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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8)화 (15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8화

룰은 간단하다.

과자 봉지를 하나씩 집어서, 포장을 개봉하고 먹는 동안 70 데시벨을 안 넘기면 된다.

그럼 성공.

그 다음 신곡 홍보를 하고 동생들과 화기애애하게 숙소에 돌아가는 미래를 그리려고 했는데.

연습 게임이 시작되자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중현이의 ‘ASMR’이 주문처럼 귓가에 맴돌아서 그런 걸까.

서로 얼굴만 봐도 웃겼다.

“푸흡-!”

그런 때가 있다.

절대 웃으면 안 된다고 각오를 하면 희한하게 그 다음부터 뭘 봐도 웃음이 나오는 때 말이야.

코를 벌름거리는 막내의 모습에 웃음을 참았다.

참자.

일단 꾹 참자.

허나 결심이 무색하게, 리혁이가 과자 봉지를 들고 씨름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리혁이가 접촉면을 양손의 손가락으로 붙잡고 있었다.

달달달.

얼굴에선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손은 파들파들 떠는 동안, 우리는 숨도 참은 채 측정계의 데시벨만 바라보았다.

찍!

이내 봉지가 촥! 열리면서 과자 가루가 사방팔방으로 흩날렸다.

“…….”

리혁이의 얼굴에 가루가 내려앉았는데, 밀가루 폭탄을 건드린 듯한 몰골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아… 진짜 웃지 마요! 사람 창피하게!”

“푸하하하!”

그런 식으로 연습 게임을 할 때마다 번번이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두 MC가 스포츠 캐스터처럼 중계를 했다.

“아, 이거 쉽지 않은데요.”

“지나가는 꽃만 봐도 웃음을 터뜨릴 기세에요. 과연 이대로 뉴블랙이 성공을 할 수 있을지…….”

“연습 게임부터 이런 난항은 정말 예상도 못했어요.”

“참 아쉬워요. 게임을 성공시켜야 뉴블랙이 신곡 홍보를 하고 갈 텐데.”

……아쉽다면서 왜 그렇게 웃고 있는 건데요. 선배님들.

우리끼리 한숨을 쉬었다.

“잘 좀 하자. 신곡 홍보 해야지.”

“당신이 문제에요. 당신이!”

리혁이가 속에서 열불이 난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까부터 옆에서 자꾸 숨을 푸합후합 쉬니까 내가 웃음이 나오는 거 아니에요.”

“리혁아. 그건 너의 잘못이야. 형이 어떻게 숨을 쉬든 웃음을 참아야지. 신곡 홍보가 얼마나 중요한데. 근성이 있어야지.”

“음?”

중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형, 방금 비주 보고 웃지 않았어요?”

“…….”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바, 반드시 녹여 먹어야 해!’하면서 진지한 얼굴로 과자를 입에 문 채 양 주먹을 꾹 쥐는데 어떻게 안 웃냐.

막내의 입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어내던 비주가 물었다.

“형, 저 보고 웃은 거였어요?”

“너만 보면 웃음이 나와서 그런가 봐.”

“……그래요?”

환하게 웃는 애를 보니 양심이 찔렸지만 저기다 대고 ‘너 방금 너무 웃겼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지금은 책임 소재를 따질 때가 아니야.”

“맞아여.”

연습 게임에서 제일 많이 웃음을 터뜨린 나와 막내가 그런 말을 하니 다른 멤버들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내가 말했다.

“이제 본 게임인데 최선을 다해서 소리를 안 내는 게 중요한 거지. 모두가 힘을 합쳐 함께 신곡 홍보를 얻어내자.”

“맞아요. 우리 힘내 봐요.”

비주가 손을 내밀면서 다 같이 화이팅을 했다.

우리가 작전 회의를 하는 동안 옆에서 귀를 쫑긋거리던 두 MC가 귀엽다는 듯 자기들끼리 웃었다.

“어머, 얘네 귀엽다.”

“저 나이 때 우리 보는 거 같아. 누나.”

“그치? 우리 많이 귀여웠는데.”

“……?”

그러다 우리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서로 당황한 시조새와 참새 시즌 2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조새들이 진행 카드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흠흠, 작전 회의 끝났으면 본 게임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네. 그렇죠. 지금까지의 연습 게임은 장난에 불과합니다.”

잠깐.

……뭐가 또 있어?

곧바로 제작진이 소품 바구니를 내밀었다.

코주부 안경이나 사극 수염 등을 보며 우리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뭐예요?”

“아. 너무 쉬울 거 같아서 미리 준비한 소품인데요. 준비한 걸 안 쓰는 건 좀 아까워서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네?”

저희 연습 게임도 버거웠는데요.

“대신 여러분께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도전 기회를 세 번을 다섯 번으로 늘리고요. 소품도 원하는 것을 쓰게 해드릴게요.”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

곧바로 소품 바구니에서 하나씩 쏙쏙 빼갔다.

그중 산타 수염을 가져가려는 중현이의 손을 붙잡았다.

“중현아.”

“……네?”

“너 그거 쓰면 나 웃다가 죽어.”

“음. 그럼 이건 어때요?”

“푸흡-!”

사극 수염을 얼굴에 붙여 보이는 중현이의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무 안 어울려서.

결국 최대한 귀여운 걸로 골라줬다.

“중현아. 이거 어때? 이거 어울린다.”

“그래요?”

“응! 우와아, 우리 중현이는 어쩜 이렇게 도깨비 뿔이 잘 어울릴까. 도깨비 실사화인 줄. 그치, 지호야?”

“맞아여. 잘생긴 꼬깔콘 같아여.”

고깔처럼 생긴 도깨비 뿔을 정수리에 올린 중현이가 턱 끈을 만지작거리면서 좋아했다.

오케이. 얘는 처리했고.

막내가 머리띠를 쓴 채 날 바라보았다.

“어때여, 형? 저 루돌프 같져?”

“썰매 잘 끌게 생겼네. 뿔도 녹용처럼 멋있고.”

“우와앙.”

순록 뿔 머리띠를 한 막내가 흥겨운 어깨춤을 췄다. 그걸 보며 웃다가 나도 바구니에 손을 뻗었다.

“그럼 난 이걸…….”

우리 애들이 흠칫했다.

“이거 괜찮은 거 같은데…….”

절레절레.

“아니야?”

끄덕끄덕.

핑크색 토끼 모자를 노렸지만 거기로 손을 뻗을 때마다 동생들이 ‘그건 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포기하고 점을 하나 골랐다.

김덕순 여사가 좋아했던 드라마의 주인공이 그러했듯 눈 밑에 점을 콕 붙였다.

옆에서 스쿠버 고글을 쓴 비주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이내 리혁이까지 악마 뿔 머리띠를 한 후 우리는 결연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연한 각오와 함께 서로를 3초간 응시한 후.

“푸핫-!”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행히 본 게임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진지하게 도전했다.

웃는 건 웃는 거고, 일은 일이었다.

다만 성공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첫 번째 시도에서 막내가 과자를 뒤적이다가 70 데시벨을 넘겼고.

두 번째 시도에서는 비주가 과자를 뜯다가 찌이익- 소리가 나면서 70 데시벨을 넘겨버렸다.

“그럼 세 번째 시도 도전하겠습니다!”

연습 게임을 몇 번 하면서 우리는 일종의 전략을 짰다.

다 같이 과자를 집거나, 다 같이 봉지를 뜯으면 소리가 커지니 차례대로 도전하기로 말이다.

그런 연유로 첫 주자로서 내가 나섰다.

엄지와 검지를 조심스럽게 벌려서 비닐봉지의 끄트머리를 집어 끌어올렸다.

톡.

과자 봉지가 바구니를 건드리면서 동생들이 숨을 삼켰다.

봉지 앞에 바로 놓인 데시벨 측정기에서 순간 색이 변하면서 눈금이 확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화이티이이잉-’

‘우리 이번엔 해내요오오-’

‘조요오옹히 해요. 이 사람들아아아아-’

미세한 박테리아들이 보내는 듯한 응원소리에 지켜보던 스탭과 MC들이 뺨을 씰룩이거나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과자 봉지를 뜯었다. 몇 번의 동작 끝에 터득한 움직임이었다.

그야말로 소리 하나 없는 무소음의 경지였다.

이내 70 데시벨 이하의 먹방까지 성공.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네 명이 세레머니로 파도타기를 하듯이 엄지를 들었다가 내려 주었다.

“…….”

이내 긴장한 얼굴로 리혁이가 나섰다.

봉지를 뜯을 때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면서 살짝 불안했지만 곧바로 무난하게 성공시켰다.

다시 엄지 세례가 이어졌다.

세 번째 주자는 중현이었다.

워낙 동작 모션도 크고 숨 쉴 때마다 데시벨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요주의 인물.

내가 주먹을 들어 보이며 속삭였다.

‘가라, 중현몬.’

곧바로 앞발을 든 곰이 화답했다.

‘중현몬, 출동.’

비주가 순간 웃을 뻔했지만 옆에 있던 막내가 그 입을 텁 막았다.

내게 책망의 시선을 보내는 리혁이를 외면하면서 중현이에게 잘하라는 듯 응원했다.

이내 중현이가 과자 바구니를 향해 손을 뻗고는 하나를 집었다.

오케이.

잘했다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 이내 문제가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접착제가 잘못 붙은 건지, 비엔나소시지처럼 과자 봉지들이 서로 달라붙어서 따라 나왔다.

툭.

투두둑 떨어져 나온 과자들이 봉지에 들어갈 때, 한 과자가 떨어지더니 바닥에 떨어…….

‘……!’

다행히 바구니 바깥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일촉즉발의 순간.

깨달았다.

저거 떨어지는 순간 넘긴다.

도깨비 뿔을 단 중현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바구니 앞으로 다가갔다.

‘……!’

마음이 급했다.

우리가 양손으로 X자를 그리거나 손을 내저으며 속삭였다.

‘땨! 땨!’

‘뜨뜨뜨뜨!’

‘니니!’

너무 급해서 외계어들이 남발됐다.

무인도에서 비행기를 향해 SOS를 그리는 사람처럼 절대 아무 짓도 하지 말라는 우리 신호에 중현이가 몸을 굽힌 채 멈췄다.

일시 정지.

고개가 돌아갔다.

‘그럼 어떻게 해?’하는 눈이었다.

그러는 동안 비주가 수습하기 위해 아기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 대롱대롱한 곳에 손을 뻗으려고 할 때.

지호가 얼른 자리로 돌아가는 듯 중현이에게 손짓했는데, 나는 반대로 만류했다.

‘땨!’

‘뜨?’

서로 의견 충돌이 있는 가운데 중현이가 가, 말아, 가, 말아 하면서 혼동이 왔는지 몸을 움찔했다.

그러다가…….

톡.

과자가 떨어졌다.

모두가 숨을 죽였지만 다행히 과자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60 데시벨을 아슬아슬하게 넘기다가 사라졌다.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중현이가 안심한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바닥에 떨어진 그 과자를 밟았다.

바스락.

그러곤 균형을 잃었는데…….

‘어어.’

미끄러지기는 하는데 쓰러지면서 균형을 잡다가 바구니에 엉덩이가 쏙 들어갔다.

한 팔로는 바닥을 짚고 있었는데 무슨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

윗부분 과자 봉지들이 중현이의 바지에 닿는 모습에 리혁이가 저거 못 먹는다며 헛구역질을 했다.

‘…….’

이 참신한 개판에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스탭들은 물론이고 모두가 얼빠진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개미 지나가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함.

이내 중현이의 팔을 더듬더듬 움직이더니 균형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바구니도 같이 올라왔다.

‘……큽!’

평온한 얼굴.

하지만 꽁무니에 바구니가 달라붙어 있으니 마치 개미가 서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

개미보다는 뭐라고 할까.

머리에 솟은 도깨비 뿔.

균형을 잡기 위해 뻗은 두 팔. 그리고 묘하게 어울리는 갈색 바구니와 오늘 의상까지.

저 기품 있는 모습은 뭐라고 할까…….

개미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늠름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리혁이가 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장수풍뎅이?’

그와 동시에 카메라 뒤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푸흡-!”

웃음을 참지 못한 스탭들이 먼저 웃음을 터뜨린 거였다.

*   *   *

세 번째 시도에 실패했지만 우리는 결국 제작진으로부터 성공 판정을 얻었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방송 녹화 시간이 얼마 안 남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작진은 처음부터 기회를 줄 마음이었던 것 같다.

다 실패해도 삼행시 찬스! 이런 걸로.

모든 소품이 치워진 가운데 원래대로 돌아온 경찰서에서 우리는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푸흡-!”

북북이 중현이의 얼굴을 보다가 그만 웃음이 터졌다.

“중현 씨 얼굴만 봐도 웃기네요. 이제는.”

“이제야 저희 마음을 이해해 주시네요. 선배님.”

“네에… 크흡. 충분히 이해가 되네요. 처음에는 왜들 중현 씨 얼굴만 보면 웃나 했더니.”

늠름한 장수풍뎅이의 모습이 모두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제작진 중에서도 자꾸 실없는 웃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고 피디도 아까 흥분해서 ‘저… 저 친구는 예능 신이 돕나 봐!’ 하는 말을 옆 사람한테 하던데.

그런 열렬한 반응을 얻어낼 만큼 여러모로 알차게 분량을 뽑아내기는 했는데.

“허어…….”

왜 자꾸만 한숨이 나오는 걸까.

이 미묘한 허탈함의 정체를 모르겠다.

과연 우리의 이미지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겉으론 예능용 미소로 웃고 있지만 속에서는 뭔가 허한 느낌이 났다.

북북이 말했다.

“자, 그러면 약속대로 신곡 홍보 한 번 가 볼까요?”

“네! 저희 마스커레이드 보여 드리겠습니다!”

두 MC가 옆으로 비켜 서 있는 동안 우리 다섯이서 무대 대형을 맞췄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대충 경찰서 내부에서 활동 가능한 반경을 둘러보면서 간격을 좁혔다.

판단을 내린 후 퍼포먼스 담당에게 물었다.

“두 발자국 정도 줄일까, 비주야?”

“음… 조금 더 좁혀야 할 것 같아요. 형. 세 발자국 정도.”

“오케이, 그 정도로 가자.”

아무래도 공간이 협소한 탓에 꽃처럼 활짝 펼쳐지는 마스커레이드 안무를 제대로 선보이기가 난감했다.

첫 동작을 시범 삼아서 맞춰 본 후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됐습니다!”

“네, 그럼 마스커레이드 하이라이트 파트! 감상하겠습니다!”

빵빵한 스피커에서 노래 하이라이트 파트가 흘러나왔다. 곧바로 바뀐 간격에 적응해서 무대를 선보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격한 안무를 하고 나니 잠시 땀이 한 방울 맺힐 정도.

우리가 마무리 대형으로 서서 카메라를 지그시 바라보자, 이내 두 MC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이야! 너무 멋있는데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래도 끝은 멋있게 마무리했네요. 우리 뉴블랙!”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놀리는 선배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이제 방송을 마무리하면서 시청자에게 멘트를 남기라고 하기에 내가 대표로 나섰다.

“네, 시청자 여러분! 정말 방송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부족한 면도 많지만 부디 예쁘게 봐주셨으면 해요.”

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 수플레!”

뒤에서 동생들이 손을 흔들면서 하트를 그리거나 어깨춤을 춰 댔다. 뒤를 잠시 돌아보다가 웃었다.

“이런 추한 모습들을 보이고도 좋아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네, 이런 저희라도 어여삐 여기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희 평소에는 안 이러는 거 알죠? 예능이라 의욕이 앞서서 그래요.”

“맞아여. 그런 거예여.”

“그리고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한 이후 첫 번째로 진행하는 녹화라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저희 신인입니다. 많이 배가 고파요. 그러니 열심히 먹고, 올라가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진지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는 입술을 뗐다.

“잊어 주세요. 오늘 방송…….”

말끝을 흐리며 허공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촬영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현실 웃음을 터뜨렸다.

*   *   *

“고생했어!”

“고생 많으셨습니다!”

촬영장을 정리하는 스탭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스튜디오를 나섰다.

매니저들은 피디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고, 우린 1층 현관으로 내려와 바깥 공기를 맡았다.

한 5초 정도.

쌔애애앵- 하는 겨울바람에 다들 ‘추워!’ 하면서 다시 안으로 도망쳤다.

“후우…….”

어느덧 한낮이 된 바깥을 보는 동안 모두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흘러나왔다.

한숨이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대체 우리 오늘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뭘까. 엄청나게 열심히 뛰었는데 상처만 남은 이 기분은.”

“그래도 우리 수플레들이 보고 좋아할 거예여.”

“……좋아할까?”

서로 쳐다보다가 허허 웃으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주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힘썼다.

“그, 그래도 아침 녹화가 이런 건 좋네요. 촬영을 다 끝내도 낮이잖아요.”

“맞아. 하루를 알차게 쓴 느낌이라서 좋아.”

“그리고 친분도 다졌잖아여.”

첫 회 게스트로서 몸을 아끼지 않고 불살랐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지, MC들이 먼저 다가와서 폰 번호를 찍어 주었다.

‘심심하면 연락해. 우리가 밥 사줄게’라는 말과 함께.

막내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저희 전화번호부에는 세리 선배와 북북 선배의 전화번호가 있는 거라구여.”

“……그럼 뭐 하냐. 우리 오늘 다들 흑역사가.”

리혁이가 말을 하다가 말았다.

고양이에게 경고장을 보낸 자.

솔직하게 말했는데 거짓말 탐지기가 고장 난 자.

신조어를 몰라서 슬펐던 자.

이제 방송이 나가고 나면 학교 친구들로부터 ‘성장기냐, 왕지호? 깔깔깔!’하는 소리를 듣게 될 자.

그리고 장수풍뎅이.

……마지막이 가장 강력했지만 정작 우리 래퍼님은 후드 잠바에 손을 집어넣은 채 태평히 웃고 있었다.

흑역사도 본인이 흑역사라고 생각해야 흑역사가 되는 법 아니던가.

그런데 중현이에겐 수치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얘 지호랑 같이 하는 모바일 게임 아이디도 ‘대길이 친구’일걸.

멀찍이서 가로수 위에서 노니는 까치들에게 손을 흔드는 자연인을 보며 우리끼리 수군거렸다.

내가 말했다.

“역시 풍뎅이는 행복하구나.”

“나도 저런 마이웨이로 한 번 살아 보고 싶어요.”

“걱정 마. 넌 이미 그 길을 걷고 있어. 리혁아.”

“……조용히 해요. 진짜.”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매니저들을 기다릴 때였다.

핸드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누구에여?”

“우리 매니저님.”

매니저는 매니저인데, 다름이 아닌 우리 실장님이었다.

메신저로 보낸 파일이 도착해 있었다.

[첨부] TBC_연말가요제_신인_합동공연_개요

애들이 내 곁에 달라붙었다.

“뭐예요?”

“석환 형이 보내준 건데, 우리 연말가요제 합동 공연 관련해서 드디어 픽스됐나 봐.”

“아, 합동무대요?”

“누구여? 우리 누구랑 한데여?”

“잠시만.”

곧바로 다운로드를 한 파일을 열어본 우리는 오랜만에 바라보는 이름에 눈을 깜빡였다.

HBS처럼 남녀 신인 합동 무대 시키는 건가 했는데.

첨부된 파일에 적힌 이름을 보며 잠시 눈을 깜빡였다.

“……스트릿 보이즈?”

작년 연말 평가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쭉 경쟁을 해온 라이벌 그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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