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3화
올림픽 체조경기장.
어워드가 끝나고 관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왔다. 쌩쌩 부는 찬바람 속에서 사람들은 흥분한 얼굴로 옆 사람과 수다를 떨었다.
“오늘 진짜 무대 다 대박이다.”
“그니까, 이따 집에 가면 직캠 꼭 봐야지. 아까 휘연이 표정 봤어? 눈이 글썽글썽해서.”
“그거 아냐? 나 아까 연후랑 눈 마주침.”
“헐, 대박.”
저마다 자기 가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늘 무대는 어땠는지, 자리에 앉아 있었을 때 머리를 넘겼던 손이 얼마나 곱게 보였던지 등등.
그런 애정 넘치는 이야기들 사이로 한 그룹의 이름이 톡 튀어나왔다.
“근데 아까 걔네 잘하지 않았냐? 뉴블랙.”
“신인 아닌 줄. 잘하더라, 진짜.”
“아까 보다가 나도 모르게 거북이처럼 목 쭉 빼고 있었잖아. 3절에서 빨강 머리 나올 때.”
“근데 걔 이름이 뭐야? 나 우주만 알아.”
“검색해 보자. …지호라는데? 흐어, 미자래. 고딩.”
곳곳에서 뉴블랙이 대화 주제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진짜 우리 애들 다음으로 제일 눈에 띄더라.”
“레몬에서도 돈 들인 티 팍팍 나더라. 애들도 잘 받아먹고. 약간 독기 같은 게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이런 대화가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걷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남몰래 뺨을 씰룩였다.
그들의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팬카페에 접속해서 바쁘게 글을 올리는 수플레들이었다.
-지금 현장 반응 엄청 좋아요!
-끝나고 나오는데 사람들이 우리 애들 얘기중이에요 자기 가수들 다음으로 제일 기억에 남았대요ㅋㅋㅋ
-자기 가수 다음으로 젤 기억에 남음 = 젤 잘했다
-좋네요 좋아ㅠㅠㅠ
-그것보다 현장에서 울 애기오빠들 본눈 삽니다ㅠㅠ
무대를 직접 눈으로 봤던 수플레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회사나 집에 있는 수플레들도 좋아서 방방 뛰고 있었다.
올라오는 사진이나 직캠, 들려오는 현장 반응, 터져 있는 커뮤니티 반응.
가만히 버스 안에서 표정관리를 하며 창밖을 보는데도 자꾸만 뺨이 씰룩거리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정도였다.
각지에 있는 수플레들이 무대의 여파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아이돌 커뮤니티도 반응은 비슷했다.
[오늘 반응 제대로 터진 망고 신인 무대.metube]
진짜 보는 내내 와.. 하면서 봄
특히 2:40
불꽃놀이에서 마스커레이드 되면서 무대 분위기 파랑에서 빨강으로 변하는 거 존멋..
-무대 퀄리티 미쳤다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신인 무대 중에 제일 좋았음
-신인만 할 수 있는 무대긴 했음. 눈에 독기 오른 것도 그렇고, 댄서 사이에서 툭 튀어나오는 것도 연차 높으면 애들 체격 다 알아서 못함
-뉴블랙 덕은 웁니다ㅠㅠㅠ
-처음에 큐시트 보고 6분???? 하면서 욕하던 애들 다 어디감?ㅋㅋ
-솔직히 무대 초반부 할 때도 까플 진짜 많았지 ㅋㅋㅋ 그러다 댄서 사이에서 갑툭튀하면서 조용ㅋㅋ
-신인 안 같아
전반적으로 무대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이런 호의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멤버 개인에 대한 영업 글도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 ‘빨간 머리 걔’라고 불린 뉴블랙 막둥이 평소 모습
-3절 파트 표정변화 볼 때마다 신기해서 움짤 쪄옴
-거의 날아다녔던 오늘자 뉴블랙 메댄 비주
평소 분위기였다면 보기 힘들었을 글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뉴블랙에서 대길이 친구나 우주, 리혁 같은 이름만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멤버들을 알게 되는 계기였다.
자본을 들인 연출과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합쳐져 탄생한 결과물.
한편 의미 있는 지점을 짚어내는 이들도 있었다.
-난 레몬에서 돈 왕창 들인 게 그런 의미 같더라. ‘올해의 신인’에 종지부 땅땅 찍는 느낌??
-ㅇㅇ 진짜 음반이랑 음원 성적도 그렇고 이제 신인 중에서 뉴블랙한테 비빌 애들이 없는 듯
한 가지는 바로 명실상부하게 ‘올해의 신인’이란 타이틀과 뉴블랙의 이름이 누구도 떼어 낼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붙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퍼포는 솔직히 잘하기도 했는데 외국인들 보면 환장할 듯
-노래가 조금 대중적인 톤이긴 한데.. 해외에서 확실히 칼군무 그런 거 좋아하긴 하지
-걔네 신기한 게 무대 잘하면 귀신같이 알아내서 덕질함
바로 뉴블랙의 오늘 퍼포먼스가 국내 반응에 한정되지 않고, 해외 K팝 팬들의 반응도 얻어 낼 거란 점이었다.
* * *
태국.
내년 3월에 열리는 K팝 커버 댄스 대회를 앞두고 재작년 본선에 진출했던 ‘WeeWhO’의 팀원들은 한창 회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바로 선곡에 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딱! 사로잡을 만한 그런 안무여야 해.”
리더가 강조하듯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곧바로 팀원들이 저마다 자기가 좋게 보았던 안무를 노트북으로 틀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로 기각됐다.
이건 인원이 너무 필요해서 안 되고, 저건 안무가 영 마음에 안 들고.
그때 누군가 말했다.
“뉴블랙은 어때?”
“뉴블랙?”
되묻는 말이 돌아왔지만 뉴블랙을 몰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K팝 팬으로서 올해 신인 중 가장 잘나가는 뉴블랙은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다만.
“불꽃놀이 때 기억 안 나? 그거 쉬워 보인다고 도전했다가 우리 모두 고생했잖아.”
“…그랬지.”
“그래도 다이어트 잘되더라. 우리 엄마가 그 춤 좋아해.”
모두 허공을 보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하면 쉽지만 웨이브라든가 세세한 포인트까지 살려내면 끝도 없는 게 불꽃놀이의 안무였다.
누군가 말했다.
“이번에 마스커레이드 그거는 대놓고 어렵잖아.”
“맞아. 우리가 할 수 있겠어?”
팀원 중 하나가 마스커레이드의 안무를 어설프게 따라하다가 담이 오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근데 그거, K팝 사이트에서 어제 글 엄청 올라왔던데.”
“그래?”
누군가 인터넷 주소 창에 해외 K팝 팬들이 모이는 사이트 주소를 떠듬떠듬 입력했다.
얼마 안 가 영어로 된 게시글이 나타났다.
댓글만 100개에 달하고 있었다.
떠듬떠듬 ‘Wow’나 ‘쟤 이름 뭐냐’같은 댓글 정도를 해석하고 있을 때, 누군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반응 엄청 좋은데… 어워드 무대 때문에 이렇게 난리가 났다고?”
“이 정도 반응이면 거의 헬기에서 낙하산 타고 내려온 것 같은데. 얼마나 잘한 거지?”
“한 번 보자.”
곧바로 미튜브를 통해 저화질 공연 영상을 시청했다.
파랗고 청량한 느낌을 주는 불꽃놀이의 무대에서 멤버들이 하늘하늘한 셔츠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잘하기는 하는데… 이 정도로.”
“쉿. 뒤에 더 봐봐.”
곧바로 댄서들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배경도 펑펑 터지는 불꽃놀이에서 그 불꽃으로 집중이 되더니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빨간색이 가득한 심상찮은 분위기.
수십 명의 댄서들이 나타나 칼 같은 안무를 시작하자, 지켜보던 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와……. 어?”
그 사이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 멤버들.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 눈빛에 관객들이 환호를 터트리고 있었다.
“우와…….”
그들은 넋을 잃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퍼포먼스가 이렇게 근사할 수도 있다, 하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동영상이 끝났을 때 그들은 왜 K팝 사이트에서 반응이 그토록 난리가 났는지 알 것 같았다.
자꾸만 잔상이 남았다.
회전하면서 날듯이 들어오던 금발 멤버, 멤버들의 사이사이를 지나가면서 표정 연기를 하던 붉은 머리.
그리고 마지막 군무를 장식한 잘생긴 멤버는, 그야말로 무대를 장악했다.
“…….”
짧은 침묵이 오가고, 리더가 말했다.
“이거, 어렵고 힘들겠지만 말이야. 한 번, 도전이라도 한 번 해 볼까 우리? 나 이거 본 순간 꼭 해 보고 싶어졌어.”
“나도.”
“한 번 어렵더라도 해 보자고.”
홀린 듯이 모니터를 보던 이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후회할 게 뻔한 결정이었지만 이 무대를 보자 다른 곡에 대한 생각이 싹 사라졌다.
결연한 목소리들이 오갔다.
“진짜 이거 잘해 보자. 분명 희소성도 있을 거야.”
“맞아.”
“이 안무, 다른 팀들은 엄두도 못 낼걸?”
그런 식으로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자화자찬을 했다.
그리고 다음 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대회장에 도착한 댄스 팀들은 예선 대진표에 적힌 무수한 마스커레이드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 * *
자고 일어났더니 어젯밤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기사도 엄청 많이 올라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메인에 걸리기도 했다.
-2014 MCA, 신인상 뉴블랙 ‘팬들에게 감사, 영원하자’
-뉴블랙 신인상 수상 “정말 감사” 멤버 랩에 웃음 나오기도
-뉴블랙, 패기 넘치는 무대 “우리가 바로 올해의 신인”
요즘 들어 악플이 부쩍 늘어나는 바람에 직접 눈팅은 안 하고 있지만, 홍보팀 홍 대리님이 좋은 반응을 캡처해서 보내 주시곤 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댓글들.
하지만 그런 것에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지금의 대기실은 거의 수면실에 근접하는 분위기였다.
지호가 내 옆에서 속삭였다.
“다 자고 있어여.”
“지호야.”
“넹.”
“뻔히 다 아는 사실을 소리 내어 말할 필요는 없어.”
입술을 비죽이던 녀석이 매점에서 산 감자칩을 먹었다.
아삭.
…할 때마다 졸고 있던 리혁이가 실눈을 뜨고 흘겼다.
그때마다 지호가 동작을 정지한 사람처럼 멈췄다가.
아삭.
다시 감자칩을 먹으면 리혁이가 눈을 떴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흐아아…….”
리혁이는 막내를 건드릴 힘조차 없는지 혼자 물고기처럼 몸부림만 쳤다.
그러곤 내게 몸을 뉘였다.
“비주 형, 미안한데 저 좀…….”
“나야.”
“흐에이씨.”
리혁이가 ‘흐이이’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다시 고개를 비주 방향으로 돌리며 몸을 뉘였다.
막내가 미니 물개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나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뭐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굉장하게 봉변을 당한 이 느낌은.
“야, 너무한 거 아니냐.”
“나 잘 거예요. 조용히 해요.”
비주가 무의식적으로 리혁이를 토닥토닥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 김중현 씨는 바닥에 깐 돗자리에 대자로 펼쳐져서 코를 골고 있었다.
평소 그러하듯이 신발까지 벗은 채였다.
“형, 위로의 감자칩이에여.”
“고맙다.”
감자칩을 먹으면서 내가 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중현이가 신발을 벗어야만 잘 수 있잖아. 내가 여기서 신발을 신기면 일어날까?”
“일어나여.”
“너 해 봤구나?”
“툭툭 치는 것보다 신발 신기는 게 더 빨라여. 효과 직빵.”
“그걸 또 실험까지 해 봤어?”
특이한 잠버릇에 감탄해야 할지 아니면 우리 열일곱 살짜리의 왕성한 호기심에 감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뻐근하다.”
“제가 좀 주물러 줄까여?”
“어째 기운이 넘치는구나, 우리 애송이.”
“애송이?”
“아이고, 말이 헛나왔네.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래. 자, 그럼 사양하지 않고 내 안마를 허하노라.”
곧바로 야무진 손길이 내 어깨를 퉁탕퉁탕 치면서 근육을 풀어주었다.
뒷목도 주물러 주고.
눈을 감고 안마를 즐겼다.
너무 피곤하다, 진짜.
일주일 동안 몇 시간 잤더라.
다 합쳐서 10시간도 안 되는 것 같다.
하루 평균 2시간 정도. 낮에는 스케줄마다 웃으면서 다니고, 새벽에는 동생들이랑 안무 연습하고.
그런 식으로 2주 가까이 살다 보니.
나 스스로도 지금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
다만 쪽잠이라도 자지 않는 건 이따가 있을 생방송 무대 때문이었다.
오늘 목 컨디션이 별로 좋지 못해서 잠을 자고 나면 완전 목이 잠길 것 같아서.
벌써부터 끙끙거리는 막내의 숨소리에 눈을 슥 뜨고는 그 손을 두드렸다.
“고마워. 고생했어.”
“허어… 와, 대박 힘들다. 형은 이거 주세한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어떻게 했어여?”
“버티는 거지. 뭐.”
웃으면서 답하고는 기지개를 쭉쭉 켰다.
축축 처지면 곤란하다.
이제 곧 리허설하면서 수플레들도 만나게 될 텐데, 미리미리 몸도 좀 풀어놔야지.
“아이고…….”
고무 인간처럼 몸을 꽈배기처럼 풀다가 손거울을 유심히 살피는 막내에게 시선이 갔다.
“근데 넌 뭐 하니?”
“저 얼굴 좀 점검하고 있어여.”
“어이구, 우리 막둥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놀렸다.
“드디어 연예인병이 걸렸구나?”
“아니에여. 연예인병.”
손을 흔들며 부정하는 막내를 보면서 웃었다.
다른 동생들이 ‘흐어어’ 앓는 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는데 반해 얘 혼자 쌩쌩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어제 숙소로 가면서 인터넷 볼 때마다 뺨을 씰룩이더라고.
‘빨간 머리 누구냐’는 반응에 행복해하기도 하고.
우리 막내가 무대로 화제가 된 건 처음이라 그런지 잔뜩 신이 난 눈치였다.
거의 백년 만에 산책을 나가는 강아지 같은 표정이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는데, 오늘 PBS 뮤직온 출근길에서부터 무슨 개선장군인 줄 알았다.
“안녕하세요! 지. 호. 입니다!”
…하면서 되게 어른스러운 척하면서 여기저기 손 흔들고 그러던데.
이름도 막 알리고.
우리끼리 뒤에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제발 직캠 찍는 분이 있기를 바랐다.
이거 두고두고 놀려 먹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실실 웃다가 도끼눈을 하고 째려보는 막내의 모습 때문에 헛기침을 했다.
지호가 자기 나름의 해명을 꺼냈다.
“오늘은 왠지 1위를 할 것 같아서 그래여. 미리미리 외모도 점검하는 거져.”
“그래?”
“넹, 제가 오늘 아침에 중현이 형한테 점을 쳤거든여. 오늘 1위 가능성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예감이 좋대? 얘 이번 주 내내 1위 할 것 같다고 그랬잖아.”
하지만 이번 주 초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2위였다. 그래서 무슨 아이돌계의 펠레냐고 놀렸지.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녀. 오늘은 몰라, 라고 했어요.”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 아냐? 중현이 가끔 피곤할 때 인사만 해도 ‘전 몰라요…’ 이러잖아.”
“흐핫, 방금 너무 똑같았어여. 아, 그게 아닌데. 잠만여.”
막내가 셀카봉으로 중현이를 톡톡 두드리더니 물었다.
“마법의 소라고동님, 저희가 오늘 1위를 할 수 있을까여?”
겨울잠에서 잠시 깨어난 곰처럼 뒤척이던 중현이가 웅얼거리듯 답했다.
“……몰라.”
“봤져?”
“그러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오늘은 1위 소감 좀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
12월 12일.
12월 2주 차이자 우리의 음악 방송 4주차.
원래였다면 5주차까지 하고 가겠지만 셋째 주는 대개 1위 없이 가요 프로그램들이 연말 특집을 하는 시간이다.
성탄 특집이라든가, 연말 정산이라든가.
그다음 주는 연말 가요제로 휴방이고.
그런 까닭에 이번 주는 우리의 음악 방송 활동을 마무리하는 주였다.
“안녕하세요!”
PBS 공개홀.
리허설을 하러 나오면서 객석에 있는 팬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앞선 가수가 무대를 하는 동안 수플레들과 웃으면서 대화를 잠시 나누기도 하고.
‘잘생겼어요’하고 칭찬해 주는 다른 아이돌 팬들에게도 고마워요 하며 인사하기도 하고.
어제 무대 때문인지 평소보다 지켜보는 눈이 더 많은 분위기였다.
리허설 때도, 무대 때도 그렇지만 우리 무대를 할 때 더 집중해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할까.
이곳에서의 마지막 1위 후보 무대인 터라 평소보다 더 열을 냈다.
이윽고 1위 후보를 발표하는 시간이 되어서 다 같이 우르르 무대 위로 올라갔을 때.
지난 3주간 그랬던 대로 ‘뉴블랙’과 ‘TNT’의 이름이 전광판에 떠올랐다.
익숙하게 미소를 지으며 동생들과 서 있었다.
-2014년 12월 둘째 주 생방송 뮤직온! 이제 1위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TNT와 뉴블랙, 과연 누가 1위를 차지하게 될까요?
-점수 공개해 주세요. 네, 디지털 음원 점수…….
피곤해서 그런지 머리가 멍하다.
이러고 있으면 할머니가 ‘정신 똑디 차려야지!’ 그랬을 텐데.
흘러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있을 때였다.
화면에 뉴블랙이란 단어가 큼지막하게 떴다.
-네, 뉴블랙! 축하드립니다!
아. 발표 났네.
늘 그러하듯이 TNT 멤버들을 바라보고 인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그쪽 멤버들이 웃으면서 입모양으로 말했다.
‘축하해.’
축하한다고?
그때 갑자기 내게 들이닥친 마이크와 트로피에 당황했다.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왜 나한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을 때, 내 뒤에서 비주와 중현이가 내 어깨를 흔들면서 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멍했던 애들 얼굴에 생기와 행복이 가득했다.
“형! 우리가 1위에요!”
“…어, 진짜네.”
잠이 확 달아났다.
세상에.
* * *
군산의 한 백반집.
“아이고! 됐네! 됐어!”
뉴블랙이 1위를 했다는 소식에 누군가 물개 박수를 치며 눈물을 찔끔 머금을 때.
TV 화면 속에서 잘생긴 누군가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어, 진짜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당황하는 손자의 모습에 김덕순 여사가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저건 꼭 내가 감동할라고만 하면 저런다니까.”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곧바로 화면 속에서 소감을 말하는 손자의 모습에 입가를 씰룩였다.
“그래도 기특하긴 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