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45화
벽에 걸린 시계가 정확히 7시를 가리켰다.
“…….”
7시가 됐어여! 하는 말에 모두 노트북 앞으로 모이긴 했지만, 아무도 섣불리 마우스에 손을 뻗지 않았다.
비주가 말했다.
“형이 클릭하는 건 어떨까요? 제가 들었는데 이런 건 운이 좋은 사람이 해야 된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리혁이가 끼어들었다.
“무슨 양자역학처럼 관측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는.”
“우주 형네 할머님이 해 주신 이야기인데….”
“아, 그.”
“리혁이가 나빴네.”
중현이가 한 마디 하고는 새우 초밥을 집어 먹었다.
순식간에 나쁜 놈이 된 누군가가 눈을 깜빡이는 동안, 우리의 핸드폰이 하나둘 울리기 시작했다.
톡과 메시지, 전화 등으로.
“이거 좋은 징조겠지?”
“몰라여. 막 애들이 톡 보내는데 으아아, 저 못 보겠어여.”
다섯이서 그런 촌극을 벌인 후, 결국 내가 차트를 갱신하기로 했다.
숨소리까지 들리는 긴장된 분위기.
나도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마우스를 딸깍 누르자 망고 차트의 실시간 차트가 [19:00]로 갱신이 됐다.
“오, 역시 TNT가 있네요.”
중현이 말대로 차트 1페이지는 TNT의 컴백 리패키지 앨범으로 가득했다.
희뿌연 연기로 된 ‘?’ 마크가 그려진 검은 표지.
1. TNT - ‘?’ (Question)
2. 차우현 - 시간 관리 (공허의 왕좌 OST)
3. TNT - To do, or Not To do
4. TNT - 백(白), 야(夜)
5. TNT - 너라는 낱말은
드라마 OST를 사이에 둔 채, TNT가 차트에 수록곡을 줄 세우고 있었다.
비주가 가리켰다.
“맨 아래부터 훑어봐요. 형.”
“그래. 그러자.”
내가 차트를 맨 아래로 죽 내렸다.
우리는 100위부터 차트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 아.”
중간에 나타난 ‘Something’을 보고 리혁이가 내지른 비명에 잠시 놀라기도 했지만 이해했다.
2월에 나온 노래가 11월 실시간 차트에 있는 모습은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됐다.
“나와라. 나와….”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스크롤을 올렸다.
90위권에 없고.
80위권에도 없고.
70위권에도… 없었다.
죽 위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나오지 않았다.
30위쯤 이르렀을 때, 내가 말했다.
“혹시 보이지 않더라도 실망을 하….”
“올려요. 형.”
“솔직히 우리가.”
“올려요!”
“예에… 올리겠읍니다….”
하지만 20위권에도 우리의 노래는 없었다.
“…….”
공기를 타고 감추지 못한 실망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솔직히, 우리가 예상했던 수치는 70위권이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그 정도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혹시나 해서 20위권까지 살폈지만 없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았다.
바로 우리 노래가 차트인에 실패했다는 것.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우리 할머니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실시간 100위 안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묻겠지만….
정말 어렵다.
거대 기획사와 달리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 그것도 신인이 차트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일이었다.
솔직히 어디든 이름만 보여도 환호를 하려고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우리 이름은 없는 모양이다.
“형. 포기하지 말고 더 올라가 봐요. 위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 한 번 보자.”
비주가 다독이는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쭉 올렸다.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쭉쭉.
바로 그때.
“어어…! 어씨! 어! 잠깐!”
리혁이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화면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잔뜩 벌게진 녀석이 ‘꺼어…! 끄!’ 하면서 말을 못하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중현이가 해석해 주었다.
“거기, 그 10위권을 보래요.”
“10위권?”
그리고 리혁이의 말대로 10위권으로 올렸을 때, 없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10위에 떡하니 적힌 이름이 보였다.
TNT의 두 노래 사이에서 눈에 확 띄는 빨간 표지가.
“…어?”
8. 고구마 트리오 - 그대 참 못생겼어요
9. TNT - 봄봄
10. 뉴블랙 - Masquerade
11. TNT - 이 우주의 끝에서 너를 봐
그 순간, 시간이 정지했다.
미쳤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미쳤다.
정말 미쳤어.
모든 게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비주가 놀라서 나무젓가락을 떨어뜨리는 소리.
놀라서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소파에 쓰러지는 리혁이와 그걸 받쳐주는 중현이.
꽤애액 소리를 지르는 빨간 고무 오리.
지호가 벌떡 일어나면서 플라스틱 컵에 담긴 된장국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방으로 국물이 튀었을 때.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와! 와! 이거…! 이.”
막내가 당황해하는 동안, 정신을 차린 리혁이가 말했다.
“어, 얼른 캡처해 놔요. 나중에 전산 오류였다고 내려갈 수도 있잖아요. 일단 캡처부터 해요.”
“그… 그래, 캡처하자.”
“형! 형들! 이거 뭐예여? 우리가 10위? 아니, 10위가 왜 10위, 아 말 꼬여.”
곳곳에서 다채로운 개판이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불현듯 말없이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혹여 꿈은 아닌지.
1분 동안 초당 3.5회의 새로고침에도 아무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났을 때.
“와…….”
우리 모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입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물어졌다. 목 근육에 경련이 일더니 온몸에 소름이 쫙 퍼졌다.
닭살이 손끝부터 발끝까지 솟아올랐다.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양쪽 뺨을 파르르 떨면서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거 진짜일까.
잠시 동안 서로를 바라본 후.
“와아아…!”
다 같이 일어나 어깨동무를 하고 방방 뛰었다.
하도 함성이 커서 다른 사무실에도 들릴 게 뻔했지만, 지금만큼은 그게 뭐 대수냐 싶었다.
우리가 대박이 났는데.
아드레날린이 전신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한참 동안 방방 뛰었다.
“엄마, 엄마랑 아빠한테 전화를 해야겠어요.”
“나도 여동생한테….”
“전 부모님이랑 형한테 해야겠어요.”
“형! 친구들이 다 축하한대여. 하핫. 길채경 아까부터 완전 입 다물고 암말도 안 하구….”
저마다 폰을 쥐며 한 마디씩 하는 동안, 나도 핸드폰을 꺼내 들고 침을 삼켰다.
김덕순 여사에게 이 낭보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번 앨범 대박 났다고.
그 말을 해주려고 스마트폰을 켰을 때, 다른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악마]
석환 형이었다.
하지만 내가 전화를 받는 순간.
“여보세….”
“우주야!”
수화기와 수화기 밖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리베이터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뛰어온 듯, 우리 수학귀신이 휴게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얘들아, 너네 이번에 음원….”
“봤어. 형.”
“너희, 너희…….”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말을 더듬는 형을 향해 내가 말했다.
“형도 이리로 와. 우리랑 으쌰으쌰하자.”
“어, 그래야겠다. 나 지금 너무 얼떨떨하고,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어우, 참 이게….”
우리 모두 일어나서 석환 형을 반길 때.
“으허어억!”
바닥에 엎어진 된장국을 밟고 석환 형이 엎어졌다.
아니, 엎어질 뻔했지만 내 몸이 먼저 움직여서 붙잡아 주었다.
“어, 고맙다. 야.”
석환 형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
“잠시만, 형. 우리 감정 좀 잡고.”
동생들과 함께 눈을 마주치고는 1초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매니저를 우리 사이에 끼고는.
“와아아아…!”
다 같이 방방 뛰고.
“와아아아……!”
또 한 번 방방 뛰었다.
* * *
『 Five Colors : The Red (2014) 』
- 뉴블랙
- [★★★★☆]
드디어, 색(色)을 다룰 줄 아는 그룹이 나타났다.
흔히 색을 통해 앨범의 컨셉을 표현하는 것은 기획사들의 고리타분한 장사 수법이지만, 뉴블랙은 그것을 해냈다.
다채롭고 능수능란한 붓 터치로 성공시킨 것이다.
멤버 우주가 직접 프로듀싱을 맡은 미니 1집은 그 짜임새가 특별하지는 않지만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의 미묘한 줄타기를 성공시켰다. 양쪽에 속해 있지 않음에도 그 개성적인 색을 드러낼 수 있음을….
(중략)
…아직 데뷔한 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들의 잠재성이 간만에 필자를 즐겁게 한다.
by 대중음악 평론가 황호철
* * *
PM 07:00
-역시 TNT.. 차트 1위부터 ‘줄 세우기’
-TNT 컴백 속 뉴블랙은 ‘선방’, 세레니티는 ‘글쎄’
-[포토] 처음부터 강렬한 댄스 브레이크, TNT 컴백쇼 태현 ‘내가 바로 춤신춤왕’
-[연예IN] 지금부터 이들의 색을 주목해야 한다 … ‘뉴블랙’의 발견
-뉴블랙, 이례적인 차트 강세 “뮤비 선공개가 신의 한 수”
PM 10:30
-뉴블랙 신곡 ‘Masquerade’, 이대로 1위까지…?
-덤덤한 ‘TNT’, 활짝 웃는 ‘뉴블랙’, ‘세레니티’는 엉엉
-오후 10시 기준 ‘8위’까지 올랐다.. 데뷔 5개월 만에 뉴블랙 ‘대박’
-‘Masquerade’ MV 공개 24시간 만에 ‘50만 뷰’, 소속사 “100만 달성 시 감사 메시지 공개할 것”
-[주식톡톡] 배우 트레이드에 이어 보이그룹까지 대박..? ‘레몬 엔터’ 연말 상장 계획 있나?
* * *
군산시.
투두둑-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바다로부터 넘어온 희뿌연 구름이 몸을 부르르 털면서 물안개가 사방에 피어올랐다.
지나가는 버스가 보도에 물을 튀기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는 시내.
어디선가 나는 맛난 기름 냄새에 김덕순 여사는 동네 튀김집에 들렀다.
평소 알고 지내던 상인이 종이 봉지를 건네며 말했다.
“비가 많이 오죠?”
“못 살겄어. 어제부터 비가 하루 죙일 와 가지고. 어휴, 저 비만큼 돈이 쏟아지면 좋겄네.”
“그러게 말이에요.”
“그려. 번창혀.”
그런 인사와 함께 김덕순 여사는 튀김집을 나섰다.
한 손에는 고양이 사료가 담긴 마트 봉지, 다른 손에는 튀김 봉지를 들고 있는 채였다.
그녀는 자신을 발견하고 미행을 하는 동네 고양이들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이거 우리 나비 거여. 너희한테는 국물도 없으니께 그런 줄 알어.”
냐아아-
비 오는 날이라 그런 것인지, 고양이들이 근처를 맴돌면서 구슬피 우는 소리에 김덕순 여사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려, 그럼 요것 좀 줄 테니까. 이게 딱 마지막이니까, 다음에는 안 주는 거여. …옘병, 쳐다보지도 않고 처먹는구먼. 그려, 잘 먹고 잘 살아라.”
옹기종기 먹기 시작하는 고양이들을 보며 김덕순 여사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러면서 가게로 돌아갔다.
낮이어서 그런지 회색빛 하늘에 눈이 시려웠다.
“날씨 참 지랄 맞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나왔다.
손자에게 들은 좋은 소식 때문이었다.
무슨 순위가 높다고 하던데.
뭔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좋은 일인 듯싶었다.
어젯밤에 영상 통화가 와서 받았더니, 손자와 네 놈이 ‘사랑해여! 김덕순!’하며 그 난리를 떨었으니까.
미쳤냐고 했더니 꺄르륵 웃는 게 정말 미친 것 같았다.
【 단톡방 : 뒷바라지 모임 】
중현아빠 [정말 아름다운 밤이네요.. ㅎㅎㅎ!!]
중현아빠 [와인한잔 기울이고 싶은 밤입니다]
중현아빠 [다같이 화이팅 해볼까요?]
왕현탁회장입니다 [좋지요,,]
왕현탁회장입니다 [화!]
중현아빠 [이]
비주엄마 [팅!! 너무 좋네요..!! 이 기분..!]
비주엄마 [우리 아들 사랑한다..!]
추석 때 결성된 단톡방도 부모들의 기쁨으로 가득했다.
순위가 찍힌 사진과 함께 기사 링크가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웃음 가득한 이야기가 오가고.
손가락이 느려서 [좋ㅇ네요] 정도만 쳤지만 김덕순 여사도 그 마음은 같았다.
딴따라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르지만 4년 전에 ‘할머니, 나 데뷔한다!’ 했던 때 이후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손주였다.
우주 [할무니~]
우주 [이번 2집 앨범이랑 같이.. 내 거 포토카드 10장 보낼게ㅎㅎ]
나 [다른애들것도 보내]
우주 [헤이 덕순]
우주 [과욕은 금물이야]
우주 [나만 덕질하도록 해]
나 [미친놈.]
답장을 할 때마다 제자리에 멈춰 서서 손을 떠듬떠듬 움직였다.
나 [오늘도 잘되었냐?]
우주 [그럼그럼]
우주 [최고야 이번에]
우주 [대표님이 내려와서 껴안아주시려다가 넘어졌어]
나 [뭐라는거]
우주 [된장국 치웠어야 했는데..]
갑자기 헛소리를 시작하더니 ‘오늘 케이넷 생방이니까 꼭 봐’라는 말을 남기며 손자가 사라졌다.
카메라에 찍히는 연습하러 간다나.
‘거봐, 스님 말대로 대운 들어왔지?’ 해 줬어야 했는데, 괜히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한편, 동네를 걷던 김덕순 여사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느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때문이었다.
‘이거…….’
손자의 목소리였다.
궁금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손님 없이 혼자 앉아 있던 카페 주인이 반색하며 반겼다.
“어이구, 우리 회장님 오셨네. 왜 오셨어요?”
“노래 때문에 들어와 봤어.”
“노래요? 아… 이거. 혹시 밖에도 나가고 있어요? 그냥 계속 듣고 있었는데….”
스피커를 꺼야겠다고 하는 주인에게 그녀가 손을 저어 보였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래가 그렇게 좋은 겨?”
“어제 카페에서 인기 차트 틀어 놓고 있었는데 유독 손님들이 자꾸 노래 제목을 묻더라고요.”
“그려?”
“예, 그러다가 노래가 좋아서 그냥 듣고 있어요.”
한 차례 끝난 뉴블랙의 노래가 다시 울리면서 김덕순 여사는 웃음을 머금었다.
좋았다.
취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들을 때마다 귀에 찐득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다.
자꾸 머릿속으로 떠오르고.
‘정말 뭐가 될라고 그러는 건가.’
김덕순 여사는 멀찍이 서울에서 웃고 있을 손자를 떠올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우주가 만들었다는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았다.
* * *
꿈같던 하루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느낌이다.
어제는 회사에서 하루 종일 만나는 직원들마다 ‘축하해!’ 하면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그러면서 사탕이나 초콜릿을 하나씩 주셨는데, ‘매니저들 몰래 숨겨두고 먹어’라고 말씀하셨다.
상암동의 K-Net 사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만나는 동료 가수들마다 축하한다며 여기저기서 인사를 건네곤 했다.
세레니티도 그 속마음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밝은 미소와 함께 노래 잘 들었다며 인사를 해 주었다.
TNT는 작년 시상식의 공정성 문제로 K-Net과 사이가 나빴던 까닭에 나오지 않았지만, 태현이가 어젯밤 축하한다며 한 차례 긴 메시지를 보내 준 터였다.
그래서 나도 축하한다고 답장을 보내 주었다.
한편, 5개월 만에 찾아온 음악방송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시설은 익숙한데 사람들이 바뀌었다.
리허설을 끝내고 올라온 복도.
낯선 이들이 우리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서 인사를 했다.
“엇, 안녕하세요! 판타니스입니다! 선배님!”
“엇….”
오히려 우리 동생들이 더 당황했다.
선배님이라니.
일단 우리도 배꼽인사를 하고는, 데뷔한 지 딱 일주일 됐다는 분들에게 웃으면서 정정해 주었다.
“저희 선배 아니에요. 같은 연차고 같은 신인이니까 다음부터 서로 편하게 인사해요.”
“헛. 네! 알겠습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쭈뼛쭈뼛한 6인조 보이그룹이 우리를 스쳐가더니 또 다시 ‘안녕하세요!’ 하며 지나가는 청소 아주머니에게 꾸벅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낙엽만 봐도 인사를 할 듯한 모습이라 웃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비주가 키득거렸다.
“형. 선배 아니라고 하면서 되게 선배처럼 말했어요.”
“…내가?”
아닌데.
“맞아여. 되게 자상하게 웃으면서 그랬어여. ‘즈히 슨배 아니에여~’ 이러면서 아아…!”
“푸하하아… 엇,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우리도 지나가던 선배 가수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도 큰 행사 때 오다가다 마주친 얼굴들이 있었기에 금세 방송국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여오오….”
“…….”
“안녕하세요. 오. 됐당.”
복도를 걸으며 말투를 연습하는 막내의 모습에 우리가 눈을 뻐끔거렸다.
“지호야, 뭐하니?”
“아, 곧 있으면 올해도 지나고. 이제 후배님들 생길 것 같은데, 진중한 말투를 고민해 보고 있어여. 요.”
“흐음.”
우리 모두 서로를 바라보고는 랩하듯 막내를 따라해서 ‘그래여, 요?’하자 막내가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을 보듯 쳐다봤다.
“놀리지 마여. 진지하다구여. 어제도 인터넷에서 댓글 보는데….”
“그런 말 신경 쓰지 마, 지호야.”
비주가 말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양한 거니까.”
“그런 거겠져? 아니, 기사 읽을 때마다 막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캡처해 놔. 왕지호. 내가 추적해서 대신 복수해 줄 테니까.”
“좋은 생각이야. 리혁아. 갈 때 중현이도 같이 데려가고.”
“저 어디 가요, 형?”
중현이의 물음에 우리 모두 웃었다.
확실히 예상외의 성적을 두고 TNT와 비교하는 기사가 나온 게 화근이었다.
하룻밤 새 악플이 확 늘었다.
분명 팬덤의 일부겠지만,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다 보니 그 일부가 어지간한 팬덤보다 컸다.
당분간 애들 댓글 못 보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칸막이가 쳐진 신인 대기실로 들어갈 때,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악마 [너희 스케줄 픽스됐다]
석환 형의 메시지였다.
대리로 승진한 민기 형과 신규 매니저 도원석 씨가 음방을 맡는 동안, 우리 실장님은 열심히 영업을 뛰고 있었다.
“뭐예요, 형?”
“석환 형이 우리 11월이랑 12월 스케줄 확정된 거 보내 줬어.”
“오. 저 볼래여.”
동생들이 내 곁으로 모인 가운데, 핸드폰 메시지에 이미지 파일 두 개가 짧게 떠올랐다.
“…어?”
빼곡한 글씨를 보며 우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