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9)화 (15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59화

22장. 신인에게 연말이란

스트릿 보이즈.

우리와 계속해서 라이벌 구도로 엮여왔던 보이그룹의 이름에 우리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에서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기에 밖으로 나왔다.

골목길에 패딩을 걸친 다섯이 옹기종기 모였다.

“뭐, 나쁘지 않네요.”

리혁이가 허연 입김을 뿜으며 말했다.

“거기 실력 하나는 확실하잖아요. 합만 잘 맞으면 무대 퀄리티도 괜찮게 뽑을 수 있고.”

“맞아여. 그 형들 잘해서 우리가 많이 졌잖아여.”

“……형들 마음 아프게 하면 안 돼. 지호야.”

비주가 막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웃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는 합동평가 때마다 스트릿 보이즈한테 졌다고 했었나.

동생들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오랜 패배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그 위로 스쳐지나간다고 할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어떤 지점에서 생각이 멈췄는지, 다들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보았다.

“…….”

뭔가 쳐다보는 눈빛들이 다들 미묘했다.

마치 사랑스러운…….

물건?

얘들아?

“……뭐냐. 이 불손한 시선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말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다들 입가에 흐뭇함이 가득했다.

마치 장롱 안에 꽁꽁 숨겨둔 금두꺼비를 보고 웃는 탐관오리 같았다.

황당했다.

“야, 어떻게 형을 물건 보듯이 바라보냐.”

“물건이라니요. 절대 아니에요.”

비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형은 보물이에요.”

“…….”

리혁이가 말을 보탰다.

“토템 같은 존재죠. 노래 만드는 토템.”

“…….”

“맞아. 형은 냉면 속 계란이에요.”

중현이의 막타에 뒷목을 붙잡자, 동생들이 키득거렸다.

카메라로 이걸 찍지 못한 게 한이다. 수플레들한테 보여줘야 되는데.

여러분. 보세요.

얘네가 얼굴만 요정이지 마음씨는 요괴예요.

“진짜 새삼스럽긴 하네여.”

막내가 내 어깨에 머리를 쏙 얹었다.

“예전에는 스트릿 보이즈 형들 이겨보겠다고 엄청 용 썼잖아여. 막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는데.”

“이젠 아니야?”

“넹, 형이 오고 난 다음부터는 느낌이 좀 달라졌어여. 해볼 만한 느낌?”

“흐음…….”

확실히 애들 표정에 여유가 붙기는 했다.

우리가 이런저런 지표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최근 붙었던 상대가 상대여야지.

TNT랑 붙고 나면 어느 그룹이든 상대적으로 약해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그룹을 가볍게 여겨서는 곤란했다.

연예계는 하루하루가 다른 곳이다.

당장 우리가 좀 더 앞서 있다 하더라도, 내일 직캠 대박으로 경쟁자가 확 떠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

동생들의 표정을 조심히 살폈다.

혹시 우리가 더 잘 되고 있다는 이유로 여유를 느끼는 거면 곤란한데.

자신감의 근원은 변하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성적을 자신감의 근거로 삼으면 역전 당했을 때 멘탈 감당이 안 되거든.

연습생을 시작했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얻은 교훈이었다.

물론 우리 애들이 그럴 성격이 아니긴 했지만 리더로서 노파심이 들었다.

동생들에게 부드럽게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였다.

“어휴. 하여간 왕지호.”

리혁이가 혀를 찼다.

“언제부터 우리가 더 잘했다고 기고만장이냐. 하여간. 배가 불렀어.”

“저도 알거든여?”

내 어깨에 턱을 얹은 막내가 입술을 비죽였다.

“그냥 기분 좀 내고 싶었단 말이예여. 우주 형도 우쭈쭈해줄 겸.”

“우쭈쭈?”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니 손을 쑥 내밀고는 내 턱을 간질이며 우쭈쭈 했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막내의 옷깃을 잡고 ‘이놈의 자식’하며 장난스럽게 웃는 동안, 비주가 막내를 타일렀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거 알지, 지호야?”

“……알아여. 형.”

지호가 축 늘어진 얼굴로 말했다.

“아니, 제가 철이 없는 거지 생각이 없는 건 아니라구여. 저도 알아여.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거.”

그러더니 으으으 소리를 냈다.

“그냥 한 마디 해본 건데 잔소리만 벌써……. 그나마 오늘은 우주 형이 느끼하게 웃으면서 ‘지호야, 정신 똑디 차려’ 안 해서 다행이긴 한데.”

뜨끔했지만 아닌 척했다.

“……흠흠.”

한편 속으로는 적잖이 안심이 됐다.

왜냐하면 신인상과 음악방송 1위를 한 이후 나부터가 마음이 풀어지려던 터였다.

곧바로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그런 유혹이 들긴 했다.

그래서 동생들도 그런 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혹시 이 모든 결과를 우리가 잘나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할까 봐.

가장 철이 없는 우리 막내마저도 운이 따랐다고 생각할 정도면 다른 멤버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중현이가 아무 말이 없기는 했지만…….

입에 손을 모으고는 까치들을 향해 ‘구구구’ 하는 애에게 무슨 말이 필요한가 싶다.

“쟤 뭐하는 거니?”

“몰라요. 까치 소환술이라도 쓰나 보죠. 저런다고 까치가 대답을…….”

까악! 까악!

“…….”

다 같이 훈훈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문서를 읽어 내렸다.

“분량은 2분 10초 내외…….”

“빠듯하네요.”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TBC 연말가요제에서 우리는 합동무대만 하는 게 아니었다.

썸씽을 별개로 쳐도 2분 30초짜리로 편곡된 마스커레이드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4대 기획사라면 모를까.

아무리 주목 받는 신인이라고 한들 방송국에서 신인에게 도합 5분 이상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

2분이라는 제한시간 동안 뭘 보여줘야 할까.

그 페널티를 어떤 식으로 이용할지 고민하는 동안 우리의 시선이 주제에 이르렀다.

“90년대 나왔던 노래 커버하기?”

“이거 요새 유행하는 거네여. TV에서 이런 무대들 하잖아여.”

12월 들어서 유행하고 있는 연예계 트렌드였다.

과거 이름을 떨쳤던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가수들을 불러서 재결합 시키고 그들이 무대를 하면서 시청자들이 함께 울고 웃는.

최근 주세한의 추억여행 특집에서 시작된 유행이었다.

“참 좋은 노래 많았지.”

어렸을 때 유행했던 노래들을 떠올리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랑 아빠가 있던 때여서 그런 건가. 희한하게 애기 때 들었던 노래들은 전부 다 듣기 좋았다.

몇 개는 지금도 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울 수 있었다.

중현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형, 저랑 두 살 차이 아니었어요?”

“…어디 보자. 무슨 노래를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나려나?”

어차피 결론은 스트릿 보이즈 측이랑 이야기를 나눈 뒤 날 테지만 우리끼리 먼저 의견을 교환했다.

곧이어 이런저런 곡이 나왔다.

90년대 히트곡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실감하는 동안 비주가 의견을 개진했다.

“합동무대니까 서로 합이 맞는 노래여야 하지 않을까요? 스트릿 보이즈는 힙합 쪽이니까, 기왕이면 힙합이랑 보컬이 잘 섞인 노래로요.”

비주의 말이 맞았다.

우리와 스트릿 보이즈 모두에게 어울릴 만한 노래로 하면 좋을 텐데.

고민이 깊어질 때, 지호가 코를 훌쩍였다.

“으, 춥당. 근데 매니저 형들 왜 이렇게 안 내려오는 거예여?”

“아마도 로고송 때문일걸.”

“우와. 그거 진짜 쓰나 보네여? 저 아까 선배님들이 립서비스로 해 준 말인 줄 알았는데.”

“넌 귀가 없냐. 왕지호. 듣는 순간, 딱 이거다 싶더만.”

“맞아여. 제 귀는 막귀예여.”

막내가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색깔이 변하진 않져.”

“……이이!”

이내 두 녀석이 패딩 소매로 서로를 공격하며 혈투를 벌일 때, 얼마 안 가 거대한 누군가가 현관 문을 밀고 나타났다.

“어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패딩 때문에 안 그래도 덩치가 더 커 보이는 우리 산적, 아니 로드 매니저 도원석 씨였다.

그가 미안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많이들 추웠죠? 매니저님 전화 연락 도와드려야 해서……. 겨우 짬이 나서 내려왔어요.”

“어, 아니에요. 하나도 안 추웠…….”

손사래를 치며 말하는 순간 리혁이가 흐에취! 하면서 코를 훌쩍였다.

“…….”

가뜩이나 미안함으로 가득했던 우리 매니저의 얼굴이 자책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추울 것 같아서 이거 챙겼는데. 얼른 받아요.”

“헛… 고맙습니다.”

뜨끈해진 손난로를 하나씩 건네주는 매니저에게 우리가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한편 차키를 든 매니저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합동무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   *   *

같은 시각.

“로고송 관련해서는 팀장님이랑 연락을 해 봐. 지금 외부 미팅 중이라서 시급을 다투는 건 아니면 나중에 보고하고.”

-예, 알겠습니다.

윤석환 실장이 통화를 종료하고 품에 핸드폰을 넣었다. 그러곤 맞은편에 앉은 상대에게 미소를 보였다.

“현장에서 급한 연락이 있어서요.”

“아아.”

DNS 미디어의 박 실장이 커피 한 모금을 들이키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로고송이면… 그, 우주라는 친구가 뭘 또 만들었나 봐요?”

“뭐, 비슷합니다.”

애매모호하게 대답을 하자 상대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말았다.

우주가 또 뭘 했다는 소식 때문에 되게 신경이 쓰이기는 하는데, 체면상 더 캐묻기는 어려운 표정이었다.

예의를 차린 미소를 짓는 한편 윤석환은 속으로는 환하게 웃었다.

‘잘했다. 우주야.’

제비도 아닌데 좋은 소식만 가져오는 녀석이었다.

서민기를 통해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우주가 아이돌쇼에서 시범 삼아 만든 로고송을 두 MC와 제작진 측이 몹시 마음에 들어 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건 진짜 중요한 소식은 아니었다.

‘2부 편성이라니…….’

원래 아이돌쇼는 1회 게스트로 출연을 약속했을 뿐 2부에 대한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현장 제작진이 직접 분량을 체크해서 이건 2부라고 판단했다는 건, 뉴블랙이 해당 방송에서 정말 잘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실이 기특했다.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연예인에게 할 일을 가져오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연예인이 누구보다 잘 해냈을 때 가장 뿌듯하고 기쁜 감정을 느낀다.

물론, 이 경우에는 시작부터 뉴블랙을 방송국 로비에서 만난 배종건 피디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기쁜 건 매한가지였다.

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이번 TBC 연말 무대 때문에 이렇게 만나게 됐는데,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경쟁하는 회사의 직원들이었지만 더 없이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미팅이 시작됐다.

주제는 딱 한 가지였다.

TBC 연말가요제 합동무대의 업무분담.

연말에 진행하는 스페셜 무대는 보통 방송국에서 피디가 ‘이런 무대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기획을 써서 보내면 소속사들이 OK를 하고 준비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가 여럿인 만큼 조율할 사항이 많았다.

의상은 누가 준비할 것이고, 안무는 누가 짤 것이며, 노래는 누가 선곡할 것인지 등등.

뉴블랙과 스트릿 보이즈의 실장들이 업무 분담에 관한 합의를 보는 동안 마지막 의제인 노래가 나왔다.

박 실장이 물었다.

“노래 선정은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일단 두 그룹의 멤버들끼리 의견을 나눠보도록 해야죠. 퍼포먼스를 하는 건 가수들이니까.”

“……예?”

상대가 고개를 갸웃했다.

“애들한테 맡긴다고요? 이런 건 회사가 결정을 해줘야죠.”

“아티스트 의견을 우선시하는 게 회사 방침이어서요. 좋든 나쁘든 먼저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합니다.”

“흐음, 이 부분은 의견이 좀 다르네요.”

방임주의에 좀 더 가까운 레몬과 철저한 관리를 중시하는 DNS의 입장 차이가 잠시 대립했다.

하지만 이내 박 실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노래는 레몬 측에서 결정하기로 했으니, 뭐 의견 듣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조만간 시간 마련할게요.”

“예,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좀 회의적이네요.”

상대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물었다.

“애들끼리 얘기하는 게 의미가 있나요? 뭐가 많이 나오고 그럴 것 같지도 않은데…….”

“아.”

윤석환 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지켜보면 아실 겁니다.”

*   *   *

오후 스케줄까지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니 석환 형이 번호가 적힌 메모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스트릿 보이즈 번호.”

“아하.”

…라는 말과 함께 동생들과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바라보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번호가 하나인데?”

“핸드폰 하나 가지고 쓴대.”

“아, 맞다.”

지난 7월 라디오에서 만났을 때 그랬지.

회사에서 관리가 철저한 편이라서 연락용으로 구형 폰 하나만 쓴다고.

“우와.”

자기 손에 들린 핸드폰을 바라보면서 막내가 말했다.

“이걸 못 쓴다니 불쌍해…….”

“그러고 보니 너희도 못 쓸 뻔한 적 있었는데.”

석환 형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너희 데뷔하기 전에 핸드폰 관련해서 얘기 나온 적이 있었거든.”

“무슨 얘기?”

“다른 기획사처럼 우리도 애들 핸드폰 사용 금지 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 뭐 그런 얘기 말이야.”

처음 듣는 이야기에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눈을 빛냈다.

“그래서 얘기가 어떻게 됐는데?”

“바로 기각됐지.”

“왜여?”

다시 생각해도 그 사유가 웃겼던지 석환 형이 픽 웃었다.

“너희가 너무 열심히 해서.”

“……?”

“보통 휴식 시간을 주면 놀기라도 해야 하는데, 너희가 어지간했잖니. 휴일마다 회사 나와서 연습하지. 회사 안 들여 보내줬더니 주변 노래방 가서 연습하지를 않나.”

“우리가 열심히 하긴 했지.”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그런 모습에 회사도 감동을 한 건가.

요, 갸륵한 것들! 하면서 폰을 쓰게 해줬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기다릴 때였다.

“역시 우리가 기특했던 거였구나.”

“그건 아니고…….”

석환 형이 웃었다.

“너희가 재미없게 살아서.”

“……?”

“그런 얘기가 있었어. 휴일에도 뭐하고 놀지 몰라서 숙소에서 자는 애들이다. 가뜩이나 재미없게 사는데 핸드폰까지 뺏는 건 인간적으로 아니지 않냐 하는…….”

상상도 못한 진실에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불쌍해서 준 거였어?”

“아니. 그 불쌍보다는.”

“…….”

“그, 어…….”

석환 형이 수습을 시도했다.

“당연히 너희가 기특해서 그런 것도 있지. 열심히 하니까 뭐라도 잘해주자 하는 그런….”

“…….”

하지만 이미 상황은 늦은 터였다.

무슨 말을 해도 우리의 기분을 되살릴 수 없음을 깨달은 실장님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밥.”

“……밥?”

“저녁으로 비싼 거 시켜줄게.”

“그런 걸로 우리가…….”

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입이라도 내리고 말해라. 얘들아.”

시무룩하게 시들었던 우리가 다시 활짝 만개하는 모습에 석환 형이 헛웃음만 지었다.

*   *   *

사랑하는 실장님이 시켜준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은 후, 우리는 푸근한 얼굴로 작업실로 돌아왔다.

비주가 깎아주는 사과를 집어먹던 막내가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도 동의할 수 없어여.”

“뭘?”

“우리처럼 재미있게 노는 사람이 어디 있다구여?”

여기저기서 ‘맞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어 교재 고급 편을 읽던 리혁이가 말했다.

“뭐, 꼭 남의 기준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나요? 내가 재미있으면 된 거지.”

“캬. 우리 리혁이 간만에 옳은 말 하는구나.”

“난 언제나 옳으니까요.”

거만하게 말하는 녀석을 보며 웃었다.

노트북을 켜고 90년대 노래를 검색하는 동안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생들에게 물었다.

문득 떠오른 것 때문이었다.

“근데, 얘들아.”

“……?”

“우리 평소에 뭐하고 놀았지?”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

열심히 머릿속으로 기억을 검색하고 보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마찬가지였다.

“뭐야. 왜 기억이 없지…?”

“어, 그때 있는데. 그때.”

비주가 손을 들고 말했다.

“추석 때 가족들 다 같이 모여서 놀았잖아요.”

“우주 형이 쓰러지는 바람에 다들 뒤풀이도 못하고 호텔로 바로 돌아왔을 때여? 우리가 침대 옆에 바짝 붙어서 쉬지도 못하고 간호했을 때?”

“그때 힘들었지.”

“…….”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빼면 특별히 별 사건이 없었다.

그러곤 깨달았다.

“……정말 우리 노잼이었구나.”

“대신 활동이 유잼이었잖아여.”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리혁이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우리가 놀았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을 걸요.”

“뭐가?”

“다들 하루 동안 시간이 생긴다면 해 보고 싶은 거 말해 봐요.”

다들 한 마디씩 했다.

“하루 종일 게임이여.”

“회사에 나오면 안 되는 조건이야? 그러면… 난 유명한 카페 가서 디저트.”

“텃밭 가꾸기.”

“하루 종일 음악 들으면서 누워있을 거야. 리혁이, 너는?”

“서점 가서 책 고를 거예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모두 충격적인 얼굴로 깨달았다.

“애초에 글러먹은 거였구나…….”

서로를 가엽고 딱하게 바라보던 우리가 이내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글러먹은 거 일이나 하자.”

“맞아여. 우린 일할 팔자인가 봐여.”

어차피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제 곧 저녁 7시.

합동무대와 관련해서 스트릿 보이즈와 연락을 나누기로 한 시간이었다.

내가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는 동안 막내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근데 스트릿 보이즈 분들이랑 얘기 어떡하져? 우리 완전 재미없는 애들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에여?”

“그러게.”

“큰일이네요. 이거.”

모두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   *   *

같은 시각.

스트릿 보이즈 숙소.

둥글게 모여 앉은 아홉 명이 핸드폰 하나를 가운데 둔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큰일 났다.”

“어떡하지. 야, 뉴블랙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 뭐라고 말해야 돼?”

“그니까. 우리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여기저기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들 말도 잘하고 엄청 잘 놀게 생겼던데…….”

“큰일이다, 큰일. 뭐라고 말해야 되냐. 진짜.”

“이러다가 우리 노잼인 거 들통 나는 거 아니야?”

참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멤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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