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1)화 (15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1화

떨리는 마음을 안고 차에서 내린 순간, 온몸이 떨렸다.

추워서.

정말 더럽게 춥다는 말이 어울리는 날씨였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나온 날숨이 입김이 되어 시야를 가렸다.

쌩 하고 부는 바람이 정장 바지 사이로 흘러들어올 때마다 닭살이 돋았다.

숙소나 회사 근처였다면 온몸을 감싸고 아이고, 춥다, 추워했을 텐데, 눈앞에서 플래시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여기 봐주세요! 여기!”

“우주 씨! 우주 씨!”

“여기요!”

이 붉은 융단을 음미하긴커녕 눈이 멀 것처럼 터지는 빛에 적응하기 바빴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선두로 걸었다.

카메라가 포진한 맨 앞과 달리 중반부터는 일반 관중들이 많이 보였다.

목도리와 패딩, 마스크로 꽁꽁 싸맨 이들이 우리를 보며 팸플릿으로 입을 가리며 옆사람과 수다를 떨거나 폰카를 들어 찍었다.

지나갈 때마다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뒤에서 동생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돌아보니 나름대로 잘하고 있었다.

부드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손도 흔들고.

그걸 동시에 할 때도 있었는데 너무 떨려서 자기가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걸 보며 비웃을 수 없었다.

나도 똑같이 그러고 있었거든.

우리가 그러고 지나갈 때마다 아이돌 팬들이 꽁꽁 얼어붙었던 뺨을 씰룩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을 삼키는 한편 손을 흔들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레드카펫의 맨 끝에서 계단 두어 개를 밟은 후 협찬사의 로고가 그려진 ‘2014 MCA’ 포토월 앞에 섰다.

파바박-

수백 마리의 나방이 날갯짓하듯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곳곳에서 터졌다.

마이크를 든 MC석의 남녀가 우리를 손짓하며 불렀다.

-네, 뉴블랙 여러분! 얼른 이리로 와 주세요!

-정말 미남들이에요!

데이드림의 중국인 멤버 앤드루, 아나운서 정효진이 정장과 드레스 차림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중 후자는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예전 이천시 축제 때 사회자였는데 틴스피릿 지각 때 우리와 함께 고군분투했었지.

우리를 바라보는 표정이 반가워 보였다.

-정말 올해를 뜨겁게 달군 신인 보이그룹이죠! 오늘 신인상 후보로 지명을 받고 참석하셨죠?

-올해 신인 그룹 중 최단 기간 뮤비 백만 뷰 돌파, 썸씽부터 시작해서 음원차트를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앤드루가 유창한 한국말로 낯간지러운 칭찬을 하는 동안 저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뭔가 창피하다.

쪽지 시험에서 1등을 해서 기쁜데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와서 ‘여기 쪽지시험 1등이 있습니다!’하는 느낌이야.

실제로 우리가 한 일들이긴 한데 업적처럼 들리니 부끄러웠다.

곧바로 인터뷰가 시작되어 다행이었다.

저마다 다른 스타일의 정장을 가리키며 의상 컨셉이 뭐냐는 질문에 답도 하고, 노래의 포인트 안무를 보여 달라는 요청에도 응하고.

신인상 후보가 된 소감이 어떻냐는 질문에 답한 후 우리는 MC석을 내려갔다.

-네, 여기 뒤로, 아니 거기 가시면 안 돼요!

“비주야, 거기 아니야!”

“어, 아니에요?”

-저 뒤로 가셔야 합니다. 네에. 뉴블랙이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가는 비주를 내가 잽싸게 잡아 끌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 콧물 나와.”

“저두여.”

“나도 코 훌쩍이는 거 한참을 참았어요.”

안에 핫팩까지 넣었지만 영하 3도에 달하는 기온은 정말 너무, 진짜, 몹시, 추웠다.

“에취!”

결국 단체로 재채기를 하며 콧물을 훌쩍였다. 그렇게 MC석 뒤편으로 가는 동안 지호가 설레는 얼굴로 물었다.

“형들, 우리 기사 사진 엄청 잘 나왔겠져?”

*   *   *

같은 시각.

본인들이 카메라의 사각 지대에서 재채기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뉴블랙의 사진은 실시간으로 업로드 되는 중이었다.

-[포토] 뉴블랙, “으헤취!”.. ‘오늘 너무 추워요!’

-[포토원] MCA 참석 뉴블랙, 미남들의 반전매력 ‘으췌췌췌’

-[사진] ‘어멋, 루돌프 코 됐어요’ 뉴블랙 막내 지호

해당 기사 사진 헤드라인은 실시간으로 레드카펫 행사를 시청 중인 아이돌 커뮤니티 등지에 퍼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기자들 헤드라인 짓는거 미친거 같음ㅋㅋㅋ 재채기 소리 종류만 벌써 수십 개

-으췌췌췌 뭐냐곸ㅋㅋ

-진짜 귀엽다ㅋㅋ 뽀얀데 애들 뺨 발개져서 오들오들 떨고 있어

-막내 코 축축한거 왤케 시골 똥강아지같냐

-2222 ㅋㅋㅋㅋㅋ

-진짜 볼 때마다 다 귀엽ㅋㅋㅋㅋ

-대길이 친구 코밑 슥 문지르면서 머쓱하게 웃는 거 넘 웃곀ㅋㅋㅋ 그 웹툰 짤방이랑 찰떡

한편, ‘이러라고 입힌 옷들이 아닌데’ 하면서 스타일리스트 팀이 눈물을 삼키고, 윤석환 실장과 두 매니저가 헛웃음을 짓는 동안.

그중에서 화제가 된 의외의 움짤이 하나 있었으니.

-얘 이름!!!! 이르음!!!!

-뉴블랙 우주자너

-미쳤다 얜 국외로 수출해야 해

바로 인터뷰 도중 우주가 웃다가 코를 훌쩍인 사진이었다.

타이밍이 운 좋게 겹친 탓에 마치 코를 찡긋거리면서 웃는 듯한 옆모습.

금세 해당 gif 파일이 커뮤니티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다.

-코찡긋 얘 누구야????

-아이돌이야. 뉴블랙 우주. 최근에 주세한에 나왔어!

-허.. 요즘 아이돌에도 이런 미모가 있다니 놀랍

-ㅁㅣ남있다고 해서 헐레벌떡 들어옴

-요새 나오는 배우들보다 얘가 더 존잘같은데?

그리고 대기실에서 이런 반응을 태블릿 PC로 바라보고 있던 뉴블랙 멤버들의 시선이 한쪽에 향했다.

구석에서 눈을 감은 채 흐트러진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우주였다.

다들 코흘리개가 된 와중에 혼자 살아남은 리더에 대해 얄미움을 느끼며 물끄러미 바라볼 때.

“…….”

평소보다 힘을 준 메이크업에 절로 납득했다.

하얀 얼굴에 윤기 있게 빛나는 입술, 오똑한 콧대와 깊은 눈이 합쳐져 저절로 생긴 음영까지.

입체적인 얼굴이었다.

둥그런 이마부터 날렵한 턱으로 이어지는 곡선과 핏 좋은 수트가 어우러지니, 오히려 사진이 실물을 못 담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제야 ‘맞다, 우주 형 잘생겼지’ 하며 납득할 때.

눈을 뜬 우주가 생수병을 와인잔처럼 들어보였다.

뒤에서 폭죽이 터지는 어느 외국 영화에 나온 짤방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한 잔해. 우리 코찔찔이들.”

“…….”

얄미워도 너무 얄미웠다.

*   *   *

흔히 시상식은 ‘별들의 잔치’라고 불린다.

그만큼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참석한다는 뜻인데, 오늘 나는 누구보다 더 그 단어를 실감하고 있었다.

대기실에 잠시 들렀다가 무대로 갈 때까지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면면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현재 가요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걸그룹, 보이그룹부터 시상자로 참석한 유명 배우들까지.

이중에서 올해 데뷔한 신인은 우리 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마주칠 때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다녔는데 모두 반가운 인사가 돌아왔다.

‘신인상 존나 축하해요’하는 틴스피릿도 있고.

보는 눈이 많아서 ‘축하해요’하며 짤막하게 인사를 건네는 걸스온탑도 있고.

조애나, 가을소녀, 데이드림 등등.

신인상을 축하한다는 인사였는데 우리에게는 마치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끼게 된 걸 환영해요’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만큼 오늘 참석자들의 면면에 압도 당하는 느낌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때, 찹쌀떡 같이 하얗고 조그마한 얼굴이 방방 뛰며 우리를 반겼다.

스칼렛의 막내 데이지였다.

“축하해요!”

자기들끼리 춤을 추며 놀다가 우리를 와악! 하며 축하해 주는 낯선 인물들.

검은 깃털이 달린 의상을 입은 4인조 걸그룹 스칼렛이었다.

“얘들아, 축하해!”

리더 아라가 방정 맞게 웃으며 우리 애들이랑 하이파이브를 하는 가운데, 내 순서에 오면서 당황했다.

‘엇, 초면이지’ 하는 표정이 얼굴 위로 보였다.

그러곤 학부모와 선생님이 처음 만나듯 두 손을 모았다.

“어… 안녕하세요. 우주 씨.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애들 잘 챙겨주고 계신다고.”

“예, 안녕하세요. 처음 봬요.”

서로 악수를 하며 공손하게 상견례를 하는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양쪽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살짝 어색했다.

반갑게 서로 얘기를 나누는 우리 애들과 달리 나는 데이지를 제외하면 다들 초면이었으니까.

하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저쪽이 친화력이 워낙 좋은 통에 금세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도 했고.

“우리 다 같이 우와아 하자!”

“우아아!”

…정신을 차려 보니 다 같이 으쌰으쌰 하며 방방 뛰고 있었다.

거기서 풀려나와 무대로 향할 때, 나도 모르게 벙찐 얼굴을 하며 물었다.

“…뭔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풀려난 느낌인데.”

“그래도 이 정도면 초면인 사람 있다고 완전 톤다운 한 거예요. 평소에는 말도 마요. 진짜 으, 왕지호를 제곱한 수준이라니까요.”

리혁이가 혼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뭐가 어때서여. 그져, 비주 형?”

“…….”

“상냥하게 웃으면서 쓰다듬지 마여.”

그때, 중현이가 물었다.

“근데 왜 만나는 사람마다 신인상 축하한다고 할까요? 아직 시상식 시작도 안 했는데.”

“아마 참석자가 우리 밖에 없어서 그럴 거야.”

신인상 후보가 추려지긴 했지만, 그중에서 초청을 받아 참석한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

사실상 내정되었다고 할까.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뛰어난 성적을 거뒀던 TNT가 작년에 참석했다가 이상한 트렌드 상 하나 타고 무관으로 내려간 적이 있었거든.

작년에는 전반적으로 여기저기서 식스티 세컨즈에게 상을 몰아주는 분위기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와아아….”

우리의 눈앞으로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본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높고 웅장한 천장.

넓은 무대.

우리는 참석자 자리 맨 끝에 앉아서 체조경기장의 웅장한 자태를 감상하는 중이었다.

진짜 크다.

물론, 크기만 따지면 큰 곳이 더 많지만 체조경기장은 볼 때마다 의미가 각별한 곳이었다.

TJ 엔터에서 연습생일 때, 신인개발팀이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선배 가수들의 콘서트에 자주 데려가곤 했다.

성공한 선배들이 만 명이 넘는 팬들 사이에서 얼마나 행복한 모습으로 콘서트를 여는지 그 모습을 바라보라는 뜻이었다.

그런 장소에 오랜만에 와서 그런 걸까.

떨렸다.

콘서트는 아니더라도 내가 이곳에서 가수로서 한 번 서기는 하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기분이 묘하다.

즐겁기는 한데, 알 수 없이 감상적인 기분이라고 할까.

일부러 동생들에게는 장난스럽게 대꾸하면서 평소와 똑같은 척하고 있긴 하지만 기분이 희한했다.

“형, 신인상 후보 축하해.”

마지막에 도착해서 축하한다며 인사하는 태현이나, 다른 TNT 멤버들의 모습을 볼 때도 연습생 때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 기분의 정체를 고민하고 있을 때.

조명이 암전되면서 마침내 시상식이 시작됐다.

걸그룹에서 올해 솔로로 데뷔한 조애나의 첫 무대로 스타트를 끊은 후, MC들의 멘트가 이어졌다.

-네, 올해 TOP 10 중 두 그룹을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걸스온탑, 그리고 차우현! 축하합니다!

협찬 받은 핸드폰을 가지고 셀카를 찍는 이벤트 등 이런저런 코너가 흘러갔지만 눈에 안 들어온다고 해야 하나.

초조했다.

떨리기도 하고.

선배 가수들의 무대가 이어지는 동안 박수를 치며 호응을 하기도 했지만 정신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다.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처럼 웃고 있지만, 어딘가 멍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마 신인상 때문일 것이다.

다른 상과 달리 1년차 때만 탈 수 있는, 일생일대 단 한 번만 주어지는 신인상.

시상식에 떴다 하면 대상을 받는 연예인들도 인터뷰에서 ‘신인상 못 받은 게 정말 아쉬웠다’라고 할 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상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동안.

마침내 때가 왔다.

-네, 가수들이 일평생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상, 바로 신인상이죠. 올해 시상은 전년도 수상자였던 이지훈과 졸개들이 해주시겠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싱어송 라이터로 유명해진 3인조 포크 그룹이 선글라스를 쓴 채 등장했다.

리더 이지훈의 대표 인사가 끝나고 곧바로 VCR이 흘러나왔다.

[올 한해 K-POP을 뜨겁게 달궜던 2014년의 슈퍼 루키들!]

…이라는 부끄러운 자막과 함께 뮤직비디오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스트릿 보이즈, 블링크, 세레니티 등 올해 신인 중 Top 5 안에 드는 성적을 거둔 이들이 언급되는 가운데.

마지막에 ‘뉴블랙’이란 자막과 함께 우리 이름이 나오자 객석에서 작지만 격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VCR이 나오는 내내 석상처럼 굳어서 앉아 있던 우리가 침을 꿀꺽 삼킬 때.

시상자인 이지훈이 수상자의 이름이 담긴 봉투를 열었다.

분명 참석자는 우리 하나뿐일 텐데,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

-네, 2014 망고 차트 어워드 신인상은….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뉴블랙입니다! 축하 드려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머릿속으로는 우아아아! 하는 고함을 지르는 동안 동생들과 우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들아.”

“형.”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활짝 웃는 동생들을 보며 나도 웃었다.

“축하해요!”

“축하해.”

“감사합니다.”

앞자리에 앉은 가수들이 일어나서 손뼉을 마주치며 축하해 주었다.

입가를 파르르 떨고 있는 걸스온탑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고, 뽀시래기들 축하해 하는 장소원 선배에게도 인사하고.

“축하한다. 우주야.”

리더 구선웅이 대표로 인사하는 TNT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렇게 가수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스탠딩석에 있는 사람들이 올려다 보는 그 길을 걷는 게 어찌나 떨린지.

다리가 후들후들거렸다.

“축하해요.”

이지훈과 졸개들로부터 트로피를 받고는,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선 나를 중심으로 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섰다.

조명이 환한 가운데 만 쌍이 넘는 눈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 뒤편에서 보고 있는 사람까지 치면 그 열 배는 될 거고.

우리 가족들, 회사 식구들, 수플레들이 모두 보고 있을 터였다.

트로피를 꼭 쥐는 한편, 얼른 입술을 열었다.

수상소감 시간은 1분 30초.

“네, 먼저 저희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중현이에게 잠시 자리를 양보했다.

곧장 선 우리 래퍼님이 빠르고도 차분한 랩을 하듯이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훑었다.

“정말감사합니다. 레몬엔터박규호대표님. 조규환제작이사님…”

객석과 지켜보던 가수들이 짧은 웃음을 터뜨린 후 내가 다시 대표로 마이크 앞에 섰다.

“저희가….”

순간, 목이 메어 나와서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나 이러다 우는 건 아니겠지.

내 몸이 귓가에다가 ‘야 지금은 좀 울자’하는 것처럼 뭔가 울컥울컥 솟는 느낌이었다.

비주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네, 정말 데뷔 전부터 시작해서 믿기 힘든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저희…….”

미리 준비한 소감을 말하기는 하지만, 나도 내가 제대로 소감을 내뱉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이 글썽글썽한 동생들을 곁눈질할 뿐.

나도 눈앞이 자꾸 뿌옇게 보이려고 하는 것을 참으며, 소감을 이어나갔다.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상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 의미가 깊은 상이었다.

아니. 나에게도 그랬다.

오늘따라 왜 자꾸 TJ 엔터에 있을 적의 옛날 기억이 떠오르는 건지, 처음에는 몰랐는데 소감을 말할수록 그 이유를 깨달았다.

“무엇이든 당연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연습생 시절에는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TJ의 다른 선배가수들처럼 데뷔만 하면 바로 신인상을 타고, 곧바로 성공해서 이런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도 하고.

하지만 실제로 데뷔를 하고 방송활동을 하니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뭐든 당연한 건 없었다.

팬은 저절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음원 순위도 저절로 올라가는 게 아니었다.

하나하나 다 얻어내어야 하는 것들.

그것도 우리 혼자 힘이 아니라 다 같이 해도 겨우겨우 얻을까 말까한 것들 투성이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올 한 해 고생한 동생들, 회사 직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신인상 자리까지 올려준 팬들.

그랬기에 마지막으로 감사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수플레,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지금까지의 만남이 찰나로 느껴지도록, 우리 오랫동안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연장에 울려퍼지는 수많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동생들과 함께 트로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조금 후련한 마음으로 걸을 때, 막내가 발그레한 뺨으로 내게 속삭였다.

“형, 저 기분 너무 좋아여.”

“나도 그래.”

인생 최고로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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