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4)화 (17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4화

HBS MTV 아이돌쇼 2회의 시청률은 1회보다 더 상승한 시청률과 함께 화제성을 자랑했다.

로고송을 작곡한 우주가 멤버 개인별 멜로디를 만들어 보이면서 불꽃놀이와 마스커레이드 제작 비화를 밝히는 장면.

이어서 ‘지호야 지호야’로 시작하는 성장기 송.

저마다 제각기 특기를 보여주었던 멤버별 장기자랑.

아이돌팬들이 모인 사이트마다 그런 볼거리에 대한 글들이 드문드문 올라오고 있었다.

-뉴블랙 우주라는 애 볼때마다 찐천재 같음

-음악 재능하나는 진짜 타고난듯

-그런데 개신기하다ㅋㅋㅋㅋㅋ 멤버별 멜로디 들려주는데 쟤네 누군지 잘 모르는데도 와닿아

-ㅇㅇ뭔느낌인지 알것같음ㅋㅋㅋ

-로고송 진짜 좋아

멤버 우주의 작곡 능력에 대한 이야기부터.

-ㅋㅋㅋㅋㅋㅋ얘네는 무슨 기인 열전이냐

-아이돌쇼 말고 달인쇼 같아

-성장기자낰ㅋㅋㅋㅋㅋㅋㅋ

-지호야 지호야 ㅋㅋㅋ 쟤 이름은 이제 꼭 기억할 듯

-저거 우리 엄마가 하는 얘기랑 너무 똑같아서 놀람

-대길이 친구 현직 간장공장장인듯.. 발음 개정확해

멤버들이 보였던 신비로운 능력들까지.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반응을 얻었던 장면은 바로 데시벨 게임에서 나왔던 전설의 ‘장수풍뎅이’였다.

머리에 도깨비뿔을 한 중현이 엉덩이가 바구니에 낀 채로 일어나면서 탄생한 명장면.

황금빛 후광과 함께 궁서체 자막으로 ‘장. 수. 풍. 뎅. 이.’ 하면서 나온 늠름한 자막.

묘하게 진짜 장수풍뎅이를 연상시키는 모습과 티벳여우 같이 평온한 얼굴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ㅋㅋㅋㅋㅋ미친다 내갘ㅋㅋㅋ

-아.. 진짜 내가 다른 돌 나오는 거보고 이렇게 웃은 거 처음이야 증말

-시간 나면 대길이 친구나 파볼까.. 보고 있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야

-ㅇㅇ 인정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이 생겼어

-장수풍뎅이짤 벌써 다른 데도 퍼짐ㅋㅋㅋㅋㅋ

전설의 장수풍뎅이 짤은 아이돌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곳곳으로 수출되어가고 있었다.

지난번 수학의 정석 사태보다 더 큰 반응이었다.

그리고 장수풍뎅이 짤을 목격한 사람들은 저마다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

처음에는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눈을 의심하는.

이내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 대체 무슨 상황이야? 저거??

-ㅋㅋㅋㅋㅋㅋ뭐야 저게ㅋㅋㅋ

-주세한에 나왔던 걔구나 그 염소레슬러

-늠름하다..

-이 짤 일단 저장은 했는데 대체 어떤 상황에서 써먹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아직 지구가 이해하기에는 이른 풍뎅이인듯

*   *   *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푸흡…….”

“푸핫, 안녕하세요!”

여기저기서 우리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가수들이 건네는 인사에 우리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꾸벅했다.

“안녕하세요오…….”

네 명의 슬픈 얼굴과 한 명의 평온한 얼굴.

그 평온한 얼굴이 지나갈 때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푸흡’ 하거나 아니면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중현이가 내게 말했다.

“형, 사람들이 자꾸 형을 쳐다봐요.”

“……너 보는 거야. 너.”

“아, 저예요?”

그러면서 ‘왜 나를 보지?’ 하다가 ‘보면 좋은 건가?’ 하다가 ‘좋은 거구나’ 하면서 흡족하게 웃는다.

우리끼리 속닥거렸다.

“저는 정말 중현이 형이 부러워여. 수치스러움을 느끼지 못하잖아여. 저는 죽을 것 같은데.”

“그니까, 진짜 신기하다니까. 어떻게 저렇게 평온하죠?”

우리끼리 그러거나 말거나, 중현이는 태평한 미소를 띠고 앉아 있었다.

오늘은 1월 14일.

지난 한 해의 성적을 종합해서, 1월 달에 상을 주는 대중음악 시상식 중 하나인 ‘골드 디스크 어워드’가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이번에도 신인상 후보로 참석했다.

아무래도 작년 한 해에 활동했던 모든 가수들이 참석하는 곳인 만큼, 아는 얼굴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그리고 하필이면 얼마 전에 아이돌쇼 2회를 방영했던 탓에 우리를 보고 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모르는 척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그리 웃긴지 아는 사람마다 와서 웃었다.

특히 TNT는 생선 앞을 지나치는 고양이처럼 총총 다가오더니 다 같이 포즈를 취해 보였다.

뭘 할지 예상이 돼서 다급하게 막았다.

“하지 마라. 진짜 흐즈 므.”

어금니를 꽉 물었지만 우리의 원탑 보이그룹은 아랑곳 않고 손을 촥 뻗으며 말했다.

“리멤버, 덕순 이즈 마인.”

“푸하하!”

“아이고오! 내 배야아!”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아이고오!’ 하면서 배를 잡고 웃는데 진짜 얄미웠다.

참자. 쟤네를 건드리면 난 이 바닥에서 매장이야.

카메라에 잡힐 것을 대비해 웃으면서 입모양이 안 보이게 손으로 가렸다.

“……진짜 그대들은 제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모두 제 손에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일리 있는 말이네요. 형제님.”

태현이가 다른 멤버들을 돌아보자 ‘그렇군’ 하면서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입을 가리고 말했다.

“하지만 우린 선배잖아.”

“야.”

깔깔깔 웃는 이들을 보며 분을 삭였다.

TNT는 서막에 불과했다.

스트릿 보이즈는 괜히 친해졌다고 후회될 만큼 와서 신나게 놀리고 가지.

스칼렛은 와서 ‘장수풍뎅이와 고양이’라는 가사가 마음에 안 들지만 화음은 또 쓸데없이 좋은 즉흥 노래를 불러주고 가지.

장소원 선배는 선배대로 나와 중현이를 보자마자 ‘우리 뽀시래기들… 흐캭캭’ 하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틴스피릿은 위풍당당하게 다가와서는 ‘성장기가 누구임?’ 하며 물었는데 우리는 동시에 지호를 지목하는 의리를 자랑했다. 상대는 ‘존나 웃겼어요’ 하며 엄지 척을 하고는 사라졌다.

……말하고 보니 주변에 정상인들이 없네.

이게 다 중현이 때문이다.

TNT 같이 나에게 제발 관심을 꺼줬으면 좋겠는 사람들을 빼면, 이곳에 참석한 바쁘디 바쁜 연예인들이 우리의 소식을 아는 이유는 바로 전설의 ‘장수풍뎅이 짤’ 때문이었다.

웹서핑을 한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마다 한 번씩 요청할 정도였다.

“저희 그거 보고 싶어요, 그거. 장수풍뎅이.”

“해드릴게요.”

그러면 중현이가 그 장면을 똑같이 재현해서 다들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뭔가 아이돌 사이에서 유명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나쁘지는 않은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할까.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동료 연예인들도 우리를 친근하게 여기고 있었다.

나도 멋있는 거 하고 싶었는데…….

그래. 석환 형이 대중 친화적인 연예인이 되자고 했으니까.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일단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그게 어떤 모습이든 간에.

-네, 음원 부문 신인상 뉴블랙! 축하드립니다!

그날 시상식에서 우리는 Something으로 음원 부문 본상, 그리고 마스커레이드로 음원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촉촉한 눈으로 수상소감을 말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상을 받아서 그만큼 기쁘구나’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당연히 뛸 듯이 기쁘긴 했다.

눈이 촉촉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

*   *   *

기분 좋은 날이었다.

신인상을 받기만 해도 좋은데 이제는 ‘신인상 3관왕’이라는 타이틀이 우리의 앞에 붙어 있었다.

-[종합] 뉴블랙, 신인상 3관왕 달성

-‘신인상’ 뉴블랙, 2015 골드 디스크 수상 쾌거

-뉴블랙 ‘2014 최고의 루키’ 등극, 해외 활동 본격 시작한다

정말 여기저기서 축하인사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평소처럼 스탭들과 함께 회식을 한다거나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당장 내일이 출국 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롭게 탄 트로피를 진열장에 고이 모셔둔 후 우리는 곧바로 짐을 챙기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지.”

‘챙겨야 할 것들 Ver 2.0’이라는 제목이 붙은 A4 용지는 리혁이가 준비한 리스트였다.

솔직히 이런 것까지 챙겨야 싶은 물건들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는데 귀찮지만 안 챙길 수 없었다.

나름 해외에 나가 본 유경험자가 적은 리스트니까.

“그러고 보면 신기하네.”

캐리어에 리코더를 넣다가 문득 떠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해외, 아니 비행기 타본 애가 리혁이밖에 없냐. 너희 제주도 같은 데도 안 가봤어?”

“네.”

작은 냄비를 구겨넣던 비주가 말했다.

“고등학교 때였나?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갈 뻔한 적 있었는데, 그때 중현이랑 저랑 둘이 아파서 못 갔어요.”

“아팠어?”

“아아. 그때.”

중현이가 대신 대답했다.

“그때 저희 식중독 걸렸어요.”

“뭐 먹다가 걸렸는데, 급식?”

“닭꼬치요.”

흐뭇한 얼굴로 ‘추억이었지’하는 녀석과 슬픈 표정을 짓는 녀석을 보며 웃었다.

“신기하네. 중현이도 병에 걸리는구나.”

“저 은근 병약해요. 형.”

“지금 캐리어에 넣고 있는 아령 10kg짜리 아니야?”

“더 튼튼해지려고요. 이제 실장님이 운동 금지시킨 일주일도 지났고.”

“……그래, 우리 장수풍뎅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룰루랄라 아령을 챙기는 녀석에게 엄지만 들어 보였다. 어차피 쟤가 들고 갈 짐인데 뭐.

그때 냄비 안에 국자를 넣던 비주가 말했다.

“근데 저는 지호가 의외예요.”

“그러네.”

다른 애들이야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우리 막둥이가 의외였다.

벌써 해외여행만 수십 번 해봤을 것 같은 느낌인데 말이야.

지호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데 거실에 열려 있는 난잡한 내용물의 캐리어만 보이지 애가 없었다.

“지호…….”

이름을 부르려고 할 때, 우리 애가 방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그것도 카메라를 들고.

“짜잔.”

핸디캠을 들고 나온 녀석을 보며 형들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또 뭐야?”

“이거 비하인드 캠이에여.”

“아, 우리 비하인드~”

곧바로 뚱한 얼굴을 하고 있던 세 명이 동시에 방긋 웃었다.

피곤에 쩔어 우중충했던 얼굴들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우리 막내! 비하인드 촬영하는구나!”

“구구구, 고생이 많네.”

오구구겠지, 중현아.

“와, 이 가식덩어리 휴먼들.”

막내가 입술을 비죽이며 카메라에다 속삭였다.

“방금 표정 변화 보셨져? 이 형들이 이런 사람들이예여. 카메라 돌아갈 때만 이쁘다 이쁘다 해주고 평소 때는 막 길가에 있는 돌멩이처럼 취급해여.”

“아유, 돌멩이라니요. 이렇게 예쁜 돌멩이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흠흠, 용서해줄게여.”

“물론 그래봤자 돌멩이지만요.”

비주와 중현이가 막 웃기 시작했고, 지호가 파르르 뺨을 떨었다.

“와, 진짜 못된 늙은이.”

“농담이에요. 우리 지호 씨가 어디 그냥 돌멩이입니까. 뉴블랙의 보석 같은 존재죠.”

“……그래여?”

“네, 아직 성장기이긴 하지만.”

“형이랑 진짜 말 안 할 거예여.”

막내를 놀려먹으면서 깔깔 웃는 내 모습에 지호가 빈정이 상했다는 듯 툴툴거렸다.

“이리 와 봐, 형이랑 놀자.”

“안 갈 거예여.”

“얼른 안 오면 성장기송 음원 출시할 거야.”

“가, 가여!”

냉큼 다가온 녀석을 보며 웃다가 이내 달래주었다. 간식을 몇 개 입에 먹여주니 금세 풀렸다.

지호는 곧 핸디캠으로 우리를 담기 시작했다.

우리 역시 카메라를 보면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거나 어깨춤을 추면서 신나게 짐을 챙겼다.

지금 찍고 있는 것은 ‘뉴블랙 탐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나가게 될 자체 제작 리얼리티였다.

‘잇츠 더 뉴블랙’ 이후로 팬분들에게 보여주는 우리의 일상이었다.

우리의 인기와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최근에 회사에서 ‘채널 뉴블랙’이라는 별도 계정을 신설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리얼리티는 그 계정에 새롭게 올라가게 될 컨텐츠였다.

“무슨 짐을 챙기고 있는 건가여?”

“네, 저희가 이번에 대만에 첫 쇼케이스를 하러 가는데요. 그걸 위해서 짐을 챙기고 있습니다.”

“그것도 있잖아여. 예능.”

“네, 예능도 있고요.”

이번 타이베이 방문에는 공중파 예능도 같이 끼어 있었다.

대만 쇼케이스 일정을 조율하던 과정 중에 들어온 스케줄이었는데, 같이 출국한 뒤에 촬영을 하고 우리는 헤어지는 일정이었다.

그런 식으로 이번에 무엇을 할지 설명을 하고 있을 때, 막내가 내 짐에 관심을 보였다.

“그거 뭔가여? 리코더인가여?”

“제가 악기 연주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거든요. 그래서 미니 건반이라도 챙길까 했는데요. 캐리어에 안 들어가서 리코더로 바꿨습니다.”

“오, 그럼 팬분들을 위한 연주 부탁 드려여.”

“잠시만요.”

곧바로 핸드폰으로 배경음악을 틀고는, 리코더로 트로트를 맛깔나게 연주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그런 식으로 리얼리티를 촬영하던 때,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하나 떠올랐다.

“참, 지호야. 너도 비행기는 처음이라고 했지?”

“네. 그래서 이번에 해외 간다니까 주변에서 막 놀리는 거 있져. 신발 벗고 타라고 그러고.”

“여태까지 한 번도 안 타봤어?”

“넹. 어렸을 때 제가 막 엄마아빠 잃어버리고 그런 일이 하도 많아서, 엄마아빠가 무섭다고 안 데려갔어여. 아빠도 막 가고 싶으면 네가 돈 벌어서 가라고 그러고.”

지호가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엄청 기대하는 중이에여. 비행기 타보는 것도 처음 해보는 거구. 형은여?”

“……음.”

잠시 머뭇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어주었다.

“당연히 기대 되지.”

“우리 이번에 맛난 거 많이 먹고 와여. 망고 빙수랑 우육면이랑, 울 누나들이 그러는데…….”

막내가 신이 나서 수다를 떠는 동안, 내 눈치를 슬쩍 살피던 비주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짐들은 다 챙겼어요?”

샤워를 마치고 뽀송뽀송한 찹쌀떡처럼 변신한 리혁이가 나타났다.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던 녀석은 이내 자신 있게 캐리어를 펼쳐든 우리 앞에 섰다.

“냄비, 리코더, 아령…….”

“…….”

“챙기라는 짐은 빼놓고, 다들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었나 봐요?”

긴 한숨이 흘러나오면서 우리 모두 긴장했다. 날카로운 눈빛이 널널한 캐리어를 바라보았다.

“야, 왕지호. 넌 왜 이렇게 짐이 없어?”

“기념품 사올 거 대비해서 널널하게 공간 만들었어여.”

“……하하하 그랬구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웃는 그 모습에 우리 모두 따라서 어색하게 ‘하하하!’ 하고 같이 웃었다.

그것도 잠시.

“지금 웃음이 나와요?”

카아악! 하면서 입에서 불을 뿜는 녀석에게 장장 30분 가까이 혼이 났다.

*   *   *

전날 꿈자리가 영 뒤숭숭했다.

김덕순 여사는 아침 일찍 가게에 나오자마자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곧바로 잘생기기만 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여, 순이순이 덕순이.

여전히 미친 것을 보아하니 상태는 말짱한 듯했다.

배경을 보니 이동하는 차량 안이었다.

“공항은, 가고 있냐?”

-가고 있지요, 그럼. 이제 곧 내려서 예능 제작진이랑 조인해서 오프닝 찍고, 출국할 거예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어, 그려. 다들 안녕하구.”

다른 멤버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오늘따라 그녀의 관심은 오롯이 손자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은 없는지 유심히 살폈지만 비슷했다.

평소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고, 오히려 약간은 설렌 듯한 표정도 눈에 엿보였다.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그녀가 유심히 바라보자 손자가 흐뭇하게 웃었다.

-좋은 자세야. 그렇게 계속 나만 봐.

“……옘병하고 있네.”

-아, 우리 덕순 님은 어쩜 욕하는 목소리도 이리 고우실까. 역시 내 최애야.

주접을 떨던 손자가 물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그냥 해봤어. 별일 없나 해서.”

-당연히 없지. 뭐가 있겠어. 아, 공항 간다니까 좀 설레기는 하네. 나 해외 나가는 건 처음이잖아.

그러더니 ‘아’ 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할머니는 인천공항 와본 적 없지?

“그려.”

-내가 주세한에서 탄 여행권 줄 때는 좋아하더니, 왜 안 써? 다른 부모님들은 다 썼다는데.

“곧 쓸 겨. 곧. 시간이 없으니까 그렇지, 네가 장사해 봐라.”

-꼭 써, 할머니.

상대가 씩 웃으며 말했다.

-1살이라도 더 어릴 때 가야지.

“끊어!”

-아, 나 아직 할 말…….

심술궂은 얼굴을 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진짜 괜찮은 거여, 이놈은?’

손자가 준 여행권을 좋다고 받아들이긴 했지만, 김덕순 여사는 그것을 쓸 생각이 없었다.

아니, 쓰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었다.

사위와 딸을 사고로 잃은 이후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고 일어날 지경이었으니까.

‘안 괜찮을 텐데…….’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은 그녀만 지닌 게 아니라 조손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이 창밖의 파란 하늘로 향했다.

‘아무 일이 없으면 좋겄는데.’

공항으로 가고 있을 손자를 떠올리는 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서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