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4화
어릴 적에 비디오를 보면서 보기 싫은 장면이 나오거나 하면 빨리감기를 하거나 그랬는데.
지금은 되감기를 하고 싶다.
딱 5초만.
“푸흡….”
뒤에 선 세레니티 멤버들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귓가에 들려왔다.
남녀 MC도 진행 카드로 입을 가리고 있지만 웃는 입꼬리가 다 보였다.
특히 한태현은 아예 박장대소를 하고 있다.
망할.
평소 절대 안 웃기로 유명한 카메라 감독님들도 입가를 씰룩거리고 있을 정도니 오죽할까.
당장이라도 끼요오오 하는 익룡 소리를 내면서 무대 아래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일단은 소감이 먼저였다.
얼마 남지 않은 생방송이 끝나기 전에 해야 할 말들.
“정말 믿기 힘든 일이어서 잠시 동안 당황했네요.”
천연덕스럽게 넘겼지만 객석을 보니 아무도 안 믿어 주고 있었다.
대표님과 회사 식구들, 항상 우리를 지지해 주는 가족들과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소감을 마쳤다.
TV 화면으로 스탭 롤이 송출되는 동안 앰프에서 마스커레이드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축하드려요!”
고개를 꾸벅하면서 내려가는 가수들에게 우리도 답례 인사를 건넸다.
“축하해, 형.”
“축하한다. 우주야.”
TNT 멤버들도 가볍게 나를 한 번씩 포옹해 주고는 무대를 내려갔다.
관객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마이크를 잡고 앵콜 무대를 했다.
처음에는 진짜 민망해서 객석에 남은 수플레들과 눈을 회피하면서 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불렀는데, 내 곁에서 부르던 비주가 객석을 보라는 듯 눈짓을 했다.
겸연쩍은 얼굴로 객석을 돌아본 나는 이내 잠시 노래를 부르다가 내 소절을 까먹을 뻔했다.
누군가 그토록 행복해하는 얼굴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 * *
우리 노래로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했다.
그것도 데뷔 5개월 만에.
관련 뉴스가 포털 연예 뉴스 메인에 나타났지만 차마 클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특히나 그 밑에 뮤직온 인기 클립으로 된 ‘#어_진짜야? 믿기 힘든 첫 1위에 감격하는 아이돌’이라는 제목을 보고서는 그야말로 의욕을 상실해 버렸다.
다음 스케줄로 이동하는 차량 안.
“푸하하핫!”
동생들이 뭔가를 볼 때마다 자기들끼리 손뼉을 치면서 웃어 댔다.
“아, 나 울 것 같아.”
비주가 너무 웃어서 나온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진짜 재미있다. 형, 이거….”
“안 궁금해. 안 볼 거야. 안 물어봤어.”
“…형, 울어요?”
“아냐. 안 울어.”
유리창에 머리를 댄 채 어느덧 해가 지고 있는 여의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런 내 모습에 동생들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중현이가 내게 곰 젤리를 내밀었다.
“먹을래요, 형?”
“나 진짜 많이 줘. 지금 당이 절실하다.”
그러자 젤리를 색깔별로 하나씩 골라내서 자기 손바닥에 담더니 남은 봉지 전체를 내게 건넸다.
힘을 내라는 듯 주먹을 쥐어 보이는 모습에 그만 웃고 말았다.
지호가 뒷좌석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위로를 하려고 하나 싶었는데 입을 붕어처럼 벌렸다.
“저 젤리 좀 주세여.”
“다 처먹어라. 다.”
입에다 젤리 대여섯 개를 콱 쥐어 주었는데 그걸 또 옴뇸뇸 먹는 모습에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리혁이가 뒤에서 연신 키득거렸다.
“이 드립 기억해 놔야겠다. 아저씨, 그거 알아요?”
“어떤 거?”
“팬분들이 벌써 별명 여러 개 붙여 주고 있어요. 흑역사 제조 면허 1급이라는데요. 그리고…….”
“아아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으며 고개를 돌아보았는데 새하얀 두루미가 신나서 조잘거리고 있었다.
“조용히 해. 이 두루미야.”
옷도 두루미처럼 입어서, 하고 되받아쳤더니 다른 동생들이 손뼉을 치면서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귀가 벌게진 두루미가 흉측한 기세로 날갯짓을 하면서 날 위협했지만 무시했다.
3분쯤 지나고 귀를 풀었을 때.
옆자리에서 비주가 선한 미소를 지으며 날 위로해 주었다.
“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역시 얘밖에 없다.
“가끔 신이 형에게 너무 많은 재능을 준 나머지, 그 대가로 흑역사를 주는 게 아닌가 하는…….”
“비주야.”
“네?”
“욕을 해. 욕을.”
창밖에다 대고 으아아! 하는 내 모습을 동생들이 너무 좋아했다.
처음 음악방송 1위를 했다는 그 사실 때문인지 뭘 하든 정말 신이 난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랬다.
평소보다 업된 기분으로 동생들과 쓸데없는 대화와 장난을 주고받았다.
극한의 피로는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환한 빛에 도망치는 벌레들처럼 잠시 사라져 있었다.
지금 우리를 움직이는 건 기쁨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이 트로피가 돌멩이만도 못한 물건이겠지만 우리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첫 1위.
앞으로 우리의 남은 활동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이 첫 1위의 감동만큼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등골에 소름이 이는 이 기분.
연습생 6년간, 그리고 지난 8년간 꿈만 꿔 왔던 목표를 드디어 이뤘다.
반투명한 유리에 새겨진 ‘MusicOn : 뉴블랙 2014.12.12’라는 글귀가 저녁노을에 물들었다.
볼 때마다 목을 타고 울컥하는 게 올라온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만족감과 함께 그간의 응어리가 쑥 하며 몸을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새로운 것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음악방송 1위와 신인상, 그 둘을 넘어서 더 올라가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벌써부터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우리 막내님은 여전히 신이 나서 방방 뛰고 있다.
“형, 우리 팬분들이랑 라방해여.”
“그래.”
무엇보다 우리 못지않게 마음 고생했을 수플레들에게 감사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공용 폰을 들었다.
오늘만큼은 회사에서도 흔쾌히 허락을 한 터였다.
예고 없이 방송을 시작했는데도 팬분들이 쭉쭉 들어왔다.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가슴을 콩닥거리면서 올라오는 채팅창을 기다렸다.
깜빡거리더니 첫 댓글이 올라왔다.
-뉴블랙 1위 축하해!
환하게 웃으며 ‘우와아앙!’하며 우리끼리 어깨춤을 추고 있을 때, 다음 댓글이 주르륵 올라왔다.
-뉴블랙이 1위란 소리를 들었는데 진짜인가요?
-어 진짜네..?
-신인상도 탔다면서요?
-어 진짜네..??
휘모리장단으로 휘몰아치는 댓글을 보면서 벙 찌는 동안 동생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거기까지는 그나마 버티고 있을 때.
-우주가 겜을 못한다면서요? 진짜인가요?
-오빠 겜알못이네요
‘어, 진짜네’를 예상하고 있을 때,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온 드립에 큰 내상을 입고 말았다.
내가 뒷목을 잡는 동안 현실과 댓글창이 ‘ㅋㅋㅋㅋㅋ’로 가득해졌다.
* * *
“네, 이번 주 생방송 음악캠프 그 1위의 주인공은 바로바로~ 네! 뉴블랙의 마스커레이드! 축하드립니다!”
“인기가수 12월 2주차, 그 1위는 누가 차지하게 될지 점수표 공개해 주세요! 네! 음원 점수. 음반 점수. 방송 점수, 그리고 SNS 점수와 문자 투표까지. 축하드립니다! 뉴블랙!”
보통의 불행이 그러하듯 행운 역시 그 어떤 예고장도 없이 우리에게 몰아닥쳤다.
마지막 주차긴 했지만 첫 음악방송 1위에 그치지 않고, 지상파 3사를 동시에 석권해 3관왕에 올라섰다.
“축하합니다!”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기쁜 얼굴을 한 우리 앞으로 생일용 폭죽이 펑! 터지면서 종이들이 흩날렸다.
강남구의 한 고깃집.
주말 내내 1위를 거머쥔 우리와 스탭들을 위해 회사에서 마련한 회식자리였다.
오늘만큼은 정말 원 없이 먹으라는 대표님의 자애로운 말씀과 드디어 음악방송이 끝났다는 후련함 때문일까.
회식자리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뜨거웠다.
“우주야! 한 마디!”
메이크업 쌤들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두드리면서 말을 꺼내면서, 매니저들과 스탭들, 그리고 동생들이 날 보면서 떠들썩하게 ‘한 마디!’를 외쳤다.
그러는 동안 사장님 부부가 행복한 얼굴로 꽃등심 쟁반들을 날라 왔다.
내가 자리에 서자 막내가 마이크로 쓰라는 듯 숟가락을 꺼냈다.
“어, 고맙… 야, 너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아빠가 회식 자리 동영상 보여 줬어여. 아빠랑 회사 분들이 다 같이 트로트 부르면서 휴지도 쏙쏙 뽑아 날리고 그러던데.”
“우린 그런 거 하면 안 돼.”
비주가 옆에서 ‘맞아, 못써’ 하면서 동의해 주었다.
스탭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 후, 건배사 이야기가 오가는데 말도 없이 자기들끼리 정했다.
“자, 다 같이 건배!”
“어? 진짜네!”
곳곳에서 ‘어? 진짜네!’를 외치는 모습에 그야말로 뒷골이 새로 산 고무줄처럼 당겨왔다.
“형, 우리도 건배해요.”
“건배사 저거랑 똑같이 하면 가만 안 둘 테야.”
“그럼 ‘가만 안 둘 테야’로 갑시다.”
“가만 안 둘 테야!”
망할.
매니저들,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신나게 사이다가 담긴 유리컵을 부딪치며 웃었다.
내일 스케줄도 있지만,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를 위해서 다들 사이다를 홀짝이며 고기를 먹었다.
모두가 걸신들린 듯이 먹는 동안 중현이와 원석 씨가 고기를 전담했다.
“어때요, 잘 구워졌죠?”
“오, 대박이야. 중현아.”
“흠흠.”
고기 굽기 부심 가득한 얼굴로 흐뭇하게 웃는 중현이를 보면서 계속 엄지를 치켜세워 줬다.
그러는 한편 석환 형과 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게 진짜야?”
“진짜예여?”
“어, 진짜야.”
상대가 쌈을 우물거리면서 답했다.
“아직 프로그램 타이틀은 정해지지 않았는데… 가수들이 이미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도 했고. 우리도 어제부로 출연 관련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어. 데뷔 첫 해 1위 가수 타이틀이 좋긴 좋더라.”
“정말 차우현 선배나 조유리 밴드 같은 분들이 나와?”
“어, 1월 20일 즈음해서 녹화도 할 거래.”
“우와…….”
고기도 먹다 말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우리 실장님이 따온 스케줄은 1월 중에 녹화가 들어가는 PBS의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내부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 프로젝트라나.
방송국에서 보내 준 기획에 관해서는 사무실에서 사람들 없을 때 보여 주겠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TBC는 아직 정확하게 언질을 주지는 않았는데, 아마 합동 무대를 요청할 것 같아. 커버 무대로.”
“우리 무대는 어디래? 상암? 아니면 일산?”
“상암이야.”
“……많이 춥겠네.”
“그래도 임진각이 아닌 게 어디에요. 우리 감지덕지해야죠.”
리혁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12월 31일에 열리는 TBC 연말 가요제는 무대를 두 곳으로 하는데, 그중 야외 무대인 상암동 사옥 앞에 당첨된 모양이었다.
그 날씨에 밤 되면 관객들 진짜 추울 텐데.
예전에는 새해 타종을 치는 임진각에서도 라이브 무대도 했다고 들었는데 선배 가수들에 대해 무럭무럭 존경심이 생겼다.
중현이가 싼 대왕 쌈을 입에 우물거리던 지호가 물었다.
“그나저나 합동 무대면 저희 누구랑 하는 거예여?”
“아직 미정이야.”
벌써 3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정확한 내용조차 알려 주지 않는다니.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방송국이 이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뭐.
어느 팀과 함께하든 열심히 할 거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으니까.
“일단은 먹어요. 형.”
중현이가 내 파채 위에 고기를 올리며 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잖아요.”
“참으로 옳은 말이야.”
웬일이래. 그런 구어도 안 틀리고.
감탄을 하면서 소고기를 입에 넣었다. 좌르르 퍼지는 기름과 고소한 냄새, 그리고 육즙을 즐기면서 행복해할 때.
저는 보았읍니다….
스마트폰에 떠오른 ‘국어대백과 : 금강산도 식후경’을.
* * *
신인상에 이어 음악방송 3관왕이라는 완벽한 주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스케줄에 나갔다.
월요일 첫 스케줄은 바로 HBS MTV의 ‘아이돌쇼’ 녹화였다.
아이돌쇼.
프로그램 기획을 보니 경쟁사인 K-Net의 ‘쇼쇼쇼! 아이돌 고등학교!’를 의식해서 만든 듯했다.
아이돌 고교가 그러하듯 아이돌 한 팀을 불러놓고 그 팀과 이런저런 게임을 하면서 재미도 뽑고, 이런저런 토크도 하는.
아이돌 팬들을 시청자층으로 노리는 프로그램이었다.
2015년 1월 초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데 그 영예로운 첫 회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였다.
‘잇츠 더 뉴블랙’을 담당한 배종건 피디님이 외주 제작팀에게 첫 주자로 우리를 적극 추천했다고 들었다.
추천도 그렇고, 첫 회라는 부담감도 있어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든다.
“근데 여기는 대본이 그렇게 꽉 짜여져 있지는 않네요.”
스튜디오로 가는 동안 차에서 대본을 뒤적거리던 리혁이가 말했다.
“그냥 MC 멘트 주어져 있고,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는 형식인가 봐요.”
“뭐, 애드립 같은 걸 원하는 거 아닐까.”
형식이 자유로운 편이라서 좋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부담이 된다.
온전히 우리만으로 재미를 뽑아내야 하는 형식이라.
옆에서 기지개를 사방팔방으로 쭉쭉 켜던 비주가 물었다.
“그런데 호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배님? 선생님?”
“선배님이 나을 거 같아.”
“하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좋아하실 것 같긴 해요.”
포털 검색 창 위로 ‘트렌드’라는 그룹명이 떠올랐다.
5인조로 표기된 1994년도 데뷔 혼성 그룹.
그야말로 90년대를 풍미했던 1세대 아이돌 가수 중 하나로서 지금까지도 레전드로 회자되는 그룹이다.
오늘 MC를 맡은 이는 그중 맏이인 세리와 막내인 북북이었다.
“북북 선배님. 북북 선배님.”
우리끼리 열심히 연습을 했다.
어감이 이상하기도 하고.
이러면 진짜 안 되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는 터라 우리끼리 진지한 얼굴로 연습했다.
북북북북북북.
북북북.
방송국 주차장에 들어설 때까지 차 안에서 ‘북북북북’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적응해.”
그런 우리를 백미러로 보며 얼이 빠진 표정을 짓는 원석 씨의 모습에 조수석에 있던 민기 형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왠지 뿌듯해하는 어조였다.
“저게 바로 우리 애들이야.”
* * *
아이돌쇼는 외주 제작으로 진행되는 탓에 스튜디오가 방송국이 아니라 외부에 위치해 있었다.
그거까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그러게요.”
“지금 눈에 보이는 거 하나씩 말해 보기 해요.”
“태극기.”
“슬로건이요. 믿음직한 민중의 지팡이.”
“형사 4팀 팻말.”
“쇠창살.”
“거울에 비친 제 이빨이요.”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칸막이로 나뉜 사무실과 사무용품, 사방에 박혀 있는 경찰 로고.
그리고 유치장까지.
완벽하게 경찰서의 풍경을 재현해 놓은 이곳은 바로 우리가 오늘 촬영을 하게 될 스튜디오였다.
“놀랐지?”
“아뇨.”
네, 엄청요.
오늘 프로그램의 외주 제작을 맡은 고 PD님이 설명했다.
“원래 촬영 예정 장소는 한 층 위에 있는 곳인데 거기가 갑자기 공사가 필요해져서… 뭐, 복잡한 사정이 있었지만 여기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진행해 보기로 했어.”
“아. 경찰서 특집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니. 첫 회 특집이지.”
“…….”
제작팀 특징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감독님이나 피디님도 분위기가 굉장히 독특했다.
미리 도착해서 메이크업을 수정하던 두 MC도 우리를 반겼다.
“안녕!”
넉살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세리가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잘 부탁한다며 하나하나 손을 잡고 인사를 해 주셔서 우리 모두 황송하다는 듯 웃었다.
다른 MC인 북북은 얼마 안 가 손에 커피 박스를 든 채 도착했다.
“누나, 여기 커피.”
“고마워. 우리 북이.”
카메라가 꺼져 있는데도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이 굉장히 사이가 좋아 보인다.
상대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하자 우리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왕년에도 동글동글한 귀염둥이었던 그 얼굴을 30대에도 고스란히 간직한 이가 우리를 보며 웃었다.
“안녕, 너희도 커피 먹을래? 너희 취향을 잘 몰라서 인터뷰 대충 검색해서 보고 사 왔는데.”
“허어…….”
천사다.
이 사람은 천사야.
뒤에서 날개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후광이….
“조명 지나갈게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눈이 부셨다.
방송 의욕이 더욱 무럭무럭 솟는 가운데.
촬영장비가 모두 세팅된 후 피디님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그럼 찍기 전에 고사부터 먼저 지내겠습니다!”
“……예?”
곧바로 태블릿 PC에 세팅된 돼지 머리 사진과 함께 감자칩과 과자 등이 대충 세팅된 고사상이 차려졌다.
……경찰서 세트 한가운데에.
내가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을 때, 중현이가 내게 속삭였다.
“형, 저기 전기충격기도 있어요.”
“……뭐?”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촬영용 소품으로 자리 잡은 거짓말 탐지기가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 올린 후에 거짓말 말하면 전기 오르는 바로 그거.
다행히 전기 충격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거 뭔가 방송 이상하지 않아요?”
리혁이의 속삭임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