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8화
밤 10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에 있었던 일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지만 눈앞에서는 아까 있었던 일이 선명하게 재생되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잠이 오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
내게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잘생긴 애벌레들이었다.
내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잠이 안 오네.”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저도요.”
“전 눈이 계속 말똥말똥해여.”
“오늘따라 잠이 안 오네.”
내가 왜 잠이 안 온다고 한 것인지 전혀 자각이 없는 눈빛들이었다.
“……대체 너네는 왜 내 침대에 있는 건데?”
“여기가 편해요.”
리혁이가 내 다리를 베게 삼아 누운 채 심드렁하게 말했다.
“다른 데 있으면 왠지 불안해서.”
“불편하게 만들어줘?”
탈탈탈.
“아아아, 다리 흔들지 마요. 머리 울리니까. 콜록! 아우, 먼지….”
“리혁이 형, 좀 가만 있어여. 이러다가 우주 형이 내쫓으면 어쩌려고 그래여?”
막내의 타박에 이어 눈동자 한 쌍이 내게 어필을 하는 듯 반짝거렸다.
“저는 조용히 있을 자신 있어요. 형.”
“야, 김비주. 혼자 살겠다고 배신하냐. 나처럼 떳떳하게 누워 있으면 되지.”
“어, 그런가?”
“맞아여. 형. 아이돌 쇼에서 우리 사유재산이라고 도장 쾅 찍었잖아여. 그러니까 눈치 보지 말고 우리 더 당당하게 눕도록 해여.”
“응! 그럴게.”
이제는 아예 대자로 눕는 동생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었다.
다 같이 붙어있으니 안심이 됐다.
솔직히 혼자 누워 있는 건 나도 무서웠던 터였다.
한참 동안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보고 싶은 영화도 얘기하고, 유명 맛집도 가자고 약속하고.
하고 싶은 일이나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불현듯 정적이 찾아왔다.
“…….”
그런 순간이 있다.
어떤 주제를 피하려고 온힘을 다해 잡담을 떨었는데.
마침내 이야깃거리가 동 나고 결국 그 화제를 꺼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때.
비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젠가는,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겠죠?”
“……뭐, 그렇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비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엄청 무서웠거든요. 아까 서 있었는데 다리도 후들거리고, 태어나서 이만큼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저두여.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여.”
“엄청 무서웠죠.”
사실 나도 무서웠다고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관두었다. 대신 멤버들이 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었다.
오늘 일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앞으로 외출할 때 둘씩 다녀야 할 지, 가족들에겐 아무런 일도 없을지.
걱정과 불안을 토로하는 동생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1시간 가량 이야기가 흘렀을 때 중현이가 물었다.
“형.”
“응.”
“이런 일들은 우리가 적응하는 수밖에는 없겠죠?”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지.”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고 기도한다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더 높이 올라갈수록 이상한 사람들이 꼬이거나 별별 일이 다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잊어버리자.”
“…….”
“우리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없고. 적응하자고 마음을 먹는다고 정말 적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최대한 빨리 털어버리는 게 상책이야.”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지만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제는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뒤척이는 동생들의 실루엣이 훤히 보였다.
다들 생각이 복잡해 보이길래 짐짓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나쁜 기억을 잊는 최고의 방법을 알려줄까?”
“뭔데여? 게임?”
“고된 노동이야.”
“…….”
“빡세게 일하면 돼. 딴 생각할 틈이 안 날 만큼 일하면 저절로 잊혀진다 하는… 야, 니네 자는 척 하냐?”
이 괘씸한 것들, 하면서 몸을 탈탈 털자 자는 척을 하던 동생들이 눈을 뜨고 키득거렸다.
잠시 동안 잡답을 떨은 후, 지호가 기지개를 쭉 키며 하품했다.
“저 긴장 풀렸나 봐여. 마음도 편하구. 엄청 안전한 데서 자는 느낌이라구 해야 하나.”
“그러니까 말이야.”
모두 공감을 표하는 가운데 리혁이가 말했다.
“진짜 조 이사님이 큰마음 먹은 거예요. 나 같으면 내 집에 이딴… 아니, 다른 사람들 절대 안 들이거든요.”
“진짜 신세 많이 졌지.”
“그런 의미로 우리 일주일 동안 정말 조 이사님한테 폐 안 끼치고 지내다 가요.”
비주의 말에 다 같이 결심하는 동안 막내가 말했다.
“맞아여. 조 이사님에게 최고의 일주일을 선사해주는 거예여.”
* * *
“…….”
아침 운동을 마치고 피트니스 룸에서 나오던 조규환은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뭐야?’
김중현이 문앞에서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팔에는 수건을 하나 걸치고 있었는데 마치 그 모습이…….
‘집사?’
외국 영화에 나오는 집사처럼 서 있는 김중현이었다.
곰돌이 같은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사님, 운동하시느라 힘드셨죠.”
“어, 그래…….”
“여기 스포츠 타월이에요.”
“고, 고맙다.”
얼떨떨하게 타월을 받아들었다.
아침부터 왜 여기 서 있냐고 물어보려고 하기 전에 곰이 앞발을 슥 내밀었다.
종이가 하나 있었다.
거기에는 ‘이사님을 위한 오늘의 메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메뉴마다 옆에 그려진 꽃 그림에 조규환은 그만 웃고 말했다.
‘재미있는 애들이야, 하여튼.’
됐다고 말하려다가 그냥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그는 A 메뉴를 고르고는 샤워를 하러 자리를 떴다.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조 이사가 떠난 후 바로 옆방에서 네 명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리더가 물었다.
“보고해라, 3호기.”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드신대요.”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다들 준비에 들어갔다.
김비주가 차분하게 요리를 준비하는 동안, 선우주는 커피 기계를 익숙하게 다루며 커피를 만들었다.
서리혁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 청소기를 따라가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할 일이 없었던 왕지호는 망을 보는 역할이었다.
“어, 오신다.”
어느덧 외출 준비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조 이사가 셔츠 차림으로 내려왔다.
식탁 옆에 옹기종기 서 있는 멤버들을 보며 그가 웃었다.
“다들 잘 잤니?”
“네, 이사님. 얼른 드셔 보세요.”
“그래. 고마워.”
선우주가 의자를 슥 빼주었을 때, 조규환은 자기도 모르게 나오려는 웃음을 슬쩍 참았다.
‘못 살겠다. 정말.’
자기들 딴에는 고마움을 표현하겠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의 입장에서는 귀여워서 웃길 따름이었다.
조규환의 시선이 접시로 향했다.
“오.”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는 소시지와 베이컨,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노른자가 돋보이는 계란 프라이.
옆 접시에는 잘 익은 토스트가, 컵에는 풍미가 잘 배어나온 커피가 한 잔 따라져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처음에는 장단을 맞춰 주려고 농담 삼아 응한 거였는데 그 결과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어디 한 번.’
가지런히 나열된 포크를 집어 뻗을 때.
“…….”
다섯 쌍의 눈동자가 포크 끝을 따라갔다.
“…….”
접시에 손을 뻗던 조규환이 포크를 움직일 때마다 시선이 따라붙었다. 마치 파리의 움직임을 쫓는 고양이들 같았다.
그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너희는 안 먹니?”
“이사님 드시고 나서 먹으려고요.”
“그럼 일단 앉기라도 해줘. 나 부담스럽다.”
“아, 네.”
주섬주섬 자리에 앉는 이들을 보면서 그가 웃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물었다.
“애초에 왜 서 있었던 거야?”
“드라마 보니까 이렇게 하던데요. 회장님이 한 숟갈씩 먹는 동안 다들 이렇게 막 서 있고.”
선우주의 엉뚱한 대답에 조규환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김비주가 만들어낸 아침 식사를 먹었다.
“오.”
진심으로 나온 감탄사였다.
“맛있는데?”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자기들끼리 주먹을 쥐고 ‘우와아, 맛있대’ 하는 모습에 다시 한 번 웃고 말았다.
맛있다고 할 때마다 어찌나 눈들이 반짝거리는지.
그 풍부한 리액션 덕분에 조규환은 처갓집에 도착한 사위처럼 한 입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어느덧 식사를 다 마쳤을 때, 그가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덕분에 아침부터 정말 맛있게 먹었네. 고마워.”
“아니에요. 이사님.”
선우주가 대표로 말했다.
“저희가 고마워서 해드리는 거예요.”
“그건 알겠는데. 내일부터는 아침부터 이러지 마.”
“그래도 뭐라도 해드려야…….”
“괜찮아. 내가 싫다고 하는데 너희가 억지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내가 들어오라고 한 거잖아?”
부드럽게 웃으며 다섯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정말 편하게 지내. 그러라고 부른 거니까. 알겠지?”
“네. 이사님.”
“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있고. 참, 저녁에는 같이 고기 구워먹을까? 삼겹살?”
“삼겹살이요?”
김중현이 침을 스읍 삼키는 동안 조규환이 물었다.
“너희 어제 삼겹살 못 먹고 나왔다면서.”
“맞아요…….”
어제 점심 때 못 먹었던 삼겹살을 떠올리는지 모두의 얼굴에 어딘가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
“퇴근할 때 고기 사올 테니까,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먹자.”
“우와아아!”
“대표님도 잘하면 오실 수도 있는데.”
“와아아……!”
“최대한 나 혼자만 와 볼게.”
“우와아아!”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강약중강약으로 미묘하게 변화하는 볼륨에 그는 웃음을 삼켰다.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서던 조규환은 그를 만류하는 이들에게 밀려 외투를 든 채 떠나게 되었다.
“다녀오세요! 이사님!”
추리닝 바람으로 현관에 서서 ‘다녀오세요!’ 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다섯 명에게 그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차고로 향하는 동안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침부터 엄청 웃었네.’
이렇게 뺨이 아플 만큼 웃으며 출근하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이래서 결혼한 친구들이 그렇게 딸이랑 아들 자랑을 그렇게 하는 건가.
그때 불현듯 누군가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렸다.
-이제 우리 세상이 왔어여!
……뭐.
잘못 들은 거겠지.
* * *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주일을 알차게 쓰기 위함이었다.
안 좋은 일을 떨쳐내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내 이야기가 있었던 후.
어젯밤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 시간을 알뜰하게 써 먹자.
비록 일주일간 주어진 휴가라고 하나 그냥 쉬는 걸로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었다.
하루 서너 시간 정도만 자서 비몽사몽 하는 활동기와 달리.
아주 말짱한 정신으로 보낼 수 있는 일주일이었다.
그걸 그냥 소파에서 누워서 띵가띵가 날려먹을 순 없었다.
뭐든 좋으니 최대한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 우리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이번 휴가가 끝나면 당분간은 이런 자유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2015년 1분기의 스케줄표는 지옥 그 자체였다.
당장 1월 달에 출연이 예정된 예능만 몇 개인데다가, PBS에서 새롭게 런칭하는 경연 프로그램.
새롭게 들어온 광고 스케줄.
거기다 해외 쇼케이스 일정과 2월 초에 들어갈 아이돌 운동회 녹화까지 따지면…….
분신술을 쓰고 다녀도 몸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1집이 끝났을 때보다 열 배는 더 바빠진 스케줄이 무시무시하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일단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흐히히.”
지하 작업실의 기계들을 볼 때마다 절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푸흐흐흐…….”
녹음 부스 유리창으로 헤벌쭉 웃는 내 얼굴이 비쳤지만, 표정을 관리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좋은걸.
“흐흐흐… 흠흠… 흐흣.”
겨우겨우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관리했다.
곧바로 노트북을 연결해서 준비를 마치고는 이런저런 소리를 만들어 조합해 보았다.
“아… 너무 좋아.”
최고급 스피커를 통해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들으면 무슨 차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미세한 음의 구분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잘 쓸게요.”
조 이사님에게 인증샷을 보내 일용할 기계를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웃음 가득한 답장이 돌아왔다.
뭐가 웃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으셔서 다행이었다.
흐뭇하게 기계들을 쓰다듬는 것도 잠시, 나는 곧바로 A4 용지에 이런저런 메모를 적으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메모지 맨 위에 적힌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다음 앨범 : 비주???
그 아래로 이런저런 메모가 적혀 있었다.
바로 3집 계획이었다.
왜 2집이 끝나자마자 벌써부터 3집 준비에 들어가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그랬다.
회사 내부에서 논의된 3집 컴백은 3월.
적어도 2월에는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하는데 당연히 노래가 그 전에 완성이 되어야 했다.
그랬기에 회사에서는 곡을 공모하는 중이었고, 나는 나대로 일주일간 시간을 내어 노래를 만들어 볼 요량이었다.
“흐음.”
노트북 폴더에 빼곡한 파일들을 바라보았다.
2집 활동을 하면서 중간 중간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다음 앨범의 컬러는 노란색.
그리고 중심이 될 멤버는 비주.
“어떤 느낌으로 해야 노래 잘 만들었다고 소문이 나려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건반을 이리저리 눌렀다.
하지만 결론이 쉽사리 나지 않았다.
불꽃놀이처럼 보컬 느낌이 좀 더 나야 되나, 아니면 마스커레이드처럼 확 댄스곡으로 가야 하나.
비주는 메인댄서지만 보컬적인 측면에서도 나 다음으로 잘한다.
나와 리혁이가 쟁쟁해서 그렇지, 어딜 가든 리드보컬 자리 정도는 딸 만한 실력이라고 할까.
뭘 시키든 찰떡 같이 퍼포먼스를 소화하는 녀석이라서 애매함을 느낄 때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저예요. 형.”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비주가 사과 조각이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웃으면서 반기려는데 나는 상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는 그만 흠칫하고 말았다.
“비주야, 너 울었어?”
“아, 네. 조금요.”
비주가 희미하게 웃으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내 옆에 앉혔다.
“무슨 일인데 그래? 얼른 말해 봐.”
“요리하면서 폰으로 해리 포터 보고 있었거든요. 거기서 마지막 편 보고 있었는데…….”
비주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도비가…….”
“도비?”
“네. 도비 결말이 너무 불쌍했어요.”
가여운 도비, 이러길래 떨떠름하게 웃으면서 사과나 집어 먹었다.
역시 이 그룹에서 정상은 나밖에 없다니까.
잠시 동안 슬픔을 내비치던 비주가 노트북을 보며 관심을 보였다.
“작곡 중이었어요, 형?”
“어, 마침 잘 왔어. 다음 앨범 컬러랑 중심이 되는 게 너잖아. 그래서 노래를 만들어 보려…….”
“사실 저도 그것 때문에 왔어요.”
“……?”
“잠시만요.”
비주가 나갔다 오더니 두툼한 책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뭐야, 이건?”
“제가 데뷔하고 나서부터 조금씩 읽은 책들이에요.”
나는 책 제목을 차분하게 훑었다.
<왕초보도 할 수 있는 K팝 작곡!>
<나는 작곡으로 수십억을 벌었다>
<프로들이 숨기는 30가지 비밀 작곡 스킬>
그 외에 나도 봤던 기초 교본들도 있고.
뭐지?
작곡이라도 가르쳐달라는 건가 싶었는데, 상대의 입에서 나온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음…. 형한테는 조금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고 이것저것 미튜브로 공부 많이 했거든요.”
“아하. 그런데…?”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비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도 노래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데, 혹시 도와줄 수 있어요. 형?”
“…….”
“제가 잘하지는 못하겠지만.”
“비주야.”
“……네?”
“잘 왔어.”
비주의 손을 덥석 잡으며 내가 이를 드러낼 만큼 환하게 웃었다.
내 열렬한 눈빛에 상대가 멈칫했다.
와악! 하고 덤벼드는 사자한테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데요’ 하는 듯한 얼룩말의 눈빛이었다.
“형, 저는…….”
“걱정 마. 못해도 돼. 형이 뼈가 부서질 각오로 노래 만드는 거 도와줄 테니까 어서 여기 앉아.”
“그.”
“어허, 뒷걸음질 치면 못 써. 얼른 앉아.”
이게 정말 잘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기색의 동생을 보며 내가 환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래.
우리 애가 노래 한 번 만들어 보겠다는데 내가 아주 온 힘을 다해서 도와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