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0)화 (15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0화

주말이 지나고 ‘꼬마 마녀의 대모험’ 배급사로부터 감사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리 덕분에 입소문이 돌아 영화 티켓 예매량이 상승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본래 예상보다 더 큰 수익을 기대해 봐도 될 것 같다나.

“너희 덕분에 살았다고 전해달래.”

석환 형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 하나 살린 셈 치라고. 너무 고마워서, 선물 꼭 보내겠다고 하는 얘기를 해서 말리지도 못했다.”

“됐다고 말씀 드려. 별일도 아닌 걸.”

그날 우리가 한 일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준 게 운 좋게 화제가 됐을 뿐.

이런 결과물에 우리 실장님은 들뜬 듯했다.

“너희 지난 주말 사이에 홍보 대사만 몇 개 들어온 줄 알아?”

“몇 개인데?”

“54개. 총 54개 단체에서 홍보 대사 위촉 문의가 들어왔어. 스포츠 쪽도 있고, 음식 쪽도 있고, 자선단체도 있고.”

그러면서 리스트를 읊어주었다.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지만 드문드문 알고 있는 곳도 있었다.

우리를 홍보대사로 섭외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우리의 태도 때문일 거라고 했다.

보통 연예인에게 홍보 대사나 광고를 맡길 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실제 홍보에 제 역할을 하느냐다.

청바지 광고를 찍은 다음에 다른 브랜드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거나.

몇 억을 받고 홍보대사가 되기로 했는데 해당 분야에 대해 관심도 없거나 불성실한 태도로 돈만 받아간다거나.

그런 상황이 비일비재한 연예계에서 고작 한두 시간짜리 행사를 하겠다고, 즉석에서 연극을 할 만큼 캐릭터 공부를 해 온 우리가 마음에 들었다는 모양이었다.

석환 형이 종이를 주며 회사 내부에서 검토하기 전에 마음에 드는 분야가 있는지 체크해 보라고 줬다.

곧바로 다들 눈을 빛냈다.

“야, 왕지호. 청소기 없냐, 청소기.”

“잠깐만 기다려여. 중현이 형이랑 먹을 거 있는지 체크해 보고 있단 말이에여. 흐이, 브로콜리… 이건 제 몸에 칼이 들어와도 안 돼여.”

“칼이 들어오면 해야지. 지호야.”

“어? 리혁아, 여기 공기 청정기 있다.”

“진짜요? 그거 얼른 동그라미 크게 해놔요. 빨간색으로.”

동생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리스트를 보며 좋아하거나 잘할 수 있는 것들에 동그라미를 쳤다.

치고 보니 대부분 먹을거리였다.

종이를 받아든 석환 형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너네 참 먹는 거 좋아해.”

“그런 의미에서 저녁에 햄버거 같이 콜?”

“안 돼. 바빠.”

“요즘 들어서 엄청 바쁘네.”

석환 형이 종이를 서류가방에 넣으며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너희가 바쁠수록 더 바빠지는 게 내 일인걸. 내가 한가해지면 너희가 몹시 슬퍼질 거야.”

“그건 그거대로 무섭네.”

요즘 들어 곳곳에 영업을 하러 다니며 제비처럼 스케줄을 물어오는 매니저님을 보며 웃었다.

그러곤 본래 용건을 떠올렸다.

“참, 우리한테 선물 보내주신다고 한 것 말이야. 혹시 뭐 말이 오간 게 있어?”

“글쎄다. 아마 녹화장에 밥차나 커피차 형식으로 보내주려는 것 같던데. 물론, 영화 포스터 앞에서 인증샷 찍어서 다시 한 번 홍보해 주는 식으로.”

“역시 세상에 완벽한 공짜는 없네.”

내가 물었다.

“혹시 팬분들 앞으로 보낼 수는 있나?”

“팬들?”

“응, 방송 스탭들 먹는 것보다는 우리 수플레들이 먹고 마시는 게 훨씬 더 좋을 것 같아서. 미니 팬미팅 하는 날에 받으면 팬분들도 먹고, 우리도 그 앞에서 홍보용 사진 찍을 수 있잖아.”

“맞아요.”

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사녹할 때마다 유심히 관찰했는데, 콧물 훌쩍거리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확실히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찬바람 쌩쌩한 바깥과 실내 녹화장을 오가다 보니 그 온도차에 괴로워하는 팬들이 많이 보였다.

코 훌쩍이는 소리 들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동생들과 나중에 돈 엄청 벌면 방송국 근처에 수플레 전용 대기실이라도 만들자는 농담을 할 만큼.

석환 형은 곧바로 그 의견을 청취하고는 곧바로 솜씨 좋게 일을 처리했다.

딱 한 가지만 남긴 채.

“혹시 원하는 메뉴 있으면 알려달래.”

“커피라든가, 그런 거?”

“응, 그런 거.”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잠시만.”

동생들과 속닥거리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내 입에서 나온 단어에 석환 형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   *   *

얼마 후 SNS.

@Souffle_from_Hell

(사진)

공방을 나왔는데

어찌 하여

어묵탕이 있는 것이냐

보배롭구나

#시조로_기분_표현해봄 #옆에_떡볶이

팬들이 종이컵에 오뎅 국물을 마시며 ‘으어’하는 소리를 내고 있을 때.

모니터 너머에서 사진으로 떡볶이와 어묵탕의 자태를 감상하는 수플레들은 침을 꼴깍였다.

-아니 왜 내가 안 갈 때 나와ㅠㅠㅠㅠ

-모니터 속으로 들어갑니다

-ㅋㅋㅋ현장인데 아까 엄청 웃었어요. 처음에 애들 얼굴 새겨진 종이컵에 담는 거 멈칫멈칫하다가 한 입 먹고 다들 폭풍흡입..

-미안해 얘들아.. 지금은 국물이 더 급해

-다들 음식사진만 올리지만 저거 영화사에서 보내준 거예요! ㅋㅋㅋ 지난 번 홍보 때문에 고맙다고 보냈나 봐요.. 이따 애들도 미니팬미팅 때 와서 사진 찍을거래용

곧이어 게시판이 떡볶이의 아름다운 자태로 가득해지는 동안 때마침 올라온 지호의 셀카는 완전히 묻혔다.

이윽고 자유게시판.

[여러분! 저 셀카 올렸어요!]

이내 10분에 한 번 꼴로 ‘저 셀카!’ 셀카!!!’ 같은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을 즐기듯 팬들의 무반응에 막내의 게시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저.. 사진 올렸는뎅..]

[혹시 고장났나?? 저 안 보여요?????]

[이쯤에서 비밀 공개..!! 우주 형이 팬카페 염탐할 때 표정 : へ( ̄∇ ̄へ)]

[뭐야 우주 형이 글 보인대요!!!!]

[여러분이 제 셀카에 관심을 안 가지니 제목으로 소통을 할…]

-[Re] ㅋㅋㅋㅋㅋ 지호야 달게 달게

그제야 팬들이 웃으면서 오늘 염색 색깔이 잘 빠졌다며 자랑하는 지호의 셀카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을 때.

왕지호는 설레는 마음을 품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댓글 14라는 따끈따끈한 숫자를 보며 클릭을 할 때였다.

[권한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눌렀다.

[권한이 없습니다]

[정회원으로 등업해주세요~~^^]

눈을 깜빡이다가 쪽지함을 보니 팬카페 관리자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규정 위반(사유 : 연속 5개 이상 게시글 도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왕지호는 고개를 홱 돌렸다.

팬카페 관리자 중 하나인 선우주가 옆자리에서 우아한 표정으로 바나나우유를 홀짝이고 있었다.

“…….”

언제가 될지 몰라도 반드시 복수할 거라고 다짐했다.

*   *   *

-TNT 2주 연속 전 음악방송 1위

-12월 1주, ‘이변은 없다’.. TNT 2주 연속 ‘4관왕’

-[가요 핫!이슈] 음원차트 ‘뉴블랙’ 주간 3위.. 이번 달도 흐름 이어가나

TNT가 1위를 다 휩쓸어간 2주차와 마찬가지로 그 흐름을 이어나가고 있는 3주차.

PBS 예능국의 백 피디가 태블릿 PC를 보며 입술을 뗐다.

“판세가 희한하게 돌아가네요. 음방에서는 TNT가 계속 1위를 차지하는데 음원 차트 순위는 계속 떨어지고. 반면에 뉴블랙은 음원 차트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고.”

“예, 대중성 측면에서 저희 아이들이 인정을 받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석환 실장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피디가 태블릿 PC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뉴블랙에 관한 최신 소식을 훑을 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전주가 들리는가 싶더니, 카페 스피커를 통해 뉴블랙의 Masquerade가 흘러나왔다.

백 피디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출근할 때 라디오에서 한 번 들었는데. 요즘에 어딜 가든 뉴블랙 노래 한 번씩은 듣네요.”

그가 말을 이었다.

“정말 아쉽겠어요. TNT랑 겹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모든 음방에서 1위 순회공연하며 돌아다녔을 텐데.”

“그래도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화제성 측면에서는 더 도움이 되는 면도 있고요.”

“그건 그렇죠.”

피디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TNT와 뉴블랙의 활동 3주차인 12월 1주차가 되면서 서서히 이전과는 다른 점을 보이고 있었다.

음원차트에서 5위 안에 머물러 있는 뉴블랙과 달리 TNT의 음원은 하락해서 현재 10위에서 20위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때문에 뉴블랙을 압도적으로 따돌렸던 2주차와 달리 3주차에서는 슬슬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그 간격이 100미터였다면 지금은 10미터 정도로.

심지어 다음 주에는 보다 더 좁혀질 예정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음원점수에서 뉴블랙이 TNT를 여유롭게 따돌리면, 그 나머지에서 팬덤이 기를 쓰고 만들어낸 점수로 TNT가 1위를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있어서 TNT 팬덤 내부에서도 이제는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는 한편, 윤석환 실장의 말처럼 이렇게 음악방송에서 막상막하를 이루는 구도는 화제성 면에서 큰 이점이 있었다.

비록 1위는 아니지만 압도적인 정상급 가수와 매치를 벌이면서 올라가는 뉴블랙의 이름값이었다.

결국에 내가 누구와 사귀냐, 누구와 어울리냐가 급을 결정하는 곳이 연예계다.

그런 까닭에 평소였다면 잘나가는 신인1 정도로 인식되었을 뉴블랙이 TNT와 대결구도로 엮이면서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미 아이돌 팬덤의 머릿속에 뉴블랙은 6월 달에 라이벌 구도로 묶였던 스트릿 보이즈와는 다른 카테고리에 있었다.

피디가 그럼에도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1위 한 번 하면… 이래저래 방송 홍보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한데.”

“저희 측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저야 뉴블랙이 얼마나 잘하는지 이야기도 많이 듣고 무대도 직접 봤지만 윗선에서는 미심쩍어 하거든요. 아이돌도 얼마나 유명하고 쟁쟁한 그룹이 많은데,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그룹을 경연 프로그램에 내보내냐고요.”

백 피디는 1월에 녹화를 시작하는 PBS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연출자로서 뉴블랙을 섭외한 인물이었다.

쟁쟁한 가수들이 섭외하는 가운데 아이돌 한 그룹을 섭외하려고 남겨둔 자리.

그런 만큼 윗선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는 듯했다.

커피를 홀짝이던 피디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에 있는 그 홍콩 KMA, 거기는 안 나가는 거죠?”

“초청을 못 받았어요.”

“뉴블랙이요?”

“예, 장소원 씨도 개인 일정 때문에 불참이기도 하고.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못 올려서요. 저희가 11월 컴백이라 집계기간에 못 들어갔어요.”

“저런….”

“대신 다음 주에 망고 차트 어워드에 나갑니다.”

“잘됐네요. 뭐든 지금은 화젯거리가 하나 생기는 게 소중한 시기니까.”

좋은 무대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덕담과 함께 녹화를 두 달 가량 앞둔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내 미팅이 끝난 후.

“그럼 들어갈게요.”

“예, 살펴가세요.”

떠나는 피디를 배웅하던 윤석환은 자리를 치우고는 커피를 들고 나섰다.

그러다 문득 발걸음이 멈춰졌다.

PBS 사옥 내부에 있는 카페를 둘러보며 그가 피식 웃었다.

올해 초반에만 해도 피디나 작가들을 지겹게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굴었던 곳인데, 이제는 앉아서 피디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할까.

뉴블랙 멤버들과 매니저들이 찍힌 폰 잠금화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을 때.

“어? 뉴블랙 실장님 맞죠?”

누군가 그를 붙잡았다.

얼굴을 확인한 윤석환이 곧바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예, 안녕하세요. 피디님.”

“이야. 요새 노래 잘나가던데요? 이제 이러다가 얼마 안 가 더 빵 뜨겠어요.”

친근한 척 이야기를 하는 이를 보며 윤석환이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뉴블랙을 야외 행사에 불러놓고는 한참 동안 대기시킨 후에 출연을 취소시킨 작자였다.

뉴블랙이 앞으로 더 잘나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붙잡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는 이에게 윤석환은 맞장구를 치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참, 명함 하나 있어요?”

“여기 있습니다.”

지난번에 줬을 때는 ‘예, 뭐.’ 하면서 주머니에 대강 쑤셔 넣던 이가 반듯이 받아들고 떠나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참, 별일이 다 있네.’

내년에도 부디 이런 흐름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바깥에 주차된 차량으로 다가갈 때였다.

핸드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딩동-

메시지가 새로 도착해서 눌렀다.

우주 [석환아]

우주 [무엇을 하는 중이냐]

…석환아?

우주 [ㄴㅇㅁㅎㅁㄷ]

우주 [이거 나 아냐 형 진짜 아님]

우주 [지호가 팬카페 복수한답시고 내 폰 가지고.. 아 진짜]

우주 [암튼 우리 석환님 일 너무 잘해 짜릿해 늘 새로워 최고야]

그와 함께 와플과 함께 커피 음료 선물이 도착했다.

방송국에서 살짝 쳐졌던 기분이 살짝 업 되는 것을 느끼면서 윤석환은 차문을 열었다.

*   *   *

12월.

바야흐로 연말 결산의 시간이 다가왔다.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달이겠지만 가수들에게 12월은 특히 각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올 한 해의 성과를 확인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발산하는 시간이라고 할까.

어워드만 두 개에 연말무대만 세 개.

특히 신인들에게는 그중 하나에만 출연해도 ‘너 올해 진짜 성공했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중 네 곳에 초청을 받았다.

“세 곳 모두 다…?”

-그래, 인마. PBS 말고 다른 두 곳은 너희 본 무대도 할 거야.

나가서 썸씽만 부르기로 된 PBS 연말가요제와 달리 다른 두 방송국에선 개인 무대까지 보장을 받았다.

보통 대형 기획사들이 아닌 중소 기획사에서는 어지간히 성공을 해도 나가기 힘든 게 연말 가요무대였다.

왜냐하면 대개 신인은 많아야 다섯 팀 정도 올라가는데 올해 데뷔한 아이돌 그룹만 64팀.

이중에서 4대 기획사의 신인들을 제외하면 남는 자리는 두 개 정도였는데, 그중 한 자리가 우리였다.

“우와아아-!”

한창 어워드 무대 연습을 하다 쓰러져 있었는데, 소식을 듣자말자 되살아난 미이라처럼 동생들과 어깨춤을 췄다.

그러다가 금세 탈진해서 쓰러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런 소식에 힘을 얻으며 다가올 어워드 무대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3일 홍콩에서 열린 KMA에서 TNT가 대상을 타고, 투표에서 1위였던 스트릿 보이즈 대신 블링크가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이야기에 여기저기서 소식이 들려올 때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에는 한계가 있어서 할 수 있는 건 잠을 줄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케줄을 마치고 나면 트레이너 쌤과 자정부터 레슨을 하고, 그 뒤 새벽에 연습을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매일 새벽을 불사지르며 기다렸던 12월 11일이 다가왔다.

“형, 저 어때요?”

어워드가 열리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으로 가는 차량 안.

핸드폰으로 얼굴을 비추던 비주가 물었다.

“다크서클 좀 많이 가려진 것 같아요?”

“응. 하나도 안 보여. 커버 잘 됐다.”

비주가 안심할 때, 막내가 뒷자리에서 얼굴을 쏙 내밀며 말했다. 

“흐아… 저 며칠 사이에 늙은 거 봐여. 초탱탱한 피부였는데.”

“는데?”

“오늘은 그냥 탱탱 정도예여.”

없애버릴까.

가뜩이나 피부과 갈 때마다 쌤들이 ‘우주… 그 좋은 피부, 그런 식으로 관리할 거야?’ 라는 말을 듣는 터였다.

지호가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저 진짜 오늘 어워드 끝나고 돌아오면 꿀잠 잘 거예여. 우리 집에 돌아가면 몇 시쯤 되지.”

“열두 시.”

“내일 뮤온이니까 세 시 반에 일어… 으아, 벌써부터 꿀잠 계획 어그러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아아! 으아!”

“그만 소리 쳐, 왕지호. 나 골 울려….”

옆자리에 있는 리혁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방방 뛰는 우리 막내와 달리 저질 체력인 우리 메인보컬은 거의 좀비 수준이었다.

아마 차에서 내리면 방긋방긋 비즈니스 미소를 짓겠지만.

“오, 거의 다 왔어요.”

중현이가 멀찍이 보이는 건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히터를 적게 틀어 추운 차량 안에서 우리끼리 으아아 소리를 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곧 있으면 어워드 개막 전 행사인 레드카펫을 밟을 예정이었는데,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나 [할머니 채널 고정]

나 [고정]

고정만 연속으로 보냈더니 답이 돌아왔다.

할머니 [옘병]

할머니 [너나고정해라]

할머니 [사내가배포가 커야지,,]

할머니 [좁쌀같은]

동생들한테 보여줬더니 다들 빵 터지면서 웃었다.

기다려라. 김덕순.

좁쌀이 아니라 흰쌀 같이 하얀 얼굴을 보여줄 테니.

우리보다 앞 순서로 레드카펫을 밟은 틴스피릿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현장 요원이 차량을 통제했다.

그 사이 우리끼리 의논을 했다.

“내가 제일 먼저 내리고 싶다. 손.”

“…….”

“왜 나만 바라보는 건데.”

몇 차례의 옥신각신 끝에 결국 내가 제일 먼저 내리는 것으로 합의를 마친 후.

현장 요원이 들어가라는 말을 하면서 차량이 움직였다.

“으아아아!”

우리끼리 손발을 흔들면서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힐 때.

“도착했어. 얘들아.”

선팅이 된 차량 창문 밖으로 모인 엄청난 수의 팬들과 카메라, 그리고 레드카펫이 눈에 들어왔다.

떨린다.

문이 열리기 전에 동생들을 돌아보다가 그만 웃고 말았다.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드르륵-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플래시 세례가 온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