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8)화 (17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78화

아니, 그렇게 갑자기 찍으면 어떡해.

당황한 것도 잠시, 포토그래퍼가 누르는 셔터에 맞춰 포즈를 취했다.

“Good! Good!”

상대가 영어로 연신 감탄사를 냈다.

짧은 촬영이 끝나고 동생들의 차례가 됐다.

한국처럼 포토그래퍼가 세세하게 디렉션을 주기 어려운 터라, 어떻게 통역이라도 해줘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손 쉽게 해결됐다.

만국 공통의 언어 바디 랭귀지 덕이었다.

“슉슉!”

포토그래퍼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포즈를 대강 묘사하면.

“예스, 예스.”

우리 애들이 찰떡같이 포즈를 잘 취했다.

그간 화보, 앨범 표지, 포스터 등 사진을 하도 찍다 보니 이제는 경험치가 꽤 쌓인 듯했다.

데뷔 초만 해도 어설픈 포즈로 혼나기 바빴던 동생들이 이제는 능숙한 포즈를 지을 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실실 웃는 내 모습에 리혁이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건 또 뭔 표정이래요?”

“뭐가?”

“유치원 학예회에 온 할아버지 같은 표정 말이에요. 자꾸 다른 형들 보면서 히죽거리고.”

“…….”

“지금 실장님이랑 똑같이 그러길래.”

“석환 형이?”

고개를 돌렸다가 그만 웃었다.

석환 형이 나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가를 씰룩이면서 광대를 승천하는 모습. 우리 실장님도 나처럼 뿌듯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

내가 씩 웃으면서 ‘으이구’ 하자 상대는 헛기침과 함께 점잖은 신사로 변신했다.

단체 컷까지 끝내고 동생들에게 칭찬을 했다.

“고생들 했어. 다들 잘하더라.”

돌아오는 반응들이 덤덤했다.

“그래요? 저 아까 포즈 실수한 것 같은데. 각도 조금 더 낮췄어야 하는데 헷갈려서 다르게 했어요.”

“조금 아쉬웠는데.”

“저두여. 어제 거울 보고 겁나 연습했는데.”

아쉬움 가득한 얼굴들을 보며 웃었다.

내가 보기엔 잘만 했는데. 다들 보는 눈이 높아져서 그런지 불만족스러운 듯했다.

비주가 말했다.

“형이 찍은 사진들이 다 잘 나와서 저도 욕심이 났거든요.”

“아니야. 나도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은걸. 실수 엄청 했어.”

그와 동시에 넷이서 도끼눈을 뜨고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 진짜인데…….”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도 동정해주지 않았다.

포토그래퍼가 모니터링을 하자며 손짓으로 우리를 불렀다.

곧바로 동생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그가 엄지를 들어 보여주었다.

“Good picture.”

우리 애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어서 나온 내 사진 모음집.

“오.”

멤버들은 잘 찍었다며 오오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내가 보기엔 아쉬움 가득한 포즈들이었다.

아무리 봐도 다 B컷들이라 머쓱한 얼굴로 뒷덜미를 긁적일 때 포토그래퍼가 말없이 양손을 들었다.

“……?”

그가 쌍따봉을 들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Very good picture.”

원망 어린 시선들을 회피하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   *   *

예능과 인터뷰까지 끝낸 우리는 마침내 자유시간을 받았다.

호텔 체크인을 하자마자 미친 듯이 옷을 갈아입고는 로비로 모였다.

설레고 들뜨고, 막 행복해서 방방 뛰기 직전에 이른 우리 모습에 석환 형이 웃었다.

“내일 스케줄 새벽인 거 알지? 우리가 관광하러 온 것도 아니고. 1시간 정도만 가볍게 둘러보고 와.”

“실장님, 저 질문이여!”

“그래. 지호.”

“1시간이라고 하는 게 지금 이 순간부터 1시간 땡인 건가여? 아니면 시내에 도착하고 나서 땡인 건가여?”

“그건…….”

“지호야. 그걸 왜 묻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못되먹은 사람이어도 이동시간까지 포함해서 1시간이라고 하지는 않을걸.”

“…….”

“그치, 형?”

내가 동생들에게 빠르게 눈짓했다.

‘손 모으고 눈 떠. 마음 약해지게.’

‘네!’

우리 다섯이 손을 모으고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그…….”

초롱초롱.

“그…….”

초롱초롱!

마침내 우리 실장님이 백기를 들었다.

“어차피 5분이면 가는 것을… 그래, 도착하고 나서 1시간으로 하는 걸로 하자. 민기랑 원석이도 근처에서 따라 붙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하고.”

“네!”

“뛰지 말고! 야! 다친다!”

목줄에서 풀린 강아지들처럼 우리 다섯이 동시에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야시장까지 가는 길은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그 동안 셀카봉을 들고 간단하게 녹화도 했다.

“안녕하세요, 수플레 여러분. 저희가 드디어! 대만에서 첫 자유시간을 얻고야 말았습니다.”

“정말 흐뭇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저희가 정말 타이완에서 뽕을 뽑고 갈게요.”

셔틀에 탄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끼리 ‘우와아’ 하는 모습을 보며 웃는 가운데 내가 중현이에게 카메라를 돌렸다.

“중현 씨, 밤 나들이를 나가는 기념으로 타이완 삼행시 한 번 해볼까요?”

“좋습니다.”

“타.”

“타이어.”

“이.”

“이빨.”

“완.”

“완두콩.”

리혁이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중현이 형, 우리 삼행시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그와 별개로 나머지 우리는 근본 없는 삼행시에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흐하하하!”

정신없이 웃으면서, 한편으론 이 셔틀버스에 한국인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

인터넷의 한 카페.

【 대만에서 지금 한국 아이돌이랑 같은 버스 탔다.. 】

호텔 셔틀 타는데 존잘 남자 다섯 명 탔어

넘나 연예인 포스여서 잠시 개안했다..

친구 말로는 뉴블랙? 이라고 함

자기들끼리 자~유~시~간~ 이러면서 아카펠라 화음 맞추고 오토바이나 자동차 지나갈 때마다 뭐가 웃긴지 꼬맹이들처럼 웃어댐..

암튼 특이해

얘네 드립칠 때마다 친구랑 나랑 뒤에서 숨죽이고 쪼개는 중ㅋㅋㅋㅋ

키큰애 : 오토바이 오.. 재미있겠다. 나중에 제가 저거 타보면 어떨까요, 형?

큰형인 애가 눈감고 ‘어.. 보인다 보인다..’ 이럼

키큰애 : 뭐가 보여요 형?

큰형 : 우리 그룹이 박살나는 미래가 보인다 중현아

키큰애 : 안 탈게요.. (시무룩)

그러면서 다 같이 깔깔깔 웃고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야

-썰 더 풀어봐 재미있다ㅋㅋㅋ

-가서 말 걸어봐 사진도 찍고

-[글쓴이] 우리 외국인으로 아는 것 같아.. 친구랑 중국인인 척하고 있음

-ㅋㅋㅋㅋㅋㅋㅋ그게 더웃곀ㅋㅋ

5분 후.

-[글쓴이] 사진 찍었다 여기 인증.

-와.. 계탔네

-어떻게 찍음?

-[글쓴이] 어설픈 한국어로 ‘싸진 한 장’ 이랫더니 막 웃으면서 찍어줌.. 애들 세상 친절하더라.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기 마렵다 후기 좀

-[글쓴이] 중국어 겁나 잘하는 애가 있더라궁..ㅇㅇ 그래서 일본인이라고 했더니 이번엔 하얀 애가 겁나 유창하게 일본어 하면서 말 걸었어 거기서 패닉 와서 스.. 스미마생! 하면서 도망침. 뒤에서 자기들끼리 막 놀리는데 하얀애 얼굴 엄청 벌개짐

-왜 도망친건뎈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결말까지 완벽

10분 후.

-[글쓴이] 아씨.. 야시장에서 또 마주쳤다

*   *   *

“어, 저기 그 일본 분들 있어여. 리혁이 형, 어서 또 인사 드려여.”

“싫어.”

“아까 부끄러워서 저분들이 도망친 걸 수도 있잖아여.”

“……흠흠.”

리혁이가 멀리서 마주친 2인조 관광객에게 소심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상대편이 화들짝 놀라더니 황급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색하고 무서운 걸 마주친 표정 같았다.

순식간에 얼굴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우리 애를 보며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푸하하!”

리혁이가 불을 뿜는 공룡처럼 ‘캬아아악!’ 하는 탓에 우리가 요리조리 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아오, 진짜.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들을 만나게 되어 가지고.”

땅바닥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던 녀석에게 슬금 다가가 토닥이자 다행히 금세 풀어졌다.

곧바로 야시장 구경을 시작했다.

“우와.”

모든 게 신기하다.

같은 아시아권이라서 별 느낌이 없을 줄 알았는데, 확실히 외국은 외국이었다.

색다르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불이 들어온 한자 간판들.

시끌벅적 들려오는 중국어 소리.

절에서 볼 법한 등이 황금색 빛을 내며 주렁주렁 골목길에 매달려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우와…….”

“이게 외국인가 봐.”

밤이 되어 쌀쌀한 날씨 탓도 있지만 양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바다를 건너서 이 낯선 섬나라에 도착을 한 거구나.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서울에서 있었는데 이런 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니 희한했다.

잊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야시장 풍경을 두 눈에 꼭 담았다.

폰카로 정신없이 찍어대는 내 모습에 비주가 웃으면서 물었다.

“할머니 보여드리게요?”

“응.”

우리 김덕순 여사한테 보았던 것, 신기했던 것 다 알려줘야지.

비주도 내 곁에서 폰카로 주변 음식들이나 상점 풍경, 간판 등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해외 나오니까 가족 생각이 더 나는 것 같아요. 이런 데 같이 오면 좋을 텐데.”

“그러니까 말야. 아쉬워.”

“참, 가족들한테 살 기념품은 정했어요?”

“과자 사 가려고. 여기 오면 다들 과자를 사간다고 그러더라.”

비주와 함께 살 기념품을 생각하는 동안 중현이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곳곳을 누볐다.

이번에 정산 받은 기념으로 구매한 카메라인데, 진지하게 찍는 자세가 제법 그럴싸했다.

처음 30분 정도는 정신없이 동생들과 돌아다니면서 시장 구경을 했다.

이것저것 사 먹기도 하고.

간단한 기념품을 두고 흥정을 하기도 하고.

“너무 비싼데.”

내가 막내에게 물었다.

“지호야, 너 흥정 같은 거 할 줄 아냐?”

“아녀.”

“영화나 드라마 보면 보통 부잣집 막내아들한테 숨겨진 재주 있고 그러던데. 놀고먹는 거 좋아하지만 알고 보니 상인의 재능을 물려받은 천재라거나.”

“에이, 뭐야. 전 그런 거 없어여.”

지호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돈이 많은데 뭐 하러 흥정을 해여? 그냥 사면 되지.”

“어, 그러네.”

“제가 흥정은 해본 적 없구여. 대신.”

우리 막내가 상점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면서 ‘가격 다운 플리즈’ 하면서 손짓을 했다.

물건을 팔던 아주머니가 껄껄 웃으면서 할인을 해 주었다. 우리끼리 봉지를 들고 나오면서 헤벌쭉 웃었다.

“크, 역시 애교는 만국 공통이네여.”

“잘했다. 우리 막둥이.”

싸게 샀다고 희희낙락하고 있었는데, 곧바로 리혁이한테 혼났다.

“아주 신이 나셨네들. 인터넷 보니까 그 반값이면 사는 건데. 세 배에 두 배로 깎았다고 아주 하하호호. 어이구.”

“죄송합니다아.”

리혁이에게 고개를 숙인 것도 잠시.

지호와 내가 서로에게 ‘너가 사자고 했잖아’, ‘형이거든여?’ 하면서 사이좋게 우애를 과시했다.

여러모로 즐거운 밤나들이였다.

“어? 형, 저기 경품 있어여! 경품!”

화살을 과녁에 쏘는 게임과 함께 경품이 쭉 걸려 있었다. 눈을 빛내는 동생들에게 웃으며 물었다.

“뭐 타고 싶은 거 있어?”

“저 가짜 포켓몬 인형이여.”

“형. 저는 장수풍뎅이 인형이요. 제 마스코트로 삼으려고요.”

물정 모르는 관광객이라고 온몸에 써 붙인 우리가 다가가자 가게 주인이 반색하며 반겼다.

「아이구, 어서 옵쇼!」

그러면서 단돈 얼마에 경품 도전이라고 꼬시길래 내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호구를 잡았다며 흐뭇하게 웃던 아저씨의 미소는 아주 잠깐이었다.

쉬익! 탁!

“우와!”

“오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동생들의 말을 무시하면서 화살을 쐈다.

쉬익! 탁!

내가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과녁 정중앙에 화살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주인 아저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동안 어느새 주변 사람들도 몰려들어 신기하다는 듯 구경했다.

우리 애들이 수군거렸다.

“나는 사람들이 우주 형 신기해 할 때마다 너무 좋더라.”

“저두여. 아, 나만 신기한 게 아니구나 하는 느낌.”

“인정.”

“원래 저 아저씨가 몸으로 하는 건 잘하잖아요, 뭐. 그런데 여기 주인 아저씨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요.”

경품을 휩쓸어갈 때쯤 주인이 말했다.

「오, 오늘 도전 기회는 여기까지이!」

「아까는 무제한이라고…….」

「훠이! 훠이!」

너무 다급했다.

「그럼 경품 가져갈게요.」

동생들에게 하나씩 인형이나 선물을 안겨준 채 나왔다.

아쉽다.

시간만 넉넉하면 이 야시장의 모든 게임장을 휩쓸어버릴 자신 있는데.

저기 막대에 달린 고리를 병 주둥이에 끼워서 병을 세우는 게임이라든가. 빙고 같은 거라거나.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동생들과 헤어졌다.

“그럼 15분 뒤에 보자!”

말이 자유시간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다섯 명이 동시에 우르르 뭉쳐 다니다 보니 관심사에 맞춰서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은 잠시 헤어지기로 결정했다.

“리혁아, 비주 꼭 챙기고.”

“걱정 마요. 내가 이 형 핸드폰에 위치 추적 어플 설치해놨으니까. ‘우리 아이 어디 있을까?’ 그거.”

“잘했어, 비주도 리혁이 꽁무니 잘 쫓아가고.”

“네, 형. 열심히 쫓아갈게요.”

물가에 나온 어린 아이를 보듯 짠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리혁이에게 붙들려 가는 비주가 아련한 눈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따 봐요, 형!”

“조금 이따 만나!”

리혁이가 성을 냈다.

“아이 진짜! 10분 뒤에 볼 거면서 요란 떨지 말아요!”

“리혁이도 보고 싶을 거야.”

내가 손을 흔들어 주자, 리혁이가 마지못해 어색하게 머쓱한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제 홀로 남게 된 나는 외롭고 쓸쓸…….

“할 리가 없지요.”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나들이를 나섰다.

내 관심사는 주로 길거리에서 들리는 음악들이었다. 대만의 밤거리에서는 과연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는가.

K팝도 드문드문 들리고.

대만에서 유행하는 음악들을 들으면서 구경을 나섰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힐끔거리는 게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문제가 생긴 건 길거리 음식을 하나 사먹으면서 걷고 있을 때였다.

한 남자가 따라 붙었다.

「혹시, 연예인 생각 있어요?」

「네?」

「나 이상한 사람 아니고…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내가 얼굴 보고 딱 느낌이 왔거든. 연예인을 해야 할 얼굴이에요.」

명함을 보니 한자로 무슨 공작소라고 쓰여 있었다. 작업 공방인가 싶었는데 연예기획사란다.

중국 본토에서 활동 중인데 나 같은 마스크면 충분히 먹힌다면서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열정적으로 말을 쏟아붓는지 내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명함을 쥐어주고 떠났다.

「한 번 생각해 봐요!」

그리고 그 남자가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몇 명이 더 명함을 건네주었는데 대부분 이미 한국에서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다는 말에 ‘아…’하며 머쓱한 얼굴로 돌아갔다.

명함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긴 뭐 내가 모르는 길거리 캐스팅의 성지 그런 곳인가.

다섯 명이서 있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혼자 돌아다니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붙었다.

대뜸 말을 걸거나 자기 번호를 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길거리 음식이라도 사먹으려고 멈추면 바로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해외라며 내 얼굴을 모르는 터라 마스크도 안 쓴다며 희희낙락 했는데 이건 또 다른 의미로 불편했다.

결국 음악 감상은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발걸음을 돌릴 때였다.

「저기요.」

이번에는 또 뭔가 싶어서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돌릴 때였다.

카메라?

마이크를 들고 있는 기자와 함께 카메라맨이 서 있었다.

마크를 보니 대만 방송이다.

「네?」

「야시장 구경 나온 시민들 상대로 인터뷰 진행하고 있는데요. 오늘 나들이 나온 감상이 어떤지 여쭤도 될까요?」

「아, 네.」

오늘 내가 느낀 감상을 간략히 말하고는 인터뷰를 끝냈다.

내가 이름이라도 말해줘야 하는 거냐고 물어보는데 그쪽에서 가명으로 나가는 거라 상관없다고 했다.

나이를 물어보길래 21살이라고 답해 주었다.

……뭐, 그, 뭐. 해외는 만 나이로 따지는 거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매니저한테 보고라도 할까 했는데, 문제되지 않을 몇 마디만 한 터라 신경을 끄기로 했다.

이윽고 동생들과 약속한 지점에 도착할 때였다.

“……?”

다섯 명 모두가 똑같이 진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희도?”

“…형도요?”

저마다 받은 명함을 합치니 총 7개였다.

불과 15분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얘네도 버라이어티한 일을 겪은 모양이었다.

“야, 진짜 너희는 15분 사이에 이렇게 스펙타클하냐. 진짜.”

“형은 별 일 없었어요?”

“나는 당연히 없지.”

내 말에 리혁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닐 텐데. 우리 중에 제일 요주의 인물 아니에요?”

“내가?”

“맞아여. 스트릿 보이즈 형들도 형 그거라고 그랬거든여. 아이돌계의 김전일이라구.”

“코난으로 해줘. 그리고 진짜 별 일 없었어.”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진짜야. 나 정말 음악 감상만 하다 왔어.”

*   *   *

다음 날 아침.

평화로운 식사를 즐기던 대만의 수플레들은 아침 뉴스를 보다가 입에 먹고 있던 것을 뿜었다.

“푸흡….

대만의 지상파 채널 TTS의 모닝 뉴스에 자신의 아이돌이 등장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선우주.

「우젠민(禹建民), 21세」

오늘 날씨도 좋고, 야시장의 분위기가 정말 예쁜 것 같아요. (언제 봐도) 참으로 멋진 곳이에요.

인터뷰 영상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

식탁에 뱉어낸 시리얼을 닦아내며 대만의 수플레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가 지나간 거지.’

왜 해외 아이돌이 우리나라 아침 뉴스에 나오는 걸까.

거기다 가명까지.

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그들로서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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