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9)화 (16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9화

“혹시 평소에 공부한 노트라든가. 그런 거 있어?”

“아, 있어요!”

내 물음에 비주가 냉큼 노트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걸 유심히 살펴보았다.

“흐음.”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 언제 공부를 이렇게 했대?

비주가 노트에 적어 놓은 것들은 내 예상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

“이걸 공부할 시간이 있었어?”

“사실 별로 없어서, 틈틈이 해 뒀어요. 형이 작업할 때 뒤에서 이것저것 보기도 하고요.”

“언제부터 했는데?”

“형이 불꽃놀이 처음 작업할 때였던 것 같아요.”

비주가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형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 보였거든요. 나라도 한 손 보태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재미도 붙어서 열심히 하게 됐어요.”

“대단하네.”

“으어, 그러지 마요. 형. 저 비행기 태우면 부끄러워요.”

“아니야. 진짜로 대단해서 그래.”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금 비주의 수준은 3개월 동안 철저하게 기본기를 다진 초급자 정도.

허나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이었다.

얘는 이걸 6개월 동안 짜투리 시간만으로 해낸 거니까.

하루 종일 연습하고 다들 곤히 잠에 빠져들었을 때, 남는 10분이나 20분 정도를 할애해서 한두 페이지씩 더 읽고, 외우고, 공부하고.

말은 쉽다.

하지만 이걸 하루도 빠짐없이 6개월 동안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잠시 눈앞에 있는 이에게 인간적인 존경심을 느꼈다.

“이걸, 독학으로 했다는 거지?”

“네.”

선뜻 대답한 비주가 눈치를 보더니 물었다.

“조금 부족하죠?”

“아니야. 이 정도면 차고 넘치지. 중간에 궁금한 거 많았을 텐데 좀 물어보지 그랬어.”

“처음에는 형한테 물어볼까 했는데요.”

비주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숙소에 누워 있을 때 빼고는 형이 항상 뭘 하고 있었어요. 지난번에도 물어보려고 갔는데, 형이 대본 읽고 있는 중이었고…….”

“대기실에서는?”

“항상 팬레터 읽고 있었어요. 아니면 팬카페에 들어가서 팬분들이 올린 글 읽거나.”

“차에서는?”

“형이 음악 들으면서 메모장으로 막 뭘 쓰고 있었어요.”

“……타이밍이 안 맞았네.”

서로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을 때 내가 말을 이어갔다.

“지금부터라도 타이밍을 맞추면 되는 거지. 안 그래?”

“맞아요.”

“음, 일단 시작하기 전에 칭찬 한 마디 좀 하자.”

비주를 바라보며 잘했다는 듯 웃어 주었다.

“혼자서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이 정도까지 하다니. 정말 잘한 거야. 이사님이 보셨으면 칭찬하셨을걸.”

“엇…….”

“진짜 고생 많았어.”

“아니에요. 저 혼자 한 게 아니에요. 중현이도 많이 도와줬어요.”

“도와주기는. 걔한테 물어봐야 대답이 뻔하지. ‘흐음, 우주 형한테 물어봐. 그런 거는.’ 했겠지.”

내 완벽한 성대모사에 비주가 입을 가리며 깔깔 웃었다. 편하게 웃는 녀석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도와줄 테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봐. 다 대답해 줄게.”

“그럴게요. 형.”

둘이 서로 마주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우리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테이블에 A4 용지를 올려둔 채 아이디어 회의를 시작했다.

“다음 앨범 컨셉은 어떻게 할까?”

“저희끼리 정해도 되나요? 이사님이…….”

“그건 괜찮아. 어젯밤에 이사님이랑 얘기 나눴는데. 다음 앨범에 관해서도 자율성을 보장 받았어.”

“진짜요?”

“응, 빵상 깨랑까랑 같은 것만 아니면 다 된대.”

이번 타이틀곡을 성공시킨 덕분에 내게는 보상이 주어져 있었다.

바로 프로듀서 권한.

물론 전권을 행사하는 건 아니었다. 언제든 회사에서 간섭이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썸씽부터 시작해서 마스커레이드까지 연타석 홈런을 터뜨린 덕에 내 입지가 굉장히 높아져 있었다.

A&R팀에서도 나를 뉴블랙의 프로듀서로서 인정한다고 할까.

내가 의견을 낼 때도, 이제는 어지간히 이상하지 않고서는 다 받아들여지는 수준이었다.

자기 일처럼 잘됐다면서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는 비주에게 내가 물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거 말해 봐. 다음 앨범 주인공은 너잖아.”

“음…….”

“다른 애들 배려는 하지 말고. 너 지금 다른 애들 생각하는 거 다 보인다.”

“……엇, 보여요?”

“응, 그러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줘.”

아티스트로서 비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평소에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 볼 예정이었다.

비주가 고민 끝에 입술을 뗐다.

“저는… 노래가 하고 싶어요, 형.”

“노래?”

“댄스가 들어가되 이번에는 그 색이 옅었으면 좋겠어요. 춤보다는 보컬 색이 더 강한 노래요.”

“춤을 줄이자고?”

미심쩍은 구석이 짚여서 물었다.

“혹시 리혁이를 배려하려는 거야?”

“아니에요. 그런 거.”

비주가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정말 노래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엉뚱하게 느껴져서 그래. 너 포지션이 댄서잖아. 본인 장기를 배제하고 보컬로 가겠다고?”

“네. 이번에는 노래를 제대로 해 보고 싶어요.”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불꽃놀이랑 마스커레이드 둘 다 댄스곡이잖아요? 썸씽은 보컬이지만 듀엣 곡이었고요.”

신선하고 좋은 아이디어였다.

뮤직 카페에서 단발성으로 5인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를 제외하면 다섯이서 제대로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다만.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조금 의외라고 생각해서.”

“저도 꿈이 가수였어요.”

비주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춤도 엄청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되고 싶었던 건 가수였거든요.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노래를 부르는, 그런 가수요.”

조금 의외로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제가 어렸을 때, 엄청 소심해서 유치원에서 맨날 한 마디도 못 하고 왔거든요. 일어나서 말하기 시간이 있으면 선생님이 항상 저는 빼 주셨어요. 말하다가 울고 그래서.”

꼬마 비주가 유치원에서 우는 광경을 상상하니 짠하면서도 왠지 귀여웠다.

비주가 과거를 아련하게 회상했다.

“유치원 졸업할 때까지 제대로 말 한 마디도 못했어요. 그래서 엄마가 겨울 방학 때 자신감 키워 준다고, 댄스 학원에 보내 주셨거든요.”

“그게 도움이 됐구나?”

“네, 어른들이랑 같이 수강하게 됐는데, 다들 저를 귀엽게 봐주시기도 했고. 제가 제일 잘하는 편이어서 강사님 없으면 가르쳐 주는 역할이었거든요. 그때부터 말수도 조금 늘었어요.”

일곱 살 겨울 무렵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춤은 비주의 생활이자 삶이었다고 한다.

“춤에 한정하면 기회는 많았어요. 댄스 팀에 들어갈 수 있기도 했고. 중학교 때는 모르는 형들이 찾아와서 비보이 크루에 가입하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그건 좀 솔깃했는데.”

“왜 안 갔어?”

“거기 형들이 너무 무서웠어요. 해골 목걸이 하고.”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비주가 ‘진짜예요. 형’ 하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스트릿 보이즈의 외면에 틴스피릿의 내면을 지닌 궁극체 무서운 형들이었다나.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꿈은 가수인데 춤도 좋아하고. 둘 다 무대에서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연습생이 된 거였구나.”

“댄서나 발라드 가수 중에 선택하면 둘 중에 거의 하나만 집중적으로 해야 하잖아요. 저는 다 같이 화려한 춤도 추고, 어떨 때는 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공감 가네. 나도 그런 이유로 연습생이 된 거라서.”

어렸을 때 TV에서 활동하는 1세대 아이돌 선배들을 보면서 꼭 저거 해야지 생각을 했다.

어떨 때는 다 같이 서서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고 들어가는가 하면, 어떨 때는 그 누구보다 신나게 춤을 추면서 무대를 휘젓고 다니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아이돌이라는 직업에서 느낀 매력이었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부드럽고, 어떤 때에는 아름답고.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노래를 해 보고 싶어?”

“대중적인 느낌이었으면 해요.”

비주가 진지하게 말했다.

“1세대 선배님들의 노래처럼 남녀노소 다 좋아할 수 있는. 우리가 스트릿 보이즈랑 했던 ‘패’나 ‘햇살’같이 누구든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였으면 좋겠어요.”

“만들기 엄청 어렵겠네.”

“그렇겠죠?”

“응.”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도전할 만한 재미는 있을 것 같아.”

곧바로 노트북을 키고는 새롭게 파일 하나를 만들었다.

제목은 ‘Untitled No.2’였다.

*   *   *

“형, 얼굴이 왜 그래요?”

“왜?”

“되게 축 쳐진 찐빵처럼 변했어요.”

“6시간 만에 형을 만나자마자 하는 얘기가 극딜이라니, 우리 중현이 참 예의 바르구나.”

옆에서 리혁이가 ‘반어법이에요’라고 해 준 뒤에야 중현이는 흐뭇한 웃음을 거두고 ‘아하’ 했다.

‘실전 스페인어 초급’을 무르팍에 내려놓던 리혁이가 물었다.

“그런데 진짜 둘 다 얼굴이 왜 그렇게 된 거예요? 비주 형이랑 아저씨랑 둘 다 무슨 물에 젖은 휴지 같아요.”

“말도 마. 엄청 힘들었어.”

“저, 저는 할 만했어요오오…….”

둘 다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피유우’ 하고 숨을 쉬는 모습에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내 옆에 털썩 앉은 중현이가 물병을 내밀었다.

“힘들면 마실래요, 형?”

“뭔데?”

“프로틴 쉐이크예요. 이사님이 저한테 먹어도 된다고 한 거니까 형도 먹어도 될 거예요.”

“맛있어?”

“음, 초코맛 두부? 두부맛 초코? 그런 맛이에요.”

사양한다는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샤워를 해서 뽀송뽀송했지만, 중현이의 근육이 빡센 운동으로 평소보다 더 펌핑되어 있었다.

거기다 운동용 단백질까지.

이러다 여기 나갈 때쯤 터미네이터로 변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중현아. 무릎 좀 빌리자.”

딱딱한 다리를 목침 삼아 머리를 뉘었다.

곧바로 거실 전면을 가득 차지한 TV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우측 상단에는 HBS MTV라는 로고가 있고 화면에서는 틴스피릿이 리얼리티에서 ‘나 기싱꿍꼬또!’ 하는 중이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환청인가. 왜 나 앞에 ‘존’이 들리는 거 같냐.”

“존나 기싱꿍꼬또인 건가요.”

“걱정 마요. 당신만 그러는 거 아니니까. 나도 앞에 ‘존’이 묵음으로 들린다니까요.”

TV에서 ‘누나들 러뷰러뷰’하는 선배 아이돌의 실체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떨떠름할 뿐이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조금만 참아 봐요. 이거 끝나면 우리 나오니까.”

서로 다른 곳에서 일을 보던 우리가 6시를 앞두고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바로 아이돌쇼 때문이었다.

1월 2일 금요일 저녁 6시.

대망의 첫 아이돌 프로그램 출연을 모니터링할 시간이었다.

설렘 반, 불안 반의 심정이었다.

드디어 아이돌 프로그램에 우리 뉴블랙이 진출했구나 하는 설렘, 그리고 앞으로 양산될 짤방에 대한 불안함.

그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이잉-

통화를 누르자 화면에 할머니 얼굴이 크게 나왔다.

“누구셔요.”

-니 할매다. 옘병할 놈아.

“다짜고짜 욕이라니, 역시 우리 김덕순이야. 아주 사랑스러워.”

-헛소리 나불대지 말고. 니 얼굴만 비추냐? 다른 애들도 좀 바꿔 주고 그래야지. 센스가 없어.

“어유, 잔소리.”

누운 채로 핸드폰을 스윽 돌리자 우리 애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응, 그려. 잘 지냈지. 비주랑 리혁이도 멀쩡한 거 같아서 좋네. 어이구, 중현이는 몸이 무슨 머슴이 됐디야?

“저 몸 좋죠?”

-근데 그런 거는 감춰져 있어야 좋은 것이지. 그렇게 대놓고 드러내면 숭한 겨.

“네에…….”

중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걷어붙인 소매를 내리는 모습에 우리가 키득거렸다.

거의 민소매처럼 변했던 티셔츠가 원상 복귀되어 다행이었다.

할머니가 비주와 리혁이를 향해서도 덕담을 내뱉었다.

-그려, 리혁이는 공부도 하고 기특하네. 지난 설에 봤을 때도.

“아, 추석 때요?”

-그 추석에 봤을 때도 중국어 뭐시기 보고 있었는데.

“일본어였어요.”

-다른 애 좀 바꿔 봐. 쟤랑 말하면 열이 확 오른다니까. 주둥이로 토 다는 것만 따지면 세계 참피온 먹었을 겨.

“……죄송합니다.”

중현이에 이어서 다시 한 번 격침당하는 리혁이의 모습에 우리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는 어디 갔냐?

“곧 올 거야. 게임 하느라 정신이 쏙 빠졌어.”

-그려?

“근데 할머니 갑자기 왜 전화했어?”

-왜 전화하기는, 따지려고 전화했지. 너 오늘 방송 나오는 거 왜 나한테는 말 안 해 줬냐.

좌심방과 우심방이 차례대로 쿵! 쾅! 하는 느낌과 함께 내가 소파에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할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얘기를 안 해줬는데.”

-니가 놀아 봐야 내 손바닥 안이지, 어딜 가겄냐. 요즘에는 그 뒷바라지 모임에 다 톡이 올라 와.

“……망했다.”

동생들이 옆에서 키득거리면서 웃음을 참았다.

-뭐가 망했는데 그러냐? 알려 줘. 같이 웃게.

“할머니, 내 말 잘 들어. 그 방송은 보면 안 되는 방송이야. 거기 좀 부끄러운 것도 나오고.”

“우주 형 흑역사 대빵 많이 나와여.”

“아, 깜짝아.”

어느새 내려왔는지 지호도 거들어서 증언했다. 동생들이 하나둘 증언하려고 하길래 내가 핸드폰 양옆을 손으로 막았다.

-그게 내 귀도 아닌데 막아지겄냐.

“아차.”

-하여간 나비만도 못한 눔.

때마침 냐옹하며 김덕순 여사의 품에 몸을 부비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비를 째려보다가 이내 할머니에게 말했다.

“어, 어쨌든 오늘 방송 보면 안 돼! 할머니! 특히, 나비. 쟤는 더 안 되고.”

-뭔데 그려. 궁금하게.

“보지 마! 보면 나랑 절교야!”

-야, 너…….

통화를 거기서 종료했다.

리혁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어요? 오히려 이럴수록 더 궁금해서 보게 된다니까요.”

“너 같으면 할머니한테 고양이 영상 편지 썼다고 말할 수 있겠냐.”

“나였으면 애초에 영상편지를 안 쓰죠.”

“그래, 대신 전기 충격기가 고장이 나겠지.”

“……이건 내가 이긴 거예요. 비긴 거 아님.”

“마지막에 얘기했으니까 내가 이긴 거야.”

리혁이와 진검 승부를 주고받는 동안 지호가 한심하다는 듯 쭈쭈바를 빨아들이면서 말했다.

“몇 살이에여, 다들.”

“지호야, 너 지금 HP 빨간색이야.”

중현이가 노트북 화면을 가리키자, 지호가 헤드폰에다 대고 다급하게 외쳤다.

“엇, 잠시만여. 나무 형, 거기서 궁 쓰면 어떡해여. 불타오르고 있다구여? 그래여! 지금 본진 불타고 있네여. 아으, 진짜!”

“……?”

“야야야! 으아아!”

고장 난 고양이처럼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타하는 초딩의 모습에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중현이가 노트북 화면을 슥 보더니 알려줬다.

“스트릿 보이즈 사람들이랑 같이 게임하나 봐요. 클랜끼리 싸우는 건데 지금 지고 있어요. 지호네는 민초단이래요.”

“상대는?”

“구룡초등학교 5학년 3반이요.”

다들 바닥에 굴러 떨어진 걸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웃었다.

*   *   *

5시 58분.

나는 팬카페나 아이돌 커뮤에 우리 팬들이 올린 글들을 읽으며 초조한 마음을 달랬다.

-설렌다ㅋㅋㅋㅋㅋㅋㅋ

-저 너무 기대고 설레요 오늘은 과연 뭐가 나올지

-우리 애들 전생 프로 나가면 코난이나 김전일 둘 중 하나는 백퍼 나올듯

-설렌다.. 이쯤 되면 덕질이 아니라 랜덤 박스의 영역이야

-축하합니다! SS급 흑역사 카드 ‘어, 진짜네?’ 당첨 깔깔깔

이 사람들이 진짜…….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어쩜 내 편이 이리도 없을 수 있을까.

아이돌쇼가 끝나면 곳곳에 올라올 게시글이 벌써부터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분간 인터넷을 끊어야겠다.

“어, 시작한다!”

어두워졌던 화면이 밝아지면서 마침내 아이돌쇼가 시작됐다. 지호가 입을 가리며 외쳤다.

“대박! 형이 만든 로고송 진짜로 나왔어여.”

“어, 진짜네?”

오늘 나올 부분들이 예고편처럼 스르륵 나오는 동안, 내가 만든 로고송이 재생되고 있었다.

산뜻하면서도 듣기 좋은 멜로디에 나온 미소도 잠시.

“푸흡!”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방송 첫 화면으로 나온 게 태블릿 PC의 돼지 머리였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 진행했던 고사가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밑에는 자막도 함께였다.

-형, 절 몇 번 해야 돼요?

-눈치껏 하자.

마이크가 어찌나 좋은지 우리가 나눴던 대화도 잡혀 있었다.

어색하게 절하는 모습까지.

첫 장면부터 인터넷에서 다들 웃고 있는 중이었다.

곧이어 MC들이 우리들을 소개하고 우리가 방방 뛰는 장면들.

아이돌 프로그램 출연 소감.

경찰서 세트를 둘러보면서 나누는 이야기 등이 흘러나왔다.

이어서 1세대 아이돌 출신과 신세대 아이돌간의 세대 차이, ‘금사빠’를 잘못 해석하는 비주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으아아…….”

내가 꼭 피하고 싶었던.

고양이에게 마음의 편지를 썼던 그 전기 충격기 코너가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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