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2)화 (15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2화

감격스런 기분으로 자리에 돌아왔을 때.

의자에 앉자마자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손을 슥 내밀었다.

“트로피요.”

“제가 제일 먼저 만질 거예여.”

“그것 좀 줘 봐요.”

바로 옆에 있는 비주부터 주려고 했더니 마지막에 받겠다며 다른 멤버들에게 먼저 양보했다.

중현이가 트로피를 손에 쥐고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태평한 눈이 아니라 뭔가 생각이 많아 보인다.

그러기를 10초.

중현이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형.”

“나도 고마워, 중현아. 고생 많았어.”

웃으면서 어깨를 툭 쳐 주었다.

우리 둘 사이에서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비주를 보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때, 내가 막내들을 가리켰다.

“쟤네 봐.”

비주와 중현이가 고개를 돌리더니 의외라는 듯 웃었다.

두 막내가 사이좋게 트로피를 나눠 쥐고 감상하는 중이었다.

이건 또 처음 보는 광경이네.

평소에 견원지간처럼 지내던 녀석들이 ‘신인상-뉴블랙’이라고 적힌 트로피를 눈에 담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얘들도 그렇고.

이 트로피에는 사람을 평소와 다르게 감성적으로 만드는 마법이라도 걸린 모양이었다.

이제 모두가 감상을 끝내고 비주에게 트로피가 갈 때.

“트로피 받아갈게요.”

현장 스탭이 대신 보관해 주겠다면서 채갔다.

“어엇.”

벙쪘다가 이내 슬퍼하는 비주를 우리가 토닥이며 위로해 주었다.

대화 시간은 곧 끝났다.

VCR이 종료되고 조명이 밝아오면서 다른 가수들의 무대가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요즘에는 무대를 바라보는 가수들의 리액션까지 직캠으로 올라오는 추세여서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의식해서 굳이 어떤 리액션을 해 주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알아서 감탄을 했으니까.

오오 하기도 하고, 우와 하기도 하고. 우리끼리 멋있다, 너무 멋있다 이러기도 하고.

신인상 이후 첫 무대는 스칼렛.

우리보다 2년 먼저 데뷔한 레몬 엔터의 걸그룹을 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실력파라는 얘기도 듣고 영상도 봤지만 눈으로 보는 건 또 달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방방 뛰던 미니언즈들 같았는데.

지금은 손끝에서 길고 검은 천을 하늘하늘 날리면서 군무를 추고 있었다.

와. 여긴 다 메인댄서 급만 있구나.

고작 4명밖에 없는데도 무대가 꽉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섬세한 손짓이 이어질 때마다 손끝에서 어떤 기운이 뻗어 나와 빈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할까.

그런 무대를 열심히 관찰했다.

손동작이나 스텝이라든가. 나중에 우리도 요긴하게 써 먹을 것 같은 무대 연출이라든가.

뒤이은 다른 무대들도 마찬가지였다.

연말 어워드 무대라는 특성 때문인지 죄다 각 잡고 준비한 티가 나는 무대들이 이어졌다.

널찍한 공연장에서 어떤 식으로 시선 처리를 해야 하는지 선배 가수들을 보며 실전적인 팁을 배우고.

발라드 가수가 고음을 처리하는 방식을 들으면서 어떻게 해야 더 듣기 좋은지 관찰하기도 하고.

쓸 만한 동작들을 쏙쏙 카피해 두었다.

눈앞에서 국내 최정상급 가수들의 무대를 직접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중간 중간 답답할 때는 살짝 몸을 일으켜서 다른 선배가수들의 동작을 바라보기도 했다.

게임으로 따지면 온갖 곳에서 실전 스킬들이 쏟아지고 있는 셈이라 얼른 수집을 해야 했다.

그런 나를 보며 동생들이 키득거릴 때.

“뉴블랙, 준비할게요.”

인터컴을 달고 다가온 현장 스탭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3부로 나뉜 어워드.

그중 1부를 마무리하는 공연이 바로 우리의 본 무대였다.

*   *   *

같은 시각.

뉴블랙이 의상을 갈아입고 백스테이지에서 대기를 하는 동안 아이돌 커뮤니티는 실시간 중계글로 가득했다.

-스칼렛 오늘 헤메코 다 존예

-실력도 좋은데.. 솔직히 중소 여돌만 아니었음 더 뒷순서에 시간 마니 받았을 듯

-데이지 랩하는 목소리 진짜 취저야

-오 차우현 나왔다

-목소리 존나 좋아 진짜..

-노래 스탈이 한결같은 게 불호긴 한데 잘부르네ㅇㅇ

무대마다 평가하는 글이 나올 때, 1부의 마지막 주자가 될 뉴블랙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직 얘네가 1부 마무리할 급은 아니지 않나???

-띄우는거 과하다 진짜;; 적당히를 모르네

-이번에 시상자에 레몬 배우들 라인업 많아서 그런 듯ㅋㅋㅋ

-와 댓글.. 신인 머리채 좀 적당히 잡아

TNT의 팬들이 가장 머릿수가 많았던 탓에 뉴블랙이 1부 마무리 공연을 할 급도, 실력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6분 가까이 되는 1부 피날레.

썸씽까지 더하면 10분이라면서 무슨 체조콘이라도 하냐는 비아냥거림이 오가고 있을 때.

-오 시작했다

-불꽃놀이 요즘 노래 중에 내 최애..

-라이브인데 노래 개잘해 진짜ㅋㅋㅋ

실시간 스트리밍 화면에 흘러나오는 뉴블랙의 불꽃놀이에 곧바로 호평이 올라왔다.

안무를 최소화한 채 보컬에 더 집중한 무대.

호평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글들이 또 올라왔다.

-노래는 잘하겠지

-솔직히 뉴블랙이 퍼포형 그룹은 아니잖아?? 그냥 보컬 쪽으로 잘하면 몰라도;;

-ㅇㅇ 메보 댄스 삐걱댐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불꽃놀이가 끝나고 암전되었던 조명이 다시 한 번 밝아졌다.

[뉴블랙 | Masquerade]

화면에 떠오르는 자막과 함께 무대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사방을 휘감는 새빨간 조명.

이리저리 음산하게 광선을 쏘아내던 조명이 무대에 집중됐다.

객석에서의 환호와 함께 무대 위에 있는 서른다섯 명의 남자들이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댄서들이었다.

가수들이 등장하기에 앞서 전문 댄서들이 군무를 추면서 무대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시간.

똑같은 턱시도를 갖춰 입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을 착용한 남자들.

이내 우아하지만 어딘가 불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그 속에 섞인 시계 초침 소리.

착착착.

태엽을 감은 병정 인형들처럼 댄서들이 게걸음으로 차례대로 움직였다.

다섯 그룹으로 갈라졌을 때.

불길하게 일렁이는 붉은색 VCR을 배경으로.

심장을 고동치게 만드는 드럼 소리와 함께 음악의 리듬에 맞춰 댄서들이 몸을 날렸다.

보는 이의 시선을 쏙 빼놓는 군무가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감탄이 나왔다.

-와.. 댄서는 댄서네

-개잘한다 진짴ㅋㅋㅋㅋㅋ

-뉴블랙 말고 저분들 무대로 세워라 걍

한편, 댄서들의 공연이 끝난 후.

이제 가수들이 나타날 때였지만 뉴블랙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보통 이쯤 되면 가수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올 타이밍일 텐데.

“……?”

현장 관객들과 TV로 보는 이들이 고개를 갸웃할 때.

이미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무대와 가까운 현장 관객들이 기대감을 품으며 웃고 있을 때.

일곱 명씩 나뉜 다섯 그룹마다 변화가 일어났다.

나머지 여섯이 둘러싼 가운데 하나씩 가면을 벗기 시작하면서, 뉴블랙 멤버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무표정한 얼굴로 가면을 벗을 때마다,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하는 동안 의상이 재빨리 바뀌었다.

옷을 뒤집어 입자  붉은색 계통의 정장으로.

나비넥타이를 풀자 길게 타이로.

그 모든 변신을 우아하게 해내고 있을 때.

같은 시각, 아이돌 커뮤니티에는 글 하나가 올라왔다.

-얘네 퍼포형 그룹 아니라는 애들 다 어디감??

뉴블랙에 대한 호평이 올라오는 동안 익숙한 전주가 들려왔다.

바로 2집 타이틀 Masquerade였다.

*   *   *

인상적인 인트로가 체조경기장에 울려 퍼질 때.

현란하게 군무를 추던 댄서들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뉴블랙의 무대는 관객들의 기억에 콱 박혔다.

‘잘한다. 얘네.’

대부분 자기 가수를 보러 온 팬들이었다.

뉴블랙은 알지만 보통 웃긴 짤로만 접해서 ‘잘생겼는데 웃긴 애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퍼포먼스를 보면서 평가를 수정했다.

마스커레이드란 노래 자체가 좋기는 하지만 이들이 왜 신인상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대놓고 잘했다.

올해 데뷔한 1년차 신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안정적인 실력이었다.

‘춤 진짜 잘 추네.’

다들 춤 구멍 하나 없이 완벽한 퍼포먼스였다.

어찌나 연습을 했는지, 서로 쳐다보지 않는데도 흩어졌다가 합칠 때도 동선 간격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거기다 안무까지.

얼마나 비싼 안무를 산 건지, 그 세련된 퀄리티는 둘째치더라도 동선을 보며 감탄했다.

종이접기를 하듯이 실시간으로 그 모양이 바뀌었다.

그 모양을 보면서 혹시 무슨 의미라도 담긴 게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한편, 안정적인 라이브나 빼어난 춤을 떠나 현장 관객들이 뉴블랙의 공연에서 기억에 남는 두 가지로 꼽은 것이 있었으니.

하나는 메인댄서의 1절 중간 안무였다.

댄서들과 사이드에서 쪼그려 있던 금발의 멤버가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메인 스테이지로 복귀하는 장면.

말 그대로 날다시피 했다.

부드러운 미성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미끄러지듯 무대로 들어온 메인댄서가 다리를 박찼다.

한 차례 몸을 회전시키면서 허공에 호를 그리는 길쭉한 다리.

마치 중력이 없는 것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뉴블랙의 메인댄서는 어려운 기색 하나 없이 미소를 띠며 노래를 소화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또 하나는 바로 3절 파트였다.

다른 네 멤버가 제자리에 서서 가벼운 안무를 소화하고 있는 동안 화면에 담기는 빨간 머리의 멤버.

멈춰버린 음악 속

가면을 벗고

날 위한 미소를 보여줘

가사를 읊던 멤버가 오른쪽 끝에서부터 나른한 표정으로 걸음을 걸었다.

하나씩 어깨를 짚으며 멤버를 기둥 삼아 걸을 때마다 그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멤버 하나를 스치며 얼굴 위로 손을 스윽 할 때마다 표정이 한 차례 또 바뀌어 있는 식이었다.

우아한 손동작과 함께 가면을 고쳐 쓰듯이 분위기가 순식간에 휙휙 달라지는 모습에 가까이서 보던 관객들이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가볍게 고음까지 오른 가성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물론, 현장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고 있는 이 퍼포먼스는 멤버 혼자만의 연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매일 같이 어르고 달래고 혼내면서 표정 연기를 가르치던 누군가의 도움도 있고.

상냥한 얼굴로 잠을 안 재우는 누군가의 안무 연습도 있고.

고음을 그딴 식으로 내면 듣기 싫다는 말과 함께 노래에 대해 툴툴대며 알려준 누군가의 조언도 있고.

몰래 간식을 챙겨주던 누군가의 도움도 있었다.

허나 이런 것을 알 리 없는 관객들에겐 마냥 신기하고 인상에 강렬하게 남았던 장면이었다.

이윽고 본격적으로 3절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됐다.

지금까지 쌓아올렸던 모든 것을 터뜨리는 구간.

무대에서 폭죽이 팡! 하며 화약 냄새를 풍기는 동안 노래도 같이 터지고 있었다.

댄서들과 무대 중앙에 모인 채 뉴블랙의 리더가 센터에 서서 동작을 맞췄다.

보컬과 댄스, 체격 등 모든 면에서 가장 밸런스가 좋은 이가 파워풀한 안무의 중심을 맡았다.

시선을 빨아들이듯 중앙에서 노래와 안무를 소화하는 우주.

불꽃이 한 차례 치솟기도 하고, 멤버들의 얼굴에 땀이 흥건할 만큼 격한 안무였지만 보기 좋은 볼거리였다.

현장에서 처음으로 큰 환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반응이 좋죠?”

백스테이지에서 멤버들의 무대를 바라보던 매니저 서민기의 속삭임에 윤석환 실장이 웃었다.

“더 바랄 게 없지.”

현장의 열띤 반응을 체크하던 뉴블랙의 팀원들이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안 가 댄스 브레이크가 끝나고 뉴블랙 멤버들이 숨을 헐떡이며 엔딩 포즈를 취했을 때.

예의상 시작했던 환호와 달리, 이번에는 진심이 가득 담긴 박수와 환호가 체조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성공적인 첫 연말 무대였다.

*   *   *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우리는 그 반응을 즐길 새도 없이 무대 아래에서 녹초가 됐다.

리혁이는 어지럽다면서 비닐봉지에 대고 헛구역질만 했고, 비주도 벽을 짚고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했다.

그나마 체력이 좋은 우리도 저마다 생수병을 두세 개씩 비울 정도였다.

2부 시작 때까지 한참을 헥헥댔던 것 같다.

메이크업을 고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물었다.

“리혁아. 나 냄새 나?”

“안 나니까 얼굴 좀 치워요.”

“…….”

땀에 젖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게 걸리긴 했지만, 앞선 무대를 한 다른 가수들도 비슷해서 괜찮았다.

어워드의 2부와 3부는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했다.

신인상도 신인상이지만 무엇보다 걱정이 컸던 무대가 끝나 홀가분했다.

어깨에 올린 무거운 돌을 덜어낸 것 같다고 할까.

무대는 그중에서 가장 무거운 돌이었다.

왜냐하면 이게 우리의 진짜배기 연말 무대였으니까.

2분 초반대 컷으로 끝날 방송 3사 연말 무대와 달리 6분 넘게 시간을 보장해 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는데 다행히 잘 해낸 것 같다.

덕분에 활짝 웃으면서 시상식 본연의 분위기를 즐겼다.

-네, 올해의 음원상은 썸씽의 장소원과 뉴블랙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올해…….

수상 소감을 말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소원 선배의 뒤에 서 있기도 하고.

TNT나 틴스피릿 같이 인기 많은 그룹들의 공연을 보면서 ‘무대는 저런 식으로 꾸미는구나’하며 배우기도 하고.

엔딩에서 다 같이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 때.

올해의 아티스트상과 앨범상으로 2관왕을 차지한 TNT에게 다가가 축하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꽃다발을 든 구선웅이 눈물콧물을 쌍으로 쏟아내며 붕어눈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고맙다. 우주야. 우리도 네가 잘 되서 좋아.”

감정이 복받치는지 자꾸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안으려고 들길래 조심스럽게 피하면서 말했다.

“형도 그렇고. 다들 축하해. 정말 받을 만했어.”

“너희도 받을 만했어. 뉴블랙분들도 축하해요.”

작년에 두 시상식의 주요 부문에서 모두 무관으로 물을 먹었던 TNT는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작년에 당연히 받았어야 할 상인데 그걸 1년이나 늦게 받았다고 생각하면 나 같아도 눈물이 날 것 같다.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눈물을 글썽이는 태현이도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한편, 눈물바다가 된 TNT와 달리 우리 뉴블랙 팀은 전반적으로 유쾌한 분위기였다.

“흐하핫, 다들 고생했어!”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오늘 엄청 고생 많으셨어요!”

무대 아래에서 오늘을 함께 빛내 준 댄서 분들과도 한 차례 셀카를 찍은 후 안무팀 단장님과 팀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우리가 이런저런 어려운 요구를 할 때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다 수용해 준 분들이라 더 고마웠다.

회사에서 별도로 회식 자리를 준비했다는 말에 ‘뉴블랙! 고기! 뉴블랙! 고기!’ 하며 떠나는 댄서들을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웃었다.

스타일리스트, 매니저들, 그리고 다양한 회사 스탭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우리는 원석 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비주야, 그거 계속 쥐고 있을 거야?”

“저 아까 못 만졌잖아요. 이따 잘 때까지 꼭 쥐고 있을 거예요.”

트로피를 손에 꼭 쥐고 있는 비주를 보며 모두 기분 좋게 웃었다. 동생들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웃었다.

“진짜 고생했어. 얘들아. 진짜… 우리 작년에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신인상 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러니까요. 진짜, 우리 작년 이맘 때 연말 평가 준비한다고 연습실에서 궁상떨고 있었는데.”

“헐, 소름. 그게 벌써 1년도 더 됐어여.”

“그러네.”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네랑 만난 지 그새 1년이 넘었다니.

“시간이 진짜 빠르네. 아쉬울 정도로 빨라.”

“맞아요.”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느리게 갔으면 좋겠어요.”

“나도.”

“저도 그래여.”

밤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며 잠시 감상에 잠겼다. 그때, 중현이가 아 하면서 말했다.

“우리 셀카 안 찍었는데.”

“아, 그러네. 얼른 찍자.”

트로피를 든 비주를 중심으로 다 같이 모여서 셀카를 찍었다.

연속 사진으로 100장 정도.

이따 SNS에 올릴 때 저마다 자기가 잘나온 것을 골라야 된다고 옥신각신하는 통에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지호가 입술을 비죽였다.

“헐, 우주 형이 또 이겼어여.”

“야, 근데 진짜 이상하지 않냐. 저 아저씨랑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어.”

“그게 뭐가 이상한데여?”

“이기는 건 괜찮은데 무승부도 없다니까. 내가 뭘 낼지 미리 아는 게 아니라면 이럴 리가 없는데….”

뜨끔.

“그냥 형이 겁나 못하는 거 아닐까여?”

히죽 웃는 막내 덕분에 다행히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우리끼리 걸음을 옮길 때, 멀찍이서 따로 떠나는 안무팀과 다른 스탭들이 보였다.

왁자지껄한 그들을 보며 지호가 침만 삼켰다.

“좋겠다. 고기도 먹고.”

“조금만 참아. 우리도 일요일에 음방 끝나잖아. 그날 숙소에서 삼겹살 구워 먹자.”

“예이! 중현이 형, 우주 형이 고기 사 준대여. 고기! 아이 세이 고, 유 세이 기!”

“기.”

“고!”

중현이와 함께 어깨동무를 한 채 방방 뛰며 앞서가는 막내를 보며 우리끼리 웃었다.

연습하는 동안 몰래 간식을 공급해 줘서 그런 걸까.

지호가 중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연신 반짝였다.

리혁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쟤요. 중현이 형이 준 간식들, 우리가 몰래 사 온 거 절대 모르겠죠?”

“모를걸.”

“모르는 게 낫지, 뭐.”

뒤에서 걸으며 웃었다.

바람이 몹시 찼지만 그만큼 멋지고 근사한 밤이었다.

*   *   *

그 시각.

뉴블랙보다 더 희로애락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사무실에서 족발을 먹고 있는 세 남자였다.

“규환아.”

“예, 대표님.”

“다시 한 번 확인차 묻는 거지만… 스칼렛이랑 뉴블랙이 했던 저 무대가 다 합해서 얼마라고?”

“4억 정도 들었죠.”

“…15분에?”

“예. 폭죽이랑 불꽃도 있고요. 인건비가 크죠. 댄서만 두 팀 합쳐서 백 명을 쓰기도 했고. 거기다 VCR 제작이랑 세트 비용까지 합치면….”

“이야.”

본부장이 눈치 없이 감탄했다.

“저 불꽃이 터질 때마다 억이 터지고 있는 거였네.”

“정확히 말하자면 1초에 44만 원씩 태운 거긴 합니다만….”

박규호 대표의 손이 덜덜 떨리면서 젓가락에서 족발이 빠져나갔다.

잠시 흐르는 적막.

“…….”

이윽고 세 남자는 말없이 족발을 흡입했다. 오늘따라 왠지 허탈하게 느껴지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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