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2화
일일 디저트 카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야말로 대호황.
사람들이 SNS에 올린 인증샷이 입소문을 타면서 마감 시간이 될 때까지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중간에 제작진이 대기줄을 잘랐는데도 그게 줄어드는데 무려 1시간이나 걸릴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마지막 남은 손님까지 배웅하고 전 출연진이 홀에 모였다.
뒷정리와 결산까지 마친 후.
엔딩 멘트를 끝으로 카메라의 빨간 불이 꺼지자, 담당 피디가 대표로 손뼉을 쳐주었다.
“이틀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출연진끼리 서로를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고된 전투를 함께한 전우들처럼 훈훈한 분위기.
마음 같아서는 다 같이 모여서 밥이라도 한 끼 먹으러 갈 만큼 분위기가 좋았으나, 아쉽게도 서로 갈 길이 멀었다.
저쪽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촬영을 해야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대만 홍보 스케줄이 있고.
아쉬운 듯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오늘 재미있었어요!”
“한국에서 또 봐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중에 담당 피디는 따로 나와 우리를 픽업하러 온 석환 형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죽다 살아났어요. 세진 씨 손목 삐는 순간 눈앞이 컴컴해지고. 국장님 얼굴이랑 시말서가 아른거리는데, 이 친구들 아니면 오늘 쪽박 찼을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의 활약이 잘 나오도록 편집해 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다.
“아아, 그렇군요.”
석환 형은 부드럽게 웃으면서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눈 위로 ‘저희 애들이 빵을 만들어요?’, ‘서빙을 기가 막히게 했다고요?’ 하는 질문이 아른거리는 게 보였다.
차량에 올라타자마자 매니저들이 득달같이 질문을 퍼부었다.
“너희는 저기서 대체 뭘 하고 온 거야?”
모닝 뉴스에 나왔던 우젠민 해프닝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카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감감무소식인 듯했다.
카페가 마감할 때까지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풀어내자 다들 할 말을 잃고 입만 뻐끔거렸다.
“그러니까 파티시에 대신에 너희가 제빵을 했는데, 손님들이 그걸 먹고 맛있어 했다고?”
“네, 엄청 많았어요.”
비주가 뿌듯하게 대답했고 나는 손가락으로 뿌듯함의 쁘이를 그려 보였다.
“…….”
매니저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기들끼리 ‘제대로 들은 거 맞지?’ 하는 표정을 짓던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훈훈한 미소를 머금었다.
석환 형이 픽 웃었다.
“난 또, 뭔가 했네.”
“……?”
“평소의 너희잖아.”
우리 실장님이 말했다.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네. 너희가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하면 더 불안할 뻔했거든. 차라리 이런 식으로 터지니까 좋네.”
“그러게 말입니다. 마음이 확 풀리네요. 원석이는?”
“덤덤하네요. 저도 적응했나 봐요.”
그런 매니저들을 보면서 우리끼리 눈을 깜빡였다.
뭐야.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예능 나가서 뭔가 사고를 치겠지’라고 가정은 이미 했고, 그 내용만 궁금해 한 듯했다.
곧바로 자기들끼리 ‘제빵 예능 좀 알아볼까요?’, ‘거긴 어때, 세상에 이런 일이?’, ‘달인 방송 게스트로 가야죠.’ 하는 대화를 우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째 우리 이미지가 이상하게 잡힌 것 같은데.”
“그니까여. 실장님이랑 매니저 형들이 저희를 바라보는 눈이 야시꾸리한 게 예전이랑 달라여.”
“우리가 최근에 이상하긴 했잖아요.”
“우리라고요?”
구석에서 노트에 뭔가를 끼적이던 리혁이가 고개를 들었다.
“거기서 난 빼줘요.”
“왜?”
“그야 당연한 얘기 아닌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제일 정상인이잖아요.”
“아아, 뉘에…….”
우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뽀얀 얼굴에 붉은 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이잖아요. 여기서 나보다 더 정상인 사람 있어요?”
네 명이 동시에 손을 들자, 리혁이가 빈정 상한 표정을 지었다.
“양심이 없네. 이 사람들.”
“솔직히 말해서 네가 정상일 리가 없잖아. 그리고.”
동생들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내가 말했다.
“뉴블랙 최고의 정상인은 나지. 네가 아니고.”
“…….”
애들이 헤드뱅잉을 하듯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얘들아? 왜 인정을 안 해주는 거야?”
“절레절레.”
“의태어 입으로 말하지 말고, 중현이.”
“…….”
“아니, 말을 좀 해봐. 얘들아.”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외면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나는 억울했다.
나를 무슨 인삼밭에 낀 고구마처럼 바라보는 것 같다고 할까.
그때 리혁이가 제안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한 번 가려봐요. 누가 뉴블랙 최고의 정상인인지.”
호텔로 돌아가는 동안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선거 유세를 하듯이 자신이 얼마나 멀쩡한지 어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가서는 유치하게 ‘수플레들이 그랬거든?’, ‘지금 팬카페 들어가여? 들어가?’ 이러고 있을 때.
“그럼 매니저 형들한테 물어 봐여!”
“그러든가.”
막내의 제안에 따라 우리가 매니저들을 불렀다. 곧바로 자초지종을 말하며 그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석환 형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너희 중에 누가 제일 멀쩡하냐고?”
끄덕끄덕.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석환 형은 이내 간단한 결론으로 우리를 침몰시켰다.
“정상인들은 이런 토론 안 해.”
다시 생각해 봐도 그보다 더한 명답은 없었다.
* * *
호텔에서 씻고 꽃단장을 마친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대만에서의 홍보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방송 인터뷰.
한국과 마찬가지로 타이완에도 MTV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해외 가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두 남녀 MC가 영어로 진행하는 토크에 맞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영어에 능통한 나와 리혁이가 대화를 주도하고, 종종 비주도 끼어들어 말을 덧붙였다.
중현이와 지호는 몸이나 애교로 웃음을 만드는 역할이었다.
요즘 대만에서 유행한다는 간단한 게임도 하면서 웃고 즐기고. 나름대로 즐거운 분위기였다.
TV 프로 녹화가 끝나고서는 지체 없이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쇼핑몰로 직행했다.
공개 팬사인회를 진행하기 위함이었는데, 우리가 입구를 통과하자 모여든 인파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으아아, 뭐야!”
깜짝 놀란 리혁이가 무의식적으로 나랑 중현이 뒤에 숨는 장면에 대만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시크하게 걷긴 했지만, 지호가 깔깔 웃으며 놀렸고 나머지도 웃음을 삼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고 있지만 소용없었다.
아까부터 번쩍이는 플래시를 보건대 찍을 만한 사람은 다 찍었을 테니까.
쇼핑몰 1층 중앙에 마련된 단상에 앉아 우리는 팬들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낯선 말을 하는 사람들이 팬이라면서 말을 걸었으니까.
「정말 보고 싶었어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나 역시 반겨주긴 했지만 살짝 굳어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대만 사람을 처음 봐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미 하루 종일 카페 영업을 한 터라 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은 이제는 친숙하게 느껴졌다.
다만 그런 사람들이 우리 팬이라고 생각하니 적응이 안 된다고 할까.
해외 팬.
평소에 꿈꾸었던 음악방송 1위나 신인상과 달리 해외 팬은 지금까지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 않았던 존재였다.
미튜브나 라이브 방송 댓글에 쓰인 영어나 한자를 보면서 ‘어? 외국에도 팬이 있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존재할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터였다.
솔직히 누가 믿겠어.
바다 건너 이국땅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다는 걸 말이야.
그런데.
“……있네.”
그런 사람들이 눈앞에 있었다.
거기다 한국의 수플레들과 너무 똑같아서 흠칫 놀랄 정도였다.
우리를 바라보고 반짝이는 눈동자.
물을 한 모금 마시거나 동생들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줄 때마다 이리저리 돌아가는 고개.
중국어로 ‘넘어가실게요’ 할 때마다 울적해지는 입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연신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목울대까지.
불현듯, 국적과 인종을 떠나 팬들은 세계 어딜 가나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 홀로 정의를 내리고 있었던 ‘수플레’라는 단어가 보다 넓게 확장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동생들도 비슷한 감상을 느끼는 듯했다.
일일 카페에서는 손님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던 녀석들도 처음에는 세상 수줍게 말하다가 나처럼 금세 적응한 듯했다.
물론 거기에는 도움이 있었다.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했던 일반 대중과 달리 이번에는 상대편이 먼저 다가와 주었으니까.
“저기…….”
내 앞으로 넘어온 팬이 떨리는 목소리로 한국어를 말했다.
“저, 한국말 배웠어요.”
“우와, 잘하는데요? 어떻게 배우셨어요?”
“미튜브. 책. 학원….”
더듬더듬 한국어를 어색하게 말하던 수플레가 내 눈을 보고 창피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그녀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과 우리들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말했다.
“말해보고 싶어서, 배웠어요.”
“…….”
“좋아해요.”
“…….”
그 말에 잠시 생각이 정지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먹먹해서 멍하니 입을 벌리는 동안, 가슴 한구석에서 뭔가 훅 차올랐다.
사인을 그리다가 눈이 살짝 희뿌얘질 뻔한 터라 울상을 지었다.
“그런 멘트 하시면 저 울어요, 정말.”
“울으면 안 돼. 그건 곤난.”
급하게 말하는 팬의 말에 그만 눈물이 쏙 들어가고, 재채기하듯이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처럼 우리에게 더 다가오려고 노력하는 팬들이 있기에, 우리는 긴장을 풀고 평소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해외에서의 첫 팬사인회.
다른 나라에 있는 수플레들을 본 소감은 뭐라고 할까. 한국에서 우리 팬들을 만날 때와 비슷했다.
오늘 만들었던 달콤한 빵들처럼 포근하고 따스하다.
뭉클한 기분에 쇼핑몰 유리천장을 통해 보이는 구름과 달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좋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비행기 타고 오기를 참 잘했다고.
다음에 또 와야 한다면, 그때도 여전히 무섭긴 하겠지만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떠나는 이마다 손을 살포시 붙잡고 내가 느끼는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고마워요. 정말로.」
진심이었다.
* * *
사인회 다음 날.
타이베이 시내의 한 공연장에 뉴블랙의 쇼케이스가 열렸다.
백여 명의 기자들을 불러놓고 Q&A와 무대를 진행한 공연이 끝난 후, 일반 팬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으아. 떨린다. 떨려.」
「심호흡 해, 심호흡. 떨지 마.」
「…너도 떨고 있잖아.」
줄이 조금씩 줄 때마다 대만의 팬들은 연신 손을 비비거나 발을 동동 구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공연을 하는 가수보다 더 떠는 모습.
그렇게 입장한 수백여 명의 팬들은 어둑어둑한 객석을 돌아다니며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플래카드나 1회용 응원봉을 든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옆자리의 친구에게 속삭였다.
「나 너무 떨려. 지금까지 동영상으로만 봤는데, 실물도 그거랑 비슷하려나?」
「어제 쇼핑몰에서 팬사인회 한다고 들어서 내가 갔거든. 줄이 길어서 사인은 못 받았는데, 먼 발치에서 구경만.」
「어땠어?」
「빛이 나. 미륵보살처럼 뒤에서 후광이 쫘악!」
실물을 봤다는 친구가 호들갑을 떨면서 묘사를 시작했지만 왠지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다.
‘그 정도라고?’
마스커레이드 때부터 뉴블랙의 팬이 되기는 했지만 그녀는 뉴블랙에 관련된 소스라면 모조리 꿰고 있었다.
그랬기에 의문이었다.
‘카메라 화면보다 더?’
TV 화면으로도 그 미모가 화면을 부수고 나올 것 같은데, 실물이 그보다 더하게 느껴진다니.
솔직히 카메라에 비친 그대로만 해도 대박인데.
친구의 이야기에 좀 과장이 섞였다고 판단하고는 공연장 VCR로 시선을 돌렸다.
저마다 다른 색의 배경 위로 번체자로 쓰인 이름과 멤버 개인 화보가 지나간다.
‘……너무 예뻐.’
얼마 안 가 공연장의 조명이 암전되기 시작했다.
‘시작한다…!’
장막 뒤에서 종종 걸음으로 나오는 실루엣들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쩜 그림자도 저렇게 예쁘지?’
그 순간 무대 대형으로 모인 다섯 명의 위로 파란 조명이 쏟아졌다.
타앗!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뉴블랙 멤버들.
불꽃놀이의 시원한 전주가 시작되고, 저마다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손을 뻗는 다섯 아이돌의 모습에 관객들은 시각적인 충격을 느꼈다.
붓으로 그린 동양화처럼 멤버들의 테두리와 무대를 가르는 선이 곱디 곱게 느껴졌다.
‘미쳤다…….’
친구의 미륵보살 드립에 웃음만 지었던 누군가는 멀리 떨어진 무대를 보며 소름이 쫙 돋았다.
‘진짜다.’
정말 후광이 비친다고 해야 하나.
단순히 비주얼 때문에 느끼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목소리.
‘진짜 라이브구나. 이게.’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빈 종이를 색칠하듯 다섯 명의 보이스 컬러가 개성 있게 어우러진다.
눈을 감고 듣고 싶을 만큼 노래 자체가 너무나 좋았지만, 팬들은 무대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뭐라고 할까.
공연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생기가 느껴졌다.
정말 ‘불꽃놀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노래의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불꽃이 터지는 것 같다고 할까.
멤버 다섯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노래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팬들이 재빨리 그 동안 익혀둔 응원법을 외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대를 휘젓고 다니던 뉴블랙 멤버들의 입가에 행복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슥 사라졌다.
그 모습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청량하게 시작한 오프닝 무대는 뜨겁게 끝이 났다.
환호 속에서 웃던 뉴블랙 멤버들이 땀을 식히면서 손을 흔들었다.
MC가 무대 위에 오르고 다섯이 일렬로 주르륵 늘어선 후.
멤버들을 바라보던 리더가 부드럽게 입술을 뗐다.
“二, 三。”
다섯이 동시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大家好, 我們是 The New Black!”
단체인사가 끝나고 멤버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대만의 팬들은 희한한 느낌을 받았다.
방금 공연할 때만 해도 그 유려한 몸짓과 목소리로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았는데 이제는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다른 멤버가 소개를 하는 동안 뭐가 좋은지 꺄르르 웃기도 하고, 팬들을 향해 눈을 왕방울처럼 크게 뜨고 손을 흔들고, 하트도 날리고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틈이 날 때마다 멤버들이 분주하게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좋아해요, 여러분!」
「나는 더 좋다.」
「무슨 소리야. 너희들. 내가 제일 좋아하거든? 어디 천자문도 떼지 못한 것들이…….」
세 명이 바보 같은 대화를 주고받고, 나머지 둘은 부드럽게 웃거나 한심하게 혀를 끌끌 차고.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거기다 순식간에 산으로 가는 대화까지.
「꺄! 웃겨!」
「……저기요, 뉴블랙 여러분!」
통역사 겸 진행자만 환장한 얼굴로 큐카드를 흔들었다.
「저기, 진행 좀 하겠습니다. 저기요!」
「꺄꺄꺄!」
「너무 좋다! 우리 여기 집 짓고 평생 살아요!」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오디오에 팬들은 연신 웃음을 터뜨렸고, 진행자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많이 보아왔던 친숙한 모습이라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모습도 있었다.
‘말 겁나 잘해…….’
타이베이에 10년 넘게 산 사람처럼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리더의 모습에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과연 우젠민…….’
그때마다 재미있는 모습이 펼쳐지곤 했다.
Q&A 시간.
보통 중국어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날아올 때마다 멤버들이 한국어로 대답을 해주면.
통역이 이어지면서 그간 눈을 멀뚱멀뚱 뜨던 팬들이 ‘아!’ 하며 환호성을 터뜨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우젠… 아니 우주는 달랐다.
「연습생 때 대만 친구가 타이베이 꼭 가보라고 했는데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걸 그랬어요. 다음에 할머니 모시고 꼭 와 보려고요.」
대만의 수플레들이 그 이야기에 환호를 하는 동안, 나머지 한국 가수들이 눈을 멀뚱멀뚱 떴다.
사람 말을 알아들으려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
그러면 통역사가 우주가 한 이야기를 한국어로 설명해주었다.
“아아……!”
멤버들이 손뼉을 치며 납득하는 광경에 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뭔가 반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느껴지는 풍경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재미있는데.
모두가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와아아아……!”
마스커레이드의 무대가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내려가는 동안에도 팬들의 환호성은 멈추지 않았다.
“어으, 죽겠다.”
땀에 흠뻑 젖은 막내가 생수병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입술을 훔쳤다.
“와, 장난 아니네여. 제가 생각한 쇼케이스랑 완전 달라여.”
“그러게, 콘서트 같아.”
우리들도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 명칭으로는 아시아 투어 쇼케이스기는 했지만, 어째 콘서트 같은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었다.
“후우.”
무대 아래에서 의상을 빠르게 갈아입었다.
리혁이가 옷을 벗다가 그만 휘청이기에 붙잡아주었다.
“괜찮냐?”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으니까.”
손사래를 치지만 왠지 힘들어 보인다.
모두가 그랬다.
어제 예상을 뛰어넘어 엄청나게 몰려든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다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나마 파스 덕에 버틴다고 할까.
특히 빵을 만들었던 나와 비주는 파스를 온몸에 덕지덕지 붙인 채였다.
힘들게 옷을 갈아입는 동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참자.”
“……네.”
파스향을 솔솔 풍기며 의상을 갈아입었다.
무대 위에서 추첨 이벤트를 진행하는 사회자를 흘깃거리다가 준비를 끝낸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준비됐어?”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거의 마지막 무대.
그 동안 우리를 기다려 주었던 팬들에게 깜짝 선물을 해 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