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1화
“휴.”
손수건으로 이마와 목 뒤에 성글성글 맺힌 땀을 닦아내렸다.
온몸이 땀투성이.
힘쓰는 것도 일이지만 오븐에서 흘러나오는 열 때문에 더워서 죽을 것 같았다.
오븐 속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빵을 보면서 잠시 숨을 돌렸다.
“후우…….”
주방용 테이블 귀퉁이를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굵직한 땀방울이 구레나룻을 타고 흘러내렸다.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가 알록달록한 얼룩들이 눈 위에서 흩어졌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다가 코를 킁킁거렸다.
“비주야. 왜 손수건에서 걸레 냄새가 날까?”
“그거 걸레 같아요. 형.”
“아하.”
머쓱하게 웃으면서 걸레를 내려놓는 내 모습에 카메라맨이 뺨을 씰룩거렸다.
비주가 웃으면서 얼음을 동동 띄운 유리컵을 건넸다.
“짬이 생겨서 생과일주스를 한 번 만들어 봤어요. 땀도 식힐 겸 마셔 보세요. 형.”
“오, 고마워. 뭐가 들은 거야?”
“사과예요.”
빨대에 대려던 입을 다급히 빼고는 비주의 음료를 바라보았다.
“그건?”
“이건 사과 에이드예요. 바꿔줄까요?”
“……아, 아냐. 괜찮아.”
“얼른 마셔 보고 어떤지 말해주세요. 형.”
우리 애가 눈을 반짝거리고 바라보기에 한 모금을 마시곤 엄지를 들어주었다.
맛있다고 하니 행복하게 웃는다.
잔뜩 젖어서 이마에 달라붙어 있는 비주의 머리카락을 떼어주며 물었다.
“할 만해?”
“네, 할 만해요. 재미있기도 하고.”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우선순위라는 게 있는 거니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일 있을 쇼케이스였다.
예능 녹화에서 활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괜히 무리하다가 탈이 나면 그게 더 손해였다.
비주를 유심히 살피던 때.
박 셰프와 이야기를 마친 명세진이 다가왔다.
“어떻게, 좀 쉬고 있어요?”
“아, 네.”
“헐, 다들 엄청 땀났네. 미안해요. 힘들죠?”
파티시에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내가 너스레를 떨었다.
“새삼 깨닫는 건데, 이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요.”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괜히 전문가가 있는 게 아니구나 싶다고 할까.
머릿속에 각종 디저트에 대한 지식과 이론도 있어야 하고, 주방 기구들도 잘 다뤄야 하며 미적인 감각도 필요한 작업.
거기다 튼튼한 근육까지.
우리가 하는 일은 머리를 쓰지 않고 시키는 대로 힘만 쓰는 파트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다.
평소에 이런 작업을 홀로 해냈을, 자그마한 체구의 파티시에에게 감탄의 시선을 보냈다.
“대단하세요. 저랑 비주는 이거 잠깐 하는 것도 힘들어서 땀을 뻘뻘 흘리고 그러는데.”
“겸손하시긴.”
그녀가 픽 웃었다.
“둘 다 엄청 잘해줬어요. 우주 씨는 반죽하는 거 보고 내가 다 부럽더라. 어떻게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파티시에님 조언 덕분이에요.”
“아닌데, 그런 거 아닌데…….”
혼잣말을 하며 의문을 품은 시선에 하하 웃을 뿐이었다.
대가들이 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한 번 따라해낸 것인데, 상대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떻게 말해줄 수도 없고.
다행히 그녀의 시선이 오븐 속으로 향하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
오븐에서 나오는 주홍색 빛 때문인지 동글동글한 인상에서 눈이 유독 반짝이는 것 같다.
쿠키와 빵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에 내가 물었다.
“빵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네.”
파티시에가 오븐에 눈을 고정한 채 미소를 지었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빵 반죽 만지는 것도 그렇고. 저는 빵이 좋아요. 울적할 때도 빵 반죽 만지면서 기분 풀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해야 하나.”
무슨 느낌인지 이해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노래를 만들면서 푸는 것과 비슷했다.
빵을 바라보며 따스한 미소를 짓던 명세진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정말로.”
“어우, 아니에요.”
“맞아요, 그러지 마세요. 부끄러워요. 저희.”
나와 비주가 난처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지만 그녀가 도리어 고개를 저었다.
“예전부터 소원이었거든요. 제가 만든 디저트를 해외에 소개하는 거. 박 셰프님이랑 뉴블랙 멤버 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오늘이 정말 끔찍했을 거예요.”
“…….”
“도와줘서 고마워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는 이를 보며 비주와 내가 손사래를 치다가 이내 뿌듯하게 웃었다.
고스란히 전해지는 따스한 감정에 기분이 몽글몽글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면서 그녀가 말했다.
“이제 어느 정도 수량도 확보했고, 나머지는 저랑 박 셰프님이 진행해도 될 것 같아요. 조금 쉬었다가 홀로 나가보는 건 어때요?”
내가 물었다.
“두 분이서 괜찮으시겠어요?”
“네, 충분해요.”
그 동안 우리 둘이 충분히 해줬다는 듯 명세진이 우리에게 이제 좀 쉬라는 이야기를 했다.
박재우 셰프도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고생 많았어요, 둘 다.”
“저희…….”
“얼른! 가서 조금 쉬어요.”
셰프와 피티시에가 우리를 주방 밖으로 떠밀었다.
왜 그리 강경하게 내쫓나 했다가 탈의실 거울을 보고 진상을 깨달았다.
비주가 눈을 깜빡였다.
“저희 밀가루 폭탄 맞은 사람 같아요. 형.”
“……그러게, 진짜 못 봐줄 꼴이었구나.”
땀범벅 위로 밀가루가 콧잔등이나 여기저기 뺨에 데코레이션 되어 있었다.
비주와 내가 한참을 웃고는 거울 앞에 서서 그 모습을 셀카로 담았다.
여분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마이크를 다시 착용한 우리는 숨 돌릴 틈 없이 홀로 향했다.
원래의 임무로 복귀하기 위함이었다.
비주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들 잘하고 있겠죠?”
“너무 걱정하지 마. 다들 잘하고 있을 거야. 설마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터지기라도 하겠어?”
내가 자신 있게 웃었다.
서빙 알바 시작하기 전에 동생들에게 미리 주의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다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대로만 하면 문제가 없을 터였다.
주방에서 홀로 향하는 복도를 걸을 때 비주가 말했다.
“그래도 조금 불안해요. 유창현 선배님이 계시지만, 중현이나 지호 같은 경우는…….”
“너무 걱정하지 마. 걔네가… 옴마야. 이게 뭐시여.”
쨍그랑!
요란한 소리가 울리면서 우리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여!”
와장창 깨진 접시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당황한 얼굴로 어버버하고 있는 우리 막내가 보였다.
“…….”
그걸 바라보던 유창현이 주방으로 접시를 들고 가며 정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얼른 치워, 얘들아!”
“네, 바로 갈게요!”
리혁이가 쓰레받기로 접시 잔해를 수거하다가 주변 테이블에 머리를 꽝 하고 박다가 눈물을 흘렸고.
“아악!”
중현이는 어디가 어느 메뉴였지 하는 얼굴로 당황한 채 테이블 사이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 참신한 개판을 보며 비주와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
그때 나와 비주를 발견한 리혁이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넋이 나갔는지 얼굴이 백짓장처럼 변했다.
“……도와줘요.”
짧고 간절한 한 마디. 내가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우리 갈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잖아.”
“초반에는 괜찮았어요. 초반에는. 분위기 좋았는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픈 때만 해도 쑥쑥 들어오는 정도였던 손님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쑥쑥쑥쑥! 하는 속도로 들어왔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일반적인 수준을 넘기 시작하면서 알바 초보인 우리 애들이 패닉 상태에 빠진 모양이고.
하나가 엉키면서 다른 모든 게 엉켰다고 했다.
이어폰 줄처럼 한 번 슥슥 비볐는데 전부 다 꼬여버린 셈이라고 할까.
“카메라도 있고 방송이니까 손님들이 웃어 주시기는 하는데, 지금 약간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에요.”
리혁이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테이블을 바라보니 정말 그랬다.
핸드폰 잠금화면을 눌러 시간만 보거나 괜히 포크나 냅킨을 뒤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메뉴는 언제쯤 나오는 거야?’ 하는 표정.
내가 중얼거렸다.
“……여기도 큰일 났네.”
주방에서는 제빵 담당이 손목을 삐더니, 여기서는 우리 애들이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 못하고 패닉에 빠져 있었다.
내 기준으론 여기가 더 심각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오늘 일일 알바로 출연한 거니까.
깜짝 제빵 도우미야 보탬이 되는 활동이지만, 엄연히 말해서 우리가 잘해야 하는 건 이 서빙 알바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형?”
비주의 물음에 리혁이도 날 바라보았다.
마치 나라면 해결 방법을 알 것 같다는 듯 바라보는 녀석들의 눈빛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잠시 홀 상항을 빠르게 스캔했다.
대강의 문제점을 파악해낸 후 리혁이에게 다른 둘을 불러달라고 말했다.
“애들 좀 데리고 와 봐.”
역할 분담을 좀 해야겠다.
* * *
대강의 설거지를 마치고 홀로 돌아가면서 유창현은 뒷머리를 짜증스럽게 긁적였다.
‘미치겠네. 이거.’
언제부터 그리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홀 상황이 엉망으로 변했다.
‘손님이 왜 이렇게 많아?’
그도 개그맨 공채에 합격하기 전 이런저런 알바를 경험했지만 이만큼 손님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미친 듯이 주문이 들어오고, 주방과 홀을 오가고, 접시를 닦고.
분명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손님들은 불만족스러워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저기요, 저희가 주문을 아까 했는데 저기가 더 먼저 나왔어요.」
「네?」
「저기가 더 먼저 나왔다고요.」
「무슨 말씀인지 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언어였다.
중국어를 할 줄 알기는 하지만 워낙 시끄럽다보니 낯선 언어가 귀에 잘 들어올 리가 없었다.
‘젠민이가 있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빵신이 강림해서…….’
반죽을 그 정도로 잘하는 솜씨가 아니었다면 당장 다른 멤버와 교체를 해서 빼내왔을 것이다.
유창현은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어떡한다.’
어디서부터 뭘 고쳐야할지 막막하게 느껴질 때.
그는 우주와 비주가 돌아온 것을 보고 반색했다.
멤버들을 불러 모은 우주가 동생들에게 뭐라고 말을 조곤조곤 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알겠지?”
멤버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우주가 웃으면서 동생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확실히 리더 같네.’
어른스럽게 멤버들을 다독이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유창현이 다가갔다.
“무슨 회의라도 했어?”
“업무분담을 좀 했어요.”
“업무분담? 무슨…… 어, 저기 주문 들어왔다. 우주야, 저기 손님들한테 가서 주문 받아줄래?”
“네, 선배님.”
우주가 테이블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고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유창현도 어디선가 그를 부르는 부름에 움직였다.
그리고.
‘……뭐지?’
그때부터였다.
터널 하나를 두고 차량 수백 대가 모인 듯한 답답했던 상황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분위기에서 느껴졌다.
뭔가 팽팽했던 게 느슨해지면서, 보다 더 화기애애해졌다고 할까.
메뉴를 추천해달라는 손님들 앞에서 우주가 눈높이를 맞추며 여유롭게 주문을 받고 있었다.
「푸하하, 정말 이걸 만든 거예요?」
「만드느라 엄청 고생했어요. 그럼 사이드 메뉴는 이걸로 드릴까요?」
「네, 좋아요!」
「음료 선택은 뭘로 도와드릴까요? 제 추천이요? 이게 맛있는데 설탕도 적게 들어가요.」
기름진 메뉴를 먹을 때 음료는 다이어트 콜라 같은 게 아니겠냐는 듯 너스레를 떨자 손님들이 웃는다.
‘잘하네.’
처음에는 그렇게 현지인처럼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하는 우주 때문에 벌어진 일인 듯했다.
하지만 볼수록 뭔가 달랐다.
손님은 여전히 많고 복작거리는데 일이 한결 여유로워진 듯하다고 할까.
‘……아!’
그제야 변화가 눈에 들어오면서 상대의 말이 기억났다.
-역할 분담을 좀 했어요.
그 말대로 정말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 있었다.
가장 먼저 리혁이가 들고 다니는 수첩이 보였다.
“리혁아, 10번 테이블에 인절미 빙수 두 개에 슈크림 도넛.”
“리혁이 형, 8번에 에이드 리필이여!”
멤버들이 부를 때마다 서리혁이 중앙의 관제탑처럼 주문의 순서를 기록하고 그걸 종합해서 전달했다.
“비주 형, 그 메뉴 7번 분들한테 먼저 갖다드려야 돼요.”
먼저 들어온 손님에게 더 먼저 메뉴를.
그 하나만으로 일단 손님들의 불만이 가신 듯했다.
‘저 둘은 단순 작업 담당인가?’
복잡한 일을 어려워하던 중현이와 지호에게는 단순하면서 중요한 일거리가 주어져 있었다.
손님들의 컵이나 냅킨 등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비어 있는 게 생기면 곧바로 다가가 채워주었다.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로 주전자를 들고 움직였다.
「물이 더 필요한가?」
「네에…….」
「주겠다. 물.」
「우아아. 또 말해줘요. 방금 한 말.」
……왠지 모르게 손님들이 자기들끼리 손뼉을 치며 꺄아 하는 것이 만족도도 높은 듯했다.
「리필해드릴게요.」
왕지호 역시 생글거리는 웃음과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아까처럼 머리가 복잡한 일을 피해서 그런지 둘이 한결 여유를 되찾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점원이 더 부드러워지니 덩달아 손님들도 더 편함을 느끼는 듯했다.
‘비주는 설거지 담당인가…?’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다니다가 중현이와 지호가 접시를 옮겨 나르면 설거지를 하곤 했다.
‘그리고 우주는…….’
사방팔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딜 가든 우주가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선배님~”
그가 주방에 접시를 가지고 가면 싱크대에서 비주와 함께 고무장갑을 끼고 있고.
“선배님~”
“……?”
주문을 받으러 돌아다니면, 지루한 표정을 한 손님들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걸고 있었다.
“선배님~”
“…….”
새로운 테이블 세팅을 하러 가려고 했더니, 우주가 이미 순식간에 포크와 숟가락을 나란히 늘어놓았다.
냅킨을 가볍게 손으로 퉁기고는 순식간에 보기 좋게 접었다.
무슨 고급 레스토랑의 10년차 웨이터 같은 모습이었다.
‘무슨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알바계의 이상향이라고 해야 할 듯한 모습이라고 할까.
그때 우주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인사했다.
“선배님~”
“……너 솔직하게 말해 봐. 대체 몸이 몇 개야?”
“음… 저 하나요.”
고민하지 마. 진짜 여러 개 같잖아.
분신술을 쓴 사람처럼 여기저기 오가는 이를 보며 그는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갑자기 여희연의 목소리가 또 떠올랐다.
-일 잘해. 대박 잘해.
제빵할 때만 해도 신기하네 하는 기분이었지만 저 서빙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그랬다.
‘……진짜 잘하네.’
그가 어딘가의 고용주라면 당장 높은 월급을 주고 채용하고 싶었다.
속된 말로 일머리가 엄청나다고 할까.
낯선 작업도 순식간에 착 배우고, 남는 시간이 생기면 본인이 할 일을 찾아내곤 알아서 했다.
“우주 씨, 빙수 작업… 하고 있네?”
“우주야, 여기 설거지 세제… 채우고 있구나?”
홍길동처럼 축지법을 쓰듯 이동하는 우주를 볼 때마다 출연진들이 기특한 눈으로 바라볼 정도였다.
박재우 셰프가 말했다.
“저 친구는 참 어딜 가든 살아남겠어요. 진짜 저런 신입 하나만 있어도 남부럽지 않을 것 같은데.”
“뉴블랙이 다 그래요. 일 잘하고.”
우주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덩달아 칭찬을 받고 있었다.
물론, 다른 멤버들도 낯선 일을 척척 해내긴 했다.
하지만 유창현이 보기에 그것은 누군가 그들을 잘 이끌어줘서 가능했던 결과였다.
‘호흡이 척척이네.’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정리하고 멤버들의 성향에 따라 어울리는 업무를 배정해주는 것.
처음에는 왜 뉴블랙 멤버들이 자기들의 리더에 대해 말할 때마다 뿌듯해하고, 가족처럼 신뢰하는 눈으로 바라보는지 이해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충분히 이해 갔다.
‘다른 팀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로 떠난 팀들의 일일 알바생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보기에 뉴블랙은 최고의 알바생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선배님~”
“아이, 깜짝아!”
뒤에서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등장한 선우주 때문에 그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무슨 파로마 광고야? 제발 인기척 좀 내고 나타나줘, 우주야.”
“죄송합니다.”
머쓱하게 웃던 우주가 발걸음을 스윽스윽 움직이면서 멀어질 때였다.
그때 특이한 발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소리 없이 스윽 등장하는 게 저 특이한 발걸음과 상관이 있어 보였다.
“우주야.”
“네?”
“그건 무슨 걸음이야?”
“아, 이거요?”
우주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사이족 워킹이에요.”
“…….”
그러면서 스윽 미끄러지듯이 사라지는 우주를 보며 유창현은 눈을 깜빡였다.
‘얘도 정상은 아니야.’
그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