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5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우리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막내는 눈이 휘둥그레 뜨더니 다급하게 물었다.
“저희 혹시 못 나가여? 그런 거예여?”
“아니, 그런 건 아니야.”
홍 대리님이 손을 내저었다.
“너희 출연에 지장이 갈 일은 없어. 그건 저쪽 CP님이랑 우리 측이랑 완벽하게 합의가 끝난 사항이야.”
“아, 다행이네요….”
“내가 신경이 쓰인다고 한 부분은 연예부 기자들이야. 이제 곧 나올 기사나 대중 반응들 말야.”
우리는 회의실로 옮겨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세한 특집 기억 나? 너희가 출연한다는 이야기 나왔을 때 말이야.”
“아직도 생생해요.”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국민예능의 추석특집에 듣보 아이돌이 게스트로 나온다며 악플 엄청 달렸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우리 매니저들이 화를 참는 표정이나 기사에 달린 좋아요나 화나요 숫자만 봐도 대강 짐작이 갔다.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야. 이번 명곡 발굴단이 런칭하는 시간대가 주말 황금 시간대거든.”
“…….”
“너희가 게스트 출연 위주로 나가서 감이 안 올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정말 큰 건이야. PBS 예능국에서 각 잡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경쟁사인 TBC가 ‘파티시에 코리아’라는 경연 프로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 부러웠는지, 이번에 PBS가 ‘도전, 명곡 발굴단’이라는 음악 경연을 야심차게 준비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대표로 말했다.
“중요한 기회라는 건 저희도 잘 알아요.”
이번에 ‘도전, 명곡 발굴단’에는 다섯 팀이 나와서 실력을 선보이게 된다.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경연이지만 일반적인 서바이벌 예능과는 내용이 조금 달랐다.
여긴 탈락자가 없었다.
대신 시즌제처럼 이번 ‘1기’ 멤버들이 두어 달 가까이 방송을 이끌어가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두 달 동안 매주 우리의 얼굴이 지상파, 그것도 공영방송 PBS의 주말 시간대에 나온다는 뜻이다.
아이돌 팬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도 눈도장을 콱 찍어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기회.
“맞아, 엄청 중요해. 그런데 우리한테만 중요한 게 아니라 방송국에서도 중요한 기획이거든. 홍보 사이즈도 크게 들어가. 보도 물량 풀리는 것도 어지간한 드라마랑 비슷한 수준일 거고.”
이어서 나올 이야기가 짐작이 되었기에 우리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악플 엄청 달리겠네요.”
“각오해야 될 거야.”
홍 대리님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안타깝게도 너희가 연차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편이잖아. 나머지 참가자는 대중적으로 이름을 꽤 알리고 있고. 그런 부분에서 불공평한 일들이 있을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감수해야죠.”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경연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대부분 대중들이 ‘아, 그 사람’ 할 만한 인물이었다.
반면에 우리는 올해의 신인이라 불릴 만큼 아이돌계에서 이름을 알려가지만, 아직 대중적인 인지도가 부족한 2년차 아이돌.
거기다 대중들이 흔히 아이돌의 실력에 대해 지니고 있는 선입견까지 고려하면…….
무슨 반응이 나올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이번 주에 녹화 들어가기 전에 보도자료도 같이 풀릴 텐데, 너희 이름도 그 사이에 끼어서 들어갈 거야.”
홍 대리님이 주의사항을 일러두었다.
“언론 인터뷰는 긁어 부스럼이라 최대한 피하기는 할 텐데, 그래도 혹시 기자들 보거나 그러면 꼭 조심해. 괜히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프로그램 출연까지 휘청일 수 있어.”
그러곤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을 때 어떤 답변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입 조심 잘할게요.”
“그래, 그리고 댓글은 안 보는 거다. 약속하는 거야?”
“네, 대리님.”
걱정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에게 우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희 진짜로 댓글 안 볼 테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지난번에 주세한 때도 안 봤어요.”
“그래, 그럼 노파심에 꺼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두고.”
한시름 덜었다는 듯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이제 남은 건 홍보팀에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외부 이벤트와 관련된 사항이었다.
악플에 관한 우려 때문에 잠시 침체되긴 했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니 금세 분위기가 살아났다.
“……네?”
우리가 호기심을 보였다.
“이모티콘이요?”
“응, 팬들이 너희 보고 짤방 부자라고 하더라. 특히 우주 너는 짤방계의 대부호라고.”
“기왕이면 다른 대부호가 되고 싶었는데… 슬픈 별명이네요.”
내가 처량 맞게 웃자 홍 대리님이 핸드폰으로 메신저용 이모티콘을 보여주었다.
스칼렛 멤버들이 다 같이 어깨춤을 추면서 ‘덩실덩실~’ 써 있는 이모티콘이라거나, 데이지가 손가락질 하며 ‘땅 파면 돈 나오냐!’ 하는 것들.
“걸그룹들은 꽤 출시하는 것 같더라고. 이렇게 누르면 움직이는 이모티콘이야.”
“오호.”
“그래서 너희 것도 팔아… 아니, 흠흠.”
우리의 눈이 가늘어지자 상대가 헛기침을 했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만들려고. 메신저 측과도 협의를 진행하는 중이야. 음, 한 가지가 아쉬운 게 있긴 한데.”
“……?”
“이모티콘 문구를 재미있는 걸로 써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웃긴 짤방 지분의 80퍼센트가 우주라서.”
“앗, 아아…….”
“팬들한테 균형을 맞춰줘야 하잖아. 특정 멤버한테 몰아주지 않도록. 그 비중에 맞게 조율하는 중이야.”
멤버들이 반성하는 얼굴로 말했다.
“저희가 보탬이 되도록 더 흑역사를 만들어 볼게요.”
“너무 안일했구나, 우리.”
“저희가 우주 형에게 너무 크게 기대고 있었나 봐여. 평소에 밀리지 않고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 말에 대리님이 당황하면서 그건 아니라고, 너희 이미지 관리해야 하는 연예인이라고 누차 말했다.
이모티콘에 대해서는 조만간 따로 날을 잡아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기로 결론이 났다.
“나머지는 뭐가 있나요?”
“어린이 교양 프로 측이랑 나눴던 프로모션 이벤트 이야기도 있고. 고양이 사료 광고도 있고. 특히 이번에 명곡 발굴단 제작발표회 관련해서…….”
잠깐만.
지금까지 음악 예능에 정신이 팔려서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상한 게 하나 끼어 있었다.
“……고양이 사료 광고요?”
“응.”
“고양이?”
“응.”
“그 야옹하는?”
홍 대리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양이 사료 맞아.”
“어째서 그런 광고가 저희에게……?”
“광고주가 그러는데 우주 네가 아이돌쇼에서 썼던 고양이 영상 편지가 아주 마음에 쏙 들었대.”
“…….”
광고 내용이 뭐가 될지 짐작이 갔던 탓에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세상만사 달관한 표정을 지었다.
* * *
얼마 후.
군산의 한 대형 마트.
드르륵!
카트 한 대가 힘 있게 복작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아이고, 뭐 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많다냐.”
김덕순 여사가 혀를 내둘렀다.
잠깐 장을 보러 나왔는데 마트에 손님이 오지게 많았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녀는 몸을 피했다.
‘이거 기스 나면 안 되는데.’
우주가 사준 옷도 옷이지만 팔찌에 흠집이 날까 봐 걱정이 됐다.
손자가 첫 정산 기념이라고 사준 값비싼 장신구였다.
‘내가 미쳤지. 이걸 왜 차고 나와서… 옘병.’
멋 좀 내겠다고 가지고 나왔는데. 평일부터 이렇게 사람이 많이 나올 줄은 예상도 못하고 있었다.
‘여기 기스라도 나면…….’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났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서글픈 얼굴로 응, 할매 내가 사준 선물을 그렇게 응 서운하네, 왕서운이네, 대박서운이네 하며 조잘대며 잔소리를 퍼부을 게 뻔했다.
동그랑땡을 부쳐서 팔던 직원이 그녀를 불렀다.
“아이고, 여사님. 오랜만에 보네. 어서 오셔.”
“장사는 잘 뎌?”
“그냥저냥이지. 요거 하나 잡숴 봐.”
시식코너로 내온 기름진 동그랑땡을 이쑤시개로 콕 찝어 먹었다.
“맛이 어때요? 하나 가져갈래?”
“응, 맛있네. 근데 내 스타일은 아니구만. 나는 여기서 쪼금 들 짭쪼름하고 그래야 돼.”
직설적인 대답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직원이 웃었다.
그러곤 김덕순 여사의 팔에서 반짝반짝거리고 있는 팔찌를 가리켰다.
“어머, 이 이쁜 거 봐. 누가 사줬어?”
“손자가.”
“서울에 있는 손자?”
“응, 이번에 돈 좀 만졌다고 할매 호강시켜준디야.”
“효자네, 효자.”
직원이 손뼉을 치며 부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우쭐한 표정을 짓는 김덕순 여사의 귀에 질문이 날아들었다.
“근데 손자가 서울에서 뭐를 하는데?”
“아, 별 건 아니고…….”
그때 김덕순 여사의 눈에 불현듯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뿌듯하게 움직이던 그녀의 입이 멈췄다.
‘……뭐여.’
처음에는 잘못 본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나안시력 1.0의 팔팔한 두 눈으로 보이는 것은 틀림없이 손자와 그 똘마니들의 얼굴이었다.
판넬로 서 있는 다섯 남자의 모습에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쟤들이 저기 있는 겨?’
손자가 이런저런 광고를 찍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교복 모델도 하고, 무슨 비행기 모델도 하고.
얼마 전에 보내준 홍삼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띠지에 한복을 입은 뉴블랙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랬기에 제품 판촉물에 들어가 있는 얼굴을 본다고 한들 전혀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너가 영 이상했다.
‘사료?’
멀리 떨어진, 동물 사료를 모아놓은 칸으로 들어가는 진입구에 우뚝 서 있는 판넬.
중앙에 선 우주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옘병할 구도.
말풍선에는 『나비야. 기.억.해. 사료는 에센셜 라이트야.』 라는 궁서체 문구가 쓰여 있었다.
뒤에서 훈훈하게 웃고 있는 똘마니들은 덤이었다.
“…….”
그녀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상대가 재차 물었다.
“여사님, 손자가 서울에서 뭐하냐니까?”
“…….”
김덕순 여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고양이 사료 광고를 시작으로 1월 3주차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우리는 어린이 역사 교양 프로그램 ‘쏙쏙! 역사 탐험대’ 측과 한 차례 미팅을 가진 후 출연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피디님이 연신 우리 손을 붙잡고는 말했다.
“우리 좋은 인연이 되어 봐요.”
작가님을 비롯해 제작진은 우리를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비주얼에 1차적으로 행복한 미소를 한 번 짓고는, 리혁이와 내가 풀어내는 역사 상식에 감탄사를 내질렀다.
거기다 지호의 간단한 즉흥 연기 실력까지.
세상 이런 적임자가 있을 수 없다며 미팅을 시작한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 손을 꼭 붙잡았다.
본격적인 녹화 시작은 스튜디오 세팅이나 대본 등이 준비된 후인 2월 초로 합의를 했다.
동생들과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예능(?)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어린이 프로그램이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고정 프로그램이 또 하나 생기는 거였으니까.
“마음에 들어요.”
어딘가 이상한 이유로 좋아하는 녀석도 있었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역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가르칠 수 있는 기회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들뜨고 설레지 않아요?”
“…….”
“내 손으로 미래의 역사학도를 키워낼 수 있다니, 후후후…….”
대사는 건전하기 그지 없는데 어째 호환마마처럼 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메인보컬이었다.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현아.”
“네, 형.”
“끌고 가라.”
“……왜 이래요, 이거 놔요!”
어쨌거나 바쁘게 지나가는 나날들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신인상 뉴블랙!
목요일에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또 다른 어워드에서 우리는 신인상을 수상했다.
무려 4관왕.
그에 맞춰서 기사들도 쏟아져 나왔다.
-4관왕 ‘대박신인’ 뉴블랙, PBS 새 음악예능 출연?
-PBS ‘도전, 명곡 발굴단’, 라인업 첫 공개
-실력파 발라더부터 신인 아이돌까지, PBS 새 예능 ‘명곡 발굴단’
우리 홍보팀에서 손을 쓴 건지, PBS 측이 결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경연 프로의 라인업 공개와 우리 신인상 수상의 타이밍이 잘 맞물렸다.
새로운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워낙 기존 음악 프로가 많은 탓에 ‘또 음악예능이냐’ 하는 반응도 나왔지만 그 빵빵한 라인업 덕이었다.
-헐, 대박. 차우현 경연 프로에 나옴?? 꼭 본방사수한다
-리사 오랜만에 TV에서 얼굴 보네
-리사 잘 됐으면
-이야.. 요즘 뜨는 가수들 다 모아놨네
댓글이 궁금하다는 말에 홍보팀에서 보여준 댓글들이었다.
우리에 관한 댓글들은 필터링되어 없었는데, 그걸로 보아 대강의 상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예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대부분 좋지 않은 반응이어서 알아서 커트가 된 게 분명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대부분 후자에 가까운 반응일 텐데.
솔직히 궁금하다.
우리에 대해서 대중이 어떤 시각을 지니고 있는지 손가락이 간질거렸지만 참았다.
석환 형이 해 준 얘기 때문이었다.
-레몬 엔터에서 멘탈 강하기로 유명한 배우들도 사소한 악플 하나에 흔들리는 게 대부분이야. 자기가 아니라 배역에 관한 욕이 달려도 움츠러드는 게 사람인걸.
악역 연기를 너무 잘해서 배역에 관해 악플이 우수수 달렸는데, 그걸 본 뒤부터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움츠러들었다나.
결국 안 보기로 했다.
어차피 본다고 내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생각을 내가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자고 생각했다.
“다 왔어.”
금요일 오전.
전날 있었던 어워드 무대의 피로를 떨쳐내면서 우리는 여의도에 있는 PBS 방송국으로 들어섰다.
투박하고 낡은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널찍한 대형 회의실.
“우리가 처음인가 봐.”
촬영을 앞두고 출연자끼리 모여 한 차례 인사를 나누기로 한 터였다.
지금까지는 제작진과 사전 미팅만 진행한 터라 출연진끼리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다 좋은 분이었으면 좋겠어여.”
“그러게.”
출연진 중에서 제일 막내였던 탓에 선배 가수들이 어떤 사람들일지 기대되면서도 떨린다.
회의실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만두, 만두만두만두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때.
달칵.
문이 열리면서 우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저기요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는 고개를 빼꼼 내미는 여자가 보였다.
살짝 처진 눈꼬리가 돋보이는 부드러운 인상.
추위를 많이 타는지 엄청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다.
가끔 지나가다가 타이어 쌓은 선반 위에 그려진 타이어 인간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리가 눈을 크게 떴다.
“엇……!”
우리 모두가 잽싸게 일어나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엇, 네에…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어색하게 인사를 하자 내가 대표로 말을 걸었다.
“어제 장소원 선배님한테 말씀 들었어요.”
“어, 저두요….”
상대가 희미하게 웃었다.
“소원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러더니 어색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리사.
지금은 해체되어 없는 걸그룹 슈가피쉬에서 활동을 했던 멤버다.
장소원 선배가 싱어송라이터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면 리사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중이었다.
원래는 벨기에로 떠나 휴식기를 가졌다가 최근 한국으로 돌아와 왕성하게 활동 중이라나.
복귀 후 첫 주연으로 나선 뮤지컬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기사를 어제 보고 온 터였다.
어제 어워드에서 장소원 선배가 해주었던 당부가 떠올랐다.
-언니가 낯을 엄청 가리거든. 너희가 친근하게 다가가줘. 엄청 소심하고 착한 언니야.
…라는 말을 미리 듣기는 했지만 조금 낯설었다.
TV 영상이나 뮤지컬 클립 등을 보면 자신감 뿜뿜하게 연기를 하고 파워풀한 노래를 부르는데 실제 성격은 그와 정반대로 보였으니까.
장소원 선배가 좋은 이야기를 해줬는지, 다행히 상대는 우리에게 빠르게 경계심을 풀었다.
자연스럽게 편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착해?”
“네.”
“소원이가 착해?”
“네. 엄청 잘해 주세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허공을 보며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는 모습에 우리가 웃었다.
그녀가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나는 걔 때문에 힘들거든.”
“……네?”
“난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데 맨날 찾아와서 쇼핑 데려가고, 공원 산책 가자고 그러고, 이상한 도시락 싸와서 먹이고. 나가기 싫다고 하면 집순이라고 놀리고.”
우리가 웃음을 참았다.
“거기다 요즘에는 같이 듀엣곡 내자고 맨날 졸라.”
장난기 넘치는 동생이 내향성 언니를 괴롭히는 그림이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소원 선배가 그런 면도 있었구나.
사이가 엄청 좋은 모양이었다.
불평을 하면서도 리사의 얼굴에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때 내가 말했다.
“참, 선배님.”
“음?”
“그러고 보니 저희 매니저 중에서 선배님 팬이 있거든요.”
“정말?”
장소원 선배가 썸씽으로 1위를 거머쥐었을 때 오열하면서 행복해했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때 ‘저 최애는 리사 씨, 으흐흑!’ 하며 울었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만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서 인사라도 시켜줄라고 했는데 민기 형이 안 보인다.
“이 형 어디 갔지?”
내가 벽 쪽 관계자 석에 앉아 있는 원석이 형을 바라보았다.
“형, 민기 형 어디 갔어요?”
“아까 뭐 볼일이 생겼다고 나가셨어.”
“이상하네. 오늘 무슨 일 없을 텐데…….”
아까부터 어색한 얼굴로 방을 나가려고 그러던데. 혹시 최애를 만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가.
장난기가 동해 리사 선배에게 양해를 구하곤 영상통화를 걸었다.
곧바로 방송국 복도에 서 있는 민기 형의 얼굴이 들어왔다.
-여보세요.
“형, 저예요.”
-어, 무슨 일이야?
내가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형이 좋아하는 리사 선배님이랑 만나고 있거든요. 얼굴 보고 어떻게 인사라도…….”
-안 돼!
부끄러워서 그런 건가 싶어서 우리가 막 웃으면서 핸드폰을 리사에게 건네주었다.
헛기침을 하며 수줍게 머릿결을 가다듬은 가수가 자신의 팬을 마주하며 인사를 하려고 할 때.
-…….
“……?”
리사가 눈을 멀뚱멀뚱 뜨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리사조아 님?”
-…….
“리사조아 님이 거기 왜 있어요?”
화면 안팎으로 흐르는 침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