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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5)화 (16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5화

“아… 안녕하세요.”

“으흠. 안녕하세요.”

스트릿 보이즈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민망한 얼굴로 시선 둘 곳을 찾아 눈을 헤맸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특별히 대화는 없었다.

어색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바로 저쪽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상대측 매니저 박 실장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그나마 방송국에서 시킨 무대여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우리와 스트릿 보이즈가 잘 지내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이었다.

가볍게 눈인사만 나누었다.

‘화이팅!’

주먹을 쥐어 보이는 한조에게 미소로 답했다.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한 것도 잠시 상대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우리는 체통을 버렸다.

“아으, 추워. 추워!”

“춥다. 추워도 너무 추워.”

날이 너무 추웠다.

12월 31일.

오늘은 2014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TBC 연말 가요제의 생방송 무대가 있는 날이었다.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이따 무대에 올라가서 1분 정도 커팅된 2분 30초짜리 마스커레이드 무대를 하고.

그다음에는 11시 55분쯤에 다 같이 무대 위로 올라가서 새해 타종을 보고 환호하는 것 정도.

일정은 특별할 게 없었지만 장소가 특별했다.

“흐어어…….”

숨을 쉴 때마다 입과 코에서 나오는 숨이 허연 유령처럼 붕붕 떠다녔다.

그나마 다섯이 펭귄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체온을 나눴는데도 너무 추워서 어쩔 줄 모를 정도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가 뻥 뚫리면서 동시에 콧속 점막이 꽁꽁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지호가 울상을 지었다.

“흐아아, 야외 무대라고 해서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제 자신을 한 대 콩 때려 주고 싶어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지호야. 셀프로 한 대 때려.”

막내가 내게 눈을 흘겼다.

어쨌거나 이만큼 추운 이유는 바로 우리가 상암동 TBC 사옥 앞 특설무대에 당첨됐기 때문이었다.

진짜 춥다.

어쩐지 한태현이 어제 톡으로 계속 놀린다 했지.

밉상 [님 야외? ㅋㅋㅋㅋㅋㅋ]

밉상 [엌ㅋㅋㅋㅋㅋㅋㅋ 야욐ㅋㅋㅋ]

그래도 자기 신인 때 갔던 임진각보다는 나을 거라고 하던데.

지금쯤 일산 TBC 사옥에서 웃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위장이 꼬이는 기분이었다.

-와아아아아!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스테이지 쪽을 흘깃거리던 FD가 우리를 불렀다.

“뉴블랙, 스탠바이 할게요.”

“네-!”

코를 훌쩍거리던 비주가 말했다.

“형, 저 콧물 나오는데 어떡하죠.”

“저두여.”

“나도 좀 나는 거 같아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젖히자.”

“네.”

다섯 모두가 고개를 젖혔다.

이내 콧물이 조금 안으로 들어간 코흘리개들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옆에서 바라보던 민기 형의 헛웃음은 무시하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때, 좀 들어갔지?”

“뭐, 효과가 나쁘지 않은데요? 지저분하지만 임시방편으로는 괜찮네요.”

그리고…….

“매니저님, 이건 왜 찍는 거예요?”

핸디캠으로 아까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촬영 중이던 원석 씨가 답했다.

“아까 실장님이 ‘요즘 우리 애들 일상이 시트콤이다. 다 찍어서 올려라’라고 말씀을 하셔서요.”

“그럼 곤란한데. 저… 죄송하지만 방금 콧물 신은 편집 부탁드릴게요.”

“영상 제작팀 변 대리님, 저희가 사랑하는 거 알져?”

카메라를 향해 애교를 부려대는 것도 잠시, 곧바로 FD가 우리에게 대기하라며 신호를 보냈다.

“올라갈게요!”

얼어붙은 뺨을 녹이기 위해 우리끼리 먼저 눈을 마주치며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OK. 나쁘지 않았다.

이제 관객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   *

같은 시각.

전국적으로 생중계 되고 있는 TBC 연말 가요제의 야외 무대에 뉴블랙 멤버들이 올라왔다.

새하얀 피부.

엄동설한에서 피어난 꽃처럼 미모를 자랑하는 다섯 아이돌 멤버가 올라왔다.

그들이 숨을 쉴 때마다 코와 입에서 긴 입김이 흘러나왔다.

뉴블랙 멤버들이 현장 관객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외쳤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코를 살짝 훌쩍이며 하는 말에 현장 관객들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생중계를 달리고 있는 아이돌 커뮤니티에서도 웃음이 감돌았다.

-귀여워

-ㅋㅋㅋㅋㅋ잘생긴 찐빵들 같음.. 애기들 하얘

-대길이 친구 오늘두 스투핏 미쳤다

-얘네 추위에 떠는 눈사람 같아

하얗고 몽실거리는 뉴블랙 멤버들이 여기저기 우와앙 하며 손을 흔드는 장면이 1초 정도 나온 후.

곧바로 음악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삽시간에 변한 멤버들이 마스커레이드의 안무를 선보였다.

-ㅋㅋㅋㅋㅋㅋㅋ 온도차 뭐야

-애기에서 오빠로 변신

-음악 나올 때마다 스위치 켜지는 콧물 로봇 같아

무대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는 동안 수플레들은 화면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멤버들이 미소를 짓는 바스트 샷이 잡히거나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허공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뺨을 씰룩거리면서 광대 각도를 열심히 조절할 때.

그들이 주먹을 꼭 쥐었다.

‘이제… 후렴구!’

하이라이트가 될 그 파트를 기다리면서 기대감을 품었지만…….

그때.

갑자기 카메라가 바뀌더니 객석까지 잡히는 풀 샷이 나오면서 뉴블랙 멤버들이 잘생긴 개미처럼 변해 버렸다.

-아.

여기저기서 원성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감독 주소 좀.. 급해

-이야 후렴구에 헬리콥터 샷 잡는 감독님 제가 너무너무 감탄하였읍니다 막 울화가 치밀고 내가 미쳐버리고

-인공위성에서 봐도 이거보단 잘 보이겠다 방송국 놈들아

-규호만도 못한 것들

그러나 끓어오르는 분노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뉴블랙의 무대가 끝난 후 곧바로 VCR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방송국 복도에서 교복을 입고 나타난 두 신인 보이그룹.

야외무대에서 전환된 낯선 VCR에 생중계를 보던 다른 팬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신인 합동 무대인가 보네

-교복 컨셉..?

-분위기가 학원물 vs 순정만화인데..?

-뉴블랙 왤케 안 험악해ㅋㅋㅋㅋㅋ

-유치원생도 쟤네한텐 돈 안 뺏길 것 같음

-그.. 얘들아.. 저 정도면 우리 애들 최선을 다한 거야

여기저기서 드립이 난무하는 동안 TV 화면에는 박진감 넘치는 배경 음악이 깔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걷는 발들이 첫 번째로 나오고.

서로를 향해 걷는 스트릿 보이즈와 뉴블랙의 굳은 얼굴이 번갈아가면서 클로즈업으로 잡혔다.

팽팽한 긴장감.

리더들이 한 발짝씩 걸음을 뗐다.

‘자신 있어?’, ‘한 번 해 봐.’ 하는 대사가 나오는 짧은 VCR.

무슨 컨셉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로 이목을 끄는 도입부였다.

-오, 대사는 오글인데 분위기가 살렸다

-좋긴 한데 뭔가 허한걸.. 보통 저 타이밍에 우주가 웃긴 말 한 마디 할 것 같아서 설렜는데

-우주야 성장했구나..

-뭔 성장이야 녹화인데 ㅋㅋㅋㅋㅋ

곧이어 암전된 무대가 밝아지면서 사전녹화를 마친 무대가 TV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무대가 괜찮다는 이야기가 쏟아지듯 흘러나왔다.

VCR을 포함해서 2분 13초.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뉴블랙과 스트릿 보이즈의 합동 무대는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노래가 좋았다.

90년대 노래가 2010년대 풍으로 자연스럽게 변환되어 나오면서 귀가 쫑긋 기울여졌다.

명곡은 시간이 지나도 명곡이었다.

듣기 좋은 멜로디에 귀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딴청을 피우면서 핸드폰을 보거나 잠시 채널을 돌렸다가 TBC에 멈췄던 이들은 저절로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곧이어 스트릿 보이즈가 랩을 하면서 중앙을 향해 걸어가고, 뉴블랙이 이어서 합류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90년대 노래를 알고 있는 연령대의 가족들이 있는 거실마다 TV를 보면서 드러누운 채 한 마디씩 했다.

“저거 그거네, 패.”

“아니야. 햇살이야.”

“패라니까. 너 첫 부분 안 들었지?”

“아닌데. 햇살일 텐데…….”

이내 자기 말이 맞다면서 더 들어보자고 했지만 뒷부분을 들은 이들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왜냐하면 뒷부분에는 두 노래가 완벽하게 섞여 들어가서 완벽한 하나의 노래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얼마 안 가 노래가 합쳐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긴 했지만, 일순간 그런 혼선을 줄 만큼 완벽한 편곡이었다.

거기다 두 그룹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한 퍼포먼스까지.

서로 다른 그룹이 아니라 마치 14인조 그룹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에 화면 안팎으로 호응이 나왔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그 시간이었다.

인상적인 무대가 눈에 콱 박히려고 할 무렵.

눈 깜짝할 새 두 리더가 서로 등을 맞댄 채 심호흡을 하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는 엔딩이 흘러나왔다.

-뭐야 벌써 끝..?

-끝?

-이 정도면 시간 더 줘도 됐을 거 같은데??

-ㅇㅇ 퀄리티에 비해 시간이 좀 아쉽다

자기 가수가 하지 않는 무대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아쉽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무대가 얼마나 좋았던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두 그룹의 팬들은 그 반응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서 댓글을 읽고 있던 이들이 핸드폰을 슥 내렸다.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 때문이었다.

“얘네는 좀 괜찮네.”

“저때 노래들은 참 좋았지. 요즘 노래는 다 정신없고.”

“그런데 후딱 끝나네. 원래 다 이런 거야?”

다른 아이돌 가수들이 나올 때마다 ‘음…’, ‘으흠.’하고 있던 가족들이 방금 무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90년대 커버 무대는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바로 전에도 90년대 커버 무대가 여럿 있었지만 이런 반응까지 나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쟤넨 이름이 뭐야?”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1부에서 진행된 커버 무대 중 가장 대중성 있었던 무대는 단연 방금 뉴블랙과 스트릿 보이즈의 무대라고.

*   *   *

여기저기서 환호와 비명이 울리는 상암동 야외무대.

백스테이지에서 스트릿 보이즈의 무대를 바라보던 박 실장은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댓글창이 떠올라 있었다.

‘……평이 엄청 좋군.’

아이돌과 관련된 커뮤니티 어디를 들어가든 두 그룹의 합동 무대에 대해선 호평만 있었다.

‘애들이 하면 얼마나 하냐고 했었는데.’

레몬 엔터의 윤석환 실장과 협의를 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애들끼리 무대에 관해 토론을 해봐야 뭐가 나오냐고.

그런 까닭에 두 그룹이 미리 회의를 한다고 했을 때 영 마땅치 않았다.

‘뭐, 이번에는 결과물이 좋았지만…….’

그렇다고 레몬 엔터의 방식을 적용하는 건 무리였다.

자기들끼리 자체적인 프로듀싱까지 해낼 수 있는,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신인 그룹이 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으니까.

“어? 박 실장님, 여기 계셨네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안경을 쓴 깐깐한 인상의 남자, 윤석환 실장이 웃으며 다가왔다.

잠시 일 이야기가 오간 후 두 매니저의 화제는 방금 송출되었던 합동 무대로 넘어갔다.

상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어때요, 무대는 마음에 드셨어요?”

“좋긴 했죠. 무대 중앙으로 서로 다가오는 구성도 그렇고. 뭐, 편곡부터 시작해서 다 좋았습니다. 특히 안무 부분이요.”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뉴블랙 친구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것저것 제시를 해줘서 그런 거겠죠.”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았다.

이번엔 결과가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방식은 뉴블랙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윤석환 실장이 뭔가 재미있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그 부분은 저희 멤버들이 한 게 아니에요.”

“네?”

“안무 말이에요. 물론 저희 애들이 음악을 맡긴 했지만, 퍼포먼스 구성 부분에서는 대부분 스트릿 보이즈 친구들이 제시한 의견을 채택했다고 하더라고요.”

“……네?”

“방금 호평하신 부분들이요. 전부 그 친구들이 낸 의견이었어요.”

상대가 멀어질 때까지 박 실장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 애들이 한 거였어?’

그의 시선이 무대 위에서 능숙하게 퍼포먼스를 소화하고 있는 자신의 가수들에게 향했다.

얼떨떨하면서도 묘한 기분.

무대가 끝날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자, 백스테이지로 내려오던 스트릿 보이즈가 그의 표정에 멈칫했다.

“저희 뭐 실수… 했어요?”

“아니, 전혀.”

고개를 젓는 그의 모습에 멤버들이 냉큼 줄행랑을 치듯 걸음을 뗄 때였다.

머뭇거리던 그가 한 마디를 했다.

“얘들아.”

고개를 돌린 아홉 명의 아이돌을 바라보면서 그가 느릿느릿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는 거니까.

이번 한 번만 해 보자는 생각으로.

“너희 2주 뒤에 나가는 아이돌쇼 말이다.”

“네. 실장님.”

“그… 거기서 무대 구성 좀 특별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

“혹시 의견 같은 거 있으면 너희끼리 한 번 의논해 봐. 내가 안무가한테 전달해줄 테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뭔 소리야?’ 하는 얼굴로 눈을 깜빡거리던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내 환한 미소와 함께 우렁찬 대답이 들렸다.

“네! 그럴게요!”

“그, 어디까지나 이번 한 번 해 보자는 거야.”

그런 말을 덧붙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연신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   *   *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멀찍이 떨어진 스트릿 보이즈가 우리를 향해 행복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있었다.

우리끼리 바라보았다.

‘뭘까요?’

‘대충 고맙다는 내용 같은데.’

‘그럼 우리 다 같이 ‘천만에요’ 표정 지어 줘여.’

막내의 제안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만에요’ 하는 윗니가 돋보이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훈훈한 광경은 얼마 안 갔다.

서로의 모습은 무대 위를 빼곡히 채운 가수들로 인해 시야에서 사라졌다.

현재 시각 11시 55분.

어느덧 2015년까지 5분을 남기고 있었다.

“지나갈게요!”

일산에서 상암까지 급하게 이동해온 MC들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남녀 MC를 위해 다들 한 발짝 물러섰다.

우리는 뒤편에 서 있었다.

다들 코를 훌쩍이며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심호흡을 한 MC가 멘트를 했다.

-여기서 양띠인 가수분들 나와 보실까요? 한 마디씩 부탁드릴게요.

91년생 선배들이 한 마디씩 새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호가 내게 속삭였다.

“형,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아여.”

“너도.”

“정말 잘돼야 해여.”

고맙다. 우리 막내.

막내가 속삭였다.

“그래야 제가 같이 얹혀 갈 수 있거든여.”

……참으로 얘다운 이유였다.

나 역시도 추위에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세 녀석의 어깨를 감싸고는 속삭였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우리 동생님들.”

“형도 많이 받아요.”

“손 떼요. 복은 받아 가시고.”

화기애애한 새해 인사를 주고받고는 이제 임진각으로부터 들려올 새해 타종 소리를 기다렸다.

설렌다.

우리 김덕순도 TV로 이걸 보고 있겠지?

우리까지 잡힐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비주가 속삭였다.

“형, 우리 타종 칠 때 소원 빌어요.”

“그래. 빌자.”

이내 장내에 위치한 사람들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십, 구, 팔… 하는 함성이 지나간 후.

지이잉-

새해를 알리는 타종이 밤하늘 아래로 울려퍼졌다.

피융-

12시 정각이 되자마자 폭죽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불꽃놀이처럼 펑펑 터지는 폭죽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온갖 색으로 물들었다.

MC의 감격스러운 멘트가 스피커를 타고 울렸다.

-네! 드디어! 2015 을미년, 새해 첫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기저기서 새해 인사가 오가는 동안, 우리는 그 불꽃이 사그라지기 전에 두 손을 모아 재빨리 소원을 빌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015년도 올해와 똑같이 흐르게 해 주세요.

폭죽이 꺼졌을 때, 소원을 빌면서 깜빡했던 것이 떠올라 재빨리 한 마디 더 붙였다.

내… 내년에는 흑역사 없게 해 주세요! 제발!

소원을 빌고 동생들과 가볍게 포옹을 나눴다.

이런저런 새해 멘트를 이끌어내던 MC가 어지럽게 가수 사이를 오가다가 몸을 돌렸다.

-네, 앤드루 씨. 새해를 맞이해서 중국어로 소감 한 마디 좀…….

그런데 방향이 잘못됐다.

데이드림의 중국인 멤버 앤드루는 내 왼편에 있는데, 이분이 진행카드를 보다 그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MC의 표정에 ‘아차’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주변 가수들이 키득거리고, 우리 동생들은 눈을 끔뻑거리고, MC가 순간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순간.

좋은 타이밍이었다.

연예계에서 일 년쯤 지내고 나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 판단이 섰다.

지체 없이 마이크를 받으며 유쾌하게 웃었다.

“네, 앤드루 선배님을 닮고 싶은 신인 그룹 뉴블랙입니다. 안녕하세요.”

뒤에서 동생들이 어깨춤을 춰주었다.

바로 옆에서 바라보던 앤드루와 데이드림의 멤버들은 물론이고, 주변 가수들과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MC도 고맙다는 듯 눈으로 웃어 보였다.

분위기가 유쾌하게 흘러갔지만, 분위기에 취하지 않고 딱 1절만 하고 끝내기로 했다.

“2015년은 즐겁고 웃을 일 가득한 새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우리의 모습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호응해 주었다.

그러곤 잘했다면서 엄지를 들어 보이는 동생들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웃어주었다.

여러모로 즐거운 새해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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