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3)화 (17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3화

24장. 새로운 시도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기왕이면 즐겁게 하자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우리 한 번 즐겁게 해 봐요. 한조 씨. 민망하지만… 뭐 어떡하겠어요.”

“네. 최선을 다해 즐겨 볼게요.”

나와 한조가 마주 보며 그런 대화를 나누자 주변에서 구경하던 멤버들이 소곤거렸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세상 진지할까.”

“창피할 만하죠. 뭐.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데굴데굴 굴렀을걸.”

“그래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꿀잼이네여. 흐히.”

나와 한조가 동시에 고개를 홱 돌리곤 이를 갈았다.

“이 은혜도 모르는 놈들…….”

지금 이게 누구 덕분에 광고를 찍는 건데! 어?

우리가 눈을 부라리자 동생들이 ‘할아버지들 화났다’ 하면서 촬영장 한 구석으로 도망을 쳤다.

“…….”

심호흡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촬영을 위해 찾은 스튜디오.

오늘 스케줄은 미튜브에 나오는 30초짜리 짧은 광고 촬영이었다.

광고주는 국내 최대 입시업체인 ‘하이퍼스터디’로 지난 TBC 연말가요제의 짤방 때문에 우리를 섭외했다나.

“얘들아!”

“네, 감독님!”

감독님 앞으로 열네 명이 쪼르르 모였다. 상대가 나와 한조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둘이 메인이니까 잘해 줘야 돼. 알았지?”

“네, 뼈가 부서질 각오로 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뭔가 부서질 각오로…….”

감독님이 손가락으로 카메라 동선을 가리켰다.

“설명해 줄 테니까 잘 들어. 기본적인 구도는 너희가 VCR 찍었던 거랑 똑같아. 그때처럼 너희가 양쪽에서 걸어오고, 그다음에 콘티에 있는 대사를 칠 거야. 나머지들은 뒤에서 표정 연기 좀 해 주고.”

“네, 알겠습니다!”

“패기 있고 좋네. 그래, 준비되면 콜할 테니까 미리들 몸 좀 풀고 있어.”

동생들이 목을 풀거나 어깨를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팔을 돌리며 몸을 풀자 한조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 초등학교 때 그거 배운 거 같은데. 그거 하면 몸 잘 풀려요?”

“효과 직빵이에요.”

“그럼 저도…….”

둘이 같이 국민체조를 하면서 잡담을 나누었다.

주로 새로운 숙소나 최근 스케줄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한조가 아, 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참, 오늘이 그날이죠? 아이돌쇼 2회.”

“……네.”

“기대되네요. 1회 진짜 재밌게 봤거든요.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니터링하려고 본 건데 다들 예능감도 좋고, 진짜 잘하시더라고요.”

“들었어요. 한조 씨 제가 고양이 편지 썼을 때 제일 크게 웃었다면서요.”

“앗, 아아…….”

“실망이에요. 우리 우정이 그것밖에 안 됐나요.”

“아니에요. 그거 모함이에요. 나무가 제일 크게 웃었어요.”

한조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LB를 가리켰다. 지호와 어깨동무를 한 채 뭐라고 깔깔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애초에 나무 씨한테는 별 기대가 없어서… 그나저나 우리 동생들이랑 스트릿 보이즈 분들이랑 많이 친해졌네요.”

“그러게요. 거리도 좀 줄었고.”

민트초코단의 영향 덕분인지 스트릿 보이즈와 우리 애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살가웠다.

우리보다 저쪽이 더 친근하게 굴었는데,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우리 덕분에 회사에서 입지가 좋아졌다는 이유 때문인 듯했다.

제법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가요계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생긴 친구…라고 해야 하나.

뭐, 아직 말을 놓는 단계는 아니었….

“나무 형!”

“지호야!”

“우리 말 놓으니까 너무 좋다, 그치?”

……놓았네. 놓았어.

저마다 성향이 비슷한 멤버들끼리 말을 놓으며 친해지는 가운데 한조와 내가 눈을 깜빡였다.

그 상태로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눈을 마주치고는 흠칫했다.

“그럼 저희도…….”

“그…….”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돈 후, 내가 제안했다.

“우리는 시간을 좀 둘까요?”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상대가 한숨 돌렸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타이밍 좋게 제작진이 우리를 호출했다.

“촬영 준비 들어갈게요!”

스탭들이 다가와 머리를 빗질해 주고, 스프레이를 뿌려서 다시 한 번 머리를 고정시켜 주었다.

롤러를 문질러 옷에 묻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변신한 우리가 스튜디오 중앙을 향해 다가갔다.

*   *   *

하이퍼스터디의 ‘2015 New Years 패키지.’

미튜브 30초 CF 가편집본.

두근-

암전된 화면.

긴장감 넘치는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밝아진다.

복도 양끝에서 교복을 입은 이들이 나타난다.

왼편에서는 파란 넥타이를 한 이과생 아홉 명, 오른편에서는 빨간 넥타이를 한 문과생 다섯이 등장한다.

긴박감 넘치는 BGM이 고조되고 인터넷에서 보던 짤방과 같은 구도가 만들어진다.

연말가요제와 같은 대화가 이어진 후.

우주 : 잘 됐다, 그럼 나랑 인터넷 강의 들을래?

한조 : 미안, 문과야.

거기서 우주의 말이 새롭게 추가됐다.

우주 : 문과여도 상관없어.

한조 : 설마… 문이과 상관없는 무제한 패키지?

우주 : (눈 찡긋) 정답이야.

뒤에 서 있는 두 그룹이 발연기로 놀라는 표정을 지은 후.

화면 상단에 금색으로 장식된 ‘하이퍼스터디 2015 새해 기념 무제한 강의 패키지’ 자막이 떠올랐다.

그 아래 열네 명의 아이돌이 서 있었다.

맨 앞의 두 리더의 목소리와 함께 다 같이 엄지를 척 들었다.

모두 : 수험생이 미래다, 하이퍼스터디!

*   *   *

레몬 엔터. 매니지먼트 4팀 사무실.

“얼굴이 왜 그렇게 죽상이야. 또.”

“CF가 온에어 됐을 때, 우리 수플레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하니까 저절로 웃음이 나오네.”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난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어.”

내가 처연한 미소를 짓자 석환 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웃던 상대가 타박하듯 말했다.

“야, 누가 보면 억지로 시켜서 한 줄 알겠다. 네가 먼저 하고 싶다고 해서 한 거잖아.”

“그렇긴 한데… 이런 게 늘 현타가 조금 있어. 흑역사로 인지도를 올렸을 때 남는 묘한 패배감이라고 할까.”

“그냥 감사하게 받아들여. 다른 그룹들은 이런 광고라도 찍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걸.”

“그건 당연히 알지요. 우리 실장님.”

그걸 알기에 이번 광고 촬영을 할 때도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

“어때, 이번 광고들은 준비 잘돼 가?”

“응, 애들이랑 콘티 보고 연습하고 있어.”

작년 한 해 신인상을 두 개나 수상한 우리는 명실상부한 2014년 최고의 신인이었다.

그런 까닭에 새해 들어서 광고도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기존에 홍보 모델로 있던 곳은 중견 항공사와 교복 브랜드 에버드림, 국내 의류 브랜드까지 합치면 총 3곳.

이번에 직원들과 함께 회의를 하면서 유명 피자 업체, 홍삼, 입시 광고 업체 등 세 가지가 추가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쁜 건 홍삼 광고였다.

광고 계약을 맺을 때, 그쪽에서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자주 먹어 달라며 홍삼을 엄청나게 보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혹시 선물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수플레들 앞에서 홍삼을 못 먹었는데, 이제는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었다.

“흐히히.”

행복해 하는 내 표정을 봤는지 석환 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갑자기 또 웃고 그러냐?”

“그런 게 있어. 형.”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그나저나, 와서 받아 가라고 한 건 뭐야?”

“이거야.”

상대가 열쇠로 서랍 자물쇠를 열고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수북한 종이 뭉치를 나에게 건넸다.

“이게 다 뭐야? 대본?”

“너희한테 새롭게 들어온 예능이나 TV 프로그램 기획안이야. 지상파는 거의 없고 대부분 케이블이나 종편이기는 한데. 너희끼리 한 번 검토해 보라고.”

“아하.”

“봐서 괜찮다 싶은 기획안 있으면 말해 줘. 팀원들이랑 검토해 볼 테니까.”

종이뭉치를 넘기며 대강 제목들을 훑었다.

연애도 있고, 추격전도 있고, 퀴즈나 머리 쓰는 프로그램도 있고.

“되게 다양하네?”

“너희 인지도가 그만큼 올라갔잖아. 특히, 지난주에 아이돌쇼에서 보여 줬던 예능감이나 태도가 관계자들 사이에서 평이 좋았나 봐. 거기다 프로그램 개편 앞둔 시기기도 하고.”

석환 형이 말을 이었다.

“종류가 다양한 건 이제는 이미지 메이킹에 대한 부담은 조금 덜고 가 보려는 생각이거든. 그래서 다 받아 봤어.”

“부담?”

“아, 이건 아직 직원들끼리만 말을 나눈 건데.”

우리 실장님이 턱을 쓰다듬었다.

“너희 활동을 좀 더 대중 친화적인 방향으로 가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 1세대 아이돌처럼 대중이 친근하게 여기는 보이그룹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가 보자고.”

“아아, 옛날 아이돌 선배님들처럼?”

“그렇지. 국민 아이돌 이런 식으로… 뭐, 그건 우리의 희망 사항이겠지만.”

석환 형이 말했다.

“사실 원래 기획은 너희 이미지를 상당히 신비스럽고, 멋지게 만들려는 쪽으로 갔는데.”

“음, 그것도 좋은데 왜?”

“네가 흑역사를 미친 듯이 제조하면서 죄다 물거품이 됐거든.”

“…….”

“그… 유감이지만, 주세한에 나온 다음부터 대중이 더 이상 너희를 신비스럽게 생각하지 않더라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뿌옇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상대가 훈훈한 웃음을 보였다.

“그런 이유로 기왕 이리된 거, 대중에게 친구처럼 다가가는 보이그룹으로 포지셔닝하자는 의견이야.”

“시골 할아버지나 할머니들도 ‘아이고 영감, 저저 뉴블랙 아녀?’ 이렇게 알 수 있도록?”

“야, 너 성대모사 대박인데…?”

“잘하지? 어제 미튜브로 전원 일기 봤어.”

잠시 감탄하던 석환 형이 ‘내 정신 좀 봐’ 이러더니 말했다.

“아무튼 그래. 바로 그런 거야. 물론 신중하게 가야지. 너무 망가지거나 개그맨 같은 이미지가 되면 곤란하니까.”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퍼뜩 머릿속으로 무언가 스치면서 침이 바싹 말랐다.

“엇.”

“왜 그래?”

“그게 말이야. 형. 문제가 조금 있는데… 이번에 아이돌쇼 2회에서 뭐가 나오거든. 그게.”

내가 머뭇거렸다.

설명을 어찌해야 할지 한참 동안 입술을 달싹였다가 말기를 반복하자 상대가 갸웃했다.

“거기 뭐가 나오는데?”

“민기 형이나 원석이 형이 아무 말 안 해 줬어?”

“재미있는 게 나올 거라고 기대하라고 하긴 하더라. 뭐였더라. 아, 장수풍뎅이였나.”

“그래, 그 장수풍뎅이가…….”

하지만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건 설명으로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그랬기에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보면 알아. 보면.”

*   *   *

석환 형과 대화를 마치고 연습실로 내려오는데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느아아아아!”

“…….”

“느아아아! 형! 그만 밟아요!”

“…….”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비주가 리혁이의 등을 밟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리를 거의 180도로 찢은 리혁이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형, 왔어요?”

비주야, 환하게 웃지 마. 무서워.

“뭐 하고 있는 거야?”

“리혁이가 그새 유연성이 많이 떨어져서요. 이번에 안무 하려면 유연성을 늘려 줘야 하잖아요.”

“느아아아! 이거! 풀리면 다 죽일 거야! 다아아아!”

하얀 두루미가 날개를 펄럭이며 분노하는 듯한 하찮은 광경에 나는 훈훈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쪼그려 앉아 리혁이와 눈을 마주치고는 약을 올렸다.

“그러게, 이 친구야. 조 이사님 댁에서 지낼 때 놀지 말고 부지런히 스트레칭을 했어야지.”

“안 놀았거든요! 난 외국어 공부하느라! 바빴! 느아아아!”

괴로워서 버둥거리는 녀석을 보다가 비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힘들면 말해, 비주야. 내가 교대해서 밟아 줄게.”

“네, 그럴게요. 형.”

“느아아아! 짜증나니까 둘이 오순도순 얘기 나누지 마아아!”

“힘내.”

마음 같아서는 서서히 늘리라고 하고 싶지만 당장 해외 쇼케이스가 다음 주였다.

다음 주에 우리가 신인상 후보로 들어간 어워드에 나가고 나서 다음 날 아침에 바로 대만으로 출국하는 일정.

타이베이에 있는 수플레들과 만나 우리의 무대를 보여 줄 예정이었다.

물론 마스커레이드야 자다가도 춤 출 만큼 연습량은 차고 넘쳤지만, 유연성 같은 부분은 안무 디테일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터라…….

“느아아아!”

조금 아프기는 하겠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때 연습실 구석에서 안무를 연습하던 중현이가 지호를 매달고 다가왔다.

“형, 들고 온 건 뭐예요?”

“뭐예여? 대본? 그거 대본이에여?”

“대본 아니야. 잠깐만, 리혁아. 비주야. 너희도 이리 와 봐.”

리혁이가 우리 메인댄서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을 때, 내가 석환 형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곧바로 호기심 가득한 손길이 기획안을 향해 뻗어왔다.

“우와, 진짜 뭐 엄청 많아여. 이게 다 저희한테 들어온 거예여?”

“그렇대.”

“대박이다.”

잠시 우리 애들의 얼굴에 행복함이 감돌았다.

다이어트가 막 끝나고 고기 먹으러 갈 때의 표정들이었다.

“이것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는 거죠?”

“저도 볼래요. 형.”

왁자지껄하게 웃으면서 가져간 것도 잠시, 차분한 시선들이 기획안을 살폈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연습실을 울렸다.

신중하게 보라고 미리 말을 해둘까 했는데, 다들 진지한 걸 보니 노파심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기획안을 꼼꼼하게 살폈다.

머릿속으로 우리가 들어가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우리와 궁합도 잘 맞으면서, 좋은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지 찾았다.

작년과는 상황이 달랐다.

2014년에는 어떤 TV 프로그램이든 무조건 나가서 인지도라도 올리려고 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공중파 예능에 나가는 거야 여전히 하늘에 별 따기였지만, 케이블이나 종편 출연 등은 이제 가려도 되는 처지였다.

예컨대.

“러브 앤 매치…?”

“뭔데?”

“종편 채널에서 하는 건데요. 유명인들 출연해서 사랑의 작대기로 커플 만드는 거래요.”

“……이건 빼자.”

그 외에 너무 병맛이거나 이미지만 망가지기 십상인 컨셉의 프로그램들도 하나씩 뺐다.

그런 식으로 할 수 없는 것을 빼고 나니 남은 건 3분의 1 남짓.

거기서 우리 중 하나가 아니라 다섯 모두가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니 또 3분의 1이 남았다.

몇 개 안 남은 기획안을 들추고 있을 때였다.

“어어……!”

리혁이가 마치 황금을 발견한 사람처럼 외쳤다.

“이, 이거다!”

“뭔데?”

“내 마음에 쏙 드는 게 나타났어요!”

목울대를 꿀꺽이면서 흥분한 듯 주먹을 쥐는 리혁이의 모습에 우리가 오히려 짜게 식었다.

“쟤 마음에 쏙 드는 거라고 하니까 왜 이렇게 불안하냐.”

“그러니까여. 분명 이상한 걸 거예여. ‘당신의 집은 건강하십니까, 홈닥터가 있습니다.’ 이러면서 청소하는 예능이라든가.”

하지만 호기심이 들긴 했다.

대체 뭘 봤길래 애가 저렇게 얼굴이 발갛게 상기 될 만큼 흥분한 걸까.

이내 우리 모두 눈을 깜빡거렸다.

“……쏙쏙 역사 탐험대?”

리혁이가 내민 기획안에는 ‘쏙쏙! 역사 탐험대!’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이 좀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아니나 다를까. 기획안 첫 장에 당당하게 프로그램 분류가 적혀 있었다.

“리혁아, 이거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이잖아.”

“그건 알고 있는데요. 내용을 봐요. 엄청 좋아요.”

리혁이가 설명을 해 줬다.

“매 회차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건을 가르쳐 주는 건데요. 출연자들이 해당 사건을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한대요.”

“…자, 잠깐여! 연기라구여?”

우리 막내가 90퍼센트쯤 넘어가 버렸다.

“간단하게 분장도 하고.”

“분장!”

……100퍼센트 넘어가 버렸다.

“연기를 해서 그 사건을 설명해 준대. 왕이나 신하 옷을 입고, 민속촌이나 궁궐 로케이션에 가서 직접 찍어 오는 식으로.”

“오, 그건 재미있겠다.”

막내뿐만 아니라 우리도 흥미가 동했다.

말만 어린이 프로지, 포맷이 신선하고 마음에 들었다.

편성 시간대가 애매하긴 해도, 지상파인 HBS에서 방영한다는 점이 굉장한 메리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단발성 1회 출연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오는 고정 출연이라는 점이 우리가 가장 매력을 느낀 부분이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괜찮은데, 이거?”

“좋은 것 같아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이걸로 우리도 초통령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예여.”

그밖에 다른 기획안들도 살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결국 쏙쏙 역사탐험대였다.

내가 대표로 매니지 팀에게 의견을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으어, 뻐근해.”

거의 두 시간 넘게 앉아서 기획안을 읽어 대서 그런 걸까. 둥글게 모여 앉아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 줄 때.

“아, 시원하다……. 그런데 얘들아, 왜 이렇게 뭔가 잊고 있는 것 같냐.”

“그러게요. 뭔가 허전한 느낌이 나는 것 같고.”

“우리 뭐 놓친 거 있었나?”

“아뇨. 이따 아이돌쇼 2회 보는 것 빼고는…….”

“어?”

나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어깨를 주무르던 손이 하나씩 멈췄다.

“어?”

“어.”

“어어……?”

“어!”

현재 시각은 7시.

6시에 시작한 아이돌쇼는 이미 끝난 뒤였다.

“모니터링 했어야 했는데!”

모두가 연습실 구석으로 달려가 충전기에 연결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곧바로 눈에 띄는 메시지들이 보였다.

김덕순 [오늘도 옘병 잘 떨더라]

한태현 [님ㅋㅋㅋㅋㅋ사유재산?ㅋㅋㅋㅋ]

얄미운 메시지들을 모두 무시한 채 우리 수플레들이 모인 곳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지호 성장통은 괜찮긔..

-장숰ㅋㅋㅋ풍뎅ㅋㅋㅋ잉ㅋㅋㅋㅋ

-대길이 보고 있니.. 네 친구 장수풍뎅이야

-엄마아빠 얘가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인데요.. 아녀 매미가 아니고 장수풍뎅이에요 (수줍)

-다음 팬미팅은 수플레데이 말구 장수풍데이로 가죠

-웃다가 거품 물었닼ㅋㅋㅋㅋㅋ

……뭔가 터져 있었다.

*   *   *

같은 시각.

“…….”

윤석환은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

두통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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