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7화
물론 우리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문을 열고 석환 형이 나타날 수도 있지.
하지만 숙소 열쇠를 지닌 사람 중에서 연락도 없이 대뜸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다 오늘은 직원들도 쉬는 새해 첫날.
그랬기에 머릿속에 떠오른 시나리오들은 대부분 좋지 못한 것들이었다.
달칵-
마지막 잠금장치까지 풀리고, 도어락 여는 소리가 들렸다.
삑삑삑삑-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에 동생들이 내 곁으로 바짝 붙었다. 이내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이잉-
리혁이와 지호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내게 달라붙었다.
갑작스러운 공포에 내 몸도 같이 떨릴 만큼 오들오들 떠는 모습에 차분하게 동생들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하지만 침입자는 문을 열지 못했다.
덜컹- 덜컹-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보조 잠금장치에 문이 걸렸다.
다큐 찍을 때였나.
석환 형이 달자고 했던 물건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우리의 안전을 지켜 주고 있었다.
쾅! 쾅!
문을 거칠게 잡아당길 때마다 동생들이 숨을 삼켰다.
침입자는 다시 한 번 잠금쇠를 풀기 시작했다.
보조 잠금장치가 존재하는 줄 모르고, 본인이 잘못 풀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때쯤 돼서 나도 이성을 되찾았다.
차분하게 동생들을 불렀다.
“비주야, 매니저 형들한테 연락해서 상황 알려드려.”
“알았어요. 형.”
“중현아.”
“네, 형.”
겁에 질린 채 내 품에 웅크린 두 녀석을 건네며 말했다.
“얘네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있어. 너무 놀란 것 같으니까 애들 침대에 좀 눕혀서 안정시키고.”
“네, 그럴게요.”
사시나무처럼 떠는 동생들을 데리고 중현이가 방 안으로 사라졌다.
“네, 여보세요. 매니저님.”
원석 씨와 통화가 됐는지 비주가 내게 눈짓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비주가 만류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문구멍으로 눈을 가져다 대고는 범인을 눈에 담기로 했다.
혹시 미래에 마주칠 것을 대비해서 인상착의를 파악해 둬야 했다.
그런데 범인은 하나가 아니었다.
두꺼운 패딩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2인조였다.
후드와 모자 사이로 흘러나온 머리카락과 체격을 보니 둘 다 여자였다.
……사생이구나.
짐작이 확신으로 들어차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망할. 하필이면 이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면서 화들짝 놀랐다.
석환 형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는데 그 진동소리가 밖에도 들렸는지 문밖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달음박질을 치면서 계단을 우당탕탕 내려가는 소리.
사라져버린 인기척에 한숨을 쉬고는 부엌으로 넘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우주야, 절대 문 열어 주지 말고, 무슨 대화가 들려도 대답하지 말고. 그리고…….
“도망갔어.”
-다행이네. 일단, 회사 사람들한테는 우리가 연락 돌릴 테니까 원석이가 숙소 들어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어. 궁금하다고 밖에 내다보지도 말고 문 열어 주지도 말고.
“알았어, 고마워. 형.”
마지막에 대답할 때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통화를 끝내고는 부엌 쪽에 스르륵 미끄러져서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냉장고 문에 몸을 기댔다.
아.
뭐지. 이건.
방금 전까지 삼겹살 먹으려고 자리까지 다 피고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현실감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긴장이 풀리니 몸이 덜덜 떨렸다.
탁 트인 야외라면 동생들을 업어서라도 열심히 뛰어서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갈 수 없는 한정된 공간에서 낯선 침입자가 출입을 하려고 든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비주가 내 앞에 쪼그려 앉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형, 괜찮아요?”
“……어, 잠깐 긴장이 풀려서 그랬나 봐.”
“물이라도 좀… 물이 어디 있지.”
“베란다에 있을 거야. 생수 박스.”
“그러면.”
“나가지 마. 베란다로 나가면 밖에서 보이니까. 그리고 나 괜찮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녀석에게 웃어 주었다. 그러곤 싱크대의 수돗물로 목만 가볍게 축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로잡고 심호흡을 했다.
내가 당황하면 얘네는 더 당황하니까.
“가자. 애들한테.”
비주에게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안방으로 갔다. 침대에 앉아 있던 셋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형, 어떻게 됐어여? 갔어여?”
“갔어.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아…….”
막내가 긴장이 풀린 채 침대에 널브러졌다. 리혁이는 중현이 옆에 바짝 붙어서 침만 꼴깍이는 중이었다.
늘 태평한 중현이도 살짝 긴장한 기색.
비주도 내 곁에서 괜찮은 척 웃고 있긴 하지만 많이 놀랐는지 연신 목울대가 출렁였다.
동생들이 오들오들 떠는 모습을 보는데 오히려 내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래. 내가 중심을 잡아줘야지.
“다들 이리 모여 봐.”
말은 그리 하면서 동생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곤 침대에 앉아 팔을 벌려 우리 애들을 안아 주었다.
“…….”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방에서 들릴 때.
“불편해도, 매니저님 올 때까지 잠깐만 이러고 있자.”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모두 말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놀라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이는 동생들을 토닥토닥 다독이면서 안방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문득 우리 김덕순 여사가 보고 싶었다.
* * *
사건이 터진 후, 뉴블랙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급하게 한 자리에 모였다.
“망할 새끼들.”
매니지먼트 본부장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지켜야할 선이라는 게 있지.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어디 새해 첫날부터 이딴 쓰레기 같은 짓거리를…….”
“사생한테 정도라는 게 있겠습니까. 그런 게 있었으면 이 자리에 모일 일도 없었겠죠.”
윤석환의 대답에 본부장이 물었다.
“애들은?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예, 많이 놀랐대요. 다친 곳은 없고요. 원석이가 현재 숙소에서 대기 중인데 여전히 상태가 좋지는 않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제가 그 상황이었으면 놀라서 기절했을 거예요.”
홍보팀의 홍서영 대리가 말했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열쇠까지 구해다 와서는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맞힌 거 아니에요. 보조장치가 있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어 봐요. 진짜 이거 큰일 날 수도 있었던 거예요.”
“다행히 목적이 애들은 아니었나 봐요. 안에 인기척이 나자마자 부리나케 도망갔다는 거 보니까.”
우주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했을 때 그들은 사생의 목적을 빈집털이로 추측하고 있었다.
빈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가져온다거나 아니면 숨어 있거나.
전자가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뉴블랙 멤버들을 목표로 했다면 오히려 인기척에 더 반가워하면서 문을 열라며 행패를 부렸을 테니까.
본부장이 진저리를 쳤다.
“그것들, 대체 열쇠는 어디서 구한 거야? 아니, 애초에 거기 빌라도 키 카드로 찍고 들어가는 데 아냐?”
“전 도어락 비번이 더 소름인데요. 실장님이 전에 이야기하셨을 때만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좀 쎄했거든요.”
윤석환이 쓴웃음을 지었다.
작년 여름에 도어락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 수리기사로부터 이상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도어락이 왜 이렇게 닳았대? 올렸다 내렸다가 너무 많이 한 거 같은데. 여기 보세요. 다 닳았어.
혹시나 해서 설치한 보조 잠금장치였다.
본부장이 두터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일단은 뒷일을 처리하는데 주목하자고.”
“매니저들 보내서 안정시키고 있고요. 혹시 내부에서 정보가 샌 건 아닌지 파악 중이에요.”
이어서 홍 대리가 말했다.
“우주가 보내준 인상착의를 적어뒀고요. 그걸 바탕으로 내일 직원들 출근하면 다 같이 행사에서 찍힌 동영상이나 사진 보고 보면서 옷이나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을 추려보려고요.”
“하여간 그 와중에도 걔는 판단력이 참……. 가끔 보면 웬만한 어른보다 더 나은 거 같아.”
“그런데 알아내도 블랙리스트 등재나 행사에서 밴하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지. 법이 그런 걸.”
사생을 검거한다고 한들 최대한으로 나올 수 있는 처벌은 벌금형 정도.
윤 실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겠습니까. 처벌이 가능했으면 TNT나 틴스피릿이 제일 먼저 했겠죠. 거기가 진짜 마굴인데.”
“……하긴, 거기에 비하면야.”
인기 톱을 달리고 있는 TNT나 틴스피릿은 사생에 의한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불쑥 튀어나와 말을 건다거나, 공중화장실까지 따라들어와 사진을 찍는다거나, 멤버와 접촉사고를 내서 멤버들과 얼굴을 대면하려고 한다거나.
윤 실장이 말했다.
“홍보팀도 앞으로 물건 받을 때도 더 조심하시는 게 좋겠어요.”
“그건 언제나 조심하고 있어요. 작년에 스칼렛 선물로 커터칼날 들어있는 박스 들어온 적도 있어서.”
홍 대리가 덤덤하게 손등에 가늘게 난 흉터를 보여주자 다른 이들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윤석환이 회의 주제를 바꿨다.
“숙소까지 들어오려고 했던 이상 애들을 더 이상 거기에 둘 수 없잖아요. 24시간 지켜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사하기 전까지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애들이 많이 놀라기도 했으니까 일주일 정도 어디 갈 곳이…….”
하지만 어디든 마땅치 않았다.
호텔은 숙박비도 숙박비지만 엄밀히 말해서 숙소보다 더 침입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직원의 가정집에 오라고 할 수도 없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멤버들이 가족이 걱정할 거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결국 어디든 애로사항이 있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음?”
마침맞게 본부장의 전화기가 진동했다.
“대표님 전화인데……?”
보고가 되기는 했지만 대표님 선에서 올 이야기가 있었나?
그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때, 이내 본부장이 전화를 받았다.
“……예, 대표님. 예예, 예? 정말요?”
얼마 안 가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통화가 끝나고 이내 본부장이 그 내용을 전했을 때 모두가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부담스럽긴 해도 그보다 보안이 좋은 곳은 없었으니까.
* * *
“우와아…….”
매니저가 내려준 곳에서 우리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내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게 집이야, 성이야?”
“뭐긴요. 딱 봐도 집이지.”
“우리 리혁이 이제 괜찮아졌구나? 형이 참 안심이 되네.”
“……만지지 마요.”
어깨동무를 하면서 웃어 보이자 리혁이가 슥 쳐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딱히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중현이가 벨을 눌렀다.
우리 소개를 하자 안에 있는 인물이 문을 열어 주겠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매니저가 한 시름 놓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전 가볼게요.”
“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에요.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바로 달려올 테니까.”
차를 타고 떠나는 매니저에게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담아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곧이어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던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창동의 고급주택가.
까마득한 담벼락이 사방에 가득하고, 집집마다 커다란 대문과 차고가 눈에 띄었다.
우리가 서 있는 집은 여기서도 가장 큰 집이었다.
덜컹.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지나 계단을 사뿐사뿐 걸어 올라갔다.
“우와아.”
네 명의 입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푸르른 잔디밭.
나무도 두세 그루 있었는데, 거기서 새들이 노니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광경이었다.
막내가 혼자서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집에 돌아온 기분이에여. 여기에 분수만 하나 있으면 되는데. 연못밖에 없네여.”
“…….”
“어, 형들. 왜 그런 얼굴로 바라봐여?”
신이 난 막내를 보면서 그냥 웃기만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까보다는 표정이 많이 풀려 있어서.
낮에만 해도 식겁해서 다들 한 시간 가까이 벌벌 떨면서, 혹시 가족들에게 문제는 없는지 전화를 돌린 터였다.
나도 김덕순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군산에는 별일이 없는 모양이었다.
-진짜 별일은 없는 겨? 얼굴이 아주 못 써먹게 돼 버렸는데.
-…….
-아이고, 큰일 났다. 넌 얼굴밖에 자랑할 게 없는데.
-……나 끊는다?
그래도 평소처럼 욕으로 나를 다독여준 할머니 덕분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여파는 여전했지만…….
어쨌거나 이런 낯선 풍경도 방금 전의 기억을 날리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이윽고 커다란 2층짜리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우와…….”
깔끔함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 블랙 앤 화이트로 된 이루어진 인테리어를 보면서 숨을 삼켰다.
“미쳤다…….”
“깔끔해. 너무 좋아. 완벽해.”
“폭포에요, 저거?”
중현이가 가리킨 곳에는 백화점에서 볼 법한 유리벽을 타고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런 미니 폭포가 있었다.
거실도 6미터는 될 정도로 층고가 높았고, 전면이 통유리였다.
부유함의 냄새가 사방에 가득한 집.
2층에서 어렴풋이 들리던 피아노 소리가 뚝 끊긴 후, 실내용 가운을 입은 남자가 머그잔을 쥔 채 느긋하게 내려왔다.
“왔니?”
부드럽게 웃는 조규환 이사에게 우리가 모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사님!”
“오느라 다들 고생 많았어.”
“아니에요.”
내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머무르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야. 나도 혼자 살아서 심심한데 서로 좋은 거지, 뭐.”
우리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해 준 사람이 바로 조 이사님이었다.
어차피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집이라며, 편하게 지내라고 인심 좋게 말했지만 고마웠다.
프로 집돌이로서 자기 집을 내어주는 게 얼마나 큰 배려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따라 와. 집 구경시켜줄게.”
낯선 세계에 처음 들어온 사람처럼 우리는 조 이사님을 따라 집안 구석구석을 누볐다.
어찌나 큰지 둘러보는 데만 40분 가까이 걸렸다.
그때마다 우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기는 게임할 때 쓰는 방인데, 지호가 게임 좋아한다고 했지? 심심하면 와서 좀 해.”
“이사님, 사랑합니당!”
각종 게임기와 컴퓨터로 가득한 방.
산책에서 돌아와 집안 구석구석 냄새를 묻히려는 강아지처럼 우리 막내가 방을 누볐다.
그 동안 조 이사님이 손으로 입을 가리곤 진실을 속삭여 주었다.
“명절 때 조카들이 하도 뛰어다니길래 만든 방이야.”
“……효과 좋나요?”
“밥 먹을 때 빼고는 방에서 안 나오려고 하더라고.”
우리 모두 흐뭇하게 웃었다.
그 다음으로는 1층에 있는 피트니스 룸.
“여긴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에 쓰는 운동 공간인데, 그 시간대만 아니면 사용해도 좋아.”
“대박…….”
최신형으로 구비된 운동기구와 더불어 차곡차곡 쌓여 중량바에 중현이의 눈이 감동으로 젖어들었다.
이어서 부엌.
냉장고만 두 대에 오븐을 비롯한 각종 요리 기구가 보이자 비주의 눈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부엌은 언제든 써도 좋아. 비주야, 듣고 있니?”
“……여긴 천국이에요.”
드디어 수플레를 만들 수 있겠다면서 눈을 초롱초롱 뜨는 비주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한편으로는 조금 부끄러웠다.
조 이사님이 ‘얘들이 좀 원래 이랬나?’ 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어서.
하여간, 다들 체통을 지킬 수…….
“허어어어어어!”
“아, 깜짝아. 갑자기 왜 소리 질러여. 형?”
“허어어어! 이, 이거는!”
지하에 꾸려진 작업실.
온갖 최신 기기에 내 눈이 뒤집혀졌다. 뒷걸음질 치는 동생들의 반응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이건…….”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지? 해외에서도 특별 주문해서 들여온 거야.”
“이, 이 귀한 것들을……!”
작업실에 설치된 각종 호화로운 기계들의 라인업에 절로 흥분으로 내 몸에 열기가 확 올랐다.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내 모습에 중현이가 갸웃하며 물었다.
“이게 그렇게 비싼 거예요? 겉으로 보기…….”
“떽!”
콘솔을 대충 만지려는 중현이의 손을 밀쳤다.
“함부로 만지는 거 아니야, 중현아! 손 씻고 만져야지. 기름때라도 묻으면 어떡하려고!”
“와. 방금 눈에 핏발 선 거 봤어여?”
“언제나 느끼지만 정상이 아니에요. 작곡 관련해서 뭐만 나오면 사람이 이상해진다니까요.”
그러면서 ‘떽 들었어? 노땅이다 노땅’ 하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동생들의 대화가 들렸다.
이 사랑스러운 기계를 보라고!
콘솔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내 모습에 중현이가 말했다.
“형, 그거 같아요. 그.”
“그?”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그 사족보행 괴물… 아. 떠올랐다.”
그러곤 날 가리켰다.
“골룸.”
“엇…….”
그제야 절대반지를 뺀 프로도처럼 정신을 차렸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존엄성을 되찾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조 이사님의 시선이 조금 달라진 터였다.
거리도 살짝 벌리신 것 같고.
하지만 제일 비정상은 따로 있었다.
이 모든 공간을 둘러볼 때마다 새하얀 얼굴이 벌겋게 물들 만큼 흥분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완벽해. 최고야. 이 이상 더 완벽할 수는 없어.”
완벽하게 정리 정돈된 방을 바라보는 리혁이의 표정은 마치 꿈에 그리던 박물관의 명화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사님, 여기 정리는 누가 하신 거예요?”
“주로 아주머니가 했지.”
“혹시 존함을 여쭤 봐도……?”
곧바로 조 이사님에게 들은 ‘최영자’라는 이름을 리혁이가 핸드폰에 한 땀 한 땀 새겼다.
당장이라도 스승님으로 모실 기세였다.
그렇게 집을 한 차례 둘러본 후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형…….”
“얘들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긴 천국이에요!”
새해 첫날.
우리는 우리만을 위한 천국에 도착해 있었다.
“우와아아!”
그리고 그런 우리를 바라보면서 조 이사님의 얼굴에 처음으로 후회하는 빛이 스치고 있었다.
“얘들아… 그.”
“그럼 저희 방에다 짐 풀게요!”
“짐 풀자!”
조 이사가 다시 말을 하려고 했다.
“얘들아, 그 우선.”
“얼른 짐 가져 와!”
“리더 님이 짐 가져오라신다!”
“우와아, 짐 가져올게요!”
* * *
‘뭐, 괜찮겠지.’
대충 체념한 발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가던 조 이사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저기… 이사님.”
“어, 우주야.”
몹시 공손한 표정을 짓는 선우주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감사인사라도 하려는 걸까.
‘역시 우주가 제일 정상적…….’
그렇게 생각하는 조 이사의 귓가에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내리 꽂혔다.
“여기 와이파이 비번은 어떻게 되나요?”
“…….”
왠지 모르게 긴 일주일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은 기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