반겼다.

나룻배.

분위기는 곧바로 반전됐다.

절망과 괴로움만 희망과 행복으로.

나룻배를 띄운 후, 노란 머리의 멤버와 파란 옷을 입은 멤버가 노를 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던 항해.

우르릉-

곧바로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거센 비바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힘겹게 노를 저었지만 이내 배는 거센 물보라에 휩싸이며 뒤집히면서, 평온한 수면 아래가 나타났다.

파란 빛이 가득한 바다 속.

초록 팔찌를 한 멤버가 우아한 동작으로 헤엄을 치며 멤버들을 하나씩 구조하기 시작했다.

잠시 화면이 암전되고.

어디선가 들리는 갈매기 소리와 함께 다시 밝아졌다.

모래사장에 처박힌 이들이 하나둘 눈을 뜨고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시 돌아온 섬.

그들이 처음 있던 곳과는 다른 해변에서 눈을 뜬 이들은 이내 낯선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백사장 한 가운데 서 있는 문이었다.

말 그대로 문이었다.

문틀과 함께 장미 문양이 음각되어 있는 새빨간 문.

그것을 보자 빨간 머리의 멤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 문손잡이를 잡았다.

모두가 말리기도 전에 문은 열렸고.

번쩍임과 함께 그들은 또 다시 한 번 낯선 곳에서 눈을 떴다.

흑백 영화처럼 흰색과 검은색의 대비로 가득한 도시적인 배경.

‘Masquerade’의 뮤비의 오프닝인 듯한 장면이 나오면서, 스토리 필름은 그렇게 끝이 났다.

“…….”

홀린 듯이 영상을 보고 있던 이들은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당황스러웠다.

뮤비를 기다리고 있는데 영상미가 끝내주는 단편영화가 올라왔다.

“…….”

갑자기 스토리 필름으로 기습을 당한 팬들의 심정은 모두 똑같았다.

-저희가 지금 뭘 본거죠..?

이내 채팅창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해당 영상의 링크가 각종 아이돌 관련 커뮤니티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자들은 이런 화젯거리를 놓치지 않았다.

-뉴블랙 컴백 MV 공개 전 스토리필름 깜짝 공개… ‘영상미 호평’

-뉴블랙 스토리 필름 화제…“뮤직비디오에 스토리를 담았다”

-뉴블랙 ‘Masquerade’ MV, 화제성과 팬덤 모두 잡았다

뉴블랙 멤버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컴백 앨범에 대한 기대감이 무럭무럭 솟고 있었다.

*   *   *

새벽 4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세 가지 이유로 몹시 놀랐다.

“일어나요. 우주 씨.”

첫 번째 이유는 눈을 뜨자마자 본 우리 신입 로드매니저, 도원석 씨의 험상궂은 얼굴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눈을 비비다가.

“…아, 깜짝아. 너희 왜 여기 있어?”

“형이야말로 왜 여기 있어여…?”

다 같이 1층 침대에 일렬로 누워서 잠이 든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어… 뭐야.”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켰을 때, 포털 연예란 첫 화면에 떠올라 있는 우리 이름 때문이었다.

-대세 신인 뉴블랙, 컴백 전 ‘화려한 영상미’로 눈길 사로잡아…

그런 제목의 기사였다.

그랜드 카니발이 11월의 청담동 거리를 달리는 동안 우리는 지난밤의 이야기를 따라잡았다.

스토리 필름이 연예 관련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그럴 만하긴 했지.

어제 낮에 매니지먼트 팀 사무실에서 매니저들과 함께 스토리 필름과 뮤비를 감상했을 때 우리 모두 입을 멍하니 벌렸으니까.

“와, 반응이 진짜 좋아여.”

“팬분들이 그러는데, 영상미 진짜 예쁘대요.”

팬카페는 시끌벅적했다.

내용보다는 영상미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왜냐하면 뮤직비디오는 전반적으로 안무와 영상미에 치중해서, 스토리에 관한 부분은 암시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모두가 정장과 가면을 쓰고 다니는 도시.

그 세상에 떨어진 네 명이 그곳에서 이리저리 쫓기며, 기억을 잃은 빨강이를 구출하는 이야기.

우리 뮤직비디오를 보게 될 불특정 다수를 고려해서 스토리는 최소한으로 담고, 안무에 더 방점을 둔 뮤비였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노래니까.

-와ㅠㅠㅠㅠㅠ 노래 진짜 좋다

-진짜.. 뮤비 재생해놓고 계속 듣는 중! 후렴구에 안무도 넘 예쁘고 노래 진짜진짜 좋아여.. 행복하다 정말

-이거 진짜 음원 나오면 주변에다 다 추천하려고요

-수능 뒤에 나와서 다행이에요. 전에 나왓으면 중독성 쩔어서 공부하는데 방해됐을 듯

대부분 노래에 관한 호평이 이어졌다.

뿌듯했다.

8월 말부터 11월까지 만지고, 또 만지고. 공을 들여왔던 노래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날.

일단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 호평을 내린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다 같이 피곤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단계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기분이었다.

이제 남은 건 관계자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   *   *

한남동의 B 스퀘어.

뉴블랙의 미니 1집 쇼케이스를 앞두고 기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하나둘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키는 가운데, 안면을 익힌 이들이 가벼운 잡담을 주고받았다.

“아, 바쁘다. 바빠. 오늘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끝나면 세레니티 쇼케도 가야 되고.”

“저희는 처음부터 인원을 나눴어요. 세레니티랑 뉴블랙, 이렇게.”

“TNT까지 있었으면 박 터졌겠다. 정말.”

“에이, TNT가 했으면 다 거기로 갔죠. 뭐 하러 여기 와요.”

가벼운 웃음소리들이 오갔다.

“TNT는 이따 팬들 데리고 컴백쇼만 하는 것 같더라고요. 삼천 명 정도 된다고 하던데.”

“와. 거의 콘서트네.”

“보나마나 오늘 밤 음원차트 쫙 줄 세우겠네.”

“이번에 신인들은 어떨 거 같아요? 뉴블랙이랑 세레니티.”

누군가의 물음에 예측이 오갔다.

“세레니티야 지난번이랑 비슷하게 갈 것 같고… 뉴블랙이 조금 높게 나오긴 할 걸요. 예능빨이 아직 안 빠지기도 했고. 얘네 팬덤이 생각보다 많이 커져서.”

곧바로 뉴블랙의 미니 1집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멤버들의 컨셉 포토와 뮤비를 보며 누군가 감탄했다.

“진짜 돈 들인 티 엄청 나네.”

“어제 저것 때문에 밤늦게 기사 썼잖아요. 갑자기 미튜브에서 인기 동영상으로 확 뜨고.”

“그럴 만하죠. 해외 팬들이 환장할 것 같더라고요. 안무도 좋고.”

“그런데요.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투자를 크게 했대요?”

망하면 어쩌려고.

뒷말은 생략했지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각종 시상식에서 올해 신인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힐 만큼 뉴블랙은 올해 최고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큰 투자를 할 만한 그룹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노래가 그만큼 좋아서 그런 거겠죠.”

뒷자리에서 들린 목소리.

연예IN의 오소희 기자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관계자들 이야기 들었어요. 임원들이 노래 듣자마자 투자 규모를 결정 지었다네요.”

“그래요?”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로 좋은가?”

“어제 뮤비 보긴 했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원래 노래라는 게 한 번 들어서는 모르잖아요.”

“저도요. 적당히 괜찮은 느낌.”

“그죠. 솔직히 한 번 듣고 나면 까먹는 노래가 한두 개인가요. 봐요. 얘네 노래도….”

그런 말과 함께 누가 어젯밤 들었던 마스커레이드의 후렴구를 입으로 흥얼댈 때였다.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어제 잠결에 들어서 그런가. 한 번 들은 노래인데, 왜 이렇게 잘 나오지.”

“반복재생 틀어놓고 잔 건 아니에요?”

“아니에요. 한 번 해 봐요. 나만 되는 거 아닐걸.”

“아니, 어제 한 번 들은 노래를 누가 기억… 되네.”

하나둘 어젯밤 들었던 노래 후렴구를 입으로 흥얼거려 보았다.

곧바로 멜로디가 툭 튀어 나왔다.

희한한 일이었다.

반복 재생한 것도 아니고, 한두 차례 들었던 노래의 멜로디가 자고 난 다음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

기묘한 침묵.

그때 노래를 흥얼거리던 기자 한 명이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기억났어요.”

“뭐가?”

“올해 초에 오늘이랑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길거리에서 스치듯이 들었는데 노래가 남은….”

기억을 회상하던 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가 아마 썸씽 때였을 거예요.”

*   *   *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기자 쇼케이스의 분위기는 정말 비즈니스의 끝판왕이었다.

뮤직비디오가 나오거나 우리가 무대를 하거나, 이런저런 토크를 할 때도 들리는 소리는 딱 두 가지뿐이었다.

백 개가 넘는 노트북이 토해내는 타다다닥 하는 자판 소리와 찰칵 거리는 카메라 소리.

말 그대로 비즈니스 미팅이었다.

배경이 무대일 뿐이지, 팔짱을 끼고 있는 구매자들에게 제품 설명을 열심히 하는 느낌이다.

-자, 이제 Q&A 시간인데요. 기자님들 질문하실 사항이 있으시면, 한 분씩 손 들어주시면 됩니다.

사회자가 진행하는 동안, 무대 아래에서 석환 형이 잘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도 동생들과 조용히 눈빛을 교환했다.

어제 연습한 대로 잘하자고.

곧바로 이런저런 질문이 날아왔다.

-스타텐의 이종학 기자입니다. 먼저 이번 안무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은데, 해외 안무가와 작업을 하면서…

-미디어큐 배연정입니다. 멤버 중현 군에게 래퍼 헤이션과…

나에 대한 질문으로 넘쳤던 지난 쇼케이스와 달리 이번에는 골고루 질문이 들어왔다.

비주에게는 클레이 타일러가 SNS에 남긴 댓글에 담긴 ‘B’의 의미를 물어보고.

중현이에게는 헤이션과 작업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리혁이에게는 뮤비에서 나왔던 대로 그 높은 고음을 정말 안무를 하면서 소화할 수 있는지.

특히 앨범의 주인공인 지호에 관한 질문이 굉장히 많이 쏟아졌다.

동생들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쏟아진다는 것이 흐뭇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얘네가 잘할 수 있을지.

이런 자리에 설 때마다 늘 불안하다.

하지만….

“헤이션 선배님과의 작업은 재미있었어요. 정말 존경하는 뮤지션이기도 하고, 또 하고 싶어요.”

“아… 표정 연기가 좀 어렵긴 했는데여. 감독님의 세세한 디렉션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아여.”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동생들은 답변을 할 때마다 정석적인 답변을 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헤드라인을 쓰기 좋게 딱 포인트를 잡아주기도 하고.

감격스러웠다.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자식이 뛰어노는 걸 보는 엄마 캥거루의 심정이라고 할까.

하지만 뿌듯함도 잠시.

앨범에 관한 질문을 소화하느라 내가 제일 바빴다.

리얼리티에 나왔던 제작기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있고, 정말 꿈에서 그 멜로디를 떠올린 것인지 등등.

거기다 폭탄 같은 질문이 나올 때마다 그걸 해체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확실히 유명세가 올라가서 그런지 이상한 질문의 빈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TNT가 멤버 건강 문제로 컴백이 갑자기 밀렸잖아요. 그래서 같은 주에 컴백을 하게 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해석 : 나 너네랑 TNT 엮어서 헤드라인 한 번 화끈하게 쓰고 싶다. 뭐 하나만 흘려줘.

그럴 때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늘 바라만 보던 멋진 선배님들과 함께 무대를 선다는 게 참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석 : 어림도 없음.

그런 식으로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질문이 오갔다.

-지금 뮤직비디오라든가, 인터넷 반응이 굉장히 좋은데. 이번에 목표 순위를 얼마나 잡고 계세요?

해석 : 네가 몇 위를 말하든, 난 그걸 가지고 어그로를 끌 자신이 있다.

“순위보다는 주어진 무대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굳이 순위를 목표로 한다면 우리 수플레들의 마음 속 1위이고 싶어요.”

해석 : 안 사요. 안 사.

수플레들의 1위라는 말에 몇몇 기자들이 피식 웃었고, 질문을 던졌던 이는 입맛을 다시며 앉았다.

그런 식으로 먹이를 안 던져주니, 알아서 그 다음부터는 앨범에 대한 좋은 질문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왜들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내가 그랬듯이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며 뿌듯하게 웃고 있었다.

*   *   *

[오늘 쇼케이스 중계 중 먹금 잘해서 큰웃음 준 신인그룹 리더]

기자 : 주세한 때 이견우와 투샷이 때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사람들이 너 잘생겼다고, 옆에서도 안 밀린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우주 : 이견우 선배님은 얼굴에서 빛이 난다.

기자 : 아니, 그러니까 내 질문은..

우주 : 선배님 존잘.

기자 :

우주 : 완전 존잘. 슈퍼 존잘.

기자 : (자리에 앉음)

(중략)

질문 스루하는 거 보고 웃겨서 캡처해왔어 ㅋㅋㅋㅋ

-무적의 방퍀ㅋㅋㅋㅋ

-옆에서 멤버들 눈 초롱초롱한 거 기여워 ㅋㅋㅋㅋㅋ

-기자들 몇 번 던져보고 포기하는거 존웃ㅋㅋㅋ

-이야 진짜 든든하다

-와 대처갑이다 진짜.. 백화점에 환불하러 갈때 데리고 가고 싶음ㅇㅇ

-왜 그렇게 용도 소소하냐고ㅋㅋㅋ

-저런 얼굴이면 백화점을 환불해줄듯

*   *   *

기자 쇼케이스를 끝내고 곧장 회사로 왔다.

명목은 내일 K-Net의 음방을 준비하기 위함이었지만 사실 연습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생들 했어.”

매니저들이 그 동안 소원했던 초밥을 휴게실로 가져다주었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음식이 아니었다.

“리혁아.”

“왜요.”

“뭔 새로고침을 1초에 두 번씩 하냐.”

“한 번 한 거예요. 손이 떨려서 두 번 눌러진 거지.”

리혁이가 손을 들었는데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다들 마찬가지였다.

비주도 젓가락으로 집은 초밥을 떨어뜨리고 있고, 우리 막내는 아예 비닐장갑을 낀 채 집어먹고 있었다.

“너희 왜들 그렇게 떨고 있냐.”

…라고 하면서 식사 전 홍삼을 쭙쭙 들이키고 있었는데, 그만 홍삼이 입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이 달달 떨렸다.

동생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날이 추워서 그런가 봐.”

“…휴게실 온도 27도래요. 형.”

“흐흠, 차트를 볼까.”

현재 시각 6시 55분.

우리 모두 초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곧 7시.

실시간 차트가 갱신될 시간이었다.

“홍보팀 분들 말로는 차트인은 분명 할 것 같대여. 지금 분위기도 엄청 좋고….”

“아냐.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아.”

“맞아. 언제부터 우리가 인기 그룹이었냐.”

“순위가 몇 위인들 그게 뭐가 중요해요. 그냥, 우리끼리 열심히 노력을….”

“리혁아. 그 새로고침 너무 정신없다.”

비주가 리혁이의 손에 젓가락을 쥐어주며 뭐라도 먹으라고 할 때, 나는 말없이 초밥을 흡입하는 이를 바라보았다.

“중현아, 어때? 우리 노래 잘 될까?”

“흐음.”

턱을 쓰다듬는 이의 모습에 막내가 질겁했다.

“아아, 잠깐만여. 중현이 형. 예감이란 단어는 금지예여.”

“으음.”

중현이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몰라?”

“네. 전혀 모르겠어요.”

다른 때처럼 ‘느낌이 좋아’ 이럴 줄 알았는데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녀석이었다.

그 말에 우리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예감 빌런이 처음으로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여서 당황하고 있었을 때, 막내가 호들갑을 떨었다.

“7시 됐어여!”

그 말과 함께 우리 모두 노트북 앞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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