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6화
리혁이를 전기… 아니, 거짓말 탐지기 앞에 앉혀 두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북북이 날 보며 물었다.
“지금 우주 씨 표정이 엄청 들떴는데요?”
“엄청 기대하는 중이에요. 리혁 씨가 팀 내에서 흑역사 지분 2위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오오, 무려 2위씩이나!”
“그래도 1위에 비할 수는 없어여.”
“……지호 씨는 조용히 하시고요. 아무튼 흑역사 지분이 엄청난 만큼 정말 기대하는 중입니다. 제가 물어볼 게 차아아암~ 많아요.”
일부러 ‘차아아암~’에 강조를 두었더니 백짓장 같은 얼굴이 아예 표백된 것처럼 하얘졌다.
다가가서 얄밉게 물었다.
“떨리죠?”
“…….”
“떨릴 거예요. 리혁 씨.”
“…….”
“지금이라도 용서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얼른 저에게 죄를 고하고 용서를 받으세요. 불신지옥 우주천국이에요.”
“맞아여. 얼른 그간 잘못을 고해요.”
“맞아, 맞아.”
멤버 다 같이 리혁이를 둘러싸고 몰아가는 모습에 두 MC도 신이 나서 참전했다.
뺨에 홍조가 핀 우리 메인보컬은 세상 배신당한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아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했는데……! 당신들이 이러면 안 되지!”
“돼요.”
‘되지?’하고 동생들에게 고개를 돌리니 다들 훈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찍찍이 테이프로 감싼 리혁이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자, 결정의 시간이에요. 리혁 씨. 질문 코너를 앞두고 그간의 잘못을 멤버들에게 사과하세요.”
“아니, 잘못한 게 없는데 뭘 사과해요?”
“없을까요?”
내 물음에 세리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리혁 씨가 잘못을 많이 하고 사나요?”
“넹, 집에 들어올 때마다 신발 덜 털고 들어왔다고. 막 저를 끌고 가서 신발장 앞에 앉힌 다음에 제대로 안 털었다고 구박하구여.”
“제가 아침에 눈이 잘 안 떠지거든요. 실수로 리혁 씨 칫솔을 쓴 적이 있었는데 아침 내내 신경질을 부렸어요.”
“밥을 너무 적게 먹어요.”
“……정말 본인들이 말하면서도 안 부끄러워요?”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는 리혁이에게 내가 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우린 그런 거 없어요.”
“……이이.”
하지만 날카로운 눈매 위로 번민이 스쳐 가는 게 보였다.
잘못한 게 없는데 몰아가는 우리도 밉고, 엄청 억울하면서도 당장 이걸 되갚아 줄 수 없는 게 원통하고.
또 눈앞에서는 전기 찌릿찌릿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 같고.
결국 리혁이가 결단을 내렸다.
“이건 조선시대 광해군의 실리 외교와 같은 거예요. 당시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어느 쪽 편도 안 드는 줄다리기 외교를 했듯이, 실리적인 측면에서 내어 놓은 결정이에요.”
세리가 물었다.
“미안하다는 건가요?”
“……예.”
“와아아아-!”
사극에서 장군이 ‘우리가 이겼다’ 하면 병사들이 어설프게 승리 리액션을 하듯이 우리도 두 손을 들고 ‘우아아아’ 함성을 질렀다.
비주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분위기 너무 좋아요.”
“뭐가 좋은데요. 형.”
“이렇게 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너무 좋다아.”
못 들은 척 비주가 훈훈하게 웃는 가운데, 내가 리혁이의 어깨를 탁 짚으며 미소를 지었다.
손 떼라는 불손한 시선이 되돌아왔다.
“…뭐, 또 뭔데요.”
“우리에게 사죄를 하는 그대의 마음, 아주 잘 알아들었어요. 하지만.”
“…….”
“엄연히 일하는 자리인데 공사 구분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 진짜!”
“정말 리혁 씨의 손을 뜨겁게 불사지르기 위해, 저희 뉴블랙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 우리 파이팅 할까요?”
“좋아여!”
“하나둘, 화이팅!”
어느새 MC들까지 모여서 손을 모으고 하는 화이팅 구호에 리혁이가 제작진을 보며 말했다.
“아니, MC분들까지… 이거 불공정한 거 아니에요?”
카메라 하나가 피디 쪽을 잠시 향했다.
고 피디가 눈을 찡긋하면서 OK 사인을 그리는 모습이 찍히면서 리혁이가 잠시 말을 잃었다.
세리가 진행을 이어 갔다.
“자, 그럼 리혁 씨! 진실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활짝 웃으셔야 돼요. 여긴 카메라만 보고 있지만 2주 뒤에는 팬들이 보고 계실 테니까요.”
북북의 말에 리혁이가 뺨을 씰룩였다.
왠지 어금니를 가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면 내 착각일까.
“네, 안녕하세요. 시청자 그리고 팬 여러분. 보시다시피 늘 핍박을 받고 사는 메인보컬 리혁입니다. 본관은 달성 서씨고요.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교 3학년이 됩니다.”
“와, 참으로 안물안궁인 정보였어여.”
“지호야, 리혁이 기죽이면 못써.”
“으드득……. 노래 부르는 거랑 정리, 정돈 좋아하고요.”
“우주! 정리, 정돈이라고 너무 포장하시는 것 같은데. 솔직히 지저분하고 그런 거 보면서 치울 생각에 희열 느끼지 않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리가 버튼 위에 손을 올리자 북북이 말했다.
“판별은 진실의 전기 충격기만이 알고 있겠죠.”
“아. 신개념 전기 충격 판사님인가요.”
“찌릿찌릿한 판사님이네여.”
여기저기서 몹쓸 드립이 오갔다.
리혁이가 다시 한 번 대답을 하고 버튼이 꾹 눌리는 가운데 곧바로 판사님이 진실을 밝히셨다.
응. 거짓말.
“뜨아아아! 따따따!”
나는 따끔! 하는 수준이었는데 우리 민감한 애는 역시 그 반응이 남달랐다.
고장 난 고양이처럼 춤을 추던 리혁이가 손에 진실의 전기 충격기를 매단 채 소프라노 비명을 질러 댔다.
옥타브가 올라가는 게 무슨 아리아 같다.
비주가 말했다.
“허어… 아프겠다. 리혁아 괜찮아?”
“내가! 내가 다 가만 안 둘 거야! 기다려요!”
그 독기 어린 눈빛을 보며 중현이가 말했다.
“오, 사극에서 이거랑 비슷한 눈빛 본 적 있어요.”
“무슨 사극이요?”
“장희빈이요.”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 희빈 서씨인가여.”
뻘한 드립이 오갔다.
안쓰럽게 등을 토닥여 주는 비주를 제외하면 다들 놀리기 바빴는데, 리혁이가 잠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러곤 자기소개를 이어 갔다.
“네, 깨끗한 것을 조금은 좋아하고요. 더러운 걸 보면 치울 생각을 하면서 조금 신이 나요. 아주 요만큼. 저기서 희희낙락하는 어느 못돼 먹은 리더의 배포만큼요.”
“아하. 바다와 같은 크기로군요.”
“연못도 안 될 거예요. 형.”
“……중현아.”
이번엔 내가 당했다.
MC들과 다른 동생들이 깔깔거리며 놀리는 통에 잠시 동안 괴로움을 느껴야 했다.
리혁이가 피식 웃으며 소개를 이어 갔다.
“별명도 여러 개 있지만 저는 누구와 다르게 팬분들이 지어 준 별명은 모두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요.”
“그야 팬분들이 지어 준 별명은 몇 개 안 되잖아요. 죄다 우리가 만들어 낸 거라서.”
“네. 정확합니다.”
“우주! 그렇다면 질문하겠습니다. 난 사실 멤버들이 나를 놀릴 때도 관심 받는 거 같아서 기분이 은근히 좋다.”
“……아, 뭔 그런 질문을 해요.”
세리가 우리에게 물었다.
“평소에 놀리고 그러면 리혁 씨가 은근히 좋아하나 봐요?”
“네, 대놓고는 아닌데 은근 즐겨여. 집에서 저희끼리 모니터링할 때도 자기 파트 반응 안 해 주면 캐묻거든여. 소파에서 쿠션으로 몸 막 이렇게 거북이처럼 하고서 물어여. ‘아아. 저 파트 고음 진짜 어려웠는데…….’, ‘나 춤 늘었나?’ 이러고.”
지호가 완벽하게 누군가의 자세를 따라 하는 통에 다들 손뼉을 치며 큰 웃음을 터뜨렸다.
리혁이 본인도 보다가 웃겼는지 할 말을 잠시 잃은 듯했다.
북북이 비주에게 물었다.
“비주 씨, 지금 말없이 웃고만 있는데 어떠세요? 정말 리혁 씨가 평소 놀리면 좋아하나요.”
“어……. 리혁이가요. 외로움을 조금?”
리혁이의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왔다.
비주가 엄지와 검지로 손톱만큼의 틈을 두었다가 그 눈빛에 좁쌀만큼으로 줄였다.
“엄청은 아니고요. 아주 쪼끄으음? 타는 친구여서요.”
“아, 형까지 왜 그래요!”
비주가 시선을 회피하며 뺨을 긁적일 때, 내가 비주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역시 막타는 우리 비주 씨가 잘 쳐요.”
“저 잘했나요?”
정신없이 드립이 휘몰아치는 와중에 리혁이가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이거 언제 뺄 수 있나요? 한 십오 분째 이러고 있는 거 같은데.”
“아, 그럼요. 그럼, 우리가 진행도 빼먹고 있었네. 자, 그러면 리혁 씨 방금 질문에 대답을 해 줄까요?”
“……뭐, 이게 마지막 질문인 것 같으니까요.”
“누구 맘대로요?”
잠시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리혁이의 질문은 여기서 마무리를 짓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질문이기도 하니까. 솔직하게 이 자리에서 밝히겠습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눈을 크게 뜬 채 코를 벌름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지호가 웃으면서 무슨 연행되는 곰을 보는 토끼 탐정 짤 같다고 하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리혁이가 ‘이 인간들! 내가 진지하게 말하는데…’ 같은 식으로 노려 보길래 금세 평소대로 돌아왔다.
“새삼스럽겠지만요.”
리혁이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외로움을 좀 잘 탑…….”
“에헤이!”
새삼이라는 말에 버튼이 눌린 로봇처럼 우리들이 한바탕 트집을 잡는 시간이 이어졌다.
리혁이가 원통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말 좀 한 마디 하면 덧나요?”
“하세요.”
“어쨌거나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할게요. 외로움을 많이 타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뭐,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거 아니겠어요?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이 많든 적든 외로움은 언제나 존재하는 거예요.”
현학적으로 말하는 모습에 우리 모두 숨을 삼켰다.
얘 또 흑역사 적립하네.
분명 5년 뒤 즈음 보면 부끄러워서 괴로워할 발언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나 마냥 귀엽게 보는 두 MC와 달리 우리는 겉으론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습생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아왔던 리혁이의 속사정.
자세한 연유는 모른다.
나부터가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본인이 말하기 전까지 안 물어보는 편이기도 하고.
리혁이도 여기저기 자기 상처가 될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니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러나 외로움을 탄다는 것까지 모르지는 않았다.
혼자 내버려 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나 좀 봐 줘요’ 하는 것만 같다고 할까.
옆에서 책을 읽을 때도 나를 흘깃거리는 시선에 눈치를 채고 ‘책 제목이 뭐야?’ 하면 신이 나서 설명을 하고.
밥 안 먹는다고 하는 걸 비주가 은근히 팔을 붙잡아서 데리고 오면 은근 ‘아, 배 안 고픈데’ 이러면서 좋아서 먹기도 하고.
그런 까닭에 솔직하게 말한다는 리혁이의 말에 귀가 저절로 기울여지는 것 같다.
어느덧 잘 익은 홍시가 자리를 잡았다.
“외로울 때가 종종 있는데. 저도 아까 저희 리더인 우주 씨가 말한 대로 멤버들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놀리면 좋다는 건가여? 아닌 건가여?”
“…….”
“그래. 리혁아.”
내가 물었다.
“기야? 아니야?”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들을 내가 만나 버려서 이….”
“리혁 씨 대답해 주셔야 해요.”
“아, 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심심할 때 놀려 주면 조….”
우리의 고개가 동시에 기울어졌다.
조?
리혁이가 ‘조’를 다시 한 번 말했다.
“좋을 때도 있긴 해요.”
“얘들아! 리혁이가 좋대!”
“좋단다!”
“우주 형! 역시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요!”
“……뭘 안 틀려요. 이 과자 부스러기 같은 사람들아. 다 나가 줘요. 제발.”
정신없이 우리끼리 어깨동무를 하며 방방 뛰고, 한 명은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체념한 미소를 지을 때.
거짓말 탐지기의 버튼을 누르던 북북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곤 기계를 툭툭 쳤다.
“……어? 왜 이러지지.”
“뭔데?”
“누나, 이거 안 되는데.”
“그래? 네가 너무 살살 눌러서 그런 거 아냐? 비켜 봐. 북아. 이런 건 세게 꾹 눌러줘야…….”
세리가 다가와서 버튼을 누르더니 눈을 깜빡였다.
“안 되네?”
“뭐라고요?”
리혁이의 고개가 정확히 90도로 부러지듯이 두 MC를 향하더니, 다시 90도로 전방 카메라를 향했다.
곧바로 스탭들이 다가와서 거짓말 탐지기를 툭툭 두드려 보거나 기계를 정확하게 살폈다.
마치 정밀기계를 보는 수리공처럼 여분의 배터리를 갈아 끼우던 나이 든 스탭이 결론을 내렸다.
“고장 났어.”
“야! 이거 탐지기 여분 없어?”
“……없대요.”
그 모든 과정이 카메라에 담기는 가운데 리혁이의 얼굴이 점점 화병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홍시가 터질 것 같다.
코와 귀에서 성난 황소처럼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는 동안 비주가 옆에서 토닥토닥 달랬다.
우리 둘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러면…….”
“이 코너는 리혁 씨까지만 하는 걸로 하죠. 그게 더 웃기겠네요.”
“…….”
순간 리혁이의 입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더니, 이내 그 몸이 종이처럼 스르륵 의자에서 쓰러졌다.
털썩.
리혁이를 향해 클로즈업하는 카메라가 보였다.
“느아아아아!”
바닥에서 절규하는 리혁이의 모습이 나오면서 촬영장이 웃음바다로 초토화됐다.
* * *
예전에 봤던 드라마 한 장면이 떠오른다.
비가 콸콸 쏟아지고 있는데,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남자 주인공이 차에서 내려서 차량 본네트를 팡팡팡 치면서 허공을 향해 ‘쓰레기들아아아!’ 하면서 외쳤던 그 장면.
배경은 다르지만 여기서도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성량도 어찌나 좋은지 그 기세로 허공을 향해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고함에 다들 웃었다.
그동안 작가님들이 뭔가를 가져오더니 두 MC에게 건넸다.
비주의 어깨에 기대서 ‘난 정신이 나갔다’ 하는 얼굴을 하는 우리 애에게 세리가 다가가더니 소품을 건네주었다.
경계심 짙은 고양이 같은 눈빛이 스쳤다.
“……뭔가요?”
“작가님들이 위로의 선물로 주는 보석 왕관이래.”
“아니, 제가 고3 씩이나 됐는데…….”
“써 봐.”
문방구에서 팔 법한 가짜 플라스틱 왕관이었는데 그걸 씌우자, 리혁이가 곧바로 순해졌다.
우리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좋아한다.’
‘좋아하는 거 같죠?’
‘엄청 좋아하네. 왕관 쓰는 거.’
왕년에 놀이터에서 공주님 놀이라도 했던 가락이 있는지 왕관을 쓰고 좋아하고 있다.
이런 것 정도에 풀리다니.
삼류 악역처럼 우리 막내가 ‘저거 내 건데’ 하면서 은근 샘을 내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가 해피했다.
이런 난장판에서 세리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요즘 아이들에게 버거움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우리 애 키우는 거 이후로 이렇게 지친 건 오랜만인데. 아, 당 떨어져.”
“세리 씨. 정말 체력이 예전 같지가 않네요.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가.”
“……아니에요. 전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거예요. 북북 씨. 나와 당신을 동일 선상에 놓으면 안 돼요.”
“정말 20년째 배신을 당하네요.”
자기들끼리 만담을 주고받던 세리와 북북은 이내 나머지 세 멤버들에게 자기소개의 시간을 주었다.
간략히 끝나고 다음 코너로 바로 넘어갔다.
경찰서 테이블의 형사 자리에 앉은 이들이 용의자 석에 앉은 우리를 두고 말했다.
“이제 심층적으로 들어갈 텐데요. 그냥 하면 재미가 없겠죠?”
“네, 여기 여러분에 대한 프로필이 다 들어 있습니다.”
북북이 서류철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각자의 죄명을 부르게 될 텐데요. 그에 맞는 특기를 보여 주시면 됩니다.”
쉽게 말해 장기자랑이었다.
우리가 저마다 가진 바 재능을 선보일 시간.
“현장에서 지켜보는 제작진 투표로 그 순위를 결정짓게 됩니다. 그리고 그 꼴찌에게는 페널티가 있는데요.”
“자, 보여 주시죠.”
스탭 한 분이 따끈따끈한 떡볶이 세트를 가져왔다. 로고가 안 가려져 있으니 협찬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협찬답게 광채가 난다고 할까.
“오오……!”
스탭이 가까이 가져오더니 냄새를 맡으라는 듯 일부러 손바람으로 그 냄새를 휘저었다.
달콤한 떡볶이 냄새가 우리의 코를 간질거렸다.
“매니저분들에게 듣기로 공복이라면서요? 다들 아침을 안 먹고 왔다고.”
“네. 빈속이어야 녹화가 잘돼서요.”
내 대답에 세리가 공감한다는 듯 웃었다.
그러곤 벌칙을 말해 주었다.
“짐작하셨다시피… 꼴찌는 떡볶이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 그런 벌칙이…….”
“저어기 보이시죠?”
그녀가 쇠창살 쪽을 진행 카드로 가리켰다.
“저기 유치장에 갇혀서 다른 멤버들이 먹는 모습만 보게 될 거예요.”
“허어…….”
“참고로 저거 진짜로 잠겨요. 제가 아까 해 봤거든요.”
“오오…….”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리액션 부자처럼 호응해 주는 우리 모습에 세리와 북북이 웃었다.
떡볶이를 보며 의지를 불태울 때 첫 번째 주자로서 내가 바로 호명이 됐다.
그 전에 미니 건반이 하나 세팅됐다.
“우주 씨의 죄명에 이렇게 적혀 있네요. ‘어떤 주제든 노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죄’. 이게 뭔가요?”
“제가 멤버 중에서 작곡을 담당하고 있어서요.”
내가 답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로고송 한 번 만들어드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 * *
합의된 방송 내용이기는 하지만 프로그램 로고송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 투표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담당 스탭들이 수줍게 손을 들었다.
그 모습에 두 MC가 웃으면서 방송 분량을 만들 때.
미니 건반 앞에 앉아서 로고송을 만들겠다고 나선 리더의 듬직한 모습을 보던 뉴블랙 멤버들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와는 다른 리더의 진지한 눈빛 때문이었다.
‘떡볶이 많이 먹고 싶었구나, 우주 형.’
‘떡볶이네.’
‘눈에서 뭐가 이글거리는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 안 가서 나올 결과물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늘 아이돌 관련 음악만 만들던 터라 로고송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보여 줄 모습이 기대가 되기도 하고.
여러모로 뭐가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로고송을 어떤 식으로 만든다는 건가요?”
“네. 일단 제가 직접 두 MC분에게서 받은 느낌을 멜로디로 표현해 보고, 그걸 로고송으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오오, 기대 되네요.”
그와 함께 선우주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모니터 화면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고 피디가 조연출에게 속삭이면서 물었다.
“우리 2회 게스트가 누구였지?”
“데이드림이요.”
“녹화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걔네는 여유 있게 3회차로 넘기자.”
“네?”
피디의 시선이 스튜디오 정중앙에 머물렀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선우주의 모습이 카메라에 그림 같이 담기고 있었다.
의뭉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조연출에게 피디가 물었다.
“지금 녹화 반도 안 지났는데 이만큼이야. 얘네가 1회 분량으로 될 것 같아?”
“……으음. 뒤에 준비한 코너까지 따지면 확실히 1회 가지고는 어림도 없기는 하겠네요.”
“그래.”
“계속 이만큼 해 준다고 가정하면 2화까지도 타이트하게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떡밥이 무슨 개 사료처럼 쏟아지고 있어서…….”
“일단은 뒷 분량에서 어떻게 하는지 추이를 봐야겠지만 꼴랑 1회 내보내기는 무리야.”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두 연출자의 모습에 뒤에서 바라보던 로드 매니저 서민기가 웃었다.
그러곤 도원석에게 들으라는 듯 뿌듯하게 말했다.
“봐. 이게 우리 애들이야.”
“……아, 네.”
하지만 지금 신입 매니저에게 보이는 건 막내가 집중한 리더에게 혀를 내밀고 에베베베 하다가 딱밤을 얻어맞는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