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5화
고사.
보통 차를 새로 사거나 영화 크랭크인 들어갔을 때 진행하는 행사다.
이 차를 타는 동안 아무 사고가 없게 해 달라고 빌거나, 이번에 우리 영화 찍는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찍게 해 주세요 하며 기원하는 그런 행사로 알고 있었는데.
이걸 아이돌 프로그램에서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카메라에 찍히고 있었다.
“형, 절 몇 번 해야 돼요?”
비주가 다급하게 속삭이기에 답했다.
“…세 번인 것 같은데. 눈치껏 하자.”
“두 번 하면 안 돼요. 두 번은 제사상에서만 하는 거니까.”
척척박사님의 강의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다른 사람들 하는 것을 보며 눈치껏 따라 했다. 왜 우리도 같이 하게 된 건지는 의문이지만 말이야.
“근데 왜 이걸 여기서 하는 거예요?”
세리의 질문에 피디님이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않냐는 듯한 어조였다.
“오늘 미세먼지가 심해서요. 실내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아…….”
“혹시 모르니까, 겸사겸사 초반부 분량 될 촬영 컷도 따고요.”
특이한 분이라고 웃고 있는데 ‘혹시 모르니까’라는 말이 괜히 신경 쓰였다.
‘혹시 분량 못 뽑아낼 것을 대비해서’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지.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현장 스탭들이 옷에 마이크를 달아줬다.
“아아.”
음향 체크를 하는 동안 뒷목을 주물렀다.
뭘 하든 분량 한 번 끝내주게 뽑고 가야지.
* * *
매니저들과 스탭들이 지켜보고, 곳곳에 자리 잡은 카메라가 우리를 다각도에서 담기 시작했다.
진행 카드를 손에 쥔 세리가 녹화의 포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쇼 유어 아이돌!”
“아이도오올 쇼-!”
그녀의 선창에 다 같이 ‘와아아!’ 하면서 박수를 치면서 호응했다.
배경은 경찰서인데 사방에 카메라가 가득하니 뭔가 이상하면서도 웃긴 분위기였다.
북북이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2015 을미년 새해 첫 회, 그리고 아이돌쇼의 첫 게스트가 될 아이돌 그룹을 모시겠습니다.”
“비주얼, 보컬, 댄스까지. 와아, 정말 2014년 가요계를 완전 뒤집어 놓으셨다~! 신인 아이돌 뉴블랙입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답례 인사를 하는 한편 동생들과 함께 카메라 정면을 바라보았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와아아-!”
미리 준비한 2015년 새해 인사를 한 후 MC들과 간단한 스몰 토크를 시작했다.
“제가 알기로 뉴블랙이 아이돌 소개 프로그램에 나온 건 처음인데, 맞나요?”
“예, 맞아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때, 막둥이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여. 진짜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소원이었거든여. 그래서 며칠 전에 빌었는데 이렇게 이뤄졌어여.”
“며칠?”
내가 물었다.
“출연 확정은 2주 전에 알았잖아요.”
“와아아, 소원이 이뤄졌다!”
안 들린다는 듯 내 등 뒤에서 손으로 토끼 귀를 하며 왼쪽, 오른쪽 돌아가면서 고개를 쏙쏙 내미는 모습에 두 MC가 웃음을 터뜨렸다.
세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침 녹화라서 축 처지진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 운전하고 왔는데 정말 저희가 원하던 텐션 그 자체네요.”
“오히려 저희가 분발해야겠어요. 세리 씨.”
북북이 활기찬 미소로 물었다.
“다른 멤버들의 소감도 들어 볼까요?”
“세트가 경찰서라서 너무 신기하고 좋아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좋아하는 중현이를 보며 북북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경찰서는 처음인 건가요?”
“아뇨.”
“엇…….”
“아. 초등학교 때 견학을 와 봤어요. 근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났거든요.”
‘이거 실물이랑 똑같은 건가요?’하면서 묻는 모습에 잠시 벙 쪘던 북북이 웃음을 터뜨렸다.
세리가 다른 손으로 멤버의 등을 툭툭이며 말했다.
“어이구. 가뜩이나 우리 북북 씨 담도 작은데 큰일 날 뻔했네요.”
“역시 성격에도 안 맞는 드립은 치는 게 아닌가 봐요. 시작부터 편집인 줄 알고 심쿵했네요.”
“심쿵은 그럴 때 쓰는 거 아니지 않나요? 심멎 아닌가.”
“아, 심멎인가요?”
신조어를 잘 모르는 두 MC가 자기들끼리 좋아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반응해 드려야 되지.
리액션을 고민하다가 이내 두 MC와 눈이 딱 마주쳤다.
“…….”
잠시간 적막이 오가고 웃음이 터졌다.
“흐하하!”
서로의 표정이 너무나 웃겼던 탓이었다.
마치 요즘 조류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시조새들과 리액션을 고민하는 현직 참새 같은 표정이 교차했다.
민망한데 웃겼다.
세리가 진행 카드로 급하게 부채질을 했다.
“어우, 민망해라. 뉴블랙 친구들 표정 봤어요? 세상에. 정말 살아 있는 화석이 된 줄 알았어요.”
“어어, 아니에요. 선배님.”
우리가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몰아가기로 결정한 듯 북북이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슬프네요. 세리 씨. 저 마치 암나이트가 된 기분이에요.”
“그거 포켓몬 아니에요? 북북 씨. 우리 암모나이트예요.”
“엇…….”
당황한 그의 표정에 다 같이 다시 웃었다.
뭔가 올망졸망한 말투도 그렇고 왜 저 선배가 당시 아이돌계를 휩쓸었는지 알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웃기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요즘 친구들이랑 어울리려고 신조어 공부 많이 해 왔는데… 역시 쉽지 않네요.”
“아니에요.”
내가 끼어들었다. 우리 애 소개해야지.
“저희 멤버 중에도 화석이 하나 있거든요. 신조어 잘 모르는 친구가 하나 있어요.”
“아, 진짜요? 누군가요. 손 들어 볼까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우리끼리 술렁이면서 비주를 바라보자 둘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비주가 슬픈 얼굴로 손을 들었다.
쓸데없이 우아한 동작이었다.
“네. 저예요오…….”
“신조어를 잘 모르나 봐요?”
“신조어 말고 이것저것 엄청 몰라여! 이 형, 최근에 유행했던 거 하나도 몰라여.”
“타법도 독수리 타법이에요.”
“부먹, 찍먹도 처음에 잘못 알아들었어요.”
동생들이 앞다투어 증언하는데 세리가 그럴 리가 있겠냐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요? 그런 것들은 우리 네 살배기 딸도 아는데.”
“아니에요.”
비주가 부정했다.
“전 나름대로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 트렌드 피플이에요.”
“트렌드 피플이 무슨 말이야?”
중현이의 물음에 비주가 잠시 정지한 듯 물었다.
“없어?”
“없어.”
“엇,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검색했는데…….”
그 모습에 두 MC가 싱글벙글 웃더니 검증의 시간을 갖겠다면서 비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리가 진지하게 물었다.
“작가분들이 미리 자료 조사를 해 주셨네요. 다음은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올해의 신조어인데요. 그린 라이트.”
“……초록 불?”
던져 보고 눈치를 보는 우리 둘째의 모습에 두 MC의 얼굴이 그린 라이트로 빛났다.
북북이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금사빠.”
“어… 잠시만요. 그건 알 것 같아요. 아침 사과 좋아하는 사람?”
“……?”
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모두가 비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신조어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혼신의 힘을 쥐어짜 낸 비주가 변명하듯 말했다.
“엄마가 아침 사과는 황금 사과라고…….”
“푸핫!”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북북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세리가 눈치 좋게 옆으로 비키면서 손짓했다.
“이리 와요. 비주 씨. 거기 서 있지 말고.”
“맞네요. 여기 우리랑 같이 서야겠어요.”
한 명을 몰아가며 놀리는 동안, 비주가 내게 의미를 물어보길래 알려 주었다.
뿌듯한 얼굴로 알려 주는데 리혁이는 나도 그 나물에 그 밥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이야. 시간이 참 빠르네요.”
북북이 웃으며 물었다.
“말 나온 김에 궁금해졌는데. 혹시 뉴블랙 분들은 저희 알고 있어요?”
“네, 알고 있어여!”
“당연히 알고 있죠.”
우리가 열렬히 대답했다.
가요계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분들이었다.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진짜로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요? 정말?”
“네. 제가 선배님들 때문에 TJ 엔터에 들어가게 됐거든요.”
“정말요?”
두 MC가 짐짓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 부분 같은 경우는 작가님들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미리 말한 터라 알고 있는 듯했다.
당연하게도 방금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 앞에서 따라 추곤 했던 1세대 아이돌들의 춤이 바로 이 사람들 노래였으니까.
당시에는 태준레코드라고 불렸지만 TJ 엔터의 이름은 내 기억 속에서 생생했다.
이 분들이 연말만 되면 트로피를 들고 ‘존경하는 박태준 프로듀서님’ 하곤 했으니까.
첫 회사를 TJ 엔터로 고르게 된 이유였다.
“그럼 우리 노래 중에 가장 좋았던 노래 있어요?”
“저 4집에 있었던 노래 제일 좋아해요. 각자의 부모님들을 위해서 쓴 ‘편지를 써요’요.”
“오, 그거 사람들은 잘 모르는 노래인데.”
“그거랑요…….”
내가 신이 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할 때마다 어릴 적 우상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에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더니.
얼마 안 가 내 표정을 유심히 보면서 자기들끼리 환한 미소를 지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차례 겪었던 일이었다.
중현이가 처음에 팬인 걸 밝혔을 때, 헤이션 선배님이 딱 저런 식으로 눈치를 살피다 씩 웃었는데.
그때 리혁이가 한 마디 내뱉었다.
“표정이 진짜 어린이 팬 같네요.”
“야.”
지호가 우쭈쭈 하는 얼굴로 나를 토닥였다.
“우리 우주 어린이, 존경하는 선배님들 봐서 신났쪄여?”
“……지호야.”
동생들은 키득거리고 나는 부끄러운 얼굴이 되어 있을 때, 세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아가 팬이 커서 이렇게 우주 씨가 되었다니 진짜 기쁘네요. 기념으로 악수 한 번씩 할까요?”
“어, 안 돼요!”
다가오려는 그들에게 내가 잠시 손을 들어 보였다.
“잠시만요.”
“왜요?”
“손에 땀이 좀 나서요.”
진지한 얼굴로 바짓단에 손을 문지르는 내 모습에 두 MC와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잠시 동안 사심 섞인 팬미팅이 끝나고 본격적인 자기소개 코너가 시작됐다.
“어, 나왔다. 전기 충격기.”
“중현아. 거짓말 충격기야.”
“그대도 틀렸어요.”
다 같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후, 세리가 미니 테이블에 거짓말 탐지기를 올렸다.
두 MC가 테이블 앞에 앉은 가운데 나머지는 용의자들이 앉는 철제 의자에 앉아 둘러쌌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북북이 말했다.
“멤버마다 하나씩 전기… 아, 전기래.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올리고 자기소개를 해 주시면 됩니다.”
“멤버분들에게는 기회가 하나 주어지는데요.”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오, 무슨 기회인가요?”
“멤버의 소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궁금한 점이 생기면 본인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으아, 거짓말 치면 진짜 따끔하겠다.”
세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대충 시범을 보여 볼까요. 북북 씨.”
“네! 누나, 뭐야. 나 보고 하라고…?”
다들 웃는 동안 북북이 울상이 되어 손을 올렸다. 찍찍이 테이프로 손이 다 감기자 세리가 물었다.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그룹 트렌드에서 보컬을 맡았던 북북이라 하고요. 예전 별명은 귀염둥이었는데…….”
“세리! 북북 씨, 본인이 아직도 귀엽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뇨.”
거짓말 탐지기의 버튼이 눌렸다.
그리고.
“으앗뜨따따!”
누군가 펄쩍 뛰면서 제작진 쪽에서 웃음이 나왔지만 곧 그 대상이 될 우리는 침만 꿀꺽 삼켰다.
“자, 그럼 우리 뉴블랙 친구들은 누가 제일 먼저 나가볼까요?”
네 명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내가 혀를 찼다.
“참, 이럴 때만 리더를 찾아요.”
“우주 씨부터 하나요?”
“네, 제가 리더답게 먼저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곧바로 거짓말 탐지기 앞에 서자마자 동생들이 앞다투어서 손을 들며 말했다.
“비주!”
“지호!”
“리혁!”
“저기,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아, 예행 연습하는 거예요.”
싱긋 웃는 리혁이의 미소를 얄밉다는 듯 바라보았다.
곧장 카메라를 보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우주입니다. 나이는 올해로 스물두 살이고요. 뉴블랙의 리더와 리드보컬을 맡고 있습…….”
“리혁!”
“뭔가요. 리혁 씨?”
리혁이가 물었다.
“뉴블랙에서 누가 노래를 제일 잘한다고 생각합니까?”
“질문의 연관성이 없잖아요. 기각할게요.”
“리드보컬이라고 소개하는 건 본인이 두 번째라는 거잖아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누가 제일 잘하나요?”
두 MC가 ‘오오’하며 쳐다보는 가운데 내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리…….”
“리?”
“리이이이…….”
눈앞의 전기와 일시적인 자존심 중에서 고민을 하다가 선택을 했다.
진짜 내 입으로 말하기 싫다.
“리혁 씨가 제일 잘하죠. 자, 소개 이어가도 될까요?”
“네, 좋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원래 목표는 대학생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레몬 엔터의 연습생이 되었습니다.”
“지호! 첫 인상이 제일 좋았던 연습생은?”
“비주가 제일 좋았어요.”
우리 팀 댄서가 웃으면서 ‘우우우~’하면서 두 팔을 들고 세리머니를 보이는 동안 소개를 이어 갔다.
…가려고 할 때였다.
“지호! 첫 만남부터 초콜릿을 준 고마운 연습생은 누구입니까?”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뜨따따! …으아, 이거 은근 따갑네요?”
순간 따끔했다.
북북 씨가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카메라를 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천방지축인 동생들과 부대끼고 있고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저희 할머니와 팬들입니다.”
“중현! 팬들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팬들이 지어 준 별명인 흑역사 제조기도 좋아하십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앗! 뜨거워. 아니, 이런 질문은 매너 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린 그런 거 없어요.”
리혁이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신성한 경찰서에서 거짓말을 하다니 벌을 받았네요.”
“…매너 같은 거 없다는 그 말, 제가 이따 한 번 신명나게 되돌려 드릴 거예요.”
“허, 우주 형 뿔났다.”
막내가 냉큼 손을 들었다.
“그럼 기왕 망한 거 폭풍 질문 할게여!”
“야!”
“지호! 혹시 할머님 프사가 자신이 아닌 고양이가 됐다면서 하루 종일 툴툴거리거나, 평소 할머님이 키우는 길고양이를 질투하는 발언을 일삼지 않으셨나여?”
“세상에. 어떻게 절 보신 건가요. 지호 씨. 질투…….”
전기 충격기를 내려다봤다.
“합니다. 쪼끔 해요. 쪼끔.”
그 말에 다들 배를 잡고 박장대소했다. 리혁이가 훗 웃으며 말했다.
“고양이까지 질투하다니. 역시 옹졸의 아이콘답네요.”
“선옹졸인가요.”
내가 기억했다. 서리혁, 김중현 너네.
“여러분. 쪼끔이라니까요. 아니, 얼마 전에 영상 통화를 하는데 그 친구가 자꾸 할머니한테 애교를 부리면서 방해하잖아요.”
어딜 감히, 그것도 우리 김덕순 여사의 무르팍을 차지하고 말이야.
그 외에도 그간 있었던 고양이의 악행에 대해 폭로하자, 세리가 목젖이 보일 만큼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미치겠다. 고양이…….”
한참 동안 진행 카드로 부채질을 하던 세리가 말했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고양이에게 영상 편지 한 번 남겨 볼까요?”
“고양이한테요?”
내가 피디님에게 물었다.
“나중에 음산하고 무서운 BGM 깔아 주실 수 있나요?”
“천사소녀가 경고장 남길 때 쓰는 그거 해 줄게요.”
“좋네요.”
그런데 고양이한테 영상 편지라니.
나 어디까지 추락하는 거야.
“하… 잠시만요.”
“아, 어렵나요?”
“아뇨. 고양이한테 영상 편지를 쓴다고 하니까 눈물이 고이네요.”
할머니.
손자가 돈 벌려고 이렇게까지 하고 있어.
허공을 바라보며 허탈한 미소를 짓는 동안 뒤에서 쑥덕거렸다.
“한창 눈물이 많이 나올 나이죠.”
“우주 형이 요새 눈물이 좀 많아요.”
“아, 그래? 저 친구 어리지 않아?”
“아니에여. 예전에 심리 테스트 한 거 봤는데여, 거기서 정신 연령 35세로 나왔어여.”
“푸핫.”
내가 도끼눈을 하고 고개를 돌리자 다들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곧바로 영상 편지를 시작했다.
“나비야. 사료 좀 적당히 먹어라. 우리 할머니 너 때문에 맨날 사료 두 봉지씩 사 온다. 그리고 꼭 기억해.”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무대에서 하던 표정 연기를 이럴 때 써먹을 줄이야.
“김덕순은 내 거야.”
다시 한 번 ‘리멤버. 덕순 is mine’하며 말했더니 다들 뒤집어졌다.
스탭들은 물론이고 핸드폰을 바라보던 민기 형과 원석 씨까지 잇몸 웃음을 보였다.
“으아으…….”
머리를 감싸 쥐며 테이블에 콩콩 찧었다.
자괴감이 든다.
……이것도 흑역사 리스트에 추가될 일 같은데 이쯤 되니 뭔 상관이냐 싶었다.
몰라.
미래의 내가 어찌 되든 말든 이제는 알 바 아니었다.
자기소개를 하고 난 다음에 마무리를 지으려고 할 때.
그간 미친 듯이 폭주하던 두 막내 때문에 타이밍을 못 잡았다는 듯 비주가 다급하게 손을 들었다.
“비주! 저 궁금한 거 못 물었는데.”
“그래, 비주는 물어봐도 돼.”
“올해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갑자기 분위기 팬미팅이야?”
“저 꼭 궁금해서 그래요.”
고민할 것도 없었다.
“올해는 아니지만, 우리 회사에 들어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표님부터 우리 매니저 형들까지.”
뒤에 서서 모니터링을 하던 매니저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좋은 분들 만나기도 했고, 그리고 우리 멤버들을 만난 게 제일 잘한 일이고 세상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
세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야, 근데 이거 진짜 솔직한 마음 아니면 큰일 나겠는데요. 대표님이 문자 보내시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요?”
“네.”
내가 답했다.
“2주 뒤에 보시는 거라서요.”
다들 웃을 때, 북북이 다가와서 거짓말 탐지기의 버튼을 눌렀다.
징징징- 하는 기계 소리가 들리더니 초록색으로 ‘띵’ 하는 표시가 떴다.
진실.
잠시 뒤에서 오오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내 찍찍이 테이프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생들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그만 웃었다.
방금까지 신나서 깔깔거릴 때는 언제고 또 찡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 괘씸한 얼굴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와서 감동한다고 해서 소용없어요.”
“엇…….”
“전 오늘 여러분의 손을 감전시키겠다 하는 각오로 임할 테니까요.”
“진심이네요. 우주 씨.”
“네. 정말 오늘 하루 에디슨이 되어서 이 친구들의 손을 찌릿찌릿하게 만들어 놓을 거예요.”
내 각오에 MC들이 참으로 갸륵한 태도라면서 좋아하더니 누구를 지목하겠냐고 물었다.
“누구를 고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척척박사님…….”
원래 중현이가 선택되려고 할 때, 옆에서 안 걸렸다며 좋아하는 새하얀 두루미의 어깨를 잡았다.
두루미가 항의했다.
“뭐야. 왜 나예요?”
“척척박사님은 너니까요.”
“…….”
“자, 어서 서세요.”
리혁이를 거짓말 탐지기 앞으로 보낸 후 콧김을 내뿜었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